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患爲利 (이환위리)

以患爲利(이환위리)

以 써 이 | 患 근심 환 | 爲 하 위, 할 위 | 利 이로울 리, 이로울 이 |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라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 아군의 불리한 여건을 이로움이 되도록 한다 [以迂爲直, 以患爲利]

출전
손자(孫子)


관련 한자어

참조어
以迂爲直(이우위직) | 以患爲利(이환위리) |

耳懸鈴鼻懸鈴 (이현령비현령)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俗談)의 한역으로, ①정해 놓은 것이 아니고 둘러대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 ②하나의 사물(事物)이 양쪽에 관련(關聯)되어 어느 한쪽으로 결정(決定)짓기가 어렵다는 말

利害得失 (이해득실)

利害得失(이해득실)

이익과 손해와 얻음과 잃음.

離合集散 (이합집산)

離合集散(이합집산)

離 떠날 이(리), 붙을 여(려), 교룡 치 | 合 합할 합 쪽문 합, 홉 홉 | 集 모을 집 | 散 흩을 산

헤어지고 합치고,다시모이고 또다시 흩어짐.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2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李下不整冠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바로잡지 말라는 말로 조금이라도 남의 의심을 사지 말도록 매사에 조심하라는 말.

[출전] 문선(文選)


관련 한자어

유의어

李下(이하) | 瓜田李下(과전이하)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賀 (이하, 790~816)

이하(李賀, 790~816)

異名: 李贺, Lǐ hè, 자 장길(長吉)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안문태수행, 소소소의 노래


이하(李賀, 791년 ~ 817년)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자는 장길(長吉). 허난성 복창(福昌) 사람이며, 당나라 황실의 후예이며, 두보(杜甫)의 먼 친척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창곡(昌谷:河南省宜陽縣內)의 소지주였으며, 아버지는 변경의 관리로 근무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목표였던 진사시(進士試)는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친의 휘(諱)가 진숙(晉肅)인데 진(晉)과 진(進)은 동음(同音)이라 하여 그 휘를 범한다는 이의(異義)가 나와 단념하였다. 그 이듬해에 봉례랑(奉禮郞)이란 아주 낮은 직위에 2년간 근무하였을 뿐이며, 그것은 27세로 요절한 그의 일생에 영향을 끼쳐, 사상적 경향은 염세적 색채가 짙다.


한유에게 재주를 인정받은 관계로 인해 한유의 문제(門弟)로 취급당하고 있으나, 중당에 있으면서 만당적(晩唐的) 시풍의 선구를 이룬 천재적 시인이다. 낭만적이고 상상력과 색채감이 풍부한 예리한 감각적 시를 지어 화려한 환상적 세계를 창조하였다. 또한 염세주의적인 차가운 눈으로 즐겨 유귀(幽鬼)를 다루기 때문에 ‘귀재(鬼才)’라는 명칭이 붙었다. 귀재란 초인적인 유귀의 재주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북송(北宋)시대의 수필집 《남부신서(南部新書)》 및 그 밖의 책에 적혀 있다.

대표작은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 《소소소(蘇小小)의 노래》 등인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장진주(將進酒)》로서, 후세에 원대(元代)의 통속적인 시문선집(詩文選集)인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수록되었고, 《수호전(水滸傳)》의 원형인 《선화유사(宣和遺事)》에서도 인용하였다. 좌절된 인생에 대한 절망감을 굴절된 표현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특이한 매력을 지녀 애호자도 많다.

저서에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4권), 《외집(外集)》(1권)이 전한다.

一筆揮之 (일필휘지)

一筆揮之(일필휘지)

一 한 일 | 筆 붓 필 | 揮 휘두를 휘, 표기 휘, 휘두를 혼 | 之 갈 지 |

한숨에 흥취있고 줄기차게 글씨를 써내림.

a flourish of the pen and it's done; with one stroke of the pen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挥而就(yìhuīérjiù, 일휘이취)

以火救火 (이화구화)

以火救火(이화구화)

以 -로써 이 | 火 불 화 | 救 건질 구 | 火 불 화 |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대화가 실려 있다.

안회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위나라 국왕은 제멋대로 독재를 한다고 합니다. 국권을 남용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 집에 환자가 많이 모이기 마련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는 이에 따르려는 것입니다.

이에 공자는 대답했다.

위나라 왕이 어진 이를 반기고 어리석은 자를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 그는 왕의 권세로 너를 누르며 능숙한 말솜씨로 이기려고 덤벼들 것이니, 이는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붓는 일과 같다[是以火救火, 以水救水].

以暴易暴 (이포역포, yǐbàoyìbào)

以暴易暴(이포역포)

以暴易暴(yǐbàoyìbào)

以 써 이 | 暴 사나울 포,사나울 폭,쬘 폭,앙상할 박 | 易 바꿀 역,쉬울 이 | 暴 사나울 포,사나울 폭,쬘 폭,앙상할 박 |


횡포(橫暴)로써 횡포(橫暴)함을 바꾼다는 뜻으로, (1) 난폭한 세력으로 난폭한 세력을 대체하다. (2) 통치자가 바뀌었으나, 포학한 통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3) 하나의 환난을 없애기 위해 다른 환난을 불러들이다. (4) 폭력으로써 폭력에 대응하다.


이포여포란 위정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편(伯夷叔齊列傳篇)〉에 실려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왕은 아우 숙제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나라에서는 할 수 없이 둘째를 왕으로 삼았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어 문왕(文王)에 추존되었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왕의 호위 무사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공이 이들을 의인이라고 하며 돌려보내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여 천하가 주(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비[薇]를 꺾어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 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禹),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고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유교적 관점에서 백이와 숙제의 정절은 높이 받들여진다. 그러나, 그 두사람은 왕위를 포기하여 오히려 나라를 어려움에 처하게 한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史記, 사기, 史記:伯夷列傳, 사기:백이열전

一敗塗地 (일패도지)

一敗塗地(일패도지)

一 한 일 | 敗 패할 패 | 塗 칠할 도, 길 도 | 地 땅 지

단 한번 싸움에 패하여 戰死者(전사자)의 으깨진 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어 땅을 도배한다는 뜻. 여지없이 패하여 再起不能(재기불능)이 된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고조, 즉 유방(劉邦)은 젊었을 때에 태어난 고장인 패현(沛縣)에서 말단 관원(官員)으로 있었다. 그는 말단 관원(官員) 시절부터 여러 가지로 큰 인물(人物)이 될 징조가 보였다.당시는 진(秦)의 천하(天下)였다. 시황제(始皇帝)는 항시 동남쪽에 또 다른 천자의 기운이 서려 있다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시황제(始皇帝)가 그 천자의 기운을 제거하러 온다는 소문을 들은 유방(劉邦)은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며 산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다.그런데 아내 여씨는 그 비밀 장소를 아주 쉽게 찾아냈다. 유방(劉邦)이 그 이유를 물으니 유방(劉邦)이 있는 곳에는 항시 구름기가 감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가 퍼져 패현에서는 그의 부하가 되고 싶어하는 자가 부쩍 늘어났다.

秦(진)나라 始皇帝(시황제)가 죽자 견고한 것 같던 진나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2세 황제 원년에 벌써 陳勝(진승)이 진나라에 반항하는 군사를 일으켰고 이것이 導火線(도화선)이 되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沛縣(패현)의 현령은 세력이 막강해진 진승편에 붙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측근에게 의견을 물었다. 측근이 명망 높은 劉邦(유방)을 끌어들이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현령은 이를 받아들여 유방을 성으로 불렀다.

그러나 100명 정도의 부하를 거느리고 나타난 유방(劉邦)을 본 순간 현령은 겁이 났다. 현령은 갑자기 유방에게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성문을 열지 않고 유방 일행을 되돌려 보냈다. 이렇게 되자 유방은 성 안의 有志(유지)들에게 蜂起(봉기) 할 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화살에 매달아 쏘아보냈다. 그러자 유지들은 이에 호응해서 현령을 죽이고 유방을 맞이하고는 그에게 새 현령이 되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유방은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하는 혼란에 빠져 있고 諸侯(제후)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소.이때 훌륭한 인물을 가려 장수로 삼지 않는다면 一敗塗地하고 말 것이오. 나는 내 몸의 안전만을 생각해서 이러는 게 아니오. 내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해 낼 수 있을지 두려워 하기 때문이오. 이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더 신중히 생각해서 적임자를 뽑도록 하시오."

그래도 유지들이 유방을 극구 추대했다.

"평소부터 당신에게는 불가사의한 일만 일어나고 있소. 귀인이 될 운명인 것이오. 점을 쳐 보아도 당신이 제일 적당하다고 나와 있소."

그리하여 유방은 마침내 현령이 되었는데 이것이 뒷날 亂世(난세)를 평정하고 漢(한)나라의 高祖(고조)가 되기까지 유방의 파란만장한 歷程(역정)의 시작이었다.

일패도지하는 말은 보통 싸움에 패했을 때에 쓰는데, 원래는 장차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意味)로 사용(使用)되고 있다.

출전
사기(史記)

一暴十寒 (일포십한)

一暴十寒(일포십한)

一暴十寒 [yípùshíhán]

一 한 일 | 暴 사나울 포, 사나울 폭, 쬘 폭, 앙상할 박 | 十 열 십 | 寒 찰 한 |

초목(草木)을 기르는 데 하루만 볕에 쬐고, 열흘은 응달에 둔다는 뜻으로, 단 하루 일하거나 공부(工夫)하고 열흘이나 노는 게으름을 이르는 말


孟子(맹자) 告子上(고자상)편의 이야기.

전국시대, 유세(遊說)가 성행하였는데, 맹자 또한 당시의 세객(說客)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여러 나라를 유세한 적이 있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선왕(宣王)의 객경(客卿)을 지냈다. 맹자는 제나라에 있을 때, 선왕이 국가를 다스림에 별 업적이 없으며, 일처리가 경솔하고 참언을 쉽게 믿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맹자는 선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쉽게 자라는 물건이 있다 할지라도, 하루 동안 해를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하 자라날 물건이 없다. [虽有天下易生之物也,一日暴之,十日寒之,未有能生者也] 내가 왕을 만나 보긴 하지만 그 기회는 역시 드물고, 내가 물러나면 그를 차게 하는 자가 오니, 내가 싹을 트게 해 준다고 한들 무엇이 되겠는가?"

一暴十寒 이란 어떤 일에 일관성이 없어 자주 끊김 을 비유한 말이며, 하다 말다 하는 것을 뜻한다.


출전

孟子(맹자) 告子上(고자상)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暴十寒萬物不長(일폭십한만물부장) | 一曝十寒[yípùshíhán, 일폭십한] (일·학습에) 항심(恒心)이 없다. 한결같은 마음이 없다. 하다 말다 하다. |

반의어·상대어

持之以恒[chízhīyǐhéng, 지지이항] 오랫동안 견지하다.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利他自利 (이타자리)

利他自利(이타자리)

利 이로울 리, 이로울 이 | 他 다를 타 | 自 스스로 자 | 利 이로울 리, 이로울 이 |

남을 이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한다

日就月將 (일취월장)

日就月將(일취월장)

日 날 일 | 就 나아갈 취, 관대할 여 | 月 달 월 | 將 장수 장, 장차 장 |

날마다 달마다 성장(成長)하고 발전(發展)한다는 뜻으로, 학업(學業)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進步)함을 이름

출전
시경(詩經)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日就(일취) | 日將月就(일장월취) | 刮目相對(괄목상대) |

一觸卽發 (일촉즉발)

一觸卽發(일촉즉발)

一触即发(yíchùjífā)

一 한 일 | 觸 닿을 촉 | 卽 곧 즉 | 發 필 발 |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곧 폭발할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형세.

may break out at any moment; be on the verge of breaking out; be triggered at any moment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前燈火(풍전등화) | 風前燈燭(풍전등촉) | 焦眉之厄(초미지액) | 焦眉之急(초미지급) | 危如累卵(위여누란) | 燃眉之厄(연미지액) | 燒眉之急(소미지급) | 百尺竿頭(백척간두) | 累卵之危(누란지위) | 累卵之勢(누란지세) | 累碁(누기) |

一枕黃粱 (일침황량)

一枕黃粱(일침황량)

一 한 일 | 枕 베개 침 | 黃 누를 황 | 粱 기장 량 |

허황한 꿈. 헛된 꿈.


당(唐)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노생(盧生)이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만난 여옹(呂翁)이라는 도사에게 고단한 처지를 이야기했다. 도사는 그에게 베개 하나를 꺼내
주면서 그걸 베고 자보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여관 주인은 기장을 삶고 있었다.

노생은 잠이 들자 곧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노생은 부잣집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하여, 재상(宰相)이 되었다가, 다시 조국공(趙國公)에 봉하여졌다. 노생은 여든이 넘도록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꿈에서 깨어난 노생은 여관 주인이 아직도 기장을 삶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곁에서 이를 보고 있던 도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생이란 본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一枕黃粱이란 황량일몽(黃粱一夢) 이고도 한다. 이는 본시 부귀의 무상함 을 뜻하지만, 지금은 환상적이고 허황된 일을 비유하기도 한다.


출전

침중기(枕中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邯鄲之夢(한단지몽) | 황량일몽(黃粱一夢) |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一 한 일 | 切 온통 체, 끊을 절 | 唯 오직 유, 누구 수 | 心 마음 심 | 造 지을 조 |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의 불교(佛敎) 용어(用語)

以聽得心 (이청득심)

以聽得心(이청득심)

以 써 이 | 聽 들을 청 | 得 얻을 득 | 心 마음 심 |

마음을 기울여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는 말.

立春大吉 (입춘대길)

立春大吉(입춘대길)

立春大吉[lìchūndàjí]

立 설 립, 春 봄 춘, 大 큰 대, 吉 길할 길.

立春(입춘)을 맞이하여 吉運(길운)을 기원하는 글.

建陽多慶(건양다경)과 짝을 이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立春大吉(입춘대길) | 建陽多慶(건양다경) 좋은 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고 기원하는 글 |

一以貫之 (일이관지)

一以貫之(일이관지)

一 한 일 | 以 써 이 | 貫 꿸 관, 당길 만 | 之 갈 지 |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①처음부터 끝까지 변(變)하지 않음 ②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


일이관지란 말은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서 공자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 자공이 "예.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대답(對答)하니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관지도(一貫之道)이다.

