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전화위복)

轉 구를 전 | 禍 재앙 화 | 爲 하 위, 할 위 | 福 복 복, 간직할 부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다. 불행한 일이나 실패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잘 처리함으로써 거꾸로 행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말.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관안(管晏)열전'에 나온다. 관중(管仲)을 평하기를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정치의 실재면에 있어, 번번이 화를 전환시켜 복으로 하고 실패를 전환시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도 그 경중을 잘 파악하여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했다.”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여섯 나라 재상을 겸임하였던 소진(蘇秦)도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하였다[因敗爲功]."

전국시대 말엽 蘇秦(소진)의 설득으로 강국 秦(진)나라에 대항하는 여섯나라의 合縱(합종), 다시 말하면 6국 동맹이 맺어져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齊(제) 魏(위) 두 나라가 진나라의 계략에 놀아나 趙(조)나라를 침으로써 잘 유지돼온 합종체제는 깨어져 버렸다. 때마침 燕(연)나라에서는 태자가 易王(이왕)이 되었는데 제나라는 또 이 정권교체의 혼란을 틈타서 연나라를 쳐 10개 성을 빼앗았다. 분개한 이왕은 소진을 불러들여 따졌다.

“우리 연나라는 그대가 주장한 합종책에 따랐을 뿐인데 이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그대의 힘으로 빼앗긴 땅을 도로 찾아 주시오.” 소진은 곧바로 제나라로 가서 宣王(선왕)을 설득했다. “연나라 이왕은 진나라 혜왕의 사위입니다. 연나라 영토를 빼앗은 귀국은 앞으로 진나라와도 원수가 될 것이오.”

안색이 바뀌는 선왕을 보면서 소진은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재앙을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빼앗은 땅을 즉각 연나라에 되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일처리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연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진나라의 위세 때문에 땅을 돌려준 것으로 알고 진나라 왕도 기뻐할 것입니다.진 연 두나라와 친교를 맺게 되면 다른 왕들도 전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약간의 땅을 버리고 천하를 얻는다면 이거야말로 覇王(패왕)의 業(업)이 아니겠습니까.” 선왕은 소진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열전편(列傳篇):관안열전(管晏列傳) |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禍轉爲福(화전위복) | 塞翁禍福(새옹화복) | 塞翁之馬(새옹지마) | 塞翁爲福(새옹위복) | 塞翁得失(새옹득실) | 反禍爲福(반화위복) | 轉禍爲福(전화위복) |

切齒腐心 (절치부심)

切齒腐心(절치부심)

切 끊을 절, 온통 체 | 齒 이 치 | 腐 썩을 부 | 心 마음 심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해 하면서 이를 갈고 속을 썩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切齒扼腕(절치액완) |

井中之蛙 (정중지와, jǐngzhōngzhīwā)

井中之蛙(정중지와)

井中之蛙(jǐng zhōng zhī wā)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蛙 개구리 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왕망이 전한을 멸하고 세운 신나라 말경, 마원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감숙성)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은 촉땅에 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되었다.

'정중지와'란 말은 [장자] '추수편'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해신인 약(若)이 하백에게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되기 때문이고[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에 대해 말 할 수 없는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출전]
후한서:마수전, 장자:추수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大海(정와부지대해) |

유사어

촉견폐일 | 월견폐설 |

참조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득롱망촉 |

井中觀天 (정중관천)

井中觀天(정중관천)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井底之蛙 (정저지와)

井底之蛙(정저지와)

井底之蛙(jǐngdǐzhīwā)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은 사람의 비유.

a frog in a well—a person with a very limited outlook and experience; an ignorant person


장자(莊子) 추수편에 보면 황하(黃河)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北海)에 와 동해를 바라보았다. 매우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 약(若)에게 물으니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며 정직하지 못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당신은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자기가 보잘 것없는 존재(存在)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젠 당신과 함께 천하(天下)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對答)했다고 한다.

[출전]
장자(莊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

輾轉反側 (전전반측)

輾轉反側(전전반측)

輾 돌아누울 전, 삐걱거릴 년(연) | 轉 구를 전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側 곁 측 |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루다. ①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느라 잠을 못 이루는 경우에 쓰였으나 ② 오늘날에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나 근심거리가 있어 밤새 잠을 못 이룬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엮은 '시경(詩經)'의 국풍편(國風篇) 첫머리에 실려 있는 '관관저구(關關雎鳩)'에 나오는 시구(詩句).

시의 첫 동강은 강가에서 울고 있는 물수리라는 물새를 읊고 있다. 물수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운다. 그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요조숙녀를 닮았다. 좋은 배우자(配偶者)로서 남자가 구하고자 하는 처녀는 저 물수리와 같이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구룩구룩 울어대는 물수리는 강가 모래톱에 있네
우아하고 고운 처녀야말로 군자의 어울리는 짝이로다

'窈窕淑女'란 말을 처음으로 쓴 첫 동강은 이렇게 노래하다가 다음 동강으로 넘어간다.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길고 짧고 들쭉날쭉한 물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노라
그처럼 우아하고 고운 처녀를 군자는 자나깨나 찾고 있네
찾아도 얻지 못하면 자나깨나 그리고 있네
그리는 마음 가이 없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연정의 의미가 많이 퇴화되어, 단지 걱정과 많은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는 모든 경우를 두고 전전반측이라 한다.

[출전]
詩經(시경) 국풍편(國風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輾轉不寐(전전불매) | 寤寐不忘(오매불망) |

戰戰兢兢 (전전긍긍)

戰戰兢兢(전전긍긍)

战战兢兢(zhànzhànjīngjīng)

戰 싸움 전 | 戰 싸움 전 | 兢 떨릴 긍 | 兢 떨릴 긍 |

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은 몸을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하는데 전전긍긍(戰戰兢兢)으로 합쳐지면서 매우 두려워 하며 조심한다는 뜻이 된다.

trembling with fear; with fear and trepidation; gingerly


이 말은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의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대목에 쓰임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不敢暴虎 (불감포호)
不敢馮下 (불감빙하)
人知其一 (인지기일)
莫知其他 (막지기타)

戰戰兢兢 (전전긍긍)
如臨深淵 (여림심연)
如履薄氷 (여리박빙)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서 황하를 건널 수 없네
사람들이 그 한가지는 알고 있지만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네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처럼 하고
살얼음 밟고 가듯 해야 하네

이 시는 謀臣(모신)이 옛 법을 무시하고 惡政(악정)을 펴고 있음을 개탄한 것이다.

論語(논어)의 泰伯篇(태백편)에도 전전긍긍이란 말이 보인다. 孔子(공자)의 제자인 曾子(증자)가 임종시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깊은 연못가에 있는 듯하고 살얼음 밟는 듯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고 하였거늘 지금에서야 마음을 놓겠구나."

효성이 지극했던 증자가 효도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살얼음 밟듯 했는데 이제 죽게 되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 말이라고 한다.

[출전]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 | 論語(논어) 泰伯篇(태백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戰兢(전긍) |

適材適所 (적재적소)

適材適所(적재적소)

適 맞을 적 | 材 재목 재 | 適 맞을 적 | 所 바 소 |

마땅한 인재를 마땅한 자리에 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適才適處(적재적처) |

絶長補短 (절장보단)

絶長補短(절장보단)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2010년 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인 것은 각 업태가 가지는 장점으로 부족한 것을 메웠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이 같은 뜻의 ‘절장보단’을 핵심 키워드로 뽑음


2010년 | 올해의 사자성어 | 유통

漸入佳境 (점입가경)

漸入佳境(점입가경)

渐入佳境(jiànrùjiājìng)

漸 점점 점, 적실 점 | 入 들 입 | 佳 아름다울 가 | 境 지경 경 |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of a situation)be getting better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전한다. 고개지는 감자(甘蔗: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늘 가느다란 줄기 부분부터 먼저 씹어 먹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사탕수수를 먹을 때 왜 거꾸로 먹나?" 하였다. 고개지는,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다" 하고는 태연하였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줄여서 자경(蔗境) 또는 가경(佳境)이라고도 한다.

