雁門紫塞鷄田赤城(안문자새계전적성)
雁 기러기 안 | 門 문 문 | 紫 붉을 자 | 塞 변방 새 | 雞 닭 계 | 田 밭 전 | 赤 붉을 적 | 城 재 성
雁門(안문)과 紫塞(자새), 鷄田(계전)과 赤城(적성) 땅.
이 구절은 중국 북쪽지방의 유명한 곳을 소개한 것이다. 기러기 왕래하는 안문관이 있는가 하면 만리장성이 가로놓여 있으며, 계전이라는 변방의 광막한 지역이 있고 옛날 蚩尤(치우)가 살던 적성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계전과 적성은 주나라 문왕과 진나라 목공이 암탉을 얻고 왕이 되었다고 하는 곳이다.
[출전]
千字文(천자문)
雁門紫塞 (안문자새)
雁門紫塞(안문자새) 雁 기러기 안 | 門 문 문 | 紫 붉을 자 | 塞 변방 새 | 높은 봉우리로는 안문산이 있고, 성으로는 만리장성이 있다. [출전] 千字文(천자문)
樂雷發 (악뇌발, Lè Léifā)
樂雷發(악뇌발)
異名: 乐雷发(Lè Léi fā), 낙뢰발
송대(宋代) 시인.
중국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시 문학은 당송 시대를 거치며 완성 단계에 이른다.
그 중 송시(宋詩)는 이민족의 침략과 불안한 정치 현실 속에서 당시를 뛰어넘어 고전 시가의 새 지평을 연 중국 고전 시가이다. 송시는 화려한 봄꽃에 비유되는 당시와 달리 포근하면서도 은은한 멋으로 가을 국화에 비유되곤 한다. 이는 철저한 문치를 내세웠던 송대의 시대의식이 시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이다.
당시의 완성도 높은 시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아픔과 사회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루어 당시와는 다른 독자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송대는 성리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성적 사유 세계가 찬란하게 꽃피었던 시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라 안팎이 혼란하여 정치적 파벌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북방 이민족의 침략으로 북송이 멸망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좌절은 클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인 자신이 몸담은 조정을 향한 질타, 떠올리기조차 싫은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 그리고 자신의 실존에 대한 번민의 형태로 시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한 금의 건국으로 한족과 이민족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했는데 이는 시인들이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국토 회복에 대한 열망은 육유나 문천상 등의 애국 시인들의 출현을 불러오기도 했다.
송대 시인들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남녀 간의 애정, 자연 풍류 등 개인적 서정의 표출은 억제했고, 시대 의식이나 성리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주제를 적극적으로 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로써 송시는 시 세계가 개인의 감성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비판과 실천적 문제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고전 시가의 새 지평을 열었다.
송시는 당시의 완성도 높은 시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아픔과 사회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루어 송시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했다. 왕우칭, 양만리 등은 소재를 일상생활로 확장하여 도공이나 화전민, 농가의 모습 등을 시 속에 진실하게 담아냈으며, 매요신과 소식 등은 고양이를 제사 지내거나 바위 아래 놓인 개미의 모습을 보며 자유롭게 시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는 통찰력 있는 세계관과 개성적인 표현으로 진일보한 송시의 일면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악뢰발 관련 한시
秋日行村路(추일행촌로)
異名: 乐雷发(Lè Léi fā), 낙뢰발
송대(宋代) 시인.
중국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시 문학은 당송 시대를 거치며 완성 단계에 이른다.
그 중 송시(宋詩)는 이민족의 침략과 불안한 정치 현실 속에서 당시를 뛰어넘어 고전 시가의 새 지평을 연 중국 고전 시가이다. 송시는 화려한 봄꽃에 비유되는 당시와 달리 포근하면서도 은은한 멋으로 가을 국화에 비유되곤 한다. 이는 철저한 문치를 내세웠던 송대의 시대의식이 시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이다.
당시의 완성도 높은 시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아픔과 사회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루어 당시와는 다른 독자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송대는 성리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성적 사유 세계가 찬란하게 꽃피었던 시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라 안팎이 혼란하여 정치적 파벌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북방 이민족의 침략으로 북송이 멸망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좌절은 클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인 자신이 몸담은 조정을 향한 질타, 떠올리기조차 싫은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 그리고 자신의 실존에 대한 번민의 형태로 시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한 금의 건국으로 한족과 이민족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했는데 이는 시인들이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국토 회복에 대한 열망은 육유나 문천상 등의 애국 시인들의 출현을 불러오기도 했다.
