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享其利(좌향기리)
坐享其利(zuò xiǎng qí lì)
坐 앉을 좌 | 享 누릴 향 | 其 그 기 | 利 이로울 리 |
'앉아서 이익을 누린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상대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병법(兵法)의 계책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병법서인 《병경백자(兵經百字)》의 〈연부(衍部)〉편에 "내가 조치하기 어려운 일은 남의 손을 빌릴 것이니, 반드시 몸소 행하지 않아도 앉아서 그 이익을 누릴 수 있다(己所難措, 假手於人, 不必親行, 坐享其利)"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병력이나 물자를 동원하지 않고 적을 이용하여 힘들이지 않고 군사적 이득을 취한다는 뜻이다.
《손자(孫子)》의 〈작전(作戰)〉편에도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자는 한 사람에게 두 번 군역을 징집하지 않고, 군량미를 세 번 실어 보급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은 적국에서 취하여 이용하고 적국의 식량을 군량미로 조달하므로 군대의 식량이 풍족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적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는 의미는 같다.
좌향기리는 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의 계책과 비슷하며,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는 어부지리(漁父之利:둘이 다투고 있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취함)와 의미가 비슷하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漁父之利(어부지리) | 坐享其利(좌향기리) | 坐享其成(좌향기성) | 借刀殺人(차도살인) |
坐享其成 (좌향기성, zuòxiǎngqíchéng)
坐享其成(좌향기성)
坐享其成(zuòxiǎngqíchéng)
坐 앉을 좌 | 享 누릴 향 | 其 그 기 | 成 이룰 성 |
가만히 앉아서 남이 고생 끝에 얻은 성과를 누린다는 한자성어.
가만히 앉은 채 남이 애써 이룩해 놓은 일을 가로채 누린다는 뜻으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먹는다'는 우리말 속담과 같은 말이다. 정작 수고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가로채 이익을 챙기는 격이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소오어지자장(所惡於智者章)'에 나온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이루어진 일은 순리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지혜 자체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우(禹)임금이 물을 트는 것처럼 한다면 미워할 것이 없다. 우임금이 물을 틀 때에는 흐름이 막히지 않는 데로 하였으니, 만약 지혜로운 사람 역시 지혜의 흐름이 막히지 않는 데로 한다면 그 지혜 또한 큰 것이다. 하늘은 높고 별은 멀리 있지만, 진실로 그 이루어진 일대로 추구한다면 천 년 뒤의 동지(冬至)라도 가만히 앉아서 가늠할 수 있다'(天地高也 星辰之遠也 苟求其故 千歲之日至 可坐而致也)."
'좌향기성'은 이 글 끝머리의 '가좌이치야(可坐而致也)'에서 취한 것이다. 원래는 가만히 앉아서도 능히 알 수 있다는 뜻이지만, 후대로 갈수록 의미에 변화가 생겨 남이 이룬 것을 가만히 앉아서 누린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漁父之利(어부지리) | 坐享其利(좌향기리) | 坐享其成(좌향기성) | 借刀殺人(차도살인) |
맹자, 孟子, 맹자:이루하, 孟子:離婁下
坐享其成(zuòxiǎngqíchéng)
坐 앉을 좌 | 享 누릴 향 | 其 그 기 | 成 이룰 성 |
가만히 앉아서 남이 고생 끝에 얻은 성과를 누린다는 한자성어.
가만히 앉은 채 남이 애써 이룩해 놓은 일을 가로채 누린다는 뜻으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먹는다'는 우리말 속담과 같은 말이다. 정작 수고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가로채 이익을 챙기는 격이다.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소오어지자장(所惡於智者章)'에 나온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이루어진 일은 순리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지혜 자체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우(禹)임금이 물을 트는 것처럼 한다면 미워할 것이 없다. 우임금이 물을 틀 때에는 흐름이 막히지 않는 데로 하였으니, 만약 지혜로운 사람 역시 지혜의 흐름이 막히지 않는 데로 한다면 그 지혜 또한 큰 것이다. 하늘은 높고 별은 멀리 있지만, 진실로 그 이루어진 일대로 추구한다면 천 년 뒤의 동지(冬至)라도 가만히 앉아서 가늠할 수 있다'(天地高也 星辰之遠也 苟求其故 千歲之日至 可坐而致也)."
'좌향기성'은 이 글 끝머리의 '가좌이치야(可坐而致也)'에서 취한 것이다. 원래는 가만히 앉아서도 능히 알 수 있다는 뜻이지만, 후대로 갈수록 의미에 변화가 생겨 남이 이룬 것을 가만히 앉아서 누린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漁父之利(어부지리) | 坐享其利(좌향기리) | 坐享其成(좌향기성) | 借刀殺人(차도살인) |
맹자, 孟子, 맹자:이루하, 孟子:離婁下
左衝右突 (좌충우돌)
左衝右突(좌충우돌)
左 왼 좌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右 오른쪽 우, 도울 우 | 突 갑자기 돌 |
①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부딪침 ②아무사람이나 구분(區分)하진 않고 함부로 맞딱뜨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左右衝突(좌우충돌) | 東衝西突(동충서돌) |
左 왼 좌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右 오른쪽 우, 도울 우 | 突 갑자기 돌 |