고개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삼절(三絶: 畵絶, 才絶, 痴絶)이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풍속과 맞지 않는 특이한 말과 행동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난징[南京] 와관사(瓦棺寺) 창건 때의 일이다. 난징에 있던 일단의 승려들이 와관사를 짓기 위해 헌금을 걷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궁핍하여 뜻대로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와서, "백만 전을 내겠소. 절이 완공되거든 알려 주시오"라고 하였다. 절이 완공되자 그 젊은이는 불당(佛堂) 벽에 유마힐(維摩詰)을 그렸다.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보시가 백만 전을 넘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가 바로 고개지였다.

[출전]
사기(史記) | 진서(晉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蔗境(자경) | 佳境(가경) |

赤子之心 (적자지심)

赤子之心(적자지심)

赤子之心[chìzǐzhīxīn]

赤 붉을 적 | 子 아들 자 | 之 -의 지 | 心 마음 심 |

갓난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은 순결(純潔)한 마음

heart of a newborn baby—utter innocence


맹자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는 대인이란 그의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는 대목이 있다.

赤에는 붉은 색 이라는 뜻이외에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옷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냄 이라는 의미가 있다. 적빈(赤貧) 이란 극빈(極貧)을, 적수(赤手)란 맨손을, 적지(赤地)는 불모지를 뜻한다. 순자(荀子)는 참되고 정성스런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적심(赤心) 이라고도 하였다.

赤子란 갓 태어난 아이의 몸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에서 갓난 아이를 가리키는데, 서경(書經)에서는 赤子를 백성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맹자는 순진 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를 대인(大人)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니, 赤子之心(a child's heart) 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 즉 어린 아이 때 그대로의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이는 곧 사람의 마음이 선량하고 순결함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출전

맹자(孟子)

積小成大 (적소성대)

積小成大(적소성대)

積 쌓을 적, 저축 자 | 小 작을 소 | 成 이룰 성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①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됨. ②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鐵杵成針(철저성침) 철 절굿공이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주 오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나타냄 | 點滴穿石(점적천석) 처마의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힘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예상(豫想)하지 못했던 큰 일을 해냄을 이르는 말. [출전] 두목(杜牧)의 야우(夜雨) | 積土成山(적토성산) | 積塵成山(적진성산) | 積水成淵(적수성연) | 愚公移山(우공이산) | 十伐之木(십벌지목) | 水積成川(수적성천) | 山溜穿石(산류천석) | 磨鐵杵而成針(마철저이성침) | 磨斧作鍼(마부작침) | 磨斧作針(마부작침) | 磨斧爲針(마부위침) |

絶世佳人 (절세가인)

絶世佳人(절세가인)

絶 끊을 절 | 世 인간 세/대 세 | 佳 아름다울 가 | 人 사람 인 |

세상(世上)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女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花容月態(화용월태) | 朱脣皓齒(주순호치) | 絶世美人(절세미인) | 絶世代美(절세대미) | 絶代佳人(절대가인) | 一顧傾城(일고경성) | 萬古絶色(만고절색) | 丹脣皓齒(단순호치) | 國香(국향) | 國色(국색) | 傾城之色(경성지색) | 傾城之美(경성지미) | 傾城(경성) | 傾國之色(경국지색) |

挺身而出 (정신이출)

挺身而出(정신이출)

挺身而出[tǐngshēn'érchū]

挺 빼어날 정, 곧을 정 | 身 몸 신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단락 척 |

'몸을 펴 앞장서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 경군홍(敬君弘) 등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를 눈치챈 세민은 심복인 방현령(房玄齡)과 대책을 상의하여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현무문(玄武門)에 복병을 두고 건성이 입조(入朝)하기를 기다려 살해하고 원길도 함께 죽였다.

그러자 건성과 원길의 부하인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정예 병사를 규합하여 세민을 공격하였다. 이때 경군홍이 현무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쌍방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당서(舊唐書)》의 '경군홍전'에 따르면, 경군홍은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다[君弘挺身出戰].

경군홍은 주위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병력이 모이기를 기다려 전열을 이룬 뒤에 싸워도 늦지 않다"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용맹스럽게 진군하여 적과 싸웠다. 나중에 태종(太宗)이 된 세민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좌둔위대장군(左屯衛大將軍)으로 삼았다.

또 《구오대사(舊五代史)》에 따르면, 당경사(唐景思)가 박주의 방어사로 있을 때 비적들이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당경사는 전력으로 항거하였으나 며칠 뒤에 성이 함락되었다. 당경사는 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으며[景思挺身而出], 인근 고을에 사람을 보내 수백 명의 원군을 얻어 마침내 비적들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았다.

한편,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유후론(留侯論)》에는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나 온몸을 던져 싸우는데, 이는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없다[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鬪, 此不足爲勇也]"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하여 정신이출은 어떤 위난한 일을 당하였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舊唐書(구당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戰勝不復應形無窮 (전승불복응형무궁)

戰勝不復應形無窮(전승불복응형무궁)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반복되지 않으므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 승리하기 어렵다


손자병법 제6 허실편에 나오는 말.

人皆知我所以勝之形,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故其戰勝不復,而應形于無窮

사람들은 아군이 승리하게 된 형세를 알고 있지만 승리를 거두게 된 형세의 까닭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작전은 다시 쓰지 않으며 적군의 형세에 따라 무궁 무진한 작전을 펴나가야 한다.

손자는 ‘전승불복’이란 명제를 제시하면서 영원한 승자로 남기 위한 중요한 원칙을 하나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응형무궁(應形無窮)의 정신이었다. 응(應)은 대응, 형(形)은 조직의 모습, 무궁(無窮)은 끝없이 변하는 무궁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끝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출전]
손자병법

正復爲奇善復爲妖 (정복위기선복위요)

正復爲奇善復爲妖(정복위기선복위요)

正 바를 정, 정월 정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善 착할 선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妖 요사할 요 |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할 수 있고 선한 것은 다시 요사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출전]
노자 58장

賊反荷杖 (적반하장)

賊反荷杖(적반하장)

賊 도둑 적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荷 멜 하, 꾸짖을 하, 잗달 가 | 杖 지팡이 장 |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람.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 말로,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시평가(詩評家)인 홍만종(洪萬宗)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순오지》에는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客反爲主(객반위주) | 主客顚倒(주객전도) 주인과 손님이 서로 바뀌어 손님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 | 我歌査唱(아가사창) 나에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한다.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제가 잘못하고서 도리어 성을 낸다는 뜻
¶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오히려 남을 나무란다는 뜻
¶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 남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배신한다는 뜻

前無後無 (전무후무)

前無後無(전무후무)

前 앞 전, 자를 전 | 無 없을 무 | 後 뒤 후, 임금 후 | 無 없을 무 |

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있을 수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曠前絶後(광전절후) | 曠前(광전) | 空前絶後(공전절후) | 空前绝后(kōngqiánjuéhòu) | 空前(공전) |

程門立雪 (정문입설, Chéngménlìxuě)

程門立雪(정문입설)

程门立雪(Chéngménlìxuě)

程 한도 정,길 정 | 門 문 문 | 立 설 입(립) | 雪 눈 설 |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양시와 유초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다.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동생인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데, 이때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의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양시와 유작은 이와 같이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여, 여대림(呂大臨)·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程門:정호와 정이의 문하)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宋史(송사):楊時傳(양시전) |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


宋史, 송사, 宋史:楊時傳, 송사:양시전, 名臣言行錄, 명신언행록

頂門一鍼 (정문일침)

