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顧草廬 (삼고초려, sāngùmáolú)

三顧草廬(삼고초려)

三顾茅庐(sāngùmáolú)


三 석 삼 | 顧 돌아볼 고 | 草 풀 초 | 廬 농막집 려,창 자루 로 |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軍師)로 초빙(招聘)한 데서 유래(由來)한 말로, ①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다라는 뜻 ②인재(人材)를 맞기 위(爲)해 참을성 있게 힘씀.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허송하며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 같은 용맹무쌍한 장수를 두고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가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유표의 부하인 채모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복룡인 제갈 량을 맞으러 관우·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찾아갔으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고, 그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제갈 량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초가집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고 있었으나, 유비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를 돕기로 결심하였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사이)라며 기뻐하였다. 훗날 제갈량은 《출사표(出師表)》에서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 "비천한 신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라고 감사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삼고지례는 유비가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제갈 량을 감복시켜 자신을 돕게 하였던 것처럼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하여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줄여서 삼고(三顧)라고도 하고,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참조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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