附和雷同 (부화뇌동)

附和雷同(부화뇌동)

제 주견 없이 남이 하는 대로 그저 무턱대고 같이 움직이는 것

不惑 (불혹)

不惑(불혹)

40세를 달리 일컫는 말.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의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에서 나온 말.

不學無識 (불학무식)

不學無識(불학무식)

배우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

負荊請罪 (부형청죄)

負荊請罪(부형청죄)

負 질 부 | 荊 가시나무 형 | 請 청할 청 | 罪 허물 죄 |

가시 나무를 등(等)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認定)하고 사죄(謝罪)하는 것을 의미(意味)함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중국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를 두었다. 이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보물인 화씨지벽을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인물로, 이로부터 '완벽(完璧)'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또 민지의 회합에서 혜문왕이 진나라 소양왕의 위협에 수모를 당할 상황에 처하였을 때, 인상여가 지모를 발휘하여 이를 막아냄으로써 조나라의 위엄을 지켰다. 인상여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대장군 염파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인상여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른 데 불만을 품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을 놀린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고 그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고 말리라"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염파는 이를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인상여는 이에 대하여 "나는 진나라 왕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호랑이가 싸우게 된다면 어느 한 쪽은 다치거나 죽기 마련이다. 내가 염파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일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잘못을 깨우쳐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서는 "비천한 놈이 장군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벌을 주시오"라고 사죄하였다. 인상여는 염파를 환대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는 '문경지교'를 맺게 되었다.

이 고사는 《사기》의 '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부형청죄(또는 육단부형)는 남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육단부형(肉袒負荊)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北風寒雪 (북풍한설)

北風寒雪(북풍한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찬 눈.

不寒而慄 (불한이율)

不寒而慄(불한이율)

不 아닐 불, 아닐 부 | 寒 찰 한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慄 떨릴 율(률) |

춥지 아니한데 공포에 떨린다는 뜻으로, 포악(暴惡)한 정치로 백성(百姓)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르는 말

Trembling without being cold. Shiver up and down your spine.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寧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 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백여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하였다. 의종은 이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하였다라고 판결하고,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不寒而慄],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不寒而慄(Trembling without being cold)은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不抛加忍 (불포가인)

불포가인(不抛加忍)

不 아닐 부, 아닐 불 | 抛 던질 포 | 加 더할 가 | 忍 참을 인 |

포기하지 말고 인내(忍耐)를 더하라.

不恥下問 (불치하문, bùchǐxiàwèn)

不恥下問(불치하문)

不耻下问(bùchǐxiàwèn)

不 아닐 불, 아닐 부 | 恥 부끄러울 치 | 下 아래 하 | 問 물을 문 |

자기보다 지위(地位)ㆍ학식(學識)ㆍ나이 등이 낮은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Not ashamed to ask of one's inferiors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온다.

춘추(春秋)시기,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던 공어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칭송을 받았다.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 이라는 봉호(封號)를 하사하였다.

당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위나라의 자공(子貢)은, 공어에게는 잘못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만큼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위(衛)나라의 대부인 공어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된 것입니까?"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를 문이라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

이렇듯 학문을 좋아하여,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함께 길을 가는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또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자가 실에 구슬 꿰는 방법을 몰라 바느질하는 아낙네에게 물어 개미 허리에 실을 매고 구슬 구멍 반대편에 꿀을 발라 개미가 꿀 냄새를 맡고 바늘을 통과해 구슬을 꿰었다는 말인데, 역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출전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관련 고사성어

유의어

孔子穿珠(공자천주) |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

不出戶知天下(불출호지천하)

不 아닐 불 | 出 날 출 | 戶 집 호 | 知 알 지 | 天 하늘 천 | 下 아래 하 |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다. 深奧(심오)한 道理(도리)를 깨친 사람의 境地(경지)를 이름.

[출전]
노자 47장.

不撤晝夜 (불철주야)

不撤晝夜(불철주야)

밤낮을 가리지 않음.

