巧言令色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언영색)

巧 공교할 교 | 言 말씀 언 | 令 착할 령 | 色 빛 색 |

남에게 아첨하려고 듣기 좋게 꾸미는 말과 얼굴빛


상서(尙書) 경명(景命)편에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京)을 태복(太僕)으로 임명하며 훈계하였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아래 사람들을 신중히 고르되, 교묘한 말을 하는 자, 좋은 듯 꾸민 얼굴을 하는 자, 남의 눈치만 보는 자, 아첨하는 자는 쓰지 말고, 오직 올바른 사람만을 쓰도록 하시오[無以巧言令色便 側媚, 其惟吉士].

巧言令色에다 鮮矣仁(선의인)을 붙여 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하면 교묘한 말솜씨에 꾸민 얼굴을 하고 있는 자 중에는 어진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孔子(공자)의 가르침이 된다. 여기서 鮮은 적다는 의미.

논어의 제일 앞대목 學而(학이)편에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이라는 말이 있으며, 공야장(公冶長)편, 양화(陽貨)편 등에도 巧言令色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솜씨와 꾸민 얼굴빛으로 잘난 척 착한 척 하는 행동에서 무슨 성실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성실성의 빈곤을 스스로 광고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공자는 巧言令色 鮮矣仁의 對句(대구)가 됨직한 剛毅朴訥 近仁(강의박눌 근인)이란 글귀도 남기고 있다. 의지가 굳세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말이 매끄럽지 못한 사람이 어진 사람에 가깝다는 뜻. 논어 子路(자로)편에 나오는 말이다.그러니까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村夫(촌부)같은 사람, 私慾(사욕)에 집착하지 않고 꾸밈이 없는 사람, 말은 서툴러도 진정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을 공자는 진짜 인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矯角殺牛 (교각살우)

矯角殺牛 (교각살우)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 작은 일에 힘쓰다가 큰 일을 망친다

寬弘磊落 (관홍뇌락)

寬弘磊落(관홍뇌락)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아니함.

光風霽月 (광풍제월)

光風霽月(광풍제월)

군자의 인품이나 치세(治世)를 맑은 날 바람과 비 갠 후의 달빛에 비유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담아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8년 희망의 사자성어


2008년 | 희망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管鮑之交 (관포지교)

管鮑之交(관포지교)

管鲍之交(guǎnbàozhījiāo)

管 대롱 관,주관할 관 | 鮑 절인 물고기 포 | 之 갈 지 | 交 사귈 교 |


옛날 중국(中國)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처럼 친구(親舊) 사이가 다정(多情)함을 이르는 말, 친구(親舊) 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유래]
史記(사기) : 管晏列傳(관안열전) |


참조 한자어

유의어

知音人(지음인) | 知音(지음) | 芝蘭之交(지란지교) | 知己之友(지기지우) | 知己(지기) |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心友(심우) | 水魚之親(수어지친)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伯牙絶絃(백아절현) | 刎頸之友(문경지우) | 刎頸之交(문경지교) | 莫逆之友(막역지우) | 淡水之交(담수지교) | 淡交(담교) | 斷金之交(단금지교) | 斷金之契(단금지계) | 金石之交(금석지교) | 金石之契(금석지계) | 金蘭之誼(금란지의) | 金蘭之交(금란지교) | 金蘭之契(금란지계) | 金蘭交(금란교) | 金蘭契(금란계) | 膠漆之心(교칠지심) | 膠漆之交(교칠지교) | 高山流水(고산유수) |

반의어

市道之交(시도지교) |


관련 인물

管仲(관중)


史記(사기):管晏列傳(관안열전) |

果珍李奈 (과진리내)

果珍李奈(과진리내)

果 과실 과 | 珍 보배 진 | 李 | 오얏 리(이) | 柰 능금나무 내 |

과실(果實) 중(中)에 오얏과 능금이 진미(珍味)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管仲 (관중, ?~BC 645)

管仲(관중, ?~BC 645)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소년시절부터 평생토록 변함이 없었던 포숙아와의 깊은 우정은 '관포지교'라 하여 유명하다. 환공을 도와 군사력의 강화, 상업·수공업의 육성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다.

본명관이오
국적중국
활동분야정치, 행정
출생지중국 허난성 잉수이
주요저서管子(관자)


가난했던 소년시절부터 평생토록 변함이 없었던 포숙아(鮑叔牙)와의 깊은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여 유명하다. 환공(桓公)이 즉위할 무렵 환공의 형인 규(糾)의 편에 섰다가 패전하여 노(魯)나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포숙아의 진언(進言)으로 환공에게 기용되어, 국정(國政)에 참여하게 되었다.

환공을 도와 군사력의 강화, 상업·수공업의 육성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동방이나 중원(中原)의 제후(諸侯)와 9번 회맹(會盟)하여 환공에 대한 제후의 신뢰를 얻게 하였으며,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초(楚)나라를 누르려고 하였다. 저서로 알려진 《管子(관자)》는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가필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주요 작품

管子(관자)


관련 한자어

管鮑之交(관포지교)

瓜田李下 (과전이하)

瓜田李下(과전이하)

오이밭과 오얏나무 밑이라는 뜻으로,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준말.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불필요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지 말라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李下(이하) | 瓜田李下(과전이하)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
¶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

瓜田不納履 (과전불납리)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瓜田不纳履(guātián bù nà lǚ)。

瓜 오이 과 | 田 밭 전 | 不 아닐 불, 아닐 부 | 納 들일 납 | 履 밟을 리(이), 신 리(이) |

외밭에 신을 들여 놓지 않음. 곧 남에게 의심을 살 일은 아예 하지 않음의 비유.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은 간신인 주파호(周破胡)의 옳지 않은 말만 믿고 나라를 잘못 다스렸다. 위왕의 후궁인 우희(虞姬)가 보다 못해서 왕께 간했다.

"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니 등용(登用ㆍ登庸)해서는 안되며, 북곽(北郭) 선생은 현명하고 덕행(德行)이 있는 분이라 등용(登用ㆍ登庸)하시옵소서."

이 말을 전해들은 파호는 도리어 우희와 북곽 선생 사이가 수상쩍다고 모함했다. 이에 위왕이 우희를 국문하자, 우희가 아뢰었다.

"소첩을 지금 간사한 무리들이 모함하고 있을 뿐 결백하옵니다. 만약 죄가 있다면 오이 밭에서 신을 바꾸어 신지 않고, 이원(李園)을 지날 때에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의심(疑心)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한 것 뿐이옵니다. 하오나 설사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소첩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파호에게 국정을 맡기심은 나라의 장래(將來)를 위해 매우 위태(危殆)로운 일입니다."

위왕은 비로소 깨닫고 간신 아대부(阿大夫)와 파호를 삶아 죽이게 했으며, 그 후 제나라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문선(文選)》 악부(樂府)·고사(古辭) 4수 중의 〈군자행(君子行)〉에서 나온 말로, 첫머리에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구절이 있다.


출전

문선(文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瓜田之履(과전지리) | 瓜田李下(과전이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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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郭子儀 (곽자의, Guō Zǐyí, 697~781)

郭子儀(곽자의, 697~781)

異名: 郭子仪(Guō Zǐyí)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군사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武將).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중원(中原)의 반란군을 토벌했고 위구르의 원군을 얻어 창안과 뤄양을 수복했다. 토번(티베트)이 창안을 치려 하자 위구르를 회유(懷柔)하고 토번을 무찔렀다.


화저우[華州:陝西省] 정셴[鄭縣] 출생. 천보(天寶) 연간(742~756)에는 북경(北境) 방위를 맡아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휘하에 있었는데,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삭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이광필(李光弼)과 함께 중원(中原)의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756년에 숙종(肅宗)이 서북의 영무(靈武)에서 즉위한 후에는 황태자 광평왕(廣平王:뒤의 代宗) 밑에서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관군의 총지휘를 맡았으며, 위구르(Uigur:回紇)의 원군을 얻어 창안[長安]과 뤄양[洛陽]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환관(宦官) 어조은(魚朝恩) 등의 배척으로 한때 실각하였다. 그 후 대종의 광덕(廣德) ·영태(永泰) 연간에 토번(吐蕃:티베트)이 복고회은(僕固懷恩) 등과 연합하여 창안을 치려고 하자 다시 기용되어, 위구르를 회유(懷柔)하고 토번을 무찔러 당나라를 구하였다. 그의 무공은 비할 데가 없다고 칭송되어, 상부(尙父)의 칭호를 받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으며, 당나라 최대의 공신으로서 영광을 누렸다.

管子 (관자)

管子(관자) 管仲(관중, ?~BC 645)

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제(齊)나라 재상(宰相) 관중(管仲)이 부민, 치국, 경신, 포교를 서술(敍述)하고 패도정치(政治)를 역설(力說)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冊). 원본(原本)은 86편이었다고 하나 원(元)나라 이후(以後) 76편이 남아 있음.

저자관중(管仲)
시대중국 춘추시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정치가인 관중(管仲:?~BC 645)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제나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현상(賢相) 관중의 업적을 중심으로 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썼고, 전국시대에서 한대(漢代)에 걸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머리말에는 86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10편과 1도(圖)가 빠져 있다.

내용은 법가적(法家的) 색채가 농후하고, 때로는 도가적(道家的)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한서(漢書)》에서는 도가(道家)에, 《수서(隋書)》에서는 법가(法家)에 넣고 있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신명(神明)을 공경하도록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관련 한자어

勞而無功(노이무공)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 형세편

過猶不及 (과유불급, guòyóubùjí)

過猶不及(과유불급)

guòyóubùjí


정도가 지나친 것은 이르지 못한 것과 같다. 정도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 중용을 꾀하라는 말.

To go beyond is as wrong as to fall short.


어느날 子貢(자공)이 스승 孔子(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子張(자장)과 子夏(자하)중 누가 더 낫습니까.”

자장과 자하는 둘 다 공자의 제자다. 이 두사람의 성격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자장은 每事(매사)에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자하는 언제나 소극적이었다. 공자는 잠깐 생각해보곤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은 편이지."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이군요."

공자는 자공의 성급한 판단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지(過猶不及)"

瓜田不納履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이하부정관)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오이 밭에서는 신이 벗겨져도 다시 신지 아니하며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 남에게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마라.


출전

군자행(君子行) |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瓜李(과리) | 瓜李之嫌(과리지혐)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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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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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而不耀 (광이불요)

光而不耀(광이불요)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음

노자 도덕경 58장에 나오며 학덕과 공적을 조용히 쌓을 뿐, 스스로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지 말아야 함을 이름.

觀於濁水迷於栗園 (관어탁수미어율원)

觀於濁水迷於栗園(관어탁수미어율원)

觀 볼 관 | 於 어조사 어, 탄식할 오, 어조사 우 | 濁 흐릴 탁 | 水 물 수 | 迷 미혹할 미 | 於 어조사 어, 탄식할 오, 어조사 우 | 栗 밤 율, 밤 률, 두려워할 율, 두려워할 률, 찢을 열, 찢을 렬 | 園 동산 원 |

흐린 물속을 들여다보고 밤나무 밭에서 길을 잃다

觀水洗心觀花美心 (관수세심관화미심)

觀水洗心 觀花美心(관수세심 관화미심)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2011년 6월 삼성테크윈의 감사 결과 등으로 삼성 내 자정 경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의 경영 메시지로 사용.

郭璞 (곽박, Guō Pú, 276~324)

郭璞(곽박, 276~324)

異名: 郭璞(Guō Pú), 자 경순(景純)
국적: 중국 진(晋)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문희(聞喜:山西省)
주요작품: 《유선시(遊仙詩)》 《강부(江賦)》등


중국 진나라의 시인 겸 학자. 유곤(劉琨:越石)과 더불어 서진(西晋) 말기부터 동진(東晋)에 걸친 시풍(詩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시에는 노장(老莊)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으며, 《유선시(遊仙詩)》 14수가 특히 유명하다. 부(賦)에서는 《강부(江賦)》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자 경순(景純). 문희(聞喜:山西省) 사람. 원제(元帝:司馬睿) 때 저작좌랑(著作佐郞)과 상서랑(尙書郞)을 역임하였으며, 나중에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왕돈(王敦)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었는데, 왕돈이 무창(武昌)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대하였다가 살해당하였다. 유곤(劉琨:越石)과 더불어 서진(西晋) 말기부터 동진(東晋)에 걸친 시풍(詩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시에는 노장(老莊)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으며, 《유선시(遊仙詩)》 14수가 특히 유명하다. 부(賦)에서는 《강부(江賦)》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아(爾雅)》 《산해경(山海經)》 《방언(方言)》 《초사(楚辭)》 등에 주(註)를 달았다.

關門捉賊 (관문착적)

關門捉賊(관문착적)

关门捉贼(guānmén zhuōzéi)

關 관계할 관,당길 완 | 門 문 문 | 捉 잡을 착 | 賊 도둑 적 |


문을 닫아 걸고 도둑을 잡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2계. 문을 닫아 걸고 도둑을 잡는다. 적이 도망갈 곳을 막아두고 적을 완전섬멸한다는 의미이다. 살려두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완전포위'의 개념은 앞에서 본 '欲擒姑縱(욕금고종;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등의 계략과도 상충되는 듯 보인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듯이, 적의 도망칠 곳을 열어주어 적의 신경을 도망칠 곳으로 끈 다음, 도망치려는 적을 공격하는 식의 계략이 앞서 나온 '욕금고종' 이었다. 그리고 이는 손자병법에서도 논파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에 대하여 풀이글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약소한 적은 포위해서 섬멸한다. 다만 궁지에 몰린 적은 필사적으로 반항하기 때문에 지나친 추격은 피한다.[小敵困之.剝,不利有攸往.]"

결국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포위할 때는 반격을 조심한다. 다만, 적이 '약'할 경우에 완전소탕을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례를 보도록 하자. 삼국지연의 이야기이다. 사마의에게 가로막혀 번번히 북벌이 좌절당한 제갈량은 사마의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하여 상방곡(호로곡)에 영채를 치고 사마의를 유인했다. 사마의는 기산을 촉군의 본거지로 보고 그곳을 공격하는척 한후, 군사들이 나오면 상방곡의 군량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상방곡에는 위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마의가 오자 위연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한 채하며 물러났다. 위연은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사마의는 사람을 시켜 골짜기 안을 탐색해 보게 했다.
"골짜기 안에는 복병이 하나도 없고, 산꼭대기마다 모두 초막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분명히 군량을 쌓아둔 것일게다."

사마의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왔다. 사마의가 얼핏 보니 초막 위에는 모두 마른 나무와 풀이고, 위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사마의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만약 적군이 골짜기 어귀를 막는다면 어떻게 하느냐?"
미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함성이 울리며 산 위에서 불다발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골짜기 안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위군은 달아나려 해도 길이 없었다. 산 위에서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리고 지뢰가 일제히 폭발했다. 초막 안 마른 나무에 모두 불이 붙어 불꽃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사마의는 놀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말에서 내려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울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미친듯 불어닥치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골짜기의 불을 모두 꺼버렸다. 지뢰도 터지지 않고 화기도 힘을 잃었다. 사마의는 가까스로 살아나 도망쳤다. 제갈량은 '抛塼引玉(포전인옥)'으로 사마의가 군량을 노리게 하고, 함정에 빠뜨려 '관문착적'으로 섬멸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제갈량은 출구를 막아두고 또한 반격을 당할 우려조차 없는 상태로 만들어 사마의를 없애려고 하였으나 소나기가 내려 사마의를 또다시 놓치고...결국엔 사마의에 가로막혀 북벌을 완수하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게 된다.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반격의 우려조차 없게한 상황에서 완전한 섬멸전을 펼친 제갈량. 소나기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삼국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고시(古詩)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상방곡(호로곡)의 지형에 대해 최근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좁은 계곡에 큰 불을 내면 주위의 수분이 상승해 소나기를 내리게 된다고 한다.


참조 한자어

참조어
欲擒姑縱(욕금고종) |

刮目相對 (괄목상대)

刮目相對(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상대한다.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나 지위가 향상된 것을 두고 하는 말.


