蒼黃罔措 (창황망조, cānghuángwǎngcuò)

蒼黃罔措(창황망조)

苍黄罔措(cāng huáng wǎng cuò)

蒼 푸를 창│黃 누를 황│罔 그물 망, 없을 망│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너무 급(急)하여 어찌할 바를 모음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仓皇失措(cāng huáng shī cuò)│


언행·마음, 당황·위기

滄海一粟 (창해일속)

滄海一粟(창해일속)

滄 큰 바다 창 | 海 바다 해 | 一 한 일 | 粟 조 속 |

큰 바다 속의 좁쌀 한 톨이라는 뜻으로 ①광대한 것 속의 극히 작은 물건(특히 인간)을 비유, ②이 세상(世上)에서의 인간(人間) 존재(存在)의 허무(虛無)함을 이르는 말

출전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滄海一粟(창해일속) |

滄海桑田 (창해상전)

滄海桑田(창해상전)

滄 찰 창 (cang1; 水-10획) | 海 바다 해 (hai3; 水-7획) | 桑 뽕나무 상 (sang1; 木-6획) | 田 밭 전 (tian2; 田-총5획) |

푸른 바다가 변(變)하여 뽕밭이 된다는 말이니, ① 세상일의 변천(變遷)이 심함을 비유한 말 또는 ② 덧없는 세상(世上)의 변천(變遷)을 뜻함

Sea change into mulberry fields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마고(麻姑)편이야기.

전설에 따르면 신선들은 오래 살 수 있으며, 심지어 영원히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신선들은 보통 사람들의 일생뿐만 아니라 몇 대(代) 이전의 사람들도 볼 수 없는 거대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옛날에 채경(蔡經)이라는 귀족이 있었는데 그는 선도(仙道)에 몹시 심취해서 그 자신 또한 반신선(半神仙)이나 다름없었다. 채경은 어느 날 왕방평(王方平)이란 선인(仙人)을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리하여 저택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약속 시간이 되자 하늘에서 북, 피리, 퉁소 같은 악기 소리와 함께 천마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채경이 황급히 밖에 나가 보았더니, 머리에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몸에는 붉은 옷을 입었으며 호랑이 머리 장식을 단 화살통을 어깨에 걸쳐 늘어뜨린 왕방평이 오색 깃발이 무수히 나부끼는 속에 용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시종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채경은 마당에 나가 서서 왕방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는데, 수레가 땅에 닿자마자 시종들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왕방평만 의젓한 행동거지로 수레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명공께서 이렇게 초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을! 이 사람이야말로 무한한 영광이올시다.”

주인과 손님은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 인사를 나누었고, 왕방평은 채경의 부모도 만나서 인사를 드렸다. 뒤이어 화려한 누각에서 잔치가 벌어지려고 하는데, 왕방평이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너 거기 있느냐?”

그러자, 금방 어디선가 선계(仙界)의 사자(使者)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오냐. 너 가서 마고(麻姑)를 보고, 내가 이리 좀 오란다고 전해라.”

“알았습니다.”

사자는 대답하고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었다.

‘마고라면 여자임이 분명한데,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채경을 비롯한 그의 집안 사람들이 하나같이 궁금히 여기고 있을 때, 잠시 후 사자가 되돌아오더니 왕방평에게 보고했다.

“마고님은 마침 봉래(蓬萊)에 볼일이 있어서 가신다고 하는데, 잠시 들러서 뵙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채경과 집안 사람들은 마음이 설렜다. 왜냐하면 봉래란 동해 바다 아득한 곳에 있다고 알려지기만 한 신령스러운 섬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비로운 음악 소리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시녀 네 사람에게 옹위를 받으며 마고가 도착했다. 나이는 열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머리를 두 가닥으로 나누어 둥글게 상투를 틀어 올리고 나머지는 허리까지 늘어뜨린 데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비단옷을 걸친 선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미모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갈 지경이었다. 마고는 왕방평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서 채경하고도 인사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옥을 굴리는 것 같았고, 움직일 적마다 신비로운 향기가 살짝살짝 풍겨 나왔다. 이윽고 좌석이 정해지자, 왕방평이 가져온 음식을 펼쳐 놓았다. 커다란 금접시에 담긴 음식은 대부분 선계의 과일이었고, 옥으로 만든 술병과 술잔도 있었다.