北窓三友 (북창삼우)

北窓三友(북창삼우)

거문고(琴)와 술(酒)과 시(詩)를 말함. 남자(선비)의 세 벗.

夫唱婦隨 (부창부수)

夫唱婦隨(부창부수)

남편이 창을 하면 아내도 따라함 남편뜻을 아내가 좇음

釜底抽薪 (부저추신, fǔdǐchōuxīn)

釜底抽薪(부저추신)

釜底抽薪(fǔdǐchōuxīn)

釜 가마솥 부 | 底 어조사 저 | 抽 뺄 추 | 薪 땔나무 신 |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어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막)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하다.

To take away the firewood from under the cauldron ; To take drastic measures to deal with an emergency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19계이다. '혼전계'는 전투가 시작되어 공방이 혼란스럽게 오고갈때 사용하는 계략이다. 그러기에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 뒷공작 등의 계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솥밑에서 땔감을 빼낸다. 풀이글을 보면, "적이 강력해서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울 때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기세를 꺾도록 해야한다. 우회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의 굳건한 기세를 꺾는 것이다.[不敵其力,而消其勢,兌下乾上之象.]" 라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이르는 '땔감'이라 함은, 여러가지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군대의 사기를 뜻하기도 하고, 그 사기의 원천이 되는 그 어떤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군대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군량미 등을 뜻할수도 있다. 따라서 "솥밑에서 땔감을 빼낸다."는 의미는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한 선동이라거나, 군량미 탈취 등의 광범위한 공작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楚漢志에서 아주 유명한 고사인 '四面楚歌(사면초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결전전야, 항우가 장수들과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때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수많은 장병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전의를 잃고 군영에서 탈출하여 전장을 떠나버린다. 이에 항우가 슬퍼하며 고립무원의 처지를 슬퍼하며 애첩 우희(虞姬)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 유명한 해하가를 부른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뒤덮을만 하건만
時不利兮騅不逝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네.
騅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虞兮虞兮奈若何 우희여! 우희여! 당신을 어쩌면 좋을까!

이 장면이 바로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 중 하나인 '覇王別姬(패왕별희)'로 유명한 바로 그 장면이다. 초군을 포위하고 있던 한군에서 흘러나온 초나라 노래가 초나라 장병들의 사기를 꺾어, 다음날 결전에 임해서는 수많은 병사들과, 계포, 종리매 등의 장수들마저 군영을 이탈한 상태였다. 항우를 중심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한군의 포위를 깨부수려던 초나라 군사의 사기를 한군은 이렇게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또다른 유명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에서는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실제로는 천하를 가름하는 일전이었던 '官渡大戰(관도대전)'.

이 싸움에서 하북의 패자, 원소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에 몰려있었고, 군량도 떨어져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 원소의 진영에서 이탈하여 조조에게로 투항한 허유의 계략에 따라 원소군의 군량고였던 '烏巢(오소)'를 습격하여, 일거에 원소군의 군량을 빼앗음으로 하여 관도대전에서 승리하여 중원의 지배자로서의 입장을 굳힌다.

솥의 물을 끓게 하는 것은 아궁이의 땔감이다. 물이 아무리 펄펄 끓고 있어도, 아궁이의 땔감을 빼버리면 더 이상 끓지 못하는 것이다. 물이 끓고 있을때, 찬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땔감을 빼는 것. 이것이 바로 '釜底抽薪(부저추신)'의 의미라 할 것이다.


관련 고사성어

유의어

抽薪止沸(chōuxīnzhǐfèi) : 솥 밑의 장작을 끄집어 내어 솥의 물이 더 이상 끓지 못하게 하다.

반의어

扬汤止沸(yángtāngzhǐfèi) : 끓는 물을 퍼냈다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막으려 하다.

참조어

四面楚歌(사면초가) |


관련 한시

垓下歌(해하가) |

父傳子傳 (부전자전)

父傳子傳(부전자전)

대대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함

鵬程萬里 (붕정만리)

鵬程萬里(붕정만리)

붕새의 날아가는 길이 만리로 트임. 곧 前程(전정)이 아주 멀고 큼을 이름.