①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부딪침 ②아무사람이나 구분(區分)하진 않고 함부로 맞딱뜨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左右衝突(좌우충돌) | 東衝西突(동충서돌) |
坐井觀天 (좌정관천)
坐井觀天(좌정관천)
坐 앉을 좌 | 井 우물 정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①견문(見聞)이 매우 좁음을 말함②세상(世上) 물정(物情)을 너무 모름
sitting in the well, looking to the sky. a babe in the woods, a man of narrow views[limited outlook], a man of limited scope.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세상의 넓은 형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坐 앉을 좌 | 井 우물 정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①견문(見聞)이 매우 좁음을 말함②세상(世上) 물정(物情)을 너무 모름
sitting in the well, looking to the sky. a babe in the woods, a man of narrow views[limited outlook], a man of limited scope.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세상의 넓은 형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左氏傳 (좌씨전) 左丘明 (좌구명) 007 宣公 (선공)
左氏傳(좌씨전) 左丘明(좌구명)
文公(문공) 宣公(선공) 成公(성공)
《宣公元年》
春秋:
元年,春,王正月,公即位。公子遂如齊逆女,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
夏,季,孫行父如齊。晉放其大夫胥甲父于衛。公會齊侯于平州。公子遂如齊。六月,齊人取濟西田。
秋,邾子來朝。楚子,鄭人,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公,陳侯,衛侯,曹伯,會晉師于棐林,伐鄭。
冬,晉趙穿帥師侵崇。晉人,宋人,伐鄭。
宣公元年:
元年,春,王正月,公子遂如齊逆女,尊君命也,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尊夫人也。
夏,季文子如齊,納賂,以請會。
晉人討不用命者,放胥甲父于衛,而立胥克,先辛奔齊。會于平州,以定公位。
東門襄仲如齊拜成。
六月,齊人取濟西之田,為立公故,以賂齊也。
宋人之弒昭公也,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宋,宋及晉平,宋文公受盟于晉,又會諸侯于扈,將為魯討齊,皆取賂而還,鄭穆公曰,晉不足與也,遂受盟于楚,陳共公之卒,楚人不禮焉,陳靈公受盟于晉,秋,楚子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會于棐林,以伐鄭也,楚蒍賈救鄭,遇于北林,囚晉解揚,晉人乃還。
晉欲求成於秦,趙穿曰,我侵崇,秦急崇必救之,吾以求成焉,冬,趙穿侵崇,秦弗與成。晉人伐鄭,以報北林之役,於是晉侯侈,趙宣,子為政,驟諫而不入,故不競於楚。
《宣公二年》
春秋:
二年,春,王二月,壬子,宋華元帥師,及鄭公子歸生帥師,戰于大棘,宋師敗績,獲宋華元。秦師伐晉。
夏, 晉人,宋人,衛人,陳人,侵鄭。
秋,九月,乙丑,晉趙盾弒其君夷皋。
冬,十月,乙亥,天王崩。
宣公二年:
二年,春,鄭公子歸生受命于楚,伐宋,宋華元,樂呂,御之,二月,壬子,戰于大棘,宋師敗績,囚華元,獲樂呂,及甲車四百六十乘,俘二百五十人,馘百人,狂狡輅鄭人,鄭人入于井,倒戟而出之,獲狂狡,君子曰,失禮違命,宜其為禽也,戎昭果毅以聽之,之謂禮,殺敵為果,致果為毅,易之戮也,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及戰,曰,疇昔之羊,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與入鄭師,故敗,君子謂羊斟非人也,以其私憾,敗國殄民,於是刑孰大焉,詩所謂人之無良者,其羊斟之謂乎,殘民以逞。宋人以兵車百乘,文馬百駟,以贖華元于鄭,半入,華元逃歸,立于門外,告而入,見叔牂,曰,子之馬然也。對曰,非馬也,其人也,既合而來奔,宋城,華元為植,巡功,城者謳曰,睅其目,皤其腹,棄甲而復,于思于思,棄甲復來,使其驂乘,謂之曰,牛則有皮,犀兕尚多,棄甲則那。役人曰,從其有皮,丹漆若何?華元曰,去之,夫其口眾我寡。
秦師伐晉,以報崇也,遂圍焦,夏,晉趙盾救焦,遂自陰地,及諸侯之師侵鄭,以報大棘之役,楚鬥椒救鄭,曰,能欲諸侯而惡其難乎,遂次于鄭,以待晉師,趙盾曰,彼宗競于楚,殆將斃矣,姑益其疾,乃去之。晉靈公不君,厚斂以彫牆,從臺上彈人,而觀其辟丸也,宰夫胹熊蹯不熟,殺之,寘諸畚,使婦人載以過朝,趙盾,士季,見其手,問其故,而患之,將諫,士季曰,諫而不入,則莫之繼也,會請先,不入,則子繼之,三進及溜,而後視之,曰,吾知所過矣,將改之。稽首而對曰,人誰無過,過而能改,善莫大焉。《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夫如是,則能補過者鮮矣。君能有終,則社稷之固也,豈惟群臣賴之,又曰,袞職有闕,惟仲山甫補之,能補過也。君能補過,袞不廢矣。猶不改,宣子驟諫,公患之,使鉏麑賊之,晨往,寢門闢矣,盛服將朝,尚早,坐而假寐,麑退,歎而言曰,不忘恭敬,民之主也,賊民之主,不忠,棄君之命,不信,有一於此,不如死也,觸槐而死。
秋,九月,晉侯飲趙盾酒,伏甲將攻之,其右提彌明知之,趨登曰,臣侍君宴,過三爵,非禮也,遂扶以下,公嗾夫獒焉,明搏而殺之,盾曰,棄人用犬,雖猛何為,鬥且出,提彌明死之,初,宣子田於首山,舍于翳桑,見靈輒餓,問其病,曰,不食三日矣,食之,舍其半,問之。曰:宦三年矣,未知母之存否。今近焉,請以遺之,使盡之,而為之簞食與肉,寘諸橐以與之,既而與為公介,倒戟以禦公徒,而免之,問何故,對曰,翳桑之餓人也。問其名居,不告而退,遂自亡也。乙丑,趙穿攻靈公於桃園,宣子未出山而復,大史書曰,趙盾弒其君,以示於朝,宣子曰,不然,對曰,子為正卿,亡不越竟,反不討賊,非子而誰,宣子曰,嗚呼,我之懷矣,自詒伊慼,其我之謂矣。孔子曰: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趙宣子,古之良大夫也,為法受惡,惜也,越竟乃免,宣子使趙穿逆公子黑臀于周,而立之,壬申,朝于武宮。
初,麗姬之亂,詛無畜群公子,自是晉無公族,及成公即位,乃宦卿之適子,而為之田,以為公族,又宦其餘子,亦為餘子,其庶子為公行,晉於是有公族,餘子,公行,趙盾請以括為公族,曰,君姬氏之愛子也,微君姬氏,則臣狄人也,公許之,冬,趙盾為旄車之族,使屏季以其故族為公族大夫。
《宣公三年》
春秋:
三年,春,王正月,郊牛之口傷,改卜牛,牛死,乃不郊,猶三望。
葬匡王。楚子伐陸渾之戎。
夏,楚人侵鄭。
秋,赤狄侵齊。宋師圍曹。
冬,十月,丙戌,鄭伯蘭卒。葬鄭穆公。
宣公三年:
三年,春,不郊而望,皆非禮也,望,郊之屬也,不郊,亦無望可也。晉侯伐鄭,及郔,鄭及晉平,士會入盟。
楚子伐陸渾之戎,遂至于雒,觀兵于周疆,定王使王孫滿勞楚子,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對曰,在德不在鼎,昔夏之方有德也,遠方圖物,貢金九牧,鑄鼎象物,百物而為之備,使民知神姦,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螭魅罔兩,莫能逢之,用能協于上下,以承天休,桀有昏德,鼎遷于商,載祀六百,商紂暴虐,鼎遷于周,德之休明,雖小,重也,其姦回昏亂,雖大,輕也,天祚明德,有所底止,成王定鼎于郟鄏,卜世三十,卜年七百,天所命也,周德雖衰,天命未改,鼎之輕重,未可問也。