魏(위) 吳(오) 蜀(촉) 삼국이 鼎立(정립)하고 있을 당시 오나라 왕 孫權(손권)에게는 呂蒙(여몽)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졸병에서 장군까지 오른 그는 촉나라 명장 關羽(관우)를 사로잡기도 한 삼국지의 스타중의 한 명.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어렵게 자라느라 공부할 틈이 없어 무식꾼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을 쌓으라는 말을 들었다.

"장군은 이 나라의 대관 아니오. 학문을 하라고 해서 經學(경학)박사가 되라는 말은 아니오. 옛 사람들이 남긴 병법을 이론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단 말이오."

이때부터 시작한 여몽의 공부는 쉴 줄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는 읽은 책속에서 많은 지식을 얻었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쳤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어서 마침내 그의 학식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언젠가 여몽의 오랜 친구이자 학문이 깊은 걸로 이름난 오나라 重臣(중신) 魯肅(노숙)이 여몽과 토론을 벌이다가 그의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대가 무예만 능하고 학식은 부족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로군."

여몽은 이 말을 받아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라면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나 만났을 때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봐야 한다네[刮目相對]"

過目不忘 (과목불망)

過目不忘(과목불망)

过目不忘(guòmùbùwàng)

過 지날 과, 재앙 화 | 目 눈 목 | 不 아닐 불,아닐 부 | 忘 잊을 망 |


한번 보면 잊지 않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다.


널리 듣고 보고 잘 기억한다는 뜻의 박문강기(博聞强記)와 같은 말이며, 한번 본 것은 평생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뛰어난 것을 말한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익주의 선비 장송(張松)은 허도에서 조조(曹操) 휘하의 장수인 양수(楊脩)를 만나 자신의 재주와 학식을 자랑하였다. 양수는 조조의 병법과 학덕을 자랑하며 조조가 지은 《맹덕신서(孟德新書)》를 보여주었더니, 장송이 "《맹덕신서》는 촉나라 어린아이도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본래 전국시대의 저서를 조조가 도용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양수가 책의 내용을 외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장송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암송하였다. 그래서 양수는 "눈으로 한번 본 것은 그대가 잊어버리지 않으니 정말로 천하의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다[公過目不忘 眞天下之奇才也]"라고 하였다.

장송의 유창한 달변과 박학다식함에 놀란 양수는 조조에게 장송을 천거하면서 《맹덕신서》를 한 번 보고 암송하는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의 약점을 낱낱이 말한 장송을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았는데, 유비(劉備)를 찾아가 환대를 받은 장송은 유비에게 익주를 차지해 패권을 잡으라고 권하였다고 전해진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博聞强記(박문강기) |


Tag

三國演義(Sānguóyǎnyì) : 第060回 | 강건 |

蝌蚪時節 (과두시절)

蝌蚪時節(과두시절)

蝌 올챙이 과 | 蚪 올챙이 두, 규룡 규 | 時 때 시 | 節 마디 절 |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때라는 뜻으로, 현재가 과거보다 발전한 경우 그 발전하기 이전의 과거를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蝌蚪時代(과두시대) |

夸大其词 (과대기사, kuādàqící)

夸大其词(과대기사,kuādàqící)

과장하여 말하다


과장

過恭非禮 (과공비례)

過恭非禮 (과공비례)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벗어난다

刮骨療毒 (괄골요독)

刮骨療毒(괄골요독)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관공(關公)이 조병(曹兵)을 공격할 때 적군으로 부터 초오(草烏)를 화살촉에 바른 화살을 어깨에 맞아 괄골요독(刮骨療毒) 수술을 받았다. 명의 화타(華陀)가 관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칼로 살을 째고 뼈를 긁어 내었는데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古稀 (고희)

古稀(고희)

杜甫 詩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로 일흔 살을 가리킴.

顧況 (고황, Gù Kuàng, 727~816)

顧況(고황, 727~816)

異名: 顾况(Gù Kuàng)


당대의 또 다른 시인인 顧況(약715-814년)은 “越泥는 옥처럼 아름답다”는 말로 越窯 청자가 옥처럼 윤택한 빛깔임을 형용한 바 있다.

고황(顧況)이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무렵 15세의 백거이가 수도인 장안(長安)에 있던 고황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 고황은 나이 50여세였는데, 어린 소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그의 이름 '거이(居易)'를 빗대어 "장안의 쌀값이 비싸니 살아가기 어려울 것(長安米貴, 居住不易)"이라며 비꼬았다. 그러나 백거이가 시 〈부득고원초송별〉를 보여주자 "이런 재주가 있다면 살아가기가 쉬울 것(有才如此, 居亦容易)"이라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언덕 위에 우거진 풀들(離離原上草),
해마다 한 번 시들었다 무성해진다네(一歲一枯榮).
들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野火燒不盡),
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春風吹又生).
방초는 멀리 뻗어 옛길을 덮고(遠芳侵古道)
맑은 하늘 푸른 빛은 황폐한 성까지 닿네(晴翠接荒城).
또 그대를 떠나보내니(又送王孫去)
이별의 슬픔 가득하다네(萋萋滿別情).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 공 공 | 虧 이지러질 휴 | 一 한 일 | 簣 삼태기 궤 |

쌓는 공도 한 삼태기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中止)함을 이르는 말


書經(서경) 旅獒篇(여오편)에 나오는 말이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나라 紂王(주왕)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열었는데 旅(여)라는 오랑캐 나라에서 ‘獒(오)’라는 珍奇(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오는 키가 넉 자나 되는 큰 개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고 또 사람이나 짐승을 잘 덮친다 해서 무왕이 몹시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자 동생인 召公(소공) 奭(석)은 무왕이 혹시 그런 진기한 물건에 마음이 끌려 정치를 등한히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를 일깨워 말하길, “슬프다, 임금 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을 해치기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흙을 가져다가 산을 만드는데, 이제 조금만 일을 계속하면 아홉 길 높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제는 다 되었다 하고 한 삼태기의 흙을 운반하는 데 게을리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해 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된다[爲山九 , 功虧一簣]”고 했다.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가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라는 숙어로 굳어져 있다. 주나라 소공이 정사에 힘쓴 일로 인해 甘棠之愛(감당지애)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출전

서경(書經) 旅獒篇(여오편) | 상서(尙書) 주서(周書) 여오(旅獒)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曲學阿世 (곡학아세)

曲學阿世(곡학아세)

曲学阿世(qūxué ēshì)。

曲 굽을 곡, 누룩 곡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阿 언덕 아, 호칭 옥 | 世 인간 세, 대 세 |

학문(學問)을 굽히어 세상(世上)에 아첨(阿諂)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學問)으로 세상(世上) 사람에게 아첨(阿諂)함을 이르는 말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당신은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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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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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활용도 ★★★

恭賀新禧 (공하신희)

恭賀新禧(공하신희)

恭 공손할 공 | 賀 하례할 하 | 新 새 신 | 禧 복 희

근하신년(謹賀新年)


유의어

謹賀新年(근하신년) | 恭賀新年(공하신년)


경조사

攻彼顧我 (공피고아)

攻彼顧我(공피고아)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앞서 자기의 말을 돌아보라

출전
바둑 '위기십결(圍棋十訣)'

公平無私 (공평무사)

公平無私(공평무사)

공변되고 평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음

孤枕短命 (고침단명)

孤枕短命 (고침단명)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한다

苦盡甘來 (고진감래)

苦盡甘來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空中樓閣 (공중누각)

空中樓閣 (공중누각)

공중에 뜬 집.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일을 비유로 하는 말.

空前絶後 (공전절후)

空前絶後(공전절후)

비교할 만한 사물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임.

高鼎 (고정, Gāo Dǐng)

高鼎(고정)

異名: 高鼎(Gāo Dǐng)

高適 (고적, Gāo Shì)

高適(고적)

異名: 高适(Gāo Shì), 자 달부(達夫)
국적: 중국 당(唐)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허베이[河北]
주요저서: 《고상시집(高常詩集)》 《중간흥기집(中間興氣集)》등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비극시인.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徒:左相)의 중책을 맡아, 내정·외교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작품은 한부(漢賦)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주요 작품에는 《어부사(漁父辭)》등이 있다.


자 달부(達夫). 허베이성[河北省] 출생. 젊었을 때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산둥[山東]과 허베이 지방을 방랑하며 이백(李白)·두보(杜甫) 등과 사귀었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에 간의태부(諫議太夫)로 발탁되었으나, 그의 직언(直言) 탓으로 환관(宦官) 이보국(李輔國)에게 미움을 사서 펑저우[彭州]·수저우[蜀州:四川]의 자사(刺史)로 좌천되었으며, 청두[成都]에 유배되어 있던 두보와 가까이 지냈다.

그 후 영전되어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가 되었고, 보하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다. 그의 시는 호쾌하면서도 침통한데, 특히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이별의 비참함을 읊은 변새시(邊塞詩)가 뛰어나다. 잠참(岑參)의 시와 더불어 성당시(盛唐詩)의 일면을 대표한다.

그의 시집은 《고상시집(高常詩集)》이라 하여, 그가 찬(撰)한 《중간흥기집(中間興氣集)》과 함께 지금까지 전한다.

孔子穿珠 (공자천주, Kǒngzǐchuānzhū)

孔子穿珠(공자천주)

孔子穿珠(Kǒngzǐchuānzhū)

孔 구멍 공 | 子 아들 자 | 穿 꿸 천 | 珠 구슬 주 |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이 고사는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진기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나 되었다. 그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 공자는 그 아낙의 말대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에 왔다갔다 하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다.

공자는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와 같은 언행을 두고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도 한다. 그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하여 세 사람이 어떤 일을 같이 할 때에는 선악간(善惡間)에 반드시 스승으로서 배울 만한 사람이 있는 법이라 하였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不恥下問(불치하문) |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龔自珍 (공자진, Gōng Zìzhēn)

龔自珍(공자진, 1792~1841년)

異名: 龚自珍(Gōng Zìzhēn), 자 슬인(璱人), 이옥(爾玉), 호 정암(定庵), 일명 공조(鞏祚)
국적: 중국 청


공자진(龔自珍, 1792~1841년, 저장성(浙江省) 인화현(仁和縣, 인허시엔) 출생)은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학자, 사상가, 시인이다. 자는 슬인(璱人), 이옥(爾玉)이며, 호는 정암(定庵), 일명은 공조(鞏祚)이다.


생애

그는 유명한 고증학자인 단옥재(段玉裁)의 외손으로서 어렸을 때 직접 단옥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찍부터 예민한 학문재질과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38세에 진사(進士)가 된 후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하고 예부주사(禮部主事)의 미관(微官)에서 그쳤다. 23세부터 25세에 걸쳐서 《명양론(明良論)》, 《을병지제저의(乙丙之際著議)·숙의(塾議)》, 《평균편(平均篇)》을 저술하여 전제정치의 해악을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28세 때 유봉록(劉逢祿)에게서 공양학을 연구하고, 친구 위원(魏源)과 함께 정치 개혁을 강조하였다. 글솜씨가 뛰어나고 시를 잘 썼다고 한다. 만년에는 불교, 특히 천태종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술은 앞에 서술한 것 외에도 《농종(農宗)》, 《정역(正譯)》, 《기해잡시(己亥雜詩)》 등 많이 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진 부분도 많다. 그러나 대체로 《공자진전집》에 수집되어 있다.

孔子家語:卷02

孔子家語

卷02


致思第八

孔子北遊於農山,子路子貢顏淵侍側。孔子四望,喟然而嘆曰:「於斯致思,無所不至矣。
言思無所不至

二三子各言爾誌,吾將擇焉。子路進曰:「由願得白羽若月,赤羽若日,鐘鼓之音,上震於天,旍旗繽紛,下蟠於地,蟠委由當一隊而敵之,必也攘地千裏,

攘卻

搴旗執聝,

搴取也取敵之旍旗職截耳也以效獲也

唯由能之,使二子者從我焉。」夫子曰:「勇哉。」子貢復進曰:「賜願使齊楚合戰於漭瀁之野,

漭瀁廣大之類
兩壘相望,塵埃相接,挺刃交兵,賜著縞衣白冠,

兵兇事故白冠服也

陳說其間,推論利害,釋國之患,唯賜能之,使夫二子者從我焉。」夫子曰:「辯哉。」顏回退而不對。孔子曰:「回來,汝奚獨無願乎?」顏回對曰:「文武之事,則二子者,既言之矣,回何雲焉。」孔子曰:「雖然,各言爾誌也,小子言之。」對曰:「回聞熏蕕不同器而藏,

熏香蕕臭

堯桀不共國而治,以其類異也,回願得明王聖主輔相之,敷其五教,

敷布也五教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也

導之以禮樂,使民城郭不修,溝池不越,

言無踰越溝池

鑄劍戟以為農器,放牛馬於原藪,

廣平曰原澤無水曰藪也

室家無離曠之思,千歲無戰鬥之患,則由無所施其勇,而賜無所用其辯矣。」夫子凜然曰:「美哉!德也。」子路抗手而對曰:「夫子何選焉?」孔子曰:「不傷財,不害民,不繁詞,則顏氏之子有矣。」

魯有儉嗇者,瓦鬲煮食,瓦釜食之,自謂其美,盛之土型之器,

瓦甂以

進孔子。
孔子受之,歡然而悅,如受大牢之饋。

牛羊豕饋饋也

子路曰:「瓦甂,陋器也,煮食,薄膳也,夫子何喜之如此乎?」子曰:「夫好諫者思其君,食美者念其親。吾非以饌具之為厚,以其食厚而我思焉。」孔子之楚,而有漁者,而獻魚焉,孔子不受。漁者曰:「天暑市遠,無所鬻也,思慮棄之糞壤,不如獻之君子,故敢以進焉。」於是夫子再拜受之,使弟子掃地將以享祭。門人曰:「彼將棄之,而夫子以祭之,何也?」孔子曰:「吾聞諸惜其腐?,而欲以務施者,仁人之偶也,惡有受仁人之饋,而無祭者乎?」

季羔為衛之士師,

獄官

刖人之足,俄而衛有蒯聵之亂,

初衛靈公太子蒯聵得罪出奔晉靈公卒立其子輒蒯聵自晉襲衛時子羔子路並位於衛也

季羔逃之,走郭門,刖者守門焉。謂季羔曰:「彼有?。」季羔曰:「君子不踰。」又曰:「彼有竇。」季羔曰:「君子不隧。」

隧從竇出
又曰:「於此有室。」季羔乃入焉。既而追者罷,季羔將去,謂刖者:「吾不能虧主之法而親刖子之足矣,今吾在難,此正子之報怨之時,而逃我者三,何故哉?」刖者曰:「斷足固我之罪,無可奈何,曩者君治臣以法令,先人後臣,欲臣之免也,臣知獄決罪定,臨當論刑,君愀然不樂,見君顏色,臣又知之,君豈私臣哉?天生君子,其道固然,此臣之所以悅君也。」孔子聞之曰:「善哉為吏,其用法一也。思仁恕則樹德,加嚴暴則樹怨,公以行之,其子羔乎。」

孔子曰:「季孫之賜我粟千鐘也,而交益親,

得季孫千鐘之粟以施與眾而交益親

自南宮敬叔之乘我車也,而道加行。

孔子欲見老聃而西觀周敬叔言於魯君給孔子車馬問禮於老子孔子歷觀郊廟自周而還弟子四方來習也

故道雖貴,必有時而後重,有勢而後行,微夫二子之貺財,則丘之道,殆將廢矣。」

孔子曰:「王者有似乎春秋,

正其本而萬物皆正

文王以王季為父,以太任為母,以太姒為妃,以武王周公為子,以太顛閎天為臣,其本美矣。武王正其身以正其國,正其國以正天下,伐無道,刑有罪,一動而天下正,其事成矣。春秋致其時而萬物皆及,王者致其道而萬民皆治,周公載己行化,

載亦行矣言行已以行化其身正不令

而行也而天下順之,其誠至矣。」

曾子曰:「入是國也,言信於群臣,而留可也;見忠於卿大夫,則仕可也;澤施於百姓,則富可也。」孔子曰:「參之言此可謂善安身矣。」子路為蒲宰,為水備,與其民修溝瀆,以民之勞煩苦也,人與之一簞食