“소녀는 신을 섬기고부터 지금까지 ‘동해 푸른 바다가 세 번 뽕나무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봉래 앞바다도 얕아져서 육지가 되려 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 변화가 참 빠른 것 같군요.”

음식을 먹으면서 마고가 한 말이었는데, 채경을 비롯한 집안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이 여자의 실제 나이는 몇 살이란 말인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잔치가 끝나자 왕방평과 마고는 각각 올 때의 행차 그대로 떠나갔고, 사람들은 두 행렬이 사라진 뒤까지도 넋이 빠져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해상전은 유정지(劉廷芝)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에도 보인다.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洛陽女兒惜顔色
行逢女兒長嘆息
今年花落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實聞桑田變成海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
낙양의 어린 소녀는 제 얼굴이 아까운지
가다가 어린 소녀가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
내년에 피는 꽃은 또 누가 보려는가
뽕나무 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말이다

상전벽해는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출전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隔世之感(격세지감) | 고안심곡(高岸深谷) 높은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으로 변한다 | 陵谷之變(능곡지변) 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뀐다 | 桑田碧海(상전벽해) |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 | 桑滄之變(상창지변) | 桑海(상해) | 桑海之變(상해지변) | 與世浮沈(여세부침) | 與世推移(여세추이) | 滄桑(창상) | 滄桑之變(창상지변) | 창해상전(滄海桑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倉卒之間 (창졸지간)

倉卒之間 (창졸지간)

미처 어찌할 수도 없는 사이

此日彼日 (차일피일)

此日彼日(차일피일)

此 이 차 | 日 날 일 | 彼 저 피 | 日 날 일 |

일을 핑계하고 자꾸 기한을 미루어 가는 것.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此月彼月(차월피월) |

借屍還魂 (차시환혼, jièshīhuánhún)

借屍還魂(차시환혼)

借尸还魂(jièshīhuánhún)

借 빌 차,빌릴 차,의지할 자 | 屍 시동 시,주검 시 | 還 돌아올 환,돌 선 | 魂 넋 혼 |


三十六計 攻戰計 第十四計 借屍還魂(차시환혼). 죽은 사람의 혼이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빌어 부활하다. 이미 몰락하거나 소멸되었던 사상·세력·사물 등이 새로운 명목이나 형식을 빌어 다시 나타나다.

To come back in a new form

(of a dead person's soul) To find reincarnation in another's corpse—(of something evil) revive in a new guise

迷信指人死后灵魂附在他人的尸体上复活。比喻已经没落或死亡的思想、势力、事物等凭借另一种名义或形式重新出现。


시체를 빌려 죽은 영혼이 돌아오다. 유명했던 고인 등의 이름을 이용하여 정통성 내지 계속성의 인상을 주어 명분을 살리라는 뜻이다. 이는 즉, 꼭뚜각시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리를 취하는 식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분론'의 문제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유능한 자는 조종하기 어렵다. 무능한 자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해 온다. 그래서 조종하기 쉬운 무능한 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도움을 구해 오는 형세를 이용하는 것이다.[有用者,不可借;不能用者,求借.借不能用者而用之,匪我求童蒙,童蒙求我.]"

