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火不相容(수화불상용)
水火不相容(shuǐhuǒbùxiāngróng)
水 물 수 | 火 불 화 | 不 아닐 불 | 相 서로 상 | 容 용납할 용 |
'물과 불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두 사물이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삼국지》의 〈위연전(魏延傳)〉 등에서 유래되었다.
수화불용(水火不容) 또는 유여수화(有如水火)라고도 한다.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얼음과 숯은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도 같은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군 위연은 '성격이 오만하여 모두가 그를 피하였다. 오직 장사(長史)인 양의(楊儀)만은 위연을 아랑곳하지 않아서 항상 그와 맞섰다. 위연은 양의의 태도에 대하여 매우 화를 냈는데, 두 사람은 마치 물과 불의 관계와 같았다(延以爲至忿, 有如水火).' 이 고사(故事)는 《삼국지》의 〈촉지(蜀志)·위연전〉에 실려 있다.
또 후한(後漢) 말기에 왕부(王符)가 쓴 《잠부론(潛夫論)》에는 "사악함과 올바름의 차이는 마치 물과 불의 관계와 같아서 근원이 같아질 수 없고, 나란히 성할 수 없는 것이다(邪之與正, 猶水與火, 不同源, 不得幷盛)"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수화불상용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고 의견이 달라서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동방삭(東方朔)은 재치와 해학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황제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평생 교활하고 아첨하는 무리들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초(楚)나라의 우국시인 굴원(屈原)을 추모하여 〈칠간(七諫)〉이라는 7수의 시를 지었다.
그 가운데 〈자비(自悲)〉라는 시에서 "얼음과 숯은 서로 함께 할 수 없으니, 내 본디 목숨이 길지 못함을 알겠구나(氷炭不可以相竝兮, 吾固知乎命之不長)"라고 노래하였다. 충성스러운 굴원과 아첨배를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얼음과 숯에 비유하여, 아첨을 일삼는 간신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굴원의 심경을 노래한 구절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빙탄불상용(또는 빙탄불용)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출전]
三國志:卷40:魏延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水火不容(수화불용) | 有如水火(유여수화) | 빙탄불용 |
三國志:卷40:魏延 |
荀況 (순황)
순자(荀子, BC 298?~BC 238?)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예(禮)를 강조하여 유학 사상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사상가이자 유학자로, 성은 순(荀), 이름[名]은 황(况), 자(字)는 경(卿)이다. 순경(荀卿)이 아니라 손경(孫卿)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순(荀)과 손(孫)의 옛소리[古音]가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예(禮)를 강조하는 유학 사상을 발달시켰다.
<사기(史記)>의 '순경열전(荀卿列傳)'에 따르면, 순자는 조(趙) 나라 출신으로 나이 50세 무렵에 제(齊) 나라에 유학(遊學)하여 최장로(最長老)의 학사(學士)로 세 차례나 제주(祭酒)를 지냈다. 후에 참소(讒訴)를 받아 제(齊)를 떠난 순자는 초(楚)의 재상(宰相) 춘신군(春申君)의 천거로 난릉(蘭陵, 山東省)의 수령이 되었다. 춘신군이 암살되자(BC 238), 벼슬 자리에서 물러난 순자는 난릉에 머물며 문인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며 여생을 마쳤다.
그의 사상은 전한(前漢) 말기에 <손경신서(孫卿新書)> 32편으로 정리되었고, 당(唐)의 양량(楊倞)은 여기에 주(註)를 붙이고 20권 32편으로 다시 정리했으며 명칭을 <손경자(孫卿子)>라 하였다. 오늘날 <손경신서(孫卿新書)>는 망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며, 양량(楊倞)의 주석본이 간략히 <순자(荀子)>라고 불리며 전해지고 있다. <순자> 32편은 '권학(勸學), 수신(修身), 불구(不苟), 영욕(榮辱), 비상(非相), 비십이자(非十二子), 중니(仲尼), 유효(儒效), 왕제(王制), 부국(富國), 왕패(王霸), 군도(君道), 신도(臣道), 치사(致士), 의병(議兵), 강국(彊國), 천론(天論), 정론(正論), 예론(禮論), 악론(樂論), 해폐(解蔽), 정명(正名), 성악(性惡), 군자(君子), 성상(成相), 부(賦), 대략(大略), 유좌(宥坐), 자도(子道), 법행(法行), 애공(哀公), 요문(堯問)'으로 구성되어 있다.
荀子(순자)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예(禮)를 강조하여 유학 사상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명 | 순황(荀況), 순경(荀卿) |
별칭 | 손경자(孫卿子) |
국적 | 중국 전국시대 조(趙) |
활동분야 | 철학 |
주요저서 | 순자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사상가이자 유학자로, 성은 순(荀), 이름[名]은 황(况), 자(字)는 경(卿)이다. 순경(荀卿)이 아니라 손경(孫卿)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순(荀)과 손(孫)의 옛소리[古音]가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비판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예(禮)를 강조하는 유학 사상을 발달시켰다.