不撓不屈 (불요불굴)

不撓不屈(불요불굴)

굽히지도 꺾어지지도 않음.

不才勝德 (부재승덕)

不才勝德(부재승덕)

不 아닐 불, 아닐 부 | 才 재주 재 | 勝 이길 승 | 德 큰 덕, 덕 덕 |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

負重致遠 (부중치원)

負重致遠(부중치원)

負 질 부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遠 멀 원 |

무거운 물거운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이르는 말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방통전(龐統傳)의 이야기.

중국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오(吳)·촉한(蜀漢) 등 3국이 정립했던 삼국시대에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었던 주유(周瑜:175∼210)가 병으로 죽자, 그의 친구인 방통은 몹시 슬퍼하며 달려와 조문을 하였다.

박학다식하고 명성이 높은 방통이 동오지방에 오자, 육적(陸績), 고소(顧邵), 전종(全琮) 등 이름난 오나라의 선비들도 참석하여 방통과 친분을 맺었다. 문상을 마치고 방통을 환송하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방통은 사람들에 대한 평을 하면서 말했다.

"육적은 잘 달리는 말처럼 재능이 뛰어나고, 고소는 힘든 일을 이겨내며 일하는 소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갈 수 있으며[顧子可謂駑牛能負重致遠也], 전종은 지혜가 조금 부족하지만 이 시대의 인재입니다."

이에 어떤 사람이 방통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육적의 재능이 고소를 능가한다는 뜻입니까?"

그러자 방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말은 민첩하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한 사람 밖에 태울 수 없소. 하지만 소는 하루에 삼백리를 갈 수 있거니와, 소가 짊어진 짐이 어찌 한 사람의 몸 무게만 되겠소?"

방통의 말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인데, 직무상의 중요한 책임을 맡을 만큼 역량을 지닌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방통전(龐統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不入虎穴不得虎子 (불입호혈불득호자)

不入虎穴不得虎子(불입호혈불득호자)

아니 불 | 들 입 | 호랑이 호 | 구멍 혈 | 아니 불 | 얻을 득 | 범 호 | 아들 자 |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후한 초기의 장군 반초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 <한서>를 쓴 아버지 반표, 형 반고, 누이동생 반소와는 달리 무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때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 36명을 상객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초는 궁중에 무슨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선선국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이 만리장성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 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새끼를 못 잡는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대로 죽였다. 이일을 계기로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반초 | 후한

不爲而成 (불위이성)

不爲而成(불위이성)

不 아닐 부, 아닐 불 | 爲 하 위, 할 위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成 이룰 성 |

행하지 않고 이룬다.

[출전]
노자 47장

扶危定傾 (부위정경)

扶危定傾(부위정경)

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


2009년 | 새해 사자성어 | 청와대

不遠千里 (불원천리)

不遠千里(불원천리)

먼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것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

釜底游魚 (부저유어)

釜底游魚(부저유어)

釜 가마 부 | 底 밑 저 | 游 헤엄칠 유 | 魚 고기 어 |

물고기가 솥바닥에서 헤엄친다는 뜻으로, 상황(狀況)이 극히 위험(危險)한 상태(狀態)에 이름을 비유한 말.


후한서(後漢書) 장강(張綱)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순제(順帝) 때, 조정에는 장강(張綱)이라는 낮은 벼슬아치가 있었다. 그는 충실하고 강직하여 아부를 몰랐다. 당시 대장군으로 양기(梁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황후인 누이를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였다.

장강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양기의 탐욕스런 행위를 밝혀 조정 백관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양기의 세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황제도 감히 그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그 후 양기는 장강에게 깊은 앙심을 품게 되었다.

얼마 후, 광릉(廣陵)의 장영(張嬰)이 모반을 일으키고 자사(刺史)를 죽이자 사태가 긴박해졌다. 양기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보복을 하고자, 장강을 광릉의 태수로 임명하여 그를 광릉으로 보냈다.