송대 시인들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남녀 간의 애정, 자연 풍류 등 개인적 서정의 표출은 억제했고, 시대 의식이나 성리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주제를 적극적으로 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로써 송시는 시 세계가 개인의 감성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비판과 실천적 문제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고전 시가의 새 지평을 열었다.
송시는 당시의 완성도 높은 시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아픔과 사회 문제 등을 깊이 있게 다루어 송시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했다. 왕우칭, 양만리 등은 소재를 일상생활로 확장하여 도공이나 화전민, 농가의 모습 등을 시 속에 진실하게 담아냈으며, 매요신과 소식 등은 고양이를 제사 지내거나 바위 아래 놓인 개미의 모습을 보며 자유롭게 시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는 통찰력 있는 세계관과 개성적인 표현으로 진일보한 송시의 일면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악뢰발 관련 한시
秋日行村路(추일행촌로)
暗渡陳倉 (암도진창, àndùchéncāng)
暗渡陳倉(암도진창)
暗渡陈仓(àndùchéncāng)
暗 어두울 암 | 渡 건널 도 | 陳 펼칠 진 | 倉 창고 창 |
三十六計 敵戰計 第八計. 아무도 모르게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이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한(漢)나라의 장군 한신(韓信)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사용한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제8계이다.
진나라 말기에 한나라의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항우는 유방을 경계하여 한왕(漢王)으로 봉함으로써 군사 요충지인 관중(關中)을 떠나 한중(漢中)으로 가도록 하였다. 유방은 관중을 떠날 때 장량(張良)의 권고를 따라 잔도(棧道)를 붙태워 버렸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길인데, 너무도 위험하여 부임지로 가는 동안에만 수많은 병사들이 탈영했고, 심지어 장수들까지도 도망치는 자가 많았다. 관중으로 통하는 이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림으로써 자신이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뜻을 항우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중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동쪽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불타 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였다. 한신은 병력 1만을 주고 번쾌에게 잔도를 3개월 안으로 보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한편 유방이 파촉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삼진(三秦)의 왕 중 장한(章邯)은 신속히 잔도 보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실제 잔도는 1만의 군사가 3개월이 아니라 3년의 시간이 걸려도 보수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이에 장한을 비롯한 삼진의 왕들은 마음을 놓고 방심하면서도 군사들을 잔도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한신의 생각은 잔도의 보수가 아니었다. 잔도의 보수가 오래 걸릴 것이라 보고 삼진의 왕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진령산맥을 우회하여 단숨에 전략적 요충지인 陳倉(진창:지명)을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는 기세를 몰아 삼진왕들을 무찌르고 단숨에 관중을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유방은 파촉에 부임하는 漢中王(한중왕)으로 임명된지 불과 석달만에 항우와 어깨를 겨루는 楚漢之爭(초한지쟁)에 접어들게 된다.
이로부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하여 암도진창은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행동을 취하여 적의 주의를 끈 뒤에 방비가 허술해진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36계의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양동을 벌여 적이 이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기습한다.[示之以動,利其靜而有主,益動而巽.]"
이 성어는 비단 삼십육계에서만이 아니고, 중국의 史書(사서)에서 '뒷전에서 딴 짓을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明修棧道 暗渡陳倉(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暗渡陈仓(àndùchéncāng)
暗 어두울 암 | 渡 건널 도 | 陳 펼칠 진 | 倉 창고 창 |
三十六計 敵戰計 第八計. 아무도 모르게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이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한(漢)나라의 장군 한신(韓信)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사용한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제8계이다.
진나라 말기에 한나라의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항우는 유방을 경계하여 한왕(漢王)으로 봉함으로써 군사 요충지인 관중(關中)을 떠나 한중(漢中)으로 가도록 하였다. 유방은 관중을 떠날 때 장량(張良)의 권고를 따라 잔도(棧道)를 붙태워 버렸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길인데, 너무도 위험하여 부임지로 가는 동안에만 수많은 병사들이 탈영했고, 심지어 장수들까지도 도망치는 자가 많았다. 관중으로 통하는 이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림으로써 자신이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뜻을 항우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중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동쪽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불타 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였다. 한신은 병력 1만을 주고 번쾌에게 잔도를 3개월 안으로 보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한편 유방이 파촉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삼진(三秦)의 왕 중 장한(章邯)은 신속히 잔도 보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실제 잔도는 1만의 군사가 3개월이 아니라 3년의 시간이 걸려도 보수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이에 장한을 비롯한 삼진의 왕들은 마음을 놓고 방심하면서도 군사들을 잔도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한신의 생각은 잔도의 보수가 아니었다. 잔도의 보수가 오래 걸릴 것이라 보고 삼진의 왕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진령산맥을 우회하여 단숨에 전략적 요충지인 陳倉(진창:지명)을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는 기세를 몰아 삼진왕들을 무찌르고 단숨에 관중을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유방은 파촉에 부임하는 漢中王(한중왕)으로 임명된지 불과 석달만에 항우와 어깨를 겨루는 楚漢之爭(초한지쟁)에 접어들게 된다.
