遠禍召福(원화소복)
불행을 물리치고 복을 부름.
元亨利貞 (원형이정)
元亨利貞(원형이정)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천도(天道)의 네 원리(原理)라는 뜻으로, ①사물(事物)의 근본(根本) 되는 원리(原理)②만물(萬物)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完成)함 ③또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서 유래
《주역》의 '건괘'에 "건은 원형이정이다(乾, 元亨利貞)"라고 하였다. '문언전(文言傳)'에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요,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요,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요,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군자는 이 4가지 덕을 행하는 고로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 故曰, 乾, 元亨利貞.
원형이정은 보통 만물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되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여기서 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봄(春)에,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夏)에,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가을(秋)에,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겨울(冬)에 해당된다. 원형이정은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를 뜻하기도 한다.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천도(天道)의 네 원리(原理)라는 뜻으로, ①사물(事物)의 근본(根本) 되는 원리(原理)②만물(萬物)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完成)함 ③또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서 유래
《주역》의 '건괘'에 "건은 원형이정이다(乾, 元亨利貞)"라고 하였다. '문언전(文言傳)'에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요,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요,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요,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군자는 이 4가지 덕을 행하는 고로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 故曰, 乾, 元亨利貞.
원형이정은 보통 만물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되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여기서 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봄(春)에,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夏)에,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가을(秋)에,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겨울(冬)에 해당된다. 원형이정은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를 뜻하기도 한다.
袁樞 (원추)
원추(袁樞, 1131-1205)
원추(袁樞, 1131-1205)의 자는 기중(機仲)이고, 남송의 건주(建州) 건안(建安, 현재의 복건) 사람이다. 효종 때 예부시에 응시하여 사부(詞賦)에 제1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온주판관(溫州判官)으로 임명되었고, 후에는 예부시관(禮部試官)이 되었다.
건도(乾道) 9년(1173) 엄주교수(嚴州敎授)로 나갔는데, 이 직은 학관(學官)의 일종으로 경문(經文)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한가한 직무여서 여유있게 글을 쓸 수가 있어서 《통감기사본말》42권을 저술하였다.
뒤에 국사원(國史院)의 편수관으로 임명되어 국사전(國史傳)을 나누어 편찬하였고, 또 공부시랑겸국자제주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영종(寧宗) 때 우문전수찬(右文殿修撰) 강릉지부(江陵知府)가 되었다. 개희(開禧) 원년에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송사》〈원추전〉에는 “원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평소 즐겨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방대한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건별로 구별해 그 내용이 연결되도록 하고, 이것을 《통감기사본말》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원추는 《자치통감》을 즐겨 읽었고《자치통감》의 내용과 사마광의 사상적 관점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옛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고, 과감히 《자치통감》을 개편하였는데, 그가 창조정신이 풍부한 사학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通鑑記事本末(통감기사본말)
원추(袁樞, 1131-1205)의 자는 기중(機仲)이고, 남송의 건주(建州) 건안(建安, 현재의 복건) 사람이다. 효종 때 예부시에 응시하여 사부(詞賦)에 제1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온주판관(溫州判官)으로 임명되었고, 후에는 예부시관(禮部試官)이 되었다.
건도(乾道) 9년(1173) 엄주교수(嚴州敎授)로 나갔는데, 이 직은 학관(學官)의 일종으로 경문(經文)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한가한 직무여서 여유있게 글을 쓸 수가 있어서 《통감기사본말》42권을 저술하였다.
