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勃 (왕발, Wáng Bó)

王勃(왕발)

이름: 王勃(Wáng Bó), 자 자안(子安)
국적: 중국 당(唐)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강주(絳州) 용문(龍門:山西省 河津縣)
주요저서: 《왕자안집(王子安集)》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리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 종래의 완미(婉媚)한 육조 시(六朝詩)의 껍질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감을 읊어 성당 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5언 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다. 시문집 《왕자안집(王子安集)》 등을 남겼다.


자 자안(子安). 강주(絳州) 용문(龍門:山西省 河津縣) 출생. 일설에는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출생이라고 한다. 수(隋)나라 말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다. 조숙한 천재로 6세 때 문장을 잘하였고,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하였다. 젊어서 그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이미 조산랑(朝散郞)의 벼슬을 받았다.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유행하였던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高宗)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을 방랑하였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 복치(福畤)를 만나러갔다가 돌아오던 중,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하였다.

양형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초당(初唐)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왕양노락(王楊盧駱)’이라 불렸던 그는 종래의 완미(婉媚)한 육조시(六朝詩)의 껍질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감을 읊어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5언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으며, 시문집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다.


참조항목

初唐四傑(초당사걸)

중국 초당기(初唐期:7세기)의 시단(詩壇)을 대표한 네 시인.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 등 네 사람이며 성(姓)만을 따서 '왕양노락(王楊盧駱)'이라고도 한다.네 사람 모두 처지가 비슷하였으며 2류사족(二流士族) 출신으로 젊어서 시단에서 이름을 떨쳤다. 양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적으로 불우하게 끝을 맺었다. 초당시(初唐詩)의 대세(大勢)는 남조(南朝)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교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사걸의 시도 총체적으로는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이들의 청순함과 새로운 감각과 그 표현 등은 다른 초당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정적 시풍을 느끼게 해준다. 이들 사걸의 시는 다음 성당시(盛唐詩)의 맹아(萌芽)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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