<사기(史記)>의 '순경열전(荀卿列傳)'에 따르면, 순자는 조(趙) 나라 출신으로 나이 50세 무렵에 제(齊) 나라에 유학(遊學)하여 최장로(最長老)의 학사(學士)로 세 차례나 제주(祭酒)를 지냈다. 후에 참소(讒訴)를 받아 제(齊)를 떠난 순자는 초(楚)의 재상(宰相) 춘신군(春申君)의 천거로 난릉(蘭陵, 山東省)의 수령이 되었다. 춘신군이 암살되자(BC 238), 벼슬 자리에서 물러난 순자는 난릉에 머물며 문인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며 여생을 마쳤다.
그의 사상은 전한(前漢) 말기에 <손경신서(孫卿新書)> 32편으로 정리되었고, 당(唐)의 양량(楊倞)은 여기에 주(註)를 붙이고 20권 32편으로 다시 정리했으며 명칭을 <손경자(孫卿子)>라 하였다. 오늘날 <손경신서(孫卿新書)>는 망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며, 양량(楊倞)의 주석본이 간략히 <순자(荀子)>라고 불리며 전해지고 있다. <순자> 32편은 '권학(勸學), 수신(修身), 불구(不苟), 영욕(榮辱), 비상(非相), 비십이자(非十二子), 중니(仲尼), 유효(儒效), 왕제(王制), 부국(富國), 왕패(王霸), 군도(君道), 신도(臣道), 치사(致士), 의병(議兵), 강국(彊國), 천론(天論), 정론(正論), 예론(禮論), 악론(樂論), 해폐(解蔽), 정명(正名), 성악(性惡), 군자(君子), 성상(成相), 부(賦), 대략(大略), 유좌(宥坐), 자도(子道), 법행(法行), 애공(哀公), 요문(堯問)'으로 구성되어 있다.
荀子(순자)
守株待兎 (수주대토, shǒuzhūdàitù)
守株待兎(수주대토)
守株待兔(shǒuzhūdàitù)
守 지킬 수 | 株 그루터기 주 | 待 기다릴 대 | 兎 토끼 토 |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요행만을 바라다. 일천한 경험만 고집하며 변화를 도모하지 않다. 융통성이 없다.
원래 그루터기를 지켜보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말이다.
한비(韓非)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더니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것을 본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서 죽을 줄 알고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곧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刻舟求劍(각주구검) |
반의어
與世推移(여세추이)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간다는 뜻 |
Tag
韓非子(한비자) | 미련[stupidity] | 토끼 |
守株待兔(shǒuzhūdàitù)
守 지킬 수 | 株 그루터기 주 | 待 기다릴 대 | 兎 토끼 토 |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요행만을 바라다. 일천한 경험만 고집하며 변화를 도모하지 않다. 융통성이 없다.
원래 그루터기를 지켜보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말이다.
한비(韓非)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더니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것을 본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서 죽을 줄 알고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곧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刻舟求劍(각주구검) |
반의어
與世推移(여세추이)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간다는 뜻 |
Tag
韓非子(한비자) | 미련[stupidity] | 토끼 |
壽則多辱 (수즉다욕)
壽則多辱(수즉다욕)
壽 목숨 수 | 則 곧 즉, 법칙 칙 | 多 많을 다 | 辱 욕되게 할 욕 |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苦生)이나 망신(亡身)이 많음을 이르는 말
≪莊子(장자)≫天地篇(천지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堯(요)임금이 화주(華州)에 갔을 때 그 곳 관문을 지키는 봉인이 요임금께 말했다.
"성인(聖人)이시여! 성인께서 장수하시도록 축복해주소서."
이에 요 임금은 대답하였다.
"사양하겠습니다."
다시 그 봉인이 말했다.
"부자가 되시기를 빕니다."
요 임금은 또 다시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봉인이 말했다.
"아드님을 많이 두시기를 비옵니다."
이번에도 요 임금은 사양하겠다고 말을 하였다. 봉인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요 임금은 대답(對答)하였다.
"아들을 많이 두면 걱정 근신이 많고 부유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됨이 많으니라. 세 가지는 덕을 길러 주는 까닭이 못되느니라.[多男子則多懼(다남자칙다구)요 富則多事(부칙다사)요 壽則多辱(수칙다욕)이라. 是三者(시삼자)는 非所以養德也(비소이양덕야)라.]"
이 말에 봉인은 이렇게 반박을 했다.
"나는 처음 당신을 거룩한 성인인 줄로 알았더니 이제 보니 겨우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군요. 자식이 많다 해도 각각 제 할 일을 맡겨 주면 되고 부자가 되더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면 됩니다. 천 년이나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상제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삼환(三患 : 병ㆍ늙음ㆍ죽음)과 재앙이 없다면 오래 산다 해도 무슨 욕될 것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남기고, 그가 떠나려 하자 그 말에 감탄(感歎ㆍ感嘆)하여 요임금이 물을 것이 있다고 청했으나 그 봉인은 돌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출전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壽則多辱(수즉다욕) | 多男多懼(다남다구) |
壽 목숨 수 | 則 곧 즉, 법칙 칙 | 多 많을 다 | 辱 욕되게 할 욕 |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苦生)이나 망신(亡身)이 많음을 이르는 말
≪莊子(장자)≫天地篇(천지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堯(요)임금이 화주(華州)에 갔을 때 그 곳 관문을 지키는 봉인이 요임금께 말했다.