簞笥

一壺漿。孔子聞之,使子貢止之。子路忿不悅,?見孔子,曰:「由也以暴雨將至,恐有水災,故與民修溝洫以備之,而民多匱餓者,是以簞食壺漿而與之。夫子使賜止之,是夫子止由之行仁也。夫子以仁教而禁其行,由不受也。」孔子曰:「汝以民為餓也,何不白於君,發倉廩以賑之,而私以爾食饋之,是汝明君之無惠,而見己之德美矣。汝速已則可,不則汝之見罪必矣。」

子路問於孔子曰:「管仲之為人何如?」子曰:「仁也。」

得仁道也

子路曰:「昔管仲說襄公,公不受,是不辯也;

欲立公子糾而不能,是不智也;齊襄立無常鮑叔牙曰君使民慢亂將作矣奉公子小白出奔莒公孫無知殺襄公管夷吾召忽奉公子糾奔魯齊人殺無知魯伐齊納子糾小白自莒先入是為桓公公乃殺子糾召忽死之也

家殘於齊,而無憂色,是不慈也;桎梏而居檻車,無慚心,是無醜也;

言無恥惡之心

事所射之君,是不貞也;召忽死之,管仲不死,是不忠也。仁人之道,固若是乎?」孔子曰:「管仲說襄公,襄公不受,公之闇也;欲立子糾而不能,不遇時也;家殘於齊而無憂色,是知權命也;桎梏而無慚心,自裁審也;事所射之君,通於變也;不死子糾,量輕重也。夫子糾未成君,管仲未成臣,管仲才度義,管仲不死束縛,而立功名,未可非也。召忽雖死,過與取仁,未足多也。」

孔子適齊,中路聞哭者之聲,其音甚哀。孔子謂其仆曰:「此哭哀則哀矣,然非喪者之哀矣。」驅而前,少進,見有異人焉,擁鐮帶素,哭者不哀。孔子下車,追而問曰:「子何人也?」對曰:「吾丘吾子也。」曰:「子今非喪之所,奚哭之悲也?」丘吾子曰:「吾有三失,晚而自覺,悔之何及。」曰:「三失可得聞乎?願子告吾,無隱也。」丘吾子曰:「吾少時好學,周遍天下,後還喪吾親,是一失也;長事齊君,君驕奢失士,臣節不遂,是二失也;吾平生厚交,而今皆離絕,是三失也。夫樹欲靜而風不停,子欲養而親不待,?而不來者年也,不可再見者親也,請從此辭,遂投水而死。」孔子曰:「小子識之,斯足為戒矣。自是弟子辭歸養親者十有三。」

孔子謂伯魚曰:「鯉乎,吾聞可以與人終日不倦者,其唯學焉。其容體不足觀也,其勇力不足憚也,其先祖不足稱也,其族姓不足道也。終而有大名,以顯聞四方,流聲後裔者,豈非學之效也。故君子不可以不學。其容不可以不飭,不飭無類,無類失親,

類宜為貌不在飭故無貌不得言不飭無類也禮貌矜莊然後親愛可久故曰無類失親也

失親不忠,

情不相親則無忠誠

不忠失禮,

禮以忠信為本

失禮不立。

非禮則無以立

夫遠而有光者,飭也;近而愈明者,學也。譬之汙池,水潦註焉,雚葦生焉,雖或以觀之,孰知其源乎。」

源泉源也水潦註於池而生雚葦觀者誰知其非源泉乎以言學者雖從外入及其用之人誰知其非從此出也者乎

子路見於孔子曰:「負重涉遠,不擇地而休,家貧親老,不擇祿而仕。昔者由也,事二親之時,常食藜藿之實,為親負米百裏之外。親歿之後,南遊於楚,從車百乘,積粟萬鐘,累茵而坐,列鼎而食,願欲食藜藿,為親負米,不可復得也。枯魚銜索,幾何不蠹,二親之壽,忽若過隙。」孔子曰:「由也事親,可謂生事盡力,死事盡思者也。」

孔子之郯,

郯國名也少昊之後吾之本縣也郯子達禮孔子故?諮問焉

遭程子於塗,傾蓋而語,
傾蓋駐車

終日,甚相親。顧謂子路曰:「取束帛以贈先生。」

贈送

子路屑然對曰:「由聞之士不中間見,女嫁無媒,君子不以交禮也。」

中間謂始介也

有間,又顧謂子路。子路又對如初。孔子曰:「由,詩不雲乎:『有美一人,清揚宛兮,邂逅相遇,適我願兮。』

清揚眉目之間也宛然美也幽期而會令願也

今程子,天下賢士也,於斯不贈,則終身弗能見也,小子行之。」

孔子自衛反魯,息駕於河梁而觀焉。

河水無梁莊周書說孔子於閭梁言事者通渭水為河也

有懸水三十仞,

八尺曰仞懸二十四丈者也

圜流九十裏,

圜流迴流也水深急則然

魚鱉不能導,黿鼉不能居。

道行

有一丈夫方將厲之,

厲渡

孔子使人並涯止之曰:「此懸水三十仞,圜流九十裏,魚鱉黿鼉不能居也,意者難可濟也。」丈夫不以措意,遂渡而出。孔子問之,曰:「子乎有道術乎,所以能入而出者,何也?」丈夫對曰:「始吾之入也,先以忠信,及吾之出也,又從以忠信,忠信措吾軀於波流,而吾不敢以用私,所以能入而復出也。」孔子謂弟子曰:「二三子識之,水且猶可以忠信成身親之,而況於人乎!」

孔子將行,雨而無蓋。門人曰:「商也有之。」

子夏名也

孔子曰:「商之為人也,甚?於財,
?嗇甚也

吾聞與人交,推其長者,違其短者故能久也。」楚王渡江,江中有物大如鬥,圓而赤,直觸王舟,舟人取之,王大怪之,遍問群臣,莫之能識。王使使聘於魯,問於孔子。子曰:「此所謂萍實者也,

萍水草也

可剖而食也,吉祥也,唯霸者為能獲焉。」使者反,王遂食之,大美。久之使來以告魯大夫,大夫因子遊問曰:「夫子何以知其然乎?」曰:「吾昔之鄭,過乎陳之野,聞童謠曰:『楚王渡江得萍實,大如鬥,赤如日,剖而食之甜如蜜。』此是楚王之應也。吾是以知之。」

子貢問於孔子曰:「死者有知乎?將無知乎?」子曰:「吾欲言死之有知,將恐孝子順孫妨生以送死;吾欲言死之無知,將恐不孝之子棄其親而不葬。賜不欲知死者有知與無知,非今之急,後自知之。」

子貢問治民於孔子。子曰:「懍懍焉若持腐索之扞馬。」

懍懍戒懼之貌扞馬突馬

子貢曰:「何其畏也?」孔子曰:「夫通達禦皆人也,以道導之,則吾畜也;不以道導之,則吾讎也。如之何其無畏也。」

魯國之法,贖人臣妾於諸侯者,皆取金於府,子貢贖之,辭而不取金。孔子聞之曰:「賜失之矣。夫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教導可以施之於百姓,非獨適身之行也,今魯國富者寡而貧者眾,贖人受金則為不廉,則何以相贖乎?自今以後,魯人不復贖人於諸侯。」

子路治蒲,請見於孔子曰:「由願受教於夫子。」子曰:「蒲其如何?」對曰:「邑多壯士,又難治也。」子曰:「然,吾語爾,恭而敬,可以攝勇;寬而正,可以懷強;愛而恕,可以容困;

言愛恕者能容困窮

溫而斷,可以抑奸。如此而加之,則正不難矣。」


三恕第九

孔子曰:「君子有三恕,有君不能事,有臣而求其使,非恕也;有親不能孝,有子而求其報,非恕也;有兄不能敬,有弟而求其順,非恕也。士能明於三恕之本,則可謂端身矣。」孔子曰:「君子有三思,不可不察也。少而不學,長無能也;老而不教,死莫之思也;有而不施,窮莫之救也。故君子少思其長則務學,老思其死則務教,有思其窮則務施。」

伯常騫問於孔子曰:「騫固周國之賤吏也,不自以不肖,將北面以事君子,敢問正道宜行,不容於世,

[正道宜行而出莫之能貴故行之則不容於世]

隱道宜行,然亦不忍,

[世亂則隱道為行然亦不忍為隱事]

今欲身亦不窮,道亦不隱,為之有道乎?」孔子曰:「善哉子之問也。自丘之聞,未有若吾子所問辯且說也。

[辯當其理得其說矣]

丘嘗聞君子之言道矣,聽者無察,則道不入,

[言聽者不明察道則不能入也]

奇偉不稽,則道不信。

[稽考也聽道者不能考校奇偉則道不見信此言茍非其人道不虛行]

又嘗聞君子之言事矣,制無度量,則事不成,其政曉察,則民不保。

[保安也政大曉了分察則民不安矣]

又嘗聞君子之言誌矣,?折者不終,

[?則折矣不終其性命矣]

徑易者則數傷,

[徑輕也誌輕則數傷於義矣]

浩倨者則不親,

[浩倨簡略不恭如是則不親矣]

就利者則無不弊。

[言好利者不可久也]

又嘗聞養世之君子矣,從輕勿為先,從重勿為後,

[赴憂患從勞苦輕者宜為後重者宜為先養世者也]

見像而勿強,

[像法也見法而已不以強世也]

陳道而勿怫。

[怫詭也陳道而已不與世相詭違也]

此四者,丘之所聞也。」

孔子觀於魯桓公之廟,有欹器焉。

[欹傾]

夫子問於守廟者曰:「此謂何器?」對曰:「此蓋為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虛則欹,中則正,滿則覆,明君以為至誡,故常置之於坐側。」顧謂弟子曰:「試註水焉。」乃註之,水中則正,滿則覆。夫子喟然嘆曰:「嗚呼!夫物惡有滿而不覆哉?」子路進曰:「敢問持滿有道乎?」子曰:「聰明睿智,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振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此所謂損之又損之之道也。」

孔子觀於東流之水。子貢問曰:「君子所見大水,必觀焉何也?」孔子對曰:「以其不息,且遍與諸生而不為也。夫水似乎德,

[遍與諸生者物得水而後生水不與生而又不德也]

其流也則卑下,倨邑必修,其理似義;浩浩乎無屈盡之期,此似道;流行赴百仞之?而不懼,此似勇;至量必平之,此似法;盛而不求概,此似正;綽約微達,此似察;發源必東,此似誌;以出以入,萬物就以化絜,此似善化也。水之德有若此,是故君子見,必觀焉。」

子貢觀於魯廟之北堂,出而問於孔子曰:「向也賜觀於太廟之堂,未既輟,還瞻北蓋,皆斷焉,

[輟止觀北面之蓋斷絕也]

彼將有說耶?匠過之也。」孔子曰:「太廟之堂宮,致良工之匠,匠致良材,盡其功巧,蓋貴久矣,尚有說也。」

[尚猶必也言必有說]

孔子曰:「吾有所齒,有所鄙,有所殆。夫幼而不能強學,老而無以教,吾恥之;去其鄉事君而達,卒遇故人,曾無舊言,吾鄙之;

[事君而達得誌於君而見故人曾無舊言是棄其平生之舊交而無進之之心者乎]

與小人處而不能親賢,吾殆之。」

[殆危也夫疏賢而近小人是危亡之道也]

子路見於孔子。孔子曰:「智者若何?仁者若何?」子路對曰:「智者使人知己,仁者使人愛己。」子曰:「可謂士矣。」子路出,子貢入,問亦如之。子貢對曰:「智者知人,仁者愛人。」子曰:「可謂士矣。」子貢出,顏回入,問亦如之。對曰:「智者自知,仁者自愛。」子曰:「可謂士君子矣。」

子貢問於孔子曰:「子從父命孝,臣從君命貞乎?奚疑焉。」孔子曰:「鄙哉賜,汝不識也。昔者明王萬乘之國,有爭臣七人,則主無過舉;

[天子有三公四輔主諫爭以救其過失也四輔前曰疑後曰丞左曰輔右曰弼也]

千乘之國,有爭臣五人,則社稷不危也;

[諸侯有三卿股肱之臣有內外者也故有五人焉]

百乘之家,有爭臣三人,

[大夫之臣有室老家相邑宰凡三人能以義諫諍]

則祿位不替;父有爭子,不陷無禮;士有爭友,不行不義。

[士雖有臣既微且陋不能以義匡其君故須朋友之諫爭於己然後不義之事不得行之者也]

故子從父命,奚詎為孝?臣從君命,奚詎為貞?夫能審其所從,

[當詳審所宜從與不]

之謂孝,之謂貞矣。」

子路盛服見於孔子。子曰:「由是倨倨者何也?夫江始出於岷山,其源可以濫觴,

[觴可以盛酒言其微]

及其至於江津,不舫舟不避風則不可以涉,非唯下流水多耶?今爾衣服既盛,顏色充盈,天下且孰肯以非告汝乎?」子路趨而出,改服而入,蓋自若也。子曰:「由誌之,吾告汝,奮於言者華,

[自矜奮於言者華而無實]

奮於行者伐,

[自矜奮行者是自伐]

夫色智而有能者,小人也。故君子知之曰智,言之要也,不能曰不能,行之至也。言要則智,行至則仁,既仁且智,惡不足哉!」

子路問於孔子曰:「有人於此,披褐而懷玉,何如?」

[褐毛布衣]

子曰:「國無道,隱之可也;國有道,則袞冕而執玉。」

[袞冕文衣盛飭]


好生第十

魯哀公問於孔子曰:「昔者舜冠何冠乎?」孔子不對。公曰:「寡人有問於子而子無言,何也?」對曰:「以君之問不先其大者,故方思所以為對。」公曰:「其大何乎?」孔子曰:「舜之為君也,其政好生而惡殺,其任授賢而替不肖,德若天地而靜虛,化若四時而變物,是以四海承風,暢於異類,

異類四方之夷狄也

鳳翔麟至,鳥獸馴德,

馴順

無他也,好生故也。君舍此道,而冠冕是問,是以緩對。」

孔子讀史至楚復陳,

陳夏征舒殺其君楚莊王討之因陳取之而申叔時諫莊王從之還復陳

喟然嘆曰:「賢哉楚王!輕千乘之國,而重一言之信,匪申叔之信,不能達其義,匪莊王之賢,不能受其訓。」

孔子常自筮其卦,得賁焉,愀然有不平之狀。子張進曰:「師聞蔔者得賁卦,吉也,而夫子之色有不平,何也?」孔子對曰:「以其離耶!在周易,山下有火謂之賁,

離上艮下離為火艮為山

非正色之卦也。夫質也黑白宜正焉,今得賁,非吾兆也。賁飾吾聞丹漆不文,白玉不雕,何也?質有餘不受飾故也。」孔子曰:「吾於甘棠,見宗廟之敬甚矣,

邵伯聽訟於甘棠愛其樹作甘棠之詩也

思其人必愛其樹,尊其人必敬其位,道也。」

子路戎服見於孔子,拔劍而舞之,曰:「古之君子,以劍自衛乎?」孔子曰:「古之君子忠以為質,仁以為衛,不出環堵之室,而知千裏之外,有不善則以忠化之,侵暴則以仁固之,何持劍乎?」子路曰:「由乃今聞此言,請攝齊以受教。」

齊裳下緝也受教者攝齊升堂

楚王出遊,亡弓,左右請求之。王曰:「止,楚王失弓,楚人得之,又何求之!」孔子聞之,惜乎其不大也,不曰人遺弓,人得之而已,何必楚也。

王恭王弓鳥?之良弓

孔子為魯司寇,斷獄訟皆進眾議者而問之,曰:「子以為奚若?某以為何若?」皆曰雲雲如是,然後夫子曰:「當從某子幾是。」

近也重獄事故與眾議之

孔子問漆雕憑曰:「子事臧文仲武仲及孺子容,此三大夫孰賢?」對曰:「臧氏家有守龜焉,名曰蔡,文仲三年而為一兆,武仲三年而為二兆,孺子容三年而為三兆,憑從此之見,若問三人之賢與不賢,所未敢識也。」孔子曰:「君子哉漆雕氏之子,其言人之美也,隱而顯;言人之過也,微而著。智而不能及,明而不能見,孰克如此。」