그러나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제자 가운데 증자(曾子)뿐이었다. 이인편(里仁篇)에 보면 공자(孔子)께서 "증삼(曾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 증자가 "예" 하고 대답(對答)했다. 공자(孔子)가 나가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선생님의 도는 자기의 정성을 다하며[忠] 자기를 용서하는 것처럼 남을 용서할 줄 아는 데[恕] 있을 뿐이다."라고 대답(對答)했다.

충은 중(中)과 심(心)의 합체어로서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속에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仁)이며 성(性)인데, 남을 나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인이라 하고 살려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성이라 한다.

그리고 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과 같이 생각하는 일이다. 속에 있는 마음인 충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서로 나타난다. 즉, 일이관지는 공자의 사상과 행동이 하나의 원리로 통일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이며, 증자가 충서로 해석한 것은 충성과 용서가 곧 인을 달성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 번에 끝까지'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 예로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나 '일관(一貫)되다' 등이 있다.

출전
論語(논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貫(일관) |

李璡 (이진, Lǐ Jīn, 汝陽王)

李璡(이진, 汝陽王)

異名: 李璡(이진, Lǐ Jīn), 汝陽王(여양왕, Rǔyángwáng)


玄宗의 조카.

중국의 감숙성(甘肅省)에는 아예 지명이 주천(酒泉)이란 곳이 있는데 그 지역의 물맛이 술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 두보(杜甫)는 여양왕(汝陽王) 이진이란 사람이 술을 너무 좋아하여 왕을 그만두고 주천태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한 대목이다.

汝陽三斗始朝天 (여양삼두시조천)
道逢麹車口流涎 (도봉국차구유연)
恨不移封向酒泉 (한불이봉향주천)

여양은 서 말은 마셔야 조정에 나가고,
길에서 누룩 수레만 만나도 군침을 흘리고,
주천으로의 봉작이전 못함을 한스러워 한다.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一寸光阴不可轻(yícùn guāngyīn bùkě qīng)

一 한 일 | 寸 마디 촌 | 光 빛 광 | 陰 그늘 음, 침묵할 암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可 가할 가,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輕 가벼울 경 |

단 한 시간도 가벼이 허비해서는 안 됨. 즉 시간의 소중함을 가리키는 말.


광음(光陰)은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란 뜻으로, 시간 또는 세월을 가리키는 표현. 촌(寸)은 아주 짧은 단위를 가리키며, 일촌(一寸)은 아주 짧은 거리나 시간을 말함.

송나라 때의 유명한 유학자 주희(朱憙, 1130~1200)의 시에서 유래.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젊은이가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촌음의 시간도 가벼이 보내서는 안 될 것
연못가 봄풀의 꿈이 채 깨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관련 한자어

참조어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

동의어·유의어

一寸光陰(일촌광음) |

반의어·상대어

一刻三秋(일각삼추) |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일각이 3년처럼 길게 느껴짐. |


관련 성어

少年易老学难成,一寸光阴不可轻。

- 朱憙

The young become old soon. It takes a lot of time to learn something. We must not waste any time.

- Zhu Xi (朱憙, 1130-1200)

젊은이가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보내서는 안된다.

- 주희(朱憙)

비슷한 의미의 성어

¶ Time is money.(Western Proverb)
시간은 돈이다. (서양속담)

¶ You may delay, but time will not. (Benjamin Franklin)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시간명언)

一朝一夕 (일조일석)

一朝一夕(일조일석)

一朝一夕(yìzhāoyìxī)

一 한 일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一 한 일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1. 하루의 아침 혹은 하루의 저녁. 2. 하루 아침, 하루 저녁과 같은 짧은 시일

in one morning or evening; overnight; in one day

출전
역경(易經)


관련 한자어

반의어

千秋万代(qiānqiūwàndài, 천추만대) | 长此以往(chángcǐyǐwǎng, 장차이왕) | 长年累月(chángniánlěiyuè, 장년누월) |

泥田鬪狗 (이전투구)

泥田鬪狗(이전투구)

泥 진흙 니 | 田 밭 전 | 鬪 싸울 투 | 狗 개 구 |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8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우리나라 8도의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4글자로 평가한 4자평(四字評)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곧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 충청도 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다.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와 같다.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다.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 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

이 4자평은 조선 태조의 물음에 정도전(鄭道傳)이 답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함경도 사람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붉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태조의 기분을 누그려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전투구는 원래는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악착스러운 성격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鏡中美人(경중미인) | 山林猛虎(산림맹호) | 石田耕牛(석전경우) | 松竹大節(송죽대절) | 岩下老佛(암하노불) | 泥田鬪狗(이전투구) | 淸風明月(청풍명월) | 春波投石(춘파투석) | 風前細柳(풍전세류) |

一場春夢 (일장춘몽, yìchángchūnmèng)

一場春夢(일장춘몽)

一场春梦(yìchángchūnmèng)

一 한 일 | 場 마당 장 | 春 봄 춘,움직일 준 | 夢 꿈 몽 |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榮華)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人生)의 허무(虛無)함을 비유(比喩)하여 이르는 말

A spring dream, an empty dream


송대(宋代)의 《후청록(侯鯖錄)》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의 ‘남가일몽(南柯一夢)’과 함께 《침중기(枕中記)》의 ‘한단지몽(邯鄲之夢)’이 있다.

《남가태수전》은 당(唐)나라의 이공좌(李公佐)가 지은 전기(傳奇)소설이다.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하여 선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괴안국(槐安國) 사신의 초청으로 집 마당의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왕녀와 결혼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호강을 누렸다. 왕녀가 죽어 고향으로 돌아와 깨어보니 자기 집이었다. 마당으로 내려가 홰나무를 조사해 보니 꿈 속에서의 나라와 같은 개미의 나라가 있었다.

《침중기》 역시 당나라의 심기제(沈旣濟)가 지은 전기소설이다. 개원(開元) 연간에 한단(邯鄲)의 서생(書生) 노생(盧生)이 사냥길에 찻집에서 여옹(呂翁)이라는 노인을 만난다. 그에게서 이상한 청자(靑磁) 베개를 빌려 쉬는 동안 입신을 하고, 유배도 가고, 죽을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하다가 끝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위치에까지 올라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일생을 마친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아직도 찻집의 밥은 뜸이 들지 않은, 아주 잠시 동안의 일이었다.

여기에 나타난 꿈의 공통점은 모두 인생의 덧없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꿈의 세계에서 갈피를 못잡는 주인공의 모습만이 있다. 혼돈 속에 꿈꾸는 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그동안 추구한 부귀영화는 또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던가. 사람의 일생은 한바탕 봄 꿈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 한자어

유의어

黃粱一炊之夢(황량일취지몽) | 黃粱一炊夢(황량일취몽) | 黃粱一炊(황량일취) | 黃粱夢(황량몽) | 邯鄲之枕(한단지침) | 邯鄲之夢(한단지몽) | 一炊之夢(일취지몽) | 呂翁枕(여옹침) | 白日夢(백일몽) | 盧生之夢(노생지몽) | 南柯之夢(남가지몽) | 南柯一夢(남가일몽) | 羅浮之夢(나부지몽) | 槐安夢(괴안몽) |


侯鯖錄(후청록) |

仁者無敵 (인자무적)

仁者無敵(인자무적)

仁 어질 인 | 者 놈 자 | 無 없을 무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天下)에 적대(敵對)할 사람이 없음


진실로 어진 정치를 베풀면서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군주에게는 자연히 백성들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반대하는 세력이 없게 되고, 비록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인심이 떠나지 않아 총칼로도 어찌할 수 없게 된다는 뜻으로, 곧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 편에 나온다.

양 혜왕이 맹자에게 전쟁에서 진 치욕을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는지를 묻자, 맹자는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를 들고서도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들은 백성들이 일할 시기를 빼앗아 밭을 갈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모는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형제와 처자는 뿔뿔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데, 왕께서 가서 정벌한다면 누가 감히 대적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르기를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仁者無敵)'고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인자무적'은 맹자가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전해져 오던 것을 인용한 것이다. 서투른 글이 총명함보다 낫다는 뜻의 '둔필승총(鈍筆勝聰)'도 같은 이치이다. 무릇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붓이 칼을 꺾는 법이다.

출전: 맹자(孟子)

一日之狗不知畏虎 (일일지구부지외호)

一日之狗不知畏虎(일일지구부지외호)

一日之狗不知畏虎(yírìzhīgǒubùzhīwèihǔ)

一 한 일 | 日 날 일 | 之 갈 지 | 狗 개 구 | 不 아닐 부, 아닐 불 | 知 알 지 | 畏 두려워할 외 | 虎 범 호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뜻으로, 멋모르고 겁없이 덤빔을 이르는 말

[출전]
이담속찬(耳談續纂)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 자가시리(자라)가 용 건드린다.
¶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
¶ 젖 먹는 강아지 발 뒤축 문다.

以人爲鑑 (이인위감)

以人爲鑑(이인위감)


경계

一人一技 (일인일기)

一人一技(일인일기)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는 일.

一日三秋 (일일삼추, yīrìsānqiū)

一日三秋(일일삼추)

중국어: 一日三秋
병음(拼音) yīrìsānqiū

일본어: 一日三秋
IPA [iʨiʥiʦɯsanɕɯː]
히라가나 いちじつさんしゅう
로마자 표기 ichijitsusanshū

因人成事 (인인성사)

因人成事(인인성사)

因人成事(yīnrénchéngshì)

因 인할 인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事 일 사 |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룸. 자기의 힘으로는 일을 해내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성취함을 가리키는 말.

to success with the help of others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평원군(平原君) 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국시대 말기 趙(조)나라가 秦(진)나라의 침략을 받아 정세가 급박하게 되자 조나라 혜문왕은 平原君(평원군)을 楚(초)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게 했다. 평원군은 수행원 20명을 거느리고 초나라에 가서 초나라 고열왕과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평원군 일행을 맞은 초왕은 그리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평원군과 초왕의 회담은 아침부터 낮이 기울도록 계속됐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섬돌 아래에서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평원군의 수행원 毛遂(모수)가 더 참지 못하고 칼자루를 움켜쥔 채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회담 참석자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게 어찌 우리 조나라만을 위해서이겠소. 그런데도 어찌하여 여태까지 결말을 짓지 못하고 꾸물대고 있단 말이오." 모수는 칼자루를 더욱 힘주어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초나라가 아무리 대국이라 해도 지금 열걸음 안에 있는 대왕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소이다.제 말을 들어 보시오. 초나라의 일부 영토도 이미 진나라의 손에 들어갔고 조상들의 무덤까지 훼손당하지 않았습니까. 대왕은 어찌 이런 일들에 분개하지 않습니까. 두나라의 연합은 초나라의 원수까지도 갚는 일입니다."

모수의 설득에 마침내 초왕도 꺾였다. 血盟(혈맹)을 하는 자리에서 모수는 같이 온 19명의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쓸모가 없었소. 그저 일행으로 따라와서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룩한 사람들일 뿐이오(公等碌碌 所謂因人成事者也․ 공등녹록 소위인인성사자야.)"

조나라를 출발할 때 자천(自薦)한 모수를 두고 다른 19명이 조소한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대임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평원군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인물의 감정 따위는 하지 않겠다. 평소에 천하의 인물을 잘못 보는 일은 없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모선생을 잘못 보았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선생은 초나라에 가서 우리 조나라를 천하의 귀중한 보배[九鼎大呂]보다도 더 귀중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모수를 최상급의 식객으로 대우했다.

以逸待勞 (이일대로, yǐyìdàiláo)

以逸待勞(이일대로)

以逸待劳(yǐyìdàiláo)

以 써 이 | 逸 편안할 일 | 待 기다릴 대 | 勞 일할 로,일할 노

逸은 佚(편안할 일)이라고도 쓴다.


三十六計 勝戰計 第四計.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하는 전략이다. 《손자(孫子)》의 〈군쟁(軍爭)〉 편에 언급된다.

To wait for the enemy to wear themselves out

指作战时采取守势,养精蓄锐,待敌人疲惫时,再乘机出击取胜。


원문에 따르면, "적의 기세를 꺾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하고 약한 것은 상대적이므로 강자의 손해는 약자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적군의 기세가 약해지면 아군의 기세가 강해져 싸움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다.[困敵之勢,不以戰,損剛益柔.]" 고 풀이하고 있다.

孫子(손자) 軍爭篇(군쟁편)에서도,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세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고프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일대로는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당도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함으로써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에,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해진 적이 쉴 틈도 없이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또는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강할 때, 수비에 치중하는 한편으로 전열을 잘 가다듬어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 뒤에 공격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승전계(勝戰計)에 속하는 4번째 계책이기도 한다.

유명한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예를 살펴보자.

吳의 도독인 여몽은 형주를 차지하고 싶었으나 관우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어서 그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육손을 내세우며 계략을 세워 관우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한 편,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분노에 몸을 떨며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吳를 향해 군마를 돌진시킨다.

蜀의 대진격으로 吳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그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감택이 나서서 육손을 추천한다.

"하늘을 떠받칠 인재가 있는데 어찌 쓰지 않으시옵니까?"

하지만 장소, 고옹, 보즐 등의 대신들은 모두 반대한다. 손권은 그 반대를 물리치고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는다.

이렇게 대도독이 된 육손이지만, 나이도 어리고 군대를 지휘한 경험도 없는지라 오랫 동안 전투를 해온 장수들이 모두 육손을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 육손이 모든 병사들에게 '절대로 싸우지 말고 오로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리자 모든 장수들이 육손을 찾아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결판을 내기를 바란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육손은 크게 호통을 치며 쫓아냈고, 장수들은 '이제 東吳는 망했다'며 물러갔다.