뒤에 국사원(國史院)의 편수관으로 임명되어 국사전(國史傳)을 나누어 편찬하였고, 또 공부시랑겸국자제주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영종(寧宗) 때 우문전수찬(右文殿修撰) 강릉지부(江陵知府)가 되었다. 개희(開禧) 원년에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송사》〈원추전〉에는 “원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평소 즐겨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방대한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건별로 구별해 그 내용이 연결되도록 하고, 이것을 《통감기사본말》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원추는 《자치통감》을 즐겨 읽었고《자치통감》의 내용과 사마광의 사상적 관점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옛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고, 과감히 《자치통감》을 개편하였는데, 그가 창조정신이 풍부한 사학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通鑑記事本末(통감기사본말)
越陳越香 (월진월향)
월진월향(越陳越香)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가 더한다. 오래 묵힐 수록 더좋은 향기와 맛이 난다는 보이차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3.html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가 더한다. 오래 묵힐 수록 더좋은 향기와 맛이 난다는 보이차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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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朝秘史 (원조비사)
元朝秘史(원조비사)
몽골 역사서. 원(元)나라 태조(太祖)ㆍ태종(太宗) 양조(兩朝)의 실록(實錄). 태종조(太宗朝)의 편. 편자는 자세하지 않음. 정속(正續) 12권. 몽고글로 된 원본(原本)은 전(傳)하지 않으며, 명(明)나라 홍무 초년에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한 것이 있음
성립연대는 13세기 중기(1257년 이후)이고, 저자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위구르식의 몽골글자로 쓰여졌으나, 몽골 어로 된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1380년대 명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한자로 음역되고 각 권으로 나누어 진 것이 젼해진다. 각 단어 오른쪽에 중국어로 의미를 풀어 놓고, 각 절마다 그 끝에 중국어 번역문이 덧붙여져있다. 책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고 한다.
북아시아 유목민족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로서는 최고(最古)로, 내용은 몽골족(族)과 칭기즈칸의 선조에 대한 전승(傳承)·계보, 칭기즈칸의 일생과 태종[太宗]의 치세를 기록한 것으로, 몽골제국 성립시기 및 초기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몽골족이 서사시적인 수법을 많이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문헌이므로, 문학서와 중세 몽골어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몽골 역사서. 원(元)나라 태조(太祖)ㆍ태종(太宗) 양조(兩朝)의 실록(實錄). 태종조(太宗朝)의 편. 편자는 자세하지 않음. 정속(正續) 12권. 몽고글로 된 원본(原本)은 전(傳)하지 않으며, 명(明)나라 홍무 초년에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한 것이 있음
성립연대는 13세기 중기(1257년 이후)이고, 저자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위구르식의 몽골글자로 쓰여졌으나, 몽골 어로 된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1380년대 명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한자로 음역되고 각 권으로 나누어 진 것이 젼해진다. 각 단어 오른쪽에 중국어로 의미를 풀어 놓고, 각 절마다 그 끝에 중국어 번역문이 덧붙여져있다. 책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고 한다.
북아시아 유목민족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로서는 최고(最古)로, 내용은 몽골족(族)과 칭기즈칸의 선조에 대한 전승(傳承)·계보, 칭기즈칸의 일생과 태종[太宗]의 치세를 기록한 것으로, 몽골제국 성립시기 및 초기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몽골족이 서사시적인 수법을 많이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문헌이므로, 문학서와 중세 몽골어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越俎代庖 (월조대포)
越俎代庖(월조대포)
越俎代庖[yuèzǔdàipáo]
越 넘을 월 | 俎 도마 조 | 代 대신할 대 | 庖 부엌 포 |
도마를 넘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넘어 남의 직분이나 권한 따위를 침범하는 일을 이르는 말.
to exceed one's functions and meddle in other people's affairs; to take somebody else's job into one's own hands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요(堯)임금과 기산에 숨어 살았다는 은자(隱者) 허유(許由)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요(堯)나라 시절에 허유(許由)라는 덕이 높은 은자가 있었다. 요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태양[日月]이 밝은데 횃불을 계속 태우면, 그 빛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이러한 요임금의 권유에 허유는 뱁새와 두더지를 비유로 들며 다음과 같이 거절의 뜻를 표한다.
"태양이 떴으니 등불은 이제 필요없게 됐소. 부디 나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다스려 주시오."
그러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였다.
"임금께서 잘 다스리고 계시는데 제가 대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미새가 제 아무리 양껏 배부르게 먹는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그 작은 배만 채우면 됩니다. 제겐 천하가 아무 쓸모도 없고 흥미도 없습니다[予无所用天下爲(여무소용천하위)]. 요리가 서툴다고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그 직분을 넘어서 부엌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포인수불치포, 시축불월준조이대지의)]. 마찬가지로 폐하의 직무를 제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대신하더라도 잘될 리가 없습니다."
