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박재희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고 계십니까? 사실 효도를 계획을 세워놓고 한다는 것, 전통적인 효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닌 듯합니다. 효도는 항상 하는 상식적 개념이지 ’언제’라고 하는 한시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집안에서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효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 해보셨습니까?

공자가 논어 속에서 들려주는 효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공자는 공경함이 없는 물질적 봉양만이 효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遊)가 효는 물질적 봉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효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요즘 사람들 효도하는 방법은 그저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봉양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물질적인 봉양은 자신이 아끼는 개나 말한테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물질적 봉양만 해준다면 이것은 자기가 아끼는 개나 말에게 잘 먹이고 잘해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라도 皆能有養이니라. 不敬이면 何以別乎이요)."

공경함이 없이 그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만 잘해주는 것, 그것만 갖고는 자신이 아끼는 애완견과 비교해서 다름이 없다는 아주 날카로운 공자의 지적입니다.

어버이날 효도 관광 시켜주고 다달이 통장에 용돈 자동이체 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효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측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인 봉양에 공경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효도가 아닐까요?

둘째 공자는 자식이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사는 것, 이것도 효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의 힘 있는 대부(大夫)의 아들이었던 맹무백(孟武伯)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와서 효를 물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주 병에 걸리는 병약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는 말이야 자식이 아픈 것을 가장 근심으로 생각하는 분들이야! 그러니 당신 같은 경우는 안 아픈 것, 그것이 효도하는 것이야(父母唯其疾之憂이라)."

자식의 입장에서 아프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하는 건데요, 부모가 되신 여러분들은 아마 모두 아실 겁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사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 하시는 분들이 진정 부모님들이십니다.

효도! 어떻게 생각하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 하는 것도 얼마든지 효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셋째 공자는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것, 이것이 효도라고 강조합니다.

자하(子夏)라는 공자의 제자가 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잘 관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 고생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르신 먼저 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 효라고 생각하는가?”

색난(色難)이라. 표정관리! 이것이 진정 효의 본질입니다.

아마 질문을 했던 자하라는 공자의 제자는 부모에게 늘 찡그린 모습만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회사 일이 좀 안 된다고 부모 앞에서 얼굴 표정 찡그리거나 한 숨 쉬는 자식을 바라보는 그 부모의 마음, 과연 어떻겠습니까? 부모 앞에서는 정말 어떤 순간이라도 얼굴을 편안하게 갖고 대하는 것, 쉽지 않은 효도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듯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효도에 관한 생각을 보면, 효란 물질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인 것, 이런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효도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효도의 원칙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라는 거죠.

오늘 한번 부모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시고 그 일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효도는 때로는 공경이요, 때로는 부모 앞에 편안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며, 어떤 때는 안 아픈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효도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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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글입니다.

不怨天不尤人 (불원천불우인)

不怨天不尤人(불원천불우인)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자고 나면 터지는 숱한 사건 주변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멸하려 한다. 당사자는 상황에 책임을 돌리고, 방관자는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불원천(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불우인(不尤人)! 남을 탓하지 마라! 선비들이 인생을 살다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마다 외쳤던 인생의 화두였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내 탓이오!’ 철학은 남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하는 오늘날 세태에 책임의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능멸하지 마라!
재하위불원상(在下位 不援上)!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함부로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마라!
정기이불구어인즉무원(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나를 먼저 바르게 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에게도 원망을 사지 않을 것이다. 상불원천(上不怨天)!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하불우인(下不尤人)! 아래로는 남을 허물하지 말라!’

'중용'에 나오는 명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마다 조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을 허물하면 결국 그 역경과 고통은 더욱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잘못을 결국 나에게 있다는 생각은 아름답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내 탓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자는 활쏘기를 통해 군자의 책임의식을 비유하고 있다. 활을 쏘아 과녁에 맞히지 못했을 때 결국 모든 책임은 활 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자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실저정곡(失諸正鵠), 내가 활을 쏘아 과녁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반구저기신(反求諸其身),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4자 성어가 나오는 중용의 구절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궁수가 활을 쏠 때 바람이 갑자기 불어 안 맞을 수도 있고, 활의 성능이 안 좋아 안 맞을 수도 있다.

옆에 사람이 성가시게 굴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너무 멀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활 쏘는 사수의 문제다. ‘내 탓이오!’ 라고 외치는 사수(射手)가 진정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운명(運命)이란 글자 그대로 나에게 다가온 상황(命)을 내가 통제(運)하는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한다고 그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가온 운명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견뎌나갈 때 진정 운명은 내 손아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 자득(自得)한 선비의 모습이 깃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From http://www.nethyangki.net/CDN/View.aspx?num=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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