趁火打劫 (진화타겁, chènhuǒdǎjié)

趁火打劫(진화타겁)


趁火打劫 (chènhuǒdǎjié)

趁 좇을 진 | 火 불 화,화반 화 | 打 다스 타 | 劫 빼앗을 겁,겁 겁 |


三十六計 勝戰計 第五計. 불난 틈을 타서 도적질을 하다. 다른 사람이 위험하거나 위급한 틈을 타서 남의 권익을 침범하다.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다. 쉽게 말하자면 '불난 집에 도둑 든다'는 얘기다. 적의 재난과 내분, 외환 등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쳐들어가서 승리를 주우라는 이야기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이 당한 재난이 클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형세에 편승하여 승리를 거둔다. 그것이 강함(剛)으로 부드러움(柔)을 끊는다는 것이다.[敵之害大,就勢取利,剛決柔也.]"

예를 살펴보자.

초한지를 보면 촉으로 쫓겨간 유방이 한신을 앞세우고 진창으로 밀고 나와 순식간에 관중을 점령해 버린다. 물론 이는 三秦王(삼진왕)들과 항우의 방심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항우가 제나라의 반란을 제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제나가의 반란이 없었다면 항우가 단번에 유방을 제압해 버렸을 것이다.

항우는 秦을 무너뜨린 후 논공행상을 통해 용감히 싸운 장수들을 왕으로 임명했는데, 그 이전에 정치적으로 병사들을 모으고 외교적으로 힘을 기울였던 원래의 왕들은 모두 폐하여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제나라의 전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그쪽에 항우가 가 있던 사이에, 유방이 슬그머니 관중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 이후에 항우가 유방을 토벌하려 하자 유방은 항우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은 고향이 그리워 나왔을 뿐이지, 서초패왕과 다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제나라 쪽이 위험하니 그 쪽에나 신경을 쓰라'는 내용이었다. 항우는 그 말을 믿고 제나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에 유방은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갔던 것이다.

또한 유방이 항우를 최종적으로 이기는 데에는 한신의 힘이 컸다. 한신은 유방의 휘하군이 아니라 별동대로서 활약했다. 항우가 유방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한신이 항우가 없는 곳에서 세력을 키워 마침내는 항우와 유방보다도 큰 세력을 이루게 된다.

역사에서 가장 흔히 살펴볼 수 있는 예는 '적의 군주나 장수가 죽어서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에 쳐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적이 喪을 당했을 때 공격하는 것은 仁義에 어긋납니다' 라며 말리는 신하들의 모습이다. 그만큼 성공한 예도 많고, 실패한 예도 많다.

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일화를 하나 살펴보자.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서주에서 살해당하자, 조조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주를 짓밟는다. 그 틈을 타서 승냥이 여포가 연주를 함락시키고 복양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서전에서 여포에게 패하고, 거기에 복양에서 여포의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다. 겨우 살아난 조조는 복수를 꾀한다.

"하찮은 놈의 계략에 빠졌구나. 내 반드시 복수해 주리라."

곽가가 말한다. "어서 계책을 펴소서."

"지금은 놈들의 계책을 역이용해야겠다. 내가 화상을 입고 火毒(화독)이 퍼져 오경 때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퍼뜨려라. 여포는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는 마릉산 속에 숨어 있다가 그들을 치면 여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군사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發喪(발상)준비를 하도록 하며 조조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식을 들은 여포는 즉시 공격해 들어왔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조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겨우 복양으로 돌아갔다.

이는 진화타겁을 역으로 이용한 예이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喪을 기화로 공격하거나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계략이 부지기수였다.

三國志演義에서 喪을 이용한 계략이라 하면, 다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

오장원에서 대치하고 있던 魏와 蜀. 제갈량이 계속 싸움을 걸어도 절대로 싸우지 않던 사마의는 어느 날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제갈량이 죽었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촉군이 물러가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는 제갈량이 죽었다고 확신하고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에 나선다. 하지만 후미의 사륜거에 제갈량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도로 달아난다. 후에 제갈량이 생전에 만들어 놓은 나무인형이었음을 알고는 제갈량의 재주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

指呼之間 (지호지간)

指呼之間(지호지간)

指 가리킬 지 | 呼 부를 호 | 之 갈 지 | 間 사이 간 |

부르면 곧 대답할만한 아주 가까운 거리.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指呼間(지호간) | 一衣帶水(일의대수) |

知行一致 (지행일치)

知行一致(지행일치)

知 알 지 | 行 다닐 행, 항렬 항 | 一 한 일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①지식(知識)과 행동(行動)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 ②지식(知識)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함

塵合泰山 (진합태산)

塵合泰山(진합태산)

塵 티끌 진 | 合 합할 합, 쪽문 합, 홉 홉 | 泰 클 태 | 山 뫼 산 |

티끌 모아 태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모이면 나중에 큰 덩어리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very little helps. A Little Makes a Lotplay. Many a mickle makes a muckle.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塵合泰山水滴成海(진합태산수적성해)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된다 | 積塵成山(적진성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티끌 모아 태산.
¶ 모래알도 모으면 산이 된다.
¶ 실도랑 모여 대동강이 된다. Little drops of water make the mighty ocean.
¶ 먼지도 쌓이면 큰 산이 된다.

¶ Drop by drop fills the tub. 한 방울 한방울이 통을 채운다. 티끌모아 태산 (서양속담, 돈속담)

知彼知己 (지피지기)

知彼知己(지피지기)

知 알 지 | 彼 저 피 | 知 알 지 | 己 몸 기 |

상대편의 사정을 잘 앎과 동시에 나의 사정을 앎.

상대편의 사정을 잘 앎과 동시에 나의 사정을 앎. 적의 형편(形便)과 나의 형편(形便)을 자세(仔細)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意味)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危殆)롭지 아니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의 실정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출전]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


관련 한자어

참조어

知彼知己百戰不殆(지피지기백전불태) 상대(相對)를 알고 자신(自身)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危殆)롭지 않음 |

進退維谷 (진퇴유곡)

進退維谷(진퇴유곡)

进退维谷(jìntuìwéigǔ)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退 물러날 퇴 | 維 벼리 유 | 谷 골 곡, 곡식 곡, 나라 이름 욕, 벼슬 이름 록(녹) |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어찌할 수 없음.

to face with two equally undesirable alternatives; on the horns of a dilemma

[출전]
시경(詩經)

《诗经·大雅·桑柔》:"人亦有言,进退维谷。"(维:略相当于"是";谷:比喻困境)形容进退两难。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骑虎难下(qíhǔnánxià, 기호난하) | 進退兩難(진퇴양난, 进退两难, jìntuìliǎngnán) | 進退無路(진퇴무로) | 四面楚歌(사면초가) | 狼狽不堪(낭패불감) |

반대어·상대어

应付自如(yìngfùzìrú, 응부자여) |

疾風知勁草 (질풍지경초)

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간난을 겪어야만 그 의지의 강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

출전:
貞觀政要 (정관정요)


疾風勁草(질풍경초)

進退兩難 (진퇴양난)

進退兩難(진퇴양난)

进退两难(jìntuìliǎngnán)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退 물러날 퇴 | 兩 두 양(량), 냥 양(냥)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고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進退維谷(진퇴유곡, 进退维谷, jìntuìwéigǔ) | 進退無路(진퇴무로) | 四面楚歌(사면초가) | 狼狽不堪(낭패불감) | 骑虎难下(qíhǔnánxià, 기호난하) |

반의어·상대어

应付自如(yìngfùzìrú, 응부자여) |

嫉逐排斥 (질축배척)

嫉逐排斥(질축배척)

嫉 미워할 질 | 逐 쫓을 축, 돼지 돈, 급급한 모양 적 | 排 밀칠 배, 풀무 배 | 斥 물리칠 척, 방자할 탁, 성씨 자 |

시기하고 미워하며 물리침

咫尺之間 (지척지간)

咫尺之間(지척지간)

咫 여덟치 지 | 尺 자 척 | 之 갈 지 | 間 사이 간 |

매우 가까운 거리.

咫尺之地 (지척지지)

咫尺之地(지척지지)

咫 여덟치 지 | 尺 자 척 | 之 갈 지 | 地 땅 지 |

매우 가까운 곳.

知足不辱知止不殆 (지족불욕지지불태)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으며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노자에 나오는 말.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知 알 지 | 之 갈 지 | 爲 하 위,할 위 | 知 알 지 | 之 갈 지 | 不 아닐 부,아닐 불 | 知 알 지 | 爲 하 위,할 위 | 不 아닐 부,아닐 불 | 知 알 지 |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현명한 것이다.

When you know a thing, to hold that you know it; and when you do not know a thing, to allow that you do not know it - this is knowledge.


출전

논어(論語) 위정(爲政)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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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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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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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者不言言者不知 (지자불언언자부지)

知者不言言者不知(지자불언언자부지)

知 알 지 | 者 놈 자 | 不 아닐 불, 아닐 부 | 言 말씀 언 | 화기애애할 은 | 言 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 | 者 놈 자 | 不 아닐 부, 아닐 불 | 知 알 지 |

진정(眞正) 아는 사람은 떠들어 대지 않고, 떠들어 대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임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말로 인(因)한 오류(誤謬)를 경계(警戒)하는 말

[출전]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知者不言(지자불언) | 知者不言言者不知(지자불언언자부지) |

知者不言 (지자불언)

知者不言(지자불언)

知者不言(zhīzhěbùyán)

知 알 지 | 者 놈 자 | 不 아닐 불, 아닐 부 | 言 말씀 언 |

사리(事理)에 밝은 사람은 지식(知識)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음

[출전]
노자(老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http://idiomnstory.blogspot.com/1996/09/blog-post_4316.html | 知者不言言者不知(지자불언언자부지) |

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盡 다할 진 | 人 사람 인 | 事 일 사 | 待 기다릴 대 | 天 하늘 천 | 命 목숨 명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서 천명을 기다림.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하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비슷한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적벽에서 위(魏)나라 조조(曹操:155∼220)가 오(吳)·촉(蜀) 연합군과 전투를 벌인 적벽대전(赤壁大戰) 중에 촉나라의 관우(關羽:?∼219)는 제갈 량(諸葛亮:181∼234)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화용도(華容道)에서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제갈 량은 관우를 참수하려 하였으나 유비(劉備:161∼223)의 간청에 따라 관우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라고 하였다.

[출전]
독사관견(讀史管見), 삼국지(三國志)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修人事待天命(수인사대천명) |

知音 (지음)

知音(지음)

知 알 지 | 音 소리 음 |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自己)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親舊)

an intimate friend; one's best friend; an acquaintance.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와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인데,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는 타는 소리의 뜻을 잘 알았다.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을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하였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백아의 속마음을 꼭 알아주는 것이 항상 이런정도였다.

또 '여씨춘추'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평생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이 세상에 다시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 줄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는 지기지우를 '지음(知音)이라 부르게 되었다


관련 한시

夏日南亭懷辛大(하일남정회신대) 孟浩然(맹호연)

知魚之樂 (지어지락)

知魚之樂(지어지락)

知 알 지 | 魚 물고기 어 | 之 갈 지 | 樂 즐길 락, 즐길 낙, 노래 악, 좋아할 요 |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

[출전]
장자(莊子)

只要功夫深铁杵磨成针 (지요공부심철저마성침)

只要功夫深 铁杵磨成针(지요공부심 철저마성침)

只要功夫深 铁杵磨成针[zhǐyàogōngfushēn, tiěchǔmóchéngzhēn]

只 다만 지 | 要 바랄 요 | 功 공로 공 | 夫 무릇 부 | 深 깊을 심 | 铁 쇠 철 | 杵 절굿공이 저 | 磨 갈 마 | 成 이룰 성 | 针 바늘 침 |

공을 들여 열심히 노력하면 절굿공이도 갈아서 바늘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이 의지가 있고 시간을 들이기만 하면 반드시 일을 성공할 수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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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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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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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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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銳者其退速 (진예자기퇴속)

進銳者其退速(진예자기퇴속)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銳 날카로울 예, 창 태 | 者 놈 자 | 其 그 기 | 退 물러날 퇴 | 速 빠를 속 |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그 물러남도 빠르다.