頂門一鍼(정문일침)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급소(急所)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忠告)나 교훈(敎訓)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寸鐵殺人(촌철살인) | 頂上一鍼(정상일침) | 頂門一針(정문일침) |

朝變夕改 (조변석개)

朝變夕改(조변석개)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變 변할 변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改 고칠 개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으로, 계획(計劃)이나 결정(決定) 따위가 매우 자주 변함.

keep chopping and changing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暮改(조령모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令夕改(zhāolìngxīgǎi) |

戰國策 (전국책) 卷30 燕策二

戰國策(전국책)

卷29 卷30•燕策二 卷31


《秦召燕王》
1 秦召燕王: 秦召燕王,燕王欲往。蘇代約燕王曰:“楚得枳二國亡,齊得宋而國亡,齊、楚不得以有枳、宋事秦者,何也?是則有功者,秦之深讎也。秦取天下,非行義也,暴也。

2 秦召燕王: “秦之行暴於天下,正告楚曰:‘蜀地之甲,輕舟浮於汶,乘夏水而下江,五日而至郢。漢中之甲,乘舟出於巴,乘夏水而下漢,四日而至五渚。寡人積甲宛,東下隨,知者不及謀,勇者不及怒,寡人若射隼矣。王乃待天下之攻函穀,不亦遠乎?’楚王為是之故,十七年事秦。

3 秦召燕王: “秦正告韓曰:‘我起乎少曲,一日而斷太行。我起乎宜陽而觸平陽,二日而莫不盡繇。我離兩周而觸鄭,五日而國舉。’韓氏為宜然,故事秦。

4 秦召燕王: “秦正告魏曰:‘我舉安邑,塞女戟,韓氏太原卷。我下枳,道南陽、封、冀,包兩周,乘夏水,浮輕舟,強弩在前,銛戈在後,決榮口,魏無大梁;決白馬之口,魏無濟陽;決宿胥之口,魏無虛、頓丘。陸攻則擊河內,水攻則滅大梁。’魏氏以為然,故事秦。

5 秦召燕王: “秦欲攻安邑,恐齊救之,則以宋委於齊,曰:‘宋王無道,為木人以寫寡人,射其面,寡人地絕兵遠不能攻也,王茍能破宋有之,寡人如自得之。’已得那邑,塞女戟,因以破宋為齊罪。

6 秦召燕王: “秦欲攻魏重楚,則以南陽委於楚曰:“寡人國與韓且絕矣!殘均陵,塞鄳隘,茍利於楚,寡人若自有之。‘魏棄與國而合於秦,因以塞鄳隘為楚罪。

7 秦召燕王: “兵困於林中,重燕、趙,以膠東委於衍,以濟西委於趙。趙得講於魏,至公子延,因犀首屬行而攻趙。兵傷於離石,遇敗於馬陵,而重魏則以葉、蔡委於魏。已得講於趙,則劫魏,魏不為割。困則使太后、穰侯為和,嬴則兼欺舅與母。適燕者曰:‘以膠東。’適趙者曰:‘以濟西。’適魏者曰:‘以葉、蔡。’適楚者曰:‘以塞鄳隘。’適齊者曰:“以宋。‘此必令其言如循環,用兵如刺蜚繡,母不能制,舅不能約。龍賈之戰,岸門之戰,封陸之戰,高商之戰,趙莊之戰,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西河之外、上雒之地、三川,晉國之禍,三晉之半。秦禍如此其大,而燕、趙之秦者,皆以爭事秦說其主,此臣之所大患。”

8 秦召燕王: 燕昭王不行,蘇代復重於燕。燕反約諸侯從親,如蘇秦時,或從或不,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代、厲皆以壽死,名顯諸侯。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
1 蘇代為奉... :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奉陽君不聽。乃入齊惡趙,令齊絕於趙。齊已絕於趙,因之燕,謂昭王曰:“韓為謂臣曰:‘人告奉陽君曰:使齊不信趙者,蘇子也;今齊王召蜀子使不伐宋,蘇子也;與齊王謀道取秦以謀趙者,蘇子也;令齊守趙之質子以甲者,又蘇子也。請告子以請齊,果以守趙之質子以甲,吾必守子以甲。’其言惡矣。雖然,王勿患也。臣故知入齊之有趙累也。出為之出成所欲,臣死而齊大惡於趙,臣猶生也令齊、趙絕,可大紛已。持臣非張孟談也,使臣也如張孟談也齊、趙必有為智伯者矣。


《奉陽君告朱讙與趙足》
1 奉陽君告... : “奉陽君告朱讙與趙足曰:‘齊王使共王曰令說曰,必不反韓珉,今召之矣。必不任蘇子以事,今封而相之。令不合燕,今以燕為上交。吾所恃者順也,今其言變有甚於其父,順始與蘇子為讎。見之知無厲,今賢之兩之,已矣,吾無齊矣!’

2 奉陽君告... : “奉陽君之怒甚矣。如齊王王之不信趙,而小人奉陽君也,因是而倍之。不以今時大紛之,解而復合,則後不可奈何也。故齊、趙之合茍可循也,死不足以為臣患;逃不足以為臣恥;為諸侯不足以為臣榮;被髪自漆為厲,不足以為臣辱。然而臣有患也,臣死而齊、趙不循,惡交分於臣也,而後相效,是臣之患也。若臣死而必相攻也,臣必勉之而求夕焉。堯、舜‘賢而死,禹、湯之知而死,孟賁之勇而死,烏獲之力而死,生之物固有不死者乎?在必然之物以成所欲,王何疑焉?

3 奉陽君告... : “臣以為不若逃而去之。臣以韓、魏循自齊,而為之取秦,深結趙蟀勁之。如是則近於相攻。臣雖為之累燕,奉陽君告朱讙曰:‘蘇子怒於燕王之不以吾故,弗予相,又不予卿也,殆無燕矣。’其疑至於此,故臣雖為之不累燕,又不欲王。伊尹再逃湯而之桀,再逃桀而之湯,果與鳴條之戰,而以湯為天子。伍子胥逃楚而之吳,果與伯舉之戰,而報其父之讎。今臣逃而紛齊、趙,始可著於春秋。且舉大事者,孰不逃?桓公之難,管仲逃於魯;陽虎之難,孔子逃於衛;張儀逃於楚,白●逃於秦;望諸相中山也使趙,趙劫之求地,望諸攻關而出逃;外孫之難,薛公釋戴逃出於關,三晉稱以為士。故舉大事,逃不足以為辱矣。”


《蘇代為燕說齊》
1 蘇代為燕... : 蘇代為燕說齊,未見齊王,先說淳於髡曰:“人有賣駿馬者,比三旦立市,人莫之知。往見伯樂曰:‘臣有駿馬,欲賣之,比三旦立於市,人莫與言,愿子還而視之,去而顧之,臣請獻一朝之賈。’伯樂乃還而視之,去而顧之,一旦而馬價十倍。今臣欲以駿馬見於王,莫為臣先後者,足下有意為臣伯樂乎?臣請獻白璧一雙,黃金萬鎰,以為馬食。”淳於髡曰:“謹聞命矣。”入言之王而見之,齊王大說蘇子。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曰:“臣聞離齊趙,齊、趙已孤矣,王何不出兵以攻齊?臣請王弱之。”燕乃伐齊攻晉。

2 蘇代自齊... : 令人謂閔王曰:“燕之攻齊也,欲以復振古地也。燕兵在晉貳進,則是兵弱而計疑也。王何不令蘇子將而應燕乎?夫以蘇子之賢,將而應弱燕,燕破必矣。燕破則趙不敢不聽,是王破燕而服趙也。”閔王曰:“善。”乃謂蘇子曰:“燕兵在晉,今寡人發兵應之,愿子為寡人為之將。”對曰:“臣之於兵,何足以當之,王其改舉。王使臣也,是敗王之兵,而以臣遺燕也。戰不勝,不可振也。”王曰:“行寡人知子矣。”

