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夔 (강기, Jiāng Kuí, 1155~1221)

姜夔(강기, 1155~1221)

異名: 姜夔(Jiāng Kuí), 백석도인, 자 요장
국적: 중국 남송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요주 번양(지금의 장시성에 속함)
주요저서: 《백석도인시집》 《백석도인가곡》
주요작품: 〈양주만〉〈영롱사범〉


중국 남송 때의 시인이자 사인(詞人). 사(詞)에는 〈양주만(揚慢)〉등 시대를 영탄한 작품들과 자신의 괴로운 심사를 절실하게 담았다. 시에는 〈제야자석호귀초계(題夜自石湖歸苕溪)〉등의 칠언절구를 지어 자신의 방랑생활을 노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그밖에 시 이론에도 밝았다.


자는 요장(堯章)이며 백석도인(白石道人)이라고도 불린다. 요주(饒州) 번양(지금의 江西省에 속함) 출신이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라 한양(漢陽)에서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양주(揚州)·강회(江淮)·상주(湘州)·악주(鄂州)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30세 때 시인 소덕조(蕭德藻)와 친교를 맺었는데, 이후 강기는 소덕조에 의지하면서 호주(湖州:지금의 折江省에 속함)에 정착하였다.

강기는 다재다능하여 시사(詩詞) 이외에 서예에서도 일가를 이루었고, 음률에도 정통하였다. 그러나 과거시험에는 운이 없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문명(文名)을 널리 떨쳤으나 평생을 불우하게 보냈고 만년에는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살면서 궁색한 생활을 하였다. 죽은 뒤에는 장례를 치를 수도 없어서 친구였던 장라(張羅)가 주선하여 겨우 전당문(錢塘門) 밖에 안장할 수 있었다.

사(詞)에는 〈양주만(揚州慢)〉 등 시대를 영탄한 작품들과 자신의 괴로운 심사를 절실하게 담은 〈영롱사범(玲瓏四犯)〉 〈탐춘만(探春慢)〉 등이 있다. 강기의 사는 "성당(盛唐)의 이백과 두보와 같다"거나 "사인 중의 두보"라는 등의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 창작태도는 매우 엄정하고 근명하였으며, 예술적 조탁과 연마에 치중하는 편이었다.

강기의 시는 처음에는 강서시파(江西詩派)를 배웠지만 나중에는 당시(唐詩)의 영향을 받아 일가를 이루었다. 〈제야자석호귀초계(題夜自石湖歸苕溪)〉 〈호상우거잡영(湖上寓居雜詠)〉 등의 칠언절구는 자신의 방랑생활을 노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인데, 시구의 조탁이 정묘하고 시상이 그윽하며 운격이 청명하다.

시 이론에도 밝아 《백석도인시설(白石道人詩說)》에서는 선배들의 창작 경험을 흡수하고 자신의 창작이론도 수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백석도인시집(白石道人詩集)》 《백석도인가곡(白石道人歌曲)》 《백석시사집(白石詩詞集)》 등이 있으며, 시 180여 수와 사 80여 수가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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