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日京兆 (오일경조)

五日京兆(오일경조)

五日京兆[wǔrìjīngzhào]

五 다섯 오 | 日 날 일, 해 일 | 京 서울 경 | 兆 조 조, 조짐 조 |

닷새 동안의 경조윤(京兆尹)이라는 뜻으로, 오래 계속(繼續)되지 못한 관직(官職), 또는 그런 일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에 실린 이야기다.

한(漢)나라 선제(宣帝)때, 장창(張敞)은 수도 장안(長安)의 부윤(府尹), 즉 경조윤(京兆尹)을 지냈는데, 중랑장(中郞將) 양운과 막역한 사이였다. 양운은 청렴하고, 총명하고 재능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모함을 받아 면직되었고, 나중에는 대역무도의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양운과 막역한 사이인 장창의 벼슬도 박탈하여야 마땅하다고 상주하였으나, 장창의 재능을 아끼는 선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창의 수하에 서순(絮舜)이라는 부하가 있었다. 그는 도적 잡는 적포연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부 대신들이 장창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장창이 곧 파면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건을 조사하라는 장창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귀가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충고하자 서순은 "나는 경조윤을 위하여 할만큼 했소이다. 지금 경조윤은 남은 임기가 길어야 닷새일 것이니 어찌 사건을 다시 수사할 수 있겠소[吾爲是公盡力多矣, 今五日京兆耳, 安能復案事]"라고 말했다.

장창이 이 말을 듣고 부하들을 시켜 서순을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마침 12월이 며칠 남지 않은 때였는데, 당시 한나라의 형법은 매년 12월에 사형을 집행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형리가 밤낮으로 서순의 사건을 조사하여 사형을 판결하고 즉시 집행하였다. 장창은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서순에게 "닷새 동안의 경조윤이 과연 어떠하냐? 12월도 이미 끝나려 하는데, 너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냐[五日京兆竟何如? 冬月已盡, 延命乎?]"라고 말하고는 처형하였다.

장창은 이 일로 서순의 가족들에게 원한을 사서 결국 경조윤에서 물러났다가 나중에 다시 등용되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오일경조는 재임 기간이 매우 짧은 관직이나 그러한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임기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관직을 떠나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한서·장창전(漢書·張敞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百日天下(백일천하) | 三日天下(삼일천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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