출전

맹자

珍羞盛饌 (진수성찬)

珍羞盛饌(진수성찬)

珍 보배 진 | 羞 부끄러울 수 | 盛 성할 성 | 饌 반찬 찬, 지을 찬, 여섯 냥 선 |

맛이 좋은 음식(飮食)으로 많이 잘 차린 것을 뜻하여, 성대(盛大)하게 차린 진귀(珍貴)한 음식(飮食)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山海珍味(산해진미) 산과 바다에서 나는 갖가지 진기한 음식 | 食前方丈(식전방장) 아주 잘 차려진 음식. [출전] 맹자(孟子) |

陳壽 (진수, Chén Shòu, 233~297)

陳壽(진수, 233~297)

異名: 陈寿(Chén Shòu), 자(字) 승조(承祚)
출생지: 중국 쓰촨성[四川省] 난충[南充]
국적: 중국 촉한(蜀漢)~서진(西晋)
활동분야: 역사학
주요저서: 삼국지(三國志)


중국 서진(西晋)의 역사가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를 다룬 <삼국지(三國志)>를 저술하였다.


자(字)는 승조(承祚)이며, 촉한(蜀漢, 221~263)의 파서군(巴西郡) 안한(安漢, 지금의 四川省 南充) 출신이다. 촉한(蜀漢)의 장수(將帥) 진식(陳式)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다. 초주(譙周, 201~270)를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배웠으며, 촉한(蜀漢)에서 관각령사(觀閣令史)의 벼슬에 올랐다. 하지만 후주(後主) 유선(劉禪, 재위 223~263) 시기에 권세를 누리던 환관(宦官) 황호(黃皓)에게 거스르다 쫓겨났다.

촉한(蜀漢)이 멸망한 뒤, 진수(陳壽)는 서진(西晋, 265~316)에서 사공(司空) 장화(張華, 232~300)에게 효렴(孝廉)으로 천거(薦擧)되어 다시 관직(官職)에 올라 저작랑(著作郞)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무제(武帝, 재위 265~290)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익주(益州, 지금의 四川盆地와 漢中盆地 일대)의 역사인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이나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문집(文集)인 <제갈량집(諸葛亮集)>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위(魏), 촉(蜀), 오(吳) 삼국(三國)의 역사를 깊이 탐구하여 기전체(紀傳體)의 <삼국지(三國志)> 65편(篇)을 완성하였다. <삼국지>는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당대에 명문장가(名文章家)로 이름이 높던 하후담(夏侯湛, 243~291)은 진수의 <삼국지>를 보고 감탄하며 자신이 저술한 <위서(魏書)>를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장화(張華)도 진(晋) 역사의 편찬도 진수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며 감탄하였다. 결국 <삼국지>는 진수 개인이 편찬한 사서(史書)이지만, 무제(武帝)의 뒤를 이은 혜제(恵帝, 재위 290~306) 때에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정사(正史)로 인정되었다.

진수(陳壽)는 <삼국지(三國志)>에서 사료(史料)들을 매우 엄격하게 선별하여 다루었으며, 문장도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특히 그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정치, 경제 등의 사실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 등과 관련된 인물들이나 주변의 국가나 민족들과 관련된 사실들도 폭넓게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는 위(魏)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워진 서진(西晋)에서 벼슬을 했기 때문에 위(魏)를 정통(正統)으로 해서 <삼국지>를 서술하였다. 하지만 위(魏)를 정통으로 한 다른 사서(史書)들은 <위서(魏書)> 등의 제목 아래 촉한(蜀漢)과 오(呉)의 역사를 다루었지만, 진수는 제목도 <삼국지>로 하고, 본문도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呉書)’로 나누어 삼국(三國)을 상대적으로 대등하게 서술하였다.

진수(陳壽)는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의 관직까지 올랐지만, 모친(母親)이 뤄양[洛陽]에서 죽자 유언(遺言)에 따라 그 곳에 장례를 치렀다가 불효자(不孝子)라는 비난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향(故鄕)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당시의 관습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 뒤에 다시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의 직위를 제수(除授) 받았지만, 명(命)을 따르지 못하고 죽었다.

<진서(晉書)>에는 진수(陳壽)가 <삼국지(三國志)>를 저술하면서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怨恨)으로 제갈량(諸葛亮)과 그의 아들인 제갈첨(諸葛瞻, 227~263)을 폄하했다거나, 위(魏)의 문인(文人)이었던 정의(丁儀, ?~220)의 후손들에게 그의 전기(傳記)를 쓰는 대신에 대가를 요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후대에는 촉한전통론(蜀漢正統論)이 강조되면서 촉한(蜀漢)의 신하였다가 서진(西晋)에서 다시 벼슬을 했으며 위(魏)를 정통으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진수(陳壽)는 제갈량(諸葛亮)의 정치가로서의 재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촉한(蜀漢)에 대해서는 용어의 사용 등에서 오히려 우호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정의(丁儀)도 위(魏) 문제(文帝, 220~226) 조비(曹丕)에게 주살(誅殺)되어 후손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면서 <진서(晉書)>의 기록은 비판을 받고 있다.


주요저서

삼국지(三國志)

晉書 (진서) 房玄齡 (방현령) · 李延壽 (이연수) 等 卷83 列傳第53

晉書(진서) 房玄齡(방현령)·李延壽(이연수)

卷82 卷83 列傳第53 顧和 袁瑰 江逌 車胤 殷顗 王雅 卷84


顧和

顧和,字君孝,侍中眾之族子也。曾祖容,吳荊州刺史。祖相,臨海太守。和二歲喪父,總角便有清操,族叔榮雅重之,曰:「此吾家麒麟,興吾宗者,必此子也。」時宗人球亦有令聞,為州別駕,榮謂之曰:「卿速步,君孝超卿矣!」

王導為揚州,辟從事。月旦當朝,未入,停車門外。周顗遇之,和方擇虱,夷然不動。顗既過,顧指和心曰:「此中何所有?」和徐應曰:「此中最是難測地。」顗入,謂導曰:「卿州吏中有一令僕才。」導亦以為然。和嘗詣導,導小極,對之疲睡。和欲叩會之,因謂同坐曰:「昔每聞族叔元公道葉贊中宗,保全江表。體小不安,令人喘息。」導覺之,謂和曰:「卿珪璋特達,機警有鋒,不徒東南之美,實為海內之俊。」由是遂知名。既而導遣八部從事之部,和為下傳還,同時俱見,諸從事各言二千石官長得失,和獨無言。導問和:「卿何所聞?」答曰:「明公作輔,寧使網漏吞舟,何緣采聽風聞,以察察為政。」導咨嗟稱善。

累遷司徒左曹掾。時東海王沖為長水校尉,妙選僚屬,以沛國劉耽為司馬,和為主簿。永昌初,除司徒掾。太甯初,王敦請為主簿,遷太子舍人、車騎參軍、護軍長史。王導為揚州,請為別駕,所曆皆著稱。遷散騎侍郎、尚書吏部。司空郗鑒請為長史,領晉陵太守。咸康初,拜禦史中丞,劾奏尚書左丞戴抗髒汙百萬,付法議罪,並免尚書傅玩、郎劉傭官,百僚憚之。遷侍中。初,中興東遷,舊章多闕,而冕旒飾以翡翠珊瑚及雜珠等。和奏:「舊冕十有二旒,皆用玉珠,今用雜珠等,非禮。若不能用玉,可用白旋珠。」成帝於是始下太常改之。先是,帝以保母周氏有阿保之勞,欲假其名號,內外皆奉詔。和獨上疏以為「周保佑聖躬,不遺其勳,第舍供給擬於戚屬,恩澤所加已為過隆。若假名號,記籍未見明比,惟漢靈帝以乳母趙嬈為平氏君,此末代之私恩,非先代之令典。且君舉必書,將軌物垂則。書而不法,後嗣何觀!」帝從之。轉吏部尚書,頻徙領軍將軍、太常卿、國子祭酒。

康帝即位,將祀南北郊,和議以為車駕宜親行。帝從之,皆躬親行禮。遷尚書僕射,以母老固辭,詔書敕喻,物聽暮出朝還,其見優遇如此。尋朝議以端右之副不宜處外,更拜銀青光祿大夫,領國子祭酒。頃之,母憂去職,居喪以孝聞。既練,衛將軍褚裒上疏薦和,起為尚書令,遣散騎郎喻旨。和每見逼促,輒號兆慟絕,謂所親曰:「古人或有釋其憂服以祗王命,蓋以才足幹時,故不得不體國徇義。吾在常日猶不如人,況今中心荒亂,將何以補於萬分,只足以示輕忘孝道,貽素冠之義耳。」帝又下詔曰:「百揆務殷,端右總要,而曠職經久,甚以悒然。昔先朝政道休明,中夏隆盛,山賈諸公皆釋服從時,不獲遂其情禮。況今日艱難百王之弊,尚書令禮已過祥練,豈得聽不赴急疾而遂罔極之情乎!」和表疏十餘上,遂不起,服闋,然後視職。

時南中郎將謝尚領宣城內史,收涇令陳幹殺之,有司以尚違法糾黜,詔原之。和重奏曰:「尚先劾奸髒罪,入甲戍赦,聽自首減死。而尚近表雲幹包藏姦猾,輒收行刑。幹事狀自郡,非犯軍戎,不由都督。案尚蒙親賢之舉,荷文武之任,不能為國惜體,平心聽斷,內挾小憾,肆其威虐,遠近怪愕,莫不解體。尚忝外屬,宥之有典,至於下吏,宜正刑辟。」尚,皇太后舅,故寢其奏。時汝南王統、江夏公衛崇並為庶母制服三年,和乃奏曰:'禮所以軌物成教,故有國家者莫不崇正明本,以一其統,斯人倫之紀,不二之道也。為人後者,降其所出,奪天屬之性,顯至公之義,降殺節文,著於周典。案汝南王統為庶母居廬服重,江夏公衛崇本由疏屬,開國之緒,近喪所生,複行重製,違冒禮度,肆其私情。閭閻許其過厚,談者莫以為非,則政道陵遲由乎禮廢,憲章頹替始於容違。若弗糾正,無以齊物。皆可下太常奪服。若不祗王命,應加貶黜。」詔從之。和居任多所獻納,雖權臣不苟阿撓。

永和七年,以疾篤辭位,拜左光祿大夫、儀同三司,加散騎常侍,尚書令如故。其年卒,年六十四。追贈侍中、司空,諡曰穆。

子淳,曆尚書吏部郎、給事黃門侍郎、左衛將軍。


袁瑰

袁瑰,字山甫,陳郡陽夏人,魏郎中令渙之曾孫也。祖、父並早卒。瑰與弟猷欲奉母避亂,求為江淮間縣,拜呂令,轉江都,因南渡。元帝以為丹陽令。中興建,拜奉朝請,遷治書禦史。時東海王越屍既為石勒所焚,妃裴氏求招魂葬越,朝廷疑之。瑰與博士傅純議,以為招魂葬是謂埋神,不可從也。帝然之,雖許裴氏招魂葬越,遂下詔禁之。尋除廬江太守。大將軍王敦引為諮議參軍。俄為臨川太守。敦平,為鎮南將軍卡敦軍司。尋自解還都,游於會稽。蘇峻之難,與王舒共起義軍,以功封長合鄉侯,征補散騎常侍,徙大司農尋除國子祭酒。頃之,加散騎常侍。

於時喪亂之後,禮教陵遲,瑰上疏曰:

臣聞先王之教也,崇典訓以弘遠代,明禮樂以流後生,所以導萬物之性,暢為善之道也。宗周既興,文史載煥,端委垂於南蠻,頌聲溢於四海,故延州聘魯,聞《雅》而歎;韓起適魯,觀《易》而美。何者?立人之道,於斯為首。孔子恂恂以教洙泗,孟軻系之,誨誘無倦,是以仁義之聲於今猶存,禮讓之節時或有之。