이 때 유비는 효정에서 사천의 입구까지 장장 7백리에 걸쳐 군마를 포진시키고 있었다. 육손이 대도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직접 前軍을 거느리고 여러 관을 공격했다. 이에 吳에서는 한당이 나가 싸우려 했지만 육손이 이를 제지했다. 유비는 계속 싸움을 거는데도 육손이 싸움을 하지 않는 상태로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이에 날씨가 더워 여러모로 불편을 겪자 유비는 병사들을 숲으로 옮기도록 명했다. 군사가 이동하는 동안 吳軍이 쳐들어 올까봐 허약한 군사를 오군 근처에 둔치게 하고 유비는 근처에 숨어 있다가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마량은 옮겨간 진영의 그림을 그려 제갈량에게 보내 의견을 묻기로 했다.

한편 한당과 주태는 촉군이 숲 속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공격하고자 육손에게 말했다. 하지만 육손은 복병이 숨어있을 것을 꿰뚫어 보고 싸우지 못하게 했다. 이에 모든 병사들은 육손을 겁쟁이라고 했다.

제갈량은 영채의 그림을 보고는 당장 가서 영채를 다시 세우라 명했다. 하지만 이미 유비는 더위에 지친 병사들을 숲 속으로 옮겨 영채를 세웠고, 육손은 부하 장수들에게 火攻(화공)을 명하여, 7백리에 이르는 유비의 영채를 모두 태워버린 후였다. 결국 유비는 병사들을 모두 잃고 근처의 백제성으로 겨우 들어갔다. 육손은 기세를 몰아 계속 공격하려 하였으나 제갈량이 설치해 놓은 석병팔진에 빠져 단념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일대로의 예로는 역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사실상의 최종장면, 오장원의 싸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오장원에 둔치고 위의 사마의와 한 판 대결을 벌이려 했으나 사마의는 절대로 나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촉군이 오장원에 둔을 친 것으로 보아, 머지 않아 촉군 내에 변고가 생기리라 본 것이었다. 그러자 조급해진 제갈량은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 명주로 지은 여자옷 한 벌을 편지와 함께 사마의에게 보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달(사마의)! 기왕 대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왔으면 갑옷을 걸치고 칼을 들고 자웅을 가릴 생각은 하지 않고 땅굴 속에 틀어박혀 화살과 칼을 피하고만 있으니, 아녀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에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 옷을 보내니 만일 싸우지 않으려거든 두 번 절하고 받으시오. 만일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있고, 아직 사내다운 기개가 남아있다면 싸울 날짜를 보내기 바라오.'

이에 많은 魏軍(위군) 장수들은 분개하여 나가 싸우고자 하였으나 사마의가 이를 말렸다. 하지만 장수들이 워낙에 거세게 분개하는 바람에 사마의가 말릴 수 없게 되자, 사마의는 황제에게 표를 올렸다. 표의 내용은 '제갈량이 이렇게까지 모욕을 해오니 나가서 싸우고 싶습니다'였다. 이에 위명제는 사마의가 자신의 위세를 빌려 장수들을 말리려는 의중을 꿰뚫고는, '절대로 나가서 싸우지 말라'는 내용의 명령을 내렸다. 이에 사마의는 '황제의 명령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장수들을 말렸고, 그러는 와중에 촉에서는 제갈량이 결국 병사하고 말았고, 제갈량을 잃은 촉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以靜待譁(이정대화): 고요함으로써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린다. 《손자(孫子)》

以治待亂(이치대란): 자신을 다스린 뒤에 상대가 어지러워지기를 기다린다. 《손자(孫子)》

以一警百 (이일경백)

以一警百(이일경백)


경계 |

一葉知秋 (일엽지추)

一葉知秋(일엽지추)

一 한 일 | 葉 잎 엽 | 知 알 지 | 秋 가을 추 |

회남자 설산훈(說山訓)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고(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옴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논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나라 한 시인의 시(詩)에는 떨어지는 잎새 하나로 천하가 가을임을 알다(一落葉知天下秋). 라는 구절이 보인다.

一葉知秋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 곧 가을이 왔음을 알다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써 큰 것을 알며, 부분적인 현상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전체, 발전 추세 등을 미뤄 알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一葉知秋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以偏槪全(이편개전), 즉 반쪽으로써 전체를 짐작하다라는 말이 있다.

爾虞我詐 (이우아사)

이우아사(爾虞我詐)

爾 너,어조사 이 | 虞 염려할 우 | 我 나 아 | 詐 속일 사

서로 의심(疑心)하거나 서로 속임을 뜻하는 말


초나라 군대는 오랜 공격으로 병사들이 지쳤고, 군량도 바닥이 난 터에, 오래 끌어 보아야 좋은 것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철군을 하지는 않았다. 또한 포위 당한 채 오랜 공격을 받아온 송나라 군대 역시 병사들은 지쳐있었고, 식량도 이미 다 소모되고 없었다. 외부의 원조가 없이는 얼마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었다. 두 나라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이 때, 초나라 신숙시(申叔時)가 초왕에게 계책을 말했다.

"병사들에게 이 근처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척하게 한다면, 송나라는 반드시 항복할 것입니다(築室反耕者, 宋必聽命)."

초 장왕이 계책대로 실시하자, 과연 송나라 사람들은 크게 놀랬다. 이에 화원은 밤을 틈타 성을 빠져 나와 초나라 공자 반(反)의 막사로 숨어 들어가 그를 깨워 일으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자식을 양식과 바꾸어 먹고 사람의 뼈를 쪼개 밥을 짓고 있소. 우리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지만, 당신네들이 30리만 물러난다면, 그때는 하자는 대로 하겠오."

몹시 놀란 공자 반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초왕에게 고하여 군대를 30리 뒤로 물러나게 하고, 송나라와 화평을 맺었으며, 화원은 인질이 되었다. 그때 했던 맹약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초나라는 당신 나라를 속이지 않을테니, 당신네 송나라는 우리 초나라를 속이지 말라(我無爾詐, 爾無我虞)."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宣公 15年條


동의어

이사아우(爾詐我虞)

以迂爲直 (이우위직)

以迂爲直(이우위직)

以 써 이 | 迂 굽을 우 | 爲 할 위 | 直 곧을 직 |

'굽은 것으로써 바른 것이 되게 하다'라는 뜻으로,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는 전략을 말한다. 《손자(孫子)》에서 유래되었다.



《손자》의 군쟁(軍爭)편에 "무릇 용병의 방법은 장수가 군주의 명령을 받아 군대를 편성하고 적과 대치하여 주둔한다.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는데, 이는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 아군의 불리한 여건을 이로움이 되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以迂爲直, 以患爲利). 그러므로 그 길을 우회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하고, 적보다 나중에 출발하여 먼저 도달하는 것을 우직(迂直)의 전략을 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아군이 멀리 우회하는 것처럼 적을 속임으로써 적이 기동을 지체하도록 유인하면 적보다 늦게 출동하여도 먼저 도착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이것이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회작전의 예로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의 고사(故事)에서 한신(韓信)이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여 초나라 장수 장한(章邯)을 속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군을 이끌고 우회하여 진창을 점령하고 관중을 함락시킨 일을 들 수 있다.

출전
손자(孫子)


관련 한자어

참조어

以迂爲直(이우위직) | 以患爲利(이환위리) |

庭訓 (정훈)

庭訓(정훈)

庭 뜰 정 | 訓 가르칠 훈 |

뜰에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가정 교육을 이르는 말.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의 이야기.

공자의 제자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또 다른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가."

백어가 대답하였다.

"아직 없습니다. 한번은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이르시기를, '시(詩)를 배웠느냐?' 하시기에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뜰을 지나가자 이르시기를, '예(禮)를 배웠느냐?' 하시기에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 설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예를 배웠습니다. 들은 것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

진항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다. 시와 예에 관한 것을 들었고, 또 군자는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어 알았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이처럼 아들에게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그저 뜰을 지나는 아들을 불러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었을 뿐이다. 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이라 하여 과정지훈(過庭之訓) 또는 추정(趨庭)이라고도 한다.


출전

논어(論語) 계씨(季氏)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趨庭(추정) | 鯉庭之訓(이정지훈) | 鯉庭(이정) | 過庭之訓(과정지훈) | 家敎(가교)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已往之事 (이왕지사)

已往之事(이왕지사)

이미 지나간 일.


관련 한자어

유의어

已過之事(이과지사)

一葉蔽目不見泰山 (일엽폐목불견태산)

일엽폐목불견태산(一葉蔽目不見泰山)

나뭇입 하나가 눈을 가리니 태산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사심이 공명한 마음을 가린다는 의미.

갈관자 '천칙(天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葉障目(일엽장목) | 일엽폐목불견태산(一葉蔽目不見泰山) |

以熱治熱 (이열치열)

以熱治熱(이열치열)

열은 열로써 다스림.

李延壽 (이연수, Lǐ Yánshòu)

李延壽(이연수)

李延寿(Lǐ Yánshòu)


아버지인 이대사(李大師, 570~628)의 유지(遺志)를 계승하여 643년부터 659년까지 17년 동안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국가들의 사서(史書)와 기록들을 연구, 정리하여 본기(本紀) 12권, 열전(列傳) 88권의 <북사(北史)>와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70권의 '남사(南史)'를 편찬하였다.

易如反掌 (이여반장)

易如反掌(이여반장)

易 쉬울 이 | 如 같을 여 | 反 뒤집을 반 | 掌 손바닥 장

易如反掌(yìrúfǎnzhǎng)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쉽다'라는 뜻으로, 아주 쉬운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맹자(孟子)'에서 유래되었다.

as easy as turning one's hand over— piece of cake


보통 줄여서 여반장(如反掌)이라고도 한다. 공손추(公孫丑)가 스승인 맹자에게 "선생님께서 제(齊)나라의 요직에 계시면 관중(管仲)과 안자(晏子:안영)의 공을 다시 기약할 수 있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桓公) 때 재상을 지내며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환공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되도록 보좌한 인물이다. 안영 역시 제나라 영공(靈公)과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를 섬기며 군주의 명성을 떨치도록 보좌하여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그러나 맹자는 자신이 그들과 비교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맹자는 "제나라의 왕노릇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以齊王, 由反手也)"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제나라는 영토가 넓고 백성도 많은 대국(大國)이어서 어진 정치를 시행하여 천하통일의 왕업(王業)을 이룩하기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맹자는 관중과 안영이 그러한 대국에서 군주의 전폭적인 신뢰를 업고서도 왕도(王道) 정치를 펴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의 공적을 낮게 본 것이다.

이 고사(故事)는 '맹자'의 〈공손추장구〉상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여반장은 자신의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아주 쉬운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李延年 (이연년, Lǐ Yánnián)

李延年(이연년)

李延年(Lǐ Yánnián)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음악을 관장하는 벼슬)을 지냄.

一日千里 (일일천리)

一日千里(일일천리)

一日千里[yírìqiānlǐ]

一 한 일 | 日 해 일, 날 일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里 마을 리(이), 속 리(이) |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린다는 뜻으로, ①말이 매우 빨리 달림을 이르는 말 ②진보(進步)하는 것이 빠름 ③물이 급히 흐름 ④뛰어난 재능(才能)을 가진 사람


후한서(後漢書) 왕윤(王允)전의 이야기다.

왕윤은 동한(東漢)때의 인물로서, 헌제(獻帝) 재위 시기에 사도(司徒)를 지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무예를 연마하였다. 그와 동향(同鄕)인 곽림종(郭林宗)은 왕윤의 총명함과 학문하는 태도를 보고, 그를 칭찬하여 왕윤의 학문은 매우 빨리 발전하고 있는데[王生一日千里], 장차 제왕(帝王)을 보좌하여 대사(大事)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王佐才也]라고 하였다.

왕윤이 사도로 재임하던 때에, 동탁(董卓)은 전권을 잡고 방탕하고 도리를 모르는 포악한 생활을 하였다. 왕윤은 겉으로는 동탁에게 순종하였지만, 몰래 여포(呂布)를 부추겨 미인계로써 동탁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동탁의 부하인 이각(李 )과 곽사(郭 )에게 살해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56세.

一日千里 라는 말은 본시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 주나라 목왕(穆王)의 휘하에 조보(造父)라는 마부가 있었는데, 그가 모는 말은 하
루에 천리길을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一日千里 란 본시 말이 매우 빠르게 달리는 것을 뜻하였으나, 지금은 진보나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름 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왕윤(王允)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日新月异[rìxīnyuèyì, 일신월이] 나날이 새로워지다. |

반의어·상대어

一成不变[yìchéngbúbiàn, 일성불변] 법이 한번 정해지면 고칠 수 없다. 고정불변하다. 옛 것을 고수하여 잘 고치려 하지 않다. |

任人唯賢 (임인유현)

任人唯賢(임인유현)

任 맡길 임, 맞을 임 | 人 사람 인 | 唯 오직 유, 누구 수 | 賢 어질 현 |

오직 인품(人品)과 능력(能力)만을 보고 사람을 임용(任用)한다는 뜻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제(齊)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여 양공(襄公)이 피살되었다. 이듬해 양공의 두 동생인 공자(公子) 규(糾)와 공자 소백(小白)은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와 왕위를 다퉜다. 제나라 환공(桓公)으로 즉위한 소백은 공자 규를 죽이고, 그의 측근인 관중을 잡아 보내도록 하였다.

압송되던 관중은 제나라의 변방에 이르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변방을 지키는 관원에게 음식을 좀 부탁했다. 이 관원은 제나라 환공이 관중을 중용할 것으로 생각하여, 매우 정중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그는 관중에게 물었다.

"만약 제나라에 도착하여 중용되면, 저에게 어떤 보답을 하시겠오?"

관중의 대답은 이러했다.

"만약 당신의 말대로 된다면, 나는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임용할 것이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어떠한 보답을 할 것 같소?"

그 관원은 말문이 막혔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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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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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一魚濁水 (일어탁수)

一魚濁水(일어탁수)

一 한 일 | 魚 물고기 어 | 濁 흐릴 탁 | 水 물 수

한 마리의 물고기가 물을 흐리니 곧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여러 사람이 그 해를 입게 됨.

一言九鼎 (일언구정)

一言九鼎(일언구정, yìyánjiǔdǐng)

말 한 마디가 구정(九鼎)만큼 무겁다. 일언이 중천금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

구정(九鼎)은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 전국의 아홉 주(州)에서 거두어들인 금으로 만들었다는 솥을 가리키는데, 구주(九州)를 상징하며 주(周)나라 때까지 대대로 천자에게 전해진 보물이었다고 함.