허유는 이렇게 말하고 곧바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 다시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노자의 사상을 철학으로서 완성시킨 장자의 사상의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최고권력이란 지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지만 이것이 단박에 거절할 수 있는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은자의 말은 세상에는 다 자신에 맞는 직분이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왕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越俎代庖란 자신의 직분을 넘어 타인의 일을 대신하는 것 을 말한다. 越俎之嫌(월조지혐)이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는 자신의 직분을 넘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다 라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越俎(월조) | 越俎之嫌(월조지혐) |
반의어·상대어
自力更生(자력갱생) |
越俎代庖[yuèzǔdàipáo]
越 넘을 월 | 俎 도마 조 | 代 대신할 대 | 庖 부엌 포 |
도마를 넘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넘어 남의 직분이나 권한 따위를 침범하는 일을 이르는 말.
to exceed one's functions and meddle in other people's affairs; to take somebody else's job into one's own hands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요(堯)임금과 기산에 숨어 살았다는 은자(隱者) 허유(許由)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요(堯)나라 시절에 허유(許由)라는 덕이 높은 은자가 있었다. 요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태양[日月]이 밝은데 횃불을 계속 태우면, 그 빛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이러한 요임금의 권유에 허유는 뱁새와 두더지를 비유로 들며 다음과 같이 거절의 뜻를 표한다.
"태양이 떴으니 등불은 이제 필요없게 됐소. 부디 나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다스려 주시오."
그러자 허유는 이를 거절하였다.
"임금께서 잘 다스리고 계시는데 제가 대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미새가 제 아무리 양껏 배부르게 먹는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그 작은 배만 채우면 됩니다. 제겐 천하가 아무 쓸모도 없고 흥미도 없습니다[予无所用天下爲(여무소용천하위)]. 요리가 서툴다고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그 직분을 넘어서 부엌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포인수불치포, 시축불월준조이대지의)]. 마찬가지로 폐하의 직무를 제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대신하더라도 잘될 리가 없습니다."
허유는 이렇게 말하고 곧바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 다시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노자의 사상을 철학으로서 완성시킨 장자의 사상의 일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최고권력이란 지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지만 이것이 단박에 거절할 수 있는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은자의 말은 세상에는 다 자신에 맞는 직분이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왕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越俎代庖란 자신의 직분을 넘어 타인의 일을 대신하는 것 을 말한다. 越俎之嫌(월조지혐)이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는 자신의 직분을 넘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다 라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越俎(월조) | 越俎之嫌(월조지혐) |
반의어·상대어
自力更生(자력갱생) |
遠水不救近火 (원수불구근화, yuǎnshuǐbújiùjìnhuǒ)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远水不救近火(yuǎn shuǐ bú jiù jìn huǒ)
遠 멀 원 | 水 물 수 | 不 아닐 불,아닐 부 | 救 구원할 구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火 불 화 |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所用)이 없음을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고 해도 이미 늦고, 또한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 바다에서 물을 가져와 끄려고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역시 늦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나라가 이웃의 제나라의 공격을 받는다면 진나라와 형나라가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노나라의 위난을 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목공(穆公)은 항상 제나라의 침략을 받아 불안해지자 자신의 아들들을 제(齊)와 대치하고 있는 초(楚)와 조·위·한나라로 보내 유사시에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위의 말은 목공의 이런 계산을 알아 챈 이서라는 신하가 간언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먼데 친척보다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고, 반대의 뜻을 가진 고사성어는 ‘원교근공’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遠族近隣(원족근린) | 遠水近火(원수근화) |
반의어
遠交近攻(원교근공) |
远水不救近火(yuǎn shuǐ bú jiù jìn huǒ)
遠 멀 원 | 水 물 수 | 不 아닐 불,아닐 부 | 救 구원할 구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火 불 화 |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所用)이 없음을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고 해도 이미 늦고, 또한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 바다에서 물을 가져와 끄려고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역시 늦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나라가 이웃의 제나라의 공격을 받는다면 진나라와 형나라가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노나라의 위난을 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목공(穆公)은 항상 제나라의 침략을 받아 불안해지자 자신의 아들들을 제(齊)와 대치하고 있는 초(楚)와 조·위·한나라로 보내 유사시에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위의 말은 목공의 이런 계산을 알아 챈 이서라는 신하가 간언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먼데 친척보다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고, 반대의 뜻을 가진 고사성어는 ‘원교근공’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遠族近隣(원족근린) | 遠水近火(원수근화) |
반의어
遠交近攻(원교근공) |
遠交近攻 (원교근공, yuǎnjiāojìngōng)
遠交近攻(원교근공)
远交近攻(yuǎnjiāojìngōng)
遠 멀 원 | 交 사귈 교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攻 칠 공 |
먼 나라와 친(親)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領土)를 넓힘, 중국(中國) 전국(戰國) 시대(時代)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한 외교(外交) 정책(政策).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하는 정책이다. 이 원교근공의 전략은 秦始皇(진시황)의 외교전략으로도 유명한 외교전략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3계에 나오는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혼란 중에 지리적 제약까지 있을 경우, 가까운 것부터 손에 넣는 것이 좋다. 멀리 있는 것부터 치면 해로울 뿐이다.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도 지리적 조건을 중요시해야 한다.[形禁勢格,利從近取,害以遠隔.上火下澤.]"