克能也而宜為如也

魯公索氏,

先落反

將祭而亡其牲。孔子聞之曰:「公索氏不及二年將亡,後一年而亡。」門人問曰:「昔公索氏亡其祭牲,而夫子曰,不及二年必亡,今過期而亡,夫子何以知其然?」孔子曰:「夫祭者,孝子所以自盡於其親,將祭而亡其牲,則其餘所亡者多矣。若此而不亡者,未之有也。」

虛芮二國爭田而訟,連年不決,乃相謂曰:「西伯仁也,

西伯文王

盍?質之。」

盍何不質正也

入其境則耕者讓畔,行者讓路;入其朝士讓為大夫,大夫讓於卿。虛芮之君曰:「嘻!吾儕小人也,

儕等

不可以入君子之朝。」遠自相與而退,鹹以所爭之田為閑田也。孔子曰:「以此觀之,文王之道,其不可加焉,不令而從,不教而聽,至矣哉。」

曾子曰:「狎甚則相簡,莊甚則不親,是故君子之狎足以交歡,其莊足以成禮。」孔子聞斯言也,曰:「二三子誌之,孰謂參也不知禮乎!」

哀公問曰:「紳委章甫,

委委貌章甫冠名也

有益於仁乎?」孔子作色而對曰:「君胡然焉,衰麻苴杖者,誌不存乎樂,非耳弗聞,服使然也;黼黻袞冕者,容不襲慢,非性矜莊,服使然也;介胃執戈者,無退懦之氣,非體純猛,服使然也。且臣聞之,好肆不守折,

言市弗能為廉好肆不守折也

而長者不為市,

言長者之行則不為市買之事

竊夫其有益與無益,君子所以知。」

竊宜為察

孔子謂子路曰:「見長者而不盡其辭,雖有風雨,吾不能入其門矣。故君子以其所能敬人,小人反是。」

孔子謂子路曰:「君子以心導耳目,立義以為勇;小人以耳目導心,不愻以為勇。故曰退之而不怨,先之斯可從已。」

言人退之不怨先之則可從足以為師也

孔子曰:「君子三患,未之聞,患不得聞;既得聞之,患弗得學;既得學之,患弗能行。有其德而無其言,君子恥之;有其言而無其行,君子恥之;既得之,而又失之,君子恥之;地有餘民不足,君子恥之;眾寡均而人功倍己焉,君子恥之。」

凡興功業多少與人同而功殊倍己故恥之也

魯人有獨處室者,鄰之厘婦,

厘寡婦也

亦獨處一室。夜暴風雨至,厘婦室壞,趨而托焉,魯人閉戶而不納,厘婦自牖與之言:「何不仁而不納我乎?」魯人曰:「吾聞男女不六十不同居,今子幼吾亦幼,是以不敢納爾也。」婦人曰:「子何不如柳下惠?然嫗不建門之女,國人不稱其亂。」魯人曰:「柳下惠則可,吾固不可。吾將以吾之不可,學柳下惠之可。」孔子聞之曰:「善哉!欲學柳下惠者,未有似於此者,期於至善而不襲其為,可謂智乎!」

孔子曰:「小辯害義,小言破道,關睢興於鳥而君子美之,取其雄雌之有別;鹿鳴興於獸,而君子大之,取其得食而相呼。若以鳥獸之名嫌之,固不可行也。」

孔子謂子路曰:「君子而強氣,而不得其死;小人而強氣,則刑戮薦蓁。豳詩曰:『殆天之未陰雨,徹彼桑土,綢繆牖戶,

殆及也徹剝也桑土桑根也鴟鴞天未雨剝取桑根以纏綿其牖戶喻我國家積累之功乃難成之苦者也

今汝下民,或敢侮余。』」

今者周公時言我先王致此大功至艱而下民敢侵侮我周道謂管蔡之屬不可不遏絕之以存周室者也

孔子曰:「能治國家之如此,雖欲侮之,豈可得乎?周自後稷積行累功,以有爵土,公劉重之以仁,及至大王亶甫,敦以德讓,其樹根置本,備豫遠矣。初,大王都豳,翟人侵之,事之以皮幣,不得免焉,事之以珠玉,不得免焉,於是屬耆老而告之,所欲吾土地。吾聞之君子不以所養而害人,二三子何患乎無君?遂獨與大姜去之,踰梁山,邑於岐山之下。豳人曰:『仁人之君,不可失也,從之如歸市焉。』天之與周,民之去殷久矣,若此而不能天下,未之有也,武庚惡能侮。

武庚紂子名祿父與管叔共為亂也

鄁詩曰:『執轡如組,兩驂如。』」

驂之以服和調節中

孔子曰:「為此詩者,其知政乎!夫為組者,?紕於此,成文於彼,言其動於近,行於遠也。執此法以禦民,豈不化乎!竿旄之忠告至矣哉!」

竿旄之詩者樂乎善道告人取喻於素絲良馬如組紕之義

孤掌難鳴 (고장난명)

孤掌難鳴 (고장난명)

손바닥 하나로는 박수를 칠 수 없다. 혼자 힘으론 일을 해내기가 어렵다

孔子 (공자, Kǒngzǐ, BC 551~BC 479)

孔子(공자,Kǒngzǐ, BC 551~BC 479)

異名: 孔子(Kǒngzǐ), 孔夫子(Kǒngfūzǐ), 본명 구(丘), 자 중니(仲尼)
국적: 중국 노(魯)
활동분야: 교육, 철학
출생지: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


중국 고대의 사상가, 유교의 시조.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았다. 인(仁)에 대한 공자의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곧,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그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孝悌)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공자는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鄒邑:지금의 山東省 曲阜의 남동)에서 BC 551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이다.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인(仁)이며,‘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다)'를 그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 생각했다.


Confucius (551 BC–479 BC) http://thatgul.blogspot.com/1976/03/confucius-551-bc479-bc.html

孔子家語 (공자가어, kǒngzǐjiāyǔ)

孔子家語(공자가어)

異名: 孔子家语(kǒngzǐjiāyǔ)
구분: 유교서적


공자의 언행 및 공자와 문인(門人)과의 논의(論議)를 수록한 책.


현재 전하는 것은 총 10권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誌)>에는 〈공자가어 27권〉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이미 실전(失傳)되어 저자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현재 전하는 것은 위(魏)의 왕숙(王肅)이 공안국(孔安國)의 이름을 빌려 《좌전(左傳)》 《국어(國語)》 《맹자(孟子)》 《순자(荀子)》 《대대례(大戴禮)》 《예기(禮記)》 《사기(史記)》 《설원(說苑)》 《안자(晏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여람(呂覽)》 등에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모아 수록한 위서(僞書)인데, 44편으로 되었다.

이 속에는 공자의 유문(遺文)과 일화가 섞여 있어 폐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한다.


관련 고사성어(故事成語)

卷02
致思第八 三恕第九 好生第十

宥坐之器(유좌지기) |

骨肉相殘 (골육상잔)

骨肉相殘(골육상잔)

骨肉相残(gǔ ròu xiāng cán)

骨 뼈 골│肉 고기 육, 둘레 유│相 서로 상, 빌 양│殘 잔인할 잔, 남을 잔


부자(父子)나 형제(兄弟) 또는 같은 민족(民族) 간(間)에 서로 싸움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兄弟鬩墻(형제혁장)│煮豆燃萁(자두연기, zhǔdòuránqí)│民族相殘(민족상잔)│同族相爭(동족상쟁)│同族相殘(동족상잔)│骨肉相戰(골육상전)│骨肉相爭(골육상쟁)


정치│전쟁

苦肉計 (고육계, kǔròujì)

苦肉計(고육계)

苦肉计(kǔròujì)

苦 쓸 고 | 肉 고기 육 | 計 셀 계 |


제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知計) 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도 한다.


스스로를 희생하다. 이는 의심이 많은 상대방의 신용을 사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4계이다. 역사적으로 거짓투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벌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백미인 적벽대전에의 황개의 고육계가 유명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스스로를 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가해를 받은 것이다. 이러하므로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보여 계략을 성공시킨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하여야 한다."

人不自害,受害必眞.假眞眞假,間以得行.童蒙之吉,願以巽也.

三國志演義에서 묘사된 황개의 고육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어디까지나 연의 상의 이야기일 뿐이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조조의 군세와 손오의 군세가 적벽에서 대치하고 있을때, 서로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소규모의 국지전은 빈번했지만 대규모의 정면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겉으로는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신경전 및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규모의 국지전에서 번번히 패한 조조는 채모(蔡瑁)에게 수군의 훈련을 맡겼고, 오군의 적정을 탐지하고자 주유의 친구였던 장간을 첩자로 보낸다. 주유는 장간이 조조의 첩자로 온 것을 알고는 이를 이용해 채모가 자신들과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장간이 돌아가 채모가 내통하고 있었다고 보고해, 조조는 채모를 죽인다. 이는 채모가 수군훈련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주유가 채모를 제거하기 위해 '反間計(반간계)'를 쓴 것이었다.

조조는 채모를 죽인후 주유에게 놀아난 것을 알고는 크게 분개한다. 그리고는 채모의 아우인 채중과 채화를 거짓항복시켜 오군에 침투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채중(蔡中)·채화(蔡和)는 주유에게 거짓항복하며 아무 죄없이 죽은 형의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이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들의 항복이 거짓인 줄을 알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는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보고 이들이 첩자로 온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감녕을 불러서 은밀히 분부한다.

이후 주유의 심복인 황개(黃蓋)가 밤에 주유의 막사를 찾아온다. 그리고는 화공(火攻)을 진언한다. 사실 주유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중에는 조조의 첩자 채씨 형제가 있어 노련한 주유가 화공 같은 중요한 작전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먼저 거짓으로 항복하는 이른바 사항계(詐降計)를 생각해냈다. 황개는 자신이 기꺼이 그 역할을 맡고자 했다. 주유가 의심많은 조조를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하자, 황개는 '苦肉計(고육계)'를 진언한다.

작전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이때 황개가 “누가 보아도 조조를 꺾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소.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항복하느니만…….” 하고 말했다. 그 때 주유의 벽력(霹靂) 같은 질책(叱責)이 떨어졌다. 주유는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황개를 크게 모욕하고 장형에 처한다. 물론 각본이었다. 즉시 황개는 끌려나와 형틀에 묶였다. 곧이어 곤장 소리와 함께 비명(悲鳴)소리가 들려왔다. 백여 대를 맞은 황개의 엉덩이는 허물어졌다. 그 동안 황개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황개가 자기 막사에 누워있는데 감택이 찾아와 고육계가 아닌가 얘기를 한다. 이에 황개는 속내를 털어놓고 감택에게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갖다 달라고 부탁한다.

감택이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바치자, 조조는 의심하며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감택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채중과 채화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황개의 수형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에 조조는 의심을 풀고 황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감택은 황개에게 소식을 전한후, 채중과 채화의 소식을 알고자 감녕에게로 간다. 감녕과 감택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채중과 채화가 들어왔다. 이에 감녕과 감택은 짐짓 주유에게 불만이 가득차, 吳를 배반할 생각이 있는것처럼 연기했다. 그러자 채중과 채화는 이들에게 모반할 뜻이 있는 것으로 여겨,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네사람은 의기투합하였다.

채중과 채화는 이 이야기를 조조에게 편지로 보냈다. 감택은 감택대로 황개가 청아기를 꽂고 투항하러 갈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조조는 두 통의 밀서를 받았지만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이에 모사들과 상의하는데 장간이 지난 번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나섰다.

장간이 찾아오자 주유는 크게 화를 내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간을 작은 암자에 감금하고 감시병을 붙혔다. 이에 장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군가 병서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방통이며 주유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함께 조조에게로 간다.

방통을 맞은 조조는 크게 후대하며 그에게 군략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이에 방통은 조조군이 수상전에 익숙치 않고, 물도 맞지 않아 크게 고생하고 있음을 간한다. 그러자 조조는 감탄하며 대책을 묻는다. 방통은 배를 쇠사슬로 서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면 인마가 육지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조조는 즉시 좌우에 분부하여 배들을 모두 쇠사슬과 널빤지로 연결하였다.

이는 주유가 방통에게 미리 지시해둔 것으로, 화계를 쓸 때 배들이 연결이 되어 있으면 피해가 커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통이 배를 연결하는 책략을 펼친 것을 '連環計(연환계)'라 한다.

이렇게 화공에 대한 준비는 모두 끝났으나 동남풍이 불지 않는 것을 알고 주유는 크게 앓게 된다. 이에 제갈량이 자신이 동남풍을 부르겠다고 말하여 주유를 일으킨다.

그리고 황개는 인화물질을 실은 배를 조조의 선단에 부딪혀 불을 일으키고, 동남풍이 불어 조조의 선단에 퍼져가는데, 조조의 선단은 연환계로 엮여 있어서 분리하지도 못하고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는 것까지가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적벽대전의 전모이다.

딱히 고육계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三國志演義' 상의 적벽대전의 전모를 보면 '反間計(반간계)', '苦肉計(고육계)', '連環計(연환계)' 등이 모두 등장하는 희대의 전략전이지만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이다.

진수의 三國志 正史 吳書(오서) 주유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적벽에서 손유 연합군이 조조 군을 우연히 만났을 때, 주유의 부장 황개는 '적은 큰 세력이고 아군은 힘이 없으니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하며 화공에 의한 속공을 제안하고는 스스로 실행을 떠맡았다. 그리고 사전에 조조에게 투항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몰래 보내두었다. 조조군은 황개의 선대가 나타나자 목을 빼고 황개의 모습을 살피며 '황개가 투항해왔다'고 떠들어댔다."

진수의 三國志에 주석을 붙인 배송지도 '강표전'을 인용해 황개가 보낸 편지를 실어두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황개가 조조에게 투항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조조군이 너무 강해 오나라가 대항해 싸울 수 없고, 둘째로 이러한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며, 셋째로 오나라의 정치는 부패하여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분간하기 힘든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황개가 적벽에서의 대치 상태 중에 조조에게 거짓투항한 것은 사실이나, 고육계를 쓰지는 않았다. 모든 사료를 뒤져봐도 주유와 황개가 고육계를 꾸민 흔적도 없으며, 황개가 매를 맞은 이야기도 없고, 황개의 편지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단지 나관중이 적벽대전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고자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

苦肉之策(고육지책) | 苦肉知計(고육지계) | 반간고육계(反間苦肉計) |

骨肉之親 (골육지친)

骨肉之親(골육지친)

骨 뼈 골 | 肉 고기 육, 둘레 유 | 之 갈 지, -의 지 | 親 친할 친 |

뼈와 살을 같이 나눈 사이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족(親族)이란 뜻으로, 부자(父子)와 형제(兄弟) 또는 그와 가까운 혈족(血族)을 지칭하는 말


여씨춘추(呂氏春秋) 정통(精通)편에는 혈연에 관한 글이 실여 있다.

주(周)나라에 신희(申喜)라는 사람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였다. 어느 날, 걸식(乞食)하는 사람이 문밖에 서서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것이 얼굴에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그 걸인을 집으로 불러오도록 하여, 그에게 어찌 걸인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그 걸인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자식과 부모는 본디 한 몸뚱이에서 갈라지고, 동기(同氣)였다가 분리된 것이다. 풀의 꽃과 열매, 나무의 뿌리와 심(芯)처럼, 이 둘은 비록 있는 곳이 다르더라도 서로 통하고, 고통이 있으면 서로 도우고, 근심이 있으면 서로 느끼며, 살아 있을 때는 기뻐하고, 죽으면 서로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이 골육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此之謂骨肉之親]라고 하였다.


출전

여씨춘추(呂氏春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骨肉(골육) | 血肉(혈육) | 血肉之親(혈육지친) |

公羊傳 (공양전) 公羊高 (공양고) 등

公羊傳(공양전) 公羊高(공양고)

중국 고대의 경서(經書)로 이른바 유가(儒家)의 13경(十三經) 가운데 하나이다.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해석한 책으로 '곡량전(穀梁傳)', '좌전(左傳)' 등과 함께 ‘춘추 3전(春秋三傳)’이라고 불린다.


