鮑照 (포조, Bào zhào)

포조(鮑照, 421?~465)

異名: 鲍照, Bào zhào, 자 명원
국적: 중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동해
주요작품: 《하청송》

오언시(五言詩)가 전성하던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칠언시(七言詩)에 손을 댄 적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중국 육조(六朝)·송나라의 시인. 특히 악부(樂府)에 뛰어났다. 두보(杜甫)는 그를 '준일(俊逸)'하다고 높이 평가했고 송나라 육시옹(陸時雍)은 "길 없는 곳에 길을 연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자 명원(明遠). 동해(東海:江蘇省 漣水縣) 출생. 참군직(參軍職)을 지내서 포참군(鮑參軍)이라고도 불린다. 지체가 낮은 집안 출신으로, 처음에 송나라 황족 유의경(劉義慶)을 섬겨 국시랑(國侍郞)이 되고, 태학박사·중서사인(中書舍人)·말릉령(秣陵令) 등을 지냈으며, 마지막에 임해왕(臨海王) 유자욱(劉子頊) 밑에서 형옥참군사(刑獄參軍事)가 되었으나, 자욱 등의 반란이 실패하였을 때 형주(荊州:湖北省 江陵縣) 성 안에서 피살되었다.

그의 문장은 기취(奇趣)·신선하며, 당대의 문인 중에서도 사영운(謝靈運)·안연지(顔延之)와 병칭(竝稱)된다. 당시 황허강[黃河]과 지수이강[濟水] 두 강물이 맑아 그것이 천자(天子)의 미덕 때문이라고 소문이 떠돌았을 때, 그는 《하청송(河淸頌)》이라는 서(序)를 지어 호평받았다. 오언시(五言詩)가 전성하던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칠언시(七言詩)에 손을 댄 적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뒷날 당(唐)나라의 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부·잡문 10권이 있는데, 특히 악부(樂府)에 뛰어났다. 두보(杜甫)는 그를 '준일(俊逸)'하다고 높이 평가하였고 송나라의 육시옹(陸時雍)은 그를 "길 없는 곳에 길을 연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첸중롄[錢仲聯]에 의하여 《포참군집주(鮑參軍集注)》가 출판되었다.


포조(鮑照) 관련 한시

答休上人(답휴상인)

抛塼引玉 (포전인옥, pāozhuānyǐnyù)

抛塼引玉(포전인옥)

抛砖引玉(pāozhuānyǐnyù)

抛 던질 포 | 塼 벽돌 전 | 引 끌 인 | 玉 구슬 옥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7계.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작품을 발표한다고 겸손을 표하는 고사성어이다.

To cast a brick to attract jade—offer a few commonplace remarks by way of introduction so that others may come up with valuable opinions

抛出廉价的砖,引来珍贵的玉。比喻说出自己粗浅的意见引出别人的高论(多用作谦词)。


중국의 당(唐)나라 때 조하와 상건(常建)이라는 두 시인이 있었다. 상건은 자신의 시가 조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조하가 소주(蘇州)에 유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상건도 소주에 있었으므로,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하의 시를 배우고 싶었다.

상건은 조하가 소주에 오면 유명한 영암사(靈巖寺)에 반드시 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사묘(寺廟)의 벽에 시를 절반만 지어 적어 놓았다. 과연 조하는 영암사에 들렀다가 벽에 적힌 미완성의 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었고, 상건은 자신의 뜻대로 조하의 그의 시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상건이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은 격'이라고 말하였다. 벽돌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의견이나 작품을 뜻하며, 옥은 다른 사람의 훌륭한 작품이나 고명한 의견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스스로 겸손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포전인옥은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의 제17계이기도 하다. 포전인옥계는 공전계(攻戰計)에 속하며, "비슷한 것으로써 유인하여 어리석은 적을 치는(類以誘之, 擊蒙也)" 계책이다. 벽돌은 미끼를 뜻하며, 옥은 승리를 뜻한다. 곧 미끼로 적을 유인하여 아군의 작전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전술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예를 살펴보자.