이는 전국시대 말기, 秦(진)나라에 망명해와 승상이 된 范雎(범저)가 제안한 외교전략을 당시 진소양왕에게 올린 전략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였던 범저(范雎)는 타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진(秦)나라로 피신하였다. 당시 진(秦)나라는 소양왕(昭襄王:재위 BC 306∼BC 251)의 모후인 선태후의 동생 양후(穰侯)가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齊)를 쳐서 자기 영토인 도(陶)를 확장하려 하였다.
이에 범저(范雎)는 왕에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지금 승상 양후 위염이 한나라와 손을 잡고 위나라 건너편에 있는 제나라를 칠 것이라고 하니 그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이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한(韓), 위(魏)의 양국을 거쳐 막강한 제를 침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약간의 군사를 보내보았자 제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보냈다가는 진나라만 손해를 입게 됩니다.
지난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엔 조나라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 가깝고, 위나라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제나라를 쳤다가 이기지 못하면 망신만 당합니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한나라와 위나라만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바에야 진나라에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제의 민왕이 악의에게 패한 것은 멀리 떨어진 초를 쳤으므로 동맹국의 짐이 무거워 이반(離反)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에게 병력을 빌려 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대준 셈으로 한ㆍ위만 득을 보았습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책을 주장합니다. 대왕께선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십시오. 곧 먼 나라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이간시키는 동시에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부터 넓혀야 합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어들어가듯 가까운 나라부터 쳐서 점점 먼 나라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얻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진소양왕이 묻는다.
"그럼 먼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범저가 아뢴다.
"진나라가 친교해야할 먼 나라는 바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입니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야 할 가까운 나라는 한(韓)나라와 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해서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어찌 혼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후 범저는 객경이 되었다가 진나라의 승상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 전략에, 후에 상앙의 부국강병책 등으로 중원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되고, 결국엔 열국이 난립하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원교근공은 '보편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敵'을 쳐서 없애야만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지, 평상시에 사용할 전략은 아닌 것이다. 이는 秦나라가 중국을 모두 차지할 생각이 있었기에 사용했고, 또한 유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 遠族近隣(원족근린) | 遠水近火(원수근화) |
远交近攻(yuǎnjiāojìngōng)
遠 멀 원 | 交 사귈 교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攻 칠 공 |
먼 나라와 친(親)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領土)를 넓힘, 중국(中國) 전국(戰國) 시대(時代)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한 외교(外交) 정책(政策).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하는 정책이다. 이 원교근공의 전략은 秦始皇(진시황)의 외교전략으로도 유명한 외교전략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3계에 나오는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혼란 중에 지리적 제약까지 있을 경우, 가까운 것부터 손에 넣는 것이 좋다. 멀리 있는 것부터 치면 해로울 뿐이다.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도 지리적 조건을 중요시해야 한다.[形禁勢格,利從近取,害以遠隔.上火下澤.]"
이는 전국시대 말기, 秦(진)나라에 망명해와 승상이 된 范雎(범저)가 제안한 외교전략을 당시 진소양왕에게 올린 전략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였던 범저(范雎)는 타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진(秦)나라로 피신하였다. 당시 진(秦)나라는 소양왕(昭襄王:재위 BC 306∼BC 251)의 모후인 선태후의 동생 양후(穰侯)가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齊)를 쳐서 자기 영토인 도(陶)를 확장하려 하였다.
