賈誼 (가의, Jiǎ Yì, BC 200~BC 168)

가의(賈誼, BC 200~BC 168)

異名: 贾谊(Jiǎ Yì)
국적: 전한(前漢)
활동분야: 정치 ·문인 ·학자
출생지: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최연소 박사가 된 중국 전한 문제 때의 문인 겸 학자. 진나라 때부터 내려온 율령 ·관제 ·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전한의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했다. 당시 고관들의 시기로 좌천되자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굴원(屈原)에 비유해 '복조부(鵩鳥賦)'와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었다.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출생.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여 문제의 총애를 받아 약관으로 최연소 박사가 되었다. 1년 만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어 진(秦)나라 때부터 내려온 율령·관제·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전한의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하였다.

그러나 주발(周勃) 등 당시 고관들의 시기로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굴원(屈原)에 비유하여 '복조부(鵩鳥賦)'와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었으며, '초사(楚辭)'에 수록된 '석서(惜誓)'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4년 뒤 복귀하여 문제의 막내아들 양왕(梁王)의 태부가 되었으나 왕이 낙마하여 급서하자 이를 애도한 나머지 1년 후 33세로 죽었다. 저서에 '신서(新書)' 10권이 있으며, 진(秦)의 멸망 원인을 추구한 '과진론(過秦論)'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

新書(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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