"The weight of a word is as heavy as that of a nine major bronze statues (according to legend, Xia Yu cast nine bronze statues as the symbol of the nine states, referring to extremely heavy weight)". Describes when a person's words can play an important role.


九鼎(Nine Tripod Cauldrons)

二律背反 (이율배반)

二律背反(이율배반)

二 두 이 | 律 법칙 율(률) | 背 등 배, 배반할 배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두 가지 규율(規律)이 서로 반대(反對)된다는 뜻으로, ①동일(同一) 법전(法典)에 포함(包含)되는 개개 법문(法文) 간(間)의 모순(矛盾) ②꼭 같은 근거(根據)를 가지고 정당(正當)하다고 주장(主張)되는 서로 모순(矛盾)되는 두 명제(命題), 서로 모순(矛盾)되는 명제(命題). 즉 정립(定立)과 반립(反立)이 동등(同等)의 권리(權利)를 가지고 주장(主張)되는 것을 일컫는 말

antinomy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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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自己矛盾(자기모순) | 自家撞着(자가당착) | 矛盾(모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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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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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實直告 (이실직고)

以實直告(이실직고)

실상대로 고함.

以心傳心 (이심전심)

以心傳心(이심전심)

以 써 이 | 心 마음 심 | 傳 전할 전 | 心 마음 심

석가(釋迦)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①말로써 설명(說明)할 수 없는 심오(深奧)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②마음과 마음이 통(通)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意思)가 전달(傳達)됨


송(宋)나라의 도언(道彦)이라는 사문(沙門)은 그의 저서 《전등록(傳燈錄)》에 석가(釋迦) 이래 조사(祖師)들의 법맥(法脈) 계통과 수많은 법어(法語)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 아닌 마음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문관(無門關)》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으며, 특히 송나라의 사문 보제(普濟)의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석가 세존(世尊)이 제자들을 영취산(靈鷲山)에 모아놓고 설법을 하였다. 그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세존은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집어 들고[拈華]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세존의 그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微笑]. 그제야 세존도 빙그레 웃으며 가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 : 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 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 :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 : 진리를 깨치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주마.” 이렇게 하여 불교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해졌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였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拈華示衆(염화시중) | 拈華微笑(염화미소) | 心心相印(심심상인) | 不立文字(불립문자) | 敎外別傳(교외별전)

二十四史 (이십사사) | 二十五史 (이십오사)

二十四史(이십사사) | 二十五史(이십오사) |

二十四史(èrshísìshǐ) | 二十五史(èrshíwǔshǐ) |


24사. 지난날 정사(正史)로 일컬어지던 24종의 기전체 역사책. 24사에 신원사(新元史)를 추가하여 25사라고 부른다.


중국 역대 왕들의 연대기인 본기(本紀)와 저명한 개인의 사적(事績)을 기록한 열전(列傳)을 요소로 하여 기전체(紀傳體)에 따른 중국 역대의 역사. 그 밖에 연표(年表)·계보(系譜) 또는 제도를 기록한 지(志, 또는 書) 등을 포함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들은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한(漢)나라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上古)로부터 한나라 무왕(武王) 때까지 기록한 "사기(史記)"에서 시작되는데, 이하는 단대사(斷代史)로서 1 왕조마다 1 부씩 사서(史書)가 만들어져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를 합하여 사사(四史)라고 부른다.

이후의 왕조에 대해서는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위서(魏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 가 만들어졌고, 남송(南宋)시대에 와서 "남사(南史)", "북사(北史)"를 더하여 17사(史)로 총칭되었다.

원(元)나라 말기에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가 저술되었고, 명(明)나라 초 "원사(元史)"가 성립되었으므로 이들을 합하여 21사(史), 청(淸)나라 초 만들어진 "명사(明史)"를 합하여 22사라고 하였다. 청나라 왕명성(王鳴盛)의 "17사 상각(商)", 조익(趙翼)의 "22사 차기(箚記)"등의 이름은 여기에 유래한다.

건륭왕(乾隆王)은 이에 더하여 "구당서(舊唐書)"와 "구오대사(舊五代史)"를 내어 24사 로서 궁중의 무영전(武英殿)에서 인행(印行) 하였는데, 합하여 3,243권에 달한다. 민국 초에는 커사오민의 "신원사(新元史)"가 정사로 추가되어 25사가 되었다.

청나라에 대해서는 민국 초에 "청사고(淸史稿)"가 나왔으나 아직 정사로서 권위 있는 "청사(淸史)"는 나와 있지 않다.



序號書名國家作者卷數
01史記(사기)司馬遷130
02漢書(한서)班固100
03後漢書(후한서)南朝宋范曄(범엽)120
04三國志(삼국지,Sānguózhì)陳壽65
05晉書(진서)房玄齡(방현령)·李延壽(이연수)等130
06宋書(송서)南朝梁沈約(심약)100
07南齊書(남제서)南朝梁蕭子顯59
08梁書(양서)姚思廉56
09陳書(진서)姚思廉36
10魏書(위서)北齊魏收114
11北齊書(북제서)李百藥50
12周書(주서)令狐德棻等50
13隋書(수서)魏徵等85
14南史(남사)李延壽80
15北史(북사)李延壽100
16舊唐書(구당서)後晉劉昫等200
17新唐書(신당서)歐陽修、宋祁225
18舊五代史(구오대사)薛居正等150
19新五代史(신오대사)歐陽修74
20宋史(송사)脫脫等496
21遼史(요사)脫脫等116
22金史(금사)脫脫等135
23元史(원사)宋濂等210
24明史(명사)張廷玉等332
相關新元史民國柯劭忞等257
相關清史稿民國赵尔巽等529

一心同體 (일심동체)

一心同體(일심동체)

一 한 일 | 心 마음 심 | 同 한가지 동 | 體 몸 체 |

한 마음 한 몸처럼 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異體同心(이체동심) |

一葉障目 (일엽장목)

一葉障目(일엽장목)

一 한 일 | 葉 잎 엽, 땅 이름 섭, 책 접 | 障 막을 장 | 目 눈 목 |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린다는 뜻으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현상(現狀)에 미혹(迷惑)되어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함.


주대(周代) 초(楚)나라 사람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갈관자(鶡冠子) 천칙(天則)편에 "무릇 귀는 듣는 것을 주관하고 눈은 보는 것을 주관한다. 그러나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이 보이지 않고, 두 알의 콩이 귀를 막으면 우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夫耳之主聽, 目之主明, 一葉蔽目, 不見太山, 兩豆塞耳, 不聞雷霆]"라고 하였다. 여기서 '일엽폐목 불견태산'이라는 성어가 생겼는데,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일에 현혹되어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놓치기 쉬움을 경계하는 말이다.

중국의 고전 유머집 《소림(笑林)》에 이 성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 초나라 땅에 가난한 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나무 밑에서 그러한 나뭇잎을 찾았다.

마침내 그는 사마귀가 나뭇잎 뒤에 숨어서 매미를 잡을 기회를 엿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나뭇잎을 땄다. 그러나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먼저 떨어져 있던 나뭇잎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근처에 있던 나뭇잎을 모두 쓸어 담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나뭇잎을 하나하나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는(一一以葉自障) 아내에게 "내가 보이는가"라고 물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물을 때마다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남편이 온종일 똑같은 질문을 하자 나중에는 귀찮아져서 되는 대로 "안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아내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서생은 잎사귀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길거리로 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관리에게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를 심문한 관리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한바탕 크게 웃으며 죄를 묻지 않고 풀어주었다.

一葉障目은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葉障目(일엽장목) | 일엽폐목불견태산(一葉蔽目不見泰山) |

因循姑息 (인순고식)

因循姑息(인순고식)

①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당장에 편안한 것만을 취함. ②일을 행(行)함에 있어 결단력(決斷力) 없이 우물쭈물함


관련 한자어

유의어

變通(변통) | 彌縫策(미봉책) | 凍足放尿(동족방뇨) | 姑息策(고식책) | 姑息之計(고식지계) |

耳視目聽 (이시목청)

耳視目聽(이시목청)

耳 귀 이, 팔대째 손자 잉 | 視 볼 시 | 目 눈 목 | 聽 들을 청 |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열자(列子) 중니(仲尼)편에 실린 이야기다.

진(陳)나라의 대부(大夫)가 노(魯)나라에 초빙되어 숙손씨(叔孫氏)를 만났다. 숙손씨가 노나라에는 공자(孔子)라는 성인(聖人)이 있다고 말하자, 진나라 대부는 자기 나라에도 성인이 있다고 하였다. 숙손씨가 누구냐고 묻자, 대부는 "노담(老聃:노자)의 제자인 항창자(亢倉子)인데, 노담의 도를 체득하여 귀로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老聃之弟子有亢倉子者, 得聃之道, 能以耳視而目聽]"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소문을 전해들은 노(魯)나라의 군주는 상경(上卿)의 예(禮)로써 그를 초빙하여, 겸손한 말로 그러한 능력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이에 항창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소문은 전한 사람들의 망발입니다. 도가(道家)의 수련에서 눈과 귀를 쓰지 않고도 소리를 듣거나 물체를 볼 수는 있지만 귀와 눈의 기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가 눈을 쓰지 않고 귀로 물체를 본다는 것과 귀를 쓰지 않고 눈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가장된 것이오니, 이를 사실로 믿지마십시오. [我能視聽不用耳目 不能易耳目之用(아능시청불용이목 불능역이목지용)]

노나라 임금이 더 이상히 여겨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항창자는 몸이 마음과 합하고, 마음이 기운과 합하고, 기운이 정신과 합하고, 정신이 무(無)와 합하는 수양을 쌓으면 감각작용이나 지각작용에 의하지 않고서도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耳視目聽은 본시 도가수련의 한 단계로서 눈과 귀의 도움없이 정신만으로도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耳視 란 직접 보지 않고 소문을 들어서 알아차림을 뜻하고, 目聽이란 직접 듣지 않고 표정을 보고 알아차림을 뜻하니, 耳視目聽이란 사람의 눈치가 매우 빠름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열자(列子)의 중니편(仲尼篇) |


관련 한자어

참조어

목식이시(目食耳視) |

一石二鳥 (일석이조)

一石二鳥(일석이조)

一石二鸟(yìshíèrniǎo)

一 한 일 | 石 돌 석 | 二 두 이 |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봄을 이르는 말.

"Hitting two birds with one stone"; an analogy that refers to doing one action that accomplishes two goals.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箭雙鵰(일전쌍조) | 一擧兩得(일거양득) | 一石二鳥(일석이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꿩 먹고 알 먹는다.
¶ 배 먹고 이 닦기.
¶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

人生不能無群 (인생불능무군)

人生不能無群(인생불능무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여럿이서 모여살 수 밖에 없다.

荀子(순자)

人生無常 (인생무상)

人生無常(인생무상)

人 사람 인 | 生 날 생 | 無 없을 무 | 常 떳떳할 상, 항상 상

사람의 삶이 덧없음.


관련 한자어

유의어

설니홍조 | 수류운공 | 일장춘몽 | 生者必滅(생자필멸)

一瀉千里 (일사천리)

一瀉千里(일사천리)

一 한 일 | 瀉 쏟을 사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里 마을 리(이), 속 리(이)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①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進行)됨 ②문장(文章)이나 글이 명쾌(明快)함

복혜전서(福惠全書) 29권 "엄연협리경주 편각일사이천리(儼然峽裡輕舟 片刻一瀉而千里)"에 나오는 말이다.

출전
복혜전서(福惠全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天直下(구천직하) |

人山人海 (인산인해)

人山人海(인산인해)

人山人海(rénshānrénhǎi)

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상태.

a sea of people; huge crowds of people

臨事而懼 (임사이구)

臨事而懼(임사이구)

臨 임할 림, 임할 임 | 事 일 사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懼 두려워할 구 |

'어려운 시기에 큰일에 임해 엄중한 마음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지혜를 모아 일을 잘 성사시킨다'는 뜻.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자로(子路)와 안연(顔淵)은 성격이 크게 달랐다. 자로는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다. 이에 비해 안연은 부드럽고, 학문을 좋아해 군자적 면모가 풍겼다. 공자는 개인적으로 안연을 가장 아꼈다.

하루는 공자가 안연에게 이르기를 “쓰이면 행하고, 버려지면 감춰지는 도(道)를 알고 있는 이는 오직 나와 너(안연)뿐이다(用之則行,舍之則藏, 維我與爾, 有是夫)”라고 했다. 안연을 자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며 크게 칭찬한 것이다. 이를 듣고 있던 자로가 시기심이 발동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님께서 삼군의 군대를 행하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겠습니까(子行三軍則誰與)”라고 했다. 자기의 용맹을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공자는 자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호랑이를 때려잡고 강을 건너다가 죽더라도 후회가 없는 자와는 내 더불어 하지 않는다(暴虎馮河, 死而無悔者, 我不與也). 내가 같이 하는 이는 반드시 일에 임해 두려워하며(必也臨事而懼), 도모하기를 좋아하되 반드시 이루어내는 자이다(好謀而成者也).” 무모한 행위를 용기로 잘못 알고 있는 자로를 질책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임사이구(臨事而懼)다. 큰일이 닥쳤을 때 경거망동하지 않고, 두렵고도 신중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전
論語(논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臨事而懼好謨難成(임사이구호모난성) 일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면 꾀하는 일을 잘 마치기 어렵다. |

一絲不亂 (일사불란)

一絲不亂(일사불란)

一 한 일 | 絲 실 사, 가는 실 멱 | 不 아닐 불, 아닐 부 | 亂 어지러울 란(난)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秩序)나 체계(體系)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어지러움이 없음.