3 蘇代自齊... : 蘇子遂將,而與燕人戰於晉下,齊軍敗。燕得甲首二萬人。蘇子收其餘兵,以守陽城,而報於閔王曰:“王過舉,令臣應燕。今軍敗亡二萬人,臣有斧質之罪,請自歸於吏以戮。”閔王曰:“此寡人之過也,子無以為罪。”

4 蘇代自齊... : 明日又使燕攻陽城及貍。又使人謂閔王曰:“日者齊不勝於晉下,此非兵之過,齊不幸而燕有天幸也。今燕又攻陽城及貍,是以天幸自為功也。王復使蘇子應之,蘇子先敗王之兵,其後必務以勝報王矣。”王曰:“善。”乃身使蘇子,蘇子固辭,王不聽。遂將以與燕戰於陽城。燕人大勝得首三萬。齊君臣不親,百姓離心。燕因使樂毅大起兵伐齊,破之。


《蘇代自齊獻書於燕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獻書於燕王曰:“臣之行也,固知將有口事,故獻御書而行,曰:‘臣貴於齊,燕大夫將不信臣;臣賤,將輕臣;臣用,將多望於臣;齊有不善,將歸罪於臣;天下不攻齊,將曰善為齊謀;天下攻齊,將與齊兼鄮臣。臣之所重處重卯也。’王謂臣曰:“吾必不聽眾口與讒言,吾信汝也,猶剗刈者也。上可以得用於齊,次可以得信於下,茍無死,女無不為也,以女自信可也。‘與之言曰:‘去燕之齊可也,期於成事而已。’臣受令以任齊,及五年。齊數出兵,未嘗謀燕。齊、趙之交,一合一離,燕王不與齊謀趙,則與趙謀齊。齊之信燕也,至於虛北地行其兵。今王信田伐與參、去疾之言,且攻齊,使齊犬馬犏而不言燕。今王又使慶令臣曰:‘吾欲用所善。’王茍欲用之,則臣請為王事之。王欲醳臣剸任所善,則臣請歸醳事。臣苟得見,則盈愿。”


《陳翠合齊燕》
1 陳翠合齊... : 陳翠合齊燕陳翠合齊、燕,將令燕王之弟為質於齊,燕王許諾。太后聞之大怒曰:“陳公不能為人之國,亦則已矣,焉有離人子母者,老婦欲得志焉。”

2 陳翠合齊... : 陳翠欲見太后,王曰:“太后方怒子,子其待之。”陳翠曰:“無害也。”遂人見太后曰:“何臞也?”太后曰:“賴得先王雁鶩之餘食,不宜臞。臞者,憂公子之且為質於齊也。”

3 陳翠合齊... : 陳翠曰:“人主之愛子也,不如布衣之甚也。非徒不愛子也,又不愛丈夫子獨甚。”太后曰:“何也?”對曰:“太后嫁女諸侯,奉以千金,赍地百里,以為人之終也。今王愿封公子,百官持職,群臣效忠,曰:‘公子無功不當封。’今王之以公子為質也,且以為公子功而封之也。太后弗聽,臣是以知人主之不愛丈夫子獨甚也。且太后與王幸而在,故公子貴,太后千秋之後王棄國家,而太子即位,公子賤於布衣。故非及太后於王封公子,則公子終身不封矣!”

4 陳翠合齊... : 太后曰:“老婦不知長者之計。”乃命公子束車制衣為行具。


《燕昭王且與天下伐齊》
1 燕昭王且... : 燕昭王且與天下伐齊,而有齊人仕於燕者,昭王召而謂之曰:“寡人且與天下伐齊,旦暮出令矣。子必爭之,爭之而不聽,子因去而之齊。寡人有時復合和也,且以因子而事齊。”當此之時也,燕、齊不兩立,然而常獨欲有復收之之志若此也。


《燕饑趙將伐之》
1 燕饑趙將... : 燕饑,趙將伐之。楚使將軍之燕,過魏,見趙恢。趙恢曰:“使除患無至,易於救患。伍子胥、宮之奇不用,燭之武、張孟談受大賞。是故謀這皆從事於除患之道,而先使除患無至者。今予以百金送公也,不如以言。公聽吾言而說趙王曰:‘昔者吳伐齊,為其饑也,伐齊未必勝也,而弱越乘其弊以霸。今王之伐燕也,亦為其饑也,伐之未必勝,而強秦將以兵承王之西,是使弱趙居強吳之處,而使強秦處弱越之所以霸也。愿王之熟計之也。’”


《昌國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
1 昌國君樂... : 昌固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下七十餘城,盡郡縣之以屬燕。三城未下,而燕昭王死。惠王即位,用齊人反間,疑樂毅,而使騎劫代之將。樂毅奔赴趙,趙封以為望諸君。齊田單欺詐騎劫,卒敗燕軍,復收下七十城以復齊。燕王悔,懼趙用樂毅承燕之弊以伐燕。

2 昌國君樂... : 燕王乃使人讓樂毅,且謝之曰:“先生舉國而委將軍,將軍為燕破齊,報先王之讎,天下莫不振動,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會先王棄群臣,寡人新即位,左右誤寡人。寡人之使騎劫代將軍者,為將軍久暴露於外,故召將軍且休計事。將軍過聽,以與寡人有隙,遂捐燕而歸趙。將軍自為計則可矣,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3 昌國君樂... : 望諸君乃使人獻書報燕王曰:“臣不佞,不能奉承先王之教,以順左右之心,恐抵斧質之罪,以傷先王之明,而又害於足下之義,故循逃奔趙。自負以不肖之罪,故不敢為辭說。今王使使者數之罪,臣恐侍御者之不察先王之所以畜幸臣之理,而又不白於臣之所以事先王之心,故敢以書對。

4 昌國君樂... : “臣聞賢聖之君,不以祿私其親,功多者授之;不以官隨其愛,能當者處之。故察能而授官者,成功之君也;論行而結交者,立名之士也。臣以所學者觀之,先王之舉錯,有高世之新,故假節於魏王,而以身得察於燕。先王過舉,擢之乎賓客之中,而離之乎群臣之上,不謀於父兄,而使臣為亞卿。臣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不辭。

5 昌國君樂... : “先王命之曰:‘我有積怨深怒於齊,不量輕弱,而欲以齊為事。’臣對曰:‘夫齊霸國之餘教也,而驟勝之遺事也,閑於兵甲,習於戰攻。王若欲攻之,則必舉天下而圖之。舉天下而圖之,莫徑於結趙矣。區又淮北、宋地,楚、魏之所同愿也。趙若許,約楚、魏,宋盡力,四國攻之,齊可大破也。’先王曰:‘善。’臣乃口受令,具符節,南使臣於趙。顧反命,起兵隨而攻齊。以天之道,先王之靈,河北之地,隨先王舉而有之於濟上。濟上之軍奉令擊齊,大勝之。輕卒銳兵,長驅至國。齊王逃遁走莒,僅以深免。珠玉財寶,車甲珍器,盡收入燕。大呂陳於也英,故鼎反於歷室,齊器設於寧臺。薊丘之植,植於汶皇。自五伯以來,功未有及先王者也。先王以為愜其志,以臣為不頓命,故裂地而封之,使之得比乎小國諸侯。臣不佞,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弗辭。

6 昌國君樂... : “臣聞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昔者五子胥說聽乎闔閭可,故吳王遠跡至於郢。夫差弗是也,賜之鴟夷而浮之江。故吳王夫差不悟先論之可以立功,故沉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故入江而不改。夫免身全功,以明先王之跡者,臣之上計也。離毀辱之非,墮先王之名者,臣之所大恐也。臨不測之罪,以幸為利者,義之所不敢出也。