"성인(聖人)이시여! 성인께서 장수하시도록 축복해주소서."
이에 요 임금은 대답하였다.
"사양하겠습니다."
다시 그 봉인이 말했다.
"부자가 되시기를 빕니다."
요 임금은 또 다시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봉인이 말했다.
"아드님을 많이 두시기를 비옵니다."
이번에도 요 임금은 사양하겠다고 말을 하였다. 봉인이 사양하는 이유를 묻자, 요 임금은 대답(對答)하였다.
"아들을 많이 두면 걱정 근신이 많고 부유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됨이 많으니라. 세 가지는 덕을 길러 주는 까닭이 못되느니라.[多男子則多懼(다남자칙다구)요 富則多事(부칙다사)요 壽則多辱(수칙다욕)이라. 是三者(시삼자)는 非所以養德也(비소이양덕야)라.]"
이 말에 봉인은 이렇게 반박을 했다.
"나는 처음 당신을 거룩한 성인인 줄로 알았더니 이제 보니 겨우 군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군요. 자식이 많다 해도 각각 제 할 일을 맡겨 주면 되고 부자가 되더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면 됩니다. 천 년이나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상제가 있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삼환(三患 : 병ㆍ늙음ㆍ죽음)과 재앙이 없다면 오래 산다 해도 무슨 욕될 것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남기고, 그가 떠나려 하자 그 말에 감탄(感歎ㆍ感嘆)하여 요임금이 물을 것이 있다고 청했으나 그 봉인은 돌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출전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壽則多辱(수즉다욕) | 多男多懼(다남다구) |
荀子 (순자) 荀況 (순황)
荀子(순자) 荀況(순황)
중국 주(周)나라 때의 유학자 순자(荀子:荀況)의 사상(思想)을 집록한 책.
처음에는 《손경신서(孫卿新書)》라고 하였다. 현본은 20권 33편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12권 322편이던 것을 한(漢)의 유향(劉向)이 중복을 정리하여 32편으로 만들고, 다시 당(唐)나라 때 양량(楊倞)이 20권 32편으로 개편, 주(注)를 달고 서명을 《손경자(孫卿子)》라 개칭하였다가 후에 《순자》라고 간략히 불리게 되었다. 문헌학적(文獻學的)으로는 편(篇)의 순서에 따라 수신파 전승(修身派傳承)이 6편, 치국파(治國派) 9편, 이론파(理論派) 6편, 나머지는 순자 문인들의 잡록(雜錄)으로 유별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권학(勸學) ·예론(禮論) ·성악론(性惡論)이 중심을 이룬다.
공자(孔子) 이후 맹자(孟子)에 의하여 정비된 유교는 내면적 ·주관적인 입장만이 강화되었으므로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예(禮)의 사상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하였다.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천(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늘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천공(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하늘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으로서는 귀중한 뜻을 지녔으나 유교의 전체적 역사에서 볼 때는 이단적(異端的)이었다.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예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예는 순자의 경우 성인(聖人)이 정한 사회규범(社會規範)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수양(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선(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며 예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즉, ‘인성(人性)은 악(惡)’이며 ‘날 때부터 이(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爭奪)과 살육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교정(矯正)하는 ‘사법(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위(僞:人爲)에 의해서만 치세(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 하여, 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는 성악설(性惡說)이 태어났다. 송대(宋代) 이후 이 성악설과 천(天) ·인(人) 분리설로 인하여 이단시되어 왔으나 그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한대(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관련 한자어
勞而無功(노이무공)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 정명편
人生不能無群(인생불능무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여럿이서 모여살 수 밖에 없다.
靑出於藍(청출어람)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이르는 말.勸學篇(권학편)
중국 주(周)나라 때의 유학자 순자(荀子:荀況)의 사상(思想)을 집록한 책.
처음에는 《손경신서(孫卿新書)》라고 하였다. 현본은 20권 33편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12권 322편이던 것을 한(漢)의 유향(劉向)이 중복을 정리하여 32편으로 만들고, 다시 당(唐)나라 때 양량(楊倞)이 20권 32편으로 개편, 주(注)를 달고 서명을 《손경자(孫卿子)》라 개칭하였다가 후에 《순자》라고 간략히 불리게 되었다. 문헌학적(文獻學的)으로는 편(篇)의 순서에 따라 수신파 전승(修身派傳承)이 6편, 치국파(治國派) 9편, 이론파(理論派) 6편, 나머지는 순자 문인들의 잡록(雜錄)으로 유별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권학(勸學) ·예론(禮論) ·성악론(性惡論)이 중심을 이룬다.