疇昔皇運陵替,喪亂屢臻,儒林之教漸頹,庠序之禮有闕,國學索然,墳籍莫啟,有心之徒抱志無由。昔魏武帝身親介胄,務在武功,猶尚廢鞍覽卷,投戈吟詠,況今陛下以聖明臨朝,百官以虔恭蒞事,朝野無虞,江外謐靜,如之何泱泱之風漠然無聞,洋洋之美墜於聖世乎!古人有言:「《詩》《書》義之府,禮樂德之則。」實宜留心經籍,闡明學義,使諷誦之音盈於京室,味道之賢是則是詠,豈不盛哉!若得給其宅地,備其學徒,博士僚屬粗有其官,則臣之願也。

疏奏,成帝從之。國學之興,自瑰始也。以年在懸車,上疏告老,尋卒,追贈光祿大夫,諡曰恭。子喬嗣。

喬字彥叔。初拜佐著作郎。輔國將軍桓溫請為司馬,除司徒左西屬,不就,拜尚書郎。桓溫鎮京口,複引為司馬,領廣陵相。初,喬與褚裒友善,及康獻皇后臨朝,喬與裒書曰:「皇太后踐登正阼,臨禦皇朝,將軍之於國,外姓之太上皇也。至於皇子近屬,鹹有揖讓之禮,而況策名人臣,而交媟人父,天性攸尊,亦宜體國而重矣。故友之好,請於此辭。染絲之變,墨翟致懷,岐路之感,楊硃興歎,況於將軍游處少長,雖世譽先後而臭味同歸也。平昔之交,與禮數而降,箕踞之歎,隨時事而替,雖欲虛詠濠肆,脫落儀制,其能得乎!來物無停,變化遷代,豈惟寸晷,事亦有之。夫禦器者神,制眾以約,願將軍貽情無事,以理勝為任,親杖賢達,以納善為大。執筆惆悵,不能自盡。」論者以為得禮。

遷安西諮議參軍、長沙相,不拜。尋督沔中諸戍江夏隨義陽三郡軍事、建武將軍、江夏相。時桓溫謀伐蜀,眾以為不可,喬勸溫曰:「夫經略大事,故非常情所具,智者了於胸心,然後舉無遺算耳。今天下之難,二寇而已。蜀雖險固,方胡為弱,將欲除之,先從易者。今溯流萬里,經歷天險,彼或有備,不必可克。然蜀人自以鬥絕一方,恃其完固,不修攻戰之具,若以精卒一萬,輕軍速進,比彼聞之,我已入其險要,李勢君臣不過自力一戰,擒之必矣。論者恐大軍既西,胡必窺覦,此又似是而非。何者?胡聞萬里片征伐,以為內有重備,必不敢動。縱複越逸江渚,諸軍足以守境,此無憂矣。蜀土富實,號稱天府,昔諸葛武侯欲以抗衡中國。今誠不能為害,然勢據上流,易為寇盜。若襲而取之者,有其人眾,此國之大利也。」溫從之,使喬以江夏相領二千人為軍鋒。師次彭模,去賊已近,議者欲兩道並進,以分賊勢。喬曰:「今深入萬里,置之死地,士無反顧之心,所謂人自為戰者也。今分為兩軍,軍力不一,萬一偏敗,則大事去矣。不如全軍而進,棄去釜甑,齎三日糧,勝可必矣。」溫以為然,即一時俱進。去成都十裏,與賊大戰,前鋒失利,喬軍亦退,矢及馬首,左右失色。喬因麾而進,聲氣愈厲,遂大破之,長驅至成都。李勢既降,勢將鄧定、隗文以其屬反,眾各萬餘。溫自擊定,喬擊文,破之。進號龍驤將軍,封湘西伯。尋卒,年三十六,溫甚悼惜之。追贈益州刺史,諡曰簡。

喬博學有文才,注《論語》及《詩》,並諸文筆皆行於世。

子方平嗣,亦以軌素自立,辟大司馬掾,曆義興、琅邪太守。卒,子山松嗣。

山松少有才名,博學有文章,著《後漢書》百篇。衿情秀遠,善音樂。舊歌有《行路難》曲,辭頗疏質,山松好之,乃文其辭句,婉其節制,每因酣醉縱歌之。聽者莫不流涕。初羊曇善唱樂,桓伊能輓歌,及山松《行路難》繼之,時人謂之「三絕」。時張湛好於齋前種松柏,而山松每出遊,好令左右作輓歌,人謂「湛屋下陳屍,山松道上行殯。」

山松曆顯位,為吳郡太守。孫恩作亂,山松守滬瀆,城陷被害。

猷字申甫,少與瑰齊名。代瑰為呂令,複相繼為江都,由是俱渡江。瑰為丹陽,猷為武康,兄弟列宰名邑,論者美之。曆位侍中、衛尉卿。猷孫宏,見《文苑傳》。

准字孝尼,以儒學知名,注《喪服經》。官至給事中。准子沖,字景玄,光祿勳。衝子耽。

耽字彥道,少有才氣,倜儻不羈,為士類所稱。桓溫少時游於博徒,資產俱盡,尚有負進,思自振之方,莫知所出,欲求濟於耽,而耽在艱,試以告焉。耽略無難色,遂變服懷布帽,隨溫與債主戲。耽素有藝名,債者聞之而不相識,謂之曰:「卿當不辦作袁彥道也。」遂就局十萬一擲,直上百萬。耽投馬絕叫,探布帽擲地,曰:「竟識袁彥道不?」其通脫若此。蘇峻之役,王導引為參軍,隨導在石頭。初,路永、匡術、寧等皆峻心腹,聞祖約奔敗,懼事不立,迭說峻誅大臣。峻既不納,永等慮必敗,陰結於導。導使耽潛說路永,使歸順。峻平,封秭歸男,拜建威將軍、曆陽太守。咸康初,石季龍游騎十餘匹至曆陽,耽上列不言騎少。時胡寇強盛,朝野危懼,王導以宰輔之重請自討之。既而賊騎不多,又已退散,導止不行。朝廷以耽失於輕妄,黜之。尋複為導從事中郎,方加大任,會卒,時年二十五。子質。

質字道和。自渙至質五世,並以道素繼業,惟其父耽以雄豪著。及質又以孝行稱。官曆琅邪內史、東陽太守。質子湛。

湛字士深。少有操植,以沖粹自立,而無文華,故不為流俗所重。時謝混為僕射,範泰贈湛及混詩雲:「亦有後出雋,離群頗騫翥。」湛恨而不答。自中書令為僕射、左光祿大夫、晉甯男,卒於官。湛弟豹。

豹字士蔚,博學善文辭,有經國材,為劉裕所知。後為太尉長史、丹陽尹,卒。


江逌

江逌,字道載,陳留圉人也。曾祖蕤,譙郡太守。祖允,蕪湖令。父濟,安東參軍。逌少孤,與從弟灌共居,甚相友悌,由是獲當時之譽。避蘇峻之亂,屏居臨海,絕棄人事,翦茅結宇,耽玩載籍,有終焉之志。本州辟從事,除佐著作郎,並不就。征北將軍蔡謨命為參軍,何充複引為驃騎功曹。以家貧,求試守,為太末令。縣界深山中,有亡命數百家,恃險為阻,前後守宰莫能平。逌到官,召其魁帥,厚加撫接,諭以禍福,旬月之間,繈負而至,朝廷嘉之。州檄為治中,轉別駕,遷吳令。

中軍將軍殷浩將謀北伐,請為諮議參軍。浩甚重之,遷長史。浩方修復洛陽,經營荒梗,逌為上佐,甚有匡弼之益,軍中書檄皆以委逌。時羌及丁零叛,浩軍震懼。姚襄去浩十裏結營以逼浩,浩令逌擊之。逌進兵至襄營,謂將校曰:「今兵非不精,而眾少於羌,且其塹柵甚固,難與校力,吾當以計破之。乃取數百雞以長繩連之,系火於足。群雞駭散,飛集襄營。襄營火發,其亂,隨而擊之,襄遂小敗。及桓溫奏廢浩佐吏,遂免。頃之,除中書郎。昇平中,遷吏部郎,長兼侍中。

穆帝將修後池,起閣道,逌上疏曰:

臣聞王者處萬乘之極,享富有之大,必顯明制度以表崇高,盛其文物以殊貴賤。建靈台,浚辟雍,立宮館,設苑囿,所以弘於皇之尊,彰臨下之義。前聖創其禮,後代遵其矩,當代之君咸營斯事。周宣興百堵之作,《鴻雁》歌安宅之歡;魯僖修泮水之營,采芹有思樂之頌。蓋上之有為非予欲是盈,下之奉上不以劬勞為勤,此自古之令典,軌儀之大式也。

夫理無常然,三正相詭,司牧之體,與世而移。致飾則素,故《賁》返於《剝》;有大必盈,則受之以《謙》。損上益下,順兆庶之悅;享以二簋,用至約之義。是以唐虞流化於茅茨,夏禹垂美於卑室。過儉之陋,非中庸之制,然三聖行之以致至道。漢高祖當營建之始,怒宮庫之壯;孝文處既富之世,愛十家之產,亦以播惠當時,著稱來葉。

今者二虜未殄,神州荒蕪,舉江左之眾,經略艱難,漕揚越之粟,北饋河洛,兵不獲戢,運戍悠遠,倉庫內罄,百姓力竭。加春夏以來,水旱為害,遠近之收普減常年,財傷人困,大役未已,軍國之用無所取給。方之往代,豐弊相懸,損之又損,實在今日。伏惟陛下聖質天縱,凝曠清虛,闡日新之盛,茂欽明之量,無欲體於自然,沖素刑乎萬國。《韶》既盡美,則必盡善。宜養以玄虛,守以無為,登覽不以台觀。游豫不以苑沼,偃息畢於仁義,馳騁極於六藝,觀巍巍之隆,鑒二代之文,仰味羲農,俯尋周孔。其為逍遙,足以尊道德之輔,親搢紳之秀。疇咨以時,顧問不倦,獻替諷諫,日月而聞,則庶績惟凝,六合咸熙,中興之盛邁於殷宗,休嘉之慶流乎無窮。昔漢起德陽,鐘離抗言;魏營宮殿,陳群正辭。臣雖才非若人,然職忝近侍,言不足采,而義在以聞。

帝嘉其言而止。複領本州大中正。昇平末,遷太常,逌累讓,不許。

穆帝崩,山陵將用寶器,諫曰:「以宣皇顧命終制,山陵不設明器,以貽後則。景帝奉遵遺制。逮文明皇后崩,武皇帝亦亦承前制,無所施設,惟脯Я之奠,瓦器而已。昔康皇帝玄宮始用寶劍金舄,此蓋太妃罔已之情,實違先旨累世之法。今外欲以為故事,臣請述先旨,停此二物。」書奏,從之。

哀帝以天文失度,欲依《尚書》洪祀之制,於太極前殿親執虔肅,冀以免咎,使太常集博士草其制。逌上疏諫曰:

臣尋《史》《漢》舊事,《藝文志》劉向《五行傳》,洪祀出於其中。然自前代以來,莫有用者。又其文惟說為祀,而不載儀注。此蓋久遠不行之事,非常人所參校。案《漢儀》,天子所親之祠,惟宗廟而已。祭天於雲陽,祭地於汾陰,在於別宮遙拜,不詣壇所。其餘群祀之所,必在幽靜,是以圓丘方澤列於郊野。今若於承明之庭,正殿之前,設群神之坐,行躬親之禮,准之舊典,有乖常式。

臣聞妖眚之發,所以鑒悟時主,故夤畏上通,則宋災退度;德禮增修,則殷道以隆。此往代之成驗,不易之定理。頃者星辰頗有變異,陛下祗戒之誠達於天人,在予之懼,忘寢與食,仰虔玄象,俯疑庶政,嘉祥之應,實在今日。而猶乾乾夕惕,思廣茲道,誠實聖懷殷勤之至。然洪祀有書無儀,不行於世,詢訪時學,莫識其禮。且其文曰:「洪祀,大祀也。陽曰神,陰曰靈。舉國相率而行祀,順四時之序,無令過差。」今案文而言,皆漫而無適,不可得詳。若不詳而修,其失不小。

帝不納,逌又上疏曰:

臣謹更思尋,參之時事。今強戎據於關雍,桀狄縱於河朔,封豕四逸,虔劉神州,長旌不卷,鉦鼓日戒,兵疲人困,歲無休已。人事弊於下,則七曜錯於上,災沴之作,固其宜然。又頃者以來,無乃大異。彼月之蝕,義見詩人,星辰莫同,載於《五行》,故《洪範》不以為沴。

陛下今以晷度之失同之六沴,引其輕變方之重眚,求己篤於禹湯,憂勤逾乎日昃,將修大祀,以禮神祇。傳曰:「外順天地時氣而祭其鬼神。」然則神必有號,祀必有義。案洪祀之文,惟神靈大略而無所祭之名,稱舉國行祀而無貴賤之阻,有赤黍之盛而無牲醴之奠,儀法所用,闕略非一。若率文而行,則舉義皆閡;有所施補,則不統其源。漢侍中盧植,時之達學,愛法不究,則不敢厝心。誠以五行深遠,神道幽昧,探賾之求難以常思,錯綜之理不可一數。臣非至精,孰能與此!