《或獻書燕王》
1 或獻書燕... : 或獻書燕王:“王而不能自恃,不惡卑名以事強。事強,可以令國安長久,萬世之善計。以事強而不可以為萬世,則不如合弱,將奈何合弱而不能如一,此臣之所為山東苦也。

2 或獻書燕... : “比目之魚,不相得則不能行,故古之人稱之,以其合兩而如一也。今山東合弱而如一,是山東之知不如魚也。又譬如車士之引車也,三人不能行,索二人,五人而車因行矣。今山東三國弱而不能敵秦,索二國,因能勝秦矣。然而山東不致相索,智固不如車士矣。胡與越人,言語不相知,志意不相通,同舟而凌波,至其相救助如一也。今山東之相與也,如同舟而濟,秦之兵至,不能相救助如一,智又不如胡、越之人矣。三物者,人之所能為也,山東之主遂不悟,此臣之所為山東苦也。愿大王之熟慮之也。

3 或獻書燕... : “山東相合,之主者不卑名,之國者可長存,之卒者出士以戍韓、梁之西邊,此燕之上計也。不急為此,國必危矣,主必大憂。今韓、梁、趙三國以合矣,秦見三晉之堅也,必南伐楚。趙見秦之伐楚也,悲北攻燕。物固有勢異而患同者。秦久伐韓,故中山亡;今久伐楚,燕必亡。臣竊為王計不如以兵南合三晉,約戍韓、梁之西邊。山東不能堅為此,此必皆亡。”燕果以兵南合三晉也。


《客謂燕王》
1 客謂燕王: 客謂燕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眾,猶鞭策也。使齊北面伐燕,即雖五燕不能當。王何不陰出使,散游士,頓齊兵,弊其眾,使世世無患。”燕王曰:“假寡人五年末,寡人得其志矣。”蘇子曰:“請假王十年。”燕王說,奉蘇子車五十乘,南使於齊。

2 客謂燕王: 謂齊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之眾,猶鞭策也。臣聞當世之舉王,必誅暴正亂,舉無道,攻不義。今宋王射天笞地,鑄諸侯之象,使侍屏偃,展其臂,彈其鼻,此天下之無道不義,而王不伐,王名終不成。且夫宋,中國膏腴之地,鄰民之所處也,與其得百里於燕,不如得十里於宋。法認真,名則義,實則利,王何為弗為?”齊王曰:“善。”遂與兵伐宋,三覆宋,宋遂舉。

3 客謂燕王: 燕王聞之,絕交於齊,率天下之兵以伐齊,大戰一,小戰再,頓齊國,成其名。故曰:因其強而強之,乃可折也;因其廣而廣之,乃可缺也。


《趙且伐燕》
1 趙且伐燕: 趙且伐燕,蘇代為燕王謂惠王曰:“今者臣來,過易水,蚌方出曝,而鷸啄其肉,蚌合而鉗其喙。鷸曰:‘今日不雨,明日不雨,即有死蚌。’蚌亦謂鷸曰:‘今日不出,明日不出,即有死鷸。’兩者不肯舍,漁者得而并禽之。今趙且伐燕,燕、趙久相支,以弊大眾,臣恐強秦之為漁漁父也。故愿王之熟計之也。”惠王曰:“善。”乃止。


《齊魏爭燕》
1 齊魏爭燕: 齊魏爭燕。齊謂燕王曰:“吾得趙矣。”魏亦謂燕王曰:“吾得趙矣。”燕無以決之,而未有適予也。蘇子謂燕相曰:“臣聞辭卑而幣重者,失天下者也;辭俱而幣薄者,得天下者也。今魏之辭俱而幣薄。。”燕因合於魏,得趙,齊遂北矣。

戰國策 (전국책) 卷17 楚策四

戰國策(전국책)

卷16 卷17•楚策四 卷18


或謂楚王

或謂楚王曰:「臣聞從者欲合天下以朝大王,臣願大王聽之也。夫因詘為信,舊患有成,勇者義之。
攝禍為福,裁少為多,知者官之。夫報報之反,墨墨之化,唯大君能之。禍與福相貫,生與亡為鄰,不偏於死,不偏於生,不足以載大名。無所寇艾,不足以橫世。夫秦捐德絕命之日久矣,而天下不知。今夫橫人嚂口利機,上干主心,下牟百姓,公舉而私取利,是以國權輕於鴻毛,而積禍重於丘山。」


魏王遺楚王美人

魏王遺楚王美人,楚王說之。夫人鄭袖知王之說新人也,甚愛新人。衣服玩好,擇其所喜而為之;宮室臥具,擇其所善而為之。愛之甚於王。王曰:「婦人所以事夫者,色也;而妒者,其情也。今鄭袖知寡人之說新人也,其愛之甚於寡人,此孝子之所以事親,忠臣之所以事君也。」鄭袖知王以己為不妒也,因謂新人曰:「王愛子美矣。雖然,惡子之鼻。子為見王,則必掩子鼻。」新人見王,因掩其鼻。王謂鄭袖曰:「夫新人見寡人,則掩其鼻,何也?」鄭袖曰:「妾知也。」王曰:「雖惡必言之。」鄭袖曰:「其似惡聞君王之臭也。」王曰:「悍哉!」令劓之,無使逆命。


楚王后死

楚王后死,未立后也。謂昭魚曰:「公何以不請立后也?」昭魚曰:「王不聽,是知困而交絕於后也。」「然則不買五雙珥,令其一善而獻之王,明日視善珥所在,因請立之。」


莊辛謂楚襄王

莊辛謂楚襄王曰:「君王左州侯,右夏侯,輦從鄢陵君與壽陵君,專淫逸侈靡,不顧國政,郢都必危矣。」襄王曰:「先生老悖乎?將以為楚國祅祥乎?」莊辛曰:「臣誠見其必然者也,非敢以為國祅祥也。君王卒幸四子者不衰,楚國必亡矣。臣請辟於趙,淹留以觀之。」莊辛去之趙,留五月,秦果舉鄢、郢、巫、上蔡、陳之地,襄王流揜於城陽。於是使人發騶,徵莊辛於趙。莊辛曰:「諾。」莊辛至,襄王曰:「寡人不能用先生之言,今事至於此,為之奈何?」莊辛對曰:「臣聞鄙語曰:『見兔而顧犬,未為晚也;亡羊而補牢,未為遲也。』臣聞昔湯、武以百里昌,桀、紂以天下亡。今楚國雖小,絕長續短,猶以數千里,豈特百里哉?王獨不見夫蜻蛉乎?六足四翼,飛翔乎天地之間,俛啄蚊虻而食之,仰承甘露而飲之,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五尺童子,方將調鈆膠絲,加己乎四仞之上,而下為螻蟻食也。蜻蛉其小者也,黃雀因是以。俯噣白粒,仰棲茂樹,鼓翅奮翼,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公子王孫,左挾彈,右攝丸,將加己乎十仞之上,以其類為招。晝游乎茂樹,夕調乎酸鹹,倏忽之間,墜於公子之手。夫雀其小者也,黃鵠因是以。游於江海,淹乎大沼,府噣鱔鯉,仰嚙衡,奮其六翮,而凌清風,飄搖乎高翔,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射者,方將脩其碆盧,治其繒繳,將加己乎百仞之上。彼礛磻,引微繳,折清風而抎矣。故晝游乎江河,夕調乎鼎鼐。夫黃鵠其小者也,蔡聖侯之事因是以。南遊乎高陂,北陵乎巫山,飲茹谿流,食湘波之魚,左抱幼妾,右擁嬖女,與之馳騁乎高蔡之中,而不以國家為事。不知夫子發方受命乎宣王,繫己以朱絲而見之也。蔡聖侯之事其小者也,君王之事因是以。左州侯,右夏侯,輩從鄢陵君與壽陵君,飯封祿之粟,而戴方府之金,與之馳騁乎雲夢之中,而不以天下國家為事。不知夫穰侯方受命乎秦王,填黽塞之內,而投己乎黽塞之外。」襄王聞之,顏色變作,身體戰慄。於是乃以執珪而授之為陽陵君,與淮北之地也。