공자(孔子) 이후 맹자(孟子)에 의하여 정비된 유교는 내면적 ·주관적인 입장만이 강화되었으므로 순자는 이에 반대하여 공자의 예(禮)의 사상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유교를 재정비하였다. 먼저 공자나 맹자에서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온 천(天)의 권위를 부정하고 하늘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연의 천공(天空)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 ‘하늘과 사람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선언으로서는 귀중한 뜻을 지녔으나 유교의 전체적 역사에서 볼 때는 이단적(異端的)이었다. 독립된 인간의 존엄성은 예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예는 순자의 경우 성인(聖人)이 정한 사회규범(社會規範)으로 뚜렷한 객관적 형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것만이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치도 발휘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수양(修養)은 맹자와 같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선(善)으로 보아 그 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니며 예의 형식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후천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즉, ‘인성(人性)은 악(惡)’이며 ‘날 때부터 이(利)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방치하면 쟁탈(爭奪)과 살육이 발생하기 때문에 악이라는 본성을 교정(矯正)하는 ‘사법(師法)의 가르침과 예의의 길’인 위(僞:人爲)에 의해서만 치세(治世)를 실현할 수 있다 하여, 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는 성악설(性惡說)이 태어났다. 송대(宋代) 이후 이 성악설과 천(天) ·인(人) 분리설로 인하여 이단시되어 왔으나 그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포함한 사상의 과학적 성격은 한대(漢代) 유교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의의와 함께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관련 한자어
勞而無功(노이무공)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 정명편
人生不能無群(인생불능무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여럿이서 모여살 수 밖에 없다.
靑出於藍(청출어람)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이르는 말.勸學篇(권학편)
水滴穿石 (수적천석)
水滴穿石(수적천석)
水 물 수 | 滴 물방울 적 | 穿 뚫을 천 | 石 돌 석 |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努力)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繼續)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
`물방울이 돌도 뚫는다`는 뜻이다. 송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서 유래됐다.
중국 숭양 지방을 다스리던 장괴애가 관청 창고에서 엽전 하나를 훔친 하급 관리를 체포했다.
그를 잡아놓고 곤장을 치려 하자 지켜보던 여러 관리들이 "그까짓 엽전 하나 때문에 중벌을 내리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며 항의했다. 이를 듣고 장괴애는 크게 화가 났다. "하루에 엽전 한 냥은 천 일이면 천 냥이 된다. 물방울이 돌도 뚫는다." 결국 곤장으로 끝날 것을 장괴애는 문제의 관리를 사형시켰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水滴穿石(수적천석) | 點滴穿石(점적천석) | 積土成山(적토성산) | 積水成淵(적수성연) | 愚公移山(우공이산) | 山溜穿石(산류천석) |
水 물 수 | 滴 물방울 적 | 穿 뚫을 천 | 石 돌 석 |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努力)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繼續)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
`물방울이 돌도 뚫는다`는 뜻이다. 송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서 유래됐다.
중국 숭양 지방을 다스리던 장괴애가 관청 창고에서 엽전 하나를 훔친 하급 관리를 체포했다.
그를 잡아놓고 곤장을 치려 하자 지켜보던 여러 관리들이 "그까짓 엽전 하나 때문에 중벌을 내리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며 항의했다. 이를 듣고 장괴애는 크게 화가 났다. "하루에 엽전 한 냥은 천 일이면 천 냥이 된다. 물방울이 돌도 뚫는다." 결국 곤장으로 끝날 것을 장괴애는 문제의 관리를 사형시켰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水滴穿石(수적천석) | 點滴穿石(점적천석) | 積土成山(적토성산) | 積水成淵(적수성연) | 愚公移山(우공이산) | 山溜穿石(산류천석) |
水魚之交 (수어지교, shuǐyúzhījiāo)
水魚之交(수어지교)
水鱼之交(shuǐyúzhījiāo)
水 물 수 | 魚 고기 어,물고기 어 | 之 갈 지 | 交 사귈 교 |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①임금과 신하(臣下) 또는 부부(夫婦) 사이처럼 매우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 ②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親)한 사이를 일컫는 말.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劉備)와 제갈 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
삼국 시대 때,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강북의 땅을 평정하고 오(吳)나라 손권(孫權)은 강동의 땅에 의거하여 각각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촉(蜀)의 유비는 확실한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 등의 용장은 있었지만 모사(謀士)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군사로 맞이할 수 있었으니 유비의 기쁨은 대단했다.
제갈공명은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제압해 근거지로 삼을 것, 서쪽은 융(戎)과 화목하고, 남쪽은 월(越)을 회유해 후환을 없앨 것, 정치를 고르게 하여 부국강병의 실을 거둘 것, 손권과 손잡아 조조를 고립시키고, 기회를 보아 조조를 무찌를 것 등을 헌책했다. 유비는 전폭적인 신뢰를 공명에게 쏟고, 군신의 정은 날로 더해 갔다. 관우와 장비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예인데다가 나이 또한 젊은 공명이 더 중요시되고 자신들은 업신여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공명은 27세로 유비보다 20세나 연하였다.