一水四見 (일수사견)

一水四見(일수사견)

一 한 일 | 水 물 수 | 四 넉 사 | 見 볼 견, 뵈올 현 |

같은 물이지만, 천계(天界)에 사는 신(神)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 곧, 한가지 현상을 놓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


天見水思琉璃(천견수사유리)
人見水思水(인견수사수)
鬼見水思火(귀견수사화)
魚見水思室(어견수사실)

하늘이 보면 ‘유리’보석으로,
사람 눈으로 보면 물로,
귀신시각으로 보면 불로,
물고기가 볼 때는 방 또는 집으로 보인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境四心(일경사심) | 一處四見(일처사견) |

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 (이소인지심탁군자지복)

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이소인지심 탁군자지복)

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yǐxiǎorénzhīxīn, duójūnzǐzhīfù]

以 써 이, 에서 이 | 小 작을 소 | 人 사람 인 | 之 어조사 지 | 心 마음 심 | 度 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 |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之 어조사 지 | 腹 배 복 |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가늠해 보다. 저속한 마음으로 고상한 사람의 심정을 추측하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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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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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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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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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笑一少 (일소일소)

一笑一少(일소일소)

一 한 일 | 笑 웃음 소 | 一 한 일 | 少 적을 소, 젊을 소 |

한 번 웃으면 그만큼 더 젊어짐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一怒一老(일로일로) |

一夫一妻 (일부일처)

一夫一妻(일부일처)

한 남편에 한 아내.

一罰百戒 (일벌백계, yìfábǎijiè)

一罰百戒(일벌백계)

一罚百戒(yìfábǎijiè)

一 한 일 | 罰 벌할 벌 | 百 일백 백,힘쓸 맥 | 戒 경계할 계 |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罰)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孫子)는 이름이 무(武)로,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가 병법(兵法)이라는 특기를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를 만났다. 합려가 말했다. “그대의 병서는 나도 모두 읽었다. 실제로 군을 지휘해 보여주겠는가?” “좋습니다.” “여인들이라도 좋은가?” “좋습니다.” 합려는 궁녀 180명을 모았다. 손자는 이것을 2대(隊)로 나눈 뒤, 왕의 총희(寵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았다. 그런 다음 나머지 궁녀들에게는 갈래진 창[戟]을 들게 하고 명령하였다. “앞으로 하면 가슴을 보고, 좌로 하면 왼손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보고, 뒤로 하면 등을 보라.” 이렇게 군령을 선포하고 군고(軍鼓)를 쳐서 명령하자 궁녀들은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主將)의 책임이다.” 다시 큰소리로 세 번 되풀이 하고 다섯 차례 설명하고 나서 군고를 쳐서 호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미 군령이 분명한 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다.” 하고는 칼을 뽑아 두 총희를 베려고 하였다. 대 위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합려가 전령을 보내왔다. “장군의 용병술(用兵術)을 잘 알았다.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없을까.” 손자가 말했다. “신이 이미 명령을 받아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진중에 있는 한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침내 두 총희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차석의 시녀를 대장으로 삼았다. 다시 군고를 울리자 궁녀들은 수족처럼 움직이고 동작이 모두 규칙에 들어맞아 감히 소리지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손자는 전령을 보내 왕에게 보고했다. “군병은 이미 정돈되었습니다. 몸소 열병하심이 어떠하올지. 왕의 명령이라면 물이면 물, 불이면 불 가운데라 할지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합려가 말했다. “장군은 피로할테니 휴식을 위하여 숙사로 가라. 내려가서 볼 생각은 없다.” 손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한갓 용병의 이론을 좋아하실 뿐, 실제로 응용하시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합려는 손자를 장군에 기용했다.

오나라가 서쪽으로는 초(楚)나라를 꺾고 북으로는 제나라,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명성을 제후 사이에 떨쳤는데, 손자의 힘이 컸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중 손자의 일화이다. 여기서 ‘일벌백계’는 ‘하나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전체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법’으로 쓰였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고래로 무리를 통솔할 때 자주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능력 없는 지휘자에게는 자칫 무리하게 이용되는 수도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罚一儆百(벌일경백,fáyījǐngbǎi) | 以一警百(이일경백) | 以一儆百(이일경백,yǐyījǐngbǎi) | 惩一戒百(징일계백,chéngyíjièbǎi) | 惩一儆百(징일경백,chéngyījǐngbǎi) | 惩一警百(징일경백,chéngyījǐngbǎi) | 懲一勵百(징일여백) |
泣斬馬謖(읍참마속) |


史記,사기,史記:孫子吳起列傳, 사기:손자오기열전

李白 (이백, 701~762)

李白(이백, 701~762)

異名: 본명 이태백(李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자 태백(太白)
국적: 중국 당(唐)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촉나라 장밍현(오늘날의 쓰촨성)
주요작품: 《청평조사(淸平調詞)》


중국 당나라 시인.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며 시선(詩仙)으로 불린다.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隴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 ·남릉(南陵:安徽省) 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 ·원단구(元丹邱) ·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백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으로 발휘할 기회를 바랬다. 그가 43세 되던해인 724년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하사 받았다. 하지만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지어 올렸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정치적 야망과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역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나게 되었다.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 ·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 ·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세). 그 후 그는 금릉 ·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 ·시대 ·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 ·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 ·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이백 관련 한시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淸平調詞(청평조사) 一首(1수) 二首(2수) 三首(3수)
聽蜀僧濬彈琴(청촉승준탄금)
夏日山中(하일산중)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이백 관련 고사성어

磨斧作針(마부작침) |

日薄西山 (일박서산)

日薄西山(일박서산)

日薄西山(rìbóxīshān)

日 날 일 | 薄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 | 西 서녘 서 | 山 뫼 산 |

① 해가 지려 하다. ② 죽어 가다. ③ 세력이 기울어져 망하려는 판국.

the sun is setting beyond the western hills—nearing one's end; approaching death; declining rapidly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관련 한자어

참조어

朝不慮夕(조불려석)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

一傅衆咻 (일부중휴)

一傅衆咻(일부중휴)

一 한 일 | 傅 스승 부 | 衆 무리 중 | 咻 떠들 휴 |

한 사람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듣지 않고 떠든다는 뜻으로, 성공하지 못함의 비유. 학습환경이 좋지 않거나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일의 성과가 없을 때 사용.


원래대로 해석하면, 한 사람의 스승이 가르치는데,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니,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뜻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하는 일이 성과가 없거나, 공부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간섭만 하는 등 학습 환경이 좋지 않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하( 文公下) '대불승장(戴不勝章)'에 나온다.

전국(戰國) 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대불승(戴不勝)이 강왕을 도와 인정(仁政)을 실시해 보려고 설거주(薛居州)를 시켜서 왕을 보필하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맹자는 송나라를 방문하였다.

대불승을 만난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초(楚)나라 대부가 자기 아들에게 제(齊)나라 말을 배우게 하려는데, 제나라 사람을 시켜 가르치는게 낫겠습니까? 아니면 초나라 사람을 시켜서 가르치는 게 낫겠습니까?"

대불승은 대답했다.

"당연히 제나라 사람을 시켜서 가르쳐야 겠지요."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고 떠들기만 한다면[一齊人傅之 衆楚人咻之], 매일 매 때리며 제나라 말을 하라고 강요한다 해도 배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몇 년 동안 제나라의 번화한 길거리에 데려다 두고, 배우게 한다 할지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맹자는 대불승 혼자의 힘으로는 어진 정치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일부중휴는 위의 '일제인부지 중초인휴지'에서 따온 것이다. 一傅衆咻란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방해가 많음을 뜻하며, 일에 성과가 없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되는 표현으로 '마중지봉(麻中之蓬)'이 있는데, 삼밭의 쑥대라는 뜻으로, 하찮은 풀이라도 삼밭에서 자라면 삼의 영향을 받아 잘 자라듯이 사람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그 영향을 받아서 좋아진다는 말이다.


출전

孟子(맹자)


관련 한자어

반의어·상대어

麻中之蓬(마중지봉) |

一帆風順 (일범순풍)

一帆風順(일범순풍)

一 한 일 | 帆 돛 범 | 順 순할 순 | 風 바람 풍 |

순풍을 받은 배처럼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人無遠慮必有近憂 (인무원려필유근우)

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人無遠慮,必有近憂。
- 孔子(551 B.C.-479 B.C.), 論語 衛靈公

If a man take no thought about what is distant, he will find sorrow near at hand.
- Confucius(551 B.C.-479 B.C.), The Analects: Wei Ling Gong

사람이 먼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앞에 근심이 생기는 법이다.
- 공자(551 B.C.-479 B.C.) 중국 교육자, 논어 제15장 위령공

一問一答 (일문일답)

一問一答(일문일답)

一 한 일 | 問 물을 문 | 一 한 일 | 答 대답 답 |

①한 번 묻는 데 대(對)해 한 번 대답(對答)함 ②또는, 이를 되풀이하는 문장(文章)

一飯千金 (일반천금)

一飯千金(일반천금)

一 한 일 | 飯 밥 반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金 쇠 금, 성씨 김 |

한 끼의 식사(食事)에 천금같은 은혜(恩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恩惠)에 크게 보답(報答)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출전

사기(史記) 淮陰侯傳(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일반은(一飯恩) | 일반지은(一飯之恩) | 일반천금(一飯千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飯三吐 (일반삼토)

一飯三吐(일반삼토)

一 한 일 | 飯 밥 반 | 三 석 삼 | 吐 토할 토 |

밥 한 끼 먹는 동안 세번 음식을 뱉는다.


밥 한 끼 먹는 동안 세번 음식을 뱉고 사람을 만났다는 뜻으로 인재를 우대하라는 의미.


출전

사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沐三捉一飯三吐(일목삼착일반삼토) | 一沐三捉(일목삼착) | 一飯三吐(일반삼토) |

日暮途遠 (일모도원, rìmùtúyuǎn)

日暮途遠(일모도원)

日暮途远(rìmùtúyuǎn)

日 날 일 | 暮 저물 모 | 途 길 도 | 遠 멀 원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少傅)로 있었으나 성품이 간교하였다. 비무기는 태자를 배신하고 진(秦)에서 데려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아첨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 후,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를 참소하였다. 여자에게 빠져 버린 왕은 비무기의 말만 곧이듣고 왕자를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또 왕은 태자가 반기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엔 태부 오사를 꾸짖었는데, 오사는 도리어 왕의 그릇됨을 간하였다. 이 때문에 오사는 유폐되었다. 이번에는 오사의 두 아들의 보복이 두려워진 비무기는 태자의 음모는 그 두 아들의 보복이라 참언하였다. 그 때문에 오사의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때부터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오왕과 공자 광(光)을 만난 오자서는 공자가 왕위를 탐하여 자객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천거하였다. 이 때에 초나라는 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 천거한 여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으로 등극했다. 그 후 내분으로 비무기는 피살되고, 내분을 틈타 초를 치던 오왕은 전제의 칼에 죽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오황 합려(闔閭)다.

마침내 오나라의 행인(行人 :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昭王)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의 이야기이다. ‘일모도원’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자서의 이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 Wúshìchuīxiāo) |


사기, 사기:오자서열전, 오자서, 史記, 史記:伍子胥列傳, 伍子胥|

一木難支 (일목난지)

一木難支(일목난지)

一 한 일 | 木 나무 목 | 難 어려울 난 | 支 지탱할 지 |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의 사위인 임개(任愷)는 가충(賈充)이라는 사람과의 불화로 그만 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권세를 잃게 되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임개의 친구인 화교(和嶠)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친구인 임개의 방탕함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는거요?"라고 물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던 화교는 "임개의 방탕은 마치 북하문(北夏門)이 무너질 때와 같아서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非一木所能支)."라고 대답하였다.

一木難支는 一柱難支(일주난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 을 비유한 것이다.

耳目口鼻 (이목구비)

耳目口鼻(이목구비)

귀 눈 입 코.

一鳴驚人 (일명경인)

一鳴驚人(일명경인)

一 한 일 | 鳴 울 명 | 驚 놀랄 경 | 人 사람 인 |

글자풀이를 하면 「한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하다」인데 한번 시작하면 사람을 놀랠 만큼 대사업을 이룩한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重臣(중신) 순우곤은 학자이면서도 익살과 辯舌(변설)로 소문난 인물. 학문은 雜學(잡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孟子(맹자)와 논전을 벌일 만큼 상당한 데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것 없고 천한 신분 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섬긴 威王(위왕)은 주색에 빠져 政事(정사)는 돌보지 않고 나라일은 모두 신하들에게 맡겨놓다시피 하고 있었다. 웃나라의 허점이 엿보이면 가차없이 침략을 일삼던 弱肉强食(약육강식)의 당시 사정에 미루어본다면 이런 君主(군주)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느날 순우곤이 위왕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 왕궁에 날아와 머물고 있는 큰 새 한마리는 3년이 되었는데도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왕은 이 물음이 자기를 빗댄 것인줄 알아차리고 『그 새는 그렇게 있다가도 한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치솟아오르고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하오』라고 대답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龍駒鳳雛(용구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삼년불비) | 不飛不鳴(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魑魅魍魎 (이매망량, chīmèiwǎngliǎng)

魑魅魍魎(이매망량)

魑魅魍魉(chīmèiwǎngliǎng)

魑 도깨비 리,도깨비 이 | 魅 매혹할 매,도깨비 매,도깨비 미 | 魍 도깨비 망 | 魎 도깨비 량,도깨비 양 |


산 속의 요괴와 물 속의 괴물 등 온갖 도깨비·요괴·귀신·괴물 등을 총칭하는 말로 나쁜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매는 산 속의 요괴, 망량은 물 속의 괴물을 말하는데, 이들이 합쳐져 온갖 도깨비를 지칭하는 하나의 성어(成語)가 되었다. 《좌씨전(左氏傳)》의 '선공(宣公) 3년' 조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주(周)나라의 대부(大夫) 왕손만(王孫滿)에게 주나라 왕실이 지닌 정(鼎: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은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장왕은 주나라가 정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쇠락하였으므로 자신이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속셈을 품고 있었다. 왕손만은 장왕의 속셈을 간파하고 정의 크기와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德)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문정지대소경중(問鼎之大小輕重)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왕손만은 정의 용도에 대하여 "거기에 온갖 사물을 새겨 놓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운 것과 간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물에 들어가거나 산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피할 수 있고, 이매망량 같은 귀신 도깨비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奸, 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 魑魅魍魎, 莫能逢之)"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매망량은 요괴와 괴물 등 온갖 도깨비를 뜻하는 원래의 의미 외에 그러한 요괴와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가지각색의 악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左氏傳(좌씨전):宣公(선공):三年(3년) |


관련 한자어

참조어

問鼎之大小輕重(문정지대소경중) |


좌씨전, 좌씨전:선공

左氏傳, 左氏傳:宣公

一網打盡 (일망타진)

一網打盡(일망타진)

한 그물에 모두 다 두드려 잡음. 곧 한꺼번에 모조리 체포함.