실제로 삼국지연의 상의 가장 큰 전쟁이었던 관도대전. 그 관도대전의 서전에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관우는 안량을 단숨에 해치운다. 조조가 관우를 흠모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승리에 기뻐하고 있던 사이, 급보가 날아든다. 원소군의 2장 중 한 명인 문추가 이미 연진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직접 맞서 싸우러 갔다. 그런데 후군이 전군이 되고, 전군이 후군이 되라는 명령을 전군에 내렸다. 군량바리 등이 앞장서 가고 군사가 뒤쳐저 가라는 것이었다. 여건이 물었다.

"군량바리를 앞세우고 군사가 뒤에 가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군량을 뒤에 두면 약탈을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만약 적군을 만나 빼앗기면 어찌하옵니까?"

"그 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연진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전군에서 함성이 올랐다. 조조는 급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

"문추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자 우리 군사들은 양초를 모두 버리고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후군이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어찌 하오리까?"

"저리 잠시 피하도록 하자!"

여러 사람들은 모두 급히 언덕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모든 군사들에게 옷과 갑옷을 벗어던지고 말들도 풀어주라고 했다. 그러자 뭇 장수들이 아뢴다.

"적들이 덮쳐들고 있사옵니다. 빨리 말을 거두어 백마로 후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순유가 황급히 제지하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미끼를 던져 적을 유인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후퇴를 하겠소?"

문추의 군사들은 군량과 거장을 빼앗고 또다시 흩어진 말들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때 조조는 즉시 군사들에게 언덕을 내려가 일제히 공격하라고 명했다. 문추의 군사는 큰 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문추는 결국 패배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관우에게 결국 죽고 만다.

과거의 병사들은 모두 가난한 농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식의 계략이 흔히 쓰였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마초가 동관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는 마초와 양주 10군벌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마초는 강인한 서량병들을 이끌고 조조를 요격하고자 했으나 조조는 전면전을 피하고 마초의 배후를 치기 위해 위수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초는 조조의 군세가 위수를 도하하려는 찰나 조조의 군영을 덮쳤다.

"뒤편에 백포장군이 쳐들어오고 있사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마초라는 것을 알고 앞다투어 배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조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초가 1백여보 앞까지 왔을 때에야 허저가 급히 조조를 배에 태우고 강을 건넜다. 마초가 도착하여 부하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수많은 화살이 조조가 탄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때 위남현령 정비가 남산 위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급히 영채 안의 소와 말을 모두 밖으로 내몰았다. 서량병들은 이것을 보자 모두 이 소와 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조조를 공격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틈에 조조는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수들이 모이자 조조가 말했다.
"내 오늘 하마터면 조그만 도적놈에게 큰일을 당할 뻔 했소이다."

허저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소와 말을 풀어놓지 않았더라면 도적들은 강을 건너 쫓아왔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소와 말을 풀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 정비를 즉시 전군교위로 삼았다.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아주 기본적인 '포전인옥'이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물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미끼부대를 보내서 그 부대를 공격하는 동안 후방을 기습한다거나 하는 식의 응용도 가능하다.

飽飫烹宰 (포어팽재)

飽飫烹宰(포어팽재)

飽 배부를 포 | 飫 물릴 어 | 烹 삶을 팽 | 宰 재상 재 |

배 부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飮食)이라도 그 맛을 모름

[출전]
千字文(천자문)

布射遼丸 (포사료환)

布射遼丸(포사료환)

布 베 포 | 射 쏠 사 | 僚 벗 료 | 丸 알 환 |

여포의 활쏘기와 웅의료의 포환 던지기는 뛰어나다.

[출전]
千字文(천자문)

抱腹絶倒 (포복절도)

抱腹絶倒(포복절도)

배를 끌어안고 넘어질 정도의 크게 우스운 상황.

蒲柳之姿 (포류지자)

蒲柳之姿(포류지자)

蒲柳之姿[púliǔzhīzī]

蒲 부들 포 | 柳 버들 류(유) | 之 갈 지 | 姿 모양 자 |

갯버들 같은 모습이라는 뜻으로, 허약(虛弱)한 몸을 이르는 말

feel like a willow withering at the approach of autumn—suffer from poor health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篇)에 나오는 말로, '포류지질(蒲柳之質)'이라고도 한다.