이것을 알아챈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달래어 말했다. "나에게 공명은 물고기에게 물이 잇는 것과 같다. 두말 없기를 바란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유의어
芝蘭之交(지란지교) | 鱼水(yúshuǐ) 어수. 물고기와 물처럼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 | 鱼水情深(어수정심) 물고기와 물처럼 친밀하고 정이 깊다. | 魚水之樂(어수지락)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 |
참조어
三顧草廬(삼고초려) |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삼국지:촉지:제갈량전 |
三國志:蜀志:諸葛亮傳 |
水鱼之交(shuǐyúzhījiāo)
水 물 수 | 魚 고기 어,물고기 어 | 之 갈 지 | 交 사귈 교 |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①임금과 신하(臣下) 또는 부부(夫婦) 사이처럼 매우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 ②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親)한 사이를 일컫는 말.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劉備)와 제갈 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
삼국 시대 때,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강북의 땅을 평정하고 오(吳)나라 손권(孫權)은 강동의 땅에 의거하여 각각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촉(蜀)의 유비는 확실한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 등의 용장은 있었지만 모사(謀士)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군사로 맞이할 수 있었으니 유비의 기쁨은 대단했다.
제갈공명은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제압해 근거지로 삼을 것, 서쪽은 융(戎)과 화목하고, 남쪽은 월(越)을 회유해 후환을 없앨 것, 정치를 고르게 하여 부국강병의 실을 거둘 것, 손권과 손잡아 조조를 고립시키고, 기회를 보아 조조를 무찌를 것 등을 헌책했다. 유비는 전폭적인 신뢰를 공명에게 쏟고, 군신의 정은 날로 더해 갔다. 관우와 장비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예인데다가 나이 또한 젊은 공명이 더 중요시되고 자신들은 업신여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공명은 27세로 유비보다 20세나 연하였다.
이것을 알아챈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달래어 말했다. "나에게 공명은 물고기에게 물이 잇는 것과 같다. 두말 없기를 바란다."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유의어
芝蘭之交(지란지교) | 鱼水(yúshuǐ) 어수. 물고기와 물처럼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 | 鱼水情深(어수정심) 물고기와 물처럼 친밀하고 정이 깊다. | 魚水之樂(어수지락)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 |
참조어
三顧草廬(삼고초려) |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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霄壤之判 (소양지판, xiāorǎngzhīpàn)
霄壤之判(소양지판)
霄壤之判(xiāorǎng zhī pàn)
두 사물이 서로 엄청나게 다름.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
비슷한 말
천양지차(天壤之差)| 소양지간(霄壤之間)| 소양지판(霄壤之判)| 운니지차(雲泥之差)| 천연지차(天淵之差)| 천양지차(天壤之差)| 霄壤之别(xiāorǎngzhībié)
霄壤之判(xiāorǎng zhī pàn)
두 사물이 서로 엄청나게 다름.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
비슷한 말
천양지차(天壤之差)| 소양지간(霄壤之間)| 소양지판(霄壤之判)| 운니지차(雲泥之差)| 천연지차(天淵之差)| 천양지차(天壤之差)| 霄壤之别(xiāorǎngzhībié)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樹 나무 수 | 欲 하고자 할 욕 | 靜 고요할 정 | 而 어조사 이 | 風 바람 풍 | 不 아닐 부 | 止 그칠 지 |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로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살아계시지 않는다는 뜻.
《한씨외전(韓氏外傳)》 9권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풍목지비(風木之悲)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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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木之悲(풍목지비) | 風樹之嘆(풍수지탄) |
樹 나무 수 | 欲 하고자 할 욕 | 靜 고요할 정 | 而 어조사 이 | 風 바람 풍 | 不 아닐 부 | 止 그칠 지 |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로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살아계시지 않는다는 뜻.
《한씨외전(韓氏外傳)》 9권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풍목지비(風木之悲)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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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木之悲(풍목지비) | 風樹之嘆(풍수지탄) |
修人事待天命 (수인사대천명)
修人事待天命(수인사대천명)
修 닦을 수 | 人 사람 인 | 事 일 사 | 待 기다릴 대 | 天 하늘 천 | 命 명령할 명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운명에 맡김.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비슷한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적벽에서 위(魏)나라 조조(曹操:155∼220)가 오(吳)·촉(蜀) 연합군과 전투를 벌인 적벽대전(赤壁大戰) 중에 촉나라의 관우(關羽:?∼219)는 제갈 량(諸葛亮:181∼234)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화용도(華容道)에서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제갈 량은 관우를 참수하려 하였으나 유비(劉備:161∼223)의 간청에 따라 관우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라고 하였다.
盡人事待天命은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수동적 의미, 修人事待天命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든 도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후에 천명을 기다린다는 능동적 의미가 있다고 구분짓기도 하나 실제 사용하는 뜻에는 큰 차이가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修人事待天命(수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
修 닦을 수 | 人 사람 인 | 事 일 사 | 待 기다릴 대 | 天 하늘 천 | 命 명령할 명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운명에 맡김.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속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비슷한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적벽에서 위(魏)나라 조조(曹操:155∼220)가 오(吳)·촉(蜀) 연합군과 전투를 벌인 적벽대전(赤壁大戰) 중에 촉나라의 관우(關羽:?∼219)는 제갈 량(諸葛亮:181∼234)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화용도(華容道)에서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길을 내주어 달아나게 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제갈 량은 관우를 참수하려 하였으나 유비(劉備:161∼223)의 간청에 따라 관우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라고 하였다.