송(宋)나라의 인종은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학문(學問)을 숭상하고 인재를 등용(登用ㆍ登庸)하여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때에 명신인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脩), 사마광(司馬光),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顥) 등이 황제(皇帝)를 보필했다. 한편, 현사(賢士)들이 제각기 정론을 제기하게 되니 당파가 생기게 되어 자주 대신들이 바뀌게 되었다. 두연(杜衍)이 승상이 되었을 때에는 황제(皇帝)가 대신들과 상의하지 않고도 조칙(詔勅)을 내리는 것이 관례(이를 內隆이라 함)였다. 그러나 두연은 정도(政道)에 어긋난다 하여 내강이 내려도 보류했다가 10여 장이 모이면 황제(皇帝)에게 도로 반송했다. 이 같은 두연의 행동(行動)은 성지(聖旨)를 마음대로 굽히는 것이라 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때에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횡령하여 제사를 지내고 손님 접대에 탕진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두연을 못마땅하게 여겨 온 어사 왕공진(王拱辰)은, 기회는 이때다 하고 이를 엄중히 처단했다. 그리고는 손뼉을 탁 치면서 "일망타진했도다."라고 말했다 함
관련 한자어

출전: 송사(宋史)의 인종기(仁宗紀)


관련 한자어

유의어

網打(망타) |

一望無際 (일망무제)

一望無際(일망무제)

一 한 일 | 望 바랄 망, 보름 망 | 無 없을 무 | 際 즈음 제, 가 제

넓어서 바라봄에 끝이 없음.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一望無涯(일망무애) |

移木之信 (이목지신)

移木之信(이목지신)

移 옮길 이 | 木 나무 목 | 之 의 지 | 信 믿을 신 |

위정자(爲政者)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百姓)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①신용(信用)을 지킴을 이르는 말 ②남을 속이지 아니함


진(秦)나라의 효공(孝公) 때에 상앙(商鞅)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상앙(商鞅)은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명재상이었으며,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이었으며,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통일(統一天下)의 기틀을 마련했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시행에 매우 신중한 면모를 보였는데, 한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도 얼른 시행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효공이 그 까닭을 묻자, 상앙은 이렇게 대답했다.

“법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백성들이 조정을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여 사람들이 그 법을 우습게 알거나 잘 모르거나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그것을 신중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상앙은 그런 이유로 고심하던 나머지 하나의 계책(計策)을 생각해 냈다. 다음날, 도성 남문 근처에는 높이가 석 장[三丈(삼장)]에 이르는 커다란 나무 기둥 하나가 세워졌다. 그리고 옆에는 다음과 같은 방이 붙었다.

누구든지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한테 십 금(十金)을 주겠노라.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아무도 선뜻 나서서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나무가 크고 무거워 보이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옮긴다고 해서 상금을 틀림없이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을 지켜 본 상앙은 다음날에는 상금을 올려서 방을 바꾸어 붙였다.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한테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노라.

이번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 상금이 상당히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운께나 쓰는 사람 하나가 달려들어 나무 기둥을 둘러매고는 낑낑대며 북문까지 옮겨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그 뒤를 줄레줄레 따라갔다. 마침내 나무 기둥이 북문에 도착하자, 상앙은 약속대로 그 남자에게 오십 금을 내주었다.
그런 다음 드디어 법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조정이 약속한 바는 틀림없이 지켜진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조문의 내용들이 너무 엄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행 일 년 동안에 새 법령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1천 명을 넘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따라야만 하겠구나.’

상앙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태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옳다구나 하고, 법에 따라 태자의 태부(太傅)를 참형에 처하는 한편 태사(太師)는 칼로 이마를 째어 글자를 새기는 경형(鯨刑)에 처했다. 이러한 처벌을 본 백성들은 겁이 덜컥 나서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익숙해져 오히려 만족스러워했고, 남의 물건이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으며, 도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제도의 지원 덕분에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한결 윤택해졌다.

[출전]
사기(史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徙木之信(사목지신) | 移木之信(이목지신) |

반의어·상대어

食言(식언) |

一沐三捉 (일목삼착)

一沐三捉(일목삼착)

一 한 일 | 沐 머리 감을 목 | 三 석 삼 | 捉 잡을 착 |

한 번 머리를 감을 동안이라도 머리를 세번 움켜쥔다.


머리를 감다가도 인재가 찾아오면 젖은 머리채를 움켜쥐고 사람을 만났다는 뜻으로 인재를 우대하라는 의미.


출전

사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沐三捉一飯三吐(일목삼착일반삼토) | 一沐三捉(일목삼착) | 一飯三吐(일반삼토) |

一沐三捉一飯三吐 (일목삼착일반삼토)

一沐三捉一飯三吐(일목삼착일반삼토)

一 한 일 | 沐 머리 감을 목 | 三 석 삼 | 捉 잡을 착 | 一 한 일 | 飯 밥 반 | 三 석 삼 | 吐 토할 토 |

한 번 머리를 감을 동안이라도 머리를 세번 움켜쥐고 밥 한 끼 먹는 동안 세번 음식을 뱉는다.


공자가 롤모델로 삼았던 가장 바람직한 정치가는 주나라 주공이었다. 주공은 청렴하고 신중하며 근면의 바람직한 공직자의 윤리를 보여준 이상적인 리더였기 때문이다. 주공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잘 맺으며 인재를 구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아 어떤 날은 하루에 70여 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주공이 자신의 아들 백금에게 교만하지 말고 인재를 찾아 우대하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며 지금 왕인 성왕의 숙부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천하에 결코 천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일목삼착一沐三捉, 일반삼토一飯三吐’하면서까지 인재를 우대했다. 오로지 천하의 현자를 잃을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일목삼착(一沐三捉)'은 한 번 목욕을 하다가 세 번 머리채를 잡고 '일반삼토(一飯三吐)’은 한 번 밥을 먹다가 세 번 뱉었다는 뜻이다.

주공은 목욕을 하다가도 인재가 찾아오면 젖은 머리채를 움켜쥐고 사람을 만났고, 밥을 먹다가도 입안에 든 음식을 뱉어내고 찾아온 사람을 만났다는 말이니 주공이 인재를 구함에 얼마나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목욕이야 언제라도 할 수 있고 밥 먹는 일이야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지만 인재를 놓치면 나라 일을 망칠 수도 인재 등용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다.


출전

사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沐三捉一飯三吐(일목삼착일반삼토) | 一沐三捉(일목삼착) | 一飯三吐(일반삼토) |

人命在天 (인명재천)

人命在天(인명재천)

人命在天(rénmìng zài tiān)。

人 사람 인 | 命 목숨 명 | 在 있을 재 | 天 하늘 천 |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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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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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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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人面獸心 (인면수심)

人面獸心(인면수심)

人 사람 인 | 面 낯 면, 밀가루 면 | 獸 짐승 수 | 心 마음 심 |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①남의 은혜(恩惠)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凶惡)함을 이르는 말②사람의 도리(道理)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 망덕하거나 행동(行動)이 흉악(凶惡)하고 음탕(淫蕩)한 사람

man in face but brute in mind


그러나 원래의 뜻은 이와 다르다. 인면수심은 중국 후한(後漢)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열전(列傳) 제64 '흉노전(匈奴傳)'에 나온다.

흉노는 몽골고원·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목기마민족(遊牧騎馬民族)과 그들이 형성한 국가들의 총칭이다. 주대(周代)부터 계속 중국 북방을 침입해 중국인들은 북방 오랑캐라는 뜻으로 이들을 흉노로 불렀다.

서한(西漢) 시대 한(漢)나라는 흉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부하였으므로, 흉노족들은 자주 한나라를 침입하였다. 흉노족의 수십만 기마병(騎馬兵)은 해마다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농가를 기습하여 가축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133년, 한 무제(武帝)는 흉노 정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투를 겪으며 그들의 침공을 막아내었다.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는 흉노전에서 이들을 가리켜 "오랑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며,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되 마음은 짐승과 같다[夷狄之人 被髮左衽 人面獸心]."고 표현하였다.

이 글을 통해 반고가 말한 인면수심은 본래 미개한 종족으로서의 북쪽 오랑캐, 즉 흉노를 일컫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다(피발좌임)'는 말은, 중국 한족(漢族)의 풍습과는 다른 미개한 종족의 풍속을 일컫는 말로, 역시 오랑캐의 풍속을 가리킨다.

따라서 남의 은혜를 모르거나, 마음이 몹시 흉악하고 음탕한 사람을 가리킬 때의 인면수심은 뒤에 덧붙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면수심과 비슷한 한자성어로는 옷을 입고 관을 쓴 짐승, 곧 옷을 입고 관을 썼지만 하는 짓은 짐승과 같다는 뜻의 의관금수(衣冠禽獸)가 있다.


출전

한서(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衣冠禽獸(의관금수) | 人面獸心(인면수심) | 人非人(인비인) |


人面桃花 (인면도화)

人面桃花(인면도화)

人(사람 인) 面(낯 면) 桃(복숭아 도) 花(꽃 화)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얼굴'이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된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 최호(崔護)가 지은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이다.


당(唐) 맹계(孟棨)의 정감(情感) 이라는 시에 얽힌 이야기.

최호는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안핑현[安平縣]인 박릉[博陵] 사람으로,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를 지냈다. 최호는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기 전에 청명절(淸明節)을 맞이하여 홀로 장안(長安)의 남쪽 교외를 유람하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농장(農莊)을 발견하였다. 그는 박주(薄酒)라도 한 잔 얻어 먹고 갈증을 풀려고 농장의 대문을 두드렸다.

한 여인이 나와서 그에게 물 한 잔을 주었다.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 아래에 선 여인은 마치 복숭아꽃 같았다. 최호와 그 여인은 상대의 뛰어난 모습과 아름다운 자태에 서로 반하였다.

그 아가씨를 마음에 새겨두고 있던 최호는 이듬해 청명절에 다시 그 농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복숭아꽃은 예전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건만 농장의 대문은 굳게 잠겨 있고 그 아가씨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최호는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수 없어 농장의 대문에 시를 한 수 적어 놓았다.

지난해 오늘 이 문 안에서는, 얼굴과 복숭아꽃이 서로 붉게 비쳤네. 얼굴은 간 곳을 모르겠건만, 복숭아꽃은 그때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이 고사는 《본사시(本事詩)》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으며, 원(元)나라 때 《최호알장(崔護謁漿)》이라는 제목의 잡극(雜劇)으로도 만들어졌다. 인면도화는 최호의 시에서는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형용하였으나,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경우 또는 경치는 예전과 같지만 그 경치를 함께 하던 연인은 곁에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쓰이게 되었다.


출전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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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一勞永逸 (일로영일)

一勞永逸(일로영일)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

출전은 중국 북위(北魏)의 학자 가사협의 저서 제민요술(濟民要術)과 명사(明史) 증예전(曾銳傳)


2010년 | 새해 사자성어 | 청와대

以卵擊石 (이란격석)

以卵擊石(이란격석)

以 써 이 | 卵 알 란(난) | 擊 칠 격 | 石 돌 석 |

계란으로 벽치기. 즉,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음을 비유.


묵자(墨子) 귀의(貴義)편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기, 묵자는 노(魯)나라를 떠나 북쪽의 제(齊)나라로 가는 길에 점장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점장이는 묵자에게 북쪽으로 가는 것이 불길하다고 말했다. 묵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북쪽으로 향하여 치수(淄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때 치수의 물흐름이 너무 빨라 건널 수 없게 되자 묵자는 다시 돌 수 밖에 없었다.

되돌아 오는 묵자를 보고 그 점장이는 거만하게 굴며 묵자의 기분을 건드렸다. 묵자는 제나라에 가지 못하게 된 판국에 점장이의 비웃음까지 받게 되자, 몹시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말은 근거없는 미신이오. 당신의 말을 믿는다면 천하에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러한 말로써 나의 말을 비난하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과 같소[以其言非吾言者, 是猶以卵投石也]. 천하의 계란을 다 없앤다 해도 돌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오.

以卵擊石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이니, 이는 곧 손해만 볼 뿐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荀子(순자) | 묵자(墨子) |


관련 한자어

유의어

紅爐點雪(홍로점설) 벌겋게 단 화로에 눈 한 송이 | 紅爐上一點雪(홍로상일점설) | 漢江投石(한강투석) 한강에 돌던지기 | 以卵投石(이란투석) | 杯水輿薪(배수여신) | 杯水救車(배수구거) | 杯水車薪(배수거신) 한 잔의 물로 수레에 가득 실린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한다. 맹자(孟子) |

一怒一老 (일로일로)

一怒一老(일로일로)

一 한 일 | 怒 성낼 로(노) | 一 한 일 | 老 늙을 로(노) |

한 번 화를 내면 그만큼 더 늙음

二桃殺三士 (이도살삼사, èrtáoshāsānshì)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二桃杀三士(èrtáoshāsānshì)

二 두 이 | 桃 복숭아 도 | 殺 죽일 살 | 三 석 삼 | 士 무사 사 |


복숭아 두 개로 무사 세 명을 죽인다는 뜻으로, 교묘한 책략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 말.


