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憙 (주희, 1130~1200)

朱憙(주희, 1130~1200)

朱憙(zhūxǐ)

남송(南宋)의 유학자(儒學者)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성(姓)은 주(朱), 휘(諱)는 희(熹)이며, 자(字)는 원회(元晦) · 중회(仲晦)이다. 그리고, 호(号)는 회암(晦庵) · 회옹(晦翁) · 운곡노인(雲谷老人) · 창주병수(滄洲病叟) · 둔옹(遯翁)이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 · 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 정호 · 정이 등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오경'의 진의를 밝히고 '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주희는 주렴계, 정주로 대표되는 이전 송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고 종래 유교가 불,도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었던 이론적 결여를 보완하는 우주론적, 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한당의 훈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윤리학으로서의 본래성을 되찾는 한편 그것을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하고자 했다.

이후 주자의 철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주도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저서(著書)에 자치통감강목, 사서집주, 근사록 등(等)이 있다.


주요 작품

資治通鑑綱目(자치통감강목)


관련 항목

근사록 | 사서오경 | 사서집주 | 주자어류 |


http://ko.wikipedia.org/wiki/주희

啐啄同機 (줄탁동기)

啐啄同機(줄탁동기)

啐 맛볼 쵀, 빠는 소리 줄, 떠들썩할 잘 | 啄 쫄 탁, 부리 주 | 同 한가지 동 | 機 틀 기 |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서로가 적기에 힘을 합쳐야 모든 일에 부합한다는 뜻.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啐啄同時(줄탁동시) |

啐啄同時 (줄탁동시)

啐啄同時(줄탁동시)

啐 맛볼 쵀, 빠는 소리 줄, 떠들썩할 잘 | 啄 쫄 탁, 부리 주 | 同 한가지 동 | 時 때 시 |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서로가 적기에 힘을 합쳐야 모든 일에 부합한다는 뜻.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啐啄同機(줄탁동기) | 啐啄同時(줄탁동시) |

酒池肉林 (주지육림, jiǔchíròulín)

酒池肉林(주지육림)


酒池肉林(jiǔchíròulín)

酒 술 주 | 池 못 지,강 이름 타,제거할 철 | 肉 고기 육,둘레 유 | 林 수풀 림(임) |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이르는 말.

sumptuous feast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매희(妹喜)와 달기(妲己)라는 희대(稀代)의 두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서, 사치(奢侈)와 주색(酒色)에 탐닉(眈溺)하다가 결국 폭군 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夏)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 (供物)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매희[또는 말희(末喜)]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난 매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못 둘레에는 못 둘레에는 나무들마다 말린 고기[脯肉]를 걸친 숲을 만들고, 고기로 동산을 쌓았다.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 있었고 술 지게미가 쌓여 된 둑은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걸왕과 매희는 그 못에 호화선을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희희낙낙 즐겼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殷)나라 탕왕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래] 史記(사기) | 帝王世紀(제왕세기) | 十八史略


또한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방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탕왕으로부터 28대째로 은(殷)나라 마지막 군주가 된 주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보내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향락을 위하여 높이가 천척(千尺)에 달하고 둘레가 삼리(三里)나 되는 궁전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노역케 하였다. 화려한 궁실(宮室)이 완성되자 각지의 준마(駿馬), 명견(名犬), 미녀(美女) 등을 수집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收奪)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怳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暴君淫主)로 악명을 떨치던 주 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殷本紀(은본기)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 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以酒爲池懸肉爲林]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肉山酒池(육산주지) | 肉山脯林(육산포림)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長夜之飮(장야지음) | 炮烙之刑(포락지형) |


帝王世紀, 제왕세기,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竹杖芒鞋 (죽장망혜)

竹杖芒鞋(죽장망혜)

竹 대 죽 | 杖 지팡이 장 | 芒 까끄라기 망, 황홀할 황 | 鞋 신 혜 |

대지팡이와 짚신이라는 뜻으로, 먼 길을 떠날 때의 간편(簡便)한 차림을 이르는 말

舟中敵國 (주중적국)

舟中敵國(주중적국)