盡人事待天命은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수동적 의미, 修人事待天命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든 도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후에 천명을 기다린다는 능동적 의미가 있다고 구분짓기도 하나 실제 사용하는 뜻에는 큰 차이가 없음.
관련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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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人事待天命(수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
順手牽羊 (순수견양, xiàolǐcángdāo)
順手牽羊(순수견양)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順 순할 순 | 手 손 수 | 牽 끌 견 | 羊 양 양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二計.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다' 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을 뜻한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적의 허점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이에 편승하라는 뜻으로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少陰,少陽.)"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에 눌러앉은 유비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吳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吳의 주유와 손권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의 이교(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손권의 이모. 손권의 친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그 이모가 길렀다)를 만나 경사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에 왔다. 손권은 현덕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 황충, 위연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이나, 정사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수견양 계략은 실행하는 데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많다.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順 순할 순 | 手 손 수 | 牽 끌 견 | 羊 양 양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二計.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다' 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을 뜻한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적의 허점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이에 편승하라는 뜻으로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少陰,少陽.)"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에 눌러앉은 유비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吳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吳의 주유와 손권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의 이교(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손권의 이모. 손권의 친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그 이모가 길렀다)를 만나 경사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에 왔다. 손권은 현덕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 황충, 위연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이나, 정사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수견양 계략은 실행하는 데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많다.
樹上開花 (수상개화, shùshàngkāihuā)
樹上開花(수상개화)
树上开花(shùshàng kāihuā)
樹 나무 수 | 上 윗 상 | 開 열 개 | 花 꽃 화 |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라는 뜻으로, 본래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9번째 계책이다.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 꽃이 피다)가 전화(轉化)한 것으로, 원래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의 하나인 삼십육계에서는 병전계(倂戰計:동맹 등을 맺어 함께 싸울 때의 계략)에 속하는 29번째 계책으로 사용되었다. 원뜻은 '꽃이 없는 나무 위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형세에 따라 위세를 떨치면, 작은 세력이라도 큰 세력처럼 꾸밀 수 있다.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개를 활짝 펴고 대형을 이루어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곧, 아군의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어떤 요인을 빌려 아군을 강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어 굴복시키는 것이다.
보통 병법들이 '있으면서도 없는척'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된다. 손자병법 등의 병법서에서는 일관적으로 '우리측이 유리해도 열세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상대방의 방심을 이끌어 내서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서도 있는척' 이라는 것은 우세한 상대방의 경계를 이끌어 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 이야기이다. 이때 유비는 형주에 있다가 조조의 군세에 쫓겨 동오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른데다가, 병사도 적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또한 조조군의 추격 속에 유비의 식솔들과 장수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장비는 유비군의 후위를 맡아 長坂橋(장판교)에 버티고 섰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는 기병 20여명뿐이었다. 장비는 다리 일대에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병사들에게 나뭇가지를 잘라 말꼬리에 매달고 숲속을 달리게 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했다. 그로 인해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장팔사모를 비껴 든 채 다리 위에 멈춰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빙이 이끄는 조조군이 장판교 어귀에 다다랐다. 장비가 호랑이 수염을 곧추세우고 고리눈을 부릅뜬채 장팔사모를 뻗쳐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다리 건너편 숲속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이에 문빙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잠시후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료, 장합, 허저 등의 장수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들은 모두 장비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제갈량의 계책이 아닌가 싶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에 조조가 보고를 받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이를 보고 장비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바로 燕人 張翼德(연인 장익덕)이다! 어느 누가 나와 한 판 겨뤄 보겠느냐!"
목소리가 마치 천둥을 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는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조조가 급히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전에 운장에게 들으니, 익덕은 백만대군에 둘러싸여 있는 上將의 목을 식은 죽 먹듯이 벨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만났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비가 또다시 외쳤다.
"싸우나 하면, 싸우지도 않고, 물러가나 하면 물러가지도 않으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장비의 고함소리에 조조의 옆에 있던 하후걸이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조조군의 모든 병사와 장수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사람은 썰물처럼 빠지고 말들은 산사태가 무너지는 듯 서로가 밟고 밟히었다. 장비의 위용과 숲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복병 때문에 조조군은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여 조조로 하여금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나아가 판단을 그르치게 한 것이 바로 장비의 '수상개화'였던 것이다.
이후 장비는 장판교를 끊고 유비에게 달려가 자신이 한 일을 얘기했다. 유비가 말했다.
"나의 아우가 용감하긴 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이 애석하다."
장비가 까닭을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조조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네가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그는 매복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감히 전진하지 못했겠지만 이제 다리를 끊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겁을 먹고 있고 군사도 없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다."
