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房四友 (문방사우)

文房四友(문방사우)

종이, 붓, 벼루, 먹.

物腐蟲生 (물부충생)

物腐蟲生(물부충생)

物 물건 물 | 腐 썩을 부 | 蟲 벌레 충, 벌레 훼, 찔 동 | 生 날 생 |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뜻으로, ①남을 의심한 뒤에 그를 두고 하는 비방(誹謗)이나 소문을 듣고 믿게 됨 ②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

Worms breed in decaying matter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범증론(范增論)》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소동파는 "생물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 벌레가 생기고[物必先腐也而後 蟲生之], 사람도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 남의 모함을 듣는다[人必先疑也而後 讒入之]"라고 함으로써 항우(項羽)에게 버림받은 범증(范增)을 묘사하였다.

진(秦)나라 말년, 범증(范增)은 항우의 숙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여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다.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한 항량이 죽은 후, 그의 조카 항우가 그를 계승하였다.

항우는 용맹하였지만 지모(智謀)가 없었으므로 주로 범증의 계획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였다. 범증은 유방(劉邦)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고 경계하여 항우에게 유방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범증은 홍문(鴻門)에서 열린 연회에 유방(劉邦)을 초대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유방은 범증이 항우를 도와주는 동안은 항우와 마주 겨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범증과 항우를 이간시키는 공작을 꾸몄다. 항우는 이 계략에 휘말려 범증을 의심하여 그를 멀리 하였다. 범증도 몹시 분개하여 항우를 떠나고 말았다. 얼마후 범증은 병사하였고, 항우는 유방에게 망하였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은 범증론(范增論)이라는 글에서 범증이 항우의 곁을 떠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이고[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사람이란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야 모함이 먹혀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物腐蟲生(Worms breed in decaying matter) 이란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출전

소동파(蘇東坡) 범증론(范增論)

文武崇尙 (문무숭상)

文武崇尙(문무숭상)

학문과 무예를 다같이 높이어 숭상함.

武陵桃源 (무릉도원)

武陵桃源(무릉도원)

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 理想鄕(이상향) 즉 유토피아를 말한다.


晋(진)나라 때 무릉이란 마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부는 배를 저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여태까지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

계곡 양쪽엔 온통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배를 저어가던 어부는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이나 되는 곳인가. 그리고 이 복숭아밭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단 말인가. 호기심에 좀 더 거슬러 올라가니까 내(川)가 그치는 곳에 높다란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산에는 작은 굴이 뚫려있어 어부가 배를 버리고 굴에 들어가 얼마를 걷자니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부시는 눈을 겨우 뜨고 보니 바로 앞에 널따란 땅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연하게 들어선 집들과 잘 가꾸어진 밭.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밭일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마을 주민들은 옛날 秦(진)나라의 虐政(학정)을 피해 이 絶景(절경)을 찾아 온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그 이후 바깥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살아왔다고 했다.

어부는 환대를 받으며 그곳에서 며칠 묵은 다음 귀로에 올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곳 이야기를 하지 말고 다시는 찾지말아달라는 당부를 받았으나 어부는 오는 도중 곳곳에 標識(표지)를 해두었다.

어부는 돌아와서 그가 겪은 일을 그 지방 태수에게 보고했다. 태수도 크게 관심을 가지며 사람들을 시켜 그 마을을 찾게 했으나 표지조차 없어져버려 수색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晋나라의 대시인 陶淵明(도연명)의 「도화원기」에 실려있는데 그 신비의 마을 무릉도원은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이상향이 되었다.


도연명, 도화원기, 陶淵明

無念無想 (무념무상)

無念無想(무념무상)

무아의 경지에 이름.

刎頸之交 (문경지교)

刎頸之交(문경지교)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마음을 변치 않는 우정. 중국 전국 시대 인상여와 염파의 친교에서 생긴 말.

文君司馬 (문군사마)

文君司馬(문군사마)

文 무늬 문 | 君 임금 군 | 司 맡을 사 | 馬 말 마 |

文君司馬란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戀人)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사마상여(司馬相如) 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서한(西漢) 시기, 임공(臨 )이라는 곳에 탁왕손(卓王孫)이라는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일찍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혼자 지내는 탁문군(卓文君)이라는 딸이 있었다. 평소 이러한 탁문군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젊고 유능한 사마상여는 연회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하여 탁문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 날 밤, 탁문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사마상여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탁왕손은 딸의 이러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어려운 생활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많은 재물을 주었다.

이렇듯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자신들의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행복한 애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출전

사기(史記) 사마상여(司馬相如)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