帝猶敕撰定,逌又陳古義,帝乃止。逌在職多所匡諫。著《阮籍序贊》、《逸士箴》及詩賦奏議數十篇行於世。病卒,時年五十八。子蔚,吳興太守。

灌字道群。父瞢,尚書郎。灌少知名,才識亞於逌。州辟主簿,舉秀才,為治中,轉別駕,曆司徒屬、北中郎中長史,領晉陵太守。簡文帝引為撫軍從事中郎,後遷吏部郎。時謝奕為尚書,銓敘不允,灌每執正不從,奕托以他事免之,受黜無怨色。頃之,簡文帝又以為撫軍司馬,甚相賓禮。遷禦史中丞,轉吳興太守。灌性方正,視權貴蔑如也,為大司馬桓溫所惡。溫欲中傷之,征拜侍中,以在郡時公事有失,追免之。後為秘書監,尋複解職。時溫方執權,朝廷希旨,故灌積年不調。溫末年,以為諮議參軍。會溫薨,遷尚書、中護軍,複出為吳郡太守,加秩中二千石,未拜,卒。子績。

績字仲元,有志氣,除秘書郎。以父與謝氏不穆,故謝安之世辟召無所從,論者多之。安薨,始為會稽王道子驃騎主簿,多所規諫。曆諮議參軍,出為南郡相。會荊州刺史殷仲堪舉兵以應王恭,仲堪要績與南蠻校尉殷顗同行,並不從。仲堪等屢以為言,績終不為之屈。顗慮績及禍,乃於仲堪坐和解之。績曰:「大丈夫何至以死相脅!江仲元行年六十,但未知獲死所耳。」一坐為之懼。仲堪憚其堅正,以楊佺期代之。朝廷聞而征績為禦史中丞,奏劾無所屈撓。會稽世子元顯專政,夜開六門,績密啟會稽王道子,欲以奏聞,道子不許。車胤亦曰:「元顯驕縱,宜禁制之。」道子默然。元顯聞而謂眾曰:「江績、車胤間我父子。」遣人密讓之。俄而績卒,朝野悼之。


車胤

車胤,字武子,南平人也。曾祖浚,吳會稽太守。父育,郡主簿。太守王胡之名知人,見胤於童幼之中,謂胤父曰:「此兒當大興卿門,可使專學。」胤恭勤不倦,博學多通。家貧不常得油,夏月則練囊盛數十螢火以照書,以夜繼日焉。及長,風姿美劭,機悟敏速,甚有鄉曲之譽。桓溫在荊州,辟為從事,以辯識義理深重之。引為主簿,稍遷別駕、征西長史,遂顯於朝廷。時惟胤與吳隱之以寒素博學知名於世。又善於賞會,當時每有盛坐而胤不在,皆雲:「無車公不樂。」謝安遊集之日,輒開筵待之。

甯康初,以胤為中書侍郎、關內侯。孝武帝嘗講《孝經》,僕射謝安侍坐,尚書陸納侍講,侍中卞眈執讀,黃門侍郎謝石、吏部郎袁宏執經,胤與丹陽尹王混擿句,時論榮之。累遷侍中。太元中,增置太學生百人,以胤領國子博士。其後年,議郊廟明堂之事,胤以「明堂之制既甚難詳,且樂主於和,禮主於敬,故質文不同,音器亦殊。既茅茨廣廈不一其度,何必守其形範而不弘本順時乎!九服咸寧,四野無塵,然後明堂辟雍可光而修之。」時從其議。又遷驃騎長史、太常,進爵臨湘侯,以疾去職。俄為護軍將軍。時王國寶諂於會稽王道子,諷八坐啟以道子為丞相,加殊禮。胤曰:「此乃成王所以尊周公也。今主上當陽,非成王之地,相王在位,豈得為周公乎!望實二三,並不宜爾,必大忤上意。」乃稱疾不署其事。疏奏,帝大怒,而甚嘉胤。

隆安初,為吳興太守,秩中二千石,辭疾不拜。加輔國將軍、丹陽尹。頃之,遷吏部尚書。元顯有過,胤與江績密言於道子,將奏之,事泄,元顯逼令自裁。俄而胤卒,朝廷傷之。


殷顗

殷顗,字伯通,陳郡人也。祖融,太常卿。父康,吳興太守。顗性通率,有才氣,少與從弟仲堪俱知名。太元中,以中書郎擢為南蠻校尉。蒞職清明,政績肅舉。及仲堪得王恭書,將興兵內伐,告顗,欲同舉。顗不平之,曰:「夫人臣之義,慎保所守。朝廷是非,宰輔之務,豈籓屏之所圖也。晉陽之事,宜所不豫。」仲堪要之轉切,顗怒曰:「吾進不敢同,退不敢異。」仲堪以為恨。猶密諫仲堪,辭甚切至。仲堪既貴,素情亦殊,而志望無厭,謂顗言為非。顗見江績亦以正直為仲堪所斥,知仲堪當逐異己,樹置所親,因出行散,託疾不還。仲堪聞其病,出省之,謂顗曰:「兄病殊為可憂。」顗曰:「我病不過身死,但汝病在滅門,幸熟為慮,勿以我為念也。」仲堪不從,卒與楊佺期、桓玄同下。顗遂以憂卒。隆安中,詔曰:「故南蠻校尉殷顗忠績未融,奄焉隕喪,可贈冠軍將軍。」弟仲文、叔獻別有傳。


王雅

王雅,字茂達,東海郯人,魏衛將軍肅之曾孫也。祖隆,後將軍。父景,大鴻臚。雅少知名,州檄主簿,舉秀才,除郎中,出補永興令,以幹理著稱。累遷尚書左右丞,曆廷尉、侍中、左衛將軍、丹陽尹,領太子左衛率。雅性好接下,敬慎奉公,孝武帝深加禮遇,雖在外職,侍見甚數,朝廷大事多參謀議。帝每置酒宴集,雅未至,不先舉觴,其見重如此。然任遇有過其才,時人被以佞幸之目。帝起清暑殿于後宮,開北上閣,出華林園,與美人張氏同遊止,惟雅與焉。

會稽王道子領太子太傅,以雅為太子少傅。時王珣兒婚,賓客車騎甚眾,會聞雅拜少傅,回詣雅者過半。時風俗頹弊,無複廉恥。然少傅之任,朝望屬珣,珣亦頗以自幸。及中詔用雅,眾遂赴雅焉。將拜,遇雨,請以傘入。王珣不許之,因冒雨而拜。雅既貴幸,威權甚震,門下車騎常數百,而善應接,傾心禮之。

帝以道子無社稷器幹,慮晏駕之後皇室傾危,乃選時望以為籓屏,將擢王恭、殷仲堪等,先以訪雅。雅以恭等無當世之才,不可大任,從從容曰:「王恭風神簡貴,志氣方嚴,既居外戚之重,當親賢之寄,然其稟性峻隘,無所苞容,執自是之操,無守節之志。仲堪雖謹於細行,以文義著稱,亦無弘量,且幹略不長。若委以連率之重,據形勝之地,今四海無事,足能守職,若道不常隆,必為亂階矣。」帝以恭等為當時秀望,謂雅疾其勝己,故不從。二人皆被升用,其後竟敗,有識之士稱其知人。

遷領軍、尚書、散騎常侍,方大崇進之,將參副相之重,而帝崩,倉卒不獲顧命。雅素被優遇,一旦失權,又以朝廷方亂,內外攜離,但慎默而已,無所辯正。雖在孝武世,亦不能犯顏廷爭,凡所謀謨,唯唯而已。尋遷左僕射。隆安四年卒,時年六十七。追贈光祿大夫、儀同三司。

長子准之,散騎侍郎。次協之,黃門。次少卿,侍中。並有士操,立名於世雲。

史臣曰:爰在中興,玄風滋扇,溺王綱於拱默,撓國步於清虛,骨鯁蹇諤之風蓋亦微矣。而君孝固情禮而違顯命,山甫獻誠讜而振頹風,彥叔之兵謀,道載之正諫,洋洋盈耳,有足可稱。灌不屈節於權臣,績敢危言於賊將,道子殊物之禮,車胤沮之無懼心,仲堪反常之舉,殷顗折之以正色,求諸古烈,何以加焉!山松悅哀輓於軒冕之辰,彥道歡博徒於衰絰之日,天心已喪,其能濟乎!旋及於促齡,俄致於非命,宜哉!

贊曰:顧生軌物,屢申誠讜。袁子崇儒,拯斯頹喪。逌績剛蹇,車殷忠壯。睠言遺直,莫之能尚。

至誠感天 (지성감천)

至誠感天(지성감천)

至 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 | 誠 정성 성 | 感 느낄 감, 한할 감 | 天 하늘 천 |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에는 하늘도 감동(感動)한다라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껏(精誠-) 하면 하늘이 움직여 좋은 결과(結果)를 맺는다는 뜻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卵上加卵(난상가란) |

晉書 (진서) 房玄齡 (방현령) · 李延壽 (이연수) 等

晉書(진서) 房玄齡(방현령)·李延壽(이연수)

이름: 晋书(jìnshū)
구분: 정사
저자: 방현령
시대: 644년


진대(晉代)의 정사(正史). 중국(中國) 25사의 하나.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방현령(房玄齡), 이연수(李延壽) 등(等) 21명이 칙명(勅命)으로 사실(史實)을 기록(記錄)한 책. 130권


130권. 644년 편찬. 제기(帝紀) 10권, 지(志) 20권, 열전(列傳) 70권 외에 재기(載記) 30권이 있다. 처음으로 재기라는 양식이 정사에 나타난 것이며, 5호16국(五胡十六國)에 관한 기록으로서 진나라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로 장영서(臧榮緖)의 《진서(晉書)》에 의존하였고, 기타 진시대사(晉時代史)도 참고로 하여 많은 사관(史官)이 집필하였다. 현존하는 유일한 '진대사'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이 책을 보완한 것으로 《진서음의(晉書音義)》(3권), 《진서각주(晉書斠注)》(130권) 등이 있다.