舟 배 주 | 中 가운데 중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國 나라 국 |

배(舟) 속의 적국(敵國)이라는 뜻으로, 군주(君主)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利害) 관계(關係)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곧 자기편(自己便)이라도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음을 이름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문후(文侯)를 섬겨 진(秦)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빼앗았다.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고 서하(西河)를 지켜 진나라와 한(韓)나라를 방어하게 하였다.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날, 무후가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무후는 강의 중류에 이르러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이에 오기는 다음과 같이 아뢰어 무후를 깨우쳤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왼쪽에 황하(黃河)와 제수(濟水)가 흐르고, 오른쪽에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궐(伊闕)이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북쪽으로 양장산(羊腸山)을 면하고 있어 험준함을 자랑하였지만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탕(湯) 임금에게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거처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상산(常山)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가 도도하게 흘러 험준하였지만 역시 정치를 행함에 덕이 없어 결국 무왕(武王)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나라의 보배는 덕에 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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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人環視 (중인환시)

衆人環視(중인환시)

衆 무리 중 | 人 사람 인 | 環 고리 환 | 視 볼 시 |

뭇 사람들이 둘러싸고 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衆目環視(중목환시) |

走爲上 (주위상, zǒuwéishàng)

走爲上(주위상)

走为上(zǒuwéishàng)

走 달릴 주 | 爲 하 위,할 위 | 上 윗 상 |


피해를 입지 아니하려면 달아나는 것이 제일 나은 꾀임을 이르는 말.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6계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흔히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라고 일컬어지는 계략이 바로 이 走爲上計(주위상계)이다. 하지만 흔히들 하는 이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삼십육계 중에서도 패전계, 그것도 가장 마지막에 주위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바로 앞에 열거된 서른다섯가지의 계략을 모두 시도해 보고, 그러고도 승산이 없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목숨을 보존하라는 뜻이지, 처음부터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불리하면 적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의 기회를 노린다 하여 잘못이 아니다. 이는 일반적인 용병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全師避敵.左次無咎,未失常也.]"

도망쳐서 生을 도모하는 이러한 계략은 흔히 비난을 받아오기도 했다. 이는 兵家가 아닌 儒家에 의한 것으로, 유가에서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태도를 훨씬 높이 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도망치면 비난하다가도, 후에 재기에 성공하고 나면 '진정한 용기'라면서 치켜세우기도 한다.

또한 '文은 武를 다스린다' 하여 실제로 계략을 세우고 싸우는 것은 무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총대장은 항상 문관이었다.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김부식은 단지 문관출신 총대장으로 있었던 것 뿐이다. 실제로 싸운 것은 많은 무관 장수들이었지만, 역사에는 단지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고 되어있을 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三十六計走爲上計(삼십육계주위상계) |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 走爲上(주위상) | 走爲上計(주위상계) | 走爲上策(주위상책)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敗戰計, 삼십육계:패전계, 36계

中原逐鹿 (중원축록)

中原逐鹿(중원축록)

中 가운데 중 | 原 근원 원 | 逐 쫓을 축 | 鹿 사슴 록 |

한서(漢書) 괴오강식부(蒯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衆惡必察衆好必察 (중오필찰중호필찰)

衆惡必察 衆好必察(중오필찰 중호필찰)

衆 무리 중 | 惡 미워할 오 | 必 반드시 필 | 察 살필 찰 | 衆 무리 중 | 好 좋을 호 | 必 반드시 필 | 察 살필 찰 |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의 좋아함과 싫어함에 따라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살펴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子曰,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When the multitude hate a man, it is necessary to examine into the case. When the multitude like a man, it is necessary to examine into the case.
- 論語 衛靈公 (논어 위령공, The Analects: Wei Ling Gong)

子曰 衆好之必察焉 衆惡之必察焉
공자가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워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느니라."
- 明心寶鑑 正己篇 (명심보감 정기편)


공자는 "많은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살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살펴야 한다(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라고 가르쳤다.

논어(論語) 제15장 위령공(衛靈公) 편에 실려 있으며,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도 나오는 문구이다.

여러 사람이 좋아하거나 미워한다고 하여 그대로 부화뇌동하지 말고, 직접 그 이유와 내용을 살펴보고 판단하여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논어(論語) 제13장 자로(子路, Zi Lu)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子貢問曰, “鄉人皆好之,何如?”
子曰, “未可也。”
“鄉人皆惡之,何如?”
子曰, “未可也。不如鄉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Zi Gong asked, saying, "What do you say of a man who is lov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replied, "We may not for that accord our approval of him."
"And what do you say of him who is hat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said, "We may not for that conclude that he is bad. It is better than either of these cases that the good in the neighborhood love him, and the bad hate him."