이에 범저(范雎)는 왕에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지금 승상 양후 위염이 한나라와 손을 잡고 위나라 건너편에 있는 제나라를 칠 것이라고 하니 그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이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한(韓), 위(魏)의 양국을 거쳐 막강한 제를 침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약간의 군사를 보내보았자 제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보냈다가는 진나라만 손해를 입게 됩니다.
지난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엔 조나라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 가깝고, 위나라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제나라를 쳤다가 이기지 못하면 망신만 당합니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한나라와 위나라만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바에야 진나라에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제의 민왕이 악의에게 패한 것은 멀리 떨어진 초를 쳤으므로 동맹국의 짐이 무거워 이반(離反)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에게 병력을 빌려 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대준 셈으로 한ㆍ위만 득을 보았습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책을 주장합니다. 대왕께선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십시오. 곧 먼 나라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이간시키는 동시에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부터 넓혀야 합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어들어가듯 가까운 나라부터 쳐서 점점 먼 나라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얻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진소양왕이 묻는다.
"그럼 먼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범저가 아뢴다.
"진나라가 친교해야할 먼 나라는 바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입니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야 할 가까운 나라는 한(韓)나라와 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해서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어찌 혼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후 범저는 객경이 되었다가 진나라의 승상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 전략에, 후에 상앙의 부국강병책 등으로 중원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되고, 결국엔 열국이 난립하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원교근공은 '보편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敵'을 쳐서 없애야만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지, 평상시에 사용할 전략은 아닌 것이다. 이는 秦나라가 중국을 모두 차지할 생각이 있었기에 사용했고, 또한 유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 遠族近隣(원족근린) | 遠水近火(원수근화) |
袁宏(원굉, 328~376)
袁宏(원굉, 328~376)
東晋(동진)의 학자.
文才(문재)는 있었지만 생활이 곤궁했던 원굉은 수송선의 인부노릇을 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실력자의 눈에 띄어 동양군의 태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詩文(시문) 3백편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삼국명신서찬」이다. 이것은 魏(위) 蜀(촉) 吳(오) 삼국의 건국공신 20명을 골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칭찬하는 (찬․한구에 4자로 된 운문)을 짓고 거기에 서문을 붙인 것이다.
관련 한자어
三國名臣序(삼국명신서찬) 袁宏(원굉, 328~376) 千載一遇(천재일우) |
東晋(동진)의 학자.
文才(문재)는 있었지만 생활이 곤궁했던 원굉은 수송선의 인부노릇을 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실력자의 눈에 띄어 동양군의 태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詩文(시문) 3백편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삼국명신서찬」이다. 이것은 魏(위) 蜀(촉) 吳(오) 삼국의 건국공신 20명을 골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칭찬하는 (찬․한구에 4자로 된 운문)을 짓고 거기에 서문을 붙인 것이다.
관련 한자어
三國名臣序(삼국명신서찬) 袁宏(원굉, 328~376) 千載一遇(천재일우) |
越官之禍 (월관지화)
越官之禍(월관지화)
越 넘을 월 | 官 맡을 관 | 之 어조사 지 | 禍 재앙 화 |
내 영역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업무에 간섭하려는 신하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말.
전국시대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그 옆에서 시중을 들던 전관(典冠=임금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이 술에 취하여 옷도 제대로 안 갖추고 잠이 든 임금을 보게 됐다. 이 관리는 자신의 군주가 추위에 몸이 상할 까 걱정이 되어 옷을 임금에게 덮어주었다.
왕이 술에서 깨어 일나자 자신이 옷을 덮고 자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해 좌우 신하들에게 누가 이 옷을 덮어 주었냐고 물었다. 이에 좌우의 신하들은 모자 담당 관리인 전관(典冠)이 임금이 자는 사이 추울까 염려하여 덮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말은 들은 소후(昭侯)는 잠시 생각하고는 전관과 전의(典衣=옷을 담당하는 관리)를 모두 불러오라고 했다. 전의는 자신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두려움에 떨었고 전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임금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임금은 전의와 전관 모두를 벌주라고 명령했다.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자 임금의 논리는 이러했다. 전의는 임금의 옷을 맡아 담당하는 관리로서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당연히 벌을 준 것이었고, 전관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관(越官)했기 때문에 벌을 준 것이었다. 임금 자신이 추위에 감기 드는 것보다 자신의 맡은 임무를 저버리고 다른 일에 간섭하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법가의 대표자 한비는 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가 자신의 신하들을 다스릴 때는 신하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임무로 공을 세우게 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것이든 신하가 군주에게 한번 말 했으면 그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관(越官)하면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말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신하들이 붕당(朋黨)을 지어 서로 편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다.”