树上开花(shùshàng kāihuā)
樹 나무 수 | 上 윗 상 | 開 열 개 | 花 꽃 화 |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라는 뜻으로, 본래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9번째 계책이다.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 꽃이 피다)가 전화(轉化)한 것으로, 원래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의 하나인 삼십육계에서는 병전계(倂戰計:동맹 등을 맺어 함께 싸울 때의 계략)에 속하는 29번째 계책으로 사용되었다. 원뜻은 '꽃이 없는 나무 위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형세에 따라 위세를 떨치면, 작은 세력이라도 큰 세력처럼 꾸밀 수 있다.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개를 활짝 펴고 대형을 이루어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곧, 아군의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어떤 요인을 빌려 아군을 강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어 굴복시키는 것이다.
보통 병법들이 '있으면서도 없는척'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된다. 손자병법 등의 병법서에서는 일관적으로 '우리측이 유리해도 열세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상대방의 방심을 이끌어 내서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서도 있는척' 이라는 것은 우세한 상대방의 경계를 이끌어 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 이야기이다. 이때 유비는 형주에 있다가 조조의 군세에 쫓겨 동오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른데다가, 병사도 적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또한 조조군의 추격 속에 유비의 식솔들과 장수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장비는 유비군의 후위를 맡아 長坂橋(장판교)에 버티고 섰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는 기병 20여명뿐이었다. 장비는 다리 일대에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병사들에게 나뭇가지를 잘라 말꼬리에 매달고 숲속을 달리게 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했다. 그로 인해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장팔사모를 비껴 든 채 다리 위에 멈춰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빙이 이끄는 조조군이 장판교 어귀에 다다랐다. 장비가 호랑이 수염을 곧추세우고 고리눈을 부릅뜬채 장팔사모를 뻗쳐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다리 건너편 숲속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이에 문빙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잠시후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료, 장합, 허저 등의 장수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들은 모두 장비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제갈량의 계책이 아닌가 싶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에 조조가 보고를 받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이를 보고 장비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바로 燕人 張翼德(연인 장익덕)이다! 어느 누가 나와 한 판 겨뤄 보겠느냐!"
목소리가 마치 천둥을 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는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조조가 급히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전에 운장에게 들으니, 익덕은 백만대군에 둘러싸여 있는 上將의 목을 식은 죽 먹듯이 벨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만났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비가 또다시 외쳤다.
"싸우나 하면, 싸우지도 않고, 물러가나 하면 물러가지도 않으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장비의 고함소리에 조조의 옆에 있던 하후걸이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조조군의 모든 병사와 장수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사람은 썰물처럼 빠지고 말들은 산사태가 무너지는 듯 서로가 밟고 밟히었다. 장비의 위용과 숲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복병 때문에 조조군은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여 조조로 하여금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나아가 판단을 그르치게 한 것이 바로 장비의 '수상개화'였던 것이다.
이후 장비는 장판교를 끊고 유비에게 달려가 자신이 한 일을 얘기했다. 유비가 말했다.
"나의 아우가 용감하긴 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이 애석하다."
장비가 까닭을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조조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네가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그는 매복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감히 전진하지 못했겠지만 이제 다리를 끊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겁을 먹고 있고 군사도 없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다."
手無分錢 (수무푼전)
手無分錢(수무푼전)
手 손 수 | 無 없을 무 | 分 나눌 분, 푼 푼 | 錢 돈 전 |
수중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
手 손 수 | 無 없을 무 | 分 나눌 분, 푼 푼 | 錢 돈 전 |
수중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
脣亡齒寒 (순망치한)
脣亡齒寒(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곧 利害(이해)관계가 밀접해서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위태로워진다는 뜻.
춘추시대의 대국이었던 晋(진)나라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쳐부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진나라 獻公(헌공)은 괵나라도 정복하려고 했는데 이 나라를 치려면 虞(우)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헌공은 우나라 虞公(우공)에게 名馬(명마)와 구슬을 禮物(예물)로 보내고 형제의 우의를 약속하며 길을 빌려달라고 간청했다. 우공은 값진 예물과 감언이설에 솔깃하여 제의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진나라의 속셈을 알고 있는 宮之奇(궁지기)라는 賢臣(현신)이 이를 말리며 간했다.
『괵나라는 우나라의 표면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반드시 따라서 망할 것입니다. 진나라에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속담에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보거상의)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순망치한)」고 했는데 이는 바로 우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하지만 진나라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공은 궁지기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진나라와 우나라는 모두 周(주)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뿌리가 같은 나라가 아니오. 진나라가 우리를 해칠 리는 없소』
결국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궁지기는 가족을 이끌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때 그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 해 12월 진나라는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공격하여 멸망시켜 버렸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곧 利害(이해)관계가 밀접해서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위태로워진다는 뜻.
춘추시대의 대국이었던 晋(진)나라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쳐부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진나라 獻公(헌공)은 괵나라도 정복하려고 했는데 이 나라를 치려면 虞(우)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헌공은 우나라 虞公(우공)에게 名馬(명마)와 구슬을 禮物(예물)로 보내고 형제의 우의를 약속하며 길을 빌려달라고 간청했다. 우공은 값진 예물과 감언이설에 솔깃하여 제의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진나라의 속셈을 알고 있는 宮之奇(궁지기)라는 賢臣(현신)이 이를 말리며 간했다.
