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草驚蛇 (타초경사, dǎcǎojīngshé)

打草驚蛇(타초경사)

打草惊蛇(dǎcǎojīngshé)

打 칠 타 | 草 풀 초 | 驚 놀랄 경 | 蛇 뱀 사 |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깨우침을 비유하거나 또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말.


다음은 중국 당(唐)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의 수필집인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때, 지방의 한 탐관오리 현령(縣令)이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여 사복을 채우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일부러 현령에게 그 부하들의 부정부패 사실을 일일이 열거해 고발장을 올렸다. 그러자, 고발장을 읽어보던 현령은 깜짝 놀라며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라는 글귀를 적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즉, '너희들이 비록 풀밭을 건드렸지만 이미 나는 놀란 뱀과 같다.'라는 뜻으로,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 부하들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곧 우회적으로 자신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을을 징계해서 갑을 각성하게 하려 한 백성들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되었다.

[출전]
酉陽雜俎(유양잡조) |


三十六計 攻戰計 第十三計에 나오는 '타초경사'는 뱀을 찾아내어 잡는 것이 그 목적으로, 뱀을 잡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놀라는 척하며 풀밭을 두드리라고 한다. 즉,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전계란 말 그대로 공세를 취할 때 쓰는 계략이다. 공세를 취한다는 것은 적보다 병력이 우세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적보다 많은 병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들어갈 때 쓰이는 계략들이 이 '攻戰計'에 들어있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의 동향이 불확실하면 적을 자극해 실질을 살핀다. 그 후에 행동으로 들어간다. 이의 반복은 숨어있는 적을 발견하기 위한 계략이다.[疑以叩實,察而後動;復者,陰之媒也.]"

간단히 말해서 적을 '떠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초기, 강국이었던 鄭(정)나라의 이야기이다.

정나라 鄭武公(정무공)의 부인은 강씨였다. 강씨에겐 소생이 둘 있었는데, 장자의 이름은 寤生(오생)이고 차자의 이름은 段(단)이었다. 장자의 이름이 '寤(잠깰 오)'에 '生(날 생)'인 것은 이유가 있었다. 강씨가 장자를 낳을 때 그녀는 잠을 자고 있었다. 꿈에 해산하는 꿈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아기가 나와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오생이라 한 것이다. 강씨는 이 일을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후에 낳은 아들 段만을 편애했다. 그리고 정무공에게 단이 군위를 이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정무공은 長幼(장유)에는 질서가 있는 법이므로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생이 세자가 되었다. 정무공은 차자인 단에게는 共城(공성)이라는 땅을 주고 단을 共叔(공숙)이라고 불렀다. 강씨는 이러한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무공이 세상을 떠나고 오생이 즉위했다. 이가 바로 鄭莊公(정장공)이다. 이에 강씨는 정장공에게 말한다.

"왜 공숙을 制邑(제읍)에 봉하지 않는냐?"

"제읍은 험한 곳으로 이름 높은 곳입니다. 선왕께서도 그곳만은 나누어 봉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하셨습니다. 이 외의 일이라면 분부대로 거행하리이다."

"그렇다면 京城(경성)을 주면 어떠하냐?"

정장공은 어이가 없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씨가 투덜거린다.

"그것도 안 된다면 차라리 공숙을 다른 나라로 추방하거라. 타국에서 벼슬이나 살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라고 해야겠다."
"그럴 것 없습니다. 그저 분부대로 하오리다."

다음날 정장공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숙 단에게 경성을 봉하고자 하노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늘엔 해가 둘일 수 없고, 백성에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경성은 땅도 넓고 백성도 많아서 조금도 형양(정나라 수도)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공숙에게 경성을 봉한다면 이는 한 나라에 두 임금을 두는 것입니다. 그저 후환이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그러나 정장공은 마침내 공숙에게 경성 땅을 봉했다. 공숙은 형인 정장공에게 사은숙배하고, 내궁으로 들어가 어머니 강씨에게 절했다. 강씨는 단에게 말했다.

"이번에 경성에 가거든, 마땅히 군사를 많이 모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네가 군사를 일으키고 내가 여기서 내응하면, 이 나라를 넉넉히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만일 오생 대신 이 나라 군위에 오르기만 한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모친께서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이후 공숙은 경성 太叔(태숙)이라고 불리었다. 태숙은 경성에 도착하자 마자 사냥을 핑계삼아 군사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또한 이웃지방을 빼앗곤 했다. 땅을 빼앗긴 관장이 정장공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정장공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때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단을 죽여야 합니다."

그는 공자 呂(여)였다.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느냐?"
"신이 듣건대 신하된 자는 군사를 둘 수 없나니 군사를 기르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태숙이 母后(모후)의 사랑을 믿고, 경성의 견고한 지형을 믿고서 군사를 조련하며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 하니 과연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군위를 찬탈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군사를 경성으로 보내어 단을 잡아오게 하십시오. 그래야만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정장공이 대답한다.

"단은 모친이 사랑하는 아들이며, 과인이 사랑하는 동생이다. 차라리 땅을 잃을지언정 어찌 형제의 정을 상하게 할 수 있으리오. 경은 망령된 말을 하지 마라. 과인이 알아서 할 것이다."

공자 여는 물러나오며 정경 벼슬에 있는 祭足(제족)에게 푸념을 했다. 그러자 제족이 조용히 대답한다.