고열(顧悅)은 동진(東晉)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저우[揚州] 자사가 되자, 그는 고열을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을 믿고 양저우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그 신임에 감동하여 정무에 더욱 힘썼다. 이처럼 오랫동안 너무 과로한 탓에 고열은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어느 날 간문제(簡文帝)가 자기와 같은 연배이면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고열에게 '어째서 그렇게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고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대답했다.

"갯버들은 가을이 오면 먼저 잎이 떨어지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지는 것과 같지요[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栢之質 凌霜猶茂(포류지자 망추이락 송백지질 능상유무)]."

고열은 자신은 '포류지자(蒲柳之姿)', 간문제는 '송백지질(松栢之質)'에 현명하게 비유하면서, 황제의 건강한 모습에 신하인 자신은 먼저 시든다는 군신간의 예절까지 갖춘 멋진 대답을 했던 것이다. 고열은 몸이 허약해서 머리는 일찍 희어졌는지 몰라도 마음은 송백같이 곧아 권세에 아부하는 일이 없었다.

蒲柳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들을 가리키며 수양(水楊) 또는 포양(蒲楊)이라고도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蒲柳之質(포류지질) |

반의어·상대어

松栢之質(송백지질) |

炮烙之刑 (포락지형, páoluòzhīxíng)

炮烙之刑(포락지형)

炮烙之刑(páoluòzhīxíng)

炮 통째로 구울 포 | 烙 | 지질 락(낙) | 之 갈 지 | 刑 형벌 형,탕기 형 |


①중국(中國)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쓰던 매우 심한 형벌(刑罰). 기름칠한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罪人)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였다 함 ②달군 쇠로 지지는 극형(極刑)을 통속적(通俗的)으로 이르는 말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하나라 걸왕과 더불어 걸주(桀紂)라 하여 전형적인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경국지색의 미인들이 있었다.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 속국 유소씨(有蘇氏)의 나라에서 복종한다는 표시로 달기(妲己)라는 미녀를 바쳐 왔다. 이내 주왕은 달기에 아주 흠뻑 빠지게 되었다. 요염한 달기의 자태에 넋을 잃어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달기야말로 진짜 여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불과하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어느날 달기는, "궁중음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사오니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

주왕도 사실 궁중음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였다.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여 관능적이고도 자유분방한 '미미의 악[美美之樂]'이라는 음악을 만들게 하였다.

또한 달기가 말했다.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주지육림의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가 완성되자 질펀한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업고 과인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주왕의 명이 떨어지니 잔치에 참가한 천여 명도 넘는 남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이 되었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이리저리 여자를 붙잡으려 뛰었고 역시 모두 벗은 여자들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바빴다. 여기 저기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한 탄성과 교성도 들렸다. 이윽고 숲 속 나무 밑에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주왕의 무릎에 앉아서 교태를 부리며 이 광경을 즐기고 있던 달기는 자기도 슬슬 달아올라 왕과 함께 밀실로 들어가 환락에 마음껏 탐닉하였다.

그리하여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놀며 즐겼다. 이러한 환락의 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자그만치 120일이나 이어지니, 이를 '장야(長夜)의 음(飮)'이라 불렀다.

달기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라는 금고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넓이가 1리(里)나 되었고 높이는 1천 척(尺)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또한 별궁을 확장하여 온갖 동물들을 모두 모아 길렀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갔고, 반기를 든 제후도 있었다. 그의 학정을 비방하면 포락지형에 처해졌다. 즉, 이궁(離宮) 뜰에 구리기둥을 걸쳐놓고 기름을 발라 매끈매끈하게 하고, 그 밑에는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는 건너가게 하는 것이었다.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는 죄를 면해주리라."

불 속에 떨어져 죽느냐? 기름 기둥을 무사히 건너느냐? 절박한 갈림길에서 공포에 질린 채 구리 기둥을 걷는 죄인들. 두세 걸음만 더 걸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찰나에 불 위에 떨어져 비명을 지르며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쾌감을 느끼는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잔인한 형벌이 계속 되었다.