사례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간단하게 몇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楚漢志(초한지)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항우와 유방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에 중원을 흔들었던 것은 '진승'과 '오광'이었다. 이들은 보잘것 없는 농민출신으로 反秦의 불씨가 되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최초에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舊 楚나라의 명장 '항연'과 진시황의 장자 '부소'의 이름을 빌렸다. 스스로를 항연과 부소라고 하며 사람들을 모았던 것이다. 구 초의 명장 항연은 항우의 조부이자 항량의 부친으로, 전국시대 초나라 말기에 명장으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당시 反秦(반진)을 외치는 반군의 대부분은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구 초의 명장 '항연'의 이름은 반진에 불타는 초나라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부소'는 진시황의 큰아들로 조고와 이사의 장난이 없었다면 진의 2세 황제가 되어 진을 안정시킬만한 인물이었다. 진시황과는 달리 유가를 존중하고 인품도 나무랄데 없어서 백성들로부터의 인기도 높았던 터였다. 둘 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그 이름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진승과 오광은 커다란 세력을 이루어 마침내 '항연'과 '부소'의 이름을 버리고 진승은 스스로 張楚王(장초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이후 진승과 오광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마침내 秦軍에게 토벌당하고 만다.

이후 반란군 중에 떠오른 세력이 '항량'의 세력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반란군이 도적이나 농민 출신이었던 반면에, 구 초나라의 귀족이며 또한 '항연'의 혈통이라는 점이 작용하여 크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항량에게 '범증'이 찾아와 아뢴다.

"진승과 오광이 어째서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어째서 멸망했소?"

"그들은 초나라 사람들을 이끌면서도 스스로 장초왕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정통성 있는 왕을 모시길 원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신 초회왕의 후손을 찾아 그 분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항량은 초나라 마지막 왕인 회왕의 자손 '심'을 찾아 똑같이 회왕으로 모신다. 그리고 초나라의 정규군이 된 항량군은 反秦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초왕이라고는 하지만 그 실제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항우가 초의 상장군이 되어 秦을 무너뜨리고 유방과 대립하며, 회왕은 '義帝(의제)'로 칭해진다. 하지만 그 후 쓸모가 없어져, 항우에게 제거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차시환혼'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진승과 오광이 항연과 부소를 사칭한 것, 그리고 항량과 항우가 초회왕을 세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차시환혼'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滄桑之變 (창상지변)

滄桑之變(창상지변)

滄 큰 바다 창 | 桑 뽕나무 상 | 之 갈 지 | 變 변할 변 |

푸른 바다(滄海)가 뽕밭(桑田)이 되다라는 뜻으로 ①큰 변화가 있는 일, ②시절(時節)의 변화(變化)가 무상(無常)함을 이르는 말.

출전
신선전(神仙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桑田(창해상전) | 與世推移(여세추이) | 與世浮沈(여세부침) | 桑海之變(상해지변) | 桑滄之變(상창지변) | 桑田碧海(상전벽해) | 陵谷之變(능곡지변) | 隔世之感(격세지감) |

贊反兩論 (찬반양론)

贊反兩論(찬반양론)

찬성과 반대의 두 가지 의론.

且問且答 (차문차답)

且問且答(차문차답)

且 또 차, 공경스러울 저, 도마 조 | 問 물을 문 | 且 또 차, 공경스러울 저, 도마 조 | 答 대답 답 |

한편으로 물으면서 한편으로 대답함

嗟來之食 (차래지식)

嗟來之食(차래지식)

嗟 탄식할 차 | 來 올 래 | 之 어조사 지 | 食 먹을식

야! 하고 부르면 와서 먹는 음식. 남을 업신여겨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


차(嗟)는 감탄사로 '야!' '자!' '옛다'의 뜻. 상대를 아주 업신 여겨 아무렇게나 던져 주는 음식을 뜻한다.

춘추시대의 어느 해 제나라에 큰 기근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초근목피 (草根木皮)로 연명을 하거나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검오라는 부자가 음식을 해다가 길가에 벌여놓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느날 얼마나 굶었는지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어떤 남자가 다 해어진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짚신을 질질 끌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초라하고 기진맥진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검오는 왼손에 음식을, 오른손엔 마실 것을 들고 말했다.

"야! 이리 와서 먹어(嗟來食)"

검오는 당연히 그 남자가 허겁지겁 다가와서 음식물을 움켜쥘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남자의 태도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는 눈을 치켜 뜨고 한참 동안 검오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따위 남을 업신여기며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꼴이 되었소(予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 당신의 이같은 적선은 받아들일 수가 없소."