<춘추(春秋)>를 해석한 책으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이라고도 불리며 모두 11권으로 되어 있다. 공자(孔子)가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春秋)>는 매우 간결한 서술을 특징으로 하며, 명분(名分)에 따라 용어들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이 그 의미를 해석하고 풀이하는 주석서(註釋書)인 ‘전(傳)’을 지으면서 이른바 ‘춘추학(春秋學)’이 나타났는데,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춘추>에 대한 전(傳)이 모두 23가(家) 948편(篇)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공양전(公羊傳)>은 곡량숙(穀梁俶, 穀梁赤이라고도 함)의 <곡량전(穀梁傳)>, 좌구명(左丘明)의 <좌씨전(左氏傳)>과 함께 ‘춘추삼전(春秋三傳)’으로 꼽히며 중시된다. ‘춘추삼전(春秋三傳)’은 모두 유가(儒家)의 핵심 경서(經書)인 ‘13경(十三經)’에 포함된다. ‘춘추삼전(春秋三傳)’에서 <좌씨전(左氏傳)>은 <춘추>에 기록된 사실(史實)에 대한 역사적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하지만,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은 경문(經文) 해석을 중심으로 한다. 특히 <공양전>은 문답(問答) 형식으로 경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어 예로부터 <춘추>의 경문(經文)에 숨겨져 있는 공자의 뜻, 곧 미언대의(微言大義)를 밝히는 중요한 서적으로 여겨졌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제(齊) 나라 사람인 ‘공양자(公羊子)’가 저술하였으며, ‘공양외전(公羊外傳)’ 50편이 별도로 있었지만 외전은 모두 없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당(唐)의 서언(徐彦)은 후한(後漢) 시대 대굉(戴宏)의 글을 인용하여 공양자(公羊子)의 이름이 고(高)이며,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공양고(公羊高) 한 개인이 아니라, 공양평(公羊平), 공양지(公羊地), 공양감(公羊敢) 등을 거치며 대를 이어 가학(家學)으로 연구되다가 전한(前漢) 경제(景帝) 때에 공양수(公羊壽)가 호모자도(胡母子都, 胡毋生이라고도 한다)와 함께 책으로 편찬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漢) 시대에는 동중서(董仲舒)가 <공양전>을 근거로 유교적인 사상 통일을 꾀하면서 ‘공양학(公羊學)’이 성행하기도 하였는데, ‘공양학’은 청(淸) 말기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쑨원[孫文] 등에게도 영향을 주어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姑息之計 (고식지계)

姑息之計(고식지계)

일시적으로 변통하는 꾀를 말함. 아랫돌 빼서 웃돌 괴기.


관련 한자어

유의어

因循姑息(인순고식)

孤臣寃淚 (고신원루)

孤臣寃淚(고신원루)

임금의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谷神不死 (곡신불사)

谷神不死(곡신불사)

계곡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계곡의 정신은 마르지 않는다. 이를 여성스러움의 힘이라 한다. 여성스러움의 포용력. 이것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한다. 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왕성한 모양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쓰더라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 도덕경 제6장

高陽酒徒 (고양주도)

高陽酒徒(고양주도)

高 높을 고 | 陽 볕 양 | 酒 술 주 | 徒 무리 도 |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


사기(史記) 역생육가(酈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진(秦)나라 말기, 유방(劉邦)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진류(陳留)현의 교외에 주둔하였다. 당시 진류현의 고양이라는 시골에는 역이기(酈食其)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일정한 생업을 갖지는 못했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방이 유생(儒生)들을 싫어하여 그들이 찾아오면 관(冠)을 벗겨서 거기에 오줌을 누고 욕을 퍼붓는다는 말을 듣었다. 역이기는 심사숙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여 유방을 만나러 갔다. 유방은 유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유생 따위는 만날 시간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역이기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양땅의 술꾼이지 유생이 아니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시위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발을 씻다말고, 맨발로 나가 역이기를 맞았다. 그후 역이기는 유방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高陽酒徒란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高聲放歌 (고성방가)

高聲放歌(고성방가)

高 높을 고 | 聲 소리 성 | 放 놓을 방 | 歌 노래 가 |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

① sing loudly ② sing boisterously

孔席墨突 (공석묵돌)

孔席墨突(공석묵돌)

孔 구멍 공 | 席 자리 석 | 墨 먹 묵 | 突 갑자기 돌 |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는 격렬한 전쟁으로 사회가 몹시 불안하였다. 이에따라 각종 사상이 발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견해를 전파하고자 각국으로 유세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 역시 이러한 사람들에 속한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많은 제후국들에서 유세하였다. 그리고 노(魯)나라 사람인 묵자는 본시 수공업자 출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겸애(兼愛) 를 주장하며, 힘만 믿고 약자(弱者)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는 묵자(墨子) 이외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귀중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였다.

반고는 공자와 묵자의 이러한 유세 활동을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질 틈이 없고, 묵자 집의 굴뚝에는 그을음이 낄 새가 없다[孔席不暖, 墨突不黔]라고 표현하였다. 孔席墨突은 여기저기 몹시 바쁘게 돌아 다님을 비유한 말이다.

孤城落日 (고성낙일)

孤城落日(고성낙일)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성에 해마저 서산에 기울어 가는 쓸쓸한 심정과 삭막한 풍경을 비유해서 쓰이는 말.


외로움

空城計 (공성계, kōngchéngjì)

空城計(공성계)

空城计(kōngchéngjì)

空 빌 공 | 城 성 성 | 計 꾀 계 |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


36계(計) 가운데 敗戰計(패전계) 제32계이다.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을 말한다. 아군측에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흔히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반면, '없으면서 더욱 없는척' 하여 적으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와 통한다.

36계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병력이 적을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케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列國志에도 공성계가 등장한다.

때는 齊(제)에서는 제환공이 치세를 이루고, 晉(진)에서는 진헌공이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방의 楚(초)에서는 초문왕이 식나라를 쳐서 식후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있던 때였다. 초문왕은 죽고 큰아들 웅간이 왕위에 올랐으나 웅간은 자신보다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동생 웅운을 경계하여 틈을 보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한 웅운은 웅운대로 자신보다 재주가 뒤처지는 형이 왕위에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웅운은 사냥터에 나가는 웅간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楚成王(초성왕)이다. 초성왕의 숙부인 자원은 맹랑한 사람이었다. 형인 초문왕이 죽은 후부터 초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한 초문왕이 데려온 형수 문부인(식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이에 자원은 문부인의 환심을 사고자 초성왕의 윤허를 받아 鄭(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는 당시 鄭文公(정문공)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즉시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화평론, 주전론, 농성론 등이 계속 오갔다. 이에 숙첨이 말한다.

"세분 말씀이 다 일리가 있으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건데 초군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한참 의논하고 있는데 초군이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다.

이에 숙첨은 대담무쌍하게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에 초군의 선봉인 투어강은 깜짝 놀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자원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자원이 나아가 살펴보자, 투어강의 보고와는 달리, 성위에는 정기가 정숙하고 무장한 군사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자원이 이를 보고 찬탄한다.

"정나라엔 훌륭한 신하가 세사람 있다더니 그들의 계책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구나. 우선 정나라의 허실부터 탐지한 후에 공격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날, 정나라와 동맹한 제나라에서 구원군이 온다는 첩보가 왔다. 이에 자원은 감히 정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후가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으면 우리는 앞뒤로 적군 속에 들고 만다. 내 이번에 정나라를 쳐서 정성 대로까지 이르렀은 즉,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리고 말의 방울들을 모두 떼어버리게 한 후, 조용히 퇴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초군은 소리없이 정성을 떠났다. 그들은 정군의 추격을 당할까 두려워 군막도 걷지 않고 많은 기를 꽂아둔 채로 달아났다.

이렇게 정나라의 숙첨의 공성계에 의해 초군은 계략이 있을까 두려워 공격을 유보하고 있었고, 그 동안 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촉나라 군대를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 등으로 하여금 위(魏)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할 때의 일이다. 군대를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는 성에는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 위의 대도독 사마의(司馬懿)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20여 명의 군사를 백성들로 꾸며 청소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밖에서 눈에 잘 띄는 적루(敵樓)의 난간에 기대앉아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대군이 몰려와도 아무 일 없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 백성들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제갈량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 군사를 거두고 물러가 버렸다.

《삼국지연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탄금주적(彈琴走敵)과 뜻이 같다.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空城計(공성계) | 空城之計(공성지계) |

高山流水 (고산유수)

高山流水(고산유수)

높은 산과 흐르는 물


자연, 산[mountain], 물[water]

山, 水

鼓盆之痛 (고분지통)

鼓盆之痛(고분지통)

분을 두들긴 쓰라림이란 뜻으로 아내가 죽은 슬픔을 말함


관련 한자어

참조어

鼓盆之歎(고분지탄) | 鼓盆之嘆(고분지탄) | 天崩之痛(천붕지통) |

鼓腹擊壤 (고복격양)

鼓腹擊壤(고복격양)

鼓 두드릴 고 | 腹 배 복 | 擊 부딪칠 격 | 壤 흙 양 |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춰 흥겹게 노래 부른다는 말로 太平聖代(태평성대)라는 뜻.


鼓腹은 부른 배를 두드리다 라는 뜻이다. 壤은 본시 나무로 만든 신발모양의 놀이 도구이며, 30-40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것을 서로 맞치는 놀이를 격양(擊壤)이라 했다. 따라서 鼓腹擊壤은 부른 두드리며 양치기 놀이를 하는 것 인데, 이는 곧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상징한다.

聖天子(성천자)로까지 불리는 堯(요)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微服(미복)을 걸치고 거리에 나섰다. 세상이 정말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요임금이 큰 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면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그대의 덕택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임금님의 정하심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요임금은 흐뭇해진 기분에 미소를 짓다가 불현듯 누가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노인들의 생활이 궁금하여 마을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그러자 저쪽에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노인은 입에 든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배를 두드리고(鼓腹) 땅을 쳐(擊壤) 박자를 맞추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요임금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노라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노라
임금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요임금의 눈은 비로소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성들이 아무런 불안도 없이 정치의 힘따위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 이야말로 요임금이 목표로 삼은 정치였던 것이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高餠 (고병)

高餠(고병)

異名: 高饼(Gāo Bǐng)


한시

步虛詞(보허사)

高棅 (고병, 1350~1413)

高棅(고병, 1350~1413)

異名: 高棅(Gāo Bǐng), 호 만사, 자 언회, 일명 정례
국적: 중국 명
활동분야: 시, 미술
출생지: 중국 푸젠성 창러
주요저서: 《소대집(嘯臺集)》(20권), 《수천청기집(水天淸氣集)》(14권)


중국 명나라 초기의 시인. 시(詩)는 물론 서화(書畵)에도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고, 민중 십재자(閩中十才子:福建省의 十才士)의 한 사람이다. 당시(唐詩)를 초(初)·성(盛)·중(中)·만(晩)의 4기로 분류한 것으로 유명하며, 저서로 《소대집(嘯臺集)》,《수천청기집(水天淸氣集)》등이 있다.

자(字) 언회(彦恢), 호(號) 만사(漫士). 일명 정례(廷禮). 푸젠성[福建省] 창러[長樂] 출신. 벼슬은 한림원(翰林院) 대조(待詔)·전적(典籍)을 지냈다. 시(詩)는 물론 서화(書畵)에도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고, 민중십재자(閩中十才子:福建省의 十才士)의 한 사람이다.

당시(唐詩)를 초(初)·성(盛)·중(中)·만(晩)의 4기로 분류한 것으로 유명하며, 저서로 《소대집(嘯臺集)》(20권), 《수천청기집(水天淸氣集)》(14권)이 전하고, 《당시품휘(唐詩品彙)》 《당시정성(唐詩正聲)》을 편찬하였다.

枯木生花 (고목생화)

枯木生花(고목생화)

마른 아무에 꽃이 핀다는 뜻. 곤궁한 사람이 크게 행운을 얻는다는 말


꽃[flower] | 식물 | 花 | 나무 | 木 | 곤궁 | 행운

公明正大 (공명정대)

公明正大(공명정대)

공변되고, 밝고, 바르고, 큼. 곧, 하는 일이나 태도가 떳떳하고 정당함.

藁網捉虎 (고망착호)

藁網捉虎(고망착호)

새끼를 가지고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 어리석은 계책과 보잘 것없는 것으로 뜻밖에 큰 일을 이룸을 뜻함.

孤立無依 (고립무의)

孤立無依(고립무의)

孤立无依(gū lì wú yī)

孤 외로울 고│立 설 립(입)│無 없을 무│依 의지할 의


외롭고 의지(依支)할 데 없음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進退維谷(진퇴유곡)│進退兩難(진퇴양난)│四顧無親(사고무친)│四顧無人(사고무인)│無援孤立(무원고립)│孤城落日(고성낙일)│孤立無援(고립무원)


Tag

마음│외로움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고려의 정령(精靈)이 사흘 만에 바뀐다는 뜻으로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을 비유한 말

孤立無援 (고립무원)

孤立無援(고립무원)

孤 외로울 고 | 立 설 립(입), 자리 위 | 無 없을 무 | 援 도울 원 |

고립(孤立)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四顧無親(사고무친) | 四顧無人(사고무인) | 無援孤立(무원고립) | 孤城落日(고성낙일) | 孤立無依(고립무의) |

膏粱珍味 (고량진미)

膏粱珍味(고량진미)

살찐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穀梁俶 (곡량숙)

穀梁俶(곡량숙)


春秋穀梁傳(춘추곡량전)

高臺廣室 (고대광실)

高臺廣室(고대광실)

높은 대에 있는 넓은 집. 매우 큰 집.

曲突徙薪 (곡돌사신)

曲突徙薪(곡돌사신)

曲 굽을 곡 | 突 굴뚝 돌 | 徙 옮길 사 | 薪 땔나무 신 |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한서(漢書) 곽광(藿光)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답니다.

古今獨步 (고금독보)

古今獨步(고금독보)

예나 현재를 통하여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음

孤軍奮鬪 (고군분투)

孤軍奮鬪(고군분투)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 함

股肱之臣 (고굉지신)

股肱之臣(고굉지신)

팔다리와 같이 믿는 보필의 신하. 임금이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

曲高和寡 (곡고화과, qǔgāohèguǎ)

曲高和寡(곡고화과)

曲高和寡(qǔgāohèguǎ)

曲 굽을 곡 | 高 높을 고 | 和 화할 화 | 寡 적을 과 |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


춘추전국시대 말엽 초(楚)나라의 정치가 굴원(屈原)과 더불어 대표적인 문인으로 손꼽히던 송옥(宋玉:굴원의 제자)은 문장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대체 어찌하여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어졌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10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황(鳳凰)은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름 위를 나는데, 동네 울타리를 날아다니는 참새가 어찌 하늘의 높음을 알겠으며,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를 어항 속에 사는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새 가운데만 봉황이 있고, 물고기 중에만 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곤은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상상의 큰 물고기로, '북양에 물고기가 사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 지 알 수가 없다[北溟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之幾千里]'라 했다.