夏,楚人侵鄭,鄭即晉,故也。
宋文公即位三年,殺母弟須,及昭公子,武氏之謀也,使戴桓之族,攻武氏於司馬子伯之館,盡逐武穆之族,武穆之族,以曹師伐宋,秋,宋師圍曹,報武氏之亂也。
冬,鄭穆公卒,初,鄭文公有賤妾,曰燕姞,夢天使與己蘭,曰,余為伯鯈,余而祖也,以是為而子,以蘭有國香,人服媚之如是,既而文公見之,與之蘭而御之,辭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諾,生穆公,名之曰蘭,文公報鄭子之妃,曰陳媯,生子華,子臧,子臧得罪而出,誘子華而殺之南里,使盜殺子臧於陳宋之間,又娶于江,生公子士,朝于楚,楚人酖之,及葉而死,又娶于蘇,生子瑕,子俞彌,俞彌早卒,洩駕惡瑕,文公亦惡之,故不立也,公逐群公子,公子蘭奔晉,從晉文公伐鄭,石癸曰,吾聞姬姞耦,其子孫必蕃,姞,吉人也,后稷之元妃也,今公子蘭,姞甥也,天或啟之,必將為君,其後必蕃,先納之,可以亢寵,與孔將鉏,侯宣多,納之,盟于大宮,而立之,以與晉平,穆公有疾,曰,蘭死,吾其死乎,吾所以生也,刈蘭而卒。
《宣公四年》
春秋:
四年,春,王正月,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秦伯稻卒。
夏,六月,乙酉,鄭公子歸生弒其君夷。赤狄侵齊。
秋,公如齊,公至自齊。
冬,楚子伐鄭。
宣公四年:
四年,春,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非禮也,平國以禮,不以亂,伐而不治,亂也,以亂平亂,何治之有無治,何以行禮。
楚人獻黿於鄭靈公,公子宋,與子家將見,子公之食指動,以示子家,曰,他日我如此,必嘗異味,及入,宰夫將解黿,相視而笑,公問之,子家以告,及食大夫黿,召子公而弗與也,子公怒,染指於鼎,嘗之而出,公怒,欲殺子公,子公與子家謀先,子家曰,畜老猶憚殺之,而況君乎,反譖子家,子家懼而從之,夏弒靈公,書曰,鄭公子歸生弒其君夷,權不足也,君子曰,仁而不武,無能達也,凡弒君稱君,君無道也,稱臣,臣之罪也,鄭人立子良,辭曰,以賢則去疾不足,以順,則公子堅長,乃立襄公,襄公將去穆氏,而舍子良,子良不可曰,穆氏宜存,則固願也,若將亡之,則亦皆亡,去疾何為,乃舍之,皆為大夫。
初,楚司馬子良,生子越椒,子文曰,必殺之,是子也,熊虎之狀,而豺狼之聲,弗殺,必滅若敖氏矣,諺曰,狼子野心,是乃狼也,其可畜乎,子良不可,子文以為大慼,及將死,聚其族曰,椒也知政,乃速行矣,無及於難,且泣曰,鬼猶求食。若敖氏之鬼,不其餒而!及令尹子文卒,鬥般為令尹,子越為司馬,蒍賈為工正,譖子揚而殺之,子越為令尹,已為司馬,子越又惡之,乃以若敖氏之族,圄伯嬴於轑陽,而殺之,遂處烝野,將攻王,王以三王之子為質焉,弗受,師于漳澨,秋,七月,戊戌,楚子與若敖氏戰于皋滸,伯棼射王,汰輈,及鼓跗,著於丁寧,又射,汰輈,以貫笠轂,師懼,退,王使巡師曰,吾先君文王克息,獲三矢焉,伯棼竊其二,盡於是矣,鼓而進之,遂滅若敖氏,初,若敖娶於䢵,生鬥伯比,若敖卒,從其母畜於邧,淫於邧子之女,生子文焉,邧夫人使棄諸夢中,虎乳之,邧子田,見之,懼而歸,夫人以告,遂使收之。楚人謂乳穀,謂虎於菟。故命之曰鬥穀於菟,以其女妻伯比,實為令尹子文,其孫箴尹克黃,使於齊,還及宋,聞亂,其人曰,不可以人矣,箴尹曰,棄君之命,獨誰受之,君,天也,天可逃乎,遂歸復命,而自拘於司敗,王思子文之治楚國也,曰,子文無後,何以勸善,使復其所,改命曰生。
冬,楚子伐鄭,鄭未服也。
《宣公五年》
春秋:
五年,春,公如齊。
夏,公至自齊。
秋,九月,齊高固來逆叔姬。叔孫得臣卒。
冬,齊高固及子叔姬來。楚人伐鄭。
宣公五年:
五年,春,公如齊,高固使齊侯止公,請叔姬焉。
夏,公至自齊,書過也。
秋,九月,齊高固來逆女,自為也,故書曰,逆叔姬,即自逆也。
冬,來,反馬也。楚子伐鄭,陳及楚平,晉荀林父救鄭伐陳。
《宣公六年》
春秋:
六年,春,晉趙盾,衛孫免,侵陳。
夏,四月。
秋,八月,螽。
冬,十月。
宣公六年:
六年,春,晉衛侵陳,陳即楚故也。
夏,定王使子服求后于齊。
秋,赤狄伐晉,圍懷,及邢丘,晉侯欲伐之,中行桓子曰,使疾其民,以盈其貫,將可殪也,《周書》曰:殪戎殷,此類之謂也。
冬,召桓公逆王后于齊。楚人伐鄭,取成而還。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欲為卿伯廖告人曰,無德而貪,其在周易豐之離,弗過之矣,間一歲,鄭人殺之。
《宣公七年》
春秋:
七年,春,衛侯使孫良夫來盟。
夏,公會齊侯伐萊。
秋,公至自伐萊。大旱。
冬,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于黑壤。
宣公七年:
七年,春,衛孫桓子來盟,始通,且謀會晉也。
夏,公會齊侯伐萊,不與謀也,凡師出,與謀曰及,不與謀曰會。
赤狄侵晉,取向陰之禾。
鄭及晉平,公子宋之謀也,故相鄭伯以會,冬,盟于黑壤,王叔桓公臨之,以謀不睦。晉侯之立也,公不朝焉,又不使大夫聘晉人止公于會,盟于黃父,公不與盟,以賂免,故黑壤之盟不書,諱之也。
《宣公八年》
春秋:
八年,春,公至自會。
夏,六月,公子遂如齊,至黃,乃復。辛巳,有事于大廟,仲遂卒于垂,壬午,猶繹,萬入,去籥。戊子,夫人嬴氏薨。晉師,白狄,伐秦。楚人滅舒蓼。
秋,七月,甲子,日有食之,既。
冬,十月,己丑,葬我小君敬嬴,雨不克葬,庚寅,日中而克葬。城平陽。楚師伐陳。
宣公八年:
八年,春,白狄及晉平,
夏,會晉伐秦,晉人獲秦諜,殺諸絳市,六日而蘇。有事于大廟,襄仲卒而繹,非禮也。楚為眾舒叛故,伐舒蓼,滅之,楚子疆之。及滑汭,盟吳越而還。
晉胥克有蠱疾,郤缺為政,秋,廢胥克,使趙朔佐下軍。
冬,葬敬嬴,旱無麻,始用葛茀,雨不克葬,禮也,禮,卜葬先遠日,辟不懷也。城平陽,書時也。陳及晉平,楚師伐陳,取成而還。
《宣公九年》
春秋:
九年,春,王正月,公如齊,公至自齊。
夏,仲孫蔑如京師。齊侯伐萊。
秋,取根牟。八月,滕子卒。九月,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會于扈。晉荀林父帥師伐陳。辛酉,晉侯黑臀卒于扈。
冬,十月,癸酉,衛侯鄭卒。宋人圍滕。楚子伐鄭。晉郤缺帥師救鄭。陳殺其大夫洩冶。
宣公九年:
九年,春,王使來徵聘,
夏,孟獻子聘於周,王以為有禮,厚賄之。
秋,取根牟,言易也。滕昭公卒。會于扈,討不睦也,陳侯不會,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陳,晉侯卒于扈,乃還。
冬,宋人圍滕,因其喪也。陳靈公與孔寧,儀行父,通於夏姬,皆衷其衵服以戲于朝,洩冶諫曰,公卿宣淫,民無效焉,且聞不令,君其納之,公曰,吾能改矣,公告二子,二子請殺之,公弗禁,遂殺洩冶,孔子曰:“《詩》云:‘民之多辟,無自立辟’,其洩冶之謂乎。”楚子為厲之役故,伐鄭。晉郤缺救鄭,鄭伯敗楚師于柳棼,國人皆喜,唯子良憂,曰,是國之災也,吾死無日矣。
《宣公十年》
春秋:
十年,春,公如齊,公至自齊。齊人歸我濟西田。
夏,四月,丙辰,日有食之。己巳,齊侯元卒。齊崔氏出奔衛。公如齊,五月,公至自齊。癸巳,陳夏徵舒弒其君平國。六月,宋師伐滕。公孫歸父如齊。葬齊惠公,晉人,宋人,衛人,曹人,伐鄭。
秋,天王使王季子來聘。公孫歸父帥師伐邾,取繹。大水。季孫行父如齊。
冬,公孫歸父如齊,齊侯使國佐來聘。饑,楚子伐鄭。
宣公十年:
十年,春,公如齊,齊侯以我服故,歸濟西之田。
夏,齊惠公卒,崔杼有寵於惠公,高,國畏其偪也,公卒而逐之,奔衛,書曰,崔氏,非其罪也,且告以族,不以名,凡諸侯之大夫違,告於諸侯曰,某氏之守臣某,失守宗廟,敢告,所有玉帛之使者則告,不然則否。公如齊奔喪。陳靈公與孔寧,儀行父,飲酒於夏氏,公謂行父曰,徵舒似女,對曰,亦似君,徵舒病之,公出,自其廄射而殺之,二子奔楚。滕人恃晉而不事宋,六月,宋師伐滕。鄭及楚平,諸侯之師伐鄭,取成而還。
秋,劉康公來報聘。師伐邾,取繹。季文子初聘于齊。
冬子家如齊,伐邾故也,國武子來報聘。楚子伐鄭,晉士會救鄭,逐楚師于潁北,諸侯之師戍鄭,鄭子家卒,鄭人討幽公之亂,斲子家之棺而逐其族,改葬幽公,諡之曰靈。
《宣公十一年》
春秋:
十有一年,春,王正月。
夏,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公孫歸父會齊人伐莒。