검오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방 쏘아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그 남자를 검오는 쫒아 가서 무례를 사과하고 음식을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음식 받기를 거절하면서 몇 걸음 더 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주려 죽은들 차래지식(嗟來之食)은 받아 먹을 수 없었기에 그는 마침내 허기져 죽은 것이다.

차래지식(嗟來之食)은 음식말고도 모욕적인 성금이나 의연금품(義捐金品)을 일컫기도 한다.

[출전] 禮記 檀弓篇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滄 푸를 창 | 浪 물결 랑 | 之 갈 지 | 水 물 수 | 淸 맑을 청 | 兮 어조사 혜 | 可 가할 가 | 以 써 이 | 濯 씻을 탁 | 吾 나 오 | 纓 갓끈 영 |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는다.

이 말은 ≪楚辭(초사)≫ 漁父辭(어부사)에 나온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어부는 굴원의 처신에 대해 오히려 꾸중을 했다. 굴원은 말했다.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신목자 필탄관 신욕자 필진의)].”

굴원은 차라리 강에 빠져 물고기 배 속에 장사를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쓸 수 있느냐고 했다. 어부가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가이탁오족)]” 세상이 맑으면 맑게 맞춰 살고 세상이 흐리면 흐리게 살라는 말이었다. 淸濁自適(청탁자적)의 생활을 권한 것이다.

‘淸斯濯纓濁斯濯足(청사탁영탁사탁족)’이라고도 한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擧世皆濁(거세개탁) |

借刀殺人 (차도살인, jièdāoshārén)

借刀殺人(차도살인)

借刀杀人(jièdāoshārén)

借 빌 차,빌릴 차 | 刀 칼 도 | 殺 죽일 살,감할 살, 빠를 쇄, 맴 도는 모양 설, 윗사람 죽일 시 | 人 사람 인 |


三十六計(삼십육계) 勝戰計(승전계) 제3계.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남을 이용(利用)하여 사람을 해(害)치는 수단(手段)을 이르는 말.

To kill somebody by another's hand; to make use of one person to get rid of another.

To Get others to do one’s dirty work

比喻自己不露面而是借助或利用别人去害人。


자신의 힘이 부족하거나, 자신의 힘을 보존해야만 할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힘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실려있다.

"적의 태도는 명백하고, 우군의 태도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때에는 우군을 전투에 끌어들여 적과 싸우게 하고, 아군의 전력은 보존한다.[敵已明,友未定,引友殺敵,不自出力,以損推演.]"

예를 하나 들어보자.

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동탁과 여포, 그리고 왕윤. 왕윤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여포를 끌어들여 동탁과 여포 간의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여포의 불만을 부채질 해서 마침내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하였다. 이것이 아주 간단한 '借刀殺人'이라 할 것이다.

왕윤이 초선을 이용해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하였다고도 알려져 있으나, 초선은 가공의 인물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나관중이 여포와 동탁 간의 갈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창조해 낸 인물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여포가 동탁의 첩들을 자주 건드려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깊었다고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적벽의 싸움을 앞두고 제갈량에 대한 회유책이 실패하자 주유는 이를 갈았다. 장차 吳에 화근이 될 제갈량을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은 주유는, 제갈량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전에 조조는 군사가 적었고, 원소는 군사가 많았는데도 조조가 원소를 이긴 것은, 허유의 계책에 따라 오소의 군량을 불태웠기 때문이었소. 지금 조조의 군사는 83만이나 되고, 우리 군사는 고작 5~6만명 뿐이니 어찌 막을 수가 있겠소? 역시 조조의 군량을 먼저 없앤 다음에야 무찌를 수 있을 것이오. 알아본 바로는, 조조군의 군량은 취철산에 쌓여 있다고 하오. 내가 군사 1천을 드릴 터이니 선생께서는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糧道(양도)를 끊도록 하시오. 피차가 각각 주인을 위하는 일이니 핑계대지 않으리라 믿으오."