時<廣陵>賊<張嬰>等衆數萬人, 殺刺史、二千石, 寇亂<揚徐>閒, 積十餘年, 朝廷不能討. <冀>乃諷尙書, 以<綱>爲<廣陵>太守, 因欲以事中之. 前遣郡守, 率多求兵馬, <綱>獨請單車之職.

장강은 양기의 이러한 계책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임지로 떠났다. 장강은 부임하자 곧 장영을 만나 그를 설득하며 반드시 탐관오리들을 처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장영은 장강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들은 살기 위하여 이렇게 모여 일을 일으켰습니다. 물고기가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이, 잠시 숨만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이제 대인께서 명철하시니 저희들에 살길이 있다면 기꺼이 조정에 귀순하겠습니다."

<嬰>初大驚, 旣見<綱>誠信, 乃出拜謁. <綱>延置上坐, 問所疾苦. 乃譬之曰:前後二千石多肆貪暴, 故致公等懷憤相聚. 二千石信有罪矣, 然爲之者又非義也. 今主上仁聖, 欲以文德服叛, 故遣太守, 思以爵祿相榮, 不願以刑罰相加, 今誠轉禍爲福之時也. 若聞義不服, 天子赫然震怒, <荊>、<揚>、<兗>、<豫>大兵雲合, 豈不危乎? 若不料彊弱, 非明也;弃善取惡, 非智也;去順效逆, 非忠也;身絶血嗣, 非孝也;背正從邪, 非直也;見義不爲, 非勇也:六者成敗之幾, 利害所從, 公其深計之. <嬰>聞, 泣下, 曰:荒裔愚人, 不能自通朝廷, 不堪侵枉, 遂復相聚偸生, 若魚遊釜中, 喘息須臾閒耳. 今聞明府之言, 乃<嬰>等更生之(晨)[辰]也. 旣陷不義, 實恐投兵之日, 不免孥戮.

이튿날, 장강은 그들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곧 다시 그들을 석방하였다. 이렇게 하여 장강은 큰 공을 세우며,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부임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綱>在郡一年, 年四十六卒. 百姓老幼相携, 詣府赴哀者不可勝數.


출전

후한서 권86 열전(列傳) 제46 장강전(張綱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劫數難逃(겁수난도) 액운(厄運)은 벗어나기 어려움 |

不言之教 (불언지교)

不言之教(불언지교)

不言之教(bùyánzhījiào)

불언지교. 말이 없는 가운데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不爲胡成 (불위호성)

不爲胡成(불위호성)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이는 서경 태갑편에 나오는 말로 ‘불려호획(弗慮胡獲) 불위호성(弗爲胡成)’ 중의 일부이며,그대로 풀이하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찌 얻을 수 있으며 행하지 않고 어찌 이룰 수 있겠느냐‘ 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숙려단행(熟廬斷行)의 말로도 표현된다.

書經(서경 태갑편)

焚書坑儒 (분서갱유)

焚書坑儒 (분서갱유)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나라 시황제가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농서 등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이다. 언론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의 상징이기도 하다. 당시 불태운 서적들은 현대와는 달리 대나무로 만든 기록수단인 죽간을 사용한 것이었다.

미국의 생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분서갱유가 중국티베트어족의 언어들이 빨리 전파되고, 몽몐어족 등 다른 어족들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不飛不鳴 (불비불명)

不飛不鳴(불비불명)