齊明說卓滑以伐秦

齊明說卓滑以伐秦,滑不聽也。齊明謂卓滑曰:「明之來也,為樗里疾卜交也。明說楚大夫以伐秦,皆受明之說也,唯公弗受也,臣有辭以報樗裡子矣。」卓滑因重之。


或謂黃齊

或謂黃齊曰:「人皆以謂公不善於富摯。公不聞老萊子之教孔子事君乎?示之其齒之堅也,六十而盡相靡也。今富摯能,而公重不相善也,是兩盡也。諺曰:『見君之乘,下之;見杖,起之。』今也,王愛富摯,而公不善也,是不臣也。」


長沙之難

長沙之難,楚太子橫為質於齊。楚王死,薛公歸太子橫,因與韓、魏之兵,隨而攻東國。太子懼。昭蓋曰:「不若令屈署以新東國為和於齊以動秦。秦恐齊之敗東國,而令行於天下也,必將救我。」太子曰:「善。」遽令屈署以東國為和於齊。秦王聞之懼,令辛戎告楚曰:「毋與齊東國,吾與子出兵矣。」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謁者操以入。中射之士問曰:「可食乎?」曰:「可。」因奪而食之。王怒,使人殺中射之士。中射之士使人說王曰:「臣問謁者,謁者曰可食,臣故食之。是臣無罪,而罪在謁者也。且客獻不死之藥,臣食之而王殺臣,是死藥也。王殺無罪之臣,而明人之欺王。」王乃不殺。


客說春申君

客說春申君曰:「湯以亳,武王以鄗,皆不過百里以有天下。今孫子,天下賢人也,君籍之以百里勢,臣竊以為不便於君。何如?」春申君曰:「善。」於是使人謝孫子。孫子去之趙,趙以為上卿。客又說春申君曰:「昔伊尹去夏入殷,殷王而夏亡。管仲去魯入齊,魯弱而齊強。夫賢者之所在,其君未嘗不尊,國未嘗不榮也。今孫子,天下賢人也。君何辭之?」春申君又曰:「善。」於是使人請孫子於趙。孫子為書謝曰:「癘人憐王,此不恭之語也。雖然,不可不審察也。此為劫弒死亡之主言也。夫人主年少而矜材,無法術以知奸,則大臣主斷國私以禁誅於己也,故弒賢長而立幼弱,廢正適而立不義。春秋戒之曰:『楚王子圍聘於鄭,未出竟,聞王病,反問疾,遂以冠纓絞王,殺之,因自立也。齊崔杼之妻美,莊公通之。崔杼帥其君黨而攻。莊公請與分國,崔杼不許;欲自刃於廟,崔杼不許。莊公走出,踰於外牆,射中其股,遂殺之,而立其弟景公。』近代所見:李兌用趙,餓主父於沙丘,百日而殺之;淖齒用齊,擢閔王之筋,縣於其廟梁,宿夕而死。夫厲雖腫胞疾,上比前世,未至絞纓射股;下比近代,未至擢筋而餓死也。夫劫弒死亡之主也,心之憂勞,形之困苦,必甚於癘矣。由此觀之,癘雖憐王可也。」因為賦曰:「寶珍隋珠,不知佩兮。褘布與絲,不知異兮。閭姝子奢,莫知媒兮。嫫母求之,又甚喜之兮。以瞽為明,以聾為聰,以是為非,以吉為凶。嗚呼上天,曷惟其同!」詩曰:「上天甚神,無自瘵也。」


天下合從

天下合從。趙使魏加見楚春申君曰:「君有將乎?」曰:「有矣,僕欲將臨武君。」魏加曰:「臣少之時好射,臣願以射譬之,可乎?」春申君曰:「可。」加曰:「異日者,更羸與魏王處京臺之下,仰見飛鳥。更羸謂魏王曰:『臣為王引弓虛發而下鳥。』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可。』有間,雁從東方來,更羸以虛發而下之。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此孽也。』王曰:『先生何以知之?』對曰:『其飛徐而鳴悲。飛徐者,故瘡痛也;鳴悲者,久失群也,故瘡未息,而驚心未至也。聞弦音,引而高飛,故瘡隕也。』今臨武君,嘗為秦孽,不可為拒秦之將也。」


汗明見春申君

汗明見春申君,候問三月,而後得見。談卒,春申君大說之。汗明欲復談,春申君曰:「僕已知先生,先生大息矣。」汗明憱焉曰:「明願有問君而恐固。不審君之聖,孰與堯也?」春申君曰:「先生過矣,臣何足以當堯?」汗明曰:「然則君料臣孰與舜?」春申君曰:「先生即舜也。」汗明曰:「不然,臣請為君終言之。君之賢實不如堯,臣之能不及舜。夫以賢舜事聖堯,三年而後乃相知也。今君一時而知臣,是君聖於堯而臣賢於舜也。」春申君曰:「善。」召門吏為汗先生著客籍,五日一見。汗明曰:「君亦聞驥乎?夫驥之齒至矣,服鹽車而上太行。蹄申膝折,尾湛胕潰,漉汁灑地,白汗交流,中阪遷延,負轅不能上。伯樂遭之,下車攀而哭之,解紵衣以冪之。驥於是俛而噴,仰而鳴,聲達於天,若出金石聲者,何也?彼見伯樂之知己也。今僕之不肖,阨於州部,堀穴窮巷,沈洿鄙俗之日久矣,君獨無意湔拔僕也,使得為君高鳴屈於梁乎?」


楚考烈王無子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眾,卒無子。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又無寵。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還謁,春申君問狀。對曰:「齊王遣使求臣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春申君曰:「聘入乎?」對曰:「未也。」春申君曰:「可得見乎?」曰:「可。」於是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知其有身,園乃與其女弟謀。園女弟承間說春申君曰:「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今君相楚王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即楚王更立,彼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非徒然也?君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奈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妾之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妾賴天而有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封盡可得,孰與其臨不測之罪乎?」春申君大然之。乃出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立為王后。楚王貴李園,李園用事。李園既入其女弟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

春申君相楚二十五年,考烈王病。朱英謂春申君曰:「世有無妄之福,又有無妄之禍。今君處無妄之世,以事無妄之主,安不有無妄之人乎?」春申君曰:「何謂無妄之福?」曰:「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為相國,實楚王也。五子皆相諸侯。今王疾甚,旦暮且崩,太子衰弱,疾而不起,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因而有楚國。此所謂無妄之福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禍?」曰:「李園不治國,王之舅也。不為兵將,而陰養死士之日久矣。楚王崩,李園必先入,據本議制斷君命,秉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無妄之禍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人?」曰:「君先仕臣為郎中,君王崩,李園先入,臣請為君其胸殺之。此所謂無妄之人也。」春申君曰:「先生置之,勿復言已。李園,軟弱人也,僕又善之,又何至此?」朱英恐,乃亡去。後十七日,楚考烈王崩,李園果先入,置死士,止於棘門之內。春申君後入,止棘門。園死士夾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於是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為楚幽王也。是歲,秦始皇立九年矣。嫪毐亦為亂於秦。覺,夷三族,而呂不韋廢。