제갈량이 생각하기를, 이는 분명히 자신을 죽이기 위해 주유가 수를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기꺼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제갈량이 막사를 나간 후, 노숙이 주유에게 물었다.

"공명에게 군량을 기습하게 한 것은 무슨 뜻이오?"

"내 손으로 공명을 죽이자니 남들의 비웃음을 살 것 같아, 조조의 손을 빌어 후환을 제거하려는 것이오."

노숙은 이 말을 듣고, 제갈량이 이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량의 막사를 찾아갔다. 제갈량은 별 어려워하는 기색없이 군마를 정돈하여 떠나려 하고 있었다. 노숙은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말로 떠보았다.

"선생께서는 이번에 공적을 세울 수 있으시겠소?"

"나는 수전이건, 육전이건, 기마전이건, 전차전이건 절묘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소. 공적을 이루는 것 쯤 무엇하러 걱정을 하겠소? 잘하는 것이 한 가지밖에 없는 강동의 공(노숙)이나 주랑(주유)과 비교가 되지 않소."

"나와 공근(주유)이 어찌 잘하는 것이 한가지 밖에 없다 하시오?"

"내가 길거리에서 노래를 듣다 보니, '길에 잠복해 관문을 지키는 데는 자경(노숙)을 쓰라, 강을 사이에 두고 물에서 싸우는 데는 주랑(주유)이 있다' 하더이다. 공은 육지에서는 다만 길에 매복하여 요충을 지키는 것만 잘하고, 주공근은 다만 수전만 잘할뿐 육전은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소."

노숙은 이 말을 그대로 주유에게 전했다. 그러자 주유가 성을 내며 말했다.

"어찌 내가 육전을 못한다고 깔보느냐! 공명을 보낼 필요는 없다. 내 스스로 1만 기병을 끌고 취철산으로 가겠다!"

노숙이 또 이 말을 제갈량에게 전했다. 제갈량이 웃으며 말했다.

"공근이 나에게 양도를 끊으라 한 것은 실은 조조를 시켜 나를 죽이려 한 것이었소. 그래서 내 일부러 농을 한 것인데 공근은 즉각 내받고 있구려. 이제 사람을 쓸 때 서로 협력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겠지만, 만일 서로 해치려 한다면 큰일은 물건너가고 말 것이오. 조조는 속임수가 많아 평생 남의 양도를 끊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오. 어찌 많은 군사로 방비하고 있지 않겠소? 공근이 간다면 반드시 잡히고 말 것이오. 지금은 수전으로 북의 군사들의 기세를 꺾어야 하오. 바라건데 자경은 좋은 말로 공근에게 전해주면 좋겠소."

노숙이 주유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주유는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식견이 나보다 열 배는 낫소. 만일 지금 제거하지 앟으면 뒤에 반드시 우리 나라의 화가 될 것이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역시 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일화이다.

유비가 자신을 영웅이라 하는 조조에게서 도망쳐, 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조조는 화를 내며 군사를 일으키려 하지만, 모사들의 만류로 장수와 유표를 먼저 귀순시키기로 한다. 누구를 사자로 보낼까 하는데 순유가 공융을 천거한다. 공융은 자신보다 낫다며 예형을 추천한다.

조조가 예형을 불러 왔다. 예형이 인사를 마쳤으나 조조는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형은 조조의 부하들을 크게 비꼰다.