不 아닐 불, 아닐 부 | 飛 날 비 | 不 아닐 불, 아닐 부 | 鳴 울 명 |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큰 일을 하기 위(爲)하여 침착(沈着)하게 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날마다 음주가무뿐 아니라 음탕한 놀이도 서슴지 않고 즐기며 정사는 중신들에게 맡겼다. 이에 정사가 문란해지고 신하들 사이에도 질서가 잡히지 않았으나 누구도 함부로 나서서 위왕에게 간언하지 못하였다. 이때 순우곤(淳于髡)이 위왕에게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不蜚不鳴] 새'가 무슨 새인지 물었다. 위왕은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르며,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순우곤의 의도를 알아챈 위왕은 비로소 정사를 정상적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중언편(重言篇)'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거의 3년 동안 날마다 주색에 여념이 없었고, 이를 간언하는 신하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어느 날 오거(伍擧)가 연회석에서 장왕에게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 새가 무슨 새냐고 물었지만 장왕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주색에 빠졌다. 이후 충신 소종(蘇從)이 같은 질문을 하자 그때야 뜻을 이해하고 정사를 바로잡았다.

불비불명은 재능이 있는 자가 재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일단 뜻을 펼치면 큰일을 한다는 긍정적인 말이다. 복룡봉추(伏龍鳳雛: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라는 뜻으로,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말함), 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등도 인재가 때를 기다린다는 뜻도 있으므로 불비불명과 비슷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사기(史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鳴驚人(일명경인) | 龍駒鳳雛(용구봉추) | 臥龍鳳雛(와룡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伏龍鳳雛(복룡봉추) | 不飛不鳴(불비불명) |

鵬飛九天 (붕비구천)

鵬飛九天(붕비구천)

鵬 붕새 붕, 봉새 봉 | 飛 날 비 | 九 아홉 구, 모을 규 | 天 하늘 천 |

대붕은 구만리장천을 날아간다

[출전]
장자(莊子)

不問可知 (불문가지)

不問可知(불문가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음

不問曲直 (불문곡직)

不問曲直(불문곡직)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따지지 않음.

父母唯基疾之憂 (부모유기질지우)

父母唯基疾之憂(부모유기질지우)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孟武伯問孝 (맹무백이 효도에 관하여 묻자)

子曰 : 父母唯基疾之憂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


출전

논어(論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

不利天下天下治矣 (불리천하천하치의)

不利天下天下治矣(불리천하천하치의)

不 아닐 불, 아닐 부 | 利 이로울 리, 이로울 이 | 天 하늘 천 | 下 아래 하 | 天 하늘 천 | 下 아래 하 | 治 다스릴 치, 강 이름 이 | 矣 어조사 의 |

천하를 이롭게 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천하는 절로 안정된다

[출전]
열자 양주

人人不損一毫 人人不利天下 天下治矣 (인인불손일호 인인불리천하 천하치의)

佛頭著糞 (불두착분)

佛頭著糞(불두착분)

佛 부처 불, 일어날 발, 도울 필 | 頭 머리 두 | 著 나타날 저, 붙을 착 | 糞 똥 분 |

부처의 얼굴에 똥을 묻힌다는 뜻으로, ①훌륭한 저서(著書)에 서투른 서문(序文)을 쓴다는 말 ②깨끗한 것을 더럽히거나 착한 사람이 모욕(侮辱)을 당할 때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여회선사(如會禪師)편의 이야기.

송(宋)나라 때, 최(崔)씨 성을 가진 한 사나이가 하루는 절에 갔다가, 참새들이 불상의 머리에 똥 싸놓은 것를 보게 되었다[鳥雀于佛頭上放糞]. 그는 절의 주지가 너무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화를 내며 주지에게 말했다.

"이런 참새들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소?"

주지는 이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대답했다.

"물론 있지요."

최씨 사나이는 주지의 이런 대답을 듣고, 그가 어떤 식으로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여 다시 질문을 하였다.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떻게 부처의 머리에 똥을 쌀 수 있겠소?"

주지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참새가 불상에 똥을 싼 것은 바로 부처가 자비하여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새들이 독수리의 머리에 가서 똥을 싸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나이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佛頭著糞이란 경멸이나 모욕을 당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여회선사(如會禪師)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佛頭着糞(불두착분) |

分道揚鑣 (분도양표)

分道揚鑣(분도양표)

分 나눌 분 | 道 길 도 | 揚 떨칠 양, 오를 양 | 鑣 성할 표, 재갈 표 |

길을 갈라서 서로 제 갈 길을 간다. 목적이 달라 피차 가는 길이 같지 않음. 피차 자질이 비슷해서 높고 낮음이 없이 각기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비유함.


