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燭殘年 (풍촉잔년, fēngzhúcánnián)

풍촉잔년(風燭殘年)

风烛残年, 風燭殘年, fēngzhúcánnián

風 바람 풍 | 燭 촛불 촉 | 殘 남을 잔 | 年 해 년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고시(古詩)와 《열자(列子)》 등에서 유래되었다.

Old and ailing like a candle guttering in the wind


'풍촉'과 '잔년'이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풍촉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려 있는 작자 미상의 〈원시행(怨詩行)〉 등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는 "하늘의 덕은 아득하고도 길건만, 사람의 목숨은 어찌 이리 짧으냐. 백 년도 못 채우는 목숨이건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구나(天德悠且長, 人命一何促. 百年未幾時, 奄若風吹燭)"라고 읊어, 바람이 불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미약하고 짧은 인생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다.

잔년은 《열자》의 〈탕문(湯問)〉편에 실려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90세나 된 우공이 산을 옮기려 하는 모습을 보고 하곡(河曲)에 사는 지혜로운 노인이 웃으면서 "매우 어리석도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여력으로는 그 산의 터럭 하나조차 헐지 못할 것이니, 흙과 돌은 어찌 하려누(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라며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러나 우공은 멈추지 않았고,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산을 옮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상의 두 가지 성어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풍촉잔년은 나이가 많이 들고 체력도 쇠하여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참조어

愚公移山(우공이산) |

風前燈火 (풍전등화)

風前燈火(풍전등화)

風 바람 풍 | 前 앞 전, 자를 전 | 燈 등 등 | 火 불 화 |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①사물(事物)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危急)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②사물(事物)이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前燭火(풍전촉화) | 風前燈燭(풍전등촉) | 焦眉之急(초미지급) 눈썹이 타들어 갈 정도로 매우 위급함 | 一觸卽發(일촉즉발) 금방이라도 일이 크게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상태 | 百尺竿頭(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있는 것처럼 매우 위태로움 | 命在頃刻(명재경각) 거의 죽게 되어 숨이 곧 넘어갈 지경 | 累卵之危(누란지위) 포개 놓은 달걀처럼 몹시 위태로운 형세 | 累卵之勢(누란지세) | 危如累卵(위여누란) | 累碁(누기) | 進退兩難(진퇴양난)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매우 난처한 처지 | 四面楚歌(사면초가) 사면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매우 위급한 처지 | 進退維谷(진퇴유곡) | 危機一髮(위기일발) 눈앞에 닥친 위기 | 危如一髮(위여일발) | 如履薄氷(여리박빙)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형세 | 絶切絶命(절체절명) 몸도 목숨도 다 되어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 | 狼狽不堪(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바람 앞의 등불.

風月主人 (풍월주인)

風月主人(풍월주인)

風 바람 풍 | 月 달 월 | 主 임금 주, 주인 주 | 人 사람 인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等)의 자연(自然)을 즐기는 사람을 이르는 말

風雨同舟 (풍우동주)

風雨同舟(풍우동주)

風 바람 풍 | 雨 비 우 | 同 같을 동 | 舟 배 주 |

폭풍우 속에 한배를 타다


손자(孫子) 구지(九地)편에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미워하나, 배를 같이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구함이 좌우의 손과 같다[當其同舟而濟, 遇風, 其相救也]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중국의 남쪽에 오(吳)와 월(越)이라는 두 개의 제후국이 있었다. 두 나라는 영토가 인접하고 산수(山水)가 서로 이어져 있었지만, 항상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며, 양국 백성들은 서로 원수 대하듯 하였다. 이러한 양국 관계 때문에, 백성들은 서로 마주 치기라도 하면 가볍게는 말다툼이나 욕지거리, 심하게는 사생 결단의 싸움을 하였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되었는데, 마침 폭풍우가 몰아쳤다. 두 나라 사람들은 협심합력하여 난관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고,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도왔던 것이다.

風雨同舟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도 한다. 이는 원수같은 사람들이 공동의 난관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합심함 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손자(孫子) 구지(九地)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오월동주(吳越同舟) |


중요도·활용도

風樹之嘆 (풍수지탄)

風樹之嘆(풍수지탄)

風 바람 풍 | 樹 나무 수 | 之 갈 지 | 嘆 탄식할 탄, 또 우 |

효도를 하려 해도 이미 부모가 죽고 없어 효행을 다할 수 없는 슬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하지 않으면 뒤에 한탄하게 된다는 말.


풍수(風樹)는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奉養)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고 하여 돌아가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 부분에서 유래한 말.