"...순욱은 조상이나 문병을 보내기에 알맞은 사람이고, 순유는 분묘나 지킬 사람이고, 정욱은 문지기나 할 사람이고, 곽가는 그저 詞賦(사부)나 외게 할 사람이고, 장료는 북이나 징을 칠 사람이고, 허저는 소, 말이나 먹일 사람이고, 악진은 詔狀(조장)이나 읽히기에 알맞고, 이전은 격서나 전달시킬 사람이며, 여건은 칼갈이나 시킬만하고, 만총은 술독청소나 시킬만하며, 우금은 담쌓는 일이나 시킬만하고, 서황은 개, 돼지 잡는 일이나 시킬만 하옵니다. 그리고 하후돈은 완체장군(제 몸만 위하는 장군)이라 일컫고, 조자효(조인)는 요전태수(토색질 태수)라 부르고 있사옵니다. 그 밖에는 모두 옷걸이고 밥통, 술통, 고깃자루일 뿐이옵니다."

그러자 장료가 칼을 빼어 예형을 죽이려 하였다. 조조가 말했다.

"마침 고수 한 사람이 부족하다. 이 직책을 맡도록 하라."

장료가 왜 예형을 죽이지 않느냐고 묻자, 조조가 대답했다.

"그자는 실속없이 명성만이 알려져 있는 자이다. 오늘 죽인다면 천하는 반드시 나에게 큰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저만 잘난체하는 그 자에게 북이나 치게 하여 욕을 보이려는 것이다."

조하연향 날이 되어 예형이 왔다. 예형이 헌옷을 입은채 묘당에 들어갔는데, 묘당에 들어갈 때는 새옷을 입는 것이 관례였다. 어째서 옷을 갈아입지 않는가 하고 좌우에서 호통을 쳤다. 예형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모두 벗었다. 조조가 꾸짖자 예형은 태연하게 또 조조를 비꼬았다. 조조가 예형에게 말했다.

"너를 사자로 형주에 보내겠다. 만일 유표가 와서 항복한다면 너를 공경으로 등용하겠다."

이윽고 예형은 형주로 가서 유표를 만나고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유표를 비꼬아 헐뜯었다. 유표는 기분이 상해 강하태수 황조를 만나보라며 예형을 보냈다. 수하의 사람이 왜 예형을 죽이지 않느냐고 묻자 유표는 이렇게 말했다.

"예형이 여러번 조조를 모욕했지만 조조가 죽이지 않은 것은 인망을 잃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사신으로 보낸 것이다. 내 손을 빌려 예형을 죽이고 현자를 죽였다는 오명을 내게 씌우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황조에게 그를 보낸 것은 조조에게 나도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후 황조는 예형에게 크게 모욕을 당해 예형을 죽였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坐享其利(좌향기리) |

捉襟見肘 (착금현주)

捉襟見肘(착금현주)

捉 잡을 착 | 襟 옷깃 금 | 見 볼 견, 드러날 현 | 肘 팔꿈치 주 |

'옷깃을 여미면 팔꿈치가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생활이 곤궁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장자(莊子)'에 실린 증자(曾子)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Tightening the lapel of the jacket, one exposed the elbow

장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솜옷은 다 낡아서 껍데기가 없었으며,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종기가 곪아 터졌으며, 손발은 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집은 사흘 동안이나 불을 때지 못했으며, 십 년이 넘도록 옷 한 벌을 변변히 지어 입지 못했다. 갓을 쓰려고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팔꿈치가 나오고, 신을 신으려 하면 뒤꿈치가 터져 버리는 형편이었다.[正冠而纓絶, 捉襟而肘見, 納履而踵決]

하지만 그가 신발을 끌면서 시경의 상송(商頌)편을 읊으면, 그 소리는 사방에 가득차며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증자는 빈한하였지만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었고, 제후도 그를 벗으로 삼을 수 없었다.

이 고사는 《장자》의 '양왕(讓王)'편에 실려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과 《신서(新序)》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역시 공자의 제자인 원헌(原憲)의 고사로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착금현주는 초라한 차림새나 제몸에 맞는 옷을 입을 형편이 못될 정도로 생활이 곤궁한 상태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襟은 衿으로도 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捉襟見肘(착금현주) | 捉衿見肘(착금현주) |

借古述今 (차고술금)

借古述今(차고술금)

借 빌릴 차 | 古 옛 고 | 述 펼 술 | 今 이제 금 |

옛 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