나중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이 사소한 일로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는데, 서백의 신하가 진귀한 물건과 좋은 말을 바쳐 겨우 그 형벌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 후 서백이 자기 소유의 땅 낙서(洛西)를 바치면서 포락지형을 폐지할 것을 아뢰어 이 잔인한 형벌은 없어졌다고 한다.

은왕조를 살리기 위해 충신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호소했으나 주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여 젓 담그고 포를 떴으며 심장을 갈기갈기 찟었다.

드디어 주나라의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폭군 주왕은 녹대에 들어가 스스로불을 지르고 죽었다.

한편,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당할 때 망나니들도 달기의 미색에 홀려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달기를 처형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형장의 대장이 달려왔다. 달기의 목숨이 길지 못해 그랬는지 대장은 자그만치 90대의 늙은이였다. 그런데 이미 청춘이 몇번이나 거듭 가버린 그 대장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일어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달기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후세의 시인들이 시를 읊었다.

얼마나 가련했으면 형장의 망나니도
눈물을 뿌렸을까.
복숭아꽃이 이에 비교될까.
작약꽃이 아름다움을 견줄 수 있을까.
옛날 그녀가 덮었던 이부자리엔
아직도 그녀의 향기가 맨도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가 간 곳 없으니.
슬프도다 미인이여, 이 한 어찌 풀려나!
기가묘무(奇歌妙舞) 어디 가고 비구름만 맴도는가!

[유래] 史記(사기):殷本紀(은본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炮烙(páoluò) | 炮格(páogé)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酒池肉林(주지육림) | 長夜之飮(장야지음) |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抱頭鼠竄 (포두서찬)

抱頭鼠竄(포두서찬)

抱头鼠窜(bàotóushǔcuàn)

抱 안을 포 | 頭 머리 두 | 鼠 쥐 서 | 竄 숨을 찬 |


매우 낭패(狼狽)하여 급히 도망(逃亡)침을 비유한 말.


한(漢)나라 초엽, 한나라 왕 유방(劉邦)이 대장 한신(韓信)에게 제(齊)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자, 제나라 왕 전광(田廣)은 초나라 항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항우는 대장 용차(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구원에 나서도록 하였는데, 한신에게 크게 패하여 용차는 죽고 전광은 도망하였다.

제나라 땅이 평정되자,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 봉하고, 계속하여 초나라로 진격하라고 하였다. 당시, 괴통이라고 하는 범양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하여 독립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에게 말했다.
"한나라 왕이 나를 이렇게 후히 대접해 주는데, 내가 어찌 배은망덕(背恩忘德:은혜를 잊고 도리어 배반함)할 수 있겠소?"

괴통이 말을 이었다.
"장군께서는 유방을 너무 믿고 있는데, 장차 그에게 큰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본시 친한 친구였지만, 상황이 변하자 진여는 군대를 빌어 장이를 공격하였습니다. 공격을 받은 장이는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도망하여 한나라 왕에게 귀순하였습니다. [常山王奉頭鼠竄, 以歸漢王 (상산왕봉두서찬, 이귀한왕)]. ... 이처럼 서로 목을 내놓을 만큼 절친했던 친구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유방이 장군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고 믿으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출전: 한서열전(漢書列典)-괴통전(괴通傳)]

또, 삼국지연의 6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손견이 원술과 만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호뢰관에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와서 손견을 보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원술과 헤어진 후 진지로 가보니 바로 동탁의 심복 이각(李傕)이었다. 손견은 물었다.

"어이하여 왔소?"

이각은 말한다. 동탁이 딸을 손견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고. 이에 손견은 크게 노한다.

그러자 이각은 놀란 쥐처럼 머리를 감싼 채 돌아가 손견이 이렇게 무례하다며 전했다.

李傕抱頭鼠竄,回見董卓,說孫堅如此無禮。

[출전: 삼국지연의-第六回:焚金闕董卓行凶 匿玉璽孫堅背約]


관련 한자어

유의어

狼奔豕突(lángbēnshǐtū) 이리처럼 내달리고 멧돼지처럼 돌진하다. 악인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다.


Tag

도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