이로부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하여 암도진창은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행동을 취하여 적의 주의를 끈 뒤에 방비가 허술해진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36계의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양동을 벌여 적이 이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기습한다.[示之以動,利其靜而有主,益動而巽.]"
이 성어는 비단 삼십육계에서만이 아니고, 중국의 史書(사서)에서 '뒷전에서 딴 짓을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明修棧道 暗渡陳倉(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阿堵物 (아도물)
아도물(阿堵物)
阿 언덕 아 | 賭 걸 도 | 物 만물 물
이 물건이라는 말로, 돈을 가리킨다. 중국 진(晉),송(宋)의 속어로, 돈을 달리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 왕이보(王夷甫)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왕융의 사촌동생이다. 왕이보는 성격이 고아하여 세속적인 일보다는 청담(淸談)하기를 좋아하였다. 이런 성격 탓인지, 흉노가 진나라 도읍 낙양(落陽)을 쳐들어왔을 때도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왕이보의 아내는 재주가 낮고 성격이 강퍅했으며 재물을 모으는 일을 크나큰 기쁨으로 알고 사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남편의 일에 간섭이 심했다. 왕이보는 이를 근심만 했지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이 때 왕이보와 같은 고향 출신인 유주자사 이양이 서울에서 유협을 이끌고 있었다. 왕이보의 아내도 이양만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이보는 아내를 달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만 당신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양도 역시 당신의 하는 일을 지나치다고 보고 있소."
한번은 왕이보가 한번도 입으로 '돈'자를 내뱉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돈만 좋아하는 아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부인을 이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종을 시켜서 그가 잠든 사이 돈을 가져다가 침대 둘레에 뿌려 막아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왕이보는 잠에서 깨어 보니 돈에 막혀 나갈 수 없게 되자, 여종을 불러 소리쳤다.
"어서 이 물건(阿堵物)을 치워라!"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규잠(規箴) 편
阿 언덕 아 | 賭 걸 도 | 物 만물 물
이 물건이라는 말로, 돈을 가리킨다. 중국 진(晉),송(宋)의 속어로, 돈을 달리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 왕이보(王夷甫)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왕융의 사촌동생이다. 왕이보는 성격이 고아하여 세속적인 일보다는 청담(淸談)하기를 좋아하였다. 이런 성격 탓인지, 흉노가 진나라 도읍 낙양(落陽)을 쳐들어왔을 때도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왕이보의 아내는 재주가 낮고 성격이 강퍅했으며 재물을 모으는 일을 크나큰 기쁨으로 알고 사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남편의 일에 간섭이 심했다. 왕이보는 이를 근심만 했지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이 때 왕이보와 같은 고향 출신인 유주자사 이양이 서울에서 유협을 이끌고 있었다. 왕이보의 아내도 이양만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이보는 아내를 달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만 당신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양도 역시 당신의 하는 일을 지나치다고 보고 있소."
한번은 왕이보가 한번도 입으로 '돈'자를 내뱉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돈만 좋아하는 아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부인을 이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종을 시켜서 그가 잠든 사이 돈을 가져다가 침대 둘레에 뿌려 막아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왕이보는 잠에서 깨어 보니 돈에 막혀 나갈 수 없게 되자, 여종을 불러 소리쳤다.
"어서 이 물건(阿堵物)을 치워라!"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규잠(規箴) 편
晏幾道 (안기도, Yàn Jǐdào)
안기도(晏幾道)
異名: 晏几道, Yàn Jǐdào
안수(晏殊, 991~1055)의 일곱째 아들. 자를 숙원(叔原)이라 하며, 사(詞)에 능하여 《소산사(小山詞)》(l권) 등이 있다. 아버지를 닮은 온화한 작풍(作風)을 보여주고 있다.
異名: 晏几道, Yàn Jǐdào
안수(晏殊, 991~1055)의 일곱째 아들. 자를 숙원(叔原)이라 하며, 사(詞)에 능하여 《소산사(小山詞)》(l권) 등이 있다. 아버지를 닮은 온화한 작풍(作風)을 보여주고 있다.
眼光紙背撤 (안광지배철)
眼光紙背撤(안광지배철)
눈빛이 종이의 뒷면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깊은 속 뜻까지 아는 것을 의미함.
눈빛이 종이의 뒷면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깊은 속 뜻까지 아는 것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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