秋,晉侯會狄于欑函。
冬,十月,楚人殺陳夏徵舒。丁亥,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
宣公十一年 :
十一年,春楚子伐鄭,及櫟,子良曰,晉楚不務德而兵爭,與其來者可也,晉楚無信,我焉得有信,乃從楚,
夏,楚盟于辰陵,陳鄭服也。楚左尹子重侵宋,王待諸郔。令尹蒍艾獵城沂,使封人慮事,以授司徒,量功命日,分財用,平板榦,稱畚築,程土物,議遠邇,略基趾,具餱糧,度有司,事三旬而成,不愆于素。
晉郤成子求成于眾狄,眾狄疾赤狄之役,遂服于晉,秋,會于欑函,眾狄服也,是行也,諸大夫欲召狄,郤成子曰,吾聞之,非德莫如勤,非勤何以求人,能勤有繼,其從之也,詩曰,文王既勤止,文王猶勤,況寡德乎。
冬,楚子為陳夏氏亂故,伐陳,謂陳人無動,將討於少西氏,遂入陳,殺夏徵舒,轘諸栗門,因縣陳,陳侯在晉,申叔時使於齊反,復命而退,王使讓之曰,夏徵舒為不道,弒其君,寡人以諸侯討而戮之,諸侯縣公皆慶寡人,女獨不慶寡人,何故,對曰,猶可辭乎,王曰,可哉,曰,夏徵舒弒其君,其罪大矣,討而戮之,君之義也,抑人亦有言曰,牽牛以蹊人之田,而奪之牛,牽牛以蹊者,信有罪矣,而奪之牛,罰已重矣,諸侯之從也,曰,討有罪也,今縣陳,貪其富也,以討召諸侯,而以貪歸之,無乃不可乎,王曰,善哉,吾未之聞也,反之,可乎,對曰,吾儕小人,所謂取諸其懷而與之也,乃復封陳,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故書曰,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書有禮也。厲之役,鄭伯逃歸,自是楚未得志焉,鄭既受盟于辰陵,又徼事于晉。
《宣公十二年》
春秋:
十有二年,春,葬陳靈公。楚子圍鄭。
夏,六月,乙卯,晉荀林父帥師及楚子戰于邲,晉師敗績。
秋,七月。
冬,十有二月,戊寅,楚子滅蕭。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清丘,宋師伐陳,衛人救陳。
宣公十二年: 十二年,春,楚子圍鄭,旬有七日,鄭人卜行成不吉,卜臨于大宮,且巷出車,吉,國人大臨,守陴者皆哭,楚子退師,鄭人脩城,進復圍之。三月,克之,入自皇門,至于逵路,鄭伯肉袒牽羊以逆,曰,孤不天,不能事君,使君懷怒,以及敝邑,孤之罪也,敢不唯命是聽。其俘諸江南,以實海濱,亦唯命,其翦以賜諸侯,使臣妾之,亦唯命,若惠顧前好,徼福於厲,宣,桓,武,不泯其社稷,使改事君,夷於九縣,君之惠也,孤之願也,非所敢望也,敢布腹心,君實圖之,左右曰,不可許也,得國無赦。王曰,其君能下人,必能信用其民矣,庸可幾乎,退三十里,而許之平,潘尪入盟,子良出質。
實,六月,晉師救鄭,荀林父將中軍,先縠佐之,士會將上軍,郤克佐之,趙朔將下軍,欒書佐之,趙括,趙嬰齊,為中軍大夫,鞏朔,韓穿,為上軍大夫,荀首,趙同,為下軍大夫,韓厥為司馬及河,聞鄭既及楚平,桓子欲還,曰,無及於鄭,而勦民,焉用之,楚歸而動,不後,隨武子曰,善,會聞用師觀釁而動,德,刑,政,事,典禮,不易,不可敵也,不為是征,楚軍討鄭,怒其貳而哀其卑,叛而伐之,服而舍之,德刑成矣,伐叛,刑也,柔服,德也,二者立矣,昔歲入陳,今茲入鄭,民不罷勞,君無怨讟,政有經矣,荊尸而舉,商農工賈,不敗其業。而卒乘輯睦,事不奸矣。薦敖為宰,擇楚國之令典,軍行,右轅,左追蓐,前茅慮無,中權,後勁,百官象物而動,軍政不戒而備,能用典矣,其君之舉也,內姓選於親,外姓選於舊,舉不失德,賞不失勞,老有加惠,旅有施舍,君子小人,物有服章,貴有常尊,賤有等威,禮不逆矣,德立刑行,政成事時,典從禮順,若之何敵之,見可而進,知難而退,軍之善政也,兼弱攻昧,武之善經也,子姑整軍而經武乎,猶有弱而昧者,何必楚,仲虺有言曰,取亂侮亡,兼弱也,汋曰,於鑠王師,遵養時晦,耆昧也,武曰,無競惟烈,撫弱耆昧,以務烈所,可也,彘子曰,不可,晉所以霸,師武臣力也,今失諸侯,不可謂力,有敵而不從,不可謂武,由我失霸,不如死。且成師以出,聞敵彊而退,非夫也。命有軍師,而卒以非夫,唯群子能,我弗為也,以中軍佐濟,知莊子曰,此師殆哉,周易有之,在師之臨曰,師出以律,否臧凶,執事順成為臧,逆為否,眾散為弱,川壅為澤,有律以如己也,故曰,律否臧,且律竭也,盈而以竭,夭且不整,所以凶也,不行謂之臨,有帥而不從,臨孰甚焉,此之謂矣,果遇必敗,彘子尸之,雖免而歸,必有大咎,韓獻子謂桓子曰,彘子以偏師陷,子罪大矣,子為元帥,師不用命,誰之罪也,失屬亡師,為罪已重,不如進也,事之不捷,惡有所分,與其專罪,六人同之,不猶愈乎,師遂濟,楚子北師次於郔,沈尹將中軍,子重將左,子反將右,將飲馬於河而歸,聞晉師既濟,王欲還,嬖人伍參欲戰,令尹孫叔敖弗欲,曰,昔歲入陳,今茲入鄭,不無事矣,戰而不捷,參之肉,其足食乎,參曰,若事之捷,孫叔為無謀矣,不捷,參之肉,將在晉軍,可得食乎,令尹南轅反旆,伍參言於王曰,晉之從政者新,未能行令,其佐先縠,剛愎不仁,未肯用命,其三帥者,專行不獲,聽而無上,眾誰適從,此行也,晉師必敗,且君而逃臣,若社稷何,王病之,告令尹,改乘轅而北之,次于管以待之,晉師在敖鄗之間,鄭皇戌使如晉師曰,鄭之從楚,社稷之故也,未有貳心,楚師驟勝而驕,其師老矣,而不設備,子擊之,鄭師為承,楚師必敗,彘子曰,敗楚服鄭,於此在矣,必許之。欒武子曰:楚自克庸以來,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于民生之不易,禍至之無日,戒懼之不可以怠。在軍,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于勝之不可保,紂之百克,而卒無後,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啟山林,箴之曰,民生在勤,勤則不匱,不可謂驕,先大夫子犯有言曰,師直為壯,曲為老,我則不德,而徼怨于楚,我曲楚直,不可謂老,其君之戎,分為二廣,廣有一卒,卒偏之兩,右廣初駕,數及日中,左則受之,以至于昏,內官序當其夜,以待不虞,不可謂無備,子良,鄭之良也,師叔,楚之崇也,師叔入盟,子良在楚,楚鄭親矣,來勸我戰,我克則來,不克遂往,以我卜也,鄭不可從,趙括,趙同,曰,率師以來,唯敵是求,克敵得屬,又何俟,必從彘子,知季曰,原屏,咎之徒也。趙莊子曰,欒伯,善哉,實其言,必長晉國,楚少宰如晉師。曰,寡君少遭閔凶,不能文,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將鄭是訓定,豈敢求罪于晉,二三子無淹久,隨季對曰,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與鄭夾輔周室,毋廢王命,今鄭不率,寡君使群臣問諸鄭,豈敢辱候人,敢拜君命之辱,彘子以為諂,使趙括從而更之曰,行人失辭,寡君使群臣遷大國之跡於鄭,曰,無辟敵,群臣無所逃命,楚子又使求成于晉,晉人許之,盟有日矣,楚許伯御樂伯,攝叔為右,以致晉師,許伯曰,吾聞致師者,御靡旌,摩壘而還,樂伯曰,吾聞致師者,左射以菆,代御執轡,御下兩馬,掉鞅而還,攝叔曰,吾聞致師者,右入壘,折馘,執俘而還,皆行其所聞而復,晉人逐之,左右角之,樂伯左射馬而右射人,角不能進,矢一而已。麋興於前,射麋麗龜。晉鮑癸當其後,使攝叔奉麋獻焉,曰,以歲之非時,獻禽之未至,敢膳諸從者,鮑癸止之曰,其左善射,其右有辭,君子也,既免,晉魏錡求,公族未得,而怒,欲敗晉師,請致師,弗許,請使,許之,遂往請戰而還,楚潘黨逐之,及熒澤,見六麋,射一麋以顧獻。曰:子有軍事,獸人無乃不給於鮮,敢獻於從者,叔黨命去之。趙旃求卿未得,且怒於失楚之致師者,請挑戰,弗許,請召盟,許之,與魏錡皆命而往,郤獻子曰,二憾往矣,弗備必敗,彘子曰,鄭人勸戰,弗敢從也,楚人求成,弗能好也,師無成命,多備何為,士季曰,備之善,若二子怒楚,楚人乘我,喪師無日矣,不如備之,楚之無惡,除備而盟,何損於好,若以惡來,有備不敗,且雖諸侯相見,軍衛不徹,警也,彘子不可,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故上軍不敗,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故敗而先濟,潘黨既逐魏錡,趙旃夜至於楚軍,席於軍門之外,使其徒入之,楚子為乘,廣三十乘,分為左右,右廣,雞鳴而駕,日中而說,左則受之,日入而說,許偃御右廣,養由基為右,彭名御左廣,屈蕩為右,乙卯,王乘左廣,以逐趙旃,趙旃棄車而走林,屈蕩搏之,得其甲裳,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使軘車逆之,潘黨望其塵,使騁而告曰,晉師至矣,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遂出陳,孫叔曰,進之,寧我薄人,無人薄我,詩云,元戎十乘,以先啟行,先人也,軍志曰,先人有奪人之心,薄之也。