구성 및 고사성어



卷1 帝紀第1 高祖宣帝
卷2 帝紀第2 世宗景帝 太祖文帝
卷3 帝紀第3 世祖武帝
卷4 帝紀第4 孝惠帝
卷5 帝紀第5 孝懷帝 孝愍帝
卷6 帝紀第6 中宗元帝 肅宗明帝
卷7 帝紀第7 顯宗成帝 康帝
卷8 帝紀第8 孝宗穆帝 哀帝 廢帝海西公
卷9 帝紀第9 太宗簡文帝 孝武帝
卷10 帝紀第10 安帝 恭帝



卷11 志第1 天文上
卷12 志第2 天文中
卷13 志第3 天文下
卷14 志第4 地理上
卷15 志第5 地理下
卷16 志第6 律曆上
卷17 志第7 律曆中
卷18 志第8 律曆下
卷19 志第9 禮上
卷20 志第10 禮中
卷21 志第11 禮下
卷22 志第12 樂上
卷23 志第13 樂下
卷24 志第14 職官
卷25 志第15 輿服
卷26 志第16 食貨
卷27 志第17 五行上
卷28 志第18 五行中
卷29 志第19 五行下
卷30 志第20 刑法

列傳

卷31 列傳第1 后妃上
卷32 列傳第2 后妃下
卷33 列傳第3 王祥 鄭沖 何曾 石苞
卷34 列傳第4 羊祜 杜預
卷35 列傳第5 陳騫 裴秀
卷36 列傳第6 衞瓘 張華
卷37 列傳第7 宗室
卷38 列傳第8 宣五王 文六王
卷39 列傳第9 王沈 荀顗 荀勖 馮紞
卷40 列傳第10 賈充 楊駿
卷41 列傳第11 魏舒 李憙 劉寔 高光
卷42 列傳第12 王渾 王濬 唐彬
卷43 列傳第13 山濤 王戎 郭舒 樂廣
卷44 列傳第14 鄭袤 李胤 盧欽 華表 石鑒 溫羨
卷45 列傳第15 劉毅 和嶠 武陔 任愷 崔洪 郭奕 侯史光 何攀
卷46 列傳第16 劉頌 李重
卷47 列傳第17 傅玄
卷48 列傳第18 向雄 段灼 閻纘
卷49 列傳第19 阮籍 嵇康 向秀 劉伶 謝鯤 胡毋輔之 畢卓 王尼 羊曼 光逸
卷50 列傳第20 曹志 庾峻 郭象 庾純 秦秀
卷51 列傳第21 皇甫謐 摯虞 束皙 王接

卷52 列傳第22 郤詵 阮種 華譚

折桂(절계, zhéguì) 계수나무 가지를 꺾다. 《진서·극선전(晉書·郤詵傳)》에서 극선(郤詵)이 자신의 과거 급제를 겸허하게 계수나무숲의 한 가지와 곤산(昆山)의 한 조각 옥에 비유한 데서 유래함

卷53 列傳第23 愍懷太子
卷54 列傳第24 陸機 陸雲
卷55 列傳第25 夏侯湛 潘岳 張載
卷56 列傳第26 江統 孫楚
卷57 列傳第27 羅憲 滕脩 馬隆 胡奮 陶璜 吾彥 張光 趙誘
卷58 列傳第28 周處 周訪
卷59 列傳第29 汝南王亮 楚王瑋 趙王倫 齊王冏 長沙王乂 成都王潁 河間王顒 東海王越
卷60 列傳第30 解系 孫旂 孟觀 牽秀 繆播 皇甫重 張輔 李含 張方 閻鼎 索靖 賈疋
卷61 列傳第31 周浚 成公簡 苟晞 華軼 劉喬

卷62 列傳第32 劉琨 祖逖

闻鸡起舞(wénjīqǐwǔ) 한밤중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무예를 연마하다. 《진서·조적전(晉書·祖逖傳)》에서, 동진(東晉)때 조적(祖逖)과 그의 친구 유곤(劉琨)은 늘 서로를 고무격려하여 한밤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서 무예를 연마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中流击楫(zhōngliújījí) 강 복판에서 노를 두드리다. 당(唐)대 방현령(房玄齡) 등의《진서·조적전(晉書·祖逖傳)》에서, 동진(東晉)의 조적(祖逖)이 중원을 수복하기 위해서 북벌하러 강을 건널 때, 노를 치면서 수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데서 유래함

卷63 列傳第33 邵續 李矩 段匹磾 魏浚 郭默
卷64 列傳第34 武十三王 元四王 簡文三子
卷65 列傳第35 王導
卷66 列傳第36 劉弘 陶侃
卷67 列傳第37 溫嶠 郗鑒
卷68 列傳第38 顧榮 紀瞻 賀循 薛兼
卷69 列傳第39 劉隗 刁協 戴若思 周顗
卷70 列傳第40 應詹 甘卓 卞壼 劉超 鍾雅
卷71 列傳第41 孫惠 熊遠 王鑒 陳頵 高崧
卷72 列傳第42 郭璞 葛洪
卷73 列傳第43 庾亮
卷74 列傳第44 桓彝
卷75 列傳第45 王湛 荀崧 范汪 劉惔 張憑 韓伯
卷76 列傳第46 王舒 王廙 虞潭 顧眾 張闓
卷77 列傳第47 陸曄 何充 褚翜 蔡謨 諸葛恢 殷浩
卷78 列傳第48 孔愉 丁潭 陶回

卷79 列傳第49 謝尚 謝安

東山再起(동산재기) 동산(動産)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隱退)한 사람이나 실패(失敗)한 사람이 재기(再起)하여 다시 세상(世上)에 나옴을 뜻함 |

草木皆兵(초목개병) 초목이 모두 적병처럼 보여서 놀랐다는 데서 나온 말로, ①적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찮은 것에도 겁냄 ② 몹시 놀라 이것도 의심스럽고 저것도 의심스러움. 경황 중에 함부로 이것저것 의심함 |

風聲鶴唳(풍성학려,风声鹤唳,fēngshēnghèlì)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도 추격병으로 의심하다. 《진서·사현전(晉書·謝玄傳)》 가운데, 전진(前秦) 때 진왕 부견(苻堅)이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에게 대패하고 도망갈 때,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추격병이 따라온 줄 알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卷80 列傳第50 王羲之
卷81 列傳第51 王遜 蔡豹 羊鑒 劉胤 桓宣 朱伺 毛寶 劉遐 鄧嶽 朱序
卷82 列傳第52 陳壽 王長文 虞溥 司馬彪 王隱 虞預 孫盛 干寶 鄧粲 謝沈 習鑿齒 徐廣

卷83 列傳第53 顧和 袁瑰 江逌 車胤 殷顗 王雅

螢雪之功(형설지공) | 車螢孫雪(차형손설) |

卷84 列傳第54 王恭 庾楷 劉牢之 殷仲堪 楊佺期
卷85 列傳第55 劉毅 諸葛長民 何無忌 檀憑之 魏詠之
卷86 列傳第56 張軌
卷87 列傳第57 涼武昭王李玄盛(李暠)
卷88 列傳第58 孝友
卷89 列傳第59 忠義
卷90 列傳第60 良吏
卷91 列傳第61 儒林

卷92 列傳第62 文苑

洛阳纸贵(Luòyángzhǐguì) 낙양의 종이값이 오르다. 《진서·문원전(晉書·文苑傳)》에서 진(晉)대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쓰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베껴 쓰느라 뤄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渐入佳境(jiànrùjiājìng) 점차 단맛이 나다. 《진서·고개지전(晉書·顧愷之傳)》에서, 고개지가 늘 사탕수수를 가느다란 가지부터 먼저 씹어먹어서 친구들이 이유를 묻자 “그야 점점 갈수록 단맛이 나기 때문이지.” 라고 한 말에서 유래함 |

卷93 列傳第63 外戚
卷94 列傳第64 隱逸
卷95 列傳第65 藝術
卷96 列傳第66 列女
卷97 列傳第67 四夷
卷98 列傳第68 王敦 桓溫
卷99 列傳第69 桓玄 卞範之 殷仲文
卷100 列傳第70 王彌 張昌 陳敏 王如 杜曾 杜弢 王機 祖約 蘇峻 孫恩 盧循 譙縱

載記

卷101 載記第1 劉元海(劉淵)
卷102 載記第2 劉聰
卷103 載記第3 劉曜

卷104 載記第4 石勒上

卷105 載記第5 石勒下

鹿死谁手(lùsǐsheíshǒu) 천하는 누구의 수중에 들어가겠는가? 《진서·석륵재기(晉書·石勒載記)》에 나오는 “当并驱于中原,未知鹿死谁手(중원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면, 사슴은 누구의 수중에 죽겠는가)”라는 고사에서 유래함 |

卷106 載記第6 石季龍(石虎)上
卷107 載記第7 石季龍(石虎)下
卷108 載記第8 慕容廆
卷109 載記第9 慕容皝
卷110 載記第10 慕容俊
卷111 載記第11 慕容暐
卷112 載記第12 苻洪 苻健 苻生
卷113 載記第13 苻堅上
卷114 載記第14 苻堅下
卷115 載記第15 苻丕 苻登
卷116 載記第16 姚弋仲 姚襄 姚萇
卷117 載記第17 姚興上
卷118 載記第18 姚興下
卷119 載記第19 姚泓
卷120 載記第20 李特 李流
卷121 載記第21 李雄 李班 李期 李壽 李勢
卷122 載記第22 呂光 呂纂 呂隆
卷123 載記第23 慕容垂
卷124 載記第24 慕容寶 慕容盛 慕容熙 慕容雲
卷125 載記第25 乞伏國仁 乞伏乾歸 乞伏熾磐 馮跋
卷126 載記第26 禿髮烏孤 禿髮利鹿孤 禿髮傉檀
卷127 載記第27 慕容德
卷128 載記第28 慕容超
卷129 載記第29 沮渠蒙遜
卷130 載記第30 赫連勃勃


참조

二十四史(이십사사) |

指桑罵槐 (지상매괴, zhǐsāngmàhuái)

指桑罵槐(지상매괴)

指桑骂槐(zhǐsāngmàhuái)

指 가리킬 지 | 桑 뽕나무 상 | 罵 꾸짖을 매 | 壞 무너질 괴,앓을 회 |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난이 곤란할 경우, 제3자를 비난하는 듯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려면 경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단호한 가운데 복종을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행동해서 심복시킨다.[大凌小者,警以誘之.剛中而應,行險而順.] "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功戰計(공전계) 중의 打草驚蛇(타초경사)를 설명하면서 등장했던 鄭莊公(정장공)의 이야기이다. '타초경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장공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던 동생, 공숙 단을 처단하고 이에 내응하려 했던 어머니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정장공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강씨는 궁중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그 뒤 정장공은 鄭城(정성)으로 돌아가 탄식했다.
"내 하는 수 없이 동생을 죽였지만 어찌 모친마저 멀리 여의고 천륜의 죄인이 되었단 말인가!"

이때, 영곡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의 이름은 영고숙이었다. 그는 위인이 매우 정직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장공이 그 어머니 강씨를 영 땅에다 안치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했다.
"어미가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敎化(교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영고숙은 몇 마리의 올빼미를 구해다가 정장공에게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며, 밤이면 능히 추호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선 不孝(불효)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 새를 잡아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서 영고숙이 '올빼미를 욕하면서 간접적으로 불효한 처사를 행한 정장공을 힐난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 것이다.

이후 영고숙의 간언에 따라 지하에 황천을 만들고 그곳에서 어머니 강씨를 만나, 함께 정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정장공이 모친을 모시고 함께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이마에 손을 대고 행렬을 바라보면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공은 효자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다 영고숙의 공로였다고 列國志(열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旁敲侧击(방고촉격, pángqiāocèjī) 양 옆과 측면을 치다. (문장이나 의견을) 빙빙 돌려 말하다. 말을 에두르다.
指鸡骂狗(지계매구, zhǐjīmàgǒu)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반의어

直言不讳(직언불휘, zhíyánbúhuì)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다. 기탄없이 말하다.
畅所欲言(창소욕언, chàngsuǒyùyán)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다.

참조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倂戰計, 삼십육계:병전계, 36계

集思廣益 (집사광익)

集思廣益(집사광익)

集 모을 집 | 思 생각 사 | 廣 넓을 광 | 益 더할 익 |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쓴 글에서 유래되었다.


제갈량은 신기묘산(神奇妙算)의 지략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랏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촉나라의 승상이 된 뒤에 '교여군사장사참군연속'이라는 글을 수하들에게 전하여 널리 의견을 구하는 방침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하였다.