昔者韓昭侯醉而寢, 典冠者見君之寒也, 故加衣於君之上, 覺寢而說, 問左右曰: "誰加衣者?" 左右答曰: "典冠." 君因兼罪典衣殺典冠.其罪典衣, 以爲失其事也; 其罪典冠, 以爲越其職也.非不惡寒也, 以爲侵官之害甚於寒.故明主之畜臣, 臣不得越官而有功, 不得陳言而不當.越官則死, 不當則罪.守業其官, 所言者貞也, 則群臣不得朋黨相爲矣.
출전" 한비자:이병제칠(韓非子:二柄第七)
越 넘을 월 | 官 맡을 관 | 之 어조사 지 | 禍 재앙 화 |
내 영역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업무에 간섭하려는 신하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말.
전국시대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그 옆에서 시중을 들던 전관(典冠=임금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이 술에 취하여 옷도 제대로 안 갖추고 잠이 든 임금을 보게 됐다. 이 관리는 자신의 군주가 추위에 몸이 상할 까 걱정이 되어 옷을 임금에게 덮어주었다.
왕이 술에서 깨어 일나자 자신이 옷을 덮고 자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해 좌우 신하들에게 누가 이 옷을 덮어 주었냐고 물었다. 이에 좌우의 신하들은 모자 담당 관리인 전관(典冠)이 임금이 자는 사이 추울까 염려하여 덮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말은 들은 소후(昭侯)는 잠시 생각하고는 전관과 전의(典衣=옷을 담당하는 관리)를 모두 불러오라고 했다. 전의는 자신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두려움에 떨었고 전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임금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임금은 전의와 전관 모두를 벌주라고 명령했다.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자 임금의 논리는 이러했다. 전의는 임금의 옷을 맡아 담당하는 관리로서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당연히 벌을 준 것이었고, 전관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관(越官)했기 때문에 벌을 준 것이었다. 임금 자신이 추위에 감기 드는 것보다 자신의 맡은 임무를 저버리고 다른 일에 간섭하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법가의 대표자 한비는 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가 자신의 신하들을 다스릴 때는 신하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임무로 공을 세우게 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것이든 신하가 군주에게 한번 말 했으면 그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관(越官)하면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말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신하들이 붕당(朋黨)을 지어 서로 편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다.”
昔者韓昭侯醉而寢, 典冠者見君之寒也, 故加衣於君之上, 覺寢而說, 問左右曰: "誰加衣者?" 左右答曰: "典冠." 君因兼罪典衣殺典冠.其罪典衣, 以爲失其事也; 其罪典冠, 以爲越其職也.非不惡寒也, 以爲侵官之害甚於寒.故明主之畜臣, 臣不得越官而有功, 不得陳言而不當.越官則死, 不當則罪.守業其官, 所言者貞也, 則群臣不得朋黨相爲矣.
출전" 한비자:이병제칠(韓非子:二柄第七)
越犬吠雪 (월견폐설)
越犬吠雪(월견폐설)
越 넘을 월, 부들자리 활 | 犬 개 견 | 吠 짖을 폐 | 雪 눈 설 |
월(越)나라 개가 눈을 보고 짖는다는 뜻으로, 따뜻한 월(越)나라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므로 눈을 처음 본 월(越)나라의 개가 두려워 짖는 데서 어리석고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이 예삿일에 의심(疑心)을 품거나 크게 놀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越犬吠雪(월견폐설) | 蜀犬吠日(촉견폐일) |
越 넘을 월, 부들자리 활 | 犬 개 견 | 吠 짖을 폐 | 雪 눈 설 |
월(越)나라 개가 눈을 보고 짖는다는 뜻으로, 따뜻한 월(越)나라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므로 눈을 처음 본 월(越)나라의 개가 두려워 짖는 데서 어리석고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이 예삿일에 의심(疑心)을 품거나 크게 놀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越犬吠雪(월견폐설) | 蜀犬吠日(촉견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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