文天祥 (문천상, Wén Tiānxiáng, 1236~1282)

문천상 [文天祥, 1236~1282]

異名: Wén Tiānxiáng, 호 문산(文山), 자 송서(宋瑞), 이선(履善)
국적: 중국 남송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중국 장시성[江西省] 지수이현[吉水縣]
주요저서: 정기가(正氣歌), 문산전집


13세기 중국 남송의 정치가, 시인. 송나라(남송)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저항하다 체포되었고 쿠빌라이칸이 그의 재능을 아껴 몽고에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자 송서(宋瑞) ·이선(履善). 호 문산(文山). 장시성[江西省] 지수이현[吉水縣] 출생. 1255년 20세때 진사에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였다. 1259년 몽골군의 쓰촨성[四川省] 침입으로 합주(合州)가 포위되고 천도설이 유력하게 대두되자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천도를 강경히 반대하는 글을 올려 그날로 면직되었다. 후에 복직하였으나, 가사도(賈似道)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직하였다.

이듬해 원(元)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수도 임안(臨安)에 다다르자 문관으로서 근왕병(勤王兵) 1만명을 이끌고 임안 방위에 급히 참가하여 분전(奮戰)하였다. 송(宋)나라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공제(恭帝)의 명을 받아 원나라로 가서 강화를 청하였다. 원나라의 총수(總帥) 백안(伯顔)과 회견하면서 항론(抗論)하다가 구류되었다.

그 동안에 임안은 함락되고, 송나라는 멸망하였다. 포로가 되어 북송(北送)되던 중 탈주하여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에서 제왕을 칭하고 있던 탁종(度宗)의 장자 익왕(益王)을 받들었다. 잔병(殘兵)을 모아 싸웠으나 광둥성[廣東省] 오파령(五坡玲)전투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대도(大都: 北京)로 송치되어 3년 간 감옥에 갇혔다.

원나라의 세조(쿠빌라이칸)가 그의 재능을 아껴 벼슬을 간절히 권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사형되었다. 시(詩)에도 능하여 옥중(獄中)의 작 《정기가(正氣歌)》로 유명하다. 문집에《문산전집》이 있다.


주요 작품

集杜詩(집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