"무릇 관직에 참여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나라의 이익을 넓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의견을 말하기를 멀리하고, 서로 의견이 엇갈리게 될까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면 큰 손실을 입는 것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얻는 것이 있으니, 병폐를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 어렵거늘, 오직 서서(徐庶)만은 하는 일마다 미혹됨이 없었다. 또 동화(童和)도 7년 동안 일하면서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열 번이라도 와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진실로 서서의 10분의 1이라도 본받고, 동화의 은근함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나의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의 동화전(董和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위기(魏紀)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집사광익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유익한 점을 취하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叱石成羊 (질석성양)

叱石成羊(질석성양)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 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紙上兵談 (지상병담)

紙上兵談(지상병담)

紙 종이 지 | 上 위 상 | 兵 군사 병 | 談 말씀 담 |

종위 위에서 펼치는 용병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실현성(實現性)이 없는 허황(虛荒)된 이론(理論)을 일컬음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紙上兵談(Mere paper talk)이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론(空論)을 비유한 말이며, 탁상공론(卓上空論:an armchair argument)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卓上空論(탁상공론) |

持服之約 (지복지약, chífúzhīyuē)

持服之約(지복지약)

持服之约(chífúzhīyuē)

持 가질 지 | 服 옷 복 | 之 갈 지 | 約 맺을 약 |


중국(中國)ㆍ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가복(賈復)의 아내가 임신(姙娠)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自己) 아들과 결혼(結婚)을 시키자고 말했다는 옛일에서 온 말. 뱃속의 태아(胎兒)를 가리켜 결혼(結婚) 약속(約束)을 하는 것


관련 한자어

유의어

持服之盟(지복지맹) |


결혼 |

支離滅裂 (지리멸렬)

支離滅裂(지리멸렬)

支 지탱할 지 | 離 떠날 리(이), 붙을 려(여), 교룡 치 | 滅 꺼질 멸, 멸할 멸 | 裂 찢을 렬(열) |

이리 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

break into fragments


'지리(支離)'의 어원으로는 2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옛날에 '지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소나 돼지 따위의 짐승을 잡을 때 누구보다도 뼈와 살을 깨끗이 발라내는 도살의 명수였다. 곧 그의 손에 짐승을 맡기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이리저리 찢기어 해체된다는 뜻에서 '지리'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지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앞으로 가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도 발이 따라가 주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왼쪽으로 발이 향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사에서 '지리'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멸렬(滅裂)'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도 장자였다. 그는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멸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멸렬'의 의미는 우직하고 경솔하고 말과 행동이 겉돈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후세에 이 2가지 말이 합쳐져 '지리멸렬'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어떤 일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어수선하게 엉키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支離分散(지리분산) | 支离破碎(zhīlípòsuì,지리파쇄) |

반의어·상대어

理路整然(이로정연) |

指鹿爲馬 (지록위마)

指鹿爲馬(지록위마)

指 가리킬 지 | 鹿 사슴 록(녹) | 爲 하 위, 할 위 | 馬 말 마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다라는 뜻으로, ①고의로 진상을 가리고 억지를 써서 시비를 뒤바꿈 ②웃사람을 농락(籠絡)하여 권세(權勢)를 마음대로 함


秦(진)나라 始皇帝(시황제)는 죽기에 앞서 북쪽 변방을 지키고 있던 장자 扶蘇(부소)를 불러 장례식을 치르게 하라는 詔書(조서)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조서를 맡고 있던 환관 趙高(조고, ?∼208 BC)는 거짓 조서를 꾸며 부소를 죽이고 후궁 소생인 胡亥(호해)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똑똑한 부소보다 어리석은 호해가 다루기 쉬울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天下)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한다.

조고는 호해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조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의 자리마저 노렸다. 그러나 막상 擧事(거사)를 도모하려니 조정 대신들이 얼마나 자기를 따라줄지 궁금했고 그걸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느날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 한마리를 바치면서 '폐하께 말을 헌상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해는 웃으며 '승상은 농담을 좀 심하게 하는 구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하면서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 보았다.

조고는 정색을 하고 나섰다 “이건 분명히 말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여기 있는 대신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호해의 물음에 조고를 두려워하는 대신들은 말이 맞다고 했고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분명하게 사슴이라고 대답하는 용기있는 신하도 더러 있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터무니없는 죄를 씌워 모두 죽여버렸다. 그러자 조정에는 조고의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天下)는 오히려 혼란(混亂)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秦)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항우와 유방(劉邦)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進擊)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孀)을 세워 3세 황제(皇帝)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출전]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以鹿爲馬(이록위마) |

芝蘭之交 (지란지교, zhīlánzhījiāo)

芝蘭之交(지란지교)

芝兰之交(zhīlánzhījiāo)

芝 지초 지 | 蘭 난초 란 | 之 어조사 지 | 交 사귈 교 |


지초(芝草)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을 이르는 한자 성어.


그대로 옮기면 지초와 난초의 사귐을 뜻한다. 지초와 난초는 둘 다 향기로운 꽃으로, 지란지교는 곧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일컫는다. 《명심보감(明心寶鑑)》〈교우(交友)〉편에 나온다.

'공자(孔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붉은 주사를 가지고 있으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가지고 있으면 검어지게 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丹之所藏者赤 漆之所藏者黑 是以 君子必愼其所與處者焉)"라고 말하였다.'

지란지교는 여기서 유래한 성어이다. 공자의 말처럼 벗을 사귈 때는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롭고 맑은 사귐을 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벗 사이의 변치 않는 사귐, 두터운 사귐을 일컫는 한자 성어는 많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금란지계(金蘭之契), 막역지우(莫逆之友), 문경지교(刎頸之交), 백아절현(伯牙絶絃), 수어지교(水魚之交), 죽마지우(竹馬之友) 등도 모두 벗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가리키는 성어들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肝膽相照(간담상조) | 管鮑之交(관포지교) | 膠漆之交(교칠지교) | 金蘭之契(금란지계) | 金蘭之交(금란지교) | 金石之契(금석지계) | 金石之交(금석지교) | 斷金之契(단금지계) | 斷金之交(단금지교) | 莫逆之友(막역지우) | 刎頸之交(문경지교) | 伯牙絶絃(백아절현) | 水魚之交(수어지교) | 竹馬故友(죽마고우) | 竹馬之友(죽마지우) | 知音(지음) |


明心寶鑑, 명심보감, 孔子, 공자, 벗[friend], 우정, 친구 |

指東指西 (지동지서)

指東指西(지동지서)

指 가리킬 지 | 東 동녘 동 | 指 가리킬 지 | 西 서녘 서 |

동쪽을 가리켰다가 또 서쪽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근본에는 손을 못 대고 딴 것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之南之北(지남지북) |

知己 (지기)

知己(지기)

知己(zhījǐ)

知 알 지 | 己 몸 기 |

자기를 잘 이해하여 주는 참다운 친구. '군자는 자기를 이해하여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몸을 굽히고, 자기를 이해하여 주는 사람은 믿는다'는 말에서 유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親友(친우) | 知音(지음) | 知友(지우) | 知己之友(지기지우) | 流水高山(유수고산) | 心友(심우) | 水魚(수어) | 伯牙絶絃(백아절현) | 刎頸之友(문경지우) | 刎頸之交(문경지교) | 莫逆之友(막역지우) | 淡交(담교) | 管鮑之交(관포지교) | 高山流水(고산유수) |

知難而退 (지난이퇴)

知難而退(지난이퇴)

知 알 지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退 물러날 퇴 |

형세(形勢)가 불리한 것을 알면 물러서야 함


춘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12년조에는 사정이 좋음을 보고 진격(進擊)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난다는 것은 용병의 바른 원칙이다. [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정(鄭)나라는 패권(覇權)을 다투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위치하였는데, 정나라는 먼저 진나라에 의지하였다. 그러자 초나라는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자국(自國)의 안전을 위하여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먼데 있는 물로는 불을 끌 수 없듯 진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정나라는 초나라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군대를 통솔하던 환자(桓子)는 정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진나라로서도 승산이 없었다. 이에 그는 철군하려 하였으나, 지휘에 따르지 않던 부하들은 초나라 군사와 교전을 하여 크게 패하고 말았다.

知難而退란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마땅히 물러서야 함 을 뜻한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織錦回文 (직금회문)

織錦回文(직금회문)

織 짤 직, 기치 치 | 錦 비단 금 | 回 돌아올 회 | 文 글월 문 |

비단으로 회문(回文)을 짜 넣다라는 뜻으로, 구성(構成)이 절묘(絶妙)한 훌륭한 문학작품(文學作品)을 비유(比喩ㆍ譬喩)함


진서(晋書) 열녀전(烈女傳)의 이야기다.

동진(東晋)시기, 전진(前秦)에 진주자사(秦州刺史)를 지내는 두도(竇滔)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도에게는 소혜(蘇蕙)라는 재주 많은 아내 말고도 조양대(趙陽臺)라는 총희(寵姬)가 또 있었는데, 이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 두도는 무척 고민스러웠다.

훗날 두도가 양양으로 부임하게 되자, 아내인 소혜는 남편이 총희와 함께 가려는 것을 보고 자신은 따라 가지 않기로 하였다. 양양으로 떠난 남편이 자신을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한 소혜는 몹시 상심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오색 비단에 글자를 짜넣어 회문시(回文詩)를 지어[織錦爲回文璇圖詩], 남편에게 보냈다. 이에 크게 감동한 두도는 곧 총희를 돌려 보내고 융숭한 예의를 갖춰 아내를 다시 맞아 들였다.

회문은 한시체(漢詩體)의 한 종류로, 처음부터 읽으나 끝에서부터 읽으나 다 뜻이 통하게 지어진 글을 말한다.

소혜가 지은 선기도(璇璣圖)라고 부르는 이 회문시는 가로 29자와 세로 29자로 지어져 모두 841자로 이루어져 있다. 상하와 좌우 어느 쪽으로 읽어도 모두 훌륭한 문장이 되고, 후대의 분석에 따르면 모두 7,958수의 시를 이룬다. 여기서 유래하여 직금회문은 소혜의 회문시와 같이 구성이 절묘하고 문사(文詞)가 아름다운 문장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晋書) 열녀전(烈女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廻文織錦(회문직금) |

曾參殺人 (증삼살인)

曾參殺人(증삼살인)

曾 일찍 증 | 參 석 삼, 참여할 참 | 殺 죽일 살, 감할 살, 빠를 쇄, 맴 도는 모양 설, 윗사람 죽일 시 | 人 사람 인 |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되풀이 해 들으면 믿어버리게 된다는 말


증자(曾子)가 노(魯)나라의 비(費)라는 곳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곳의 사람 중에 증자와 이름과 성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살인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달려와 말하였다.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증자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우리 아들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태연히 짜고 있던 베를 계속 짰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뛰어 들어오며 말하였다.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증자의 어머니는 이번에도 미동도 않고 베를 계속 짰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어떤 사람이 헐떡이며 뛰어 들어와 말하였다. “증삼이 사람을 죽였어요!” 그러자 증자의 어머니는 두려움에 떨며 베틀의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렸다. 현명한 증자를 믿는 어머니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그를 의심하며 말하니, 자애로운 그 어머니조차도 아들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朱憙 (주희, 1130~1200)

朱憙(주희, 1130~1200)

朱憙(zhūxǐ)

남송(南宋)의 유학자(儒學者)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성(姓)은 주(朱), 휘(諱)는 희(熹)이며, 자(字)는 원회(元晦) · 중회(仲晦)이다. 그리고, 호(号)는 회암(晦庵) · 회옹(晦翁) · 운곡노인(雲谷老人) · 창주병수(滄洲病叟) · 둔옹(遯翁)이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 · 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 정호 · 정이 등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오경'의 진의를 밝히고 '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주희는 주렴계, 정주로 대표되는 이전 송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고 종래 유교가 불,도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었던 이론적 결여를 보완하는 우주론적, 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한당의 훈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윤리학으로서의 본래성을 되찾는 한편 그것을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하고자 했다.

이후 주자의 철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주도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저서(著書)에 자치통감강목, 사서집주, 근사록 등(等)이 있다.