관련 한자어

鳳凰 관련 고사성어

朝陽鳳凰(조양봉황) 화제(畵題)로서 아침 해에 봉황(鳳凰)을 그린 것

鷄棲鳳凰食(계서봉황식) 닭집에서 봉황(鳳凰)이 함께 살면서 모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충신(忠臣)이 천(賤)한 죄인(罪人)들과 함께 하는 삶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蝶粉蜂黃(접분봉황) 나비 날개의 흰 가루와 벌이 누른 빛이란 뜻으로, ①나비가 교미(交尾)하면 그 가루를 잃고, 벌이 교미하면 그 누른빛이 스러진다는 말 ②당(唐)나라 궁인(宮人)이 하던 단장(丹粧)의 이름

鳳鳴朝陽(봉명조양) '봉황(鳳凰)이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할 조짐(兆朕), 뛰어난 행위(行爲)를 칭찬(稱讚)하는 말

兩鳳齊飛(양봉제비) 두 마리의 봉황(鳳凰)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兄弟)가 함께 영달함의 비유(比喩)

臥龍鳳雛(와룡봉추) 누운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누운 용은 풍운을 만나 하늘로 올라 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봉황(鳳凰)의 새끼는 장차 자라서 반드시 봉황(鳳凰)이 되므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豪傑)을 비유

騰蛟起鳳(등교기봉) 뛰어오르는 도롱뇽과 날아오르는 봉황(鳳凰)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많은 사람의 비유(比喩)

伏龍鳳雛(복룡봉추) 엎드린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엎드려 있는 용이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가리키고, 봉왕의 새끼란 방사원(龐士元)을 이름인 데, 아직 세상(世上)에 알려지지 않은 특출(特出)한 인물(人物)을 비유

鳳麟芝蘭(봉린지란) 봉황(鳳凰), 기린(麒麟)과 같이 잘난 남자(男子)와 지초(芝草), 난초(蘭草)와 같이 예쁜 여자(女子)라는 뜻으로, 젊은 남녀(男女)의 아름다움을 형용(形容)하는 말

鳳鳥不至(봉조부지) 봉황(鳳凰)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세상(世上)에 聖君(성군)이 나타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는 말

龍瞳鳳頸(용동봉경) 용의 눈동자와 봉황(鳳凰)의 목이라는 뜻으로, 매우 잘 생긴 귀인(貴人)의 얼굴을 형용(形容)해 이르는 말

呱呱之聲 (고고지성)

呱呱之聲(고고지성)

아이가 처음 나면서 우는 소리

高啓 (고계)

高啓(고계)

異名: 高启(Gāo Qǐ), 호 청구자, 자 계적
국적: 중국
활동분야: 시
출생지: 중국 쑤저우
주요저서: 《고청구시집》(19권)
주요작품: 《청구자가》 《심호은군》


중국의 원말(元末)·명초(明初)의 시인. 근체시(近體詩)에서는 주로 강남의 수향(水鄕:강·호수 등 물이 많은 지방)의 풍물을 담백하게 노래했고, 고체(古體)에서는 역사나 전설에서 취재한 낭만을 노래하였다. 대표작인《청구자가(靑邱子歌)》는 분방한 환상을 엮어 나가면서 시인의 사명을 노래한, 중국문학사상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자 계적(季迪), 호 청구자(靑邱子). 쑤저우[蘇州] 출생. 생애의 대부분을 원나라 말기의 내란시대에 보냈으며, 명나라의 통일 후 잠시 난징[南京]에서 취직한 외에는 쑤저우에서 소지주(小地主)로서 생활하였다. 명태조(明太祖)의 공신배제정책(功臣排除政策)의 여파로 39세에 살해되었다. 전원생활을 사랑하는 자유인이었으며, 원송(元宋) 이후의 중국에 대두한 시민층의 한 전형이었다.

그의 시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싱싱하고 경쾌하며 또 평이하다. 근체시(近體詩)에서는 주로 강남의 수향(水鄕:강·호수 등 물이 많은 지방)의 풍물을 담백하게 노래했고, 고체(古體)에서는 역사나 전설에서 취재한 낭만을 노래하였다.

대표작인 《청구자가(靑邱子歌)》는 분방한 환상을 엮어 나가면서 시인의 사명을 노래한, 중국문학사상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고소잡영(姑蘇雜詠)》(132수)은 유서 깊은 고도(古都) 쑤저우의 명승고적에 붙여서 쓴 시를 모은 것으로, 사실(史實)과 전설과 자연미와 환상을 섞어 짠 작품이다.

이 밖에 《고청구시집(高靑邱詩集)》(19권)과 사집(詞集)인 《구현집(扣舷集)》(1권)이 전한다. 《고청구시집》에 실려 있는 대표작의 하나인 《심호은군(尋胡隱君)》에 그의 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渡水復渡水 도수부도수
看花還看花 간화환간화
春風江上路 춘풍강상로
不覺到君家 불각도군가

물을 건너고 또 물을 건너
꽃을 보며 다시 또 바라보면서
봄바람 부는 강가 길을 걸어가노라니
어느새 그대 집에 다다랐도다

鷄皮鶴髮 (계피학발)

鷄皮鶴髮(계피학발)

사람이 늙어서 피부는 닭의 살갗과 같이 되고 머리는 세어 학의 날개처럼 희어졌다는 말

季札掛劍 (계찰괘검)

季札掛劍(계찰괘검)

季 계절 계, 끝 계 | 札 편지 찰, 뽑을 찰, 패 찰 | 掛 걸 괘 | 劍 칼 검 |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시함을 비유하는 말.


《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에 보인다.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아들이 계찰(季札)이다. 계찰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촌에 살면서 밭을 갈며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지 않아서 왕은 계찰을 연릉(延陵)으로 봉후(封侯)했다. 그 후로부터 계찰을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렸다.

계찰이 처음 사신으로 길을 떠났을 때, 오(吳)나라의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평소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않았다. 계찰 역시 속으로는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으로 중원(中原)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각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徐)나라에 도착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 집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家樹而去]. 그의 종자(從子)가 물었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계찰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계찰계검'은 이 글을 요약한 말이며, 중국의 유서(類書)인 《몽구(蒙求)》의 표제어에는 '계찰괘검(季札掛劍)'으로 적고 있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평가하여,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출전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季布一諾(계포일락) | 季布一諾(계포일낙) | 季札繫劍(계찰계검) |

桂玉之歎 (계옥지탄)

桂玉之歎(계옥지탄)

桂玉之叹(guìyùzhītàn)

桂 계수나무 계 | 玉 구슬 옥 | 之 갈 지 | 嘆 탄식할 탄,또 우 |


식량(食糧) 구(求)하기가 계수 나무 구(求)하듯이 어렵고, 땔감을 구(求)하기가 옥을 구(求)하기 만큼이나 어려움


가난 |

戒愼恐懼 (계신공구)

戒愼恐懼(계신공구)

경계하고 삼가하며 두려워함

鷄鳴狗盜 (계명구도)

鷄鳴狗盜(계명구도)

鸡鸣狗盗(jīmínggǒudào)

鷄 닭 계 | 鳴 울 명 | 狗 개 구 | 盜 도둑 도 |


닭의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①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要緊)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比喩)하여 이르는 말 ②'야비(野鄙)하게 남을 속이는 꾀'를 비유(比喩)한 말 ③잔재주를 자랑함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귀족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맹상군(孟嘗君)을 초청했다. 맹상군은 소양왕에게 호백구(狐白裘)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진나라 국상이 맹상군의 슬하에 인재가 많은 것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한편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하였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 "신이 능히 호백구(狐白裘)를 얻어 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秦)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狐白裘)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인해 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때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이것은 《사기 맹상군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라고도 한다.

[출전]
史記:孟嘗君列傳


관련 한자어

유의어

函谷鷄鳴(함곡계명) | 鷄鳴之客(계명지객) |

참조어

鷄鳴狗盜之雄(계명구도지웅) 맹상군(孟嘗君)을 달리 이르는 말 |


사기, 史記, 史記:孟嘗君列傳 |

鷄肋 (계륵)

鷄肋(계륵)

쓸모가 별로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후한 말, 삼국지로 유명한 촉(蜀)나라의 유비는 군사 제갈공명과 함께 위(魏)나라 조조의 대군을 한중땅에서 맞아 싸웠다. 조조의 군사는 너무 먼 거리를 원정했으므로 보급이 연결되지 않아서 한다하는 조조도 더 이상 싸운다는 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패전(敗戰)을 한 것도 아닌지라 어떻게 명령을 내려야 좋을지 몰라서, 머리를 짜내고 있던 조조는 전군에게, '계륵(鷄肋)일 뿐이다'하며 아리송한 명령을 내렸다. 역전의 용장들도 조조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때 양수라는 장수가 재빨리 후퇴할 준비를 서둘렀다. 장수들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을 만한 고기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오. 한중 땅 역시 그런 곳이라고 주상께서는 생각하고 계신 것이라오."

요즈음에는 이 계륵은 '쓸모가 별로 없지만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鷄卵有骨 (계란유골)

鷄卵有骨 (계란유골)

鷄 닭 계 | 卵 알 란 | 有 있을 유 | 骨 뼈 골 |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말로, ①일이 공교롭게 틀어짐 ②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을 뜻함.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계란에도 뼈가 있다.
¶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鷄群一鶴 (계군일학)

鷄群一鶴(계군일학)

범용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

☞ 群鷄一鶴(군계일학)

鷄口牛後 (계구우후)

鷄口牛後(계구우후)

鷄 닭 계 | 口 입 구 | 牛 소 우 | 後 뒤 후 |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뜻.

Better be the head of an ass than the tail of a horse.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 | 사기 소진전(蘇秦傳)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鷄犬昇天 (계견승천)

鷄犬昇天(계견승천)

鷄 닭 계 (ji1; 鳥-10획) | 犬 개 견 (quan3; 犬-총4획) | 昇 오를 승 (sheng1; 日-4획) | 天 하늘 천 (tian1; 大-총4획) |

다른 사람의 권세(權勢)에 빌붙어 승진(昇進ㆍ陞進)하는 것을 이르는 말

A hen and dog rise to heaven. If a man becomes immortal, even his hen and dog become immortal, too


신선전(神仙傳) 회남왕편(淮南王篇)에 실려 있다.

중국 한(漢) 나라 때 회남왕 유안(劉安:BC 179?∼BC 122)은 팔공(八公)이라고 불리는 신선에게 먹으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된다고 하는 선단(仙丹)의 제조하는 기술을 전수 받았다. 고생 끝에 이 기술을 연마하여, 그는 곧 대낮에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개와 닭들도 약 그릇에 묻은 선약을 핥아먹었는데, 모두 함께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鷄犬舐藥器者, 亦同飛去]고 전해진다. 중천에서 '꼬끼오' 하는 소리와 '멍멍멍' 개 짓는 소리가 한참동안이나 어지럽게 들려 왔다고 한다.


출전

신선전(神仙傳) 회남왕편(淮南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淮南鷄犬(회남계견) | 拔宅飛升(발택비승) | 一人得道 鷄犬昇天(일인득도 계견승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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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When a man gets to the top, all his friends and relatives get there with him.
한 사람이 최고(最高)에 오르면, 그의 모든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와 함께 그곳에 있게 된다.

When a man is at court, all his followers are in favor.
한 사람이 궁정(宮庭)에 가게 되면, 그의 수행원들도 모두 호의(好意)를 받게 된다.


중요도·활용도

缺效未遂 (결효미수)

缺效未遂(결효미수)

실행은 끝났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함

隔靴搔榻 (격화소양)

隔靴搔榻(격화소양)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에 차지 않음을 비유

驚惶罔措 (경황망조)

驚惶罔措 (경황망조)

놀라고 두려워서 어쩔 바를 모른다

犬兎之爭 (견토지쟁)

犬兎之爭(견토지쟁)

개와 토끼가 싸우다 지쳐서 둘 다 쓰러져 숨져있는 것을 지나가던 농부가 주워서 이득을 보았다는 데서 나온 말로, 제 3자가 이익을 얻게 됨을 비유

結草報恩 (결초보은)

結草報恩 (결초보은)

IPA [kjəl.cʰo.bo.ɨn]

풀을 맺어 받은 은혜에 보답한다.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는다는 말.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진나라(晉) 때, 위무자라는 사람이 큰 병이 들자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젊은 첩을 개가시키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위무자가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아들에게 첩을 따라서 같이 죽게 하라고 처음과 달리 유언하였다. 위무자가 세상을 드디어 떠나자 아들은 아버지의 뒤에 한 유언을 정신이 혼미할 때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처음 유언을 따라서 아버지의 젊은 첩을 개가시켰다. 그후 진나라(秦)가 위무자의 아들 위과(魏顆)가 장수로 있던 진나라(晉)를 침략하자 위과는 진(秦)의 장수 두회(杜回)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는데, 위과가 열세에 몰리게 되었을 때, 불현듯 한 늙은이가 두회의 발 앞에 풀을 엮어(結草)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하여 위과는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늙은이가 나타나 이르기를 자신은 위과의 서모의 아버지이며 자신의 딸이 위과의 바른 판단 때문에 목숨을 건져 개가하여 잘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은혜에 보답(報恩)하기 위하여 어제 전장에서 위과를 도왔다고 하였다.

출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 십오년조(宣公 十五年條)

兼聽則明 (겸청즉명)

兼聽則明(겸청즉명)

兼 겸할 겸 | 聽 들을 청 | 則 곧 즉 | 明 밝을 명 |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 태종(太宗) 정관(貞觀) 2년조의 이야기. 당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역사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항상 당태종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서기 628년,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은 당태종이 그에게 물었다.

"나라의 군주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또한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쪽 말만 듣고 그것을 믿는다면 일을 잘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위징은 역사적인 교훈을 예로 들면서, 군주의 편파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하였다.

敬天愛人 (경천애인, jìngtiānàiren)

敬天愛人(경천애인,jìngtiānàiren)

하늘을 공경(恭敬)하고 사람을 사랑함

經天緯地 (경천위지)

經天緯地(경천위지)

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림

驚天動地 (경천동지)

驚天動地(경천동지)

驚 놀랄 경 | 天 하늘 천 | 動 움직일 동 | 地 땅 지 |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몹시 세상(世上)을 놀라게 함을 이르는 말

world-shaking


출전

주자어록(朱子語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驚天(경천) | 動天驚地(동천경지)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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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敬天勤民 (경천근민)

敬天勤民(경천근민)

하느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기에 부지런함

景差 (경차, Jǐng Chà)

景差(경차)

異名: 景差(Jǐng Chà)
국적: 중국
활동분야: 문학


초나라에서 굴(屈)과 소(昭), 경(景)이라는 성은 귀족이었다.

송옥(宋玉), 당륵(唐勒) 등과 함께 굴원의 제자였다.

磬竹難書 (경죽난서)

磬竹難書(경죽난서)

磬 경쇠 경 | 竹 대 죽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書 글 서 |

저지른 죄(罪)가 너무 많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는 말

죽간(竹簡: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된 서사 재료)을 모두 사용해도 기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지은 죄가 많아서 글과 말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수(隋)나라의 제2대 황제 양제(煬帝)는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으며, 대규모 토목공사와 고구려를 침공하여 살수에서 패하는 등 대외정벌을 계속함으로써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농민군의 이밀(李密)은 수 양제를 비판하는 격문을 발표하였는데, 《구당서(舊唐書)》 '이밀전'에 다음의 격문 내용이 나온다.

'남산의 대나무를 죽간으로 만들어 다 써도 그의 죄를 모두 적을 수 없으며, 동해의 물을 다 써도 그의 죄악을 씻어낼 수 없다[磬南山之竹 書罪無窮 決東海之波 流惡難盡].'

또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옥에 갇힌 협객 주세안(朱世安)이 공손하(公孫賀)의 죄를 고발하면서 '남산의 죽간을 다 허비해도 나의 말을 모두 기록하는데는 부족하다[南山之竹 不足受我詞]'라고 한 말이 《한서(漢書)》 '공손하전'에 전해진다.

[출전]
구당서(舊唐書)

輕燼浮薄 (경조부박)

輕燼浮薄(경조부박)

언어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

輕敵必敗 (경적필패)

輕敵必敗(경적필패)


경계

結者解之 (결자해지)

結者解之 (결자해지)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

兼人之勇 (겸인지용)

兼人之勇(겸인지용)

능히 몇 사람을 당해낼 만한 용기

敬而遠之 (경이원지)

敬而遠之 (경이원지)

공경하지만 멀리한다. 누구를 공경하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말.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말.

堅忍不拔 (견인불발)

堅忍不拔(견인불발)

堅 굳을 견 | 忍 참을 인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拔 뽑을 발, 무성할 패 |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 뜻을 이루자는 뜻으로 사용

見而不食 (견이불식)

見而不食(견이불식)

見 볼 견 | 而 말 이을 이 | 不 아닐 불 | 食 밥 식 |

보고도 먹지 못함. 보기만 하였지 먹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어 실속이 없고 보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는 뜻. 아무 실속이 없다는 뜻.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그림의 떡.
¶ 그림의 선녀.