虞卿謂春申君

虞卿謂春申君曰:「臣聞之春秋,於安思危,危則慮安。今楚王之春秋高矣,而君之封地,不可不早定也。為主君慮封者,莫如遠楚。秦孝公封商君,孝公死,而後不免殺之。秦惠王封冉子,惠王死,而後王奪之。公孫鞅,功臣也;冉子,親姻也。然而不免奪死者,封近故也。太公望封於齊,邵公奭封於燕,為其遠王室矣。今燕之罪大而趙怒深,故君不如北兵以德趙,踐亂燕,以定身封,此百代之一時也。」君曰:「所道攻燕,非齊則魏。魏、齊新怨楚,楚君雖欲攻燕,將道何哉?」對曰:「請令魏王可。」君曰:「何如?」對曰:「臣請到魏,而使所以信之。」迺謂魏王曰:「夫楚亦強大矣,天下無敵,乃且攻燕。」魏王曰:「鄉也,子云天下無敵;今也,子云乃且攻燕者,何也?」對曰:「今為馬多力則有矣,若曰勝千鈞則不然者,何也?夫千鈞非馬之任也。今謂楚強大則有矣,若越趙、魏而鬥兵於燕,則豈楚之任也我?非楚之任而楚為之,是敝楚也。敝楚見強魏也,其於王孰便也?」

戰國策 (전국책) 卷12 齊策五

戰國策(전국책)

卷11 卷12•齊策五 卷13


蘇秦說齊閔王

蘇秦說齊閔王曰:「臣聞用兵而喜先天下者憂,約結而喜主怨者孤。夫後起者藉也,而遠怨者時也。是以聖人從事,必藉於權而務興於時。夫權藉者,萬物之率也;而時勢者,百事之長也。故無權籍,倍時勢,而能事成者寡矣。今雖干將、莫邪,非得人力,則不能割劌矣。堅箭利金,不得弦機之利,則不能遠殺矣。矢非不銛,而劍非不利也,何則?權藉不在焉。何以知其然也?昔者趙氏襲衛,車舍人不休傅,衛國城割平,衛八門土而二門墮矣,此亡國之形也。衛君跣行,告於魏。魏王身被甲底劍,挑趙索戰。邯鄲之中騖,河、山之間亂。衛得是藉也,亦收餘甲而北面,殘剛平,墮中牟之郭。衛非強於趙也,譬之衛矢而魏弦機也,藉力魏而有河東之地。趙氏懼,楚人救趙而伐魏,戰於州西,出梁門,軍舍林中,馬飲於大河。趙得是藉也,亦襲魏之河北燒棘溝,墜黃城。故剛平之殘也,中牟之墮也,黃城之墜也,棘溝之燒也,此皆非趙、魏之欲也。然二國勸行之者,何也?衛明於時權之藉也。今世之為國者不然矣。兵弱而好敵強,國罷而好眾怨,事敗而好鞠之,兵弱而憎下人也,地狹而好敵大,事敗而好長詐。行此六者而求伯,則遠矣。

「臣聞善為國者,順民之意,而料兵之能,然後從於天下。故約不為人主怨,伐不為人挫強。如此,則兵不費,權不輕,地可廣,欲可成也。昔者,齊之與韓、魏伐秦、楚也,戰非甚疾也,分地又非多韓、魏也,然而天下獨歸咎於齊者,何也?以其為韓、魏主怨也。且天下遍用兵矣,齊、燕戰,而趙氏兼中山,秦、楚戰韓、魏不休,而宋、越專用其兵。此十國者,皆以相敵為意,而獨舉心於齊者,何也?約而好主怨,伐而好挫強也。且夫強大之禍,常以王人為意也;夫弱小之殃,常以謀人為利也。是以大國危,小國滅也。大國之計,莫若後起而重伐不義。夫後起之籍與多而兵勁,則事以眾強適罷寡也,兵必立也。事不塞天下之心,則利必附矣。大國行此,則名號不攘而至,伯王不為而立矣。小國之情,莫如僅靜而寡信諸侯。僅靜,則四鄰不反;寡信諸侯,則天下不賣。外不賣,內不反,則檳禍朽腐而不用,幣帛矯蠹而不服矣。小國道此,則不祠而福矣,不貸而見足矣。故曰:祖仁者王,立義者伯,用兵窮者亡。何以知其然也?昔吳王夫差以強大為天下先,強襲郢而棲越,身從諸侯之君,而卒身死國亡,為天下戮者,何也?此夫差平居而謀王,強大而喜先天下之禍也。昔者萊、莒好謀,陳、蔡好詐,莒恃越而滅,蔡恃晉而亡,此皆內長詐,外信諸侯之殃也。由此觀之,則強弱大小之禍,可見於前事矣。

「語曰:『麒驥之衰也,駑馬先之;孟賁之倦也,女子勝之。』夫駑馬、女子,筋骨力勁,非賢於騏驥、孟賁也。何則?後起之藉也。今天下之相與也不並滅,有而案兵而後起,寄怨而誅不直,微用兵而寄於義,則亡天下可跼足而須也。明於諸侯之故,察於地形之理者,不約親,不相質而固,不趨而疾,眾事而不反,交割而不相憎,俱彊而加以親。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何以知其然也?昔者齊、燕戰於桓之曲,燕不勝,十萬之眾盡。胡人襲燕樓煩數縣,取其牛馬。夫胡之與齊非素親也,而用兵又非約質而謀燕也,然而甚於相趨者,何也?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由此觀之,約於同形則利長,後起則諸侯可趨役也。

「故明主察相,誠欲以伯王也為志,則戰攻非所先。戰者,國之殘也,而都縣之費也。殘費已先,而能從諸侯者寡矣。彼戰者之為殘也,士聞戰則輸私財而富軍巿,輸飲食而待死士,令折轅而炊之,殺牛而觴士,則是路君之道也。中人禱祝,君翳釀,通都小縣置社,有巿之邑莫不止事而奉王,則此虛中之計也。夫戰之明日,屍死扶傷,雖若有功也,軍出費,中哭泣,則傷主心矣。死者破家而葬,夷傷者空財而共藥,完者內酺而華樂,故其費與死傷者鈞。故民之所費也,十年之田而不償也。軍之所出,矛戟折,鐶弦絕,傷弩,破車,罷馬,亡矢之大半。甲兵之具,官之所私出也,士大夫之所匿,廝養士之所竊,十年之田而不償也。天下有此再費者,而能從諸侯寡矣。攻城之費,百姓理襜蔽,舉衝櫓,家雜總,身窟穴,中罷於刀金。而士困於土功,將不釋甲,期數而能拔城者為亟耳。上倦於教,士斷於兵,故三下城而能勝敵者寡矣。故曰:彼戰攻者,非所先也。何以知其然也?昔智伯瑤攻范、中行氏,殺其君,滅其國,又西圍晉陽,吞兼二國,而憂一主,此用兵之盛也。然而智伯卒身死國亡,為天下笑者,何謂也?兵先戰攻,而滅二子患也。日者,中山悉起而迎燕、趙,南戰於長子,敗趙氏;北戰於中山,克燕軍,殺其將。夫中山千乘之國也,而敵萬乘之國二,再戰北勝,此用兵之上節也。然而國遂亡,君臣於齊者,何也?不嗇於戰攻之患也。由此觀之,則戰攻之敗,可見於前事。

「今世之所謂善用兵者,終戰比勝,而守不可拔,天下稱為善,一國得而保之,則非國之利也。臣聞戰大勝者,其士多死而兵益弱;守而不可拔者,其百姓罷而城郭露。夫士死於外,民殘於內,而城郭露於境,則非王之樂也。今夫鵠的非咎罪於人也,便弓引弩而射之,中者則善,不中則愧,少長貴賤,則同心於貫之者,何也?惡其示人以難也。今窮戰比勝,而守必不拔,則是非徒示人以難也,又且害人者也,然則天下仇之必矣。夫罷士露國,而多與天下為仇,則明君不居也;素用強兵而弱之,則察相不事。彼明君察相者,則五兵不動而諸侯從,辭讓而重賂至矣。故明君之攻戰也,甲兵不出於軍而敵國勝,衝櫓不施而邊城降,士民不知而王業至矣。彼明君之從事也,用財少,曠日遠而為利長者。故曰:兵後起則諸侯可趨役也。