주요 작품

資治通鑑綱目(자치통감강목)


관련 항목

근사록 | 사서오경 | 사서집주 | 주자어류 |


http://ko.wikipedia.org/wiki/주희

啐啄同機 (줄탁동기)

啐啄同機(줄탁동기)

啐 맛볼 쵀, 빠는 소리 줄, 떠들썩할 잘 | 啄 쫄 탁, 부리 주 | 同 한가지 동 | 機 틀 기 |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서로가 적기에 힘을 합쳐야 모든 일에 부합한다는 뜻.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啐啄同時(줄탁동시) |

啐啄同時 (줄탁동시)

啐啄同時(줄탁동시)

啐 맛볼 쵀, 빠는 소리 줄, 떠들썩할 잘 | 啄 쫄 탁, 부리 주 | 同 한가지 동 | 時 때 시 |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서로가 적기에 힘을 합쳐야 모든 일에 부합한다는 뜻.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啐啄同機(줄탁동기) | 啐啄同時(줄탁동시) |

酒池肉林 (주지육림, jiǔchíròulín)

酒池肉林(주지육림)


酒池肉林(jiǔchíròulín)

酒 술 주 | 池 못 지,강 이름 타,제거할 철 | 肉 고기 육,둘레 유 | 林 수풀 림(임) |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이르는 말.

sumptuous feast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매희(妹喜)와 달기(妲己)라는 희대(稀代)의 두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서, 사치(奢侈)와 주색(酒色)에 탐닉(眈溺)하다가 결국 폭군 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夏)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 (供物)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매희[또는 말희(末喜)]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난 매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못 둘레에는 못 둘레에는 나무들마다 말린 고기[脯肉]를 걸친 숲을 만들고, 고기로 동산을 쌓았다.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 있었고 술 지게미가 쌓여 된 둑은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걸왕과 매희는 그 못에 호화선을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희희낙낙 즐겼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殷)나라 탕왕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래] 史記(사기) | 帝王世紀(제왕세기) | 十八史略


또한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방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탕왕으로부터 28대째로 은(殷)나라 마지막 군주가 된 주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보내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향락을 위하여 높이가 천척(千尺)에 달하고 둘레가 삼리(三里)나 되는 궁전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노역케 하였다. 화려한 궁실(宮室)이 완성되자 각지의 준마(駿馬), 명견(名犬), 미녀(美女) 등을 수집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收奪)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怳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暴君淫主)로 악명을 떨치던 주 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殷本紀(은본기)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 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以酒爲池懸肉爲林]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肉山酒池(육산주지) | 肉山脯林(육산포림)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長夜之飮(장야지음) | 炮烙之刑(포락지형) |


帝王世紀, 제왕세기,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竹杖芒鞋 (죽장망혜)

竹杖芒鞋(죽장망혜)

竹 대 죽 | 杖 지팡이 장 | 芒 까끄라기 망, 황홀할 황 | 鞋 신 혜 |

대지팡이와 짚신이라는 뜻으로, 먼 길을 떠날 때의 간편(簡便)한 차림을 이르는 말

舟中敵國 (주중적국)

舟中敵國(주중적국)

舟 배 주 | 中 가운데 중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國 나라 국 |

배(舟) 속의 적국(敵國)이라는 뜻으로, 군주(君主)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利害) 관계(關係)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곧 자기편(自己便)이라도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음을 이름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문후(文侯)를 섬겨 진(秦)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빼앗았다.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고 서하(西河)를 지켜 진나라와 한(韓)나라를 방어하게 하였다.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날, 무후가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무후는 강의 중류에 이르러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이에 오기는 다음과 같이 아뢰어 무후를 깨우쳤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왼쪽에 황하(黃河)와 제수(濟水)가 흐르고, 오른쪽에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궐(伊闕)이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북쪽으로 양장산(羊腸山)을 면하고 있어 험준함을 자랑하였지만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탕(湯) 임금에게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거처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상산(常山)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가 도도하게 흘러 험준하였지만 역시 정치를 행함에 덕이 없어 결국 무왕(武王)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나라의 보배는 덕에 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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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人環視 (중인환시)

衆人環視(중인환시)

衆 무리 중 | 人 사람 인 | 環 고리 환 | 視 볼 시 |

뭇 사람들이 둘러싸고 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衆目環視(중목환시) |

走爲上 (주위상, zǒuwéishàng)

走爲上(주위상)

走为上(zǒuwéishàng)

走 달릴 주 | 爲 하 위,할 위 | 上 윗 상 |


피해를 입지 아니하려면 달아나는 것이 제일 나은 꾀임을 이르는 말.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6계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흔히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라고 일컬어지는 계략이 바로 이 走爲上計(주위상계)이다. 하지만 흔히들 하는 이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삼십육계 중에서도 패전계, 그것도 가장 마지막에 주위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바로 앞에 열거된 서른다섯가지의 계략을 모두 시도해 보고, 그러고도 승산이 없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목숨을 보존하라는 뜻이지, 처음부터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불리하면 적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의 기회를 노린다 하여 잘못이 아니다. 이는 일반적인 용병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全師避敵.左次無咎,未失常也.]"

도망쳐서 生을 도모하는 이러한 계략은 흔히 비난을 받아오기도 했다. 이는 兵家가 아닌 儒家에 의한 것으로, 유가에서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태도를 훨씬 높이 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도망치면 비난하다가도, 후에 재기에 성공하고 나면 '진정한 용기'라면서 치켜세우기도 한다.

또한 '文은 武를 다스린다' 하여 실제로 계략을 세우고 싸우는 것은 무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총대장은 항상 문관이었다.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김부식은 단지 문관출신 총대장으로 있었던 것 뿐이다. 실제로 싸운 것은 많은 무관 장수들이었지만, 역사에는 단지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고 되어있을 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三十六計走爲上計(삼십육계주위상계) |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 走爲上(주위상) | 走爲上計(주위상계) | 走爲上策(주위상책)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敗戰計, 삼십육계:패전계, 36계

中原逐鹿 (중원축록)

中原逐鹿(중원축록)

中 가운데 중 | 原 근원 원 | 逐 쫓을 축 | 鹿 사슴 록 |

한서(漢書) 괴오강식부(蒯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衆惡必察衆好必察 (중오필찰중호필찰)

衆惡必察 衆好必察(중오필찰 중호필찰)

衆 무리 중 | 惡 미워할 오 | 必 반드시 필 | 察 살필 찰 | 衆 무리 중 | 好 좋을 호 | 必 반드시 필 | 察 살필 찰 |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의 좋아함과 싫어함에 따라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살펴서 판단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子曰,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When the multitude hate a man, it is necessary to examine into the case. When the multitude like a man, it is necessary to examine into the case.
- 論語 衛靈公 (논어 위령공, The Analects: Wei Ling Gong)

子曰 衆好之必察焉 衆惡之必察焉
공자가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워 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느니라."
- 明心寶鑑 正己篇 (명심보감 정기편)


공자는 "많은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살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살펴야 한다(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라고 가르쳤다.

논어(論語) 제15장 위령공(衛靈公) 편에 실려 있으며, 명심보감(明心寶鑑) 정기편(正己篇)에도 나오는 문구이다.

여러 사람이 좋아하거나 미워한다고 하여 그대로 부화뇌동하지 말고, 직접 그 이유와 내용을 살펴보고 판단하여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논어(論語) 제13장 자로(子路, Zi Lu)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子貢問曰, “鄉人皆好之,何如?”
子曰, “未可也。”
“鄉人皆惡之,何如?”
子曰, “未可也。不如鄉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Zi Gong asked, saying, "What do you say of a man who is lov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replied, "We may not for that accord our approval of him."
"And what do you say of him who is hated by all the people of his neighborhood?"
The Master said, "We may not for that conclude that he is bad. It is better than either of these cases that the good in the neighborhood love him, and the bad hate him."

자공(子貢)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말했다. "옳지 못한 일이다"
자공이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그것도 옳지 못한 일이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착한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자(朱子)는 이 구절에 대한 주해(註解)에서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무리끼리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구차하게 모두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실상은 틀림없이 좋아할 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논어, 논어:위령공, 명심보감, 명심보감:정기편

論語, 論語:衛靈公, 明心寶鑑, 明心寶鑑:正己篇

周易 (주역)

周易(주역)

유교의 경전(經典) 중 3경(三經)의 하나인 《역경(易經)》.


단순히 《역(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이 역에는 易簡(이간)·변역·불역(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한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효사(爻辭)·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허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든 뒤 이를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또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 하였으며, 마융(馬融)은 괘사는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작자가 명확하지 않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이다.

태극(太極)이 변하여 음 ·양으로, 음 ·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 괘가 되었다. 건은 하늘·부친·건강을 뜻하며, 태는 못[池]·소녀·기쁨이며, 이는 불[火]·중녀(中女)·아름다움이며, 진은 우레·장남·움직임이며, 손은 바람·장녀, 감은 물·중남(中男)·함정, 간은 산·소남(少男)·그침, 곤은 땅·모친·순(順)을 뜻한다. 그러나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經文)이다.

《주역》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십익》의 성립으로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십익'은 공자(孔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전국 시대부터 한(漢)나라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학자들에 의해 저작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 열 가지라는 뜻으로, 즉 단전(彖傳) 상·하편, 상전(象傳) 상·하편, 계사전(繫辭傳) 상·하편, 문언전(文言傳)·설괘전(說卦傳)·서괘전(序卦傳)·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관련 한자어

계사(繫辭) 하전(下傳)

安不忘危(안불망위) | 易窮則變(역궁즉변) |

晝語鳥聽夜語鼠聽 (주어조청야어서청)

晝語鳥聽夜語鼠聽(주어조청야어서청)

晝 낮 주 | 語 말씀 어 | 鳥 새 조 | 聽 들을 청 | 夜 밤 야 | 語 말씀 어 | 鼠 쥐 서 | 聽 들을 청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으로, ① 아무도 듣지 않는 데에서라도 말조심 하라는 뜻. ② 비밀히 한 말도 반드시 남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

柱石之臣 (주석지신)

柱石之臣(주석지신)

柱 기둥 주, 버틸 주 | 石 돌 석 | 之 갈 지 | 臣 신하 신 |

한 나라의 주춧돌이 될 만한 신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股肱之臣(고굉지신) 다리와 팔에 비길 만한 신하 | 股掌之臣(고장지신) 다리와 손바닥 같은 신하 | 社稷之臣(사직지신)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 |

衆志成城 (중지성성)

衆志成城(중지성성)

衆 무리 중 | 志 뜻 지, 기치 치 | 成 이룰 성 | 城 재 성 |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합치면 견고한 성과 같음을 비유.


국어(國語) 주어(周語) 하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

춘추시대 말기인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시장에서 유통되던 소액의 돈을 없애고 고액의 돈을 주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의 원성(怨聲)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2년 후, 경왕은 민간에 남은 동전(銅錢)들을 수집하여 엄청나게 큰 종(鐘)을 만들려고 하였다. 단목공(單穆公)과 악사(樂師)인 주구(州鳩)는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도 못할 뿐더러 백성들의 재산에 손해를 끼쳐 고통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만류하였다. 그러나 경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거대한 종을 완성시켰다.

평소에 아첨하는 일이 몸에 밴 악공(樂工)들은 저마다 경왕에게 종소리가 매우 조화롭고 듣기 좋다고 아부하였다. 그러자 경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종을 만드는 것을 반대한 주구를 불러 자랑하였다.

"종소리가 매우 듣기 좋으니, 그대가 지나치게 염려한 것이다."

이에 주구는 대답하였다.

"왕께서 거대한 종을 만드는 일을 백성들이 모두 찬성하여야 그 소리가 조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그들의 재산을 축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왕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이러한 상황을 어찌 조화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찬성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문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항간에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뭉치면 성을 이루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면 쇠도 녹는다[衆心成城, 衆口煉金]'라고 말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경왕은 주구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에 경왕이 죽고 나자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衆心成城(중심성성)이라고도 한다.


출전

국어(國語) 주어(周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중심성성(衆心成城)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뭇사람의 뜻이 일치(一致)하면 성과 같이 굳어짐을 이르는 말 |


중요도·활용도

酒酸不售 (주산불수)

酒酸不售(주산불수)

酒 술 주 | 酸 실 산 | 不 아닐 불 | 售 팔 수 |

술이 시어지면 팔리지 않음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도 않고 손님에게도 매우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술집임을 알리는 깃발까지 높이 세워 두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서 언제나 쉬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양천(楊-)이라는 유식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의 답은 이러했다.

"바로 당신 집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오."

장씨는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양천이라는 노인은 다시 설명하였다.