자공(子貢)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말했다. "옳지 못한 일이다"
자공이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그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착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자(朱子)는 이 구절에 대한 주해(註解)에서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무리끼리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구차하게 모두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실상은 틀림없이 좋아할 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논어, 논어:위령공, 명심보감, 명심보감:정기편

論語, 論語:衛靈公, 明心寶鑑, 明心寶鑑:正己篇

周易 (주역)

周易(주역)

유교의 경전(經典) 중 3경(三經)의 하나인 《역경(易經)》.


단순히 《역(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이 역에는 易簡(이간)·변역·불역(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한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허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든 뒤 이를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 하였으며, 마융(馬融)은 괘사는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이다.

태극(太極)이 변하여 음 ·양으로, 음 ·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 괘가 되었다. 건은 하늘·부친·건강을 뜻하며, 태는 못[池]·소녀·기쁨이며, 이는 불[火]·중녀(中女)·아름다움이며, 진은 우레·장남·움직임이며, 손은 바람·장녀, 감은 물·중남(中男)·함정, 간은 산·소남(少男)·그침, 곤은 땅·모친·순(順)을 뜻한다. 그러나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經文)이다.

《주역》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십익》의 성립으로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십익'은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전국 시대부터 한(漢)나라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학자들에 의해 저작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 열 가지라는 뜻으로, 즉 단전(彖傳) 상·하편, 상전(象傳) 상·하편, 계사전(繫辭傳) 상·하편,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관련 한자어

계사(繫辭) 하전(下傳)

安不忘危(안불망위) | 易窮則變(역궁즉변) |

晝語鳥聽夜語鼠聽 (주어조청야어서청)

晝語鳥聽夜語鼠聽(주어조청야어서청)

晝 낮 주 | 語 말씀 어 | 鳥 새 조 | 聽 들을 청 | 夜 밤 야 | 語 말씀 어 | 鼠 쥐 서 | 聽 들을 청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으로, ① 아무도 듣지 않는 데에서라도 말조심 하라는 뜻. ② 비밀히 한 말도 반드시 남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

柱石之臣 (주석지신)

柱石之臣(주석지신)

柱 기둥 주, 버틸 주 | 石 돌 석 | 之 갈 지 | 臣 신하 신 |

한 나라의 주춧돌이 될 만한 신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股肱之臣(고굉지신) 다리와 팔에 비길 만한 신하 | 股掌之臣(고장지신) 다리와 손바닥 같은 신하 | 社稷之臣(사직지신)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 |

衆志成城 (중지성성)

衆志成城(중지성성)

衆 무리 중 | 志 뜻 지, 기치 치 | 成 이룰 성 | 城 재 성 |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합치면 견고한 성과 같음을 비유.


국어(國語) 주어(周語) 하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

춘추시대 말기인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시장에서 유통되던 소액의 돈을 없애고 고액의 돈을 주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의 원성(怨聲)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2년 후, 경왕은 민간에 남은 동전(銅錢)들을 수집하여 엄청나게 큰 종(鐘)을 만들려고 하였다. 단목공(單穆公)과 악사(樂師)인 주구(州鳩)는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도 못할 뿐더러 백성들의 재산에 손해를 끼쳐 고통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만류하였다. 그러나 경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거대한 종을 완성시켰다.

평소에 아첨하는 일이 몸에 밴 악공(樂工)들은 저마다 경왕에게 종소리가 매우 조화롭고 듣기 좋다고 아부하였다. 그러자 경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종을 만드는 것을 반대한 주구를 불러 자랑하였다.

"종소리가 매우 듣기 좋으니, 그대가 지나치게 염려한 것이다."

이에 주구는 대답하였다.

"왕께서 거대한 종을 만드는 일을 백성들이 모두 찬성하여야 그 소리가 조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그들의 재산을 축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왕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이러한 상황을 어찌 조화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찬성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문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항간에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뭉치면 성을 이루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면 쇠도 녹는다[衆心成城, 衆口煉金]'라고 말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경왕은 주구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에 경왕이 죽고 나자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衆心成城(중심성성)이라고도 한다.


출전

국어(國語) 주어(周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중심성성(衆心成城)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뭇사람의 뜻이 일치(一致)하면 성과 같이 굳어짐을 이르는 말 |


중요도·활용도

酒酸不售 (주산불수)

酒酸不售(주산불수)

酒 술 주 | 酸 실 산 | 不 아닐 불 | 售 팔 수 |

술이 시어지면 팔리지 않음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도 않고 손님에게도 매우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술집임을 알리는 깃발까지 높이 세워 두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서 언제나 쉬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양천(楊-)이라는 유식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의 답은 이러했다.

