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暮途遠 (일모도원, rìmùtúyuǎn)

日暮途遠(일모도원)

日暮途远(rìmùtúyuǎn)

日 날 일 | 暮 저물 모 | 途 길 도 | 遠 멀 원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少傅)로 있었으나 성품이 간교하였다. 비무기는 태자를 배신하고 진(秦)에서 데려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아첨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 후,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를 참소하였다. 여자에게 빠져 버린 왕은 비무기의 말만 곧이듣고 왕자를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또 왕은 태자가 반기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엔 태부 오사를 꾸짖었는데, 오사는 도리어 왕의 그릇됨을 간하였다. 이 때문에 오사는 유폐되었다. 이번에는 오사의 두 아들의 보복이 두려워진 비무기는 태자의 음모는 그 두 아들의 보복이라 참언하였다. 그 때문에 오사의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때부터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오왕과 공자 광(光)을 만난 오자서는 공자가 왕위를 탐하여 자객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천거하였다. 이 때에 초나라는 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 천거한 여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으로 등극했다. 그 후 내분으로 비무기는 피살되고, 내분을 틈타 초를 치던 오왕은 전제의 칼에 죽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오황 합려(闔閭)다.

마침내 오나라의 행인(行人 :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昭王)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의 이야기이다. ‘일모도원’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자서의 이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 Wúshìchuīxiāo) |


사기, 사기:오자서열전, 오자서, 史記, 史記:伍子胥列傳, 伍子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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