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袁樞, 1131-1205)
원추(袁樞, 1131-1205)의 자는 기중(機仲)이고, 남송의 건주(建州) 건안(建安, 현재의 복건) 사람이다. 효종 때 예부시에 응시하여 사부(詞賦)에 제1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온주판관(溫州判官)으로 임명되었고, 후에는 예부시관(禮部試官)이 되었다.
건도(乾道) 9년(1173) 엄주교수(嚴州敎授)로 나갔는데, 이 직은 학관(學官)의 일종으로 경문(經文)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한가한 직무여서 여유있게 글을 쓸 수가 있어서 《통감기사본말》42권을 저술하였다.
뒤에 국사원(國史院)의 편수관으로 임명되어 국사전(國史傳)을 나누어 편찬하였고, 또 공부시랑겸국자제주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영종(寧宗) 때 우문전수찬(右文殿修撰) 강릉지부(江陵知府)가 되었다. 개희(開禧) 원년에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송사》〈원추전〉에는 “원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평소 즐겨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방대한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건별로 구별해 그 내용이 연결되도록 하고, 이것을 《통감기사본말》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원추는 《자치통감》을 즐겨 읽었고《자치통감》의 내용과 사마광의 사상적 관점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옛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고, 과감히 《자치통감》을 개편하였는데, 그가 창조정신이 풍부한 사학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通鑑記事本末(통감기사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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