遂疾進師,車馳卒奔,乘晉軍。桓子不知所為,鼓於軍中,曰,先濟者有賞,中軍下軍爭舟,舟中之指可掬也,晉師右移,上軍未動,工尹齊,將右拒卒,以逐下軍,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曰,不穀不德而貪,以遇大敵,不穀之罪也,然楚不克,君之羞也,敢藉君靈,以濟楚師,使潘黨率游闕四十乘,從唐侯以為左拒,以從上軍,駒伯曰,待諸乎,隨季曰,楚師方壯,若萃於我,吾師必盡,不如收而去之,分謗生民,不亦可乎,殿其卒而退,不敗,王見右廣,將從之乘,屈蕩尸之曰,君以此始,亦必以終,自是楚之乘,廣先左,晉人或以廣隊,不能進,楚人惎之脫扃,少進,馬還,又惎之拔旆投衡,乃出,顧曰,吾不如大國之數奔也,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以他馬反,遇敵不能去,棄車而走林,逢大夫與其二子乘,謂其二子無顧,顧曰,趙傁在後,怒之,使下,指木曰,尸女於是,授趙旃綏以免,明日以表尸之,皆重獲在木下,楚熊負羈囚知罃,知莊子以其族反之,廚武子御,下軍之士多從之,每射,抽矢菆,納諸廚子之房,廚子怒曰,非子之求,而蒲之愛,董澤之蒲,可勝既乎,知季曰,不以人子,吾子其可得乎,吾不可以苟射故也,射連尹襄老,獲之,遂載其尸,射公子穀臣,囚之,以二者還,及昏,楚師軍於邲,晉之餘師不能軍,宵濟,亦終夜有聲,丙辰,楚重至於邲,遂次于衡雍,潘黨曰,君盍築武軍,而收晉尸以為京觀,臣聞克敵,必示子孫,以無忘武功,楚子曰,非爾所知也,夫文,止戈為武,武王克商,作頌曰,載戢干戈,載櫜弓矢,我求懿德,肆于時夏,允王保之,又作武,其卒章曰,耆定爾功,其三曰,鋪時繹思,我徂維求定,其六曰,綏萬邦,屢豐年,夫武,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眾,豐財,者也,故使子孫無忘其章,今我使二國暴骨,暴矣,觀兵以威諸侯,兵不戢矣,暴而不戢,安能保大,猶有晉在,焉得定功,所違民欲猶多,民何安焉,無德而強爭諸侯,何以和眾,利人之幾,而安人之亂,以為己榮,何以豐財,武有七德,我無一焉,何以示子孫,其為先君宮,告成事而已,武非吾功也,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乎有京觀,以懲淫慝,今罪無所,而民皆盡忠,以死君命,又何以為京觀乎,祀于河作先君宮,告成事而還。
是役也,鄭石制,實入楚師,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辛未,鄭殺僕叔及子服,君子曰,史佚所謂毋怙亂者,謂是類也,詩曰,亂離瘼矣,爰其適歸,歸於怙亂者也夫,鄭伯,許男,如楚,秋,晉師歸,桓子請死,晉侯欲許之,士貞子諫曰,不可,城濮之役,晉師三日穀,文公猶有憂色,左右曰,有喜而憂,如有憂而喜乎,公曰,得臣猶在,憂未歇也,困獸猶鬥,況國相乎,及楚殺子玉,公喜而後可知也,曰,莫余毒也已,是晉再克,而楚再敗也,楚是以再世不競,今天或者大警晉也,而又殺林父以重楚勝,其無乃久不競乎,林父之事君也,進思盡忠,退思補過,社稷之衛也,若之何殺之,夫其敗也,如日月之食焉,何損於明,晉侯使復其位。
冬,楚子伐蕭,宋華椒以蔡人救蕭,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王曰,勿殺,吾退,蕭人殺之,王怒,遂圍蕭,蕭潰,申公巫臣曰,師人多寒,王巡三軍,拊而勉之,三軍之士,皆如挾纊,遂傅於蕭,還無社與司馬卯言,號申叔展,叔展曰,有麥麴乎,曰,無,有山鞠窮乎,曰,無,河魚腹疾奈何,曰,目於眢井而拯之,若為茅絰,哭井則已,明日,蕭潰,申叔視其井,則茅絰存焉,號而出之。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清丘。曰,恤病討貳,於是卿不書,不實其言也,宋為盟故,伐陳,衛人救之。孔達曰,先君有約言焉,若大國討,我則死之。
《宣公十三年》
春秋:
十有三年,春,齊師伐莒。
夏,楚子伐宋。
秋,螽,冬,晉殺其大夫先縠。
宣公十三年:
十三年,春,齊師伐莒,莒恃晉而不事齊故也。
夏,楚子伐宋,以其救蕭也,君子曰,清丘之盟,唯宋可以免焉。
秋,赤狄伐晉,及清,先縠召之也。
冬,晉人討邲之敗,與清之師,歸罪於先縠而殺之,盡滅其族,君子曰,惡之來也,己則取之,其先縠之謂乎。 清丘之盟,晉以衛之救陳也,討焉,使人弗去,曰,罪無所歸,將加而師,孔達曰苟利社稷,請以我說,罪我之由,我則為政,而亢大國之討,將以誰任,我則死之。
《宣公十四年》
春秋:
十有四年,春,衛殺其大夫孔達,夏,五月,壬申,曹伯壽卒。晉侯伐鄭。
秋,九月,楚子圍宋。葬曹文公。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
宣公十四年: 十四年,春,孔達縊而死,衛人以說于晉,而免,遂告于諸侯曰,寡君有不令之臣達,構我敝邑于大國,既伏其罪矣,敢告,衛人以為成勞,復室其子,使復其位。
夏,晉侯伐鄭,為邲故也,告於諸侯,蒐焉而還,中行桓子之謀也,曰,示之以整,使謀而來,鄭人懼,使子張代子良于楚,鄭伯如楚,謀晉故也,鄭以子良為有禮,故召之。
楚子使申舟聘于齊,曰,無假道于宋,亦使公子馮聘于晉,不假道于鄭,申舟以孟諸之役惡宋,曰,鄭昭,宋聾,晉使不害,我則必死,王曰,殺女,我伐之。見犀而行。及宋,宋人止之,華元曰,過我而不假道,鄙我也,鄙我,亡也,殺其使者,必伐我,伐我,亦亡也,亡一也,乃殺之,楚子聞之,投袂而起,屨及於窒皇,劍及於寢門之外,車及於蒲胥之市,秋,九月,楚子圍宋。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見晏桓子,與之言魯樂,桓子告高宣子,曰,子家其亡乎,懷於魯矣,懷必貪,貪必謀人,謀人,人亦謀己,一國謀之,何以不亡。孟獻子言於公曰,臣聞小國之免於大國也,聘而獻物,於是有庭實旅百,朝而獻功,於是有容貌,采章,嘉淑,而有加貨,謀其不免也,誅而薦賄,則無及也,今楚在宋,君其圖之,公說。
《宣公十五年》
春秋:
十有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
夏,五月,宋人及楚人平。六月,癸卯,晉師滅赤狄潞氏,以潞子嬰兒歸。秦人伐晉。王札子殺召伯,毛伯。
秋螽。仲孫蔑,會齊高固于無婁。初稅畝。
冬,蝝生。饑。
宣公十五年:
十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宋人使樂嬰齊告急于晉,晉侯欲救之,伯宗曰,不可,古人有言曰,雖鞭之長,不及馬腹,天方授楚,未可與爭,雖晉之彊,能違天乎,諺曰,高下在心,川澤納汙,山藪藏疾,瑾瑜匿瑕,國君含垢,天之道也,君其待之,乃止,使解揚如宋,使無降楚,曰,晉師悉起,將至矣,鄭人囚而獻諸楚,楚子厚賂之,使反其言,不許,三而許之,登諸樓車,使呼宋而告之,遂致其君命,楚子將殺之,使與之言曰,爾既許不穀,而反之,何故,非我無信,女則棄之,速即爾刑,對曰,臣聞之,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信載義而行之為利,謀不失利,以衛社稷,民之主也,義無二信,信無二命,君之賂臣,不知命也,受命以出,有死無霣,又可賂乎,臣之許君,以成命也,死而成命,臣之祿也,寡君有信臣,下臣獲考,死又何求,楚子舍之以歸。
夏,五月,楚師將去宋,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王棄言焉,王不能荅,申叔時僕曰,築室反耕者,宋必聽命,從之,宋人懼,使華元夜入楚師,登子反之床,起之曰,寡君使元以病告,曰,敝邑易子而食,析骸以爨。雖然,城下之盟,有以國斃,不能從也,去我三十里,唯命是聽,子反懼,與之盟,而告王。退三十里,宋及楚平,華元為質。盟曰:我無爾詐,爾無我虞。