"사나운 개가 술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고, 특히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왔다가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감히 술을 사러 오겠소? 그러니 술이 시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酒酸不袋란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狗猛酒酸(구맹주산) | 狗惡酒酸(구악주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竹馬之友 (죽마지우, zhúmǎzhīyǒu)

竹馬之友(죽마지우)

竹马之友(zhúmǎ zhī yǒu)

竹 대 죽 | 馬 말 마 | 之 의 지 | 友 벗 우 |


죽마를 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소꿉동무를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품조편(品藻篇)〉과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은호는 성품이 온후(溫厚)하였으며, 학문 또한 박학(博學)하였다. 젊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을 즐겨 읽었으며, 벼슬이 싫어 조상의 무덤을 십여 년째 지켰다. 그러나 당시 간문제(簡文帝)는 연거푸 공신을 잃는 변을 당해 현신(賢臣)을 찾던 중, 은일(隱逸)하던 은호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은호는 청을 이기지 못하고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어 조정에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촉(蜀)을 평정하고 돌아와 세력이 커지고 있던 환온(桓溫)을 견제하려던 간문제의 계책이었다. 결국 은호와 환온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왕희지(王羲之)가 나서서 둘 사이에 화해를 주선하였으나 은호가 거절하였다. 이 무렵,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자 호족(胡族) 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중원을 회복하려 하였으며, 은호가 오주군사(五州軍事)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출병에 앞서 은호가 낙마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하였다. 이것을 두고 환온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서인(庶人)에 강등시키고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 다음 환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은호는 어려서 나와 함께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다. 내가 죽마를 버리면 언제나 은호가 가지고 갔다. 그러니 그가 내 밑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은호는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다. 죽마는 대나무로 만든 말로,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죽마지우는 어릴 때의 친구, 즉 소꿉동무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기죽지교(騎竹之交), 죽마지호(竹馬之好)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竹馬故友(죽마고우) | 騎竹之交(기죽지교) | 竹馬之好(죽마지호)

참조어

肝膽相照(간담상조) |
芝蘭之交(지란지교) |


世說新語, 세설신어, 晉書, 진서, 벗[friend], 우정, 친구 |

走馬加鞭 (주마가편)

走馬加鞭(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라는 속담(俗談)의 한역으로, ①형편(形便)이나 힘이 한창 좋을 때에 더욱 힘을 더한다는 말 ②힘껏 하는 데도 자꾸 더 하라고 격려(激勵)함

to spur on a flying horse—to go at top speed; to go as soon as possible

[출전]
순오지(旬五志)


관련 한자어·중국어

동의어·유의어

快马加鞭(kuàimǎjiābiān, 쾌마가편)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

走馬看山 (주마간산)

走馬看山(주마간산)

走 달릴 주 | 馬 말 마 | 看 볼 간 | 山 뫼 산 |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바빠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대충대충 보며 지나침.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일이 몹시 바빠서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대강대강 훑어보고 지나침을 비유한 한자성어이다. 힘차게 달리는 말 위에서는 사물을 아무리 잘 살펴보려고 해도 말이 뛰는 속도가 빨라 순간순간 스치는 모습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말에서 내려서 천천히 보면 될 텐데, 일이 몹시 바빠 그럴 수도 없으니, 달리는 말 위에서나마 대강대강이라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마간산의 본래 뜻은 이와 조금 다르다. 주마간산은 원래 중국 중당기(中唐期)의 시인 맹교(孟郊)가 지은 '등과후(登科後)'에서 유래하였다. 맹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시를 지으면서 청렴하게 살던 중, 어머니의 뜻에 못이겨 41살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응시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 달리 낙방하고 수모와 냉대만 받다가, 5년 뒤인 46살에야 겨우 급제하였다.

'등과후'는 맹교가 급제하고 난 뒤에 한 술좌석에서 읊은 칠언절구이다.

昔日齷齪不足誇
今朝放蕩思無涯
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지난 날 궁색할 때는 자랑할 것 없더니
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거칠 것이 없어라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

이 시는 보잘것없을 때와 등과하고 났을 때의 세상 인심이 다름을 풍자한 시이다. 주마간산은 이 시의 '달리는 말 위에서 꽃을 본다'는 주마간화(走馬看花)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 주마간화는 대충 본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만에 장안의 좋은 것을 모두 맛보았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세상 인심의 각박함을 비웃는 시인의 호탕함이 잘 나타나 있는 표현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이 바빠 사물을 대충 보고 지나친다는 뜻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관용어로 쓰이면서 뜻이 덧붙거나 변한 것으로 보인다. 주마간산의 '산' 역시 대강대강 둘러보다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는 과정에서 꽃이 산으로 대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관련 한시

登科後(등과후) 孟郊(맹교)

竹馬故友 (죽마고우)

竹馬故友(죽마고우)

竹 대 죽 | 馬 말 마 | 故 연고 고 | 友 벗 우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親舊)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


진(秦)나라 12대 황제(皇帝)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平定)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은사를 건무장군 양주지사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親舊)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왕희지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 중 하나인 후조의 왕석계룡이 죽고 호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秦)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親舊)' 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蔥竹之交(총죽지교) | 竹馬之友(죽마지우) | 竹馬舊友(죽마구우) | 竹馬交友(죽마교우) |

竹林七賢 (죽림칠현)

竹林七賢(죽림칠현)

竹 대 죽 | 林 수풀 림(임) | 七 일곱 칠 | 賢 어질 현 |

진나라 초기에 노자·장자의 허무의 사상을 숭상하여 대숲에 모여 청담을 일삼았던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 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 이다. 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들은 위(魏)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 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 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 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中流砥柱 (중류지주, zhōngliúDǐzhù)

中流砥柱(중류지주)

中流砥柱(zhōngliúDǐzhù)

中 가운데 중 | 流 흐를 류 | 砥 숫돌 지 | 柱 기둥 주 |


'황허강[黃河] 중류의 지주산'이라는 뜻으로,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서 유래되었다.


지주중류(砥柱中流)라고도 한다. 지주(砥柱)는 황허강 중류에 있는 산 이름이다. 《수경주(水經注)》에 따르면,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산언덕이 물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산의 좌우를 파냈다. 이렇게 해서 강물은 산의 양쪽으로 갈려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물 속에 기둥처럼 솟아 있었으므로 지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수하에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라는 3명의 용사가 있었다. 이들은 경공의 충복이었으나 조정의 기강에 해를 끼칠 정도로 오만무례하게 행동하였다. 그래서 재상인 안영은 이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2개의 복숭아를 놓고 3명 가운데 공을 더 많이 세운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 하였다.

이때 고야자는 예전에 경공을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괴물 같은 자라가 나타나 수레를 끄는 말을 물고 지주산이 있는 중류로 도망친(以入砥柱之中流) 일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쫓아가 괴물을 죽이고 말을 되찾아 왔노라고 공을 내세웠다. 이 고사는 《안자춘추》에 실려 있으며,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2개의 복숭아로 3명의 용사를 죽이다)라는 고사성어의 전거(典據)가 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지주는 황허강의 격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지주산처럼 난세나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잃지 않는 의연한 인물 또는 그러한 행동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라고 하는데, 이 고사성어에서 따온 명칭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砥柱中流(지주중류) |


참조어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



晏子春秋, 안자춘추 |

竹頭木屑 (죽두목설)

竹頭木屑(죽두목설)

竹片木屑(zhúpiàn mùxiè)

竹 대 죽 | 頭 머리 두 | 木 나무 목 | 屑 가루 설, 달갑게 여길 설 |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라는 뜻으로, 쓸모 없다고 생각한 것도 소홀(疏忽)히 하지 않으면 후(後)에 긴히 쓰인다는 말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파양(-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명제(明帝) 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등을 지냈다. 군사 방면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모든 일에서 항상 몸소 힘써 행하여 모범을 보였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장에 직접 가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때 도간은 공사에 쓰다 남은 나무 부스러기와 대나무 조각을 모두 거두어 간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木屑及竹頭悉令擧掌之].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들은 왜 모아 두라고 하는지 의아해 하였다.

해가 바뀌어 새해를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는데 눈이 쌓였다가 녹아서 청사 앞의 길이 진창이 되었다. 도간은 보관해 두었던 톱밥과 나무 부스러기 등으로 진창이 된 길을 덮게 하였다.

또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하여 병선(兵船)을 급히 만들었는데, 널빤지는 많았지만 대나무못이 부족하였다. 도간이 이 사실을 알고 보관해 두었던 대나무 조각들을 환온에게 보내 대나무못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도간이 일을 처리하는 데 치밀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고 한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도간전과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정사(政事)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죽두목설은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처럼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나중에 긴히 활용하는 일 또는 하찮은 것이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 | 세설신어(世說新語) 정사(政事)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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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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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진징사도잠(晋徵士陶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酒囊飯袋 (주낭반대)

酒囊飯袋(주낭반대)

酒 술 주 | 囊 주머니 낭 | 飯 밥 반 | 袋 자루 대 |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은 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 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라고 하며 얕보았다.

酒囊飯袋란 먹고 마실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衆口難防 (중구난방)

衆口難防(중구난방)

衆 무리 중 | 口 입 구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防 막을 방 |

뭇사람의 말을 이루 다 막기가 어렵다는 말로 많은 사람이 마구 떠들어대는 소리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周(주)나라때 이야기다. 勵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적발해서 죽였다. 그래서 밀고제도가 자리잡고 거미줄같이 쳐진 정보망때문에 백성들은 공포정치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

여왕은 득의만면해서 그렇게 말했다. 중신 召公(소공)은 기가 막혔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이 막히면 언젠가 둑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인명이 상하게 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소공의 간곡한 충언을 여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공이 우려했던 대로 백성들은 언제까지나 가만있지는 않았다. 백성들은 마침내 들고 일어났다. 여왕이 달아난 곳에서 죽을때까지 주나라에서는 14년간 共和政(공화정)이 실시되었다. 신하들이 상의해서 정치를 했기에 공화라 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는 춘추시대 때의 것이 있다. 성을 쌓는 일을 독려하기 위해 나와 있던 춘추시대 송나라의 華元(화원)이란 벼슬아치가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일꾼들이 일제히 그를 비웃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여왕의 故事(고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입을 막기 어렵다[衆口難防]』고 하고는 작업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酒果脯醯 (주과포혜)

酒果脯醯(주과포혜)

酒 술 주 | 果 실과 과, 열매 과, 강신제 관 | 脯 포 포, 회식할 보 | 醯 식혜 혜 |

술ㆍ과실(果實)ㆍ포(脯)ㆍ식혜(食醯) 따위로 간략하게 차린 제물(祭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酒果(주과) | 酒果脯(주과포) |

晝耕夜讀 (주경야독)

晝耕夜讀(주경야독)

晝 낮 주 | 耕 밭 갈 경 |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讀 읽을 독, 구절 두 |

낮에는 농사(農事) 짓고 밤에는 공부(工夫)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耕讀(경독) | 晝耕夜讀手不釋卷(주경야독수불석권) | 晝耕夜誦(주경야송) | 晴耕雨讀(청경우독) | 凿壁偷光(záobìtōuguāng, 착벽투광) |

衆寡不適 (중과부적)

衆寡不適(중과부적)

衆 무리 중 | 寡 적을 과 | 不 아닐 부, 아닐 불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①적은 수효(數爻)로 많은 수효(數爻)를 대적(對敵)하지 못한다는 뜻②적은 사람으로는 많은 사람을 이기지 못함.


전국시대, 여러 나라를 순방(巡訪)하며 왕도(王道)를 역설하던 맹자(孟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말했다.

"전하께서 방탕한 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천하의 패권을 잡겠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터무니없고 심하다는 말입니까."

"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면 비록 물고기는 얻지 못하더라도 뒤따르는 재앙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정책은 실패하면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다는 겁니까."

"만약 추(鄒)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전하께서는 어느 쪽이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국인 초나라가 이기겠지요."

"그렇다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이길 수 없고[小固不可以敵大], 적은 인원수로는 많은 인원수를 당해내지 못하며[寡固不可以敵衆],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弱固不可以敵强]. 지금천하의 1000리 사방(四方)에 강국이 아홉개가 있는데 제나라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나로 여덟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對敵)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선왕의 물음에 맹자는 지론인 왕도론을 펼쳤다.

"전하께서는 그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정치를 쇄신하고 인정(仁政)을 베푸시면 천하는 저절로 전하의 것이 됩니다. 왕도를 따르는 자만이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전]
孟子(맹자):양혜왕편(梁惠王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寡不敵衆(과부적중) |

主客一體 (주객일체)

主客一體(주객일체)

主 임금 주/주인 주 | 客 손 객 | 一 한 일 | 體 몸 체 |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됨.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됨. 자아와 자연이 하나로 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物心一如(물심일여) | 胡蝶之夢(호접지몽) | 胡蝶夢(호접몽) | 蝶夢(접몽) | 莊周之夢(장주지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