"바로 당신 집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오."

장씨는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양천이라는 노인은 다시 설명하였다.

"사나운 개가 술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고, 특히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왔다가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감히 술을 사러 오겠소? 그러니 술이 시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酒酸不袋란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狗猛酒酸(구맹주산) | 狗惡酒酸(구악주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竹馬之友 (죽마지우, zhúmǎzhīyǒu)

竹馬之友(죽마지우)

竹马之友(zhúmǎ zhī yǒu)

竹 대 죽 | 馬 말 마 | 之 의 지 | 友 벗 우 |


죽마를 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소꿉동무를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품조편(品藻篇)〉과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은호는 성품이 온후(溫厚)하였으며, 학문 또한 박학(博學)하였다. 젊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을 즐겨 읽었으며, 벼슬이 싫어 조상의 무덤을 십여 년째 지켰다. 그러나 당시 간문제(簡文帝)는 연거푸 공신을 잃는 변을 당해 현신(賢臣)을 찾던 중, 은일(隱逸)하던 은호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은호는 청을 이기지 못하고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어 조정에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촉(蜀)을 평정하고 돌아와 세력이 커지고 있던 환온(桓溫)을 견제하려던 간문제의 계책이었다. 결국 은호와 환온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왕희지(王羲之)가 나서서 둘 사이에 화해를 주선하였으나 은호가 거절하였다. 이 무렵,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자 호족(胡族) 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중원을 회복하려 하였으며, 은호가 오주군사(五州軍事)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출병에 앞서 은호가 낙마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하였다. 이것을 두고 환온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서인(庶人)에 강등시키고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 다음 환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은호는 어려서 나와 함께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다. 내가 죽마를 버리면 언제나 은호가 가지고 갔다. 그러니 그가 내 밑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은호는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다. 죽마는 대나무로 만든 말로,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죽마지우는 어릴 때의 친구, 즉 소꿉동무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기죽지교(騎竹之交), 죽마지호(竹馬之好)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竹馬故友(죽마고우) | 騎竹之交(기죽지교) | 竹馬之好(죽마지호)

참조어

肝膽相照(간담상조) |
芝蘭之交(지란지교) |


世說新語, 세설신어, 晉書, 진서, 벗[friend], 우정, 친구 |

走馬加鞭 (주마가편)

走馬加鞭(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라는 속담(俗談)의 한역으로, ①형편(形便)이나 힘이 한창 좋을 때에 더욱 힘을 더한다는 말 ②힘껏 하는 데도 자꾸 더 하라고 격려(激勵)함

to spur on a flying horse—to go at top speed; to go as soon as possible

[출전]
순오지(旬五志)


관련 한자어·중국어

동의어·유의어

快马加鞭(kuàimǎjiābiān, 쾌마가편)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

走馬看山 (주마간산)

走馬看山(주마간산)

走 달릴 주 | 馬 말 마 | 看 볼 간 | 山 뫼 산 |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바빠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대충대충 보며 지나침.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일이 몹시 바빠서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대강대강 훑어보고 지나침을 비유한 한자성어이다. 힘차게 달리는 말 위에서는 사물을 아무리 잘 살펴보려고 해도 말이 뛰는 속도가 빨라 순간순간 스치는 모습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말에서 내려서 천천히 보면 될 텐데, 일이 몹시 바빠 그럴 수도 없으니, 달리는 말 위에서나마 대강대강이라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마간산의 본래 뜻은 이와 조금 다르다. 주마간산은 원래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 맹교(孟郊)가 지은 '등과후(登科後)'에서 유래하였다. 맹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시를 지으면서 청렴하게 살던 중, 어머니의 뜻에 못이겨 41살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응시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 달리 낙방하고 수모와 냉대만 받다가, 5년 뒤인 46살에야 겨우 급제하였다.

'등과후'는 맹교가 급제하고 난 뒤에 한 술좌석에서 읊은 칠언절구이다.