《안자춘추(晏子春秋)》 〈간(諫)〉 하(下)의 이야기이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에게는 신변을 호위하는 장수로 공손접(公孫接), 고야자(古冶子), 전개강(田開疆)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힘과 공을 빌어, 법과 위계질서를 무시했다. 참다 못한 재상 안영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어느 날 안영이 만찬석상에서 복숭아 두 개를 내어 와 경공에게 바치며, “이 복숭아를 가장 공로가 큰 신하에게 상으로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먼저 공손접이 나서서, “사냥 때, 폐하께 달려드는 호랑이를 내가 맨손으로 잡았다.” 하고는 복숭아를 하나 가졌다. 전개강 역시 “나는 매복을 사용하여 두 번이나 적을 무찔렀다.” 하고는 남은 복숭아를 가졌다. 당황한 고야자가, “폐하를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폐하 수레의 왼쪽 말이 중류로 도망쳤다. 내가 강으로 들어가 백걸음 동안 흐름을 거스른 다음 흐름을 좇아 90리를 가 말을 죽였다. 그런 다음 왼손으로 말의 엉덩이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말의 목을 들어 언덕으로 올라왔다.”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공손접과 전개강이 이 말을 듣고, “우리의 공훈은 그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복숭아를 탐한 것은 우리의 탐욕 때문이다.” 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었다. 고야자도 “두 사람이 죽었는데 나 혼자 사는 것은 인(仁)이 아니다. 사람이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듣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 하고 칼을 뽑아 자기의 목을 찔렀다.

이 고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제갈 량(諸葛亮)의 《양보음(梁甫吟)》이라는 고체시(古體詩)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一朝被讒言, 二桃殺三士

하루아침에 참언을 입어, 두 복숭아가 세 장사를 죽였다.

이백 또한 동명의 시를 지어 이 고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力排南山三壯士, 齊相殺之費二桃

제나라의 재상은 힘이 남산을 갈아엎는 세 명의 장사를 죽이는데,
두 개의 복숭아를 사용하였다.

안영의 생각은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유사하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 집단의 질서를 흐트리는자, 장차 자신을 위해할 염려가 있는 자 등에게는 인정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것은 춘추전국시대나 현대, 둘 다 살아 남기 위한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中流砥柱(중류지주) | 砥柱中流(지주중류) |



관련 한시

梁甫吟(양보음) 諸葛亮(제갈량) | 梁甫吟(양보음) 李白(이백) |


안자춘추, 안자춘추:간, 중국한시, 양보음, 제갈량, 이백

晏子春秋, 晏子春秋:諫, 梁甫吟, 諸葛亮, 李白

一刀兩斷 (일도양단, yìdāoliǎngduàn)

一刀兩斷 (일도양단)

一刀両断(약자), 一刀两断(简体)

병음(拼音): yìdāoliǎngduàn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히 처리함

李代桃僵 (이대도강, lǐdàitáojiāng)

李代桃僵(이대도강)

李代桃僵(lǐdàitáojiāng)

李 오얏 리 | 代 대신할 대 | 桃 복숭아 도 | 僵 넘어질 강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一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그 외에 '형제는 마땅히 환난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어떤 것으로 다른 것을 대체하다', '타인의 과실을 대신 책임져 주다', '남을 대신하여 희생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이는 '중요성이 적은 것을 희생하여 중요성이 큰 것을 살린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복숭아나무의 병충해가 심해서 그 옆에 오얏나무를 심어 쓰러뜨리면 병충해가 오얏나무에 집중되어 복숭아나무가 무사히 자랐다고 한다.

중국 고대와 중세의 악부시를 집대성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린 〈계명(鷄鳴)〉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는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벌레들에 갉아먹혀 희생하는 것을 형제 간의 우애에 빗대어 노래하였다.

"복숭아나무 우물가에서 자라고, 자두나무 그 옆에서 자랐네. 벌레가 복숭아나무 뿌리를 갉아먹으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었네. 나무들도 대신 희생하거늘, 형제는 또 서로를 잊는구나(桃生露井上, 李樹生桃旁. 蟲來齧桃根, 李樹代桃僵. 樹木身相代, 兄弟還相忘)."

여기서 이대도강이라는 성어(成語)가 생겼고, 병법에 응용되어 작은 것을 희생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뜻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법이다. 승부의 비결은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여 단점으로써 장점을 이기는 데 달려 있다.

병법 36계의 원문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싸움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부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대국적인 이익을 취해야 한다.[勢必有損,損陰以益陽.]"

이것은 이른바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르는' '肉斬骨斷(육참골단)'과도 뜻이 통한다 할 것이다. 이는 양동작전시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끼부대를 버린 돌로 삼는 식의 작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승리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몇가지 살펴보자.

또 한사람의 孫子(손자)로 불리우는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의 일화이다.

손빈이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제나라로 망명한 후 제위왕은 손빈에게 벼슬을 주려 했다. 이에 손빈은 '자신이 제나라에서 벼슬을 산다는 것이 위나라에 알려지면 방연이 무슨 간특한 짓을 꾸밀지 모른다'는 이유로 벼슬을 사양한다.

제위왕은 여가시간에 종족과 공자들을 거느리고 사냥터에 나가서 내기를 걸고 경주를 하거나 활을 쏘는 것이 취미였다. 그런데 제위왕의 종족인 대장군 전기(田忌)는 말[馬]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겨룰 때마다 늘 지기만 했다. 그래서 전기는 제위왕에게 늘 막대한 돈을 잃곤 했다.

어느날 전기는 손빈을 데리고 나가 내기를 구경시켰다. 그 날도 전기는 제위왕과 세번을 겨루어 다 지고야 말았다. 이에 전기에게 의탁하고 있던 손빈은 마차를 끄는 말에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일 다시 왕과 내기를 하시오. 내 반드시 그대가 이기게 해드리리다."

이에 전기는 왕에게 가서 내기를 청하고, 돌아와 손빈에게 계책을 물었다. 손빈이 대답했다.

"왕은 제나라에서 좋은 말을 다 가지고 계시오. 그대가 순서대로 왕과 겨루다가는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서는 다음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먼저 그대는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고 왕의 가장 좋은 말과 경주하십시오. 그리고 대왕이 보통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가장 좋은 말을 타고 경주하십시오. 또 대왕이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보통 말을 타면 됩니다. 그러면 세 번 내기에서 한 번은 지겠지만, 두 번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손빈의 계책에 따라 전기는 한 번은 지고 두 번은 이겼다. 여기서 손빈이 사용한 계책이 이대도강의 예이다. 하등급 말이 상등급 말과 겨루면 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두 번의 승리를 위하여 한 번 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결국 전기는 한 번 졌지만 두 번을 이김으로써 왕자들로부터 천금을 딸 수 있었다.

전기는 그 후에 왕에게 자신이 이긴 것은 손빈의 계책 덕분이라는 것을 고했다. 이에 제위왕은 손빈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빈에게 상을 내렸다.

이와 다른 방면의 예를 또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완성에서 전위를 잃고 살아돌아온 조조는 또다시 '황제'를 자칭하는 원술의 토벌에 나섰다. 조조군에 차츰 밀리던 원술은 식량을 모두 거두어 회수 건너로 후퇴했다. 이 해에 커다란 흉년이 들어 양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17만 조조군은 양식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손책에게 양곡 10만 섬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양곡관리관의 부하인 창고지기 '왕후'가 들어와 조조에게 품했다.

"군사는 많고 양식은 적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작은 되로 나누어 주어 우선 급한 불이나 끄면 될 것이다."
"병사들이 원망을 하면 어찌합니까?"
"나에게 생각이 있느니라."

왕후는 명령에 따라 작은되로 병사들에게 양곡을 배급했다. 조조가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모든 병사들이 '승상(조조)이 우리를 속였다'며 불평하고 있었다. 조조는 남몰래 왕후를 불렀다.

"내 너에게 한가지 물건을 빌리고자 한다. 그것만 있으면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으니 너는 인색하게 굴지 말지어다."
"무엇을 빌리려 하시옵니까?"
"너의 머리를 빌려야겠다."
"저는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나 역시 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군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네 식솔들은 모두 책임지고 보살필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

조조는 왕후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장대에 매달고 방을 붙였다.

'왕후가 군량을 작은 되로 나누어 주며 군량을 착복했으므로 군법에 따라 다스리노라.'

이리하여 조조에 대한 군사들의 원망은 비로소 해소되었다.

그리고는 원술을 무찌름에 있어, 조조는 스스로 앞장 서며 칼을 들고 적을 베고 말에서 내려 흙을 퍼 해자를 메웠다. 이 모습을 본 장수와 군사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도 작은 희생으로 큰 승리를 거머쥔 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승리'란 원술을 무찌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병사들을 진정시킨 것을 뜻한다.


관련 한시

鷄鳴(계명)


관련 한자어

참조어

肉斬骨斷(육참골단) | 煮豆燃萁(자두연기)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異代同調 (이대동조, yìdàitóngdiào)

異代同調(이대동조)

异代同调(yìdàitóngdiào)

異 다를 이(리) | 代 대신할 대 | 同 한가지 동 | 調 고를 조,아침 주 |

同调(tóngdiào) 같은 가락·음률, 동지·동조자


시대(時代)는 달라도 인간(人間) 또는 사물(事物)에는 각각(各各) 상통하는 분위기(雰圍氣)와 맛이 있음


참조 한자어

유의어

異世同調(이세동조) |


交感, 교감

一簞食一瓢飮 (일단사일표음)

一簞食一瓢飮(일단사일표음)

一 한 일 | 簞 소쿠리 단 | 食 밥 식, 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一 한 일 | 瓢 바가지 표 | 飮 마실 음 |

한주먹 도시락 밥과 표주박 한 바가지 물이란 뜻으로, ①변변치 못한 음식(飮食) ②매우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을 의미(意味)함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자공(子貢)처럼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처럼 벼슬길에 나아가 성공한 사람도 있고, 안회(顔回)처럼 가난하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는 안회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그 역량에 따라 평하고 그에 맞는 충고를 하곤 했지만, 안회에게만은 늘 칭찬을 잊지 않았다.

공자의 기대에 맞추어, 안회도 워낙 학문을 좋아하여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 한다. 자공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聞一知十)'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안회이다. 그러나 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했으며 평생 찌게미조차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수행과 학문 연구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런 안회를 보고 공자가 칭찬하였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거처하며 산다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사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므로 공자는 두 번이나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찬미한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


관련 한자어

유의어(동의어)

단사표음(簞食瓢飮) |

一簞一瓢 (일단일표)

一簞一瓢(일단일표)

一 한 일 | 簞 대광주리 단 | 一 한 일 | 瓢 박 표 |

一簞食(일단사)는 ‘한 그릇의 밥’, 一瓢飮(일표음)은 ‘한 쪽박의 물’을 뜻하며, 극(極)히 소박(素朴)하고 적은 음식(飮食)으로 유지(維持)되는 청빈(淸貧)한 생활(生活)을 비유한 말.


논어 옹야(雍也)편에는 '한 그릇의 밥, 한 쪽박의 물(一簞食一瓢飮)로 누추한 마을에서 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지지 못할 것이지만, 안회(顔回)는 그렇게 살면서도 즐거움이 변하지 않는다'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대, 안회는 노(魯)나라 사람으로서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으며, 안연(顔淵)이라고도 한다. 그는 총명한 머리에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진지(眞摯)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공자는 그에게 비천한 집안을 떠나 벼슬에 나가라고 권유하였지만, 그는 가난한 생활에 만족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 의 삶을 살았다. 안회는 29세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고, 32세에 삶을 마쳤다. 60세가 넘은 그의 스승 공자는 '하늘이 나를 없애는 것이다. 하늘이 나를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며 제자의 요절에 통곡하였다.

一簞一瓢는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고도 한다. 이는 극히 소박하고 적은 음식으로 유지되는 청빈(淸貧)한 생활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논어 제6 옹야(雍也)

一年之計 (일년지계)

一年之計(일년지계)

한 해 동안의 계획.

日暖風和 (일난풍화, rìnuǎnfēnghé)

日暖風和(일난풍화)

日暖风和(rì nuǎn fēng hé)

日 날 일│暖 따뜻할 난,부드러울 훤│風 바람 풍│和 화할 화


일기(日氣)가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溫和)함


생활, 절기

臨機應變 (임기응변)

臨機應變(임기응변)

일을 당하여 그때그때 맞도록 처리함

一騎當千 (일기당천, yìqídāngqiān)

一騎當千(일기당천)

一骑当千(yì qí dāng qiān)

一 한 일 | 騎 말 탈 기 | 當 마땅 당 | 千 일천 천 |


一骑胜千人。以一当百。


한 기병(騎兵)이 천 명의 적을 당해 냄이란 뜻으로, ①남달리 뛰어난 기술(技術)이나 경험(經驗)이 있음의 비유(比喩) ②혼자 일시에 능히 많은 일을 잘 처리(處理)해 나간다는 뜻.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一人當千(일인당천) 한 사람이 천 명의 적을 당해 낸다는 뜻으로, 용사를 형용(形容)해 이르는 말. [유래]북제서(北齊書)

一氣呵成 (일기가성)

一氣呵成(일기가성)

①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의미로,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뤄야 한다는 뜻. ② 문장의 처음과 끝이 일관되고 빈틈없이 순리에 따라 짜였다는 의미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인이자 문예비평가인 호응린이 두보의 작품 ‘등고(登高)’를 자신의 시 평론집 ‘시수(詩藪)’에서 평한 데서 나옴.

청와대는 국운 융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아 국민이 단합해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의 문턱을 막힘 없이 넘어가자는 염원에서 2011년 신묘년(辛卯年)의 사자성어로 선정


2011년 | 새해 사자성어 | 청와대

一念通天 (일념통천)

一念通天(일념통천)

一 한 일 | 念 생각 념(염) | 通 통할 통 | 天 하늘 천 |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중(熱中)하면 하늘도 감동(感動)하여 일을 성취(成就)하게 함

Faith will move a mountain.

一饋十起 (일궤십기)

一饋十起(일궤십기)

一 한 일 | 饋 먹일 궤 | 十 열 십 | 起 일어날 기 |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는 우(禹) 임금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우 임금은 자신에게 "도(道)로써 가르칠 사람은 와서 북을 울리고, 의(義)로써 깨우치려는 자는 와서 종을 치며, 어떤 일을 고하고자 하는 자는 방울을 흔들고, 근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와서 경쇠를 치며, 소송할 일이 있는 자는 와서 작은 북을 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에 우 임금은 "어진 사람들을 맞이 하기 위해 한 번 식사하는 동안에 열 번이나 일어났으며(一饋而十起), 한 번 머리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를 움켜쥐고 나와 천하의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이럴 때 선(善)을 다하거나 충(忠)을 나타내지 못한 자는 그 자질이 부족한 자이다."라고 하였다.