『괵나라는 우나라의 표면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반드시 따라서 망할 것입니다. 진나라에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속담에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보거상의)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순망치한)」고 했는데 이는 바로 우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하지만 진나라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공은 궁지기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진나라와 우나라는 모두 周(주)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뿌리가 같은 나라가 아니오. 진나라가 우리를 해칠 리는 없소』
결국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궁지기는 가족을 이끌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때 그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 해 12월 진나라는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공격하여 멸망시켜 버렸다.
水落石出 (수락석출)
水落石出(수락석출)
水落石出(shuǐluòshíchū)
水 물 수 | 落 떨어질 락(낙) | 石 돌 석 | 出 날 출 |
①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물가(物價)의 겨울 경치(景致)를 일컫는 말 ② 물길이 넉넉할 때는 가려졌던 바위들의 괴상한 모양새가 속속 드러난다는 뜻 ③ 나중에 사건(事件)의 진상(眞相)이 명백(明白)하게 드러남의 비유(比喩ㆍ譬喩)
get to the bottom of; when the water subsides the rocks emerge—the truth is fully revealed
송나라 신종(神宗) 때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시행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한 소동파는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로 좌천되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적벽(赤壁)을 찾아 2수의 부(賦)를 지었다. 이 적벽은 삼국시대의 적벽대전으로 알려진 곳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곳이었지만, 소동파는 적벽대전을 생각하며 '적벽부'를 지었다. '후적벽부'는 '적벽부'를 지은 지 3개월 뒤인 음력 10월에 지었다.
늦가을이 되어 다시 찾은 적벽의 경관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그리하여 소동파는 "흐르는 강물 소리, 깎아지른 천 길 절벽. 우뚝 솟은 산과 작은 달,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 해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리도 강산을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라고 묘사하였다.
이처럼 수락석출은 본래 물가의 경치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물이 줄어들어 돌이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일의 흑막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유래]
소동파(蘇東坡) 후적벽부(後赤壁賦)
水落石出(shuǐluòshíchū)
水 물 수 | 落 떨어질 락(낙) | 石 돌 석 | 出 날 출 |
①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물가(物價)의 겨울 경치(景致)를 일컫는 말 ② 물길이 넉넉할 때는 가려졌던 바위들의 괴상한 모양새가 속속 드러난다는 뜻 ③ 나중에 사건(事件)의 진상(眞相)이 명백(明白)하게 드러남의 비유(比喩ㆍ譬喩)
get to the bottom of; when the water subsides the rocks emerge—the truth is fully revealed
송나라 신종(神宗) 때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시행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한 소동파는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로 좌천되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였는데, 적벽(赤壁)을 찾아 2수의 부(賦)를 지었다. 이 적벽은 삼국시대의 적벽대전으로 알려진 곳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곳이었지만, 소동파는 적벽대전을 생각하며 '적벽부'를 지었다. '후적벽부'는 '적벽부'를 지은 지 3개월 뒤인 음력 10월에 지었다.
늦가을이 되어 다시 찾은 적벽의 경관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그리하여 소동파는 "흐르는 강물 소리, 깎아지른 천 길 절벽. 우뚝 솟은 산과 작은 달,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 해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리도 강산을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江流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라고 묘사하였다.
이처럼 수락석출은 본래 물가의 경치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물이 줄어들어 돌이 드러나는 것처럼 어떤 일의 흑막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유래]
소동파(蘇東坡) 후적벽부(後赤壁賦)
水到船浮 (수도선부)
水到船浮(수도선부)
水 물 수 | 到 이를 도 | 船 배 선 | 浮 뜰 부 |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른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냄.
욕심을 부려 억지로 하지 않고 공력을 쌓으며 기다리면 큰일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주자전서 32권 답장경부(答張敬夫)편에 나오는 말
[출전]
주자어류(朱子語類)
水 물 수 | 到 이를 도 | 船 배 선 | 浮 뜰 부 |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른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냄.
욕심을 부려 억지로 하지 않고 공력을 쌓으며 기다리면 큰일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주자전서 32권 답장경부(答張敬夫)편에 나오는 말
[출전]
주자어류(朱子語類)
熟能生巧 (숙능생교)
熟能生巧(숙능생교)
熟能生巧 [shúnéngshēngqiǎo]
- 中國俗談
오랜 기간 수련해야 뛰어난 기교를 발휘함 [熟能生巧(숙능생교)]
- 중국속담(中國俗談)
출전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Practice makes perfect. [Latin Proverb]
훈련이 완벽을 만든다. [라틴속담]
熟能生巧 [shúnéngshēngqiǎo]
- 中國俗談
오랜 기간 수련해야 뛰어난 기교를 발휘함 [熟能生巧(숙능생교)]
- 중국속담(中國俗談)
출전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Practice makes perfect. [Latin Proverb]
훈련이 완벽을 만든다. [라틴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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