昔日齷齪不足誇
今朝放蕩思無涯
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지난 날 궁색할 때는 자랑할 것 없더니
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거칠 것이 없어라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

이 시는 보잘것없을 때와 등과하고 났을 때의 세상 인심이 다름을 풍자한 시이다. 주마간산은 이 시의 '달리는 말 위에서 꽃을 본다'는 주마간화(走馬看花)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주마간화는 대충 본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만에 장안의 좋은 것을 모두 맛보았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세상 인심의 각박함을 비웃는 시인의 호탕함이 잘 나타나 있는 표현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이 바빠 사물을 대충 보고 지나친다는 뜻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관용어로 쓰이면서 뜻이 덧붙거나 변한 것으로 보인다. 주마간산의 '산' 역시 대강대강 둘러보다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는 과정에서 꽃이 산으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 한시

登科後(등과후) 孟郊(맹교)

竹馬故友 (죽마고우)

竹馬故友(죽마고우)

竹 대 죽 | 馬 말 마 | 故 연고 고 | 友 벗 우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親舊)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


진(秦)나라 12대 황제(皇帝)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平定)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은사를 건무장군 양주지사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親舊)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왕희지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 중 하나인 후조의 왕석계룡이 죽고 호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秦)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親舊)' 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蔥竹之交(총죽지교) | 竹馬之友(죽마지우) | 竹馬舊友(죽마구우) | 竹馬交友(죽마교우) |

竹林七賢 (죽림칠현)

竹林七賢(죽림칠현)

竹 대 죽 | 林 수풀 림(임) | 七 일곱 칠 | 賢 어질 현 |

진나라 초기에 노자·장자의 허무의 사상을 숭상하여 대숲에 모여 청담을 일삼았던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 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 이다. 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들은 위(魏)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 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 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 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中流砥柱 (중류지주, zhōngliúDǐzhù)

中流砥柱(중류지주)

中流砥柱(zhōngliúDǐzhù)

中 가운데 중 | 流 흐를 류 | 砥 숫돌 지 | 柱 기둥 주 |


'황허강[黃河] 중류의 지주산'이라는 뜻으로,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서 유래되었다.


지주중류(砥柱中流)라고도 한다. 지주(砥柱)는 황허강 중류에 있는 산 이름이다. 《수경주(水經注)》에 따르면,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산언덕이 물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산의 좌우를 파냈다. 이렇게 해서 강물은 산의 양쪽으로 갈려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물 속에 기둥처럼 솟아 있었으므로 지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수하에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라는 3명의 용사가 있었다. 이들은 경공의 충복이었으나 조정의 기강에 해를 끼칠 정도로 오만무례하게 행동하였다. 그래서 재상인 안영은 이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2개의 복숭아를 놓고 3명 가운데 공을 더 많이 세운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 하였다.

이때 고야자는 예전에 경공을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괴물 같은 자라가 나타나 수레를 끄는 말을 물고 지주산이 있는 중류로 도망친(以入砥柱之中流) 일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쫓아가 괴물을 죽이고 말을 되찾아 왔노라고 공을 내세웠다. 이 고사는 《안자춘추》에 실려 있으며,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2개의 복숭아로 3명의 용사를 죽이다)라는 고사성어의 전거(典據)가 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지주는 황허강의 격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지주산처럼 난세나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잃지 않는 의연한 인물 또는 그러한 행동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라고 하는데, 이 고사성어에서 따온 명칭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砥柱中流(지주중류) |


참조어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



晏子春秋, 안자춘추 |

竹頭木屑 (죽두목설)

竹頭木屑(죽두목설)

竹片木屑(zhúpiàn mùxiè)

竹 대 죽 | 頭 머리 두 | 木 나무 목 | 屑 가루 설, 달갑게 여길 설 |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라는 뜻으로, 쓸모 없다고 생각한 것도 소홀(疏忽)히 하지 않으면 후(後)에 긴히 쓰인다는 말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파양(-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명제(明帝) 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등을 지냈다. 군사 방면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모든 일에서 항상 몸소 힘써 행하여 모범을 보였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장에 직접 가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때 도간은 공사에 쓰다 남은 나무 부스러기와 대나무 조각을 모두 거두어 간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木屑及竹頭悉令擧掌之].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들은 왜 모아 두라고 하는지 의아해 하였다.

해가 바뀌어 새해를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는데 눈이 쌓였다가 녹아서 청사 앞의 길이 진창이 되었다. 도간은 보관해 두었던 톱밥과 나무 부스러기 등으로 진창이 된 길을 덮게 하였다.