孔子(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공자의 귀에 들려왔다. 울음 소리를 따라가 보니 哭聲(곡성)의 張本人(장본인)은 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물어보았다.울음을 그친 고어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세가지 恨(한)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첫째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떠나있다가 고향에 돌아가보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둘째는 저의 經綸(경륜)을 받아들이려는 君主(군주)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불어온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마찬가지로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也․자욕양이친부대야).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이제 이대로 서서 말라 죽으려고 합니다."

고어의 말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 만하지 않은가."

이날 충격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은 공자의 제자중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열세명이나 되었다.

[유래]
한시외전(韓詩外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樹之歎(풍수지탄) | 風樹之悲(풍수지비) | 風樹之感(풍수지감) | 風木之悲(풍목지비) |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

風聲鶴唳 (풍성학려)

風聲鶴唳(풍성학려)

风声鹤唳(fēngshēnghèlì)

風 바람 풍 | 聲 소리 성 | 鶴 학 학, 흴 학 | 唳 울 려(여) |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서·사현전(晉書·謝玄傳)》 가운데, 전진(前秦) 때 진왕 부견(苻堅)이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에게 대패하고 도망갈 때,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추격병이 따라온 줄 알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은 병사 60만, 기마 27만의 대군을 이끌고 진(晉)나라의 정벌(征伐)에 나섰다. 진(秦)나라의 어진 재상(宰相) 왕맹(王猛)이 진(晉)나라 보다 몇 배 우위의 국력을 만들어 놓고 죽은 지 팔년 만에 부견(苻堅)은 진(晉)나라를 정벌(征伐)하러 나섰다. 진(晉)나라는 재상(宰相) 사안(謝安)의 동생인 사석(謝石)을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으로 삼아 진군(秦軍)에 맞섰다. 부견(苻堅)이 수양성에 올라 적을 바라보니 그 진용(陳容)이 엄하고 위력적이었다. 문득 팔공산 쪽으로 눈을 돌리자, 산은 적병으로 뒤덮여 있었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풀과 나무였다. 부견은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편, 진(晉)나라는 진군(秦軍)이 비수(淝水)에 진을 치고 있어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사신을 보내어 진(秦)의 진지를 다소 후퇴 시켜서 진군(晉軍)이 다 건넌 다음에 승부를 가리자고 청했다. 이에 부견은 "아군을 다소 뒤로 후퇴시켰다가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격멸하라."하고 명령(命令)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후퇴하라는 명령(命令)인 줄 알고 진군(秦軍)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제각기 먼저 도망하려고 덤비다가 자기들끼리 짓밟혀 죽은 자가들을 뒤덮었다. 혼비백산한 진병(晉兵)은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風聲鶴唳]’만 들려도 동진의 군사가 뒤쫓아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풍성학려’가 청각적인 착각이라면,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 산의 초목까지도 모두 적군으로 보인다는 뜻의 ‘초목개병(草木皆兵)’이라는 말은 시각적인 착각을 말하는 것으로, 같은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사현재기(謝玄載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草木皆兵(초목개병) | 風聲鶴唳(풍성학려) |

風林火山 (풍림화산)

風林火山(풍림화산)

風 바람 풍 | 林 수풀 림(임) | 火 불 화 | 山 뫼 산 |

손자(孫子)의 병법(兵法)에 있는 군세의 행동(行動) 지침. 곧 전쟁(戰爭)에서는 항상(恒常) 적에게 병사(兵士)를 한 명도 잃지 말고, 적을 무찌르기 위(爲)해 공격(攻擊)할 때에는 바람처럼 빨리, 행동(行動)할 때에는 숲처럼 정연하게, 군세에 침공(侵攻)할 때에는 요원의 불처럼 기세(氣勢) 좋게, 군세가 주둔(駐屯)할 때에는 침착(沈着)하기를 산처럼, 적의 눈을 피할 때에는 은밀(隱密)하게 행동(行動)하고, 한번 행동(行動)을 시작(始作)했으면 우레처럼 하여 적에게 방어(防禦)할 틈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함을 이름


《손자》의 군쟁(軍爭)편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병법은 적을 속여 세우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병력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함으로써 변화를 꾀한다. 그러므로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 우회하여 공격할 것인지 곧바로 공격할 것인지를 먼저 아는 자가 승리할 것이니, 이것이 군사를 가지고 싸우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술을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응용한 사람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다. 그는 이 전술에 감명을 받아 '풍', '림', '화', '산'을 한 글자씩 장식한 군기(軍旗)를 만들었으며, 이후 풍림화산은 그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신겐은 병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타격을 입을 만한 패배는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전

손자(孫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