"주공은 재주와 지혜를 겸전한 분이오. 그러니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으리이다. 다만 여러 사람의 이목이 있기 때문에 속내를 밝히지 않으신 것 뿐이오. 그대는 귀인이며 주공과 친척간이고 높은 벼슬에 있음이라. 타인이 없을 때 주공을 찾아가 보시오. 반드시 주공께서 뜻을 밝히시리이다."

그리하여 공자 여는 다시 정장공을 찾아갔다. 그제서야 정장공이 입을 연다.

"과인은 이미 계책을 세웠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아직은 움직일 수가 없구나. 내가 만일 지금 단을 죽이려 한다면 모친이 반대할 것인 즉, 헛되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우리 형제가 우애가 없다고 욕할 것이며 나에게 효심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내가 그를 내버려 두는 것은 일을 꾸며 먼저 반역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에 이르러 죄를 밝혀야 모든 사람들이 내 뜻을 알아줄 것이 아닌가."
"주공께서 앞일을 내다보시는데는 신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단의 세력이 손쓸 수 없이 커지면 어찌하옵니까? 그러기 전에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상책일까 하옵니다."
"그러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할꼬?"
"주공께서 오랫 동안 周(주)의 조정에 가지 못한 것은 태숙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공은 미리 '주 왕실에 간다'는 소문을 내고 떠나십시오. 태숙은 국내에 주공이 없는 틈을 타서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때 신이 미리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가 경성을 치겠습니다. 주공께서는 周로 가시는 척 하다가 다시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하면 쉽게 일이 처리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장공은 周로 떠났다. 그러자 강씨는 즉시 사람을 시켜 태숙에게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공자 여는 길목마다 사람을 배치하여 밀서를 손에 넣었다. 그 내용을 정장공에게 보고한 후 다시 봉하여 자신의 부하를 시켜 태숙에게 전하고 답장을 받아오라 시켰다. 이에 태숙은 답장을 보냈고, 그 답장을 본 정장공은 크게 기뻐했다.

"이제야 단의 죄목과 증거가 생겼다. 이제 그 누가 그를 두둔할 수 있으리오."

그 이후의 일은 공자 呂의 계책대로였다. 태숙은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정장공은 아우 단의 시체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리석은 동생아! 네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냐!"

태숙의 시체를 염하는데, 시체의 품 속에 아직도 강씨의 밀서가 있었다. 정장공은 강씨의 밀서와 태숙의 답장을 강씨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黃川(황천)에 이르기 전에는 다시 만나지 않겠다."

여기에서 周로 떠난다는 소문을 내서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 낸 '타초경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장공은 동생을 죽이고 어머니까지 멀리하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다. 이때 영곡땅을 다스리는 영고숙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정장공에게 올빼미 몇 마리를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면서 밤이면 바늘구멍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면서 일단 자라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不孝(불효)한 새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꺼리낌 없이 이 새를 잡아 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때 찐 염소요리가 들어왔다. 정장공은 염소 다리를 영고숙에게 주었는데 영고숙은 그 고기를 먹지 않고 살을 골라 소매 속에 넣었다.

"왜 먹지 않고 품에 넣느냐?"
"소신에겐 늙은 어머니가 계십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한 번도 맛난 고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 이렇게 맛난 고기를 주셨으나, 소신의 늙은 어머니는 한 번도 이런 음식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 고기가 소신의 목에 넘어가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께 갖다드리려 합니다."
"그대는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여 사람의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데, 과인은 제후의 지위에 있건만 그대만 못하구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과인은 황천에 가기 전에는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이제 후회한들 맹세를 돌이킬 수 없구나."
"땅을 파서 샘물이 나거든, 그곳에 지하실을 만드십시오. 그 곳에서 모친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황천에서 만나겠다는 맹세를 지킨 것이 됩니다."

黃川(황천)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르는 강'을 말한다. 이에 정장공이 한 맹세인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죽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에 영고숙은 이를 문자 그대로 풀어 '지하를 흐르는 누런 강'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낸 것이다.

이리하여 정장공은 강씨를 만나 효를 다하였고, 영고숙은 대부의 벼슬에 올랐다.


또 다른 예는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반공사조(反共思潮) 완화정책으로 명방운동(鳴放運動)을 펴, 지식인과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고 선포했다.

이 명방운동은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란 구호로 표현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또 '말한 자는 죄가 없고 들은 자는 반성해야 한다'며, 온 국민이 공산당 숙당운동(肅黨運動)을 도와줄 것을 제기했다. 즉,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과감히 비판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이 공산당을 소리 높여 비판하자, 마오쩌둥은 윤곽이 드러난 지식인들을 즉시 체포하고 정풍운동(整風運動)이란 명분 아래 줄줄이 숙청해 버렸다. 마오쩌둥은 뱀으로 비유되는 지식인들을 동굴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이라는 미끼를 던졌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近義詞

操之過急 | 因小失大 |

반의어

欲擒姑縱(욕금고종) | 出其不意 | 不動聲色 | 引蛇出洞 |

참조어

指桑罵槐(지상매괴) |


酉陽雜俎, 유양잡조, 三十六計, 三十六計:攻戰計, 水滸傳, 水滸傳:029, 水滸傳:039, 水滸傳:069, 西遊記, 西遊記:0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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