結義兄弟 (결의형제)

結義兄弟(결의형제)

结义兄弟(jiéyì xiōngdi)。

結 맺을 결, 상투 계 | 義 옳을 의 | 兄 형 형, 두려워할 황 | 弟 아우 제, 기울어질 퇴 |

①남남끼리 의리(義理)로써 형제(兄弟) 관계(關係)를 맺음 ②또는 그런 형제(兄弟)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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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結約兄弟(결약형제) | 桃園結義(도원결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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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鯨飮馬食 (경음마식, jīngyìnmǎshí)

鯨飮馬食(경음마식)

鲸饮马食(jīngyìnmǎshí)

鯨 고래(의 수컷) 경 | 飮 마실 음 | 馬 말 마 | 食 밥 식,먹을 식,먹이 사,사람 이름 이 |


고래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


관련 한자어

유의어

暴飮暴食(폭음폭식) | 牛飮馬食(우음마식) |

見危致命 (견위치명)

見危致命(견위치명)

나라가 위급해지는 경우에 몸을 나라에 바치는 것

耿湋 (경위, Gěng Wéi)

耿湋(경위, 734년~?)

이름: 耿湋(Gěng Wéi)


당나라 시인.

犬猿之間 (견원지간)

犬猿之間(견원지간)

개와 원숭이의 사이라는 뜻으로,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氷炭之間(빙탄지간) | 氷炭不相容(빙탄불상용) | 不俱戴天(불구재천) | 不俱戴天(불구대천)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개와 고양이 사이. cat-and-dog terms
¶ 닭과 지네 사이.
¶ 새우와 돼지 사이.

卿雲 (경운, Qīng Yún)

卿雲(경운)

이름: 卿云(Qīng Yún)


당나라 말엽의 승려.

敬畏之心 (경외지심)

敬畏之心(경외지심)


공경(恭敬)

謙讓之德 (겸양지덕)

謙讓之德(겸양지덕)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사양하는 덕

擊壤歌 (격양가)

擊壤歌(격양가)

중국 堯임금 때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기리며 부른 노래

見危授命 (견위수명)

見危授命(견위수명)

見 볼 견, 뵈올 현 | 危 위태할 위 | 授 줄 수 | 命 목숨 명 |

위험(危險)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危殆)로운 지경(地境)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爲)해 싸우는 것을 말함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지혜·청렴·용기·재예·예악(禮樂)을 두루 갖춘 사람이 성인이라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인이야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이로움을 보면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의 약속을 평생의 말(약속)로 여겨 잊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성인이라 할 수 있다.(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공자는 여기서 지금의 성인은 옛날의 성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위의 세 가지 요건만 갖추면 성인이라 할 만하다는 뜻으로 이른 것이다. 이 문장에서 유래한 견위수명은 이후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충신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흔히 견리사의와 함께 '견리사의 견위치명'으로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출전

논어(論語) 헌문(憲問)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見危致命(견위치명)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見我舌 (견아설)

見我舌(견아설)

혀는 자기 생각을 나타내는데 필요할 뿐 아니라 상대를 위협하고 또는 추켜세워서 등용토록 하며, 책략에 걸리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기라는 뜻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观火(gé'ànguānhuǒ)

隔 사이 뜰 격 | 岸 언덕 안 | 觀 볼 관 | 火 불 화,화반 화 |


三十六計 敵戰計 第九計. 강가에 앉아 맞은편 기슭에 난 불을 바라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隔岸觀火(격안관화)는 제5계인 趁火打劫(진화타겁)의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는 전략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犬牙相錯 (견아상착)

犬牙相錯(견아상착)

犬 개 견 | 牙 어금니 아 | 相 서로 상, 빌 양 | 錯 어긋날 착, 둘 조 |

개의 어금니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복잡한 것을 이르는 말.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이야기.

중국 한(漢)나라의 제1대 황제인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건국 후,각 지역에 다른 성씨(姓氏)의 제후(諸侯)들을 제거하고 같은 성씨(姓氏)의 인물들을 왕후로 봉하였다. 그러나 3번째 군주인 경제(景帝) 때에는 각 지역의 동성 제후들이 증대된 세력을 믿고 조정에 대항하며 제위를 다투었다.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반란이 평정된 후, 경제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봉하였다.

한무제가 제위를 계승한 후, 조정 대신들은 이러한 왕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며, 그들을 제거하도록 무제에게 건의하였다. 그러자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제후들이 반발하였다.

"우리는 모두 황실의 골육지친으로서 선왕께서 땅을 주시어 마치 개의 이빨처럼 서로 얽혀있으며, 서로 도와 도읍을 지키며 종실을 반석처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를 무고하다니,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諸侯王自以骨肉至親 先帝所以廣封連城 犬牙相錯者 爲盤石宗也]."

이들 중 중산정왕은 무제의 앞에서 대성통곡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한무제는 그들을 위로하면서도, 비밀리에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였다. 犬牙相錯 이란 많은 요인들이 얽혀 상황이 복잡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서(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견아교착(犬牙交錯) | 견아상림(犬牙相臨) | 犬牙相制(견아상제) |

隔世之感 (격세지감)

隔世之感(격세지감)

딴 세대와 같이 몹시 달라진 느낌

傾城之美 (경성지미)

傾城之美(경성지미)

한 성을 기울어뜨릴 만한 미색

犬齧枯骨 (견설고골)

犬齧枯骨(견설고골)

개가 마른뼈를 핥는다 함이니 아무 맛이 없다는것

耕山釣水 (경산조수)

耕山釣水(경산조수)

산에서 밭을 갈고 물에서 고기를 낚음. 속세를 떠나 산중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

經世致用 (경세치용)

經世致用(경세치용)

经世致用(jīngshì zhìyòng)。

經 지날 경, 글 경 | 世 인간 세, 대 세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用 쓸 용 |

學問은 世上을 다스리는 데에 實質的인 利益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유학(儒學)의 한 주장(主張)


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利用厚生(이용후생)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堅壁淸野 (견벽청야)

堅壁淸野(견벽청야)

堅 굳을 견 | 壁 벽 벽 | 淸 맑을 청 | 野 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 |

성벽을 견고(堅固)히 지키고, 들의 작물(作物)을 거두거나 가옥(家屋)을 철거(撤去)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糧食)이나 쉴 곳의 편의(便宜)를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우세(優勢)한 적에 대(對)한 작전(作戰) 수단(手段)을 말함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어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걷어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이러한 전법은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의 공격을 영원성(寧遠城)을 사수(死守)함으로써 패퇴시켰던 원숭환(袁崇煥)의 견벽청야 작전은 유명하다.

《삼국지(三國志)》의 순욱전(筍彧傳)에, 위(魏)의 조조(曹操)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呂布)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徐州牧使) 도겸(陶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참모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이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견벽청야 전술을 모를 리 없는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고,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荀彧傳(순욱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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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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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格物致知 (격물치지)

格物致知(격물치지)

格物致知(géwùzhìzhī)

格 격식 격, 가지 각, 마을 락(낙), 별 이름 학 | 物 물건 물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知 알 지 |

① (대학)六禮를 습득하여 지식을 명확히 한다는 말. ② (失子學)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통찰해 자기(自己)의 지식(知識)을 확고히 함.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 ③ (양명학) 부정을 바로잡고 큰 지혜를 키우는 것.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송(宋)나라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주자의 설은 만물은 한그루의 나무와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理致)를 가지고 있어 깊이 연구(硏究)하면 속과 겉의 세밀함과 거침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는 결과론으로 보여진다.

명나라 왕양명은 격물(格物)의 물(物)이란 사(事)로 봤다. 사란 마음의 움직임, 즉 뜻이 있는 곳을 말함이라 했다.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출전]
大學(대학)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格物致知(격물치지) | 誠意正心(성의정심) | 修身齊家(수신제가) |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

格物致知誠意正心 (격물치지성의정심)

格物致知誠意正心(격물치지성의정심)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통찰해 자기(自己)의 지식(知識)을 확고히 하며, 사물의 이치를 통찰해 지식을 확고히 함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사물에 이르러 앎을 이루고,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며,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은 수신을 위한 공부이고, 제가(濟家)와 치국(治國) 및 평천하(平天下)는 수신의 결과임.

[출전]
大學(대학)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格物致知(격물치지) | 誠意正心(성의정심) | 修身齊家(수신제가) |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

輕物重生 (경물중생)

輕物重生(경물중생)

輕 가벼울 경 | 物 물건 물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生 날 생 |

외물(外物)을 경시하고 생(生)을 중시한다

見物生心 (견물생심)

見物生心(견물생심)

見 볼 견, 뵈올 현 | 物 물건 물 | 生 날 생 | 心 마음 심 |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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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见财起意[jiàncáiqǐyì] 재물을 보고 훔칠 욕심이 생기다 | 견리망의(見利忘義) 见利忘义[jiànlìwàngyì]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의리마저 저버리다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見蚊拔劍 (견문발검)

見蚊拔劍 (견문발검)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 든다. 하찮은 일에 너무 거창하게 덤빈다는 말.

經妙脫灑 (경묘탈쇄)

經妙脫灑(경묘탈쇄)

경쾌 미묘하여 범속의 기풍을 벗어난 용모

犬馬之勞 (견마지로)

犬馬之勞(견마지로)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자기의 노력을 겸손히 일컫는 말.

犬馬之養 (견마지양)

犬馬之養(견마지양)

단지 어버이를 부양할 뿐 공경하는 마음이 없음을 이름

犬馬之忠 (견마지충)

犬馬之忠(견마지충)

개나 말처럼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바치는 자기의 충성

犬馬之齒 (견마지치)

犬馬之齒(견마지치)

자기 나이를 낮추어서 상대방에게 하는 말

鏡無心姸媸自見 (경무심연치자현)

鏡無心姸媸自見(경무심연치자현)

鏡 거울 경 | 無 없을 무 | 心 마음 심 | 姸 고울 연 | 媸 추할 치 | 自스스로 자 | 見볼 견, 뵈올 현 |

거울은 무심해서 미추가 절로 드러난다


[출전]

木几冗談(목궤용담)


관련 한자어

관련어

鏡無心姸媸自見(경무심연치자현) | 衡無心輕重自見(형무심경중자현) | 衡無心輕重自見 鏡無心姸媸自見(형무심경중자현 경무심연치자현) |

見利思義 (견리사의)

見利思義(견리사의)

见利思义(jiànlì sīyì)。

見 볼 견, 뵈올 현 | 利 이로울 리(이) | 思 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 | 義 옳을 의 |

눈앞에 이익(利益)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義理)에 합당(合當)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


출전

論語(논어) 憲問篇(헌문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見利忘義(견리망의)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見利忘義 (견리망의)

見利忘義(견리망의)

见利忘义(jiàn lì wàng yì)

見 볼 견│利 이로울 이│忘 잊을 망│義 뜻 의



견리이망 기진(見利而忘其眞)의 준말. 눈 앞의 이익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의 참된 처지를 모르게 된다. 이끗만 보고 의리를 생각지 아니함.


역상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함께 고양(高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역상은 자신의 4천 병마(兵馬)를 유방에게 바치고, 자신은 적진으로 돌진하여 여러 차례 큰공을 세웠다. 때문에, 유방은 천하를 차지하고 황제가 된 후, 역상을 우승상(右丞相)에 임명하고, 그를 매우 중시하였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呂太后)가 대권을 장악하고 자기 친족들의 세력을 넓히려 하였다. 이에 여태후는 자신의 조카인 여신(呂辛)과 여록(呂祿)을 왕에 봉하고 중앙의 대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여태후는 민심을 얻지 못하고, 대신들의 반대를 당하게 되었다.

여태후가 죽자, 주발(周勃)과 진호(陳乎)를 중심으로 한 일부 신하들은 여씨 가족들을 살해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여록(呂祿)이 북군(北軍)을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주발은 그에게 접근하여 그를 죽일 방도가 없었다. 이때, 그에게 늙은 승상인 역상이 떠올랐다. 역상의 아들 역기와 여록은 친한 친구사이였으므로,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여록을 유인하여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

역상은 여씨 제거에 협조할 것을 동의하고, 역기에게 사냥을 구실로 여록을 유인해 내도록 명하였다. 주발은 이 틈을 이용하여 북군을 장악하고, 곧이어 여씨 가족 모두를 제거하였다. 같은 해, 역상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역기는 황제에 의해 장군에 봉하여졌다.

훗날,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역기는 친구를 팔아 먹었으며, 그러한 행위를 일러 곧 이익에 어두워 도의(道義)를 잊어버린 짓이라 한다[賣友者,謂見利而忘義].˝ 라고 기록하였다.

[충전] 한서열전(漢書列傳)-역상전


장자가 조릉(雕陵)이라는 정원에 놀러 갔다. 큰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새를 활로 쏘기 위해 자 세히 보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미얀마제비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 세히 보니 그 미얀마제비는 나무그늘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미얀마제비가 노 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매미는 맴맴하고 즐겁게 울고 있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그것에 열중해서 자기의 처지를 잊어버린 다. 새도 미얀마재비도 매미도 모두 눈앞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서 지금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장자는 만물은 이런 것이라고 깨닫고 득의양양해 있으니 뒤에서 정원지기가 다가와서, "여기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하며 이 정원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장자 를 책망했다. 장자도 또한 이(利)를 보고 자기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출전] 장자


관련 한자어

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당랑박선(螳螂搏蟬)│螳螂捕蟬(당랑포선)│당랑재후(螳螂在後)

敬老思想 (경로사상)

敬老思想(경로사상)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

耕堂問奴 (경당문노)

耕堂問奴(경당문노)

농사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 일은 항상 그 부문의 전문가와 상의하여 행하여야 한다는 뜻

傾國之色 (경국지색, qīngguózhīsè)

傾國之色 (경국지색)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之 갈 지 | 色 빛 색 |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경국지색은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음악을 관장하는 벼슬)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에 나온다.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이 노래는 무제 앞에서 절세미인인 자기 누이동생을 자랑하여 부른 것이었다.

항우와의 결전을 거쳐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세운 한(漢)은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탄탄한 반석 위로 올라선다. 일찍 황후를 잃은 무제는 이때 이미 50고개를 넘어 있었고, 사랑하는 여인도 없이 쓸쓸한 처지였으므로 당장 그녀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날아갈 듯이 춤추는 솜씨에 매혹되었는데, 이 여인이 무제의 만년에 총애를 독차지하였던 이부인(李夫人)이었다. 그녀가 병들었을 때 무제가 문병을 와서 얼굴 보기를 청하였으나 초췌한 얼굴을 보이기 싫다고 끝내 얼굴을 들지 않았다 한다.

[출전]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관련 한시

秋風辭(추풍사)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


동의어·유의어

傾城之色(경성지색) | 萬古絶色(만고절색) | 絶世美人 | 羞花閉月(수화폐월) | 國香 | 國色 | 花容月態(화용월태) | 丹脣皓齒(단순호치) | 解語花(해어화) |

반의어

薄色(박색) |


관련 고사성어

하나라 걸왕과 매희: 酒池肉林(주지육림) |

은나라 주왕과 달기: 酒池肉林(주지육림), 炮烙之刑(포락지형) |

주나라 유왕과 포사: 丹脣皓齒(단순호치) |

정나라 영공과 하희: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解語花(해어화) |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經國濟世 (경국제세)

經國濟世(경국제세)

经国济世(jīngguó jìshì)。

經 지날 경, 글 경 | 國 나라 국 | 濟 건널 제 | 世 인간 세, 대 세 |

나라 일을 경륜(經綸)하여 세상을 구함. '경제(經濟)'의 본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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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經世濟民(경세제민) | 經濟(경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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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箝口枯腸 (겸구고장)

箝口枯腸(겸구고장)

궁지에 몰리어 생각과 말이 막혀 대답을 못함

傾國 (경국, qīngguó)

傾國(경국)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나라를 위태롭게 하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뛰어남.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 傾國之色 (경국지색)

경공술

경공 (보법)

무력답수(無力踏水) = 물을 밟고 둥둥 떠 있는 경공의 한 가지. 절정의 경신법을 익히면 이르는 경지라 한다.

경신법(輕身法) = 몸을 가볍게 하는 무공. 경신법에는 빨리 달리기 위한 경공과 서 있는 곳에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자신의 공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보법이 있다.

뇌려타곤 = 본 뜻은 지랄병이든 당나귀가 정신을 잃고 땅바닥을 마구 뒹군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의 신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의 공격을 아무래도 피할 방법이 없을 때 땅바닥을 마구 뒹굴어서 간신히 몸을 피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그 모양이 너무 참담하고 부끄러우므로 고수들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시전하고 싶어하지 않는 수치스러운 신법이다. 원래는 나려타곤이다.