潞子嬰兒之夫人,晉景公之姊也,酆舒為政而殺之,又傷潞子之目,晉侯將伐之,諸大夫皆曰,不可,酆舒有三雋才,不如待後之人,伯宗曰,必伐之,狄有五罪,雋才雖多,何補焉,不祀,一也,耆酒,二也,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虐我伯姬,四也,傷其君目,五也,怙其雋才,而不以茂德,茲益罪也,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而申固其命,若之何待之,不討有罪,曰,將待後,後有辭而討焉,毋乃不可乎,夫恃才與眾,亡之道也,商紂由之故滅,天反時為災,地反物為妖,民反德為亂,亂則妖災生,故文反正為乏,盡在狄矣,晉侯從之,六月,癸卯,晉荀林父敗赤狄于曲梁,辛亥,滅潞,酆舒奔衛,衛人歸諸晉,晉人殺之。
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卒立召襄。
秋,七月,秦桓公伐晉,次于輔氏,壬午,晉侯治兵于稷,以略狄土,立黎侯而還,及雒,魏顆敗秦師于輔氏,獲杜回,秦之力人也,初,魏武子有嬖妾,無子,武子疾,命顆曰,必嫁是,疾病則曰,必以為殉,及卒,顆嫁之,曰,疾病則亂,吾從其治也,及輔氏之役,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杜回躓而顛,故獲之,夜夢之曰,余,而所嫁婦人之父也,爾用先人之治命,余是以報。
晉侯賞桓子狄臣千室,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吾獲狄土,子之功也,微子,吾喪伯氏矣,羊舌職說是賞也,曰,《周書》所謂庸庸祗祗者,謂此物也夫,士伯庸中行伯,君信之,亦庸士伯,此之謂明德矣,文王所以造周,不是過也,故《詩》曰:陳錫哉周,能施也,率是道也,其何不濟。
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不敬,劉康公曰,不及十年,原叔必有大咎,天奪之魄矣。
初,稅畝,非禮也,穀出不過藉,以豐財也。
冬蝝生,饑,幸之也。
《宣公十六年》
春秋:
十有六年,春,王正月,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
夏,成周宣榭火。
秋,郯伯姬來歸。
冬,大有年。
宣公十六年: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三月,獻狄俘晉侯,請于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為大傅,於是晉國之盜,逃奔于秦,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夏,成周宣榭火,人火之也,凡火,人火曰火,天火曰災。
秋,郯伯姬來歸,出也。
為毛召之難故,王室復亂,王孫蘇奔晉,晉人復之。
冬,晉侯使士會平王室,定王享之,原襄公相禮,殽烝,武子私問其故,王聞之,召武子曰,季氏,而弗聞乎,王享有體薦,晏有折俎,公當享,卿當宴,王室之禮也,武子歸而講求典禮,以脩晉國之法。
《宣公十七年》
春秋:
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許男錫我卒,丁未,蔡侯申卒。
夏,葬許昭公,葬蔡文公。六月,癸卯,日有食之。己未,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
秋,公至自會。
冬,十有一月,壬午,公弟叔肸卒。
宣公十七年:
十七年,春,晉侯使郤克徵會于齊,齊頃公帷婦人使觀之,郤子登,婦人笑於房。獻子怒,出而誓曰:“所不此報,無能涉河。”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齊,曰,不得齊事,無復命矣,郤子至,請伐齊,晉侯弗許,請以其私屬,又弗許,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及斂盂,高固逃歸,
夏,會于斷道,討貳也,盟于卷楚,辭齊人,晉人執晏弱于野王,執蔡朝于原,執南郭偃于溫,苗賁皇使,見晏桓子,歸言於晉侯曰,夫晏子何罪,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舉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齊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左右或沮之,曰,君不出,必執吾使,故高子及斂盂而逃,夫三子者曰,若絕君好,寧歸死焉,為是犯難而來,吾若善逆彼,以懷來者,吾又執之,以信齊沮,吾不既過矣乎,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晉人緩之,逸。
秋,八月,晉師還。
范武子將老,召文子曰,燮乎,吾聞之,喜怒以類者鮮,易者實多,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君子之喜怒,以已亂也,弗已者,必益之,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不然,余懼其益之也,余將老,使郤子逞其志,庶有豸乎,爾從二三子,唯敬,乃請老,郤獻子為政。
冬,公弟叔肸卒,公母弟也,凡大子之母,弟公在曰公子,不在曰弟,凡稱弟,皆母弟也。
《宣公十八年》
春秋:
十有八年,春,晉侯,衛世子臧,伐齊。公伐杞。
夏,四月。
秋,七月,邾人戕鄫子于鄫。甲戌,楚子旅卒。公孫歸父如晉。
冬,十月,壬戌,公薨于路寢。歸父還自晉,至笙,遂奔齊。
宣公十八年:
十八年,春,晉侯,衛大子臧,伐齊,至于陽穀,齊侯會晉侯盟于繒,以公子彊為質于晉,晉師還,蔡朝,南郭偃,逃歸。
夏,公使如楚乞師,欲以伐齊。
秋,邾人戕鄫子于鄫,凡自虐其君曰弒,自外曰戕。楚莊王卒,楚師不出,既而用晉師,楚於是乎有蜀之役。
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有寵,欲去三桓,以張公室,與公謀而聘于晉,欲以晉人去之,冬,公薨,季文子言於朝曰,使我殺適立庶,以失大援者,仲也夫,臧宣叔怒曰,當其時,不能治也,後之人何罪,子欲去之,許請去之,遂逐東門氏,子家還及笙,壇帷,復命於介,既復命,袒括髮,即位哭,三踊而出,遂奔齊,書曰,歸父還自晉,善之也。
文公(문공) 宣公(선공) 成公(성공)
《宣公元年》
春秋:
元年,春,王正月,公即位。公子遂如齊逆女,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
夏,季,孫行父如齊。晉放其大夫胥甲父于衛。公會齊侯于平州。公子遂如齊。六月,齊人取濟西田。
秋,邾子來朝。楚子,鄭人,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公,陳侯,衛侯,曹伯,會晉師于棐林,伐鄭。
冬,晉趙穿帥師侵崇。晉人,宋人,伐鄭。
宣公元年:
元年,春,王正月,公子遂如齊逆女,尊君命也,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尊夫人也。
夏,季文子如齊,納賂,以請會。
晉人討不用命者,放胥甲父于衛,而立胥克,先辛奔齊。會于平州,以定公位。
東門襄仲如齊拜成。
六月,齊人取濟西之田,為立公故,以賂齊也。
宋人之弒昭公也,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宋,宋及晉平,宋文公受盟于晉,又會諸侯于扈,將為魯討齊,皆取賂而還,鄭穆公曰,晉不足與也,遂受盟于楚,陳共公之卒,楚人不禮焉,陳靈公受盟于晉,秋,楚子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會于棐林,以伐鄭也,楚蒍賈救鄭,遇于北林,囚晉解揚,晉人乃還。
晉欲求成於秦,趙穿曰,我侵崇,秦急崇必救之,吾以求成焉,冬,趙穿侵崇,秦弗與成。晉人伐鄭,以報北林之役,於是晉侯侈,趙宣,子為政,驟諫而不入,故不競於楚。
《宣公二年》
春秋:
二年,春,王二月,壬子,宋華元帥師,及鄭公子歸生帥師,戰于大棘,宋師敗績,獲宋華元。秦師伐晉。
夏, 晉人,宋人,衛人,陳人,侵鄭。
秋,九月,乙丑,晉趙盾弒其君夷皋。
冬,十月,乙亥,天王崩。
宣公二年:
二年,春,鄭公子歸生受命于楚,伐宋,宋華元,樂呂,御之,二月,壬子,戰于大棘,宋師敗績,囚華元,獲樂呂,及甲車四百六十乘,俘二百五十人,馘百人,狂狡輅鄭人,鄭人入于井,倒戟而出之,獲狂狡,君子曰,失禮違命,宜其為禽也,戎昭果毅以聽之,之謂禮,殺敵為果,致果為毅,易之戮也,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及戰,曰,疇昔之羊,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與入鄭師,故敗,君子謂羊斟非人也,以其私憾,敗國殄民,於是刑孰大焉,詩所謂人之無良者,其羊斟之謂乎,殘民以逞。宋人以兵車百乘,文馬百駟,以贖華元于鄭,半入,華元逃歸,立于門外,告而入,見叔牂,曰,子之馬然也。對曰,非馬也,其人也,既合而來奔,宋城,華元為植,巡功,城者謳曰,睅其目,皤其腹,棄甲而復,于思于思,棄甲復來,使其驂乘,謂之曰,牛則有皮,犀兕尚多,棄甲則那。役人曰,從其有皮,丹漆若何?華元曰,去之,夫其口眾我寡。
秦師伐晉,以報崇也,遂圍焦,夏,晉趙盾救焦,遂自陰地,及諸侯之師侵鄭,以報大棘之役,楚鬥椒救鄭,曰,能欲諸侯而惡其難乎,遂次于鄭,以待晉師,趙盾曰,彼宗競于楚,殆將斃矣,姑益其疾,乃去之。晉靈公不君,厚斂以彫牆,從臺上彈人,而觀其辟丸也,宰夫胹熊蹯不熟,殺之,寘諸畚,使婦人載以過朝,趙盾,士季,見其手,問其故,而患之,將諫,士季曰,諫而不入,則莫之繼也,會請先,不入,則子繼之,三進及溜,而後視之,曰,吾知所過矣,將改之。稽首而對曰,人誰無過,過而能改,善莫大焉。《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夫如是,則能補過者鮮矣。君能有終,則社稷之固也,豈惟群臣賴之,又曰,袞職有闕,惟仲山甫補之,能補過也。君能補過,袞不廢矣。猶不改,宣子驟諫,公患之,使鉏麑賊之,晨往,寢門闢矣,盛服將朝,尚早,坐而假寐,麑退,歎而言曰,不忘恭敬,民之主也,賊民之主,不忠,棄君之命,不信,有一於此,不如死也,觸槐而死。
秋,九月,晉侯飲趙盾酒,伏甲將攻之,其右提彌明知之,趨登曰,臣侍君宴,過三爵,非禮也,遂扶以下,公嗾夫獒焉,明搏而殺之,盾曰,棄人用犬,雖猛何為,鬥且出,提彌明死之,初,宣子田於首山,舍于翳桑,見靈輒餓,問其病,曰,不食三日矣,食之,舍其半,問之。曰:宦三年矣,未知母之存否。今近焉,請以遺之,使盡之,而為之簞食與肉,寘諸橐以與之,既而與為公介,倒戟以禦公徒,而免之,問何故,對曰,翳桑之餓人也。問其名居,不告而退,遂自亡也。乙丑,趙穿攻靈公於桃園,宣子未出山而復,大史書曰,趙盾弒其君,以示於朝,宣子曰,不然,對曰,子為正卿,亡不越竟,反不討賊,非子而誰,宣子曰,嗚呼,我之懷矣,自詒伊慼,其我之謂矣。孔子曰: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趙宣子,古之良大夫也,為法受惡,惜也,越竟乃免,宣子使趙穿逆公子黑臀于周,而立之,壬申,朝于武宮。
初,麗姬之亂,詛無畜群公子,自是晉無公族,及成公即位,乃宦卿之適子,而為之田,以為公族,又宦其餘子,亦為餘子,其庶子為公行,晉於是有公族,餘子,公行,趙盾請以括為公族,曰,君姬氏之愛子也,微君姬氏,則臣狄人也,公許之,冬,趙盾為旄車之族,使屏季以其故族為公族大夫。
《宣公三年》
春秋:
三年,春,王正月,郊牛之口傷,改卜牛,牛死,乃不郊,猶三望。
葬匡王。楚子伐陸渾之戎。
夏,楚人侵鄭。
秋,赤狄侵齊。宋師圍曹。
冬,十月,丙戌,鄭伯蘭卒。葬鄭穆公。
宣公三年:
三年,春,不郊而望,皆非禮也,望,郊之屬也,不郊,亦無望可也。晉侯伐鄭,及郔,鄭及晉平,士會入盟。
楚子伐陸渾之戎,遂至于雒,觀兵于周疆,定王使王孫滿勞楚子,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對曰,在德不在鼎,昔夏之方有德也,遠方圖物,貢金九牧,鑄鼎象物,百物而為之備,使民知神姦,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螭魅罔兩,莫能逢之,用能協于上下,以承天休,桀有昏德,鼎遷于商,載祀六百,商紂暴虐,鼎遷于周,德之休明,雖小,重也,其姦回昏亂,雖大,輕也,天祚明德,有所底止,成王定鼎于郟鄏,卜世三十,卜年七百,天所命也,周德雖衰,天命未改,鼎之輕重,未可問也。
夏,楚人侵鄭,鄭即晉,故也。
宋文公即位三年,殺母弟須,及昭公子,武氏之謀也,使戴桓之族,攻武氏於司馬子伯之館,盡逐武穆之族,武穆之族,以曹師伐宋,秋,宋師圍曹,報武氏之亂也。
冬,鄭穆公卒,初,鄭文公有賤妾,曰燕姞,夢天使與己蘭,曰,余為伯鯈,余而祖也,以是為而子,以蘭有國香,人服媚之如是,既而文公見之,與之蘭而御之,辭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諾,生穆公,名之曰蘭,文公報鄭子之妃,曰陳媯,生子華,子臧,子臧得罪而出,誘子華而殺之南里,使盜殺子臧於陳宋之間,又娶于江,生公子士,朝于楚,楚人酖之,及葉而死,又娶于蘇,生子瑕,子俞彌,俞彌早卒,洩駕惡瑕,文公亦惡之,故不立也,公逐群公子,公子蘭奔晉,從晉文公伐鄭,石癸曰,吾聞姬姞耦,其子孫必蕃,姞,吉人也,后稷之元妃也,今公子蘭,姞甥也,天或啟之,必將為君,其後必蕃,先納之,可以亢寵,與孔將鉏,侯宣多,納之,盟于大宮,而立之,以與晉平,穆公有疾,曰,蘭死,吾其死乎,吾所以生也,刈蘭而卒。
《宣公四年》
春秋:
四年,春,王正月,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秦伯稻卒。
夏,六月,乙酉,鄭公子歸生弒其君夷。赤狄侵齊。
秋,公如齊,公至自齊。
冬,楚子伐鄭。
宣公四年:
四年,春,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非禮也,平國以禮,不以亂,伐而不治,亂也,以亂平亂,何治之有無治,何以行禮。
楚人獻黿於鄭靈公,公子宋,與子家將見,子公之食指動,以示子家,曰,他日我如此,必嘗異味,及入,宰夫將解黿,相視而笑,公問之,子家以告,及食大夫黿,召子公而弗與也,子公怒,染指於鼎,嘗之而出,公怒,欲殺子公,子公與子家謀先,子家曰,畜老猶憚殺之,而況君乎,反譖子家,子家懼而從之,夏弒靈公,書曰,鄭公子歸生弒其君夷,權不足也,君子曰,仁而不武,無能達也,凡弒君稱君,君無道也,稱臣,臣之罪也,鄭人立子良,辭曰,以賢則去疾不足,以順,則公子堅長,乃立襄公,襄公將去穆氏,而舍子良,子良不可曰,穆氏宜存,則固願也,若將亡之,則亦皆亡,去疾何為,乃舍之,皆為大夫。
初,楚司馬子良,生子越椒,子文曰,必殺之,是子也,熊虎之狀,而豺狼之聲,弗殺,必滅若敖氏矣,諺曰,狼子野心,是乃狼也,其可畜乎,子良不可,子文以為大慼,及將死,聚其族曰,椒也知政,乃速行矣,無及於難,且泣曰,鬼猶求食。若敖氏之鬼,不其餒而!及令尹子文卒,鬥般為令尹,子越為司馬,蒍賈為工正,譖子揚而殺之,子越為令尹,已為司馬,子越又惡之,乃以若敖氏之族,圄伯嬴於轑陽,而殺之,遂處烝野,將攻王,王以三王之子為質焉,弗受,師于漳澨,秋,七月,戊戌,楚子與若敖氏戰于皋滸,伯棼射王,汰輈,及鼓跗,著於丁寧,又射,汰輈,以貫笠轂,師懼,退,王使巡師曰,吾先君文王克息,獲三矢焉,伯棼竊其二,盡於是矣,鼓而進之,遂滅若敖氏,初,若敖娶於䢵,生鬥伯比,若敖卒,從其母畜於邧,淫於邧子之女,生子文焉,邧夫人使棄諸夢中,虎乳之,邧子田,見之,懼而歸,夫人以告,遂使收之。楚人謂乳穀,謂虎於菟。故命之曰鬥穀於菟,以其女妻伯比,實為令尹子文,其孫箴尹克黃,使於齊,還及宋,聞亂,其人曰,不可以人矣,箴尹曰,棄君之命,獨誰受之,君,天也,天可逃乎,遂歸復命,而自拘於司敗,王思子文之治楚國也,曰,子文無後,何以勸善,使復其所,改命曰生。
冬,楚子伐鄭,鄭未服也。
《宣公五年》
春秋:
五年,春,公如齊。
夏,公至自齊。
秋,九月,齊高固來逆叔姬。叔孫得臣卒。
冬,齊高固及子叔姬來。楚人伐鄭。
宣公五年:
五年,春,公如齊,高固使齊侯止公,請叔姬焉。
夏,公至自齊,書過也。