「臣之所聞,攻戰之道非師者,雖有百萬之軍,比之堂上;雖有闔閭、吳起之將,禽之戶內;千丈之城,拔之尊俎之間;百尺之衝,折之衽席之上。故鍾鼓竽瑟之音不絕,地可廣而欲可成;和樂倡優侏儒之笑不之,諸侯可同日而致也。故名配天地不為尊,利制海內不為厚。故夫善為王業者,在勞天下而自佚,亂天下而自安,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也。何以知其然?佚治在我,勞亂在天下,則王之道也。銳兵來則拒之,患至則趨之,使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矣。何以知其然矣?昔者魏王擁土千里,帶甲三十六萬,其強而拔邯鄲,西圍定陽,又從十二諸侯朝天子,以西謀秦。秦王恐之,寢不安席,食不甘味,令於境內,盡堞中為戰具,竟為守備,為死士置將,以待魏氏。衛鞅謀於秦王曰:『夫魏氏其功大,而令行於天下,有十二諸侯而朝天子,其與必眾。故以一秦而敵大魏,恐不如。王何不使臣見魏王,則臣請必北魏矣。』秦王許諾。衛鞅見魏王曰:『大王之功大矣,令行於天下矣。今大王之所從十二諸侯,非宋、衛也,則鄒、魯、陳、蔡,此固大王之所以鞭箠使也,不足以王天下。大王不若北取燕,東伐齊,則趙必從矣;西取秦,南伐楚,則韓必從矣。大王有伐齊、楚心,而從天下之志,則王業見矣。大王不如先行王服,然後圖齊、楚。』魏王說於衛鞅之言也,故身廣公宮,制丹衣柱,建九斿,從七星之旟。此天子之位也,而魏王處之。於是齊、楚怒,諸侯奔齊,齊人伐魏,殺其太子,覆其十萬之軍。魏王大恐,跣行按兵於國,而東次於齊,然後天下乃舍之。當是時,秦王垂拱受西河之外,而不以德魏王。故曰衛鞅之始與秦王計也,謀約不下席,言於尊俎之間,謀成於堂上,而魏將以禽於齊矣;衝櫓未施,而西河之外入於秦矣。此臣之所謂比之堂上,禽將戶內,拔城於尊俎之間,折衝席上者也。」

適口之餠 (적구지병)

適口之餠(적구지병)

適 맞을 적 | 口 입 구 | 之 갈 지 | 餠 떡 병 |

입에 맞는 떡으로, 제 마음에 꼭 드는 사물(事物)을 이르는 말 .

戰國策 (전국책, Zhànguócè)

戰國策(전국책)

異名:
战国策(zhànguócè)


중국(中國) 전한(前漢) 시대(時代)의 유향(劉向)이 전국(戰國) 시대(時代) 12개국(個國)에서 유세객(遊說客)들이 세운 지략(智略)을 모아 엮어 편찬(編纂)한 33권의 책(冊)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 ~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그러나 초기의 자료는 아주 미흡한 상태여서 북송의 증공(曾鞏)이 분실된 자료를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찾아 보정(補訂)하여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초(楚),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12개국 486장으로 정리하였다. 조(趙)ㆍ위(魏)ㆍ한(韓) 3국이 진(晉)을 분할한 데서 시작하여 연(燕)의 멸망에서 끝난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중요 사료(史料)였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이나 문장이 매우 난해하고 거칠고 누락된 부분이 많아 후에 여러 사람이 주를 달아 교주본(校注本)이 나왔다. 동한(東漢)의 고유(高誘), 남송의 요굉(姚宏)이 추가 주를 달아 《고씨주전국책(高氏注戰國策)》이 나왔다. 한편, 같은 시기 포표(鮑彪)가 고유(高誘)의 주를 없애고 스스로 주를 달아 《전국책주(戰國策注)》를 내놓았다. 후에 원대(元代) 오사도(吳師道)가 요굉(姚宏)본과 포표(鮑彪)본을 근거로 《전국책교주(戰國策校注)》를 내놓았다. 그러나 큰 주류는 요굉의 교주본(남송대, 33권, 원본에 가장 가까움)과 포표의 교주본(남송대, 10권, 1147년 완성)이 중심이다.

전국책의 저자 논쟁이 있는데, 무명씨설, 유향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참여설, 종횡가를 배운 사람의 저작 설, 유향(劉向) 일가의 학문설 등으로 아직도 일부 논쟁이 있다. 원작에 주석을 달아 교주본을 낸 사람도 많다. 증공(曾鞏), 요굉(姚宏), 포표(鮑彪), 오사도(吳師道), 홍매(洪邁), 오래(吳萊), 김정위(金正煒) 등 10명에 이른다.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은 왕 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책사(策士), 모사(謀士), 설객(說客)들이 온갖 꾀를 다 부린 이야기가 중심으로 언론(言論)과 사술(詐術)이다. 그리하여 영어로는 Intrigues(음모, 술책)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칠웅(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趙), 위(魏), 한(韓)을 중심으로 그 외에 작은 소제후국들이 많았다. 이들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군사, 외교를 능률적으로 수행하여 상대국에 승리하고 그리하여 천하를 얻을 심오한 이념과 책략들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 또한 섭정(聶政), 손빈(孫臏), 상앙(喪鞅), 소진(蘇秦), 맹상군(孟嘗君), 맹자(孟子), 여불위(呂不韋), 형가(荊軻), 묵자(墨子), 자순(子順) 등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하고, 당시에 유행한 존왕양이(尊王攘夷),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합종연횡(合從連橫 - 縱橫家, 合從家), 원교근종(遠交近攻) 등 각종 사상과 전략이 등장한다.


고사성어

卷十二•齊策五

騏麟之衰也(기린지쇠야) | 駑馬先之(노마선지) |

卷十七•楚策四

傷弓之鳥(상궁지조) |

卷三十•燕策二

蚌鷸之爭(방휼지쟁) | 漁父之利(어부지리) |

貞觀政要 (정관정요) 吳兢 (오긍)

貞觀政要(정관정요) 吳兢(오긍)

중국 당나라의 오긍(吳兢)이 지은 책. 태종이 가까운 신하들과 정관 시대에 행한 정치상의 득실에 관하여 문답한 말을 모아 엮었다. 10권.


관련 한자어

割股啖腹(할고담복)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인다는 뜻으로, 결국 제 살을 깎아먹어 제 손해가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임금이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임무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다. 백성을 다치게 하거나 그들의 몸을 바쳐 자신을 받들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제가 제 허벅지살을 잘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萬死一生(만사일생)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는 뜻.

林深則鳥棲 水廣則魚游 仁義積則 物自歸之 (임심즉조서 수광즉어유 인의적즉 물자귀지) 깊은 숲에는 새들이 서식하고, 넓은 물에는 물고기들이 놀듯이, 인의를 쌓으면 만물이 스스로 귀의한다.

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그 의지의 강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

電光石火 (전광석화)

電光石火(전광석화)

電 번개 전 | 光 빛 광 | 石 돌 석 | 火 불 화 |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①극히 짧은 시간(時間) ②아주 신속(迅速)한 동작(動作) ③일이 매우 빠른 것을 가리키는 말

鄭谷 (정곡, Zhèng Gǔ)

鄭谷(정곡)

異名: 左郑谷(Zhèng Gǔ)


중국 당(唐)나라 말기 시인. 7세부터 시를 잘 지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