또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하여 병선(兵船)을 급히 만들었는데, 널빤지는 많았지만 대나무못이 부족하였다. 도간이 이 사실을 알고 보관해 두었던 대나무 조각들을 환온에게 보내 대나무못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도간이 일을 처리하는 데 치밀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고 한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도간전과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정사(政事)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죽두목설은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처럼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나중에 긴히 활용하는 일 또는 하찮은 것이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 | 세설신어(世說新語) 정사(政事)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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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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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진징사도잠(晋徵士陶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酒囊飯袋 (주낭반대)

酒囊飯袋(주낭반대)

酒 술 주 | 囊 주머니 낭 | 飯 밥 반 | 袋 자루 대 |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은 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 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라고 하며 얕보았다.

酒囊飯袋란 먹고 마실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衆口難防 (중구난방)

衆口難防(중구난방)

衆 무리 중 | 口 입 구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防 막을 방 |

뭇사람의 말을 이루 다 막기가 어렵다는 말로 많은 사람이 마구 떠들어대는 소리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周(주)나라때 이야기다. 勵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적발해서 죽였다. 그래서 밀고제도가 자리잡고 거미줄같이 쳐진 정보망때문에 백성들은 공포정치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

여왕은 득의만면해서 그렇게 말했다. 중신 召公(소공)은 기가 막혔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이 막히면 언젠가 둑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인명이 상하게 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소공의 간곡한 충언을 여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공이 우려했던 대로 백성들은 언제까지나 가만있지는 않았다. 백성들은 마침내 들고 일어났다. 여왕이 달아난 곳에서 죽을때까지 주나라에서는 14년간 共和政(공화정)이 실시되었다. 신하들이 상의해서 정치를 했기에 공화라 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는 춘추시대 때의 것이 있다. 성을 쌓는 일을 독려하기 위해 나와 있던 춘추시대 송나라의 華元(화원)이란 벼슬아치가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일꾼들이 일제히 그를 비웃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여왕의 故事(고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입을 막기 어렵다[衆口難防]』고 하고는 작업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酒果脯醯 (주과포혜)

酒果脯醯(주과포혜)

酒 술 주 | 果 실과 과, 열매 과, 강신제 관 | 脯 포 포, 회식할 보 | 醯 식혜 혜 |

술ㆍ과실(果實)ㆍ포(脯)ㆍ식혜(食醯) 따위로 간략하게 차린 제물(祭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酒果(주과) | 酒果脯(주과포) |

晝耕夜讀 (주경야독)

晝耕夜讀(주경야독)

晝 낮 주 | 耕 밭 갈 경 |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讀 읽을 독, 구절 두 |

낮에는 농사(農事) 짓고 밤에는 공부(工夫)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耕讀(경독) | 晝耕夜讀手不釋卷(주경야독수불석권) | 晝耕夜誦(주경야송) | 晴耕雨讀(청경우독) | 凿壁偷光(záobìtōuguāng, 착벽투광) |

衆寡不適 (중과부적)

衆寡不適(중과부적)

衆 무리 중 | 寡 적을 과 | 不 아닐 부, 아닐 불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①적은 수효(數爻)로 많은 수효(數爻)를 대적(對敵)하지 못한다는 뜻②적은 사람으로는 많은 사람을 이기지 못함.


전국시대, 여러 나라를 순방(巡訪)하며 왕도(王道)를 역설하던 맹자(孟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말했다.

"전하께서 방탕한 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천하의 패권을 잡겠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터무니없고 심하다는 말입니까."

"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면 비록 물고기는 얻지 못하더라도 뒤따르는 재앙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정책은 실패하면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다는 겁니까."

"만약 추(鄒)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전하께서는 어느 쪽이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국인 초나라가 이기겠지요."

"그렇다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이길 수 없고[小固不可以敵大], 적은 인원수로는 많은 인원수를 당해내지 못하며[寡固不可以敵衆],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弱固不可以敵强]. 지금천하의 1000리 사방(四方)에 강국이 아홉개가 있는데 제나라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나로 여덟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對敵)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선왕의 물음에 맹자는 지론인 왕도론을 펼쳤다.

"전하께서는 그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정치를 쇄신하고 인정(仁政)을 베푸시면 천하는 저절로 전하의 것이 됩니다. 왕도를 따르는 자만이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전]
孟子(맹자):양혜왕편(梁惠王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寡不敵衆(과부적중) |

主客一體 (주객일체)

主客一體(주객일체)

主 임금 주/주인 주 | 客 손 객 | 一 한 일 | 體 몸 체 |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됨.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됨. 자아와 자연이 하나로 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物心一如(물심일여) | 胡蝶之夢(호접지몽) | 胡蝶夢(호접몽) | 蝶夢(접몽) | 莊周之夢(장주지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