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筆從戎 (투필종융)

投筆從戎(투필종융)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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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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