능공허도(凌空虛道) = 하늘을 걸어다닐 경지에 이른 것으로 경공의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

능파미보(凌波迷步) = 일정한 방위를 움직여 적의 공격을 피하는 보법(步法)의 일종이다.

답설무흔(踏雪無痕) = 말 그대로 눈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몸을 가볍게 해서 빠르게 펼치는 경공이다.

궁신탄영(弓身彈影) = 몸을 활처럼 휘게 해서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몸을 이동하는 최상승의 경신법이다.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 = 금잉어가 엄청난 파도를 넘는다는 이름처럼 잉어의 몸놀림을 본따 만든 경신법.몸을 틀어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이동한다.

등평도수(登萍渡水) = 도가비전의 경공법. 물 위를 수평으로 빠르게 걷는 경공이다.

부동명왕보(不動明王步) = 불문의 절세 보법의 하나. 이정제동의 묘리를 담고 있는 보법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보법이다. 부동명왕은 불교 오대존명왕의 하나로 대일여래가 일체의 악마, 번뇌를 항복시키기 위하여 변화하여 분노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얼굴색은 검고 노한 눈을 하고 있으며, 왼쪽 눈을 가늘게 감고 오른 편의 윗입술을 물고 있다. 오른손에 항마의 검을, 왼손에 오라를 갖고 있으며 보통 큰 불꽃 속에 앉아 있다. 부동존이라고도 한다.

부신약영 = 공중에 둥둥 떠 그림자가 생길 틈도 없이 빠르게 이동하는 경공의 한 경지.

어기충소 = 신법 가운데 순간적으로 몸을 높이 뽑아 올리는 데는 가장 탁월한 신법이다. 이 어기충소의 신법을 사용하면 단 한 모금의 진기로도 십 장 이상의 높이를 뛰어 오를 수 있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 곤륜 비전의 경신법. 곤륜파는 험준한 곤륜산을 배경으로 도가 문파이기 때문에 신법으로 이름이 높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운룡대팔식이다.

이형환위(以形換位) = 몸을 순간적으로 날려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는 경신법의 한 가지.

일위도강(一葦渡江) = 불교 비전의 물 위에서 사용되는 경공. 달마대사가 갈대잎 하나로 강물을 건넜다는 고사에서 나온 이름.

천근추(千斤墜) = 무술의 한 가지로 공중에 떠올랐을 때 몸에 갑자기 무게가 느는 듯 아래로 신속하게 떨어져 내리는 술수. 또는 자신의 몸무게를 몇 배로 늘리듯이 공력을 운용하는 술수로 알려져 있다.

천마행공(天馬行空) = 천마가 하늘을 날듯 빠르게 날아가는 경공의 한 가지.

천상제(天上梯) = 마치 허공에 계단이 있어서 그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는 것처럼 허공을 걸어가는 신법. 진정으로 고명한 신법은 허공을 의지하고 신형을 매우 천천히 움직이거나, 혹은 완전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천상제는 아주 고명한 신법이라 할 수 있다.

초상비(草上飛) = 풀잎을 밟고도 풀이 휘어지지 않는다는 경공. 절정의 고수가 아니면 시전할 수 없는 상승의 경공이다.

허공답보(虛空踏步) = 말 그대로 허공에서 마치 계단을 걸어 올라가듯이 또는 내려 오듯이 움직이는 경공

어풍비행(圄風飛行) = 허공답보와 같은 효과로, 허공을 날아 다닐 수 있는 경공술이다.

취팔선보 = 개방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독문보법

표홀신보 =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는 보법

輕擧妄動 (경거망동)

輕擧妄動 (경거망동)

함부로 가볍게 하는 짓

牽强附會 (견강부회)

牽强附會(견강부회)

牽 이끌 견, 끌 견 | 强 강할 강 | 附 붙을 부 | 會 모일 회 |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맞춤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나 이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꼴이니,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에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는데, 제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말이다. 또 '수석침류(漱石枕流)'는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는 뜻이니, 가당치도 않게 억지를 부린다는 말이요, '추주어륙(推舟於陸)'은 배를 밀어 육지에 댄다는 뜻이니, 역시 되지 않을 일에 억지를 쓴다는 말이다.

그밖에 '영서연설(郢書燕說)'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영 땅의 사람이 쓴 편지를 연나라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도, 자신이 해석한 내용대로 연나라를 다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속담이 있으니, 가당치도 않은 의견을 끝까지 주장한다는 말이요,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 역시 무리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으로, '견강부회'와 통한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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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郢書燕說(영서연설) | 附會(부회) | 傅會(부회)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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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傾箱倒篋 (경상도협)

傾箱倒篋(경상도협)

傾 기울 경 | 箱 상자 상 | 倒 넘어질 도 | 篋 상자 협 |

광주리를 기울이고 상자를 엎는다는 뜻으로,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아 극진히 환대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郗鑒)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 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筐倒庋]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 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王右軍郗夫人謂二弟司空、中郎曰:「王家見二謝,傾筐倒庋;見汝輩來,平平爾。汝可無煩復往。」世說新語  賢媛第十九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는다든가, 말을 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일러 경광도협(傾筐倒篋)이라고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 第十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傾筐倒庋(경광도기) | 傾筐倒篋(경광도협) |


중요도·활용도

劍號巨闕 (검호거궐)

劍號巨闕(검호거궐)

劍 칼 검 | 號 이름 호, 부르짖을 호 | 巨 클 거, 어찌 거 | 闕 대궐 궐 |

칼 중 에서는 거궐이 으뜸으로 불리웠다.

거궐(巨闕)은 칼 이름이고, 구야자가 지은 보검(寶劍)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據虛博影 (거허박영)

據虛博影(거허박영)

어찌할수 없는 것


束手無策

乞骸骨 (걸해골)

乞骸骨(걸해골)

乞骸라고도 함. 老臣이나 관리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할 때 쓰는 말

居之中天 (거지중천)

居之中天(거지중천)

텅빈 공간

擧族一致 (거족일치)

擧族一致(거족일치)

온 겨레의 뜻과 힘이 함께 뭉쳐 한결같음

車載斗量 (거재두량)

車載斗量(거재두량)

차에 싣고 말로 셀 만큼 물건이 흔하거나 많음.

去者日疎 (거자일소)

去者日疎(거자일소)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진다는 말. 아무리 슬픈 死別(사별)을 했더라도 죽은 사람은 날이 감에 따라 차차 잊혀지고 절친한 사이였던 사람도 일단 멀리 떠나면 점차 疎遠(소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去者日疎(거자일소)는 文選(문선)의 雜詩(잡시)항목에 실려 있는 작자미상의 시 첫대목에 나오는 구절. 시 전체는 인생의 무상을 읊어 읽는 사람을 공감으로 이끌면서 서글픔을 자아낸다.

去者日以疎․거자일이소
來者日以親․내자일이친
出郭門直視․출곽문직시
但見丘與墳․단견구여분

古墓爲田․고묘여위전
松柏爲薪․송백최위신
白楊多悲風․백양다비풍
蕭蕭愁殺人․소소수살인

思還故里閭․사환고리려
欲歸道無因․욕귀도무인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지네
성문을 나서 곧바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언덕과 무덤뿐이네

옛 무덤은 뭉개져서 밭이 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베어져 장작이 되었네
사시나무엔 슬픈 바람이 휘몰아쳐
쓸쓸히 사람의 애간장을 끊는구나

고향 마을에 돌아가려 마음 먹어보지만
돌아가본들 의지할 데라고는 없을테지

去者不追來者不拒 (거자불추내자불거)

去者不追來者不拒(거자불추내자불거)

去 갈 거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追 따를 추 | 來 올 래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拒 막을 거


가는 사람 붙들지 말고 오는 사람 뿌리치지 말라는 뜻.

이 말을 풀어서 “거자(去者)를 불추(不追)하고 내자(來者)를 불거(不拒)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자의 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말은 '맹자'에 있는 말이 쉬운 글자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맹자 진심편 하(盡心篇下)'에는 거(去) 대신 왕(往)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이 왕(往)에는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을 뜻하는 예가 많아 거(去)로 바뀌어 일반화된 듯하다.

擧日反三 (거일반삼)

擧日反三(거일반삼)

한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居移氣養移體 (거이기양이체)

居移氣養移體(거이기양이체)

사람은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는 뜻.

擧措失當 (거조실당)

擧措失當(거조실당)

擧 들 거 | 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 失 잃을 실, 놓을 일 | 當 마땅 당 |

모든 조치(措置)가 정당(正當)하지 않음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이야기다.

진시황 26년, 즉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6국을 멸하고 천하(天下)를 통일했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했다. 이듬해, 진시황은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천하(天下)를 돌기 시작했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태산(泰山)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낭야대를 쌓고,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功德)과 진(秦)나라 왕조의 덕정(德政)을 담은 비문(碑文)을 새겼다.

다음은 비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진시황께서는 백성(百姓)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석(朝夕)으로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百姓)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 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容易)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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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一反三 (거일반삼)

擧一反三(거일반삼)

擧 들 거 | 一 한 일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三 석 삼 |

한 가지를 들어서 세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매우 영리(怜悧ㆍ伶俐)함을 이르는 말


원래는 한 귀퉁이를 가리키면 나머지 세 귀퉁이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한 가지를 가르치면 세 가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거나 지혜가 있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가 말하였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릴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隅三 則不復也)."

공자는, 하나를 일러 주었음에도 나머지 셋을 미루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소용이 없고, 다만 그 셋을 알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거일반삼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와 같이 영리한 사람을 뜻하는 말에 '문일지십(聞一知十)'이 있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는데, 이 말은 '쇠귀에 경읽기'라는 뜻이다.


출전

論語(논어) 述而篇(술이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문일지십(聞一知十) |

반의어·상대어

우이독경(牛耳讀經)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鉅野洞庭 (거야동정)

鉅野洞庭(거야동정)

鉅 클 거 | 野 들 야 | 洞 골 동, 꿰뚫을 통 | 庭 뜰 정 |

거야(鋸野)는 태산(泰山) 동편에 있는 광야(廣野), 동정(洞庭)은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중국(中國) 제1(第一)의 호수(湖水)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居安思危 (거안사위)

居安思危(거안사위)

편안할 때에도 닥칠지 모를 위태로움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居安思危(거안사위) | 安不忘危(안불망위) |

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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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世皆濁 (거세개탁)

擧世皆濁(거세개탁)

擧 들 거 | 世 세상 세 | 皆 다 개 | 濁 흐릴 탁 |

온 세상이 다 흐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

'거세개탁'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漁父辭(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車水馬龍(거수마룡)

車水馬龍(거수마룡)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흐르는 물이나 길게 늘어진 용처럼 거마의 왕래가 잦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행차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한나라 명제의 비인 마후는 후한(後漢)의 장군 마원(馬援)의 딸로서 명제의 아들인 장제 때 황태후가 되었다. 장제는 마후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으나 황태후를 존중하고 마후의 외삼촌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는데, 간사한 신하들은 동의했으나 마후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후는 장제에게 "친정에 가니 외삼촌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하인들도 내 마부에 비길 수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얼마나 많은지 '수레는 물흐르는 듯하였으며 말은 용이 헤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車如流水馬如遊龍].' 그들의 사치함을 깨우쳐주지는 못하고 어찌 관작을 내리려고 합니까?"하고 말하였다.

마후의 말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수많은 수레와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면서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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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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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車水馬龍 (거수마용)

車水馬龍(거수마용)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후한서(後漢書) 명덕마황후기(明德馬皇后紀)에 실린 이야기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죽자 태자 유장(劉莊)이 보위를 이으니, 그가 곧 2대 황제인 명제(明帝)다. 동한(東漢)의 명장(名將)인 마원(馬援)의 딸은 한나라 명제(明帝)의 비(妃)로 뽑혀 입궁하였다가 얼마후에는 후(后)의 자리에 올랐다.

마황후는 어질고 덕성스런 여자였다. 명색이 황후이면서도 옷차림이나 생활 태도가 극히 검소하고, 상하 구별을 두지 않고 인자하게 대했으므로 사람들의 경모와 칭송이 자자했다.

마황후의 한 가지 흠결이라면 아들을 못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제는 후궁인 고씨(賈氏)한테서 난 아들을 태자로 삼아 마황후로 하여금 기르도록 했는데, 그녀는 이 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길렀다. 태자 역시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여겨 효행이 지극했다.

명제는 제위 18년 만에 죽고, 태자가 보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3대 황제 장제(章帝)다. 따라서 마황후는 자연히 황태후로 대궐의 가장 웃어른이 되어 권위가 막강했다.

일부 간신들은 황태후의 형제들을 제후에 봉해 줄 것을 황제에게 건의하여, 황태후에게 아부하려고 생각하였다. 이에 황태후 마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상(今上),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일찍이 광무 황제께서는 ‘후비(后妃)의 가족은 제후에 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셨지요. 그 뜻이 무엇이겠소? 황실 외척의 세력이 턱없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친정집에 인사차 찾아가는 손님들의 행렬을 보니, ‘수레는 흐르는 물 같고 말들은 늘어져 꿈틀대는 용처럼 보입디다[車如流水 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아부배들이 하는 소리는 절대 이 어미가 바라지도 허락하지도 않을 일이니 명심하세요.”

車水馬龍이란 권세있는 자에게 줄을 대보려는 아부꾼들의 차량 행렬을 묘사한 말이며, 수레들의 왕래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을 뜻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마후기(馬后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車如流水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

乞不竝行 (걸불병행)

乞不竝行(걸불병행)

구걸하는 사람은 같이 다니지 않는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청을 할때는 혼자서 가는 것이 이롭다는 뜻

乾木水生 (건목수생)

乾木水生(건목수생)

마른나무에서 물이 난다는 뜻.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무리하게 내라고 요구함을 비유한 말.

黔驢之技 (검려지기, Qiánlǘzhījì)

>黔驢之技(검려지기)

黔驴之技(Qiánlǘzhījì)

黔 검을 검,귀신 이름 금 | 驢 당나귀 려(여) | 之 갈 지 | 技 재주 기 |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


옛날 중국 검주(黔州:구이저우성의 별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나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이 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랐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수(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슬슬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나귀가 갑자기 소리 높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아무래도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였다. 호랑이는 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는 당나귀의 본성(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려 보았다.

그러자 당나귀는 화가 나서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다.

기술·기능이 졸렬함을 비유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가 보잘것없음을 모르고 나서거나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비유한 우화(寓話)로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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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戒(삼계) | 柳宗元(유종원) |

去頭截尾 (거두절미)

去頭截尾 (거두절미)

앞뒤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乾坤一擲 (건곤일척)

乾坤一擲

하늘 건 | 땅 곤 | 한 일 | 던질 척 |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루다. 곧 운명과 흥망을 걸고서 단번에 결판을 내는 것을 말한다.

唐(당)나라의 대문장가 韓愈(한유)가 鴻溝(홍구)를 건너다가 그 옛날 楚(초)나라 項羽(항우)와 漢(한)나라 劉邦(유방)이 이 江(강)을 경계로 하여 천하를 나누었던 일을 생각해내고 ‘홍구를 지나면서(過鴻溝)’란 七言絶句(칠언절구) 시 한 수를 읊었다. 홍구는 현재 河南省(하남성) 開封(개봉)서쪽을 흐르는 강.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용은 지치고 호랑이는 피곤하여 영토를 나누니
만천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데 누가 군왕의 말머리를 돌리도록 해서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 승부를 내게 했던고

첫 행의 용과 호랑이는 유방과 항우를 가리킨다.두 사람은 秦(진)나라를 무너뜨린 다음에는 서로가 천하를 독차지하려고 피나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진일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천하를 둘로 나누기로 하고 유방은 홍구에서 서쪽을, 항우는 동쪽을 차지하기로 했다.이렇게 되어 백성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두번째 행의 뜻.

셋째 행에서 유방의 말머리를 돌리게 한 사람은 참모 張良(장량)과 陳平(진평)이었다. 약속대로 항우는 동쪽으로 철수하고 유방도 철군하려하자 두 참모는 이렇게 진언했다. “지금 초나라 군사들은 지쳐있으며 식량도 떨어졌습니다. 초나라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이 말을 받아들여 서쪽으로 가려던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넷째 행대로 운명과 흥망을 건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승부로 천하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늘 | 땅 | 韓愈(한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