一饋十起란 일이 몹시 바빠서, 한 끼 밥을 먹는데도 도중에 여러차례 일어 나야 했음을 뜻한다. 이는 곧 통치자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에 각별한 열성(熱誠)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異口同聲 (이구동성)

異口同聲(이구동성)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이 같음.

因果應報 (인과응보)

因果應報(인과응보)

因 인할 인 | 果 실과 과, 열매 과, 강신제 관 | 應 응할 응 | 報 갚을 보, 알릴 보 |

사람이 짓는 선악의 인업에 응해 과보가 있음.

원인(原因)과 결과(結果)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①과거(過去) 또는 전생(前生)의 선악(善惡)의 인연(因緣)에 따라서 뒷날 길흉(吉凶) 화복(禍福)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②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結果)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結果)가 따름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관련 한자어

유의어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出爾反爾(출이반이) | 種豆得豆(종두득두) | 因果報應(인과보응) | 報果(보과) | 果報(과보)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 뿌린 대로 거둔다.

一曲之士 (일곡지사)

一曲之士(일곡지사)

一 한 일 | 曲 굽을 곡 | 之 갈 지 | 士 선비 사 |

물건의 한 면만을 아는 선비

[출전]
莊子(장자) 추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曲之人(일곡지인) |

人琴俱亡 (인금구망)

人琴俱亡(인금구망)

人琴俱亡[rénqínjùwáng]

人 사람 인 | 琴 거문고 금 | 俱 함께 구, 갖출 구 | 亡 죽을 망, 없을 무 |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The man and his lute are both dead (a lament for the death of a friend).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晉)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 : 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 : 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다.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世上)을 떠나자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그러나 자요는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으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이를 내던지며 한참동안이나 애통해 했다.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人琴俱亡은 인금병절(人琴幷絶)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 | 晋書(진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睹物思人(도물사인, dǔwùsīrén) | 人琴幷絶(인금병절) | 人琴之歎(인금지탄) |

반의어·상대어

无动于衷(무동우충, wúdòngyúzhōng) |

一擧兩得 (일거양득)

一擧兩得(일거양득)

一 한 일 | 擧 들 거 | 兩 두 양(량), 냥 양(냥) | 得 얻을 득

一举两得 [yìjǔliǎngdé]

①한 번 들어 둘을 얻음 ②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利益)을 보는 것

to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 to attain two objectives by a single move


秦(진)나라 혜문왕때의 일이다. 連衡策(연횡책)으로 유명한 재상 張儀(장의)와 중신 司馬錯(사마조)가 蜀(촉) 원정문제를 놓고 어전에서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장의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魏(위) 楚(초)와 우호관계를 맺고 周(주)를 공격합니다. 그러면 주나라는 당황해서 강화를 청해 올 것입니다. 그때 天子(천자)를 옹립하고 천하에 우뚝 서십시오. 촉은 멀리 떨어진 변방일 뿐만 아니라 척박한 땅이어서 그런 곳을 빼앗기 보다는 中原(중원)을 공략하는 것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조도 지지 않고 진언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려면 먼저 땅을 넓히는데 힘써야 하고, 군사력을 강하게 하려면 백성을 살찌우고, 覇者(패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덕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두루 갖추어지면 패업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원래 촉은 戎狄(융적)의 나라입니다. 공격해서 얻게 되면 진나라는 넓어지고 또 부유해집니다. 그리고 중원의 제후들도 융적을 치는데 반대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진나라는 땅이 좁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때문에 촉을 취하는 것은 땅을 넓히고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야말로 한 가지 일로써 두가지의 이익을 거두는(一擧兩得) 묘책입니다. 반대로 지금 주를 공격하면 천자를 위협했다는 오명만 얻을 뿐 이득은 조금도 없습니다』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을 옳게 여기고 촉을 공략해 영토를 넓혔다.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변장자(卞莊子)가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一擧必有雙虎之名]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一擧果有雙虎之功].


장자가 범을 찔러 죽이고자 한대 관(관리(官吏)의 집)을 지키는 심부름꾼이 이를 그치게 하여 말하되 "두 범이 방금 막 소를 잡아서 먹는데 먹는 것이 맛이 있어 마음이 서로 경쟁심이 있으리니 다투면 곧 반드시 싸우리라. 싸우면 곧 큰 것은 다치고 작은 것은 죽으리니, 다친 것을 좇아서 이를 찔러 죽이면 한 번 들어서 반드시 두 범을 잡은 이름이 있으리라." 장자가 써 그렇게 한다 하고 서서 이를 기다리더니, 조금 있으매 두 범이 과연 싸워서 큰놈은 상하고 작은놈은 죽으니, 장자가 상한 놈을 좇아서 이를 찔러 죽여 한 번에 과연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느니라.

장자(莊子)가 欲刺虎(욕자호)한대 揷子(수자)가 止之曰(지지왈) "兩虎(양호)가 方且食牛(방차식우)하니 食甘心爭(식감심쟁)이라 爭則必鬪(쟁즉필투)니 鬪則大者傷(투즉대자상)하고 小者死(소자사)하리니 從傷而刺之(종상이자지)면 一擧(일거)에 必有雙虎之名(필유쌍호지명)하리라."장자(莊子)가 以爲然(이위연)하여 立須之(입수지)러니 有頃(유경)에 兩虎(양호)가 果鬪(과투)하여 大者(대자)가 傷(상)하고 小者(소자)가 死(사)하니 장자(莊子)가 從傷者而刺之(종상자이자지)하여 一擧(일거)에 果有雙虎之功(과유쌍호지공)하니라.

[출전]
진서(晉書) 속석전(束晳傳),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一箭雙鵰(일전쌍조)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 | 一石二鳥(일석이조) 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 一擧二得(일거이득) | 兩得(양득) | 一擧兩得(일거양득) |

상대어

一擧兩失(일거양실)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꿩 먹고 알 먹는다.
¶ 배 먹고 이 닦기.
¶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

一刻如三秋 (일각여삼추)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一 한 일 | 刻 새길 각 | 如 같을 여, 말 이을 이 | 三 석 삼 | 秋 가을 추, 밀치 추

일각이 삼년과 같다는 뜻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뜻으로 초조하게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출전]

朱子 勸學文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一日千秋(일일천추) |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 | 一日三秋(일일삼추) | 一刻三秋(일각삼추) | 三秋之思(삼추지사) |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

一刻三秋 (일각삼추)

一刻三秋(일각삼추)

一 한 일 | 刻 새길 각 | 三 석 삼 | 秋 가을 추 |

시경(詩經) 왕풍(王風)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채갈(采葛) 이라는 시(詩)가 있다.

그대 칡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석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그대 대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아홉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그대 약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세 해나 된 듯하네[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고대 중국에서는 일주야(一晝夜)를 일백각(一百刻)으로 나누었는데, 절기(節氣)나 주야(晝夜)에 따라 약간 다르다. 예컨대, 동지에는 낮이 45각, 밤이 55각이었고, 하지에는 낮 65각, 밤 35각이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낮이 55각반이었고, 밤은 44각반이었다. 청(淸)대에 이르러서는 시종(時鐘)으로 시간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15분을 一刻이라 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一刻 이라는 말로써 매우 짧은 시간을 표현하였다. 一刻三秋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라는 말은 이 시의 一日三秋 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두 같은 의미이다.

一刻三秋란 짧은 시간도 삼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一日千秋(일일천추) |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 | 一日三秋(일일삼추) | 一刻三秋(일각삼추) | 三秋之思(삼추지사) |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

臨渴掘井 (임갈굴정, línkějuéjǐng)

臨渴掘井(임갈굴정)

临渴掘井(lín kě jué jǐng)

臨 임할 임(림) | 渴 목마를 갈, 물 잦을 걸, 물 거슬러 흐를 할 | 掘 팔 굴, 뚫을 궐 | 井 우물 정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라는 뜻으로, 준비(準備)없이 일을 당(當)하여 허둥지둥하고 애씀


춘추시대 노(魯) 나라 소공(昭公)이 국내에서 뜻을 이룰 수 없어 제(齊) 나라로 갔다. 제(齊) 나라 경공(景公)은 그를 보자,

"소공(昭公)은 나이도 어린데 나라를 버리고 이곳으로 온 이유가 무엇이오."

소공(昭公)이 대답하기를,

"저는 나이가 어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친근(親近)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아부하고 가까이 접근해오나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실로 무엇인가를 급히 하려고 할 때 아무도 협조해 주는 이가 없고, 누군가가 옹호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더욱이 내가 하는 말에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합니다. 이는 마치 가을의 쑥포기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뿌리나 줄기가 다 말라버리지만, 그래도 잎이 푸르러 있지만 이는 순간일 뿐 결국은 가을 서리 찬바람에 모두 뽑혀 말라죽고 말 것입니다."

경공(景公)은 그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여겨 안자(晏子)에게 일러 소공(昭公)을 돌아가게 해서 인군이 되게 한다면 어진 군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대저 물에 빠진 사람은 본래 주의하지 않아서 실족하게 된 것이요, 길을 잃은 사람은 결국 처음에 방향감각을 잃은 탓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에 갑작스런 병난을 당해서야 급히 병기(兵器)를 만든다든가,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막혀서 죽을 지경에 이르러 우물을 파서 물을 가져오게 한들 제아무리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한다고 하여도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유래

동언해(東言解)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관련 한자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 (유의어)

臨耕掘井(임경굴정, 临耕掘井, lín gēng zòng zhóu)
臨 임할 임(림) | 耕 밭 갈 경 | 掘 팔 굴, 뚫을 궐 | 井 우물 정

渴而穿井(갈이천정)

一丘之貉 (일구지학)

一丘之貉(일구지학)

一 한 일 | 丘 언덕 구 | 之 어조사 지, -의 지 | 狢 오소리 학 |

'한 언덕의 오소리'라는 뜻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부류 또는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양운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의 이야기.

양운은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외손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젊은 나이에 조정에서 요직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 또한 용납하지 않았으며,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누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남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양운은 특히 선제가 가장 총애하는 태복(太僕) 벼슬의 대장락(戴長樂)과 사이가 나빴다. 한번은 대장락이 누군가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양운을 의심하였다. 그래서 대장락도 양운을 비방하는 글을 선제에게 올렸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양운은 흉노에서 항복한 자들로부터 선우(單于)가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못난 군주는 대신(大臣)이 나라를 다스릴 방책을 잘 계획하여도 채용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기 몸을 둘 곳을 없게 만든다. 이는 마치 진(秦)나라 때 소인을 기용하고 충신을 주살하여 멸망에 이른 것과 같으니, 대신을 신임하였더라면 진나라가 지금까지 존속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군주는 한 언덕에 모여 사는 오소리와 다를 바 없다[古與今如一丘之狢]'라고 하였습니다. 양운은 망령되게도 망국의 예를 들어 현재를 비방하였으니 신하된 도리가 아닙니다."

이를 본 선제를 화를 내며 양운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양운과 대장락 모두 면직시켰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결국 허리를 절단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여기서 유래하여 일구지학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서로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부류,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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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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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國三公 (일국삼공)

一國三公(일국삼공)

一 한 일 | 國 나라 국 | 三 석 삼 | 公 공평할 공 |

한 나라에 삼공이 있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하여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춘추좌전 희공(僖公) 5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군주인 헌공(獻公)은 여희(驪姬)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희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헌공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태자인 신생(申生)을 모함하였다. 이에 신생은 자살하였고, 헌공의 또 다른 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각각 포(蒲) 땅과 굴(屈) 땅으로 피신하였다.

헌공은 대부(大夫)인 사위(士蔿)를 시켜 중이와 이오를 위하여 성을 쌓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사위는 땔나무를 써서 대충대충 성을 쌓았다. 그의 축성작업에 불만을 품은 이오는 헌공에게 호소하였다. 크게 노한 헌공의 문책에 사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에 상(喪)을 당하지 않고서 슬퍼하면 반드시 근심거리가 닥쳐오고, 전쟁이 없는데도 성을 쌓으면 그 성은 적군에게 이용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견고하게 쌓아 훗날 적에게 진지로 이용당한다면, 이는 곧 불충(不忠)의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실하게 쌓는다면 이는 임금에 대한 불경(不敬)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불충불경의 죄를 범하였으니 어떻게 해야합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덕을 생각하면 나라가 안녕하고, 적장자는 성과 같네'라고 하였습니다. 임금께서 덕을 닦고 적장자를 굳건히 하시면 어떤 성이 이보다 튼튼하겠습니까?"

그는 집에 돌아와서 여우가죽 옷 갈래갈래 찢어지듯, 한 나라에 세 임금 있으니, 내 누구를 따라야 할꼬[狐 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라는 시를 읊었다. 여기서 삼공은 헌공과 두 공자, 중이와 이오를 가리키며, 명령을 받들어야 할 윗사람이 많은 것을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에 여우털이 난잡한 모양에 비유한 것이다.

一國三公이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入界宜緩 (입계의완)

入界宜緩(입계의완)

入 빠질 입 | 界 한계 계 | 宜 마땅할 의 | 緩 늦출 완 |

경계를 넘어갈 때는 천천히 행동하라.


출전

王積薪(왕적신) 圍棋十訣(위기십결)

첫째 : 不得貪勝(부득탐승) ― 이기기를 탐하지 말라.
둘째 : 入界宜緩(입계의완) ― 적진에 들어갈 때 여유를 가져라.
셋째 : 攻彼顧我(공피고아) ― 공격할 때는 자기 돌을 먼저 돌아보라.
넷째 : 棄子爭先(기자쟁선) ― 희생을 하더라도 선수를 차지하라.
다섯 : 捨小就大(사소취대)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해라.
여섯 : 逢急棄須(봉급기수) ― 위태로워졌을 때는 아끼지 마라.
일곱 : 愼勿輕速(신물경속) ― 신중하며 경솔하지 말아라.
여덟 : 動須相應(동수상응) ― 움직일 때 서로 상응케 하라.
아홉 : 彼强自保(피강자보) ― 상대편이 강하면 자중하라.
열째 : 勢狐取和(세호취화) ― 자기편이 약할 때는 화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