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曄 (범엽, 398~445)

范曄(범엽, 398~445)

자: 위종(蔚宗)
국적: 중국 남조(南朝) 유송(劉宋)
활동분야: 역사학
출생지: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의 역사가로서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하였다.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 420~479)의 역사가로서 자(字)는 위종(蔚宗)이고, 산음(山陰, 지금의 浙江省 紹興)에서 태어났다. 송(宋) 문제(文帝, 424~453) 때인 432년(元嘉 9년), 선성(宣城) 태수(太守)로 좌천되어 있으면서 오(呉, 222~280)의 사승(謝承), 설형(薛瑩), 화교(華嶠), 동진(東晋, 316~420)의 사마표(司馬彪, ?~306), 사침(謝沈), 원산송(袁山松), 장번(張璠) 등이 쓴 7종의 <후한서(後漢書)>와 유진(劉珍) 등이 편찬한 <동관한기(東觀漢記)>, 원굉(袁宏, 328~376)이 쓴 <후한기(後漢紀)> 등을 참고하여 기전체(紀傳體)의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하였다. 광무제(光武帝, 재위 25~57)부터 헌제(献帝, 재위 189~220)까지 후한(後漢)의 13대(代) 196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함께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인 ‘25사(史)’ 가운데에서도 으뜸인 ‘4사(四史)’로 꼽힌다.

범엽(范曄)은 순양(順陽, 지금의 河南省 淅川) 출신의 강남(江南) 사족(士族) 명가(名家)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진(晋)에서 벼슬을 하였으며, 조부인 범녕(范寧)이 12권의 <춘추곡량전집해(春秋榖梁傳集解)>를 저술하는 등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420년, 송(宋)이 건국된 뒤 범엽(范曄)은 벼슬을 하여 상서외병랑(尚書外兵郎), 신채태수(新蔡太守), 상서이부랑(尚書吏部郎), 비서감(秘書監)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성격이 오만(傲慢)하여 관직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432년, 범엽은 선성(宣城) 태수(太守)로 좌천되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10권의 본기(本紀)와 80권의 열전(列傳)으로 된 <후한서(後漢書)>의 집필을 시작하였다. 그 뒤 좌위장군(左衛將軍), 태자첨사(太子詹事) 등을 역임하면서 10여년 동안 <후한서(後漢書)>의 저술에 몰두하였다.

436년(元嘉 13년), 문제(文帝)가 중병(重病)에 빠지자 그의 동생인 팽성왕(彭城王) 유의강(劉義康, 409~451)이 집정(執政)하였다. 유의강(劉義康)은 북벌(北伐)에 큰 공을 세운 단도제(檀道済, ?~436)의 세력을 제거하며 권력을 잡았지만, 440년(元嘉 17년) 문제(文帝)는 그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내쫓았다. 범엽(范曄)은 유의강(劉義康)을 황제로 옹립하려다가, 445년(元嘉 22년) 서담지(徐湛之)의 밀고(密告)로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범엽(范曄)이 죽었을 때, <후한서(後漢書)>는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남조(南朝) 양(梁, 502~557)의 유소(劉昭)는 동진(東晋)의 사마표(司馬彪)가 저술한 <속한서(續漢書)>에서 율력(律曆), 예의(禮儀), 제사(祭祀), 천문(天文), 오행(五行), 군국(郡國), 백관(百官), 여복(輿服) 등의 ‘팔지(八志)’ 부분에 주석(註釋)을 붙여 30권의 <보주후한지(補注後漢志)>를 편찬하였다. 이로써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이루어진 <후한서(後漢書)>의 체재(體裁)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북송(北宋, 960~1126) 초기까지 <후한서(後漢書)>는 90권의 본기(本紀), 열전(列傳)과 30권의 <보주후한지(補注後漢志)>가 따로 간행되었다. 본기(本紀), 열전(列傳)에는 당(唐, 618~907) 시대에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의 둘째아들인 장회태자(章懐太子) 이현(李賢, 654~684)이 붙인 주석(註釋)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북송(北宋) 진종(眞宗, 재위 997~1022) 때인 1022년(宋 眞宗 乾興 원년), 손석(孫奭)은 이현(李賢)의 주석(註釋)을 덧붙인 90권의 본기(本紀), 열전(列傳)에 유소(劉昭)가 주석(註釋)을 붙인 30권의 지(志)를 합하여 간행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후한서(後漢書)>의 판본(板本)이다.

범엽(范曄)은 문장(文章)이 자유롭고 수려(秀麗)해 이름이 높았고, <쌍학시서(雙鶴詩序)>, <락유응조시(樂游應詔詩)>, <화향방(和香方)>, <잡향고방(雜香膏方)>, <백관계차(百官階次)> 등의 시문(詩文)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쌍학시서>와 <락유응조시> 외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범엽(范曄) 관련 작품

후한서(後漢書)

繁文縟禮 (번문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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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롭게 형식만 차려서 까다롭게 만든 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