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중국의 77학번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1년 01월]

필자는 아이 둘의 학부모다. 요즘 진보 교육감들의 숨가쁜 교육개혁에 현기증이 난다. 공짜로 먹이고, 교복은 벗기고, 머리는 기르고, 중간•기말고사는 없애고…. 일단 바꾸고 보자는 식이다. 아찔한 속도감이다. 교육개혁 속도전이라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을 따라올 자가 없다. 1977년 여름 최고지도자로 복권된 그는 “중국에 가장 절박한 것은 교육”이라며 40명의 교육전문가와 5일간 합숙토론을 벌였다. 그가 직접 주재한 이 회의에서 12년 만에 우리의 대입수능인 가오카오(高考)의 부활이 결정됐다. 그해 입학한 대학 새내기가 중국의 77학번이다.

문화혁명 10년간 중국 대학에는 입시가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학교는 혁명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출신성분을 따지는 추천제를 통해 노동자•농민•군인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대부분 배울 자세도 아니고, 공부를 외면했다. 돌아다니며 정치 투쟁에만 골몰했다. 여기에 덩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는 마오쩌둥 선집을 찍던 종이와 윤전기로 가오카오 시험지를 인쇄했다. 불과 6개월 뒤 전국 각지에 하방(下放)됐던 570만 명의 인재들이 이 시험을 보았다. 당시 경쟁률은 무려 24:1을 기록했다.

중국의 77학번은 제대로 교육받은 첫 세대다.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제 이들이 중국을 이끌고 세계를 뒤흔드는 세상이 됐다. 차세대 지도자인 리커창(李克强•이극강) 부총리, 세계적 영화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 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 샤오보(劉曉波•류효파) 등이 대표주자다. 리 부총리는 집단농장에서 3년간 농사짓다 베이징대에 합격했고, 국민당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장 감독은 온갖 박해를 받다 27살 늦깎이로 베이징영화학교에 들어갔다.

지금 중국의 교육 현장은 어떨까. 한마디로 경쟁 그 자체다. 중•고부터 입시가 있다. 명문학교인 중점학교의 입시 경쟁은 살인적이다. 우월반 편성은 기본이다. 올림피아드준비반에, 수시대비반까지 있다. 거의 의무적으로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머리와 교복은 따로 규정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남학생은 빡빡머리, 여학생은 단발머리를 한다. 교복? 안 입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 대신 우리의 체육복이 교복이다.

중국 교사들은 우리의 ‘교총 대(對) 전교조’와 달리 일반교사-고급교사-특급교사로 나누어진다. 매 학기 교장•학생•학부모에게 칼 같이 종합평가를 받고, 잘못하면 학기 중간에 담임에서 쫓겨난다. 자신이 맡은 반의 대학 진학률, 가오카오 성적에 따라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승진을 위해 자기계발에 목을 맨다. 특급교사로 승진하면 정년이 5년 연장되고 대학교수 이상의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대신 매년 일류 학술지에 3편 이상의 논문을 실어야 한다.

이런 중국 교육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상하이가 1등을 차지한 것이다. 읽기•수학•과학에서 골고루 압도적 점수차를 보였다. 왜 우리 진보 교육감들은 입만 열면 “핀란드를 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핀란드는 PISA에서 우리보다 한참 밑이다. 오히려 진정한 경쟁 상대는 중국•홍콩•대만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자신의 이념에 따라 핀란드의 좋은 면만 부각시키고 무섭게 부상한 중국은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교육은 한 세대 뒤의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우리 아이들의 경쟁 상대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다. 같은 학교 짝꿍이 아니라, 전 세계 또래 아이들과 어깨를 겨뤄야 한다. 한국은 사람 하나로 경제기적을 이뤘고, 앞으로도 믿을 건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 머리를 길러 머리가 좋아진다면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교복을 없애야 성적이 오른다면 알몸의 구석기시대로 달려갈 수 있는 게 한국의 학부모들이다. 중국 77학번의 화려한 비상을 보면서 덩의 혜안(慧眼)에 다시 한번 무릎을 친다. 우리 진보 교육감들의 어설픈 실험이 나중에 우리의 가슴을 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왠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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