북사(北史) 하간공제전(河間公齊傳)의 이야기.

남북조의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는 수도를 핑청에서 뤄양[Luoyang, 洛陽(낙양), 洛阳]으로 옮겼다.

원지(元志)라는 사람이 도읍인 낙양의 경조윤(京兆尹)을 맡고 있었다. 원지는 뛰어난 문재(文才)와 능숙한 일처리, 그리고 황제의 목숨을 구했던 그의 부친 덕분에, 효문제의 깊은 총애를 받으며, 학문이 부족한 고관들을 경시하였다.

한번은, 원지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조정의 어사중위(御史中尉)인 이표(李彪)를 만나게 되었다. 원지는 관직으로 보아 마땅히 이표에게 길을 양보하여야 했으나, 오히려 그를 얕보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이 일을 효문제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이표는 효문제에게 "어사중위는 조정의 대신이거늘 경조윤 따위가 어찌 신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지는 "신은 도성의 장관으로서 뤄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호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통 관리들처럼 어사중위를 만나면 길을 양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박하였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효문제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낙양은 과인의 도읍이니, 마땅히 길을 나누어서 수레를 몰아야 하오[洛陽我之豊沛, 自應分路揚鑣]. 이제부터 길을 달리하여 다니도록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分道揚鑣란 취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을 감 을 뜻한다.


출전

北史(북사) 魏宗室河間公齊傳(위종실하간공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富貴在天 (부귀재천)

富貴在天(부귀재천)

부귀를 누리는 일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憤氣沖天 (분기충천)

憤氣沖天(분기충천)

분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대단함.

不俱戴天 (불구대천)

不俱戴天(불구대천)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수 없는 원수를 이름.


동의어

不俱戴天之讐(불구대천지수) |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

不顧廉恥 (불고염치)

不顧廉恥(불고염치)

체면과 염치를 돌아보지 않음.

粉骨碎身 (분골쇄신)

粉骨碎身(분골쇄신)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깨어지도록 노력함.

不共戴天之讎 (불공대천지수)

不共戴天之讎(불공대천지수)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지독한 원수.


동의어

不俱戴天(불구대천)

不敢請固所願 (불감청고소원)

不敢請固所願(불감청고소원)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본래부터 원하고는 있음.

不可救藥 (불가구약)

不可救藥(불가구약)

不 아닐 불, 아닐 부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救 구원할 구 | 藥 약 약, 뜨거울 삭, 간 맞출 략(약) |

치료약을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①일이 만회(挽回)할 수 없을 처지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 ②어떤 사람의 나쁜 습관을 고치거나 악(惡)한 사람을 구제(救濟)할 길이 전혀 없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악인(惡人)을 구원할 수 없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비슷한 뜻으로 무가구약(無可救藥)이라고도 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인데, 주(周)나라 때 범백(凡伯)이 지은 시라고 전해진다.

서주(西周) 말엽, 주나라 여왕(厲王)이 백성을 탄압하는 정책을 펼치자, 대신(大臣)들은 불만에 가득찼으며, 백성들은 왕을 저주하였다. 여왕은 백성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유명한 관리였던 범백은 잔혹한 여왕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도록 과감하게 간언하였으나 간신들은 그를 비웃기만 하였다. 이에 몹시 흥분한 범백은 다음의 시에서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하늘이 이렇게 가혹한데 그렇게 놀리지 마십시오.
늙은이는 정성을 다하는데 젊은 사람은 교만하고
내가 망령부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장난삼아 놀리는구나.
장차 많은 악행을 일삼으면 '치료할 약도 없다[不可救藥].'

결국, 기원전 841년 핍박받은 주나라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여왕의 포악한 정치도 끝나게 되었는데, 불가구약은 일이 회복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것을 말한다.


출전

시경(詩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