秋,九月,齊高固來逆女,自為也,故書曰,逆叔姬,即自逆也。
冬,來,反馬也。楚子伐鄭,陳及楚平,晉荀林父救鄭伐陳。
《宣公六年》
春秋:
六年,春,晉趙盾,衛孫免,侵陳。
夏,四月。
秋,八月,螽。
冬,十月。
宣公六年:
六年,春,晉衛侵陳,陳即楚故也。
夏,定王使子服求后于齊。
秋,赤狄伐晉,圍懷,及邢丘,晉侯欲伐之,中行桓子曰,使疾其民,以盈其貫,將可殪也,《周書》曰:殪戎殷,此類之謂也。
冬,召桓公逆王后于齊。楚人伐鄭,取成而還。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欲為卿伯廖告人曰,無德而貪,其在周易豐之離,弗過之矣,間一歲,鄭人殺之。
《宣公七年》
春秋:
七年,春,衛侯使孫良夫來盟。
夏,公會齊侯伐萊。
秋,公至自伐萊。大旱。
冬,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于黑壤。
宣公七年:
七年,春,衛孫桓子來盟,始通,且謀會晉也。
夏,公會齊侯伐萊,不與謀也,凡師出,與謀曰及,不與謀曰會。
赤狄侵晉,取向陰之禾。
鄭及晉平,公子宋之謀也,故相鄭伯以會,冬,盟于黑壤,王叔桓公臨之,以謀不睦。晉侯之立也,公不朝焉,又不使大夫聘晉人止公于會,盟于黃父,公不與盟,以賂免,故黑壤之盟不書,諱之也。
《宣公八年》
春秋:
八年,春,公至自會。
夏,六月,公子遂如齊,至黃,乃復。辛巳,有事于大廟,仲遂卒于垂,壬午,猶繹,萬入,去籥。戊子,夫人嬴氏薨。晉師,白狄,伐秦。楚人滅舒蓼。
秋,七月,甲子,日有食之,既。
冬,十月,己丑,葬我小君敬嬴,雨不克葬,庚寅,日中而克葬。城平陽。楚師伐陳。
宣公八年:
八年,春,白狄及晉平,
夏,會晉伐秦,晉人獲秦諜,殺諸絳市,六日而蘇。有事于大廟,襄仲卒而繹,非禮也。楚為眾舒叛故,伐舒蓼,滅之,楚子疆之。及滑汭,盟吳越而還。
晉胥克有蠱疾,郤缺為政,秋,廢胥克,使趙朔佐下軍。
冬,葬敬嬴,旱無麻,始用葛茀,雨不克葬,禮也,禮,卜葬先遠日,辟不懷也。城平陽,書時也。陳及晉平,楚師伐陳,取成而還。
《宣公九年》
春秋:
九年,春,王正月,公如齊,公至自齊。
夏,仲孫蔑如京師。齊侯伐萊。
秋,取根牟。八月,滕子卒。九月,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會于扈。晉荀林父帥師伐陳。辛酉,晉侯黑臀卒于扈。
冬,十月,癸酉,衛侯鄭卒。宋人圍滕。楚子伐鄭。晉郤缺帥師救鄭。陳殺其大夫洩冶。
宣公九年:
九年,春,王使來徵聘,
夏,孟獻子聘於周,王以為有禮,厚賄之。
秋,取根牟,言易也。滕昭公卒。會于扈,討不睦也,陳侯不會,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陳,晉侯卒于扈,乃還。
冬,宋人圍滕,因其喪也。陳靈公與孔寧,儀行父,通於夏姬,皆衷其衵服以戲于朝,洩冶諫曰,公卿宣淫,民無效焉,且聞不令,君其納之,公曰,吾能改矣,公告二子,二子請殺之,公弗禁,遂殺洩冶,孔子曰:“《詩》云:‘民之多辟,無自立辟’,其洩冶之謂乎。”楚子為厲之役故,伐鄭。晉郤缺救鄭,鄭伯敗楚師于柳棼,國人皆喜,唯子良憂,曰,是國之災也,吾死無日矣。
《宣公十年》
春秋:
十年,春,公如齊,公至自齊。齊人歸我濟西田。
夏,四月,丙辰,日有食之。己巳,齊侯元卒。齊崔氏出奔衛。公如齊,五月,公至自齊。癸巳,陳夏徵舒弒其君平國。六月,宋師伐滕。公孫歸父如齊。葬齊惠公,晉人,宋人,衛人,曹人,伐鄭。
秋,天王使王季子來聘。公孫歸父帥師伐邾,取繹。大水。季孫行父如齊。
冬,公孫歸父如齊,齊侯使國佐來聘。饑,楚子伐鄭。
宣公十年:
十年,春,公如齊,齊侯以我服故,歸濟西之田。
夏,齊惠公卒,崔杼有寵於惠公,高,國畏其偪也,公卒而逐之,奔衛,書曰,崔氏,非其罪也,且告以族,不以名,凡諸侯之大夫違,告於諸侯曰,某氏之守臣某,失守宗廟,敢告,所有玉帛之使者則告,不然則否。公如齊奔喪。陳靈公與孔寧,儀行父,飲酒於夏氏,公謂行父曰,徵舒似女,對曰,亦似君,徵舒病之,公出,自其廄射而殺之,二子奔楚。滕人恃晉而不事宋,六月,宋師伐滕。鄭及楚平,諸侯之師伐鄭,取成而還。
秋,劉康公來報聘。師伐邾,取繹。季文子初聘于齊。
冬子家如齊,伐邾故也,國武子來報聘。楚子伐鄭,晉士會救鄭,逐楚師于潁北,諸侯之師戍鄭,鄭子家卒,鄭人討幽公之亂,斲子家之棺而逐其族,改葬幽公,諡之曰靈。
《宣公十一年》
春秋:
十有一年,春,王正月。
夏,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公孫歸父會齊人伐莒。
秋,晉侯會狄于欑函。
冬,十月,楚人殺陳夏徵舒。丁亥,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
宣公十一年 :
十一年,春楚子伐鄭,及櫟,子良曰,晉楚不務德而兵爭,與其來者可也,晉楚無信,我焉得有信,乃從楚,
夏,楚盟于辰陵,陳鄭服也。楚左尹子重侵宋,王待諸郔。令尹蒍艾獵城沂,使封人慮事,以授司徒,量功命日,分財用,平板榦,稱畚築,程土物,議遠邇,略基趾,具餱糧,度有司,事三旬而成,不愆于素。
晉郤成子求成于眾狄,眾狄疾赤狄之役,遂服于晉,秋,會于欑函,眾狄服也,是行也,諸大夫欲召狄,郤成子曰,吾聞之,非德莫如勤,非勤何以求人,能勤有繼,其從之也,詩曰,文王既勤止,文王猶勤,況寡德乎。
冬,楚子為陳夏氏亂故,伐陳,謂陳人無動,將討於少西氏,遂入陳,殺夏徵舒,轘諸栗門,因縣陳,陳侯在晉,申叔時使於齊反,復命而退,王使讓之曰,夏徵舒為不道,弒其君,寡人以諸侯討而戮之,諸侯縣公皆慶寡人,女獨不慶寡人,何故,對曰,猶可辭乎,王曰,可哉,曰,夏徵舒弒其君,其罪大矣,討而戮之,君之義也,抑人亦有言曰,牽牛以蹊人之田,而奪之牛,牽牛以蹊者,信有罪矣,而奪之牛,罰已重矣,諸侯之從也,曰,討有罪也,今縣陳,貪其富也,以討召諸侯,而以貪歸之,無乃不可乎,王曰,善哉,吾未之聞也,反之,可乎,對曰,吾儕小人,所謂取諸其懷而與之也,乃復封陳,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故書曰,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書有禮也。厲之役,鄭伯逃歸,自是楚未得志焉,鄭既受盟于辰陵,又徼事于晉。
《宣公十二年》
春秋:
十有二年,春,葬陳靈公。楚子圍鄭。
夏,六月,乙卯,晉荀林父帥師及楚子戰于邲,晉師敗績。
秋,七月。
冬,十有二月,戊寅,楚子滅蕭。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清丘,宋師伐陳,衛人救陳。
宣公十二年: 十二年,春,楚子圍鄭,旬有七日,鄭人卜行成不吉,卜臨于大宮,且巷出車,吉,國人大臨,守陴者皆哭,楚子退師,鄭人脩城,進復圍之。三月,克之,入自皇門,至于逵路,鄭伯肉袒牽羊以逆,曰,孤不天,不能事君,使君懷怒,以及敝邑,孤之罪也,敢不唯命是聽。其俘諸江南,以實海濱,亦唯命,其翦以賜諸侯,使臣妾之,亦唯命,若惠顧前好,徼福於厲,宣,桓,武,不泯其社稷,使改事君,夷於九縣,君之惠也,孤之願也,非所敢望也,敢布腹心,君實圖之,左右曰,不可許也,得國無赦。王曰,其君能下人,必能信用其民矣,庸可幾乎,退三十里,而許之平,潘尪入盟,子良出質。
實,六月,晉師救鄭,荀林父將中軍,先縠佐之,士會將上軍,郤克佐之,趙朔將下軍,欒書佐之,趙括,趙嬰齊,為中軍大夫,鞏朔,韓穿,為上軍大夫,荀首,趙同,為下軍大夫,韓厥為司馬及河,聞鄭既及楚平,桓子欲還,曰,無及於鄭,而勦民,焉用之,楚歸而動,不後,隨武子曰,善,會聞用師觀釁而動,德,刑,政,事,典禮,不易,不可敵也,不為是征,楚軍討鄭,怒其貳而哀其卑,叛而伐之,服而舍之,德刑成矣,伐叛,刑也,柔服,德也,二者立矣,昔歲入陳,今茲入鄭,民不罷勞,君無怨讟,政有經矣,荊尸而舉,商農工賈,不敗其業。而卒乘輯睦,事不奸矣。薦敖為宰,擇楚國之令典,軍行,右轅,左追蓐,前茅慮無,中權,後勁,百官象物而動,軍政不戒而備,能用典矣,其君之舉也,內姓選於親,外姓選於舊,舉不失德,賞不失勞,老有加惠,旅有施舍,君子小人,物有服章,貴有常尊,賤有等威,禮不逆矣,德立刑行,政成事時,典從禮順,若之何敵之,見可而進,知難而退,軍之善政也,兼弱攻昧,武之善經也,子姑整軍而經武乎,猶有弱而昧者,何必楚,仲虺有言曰,取亂侮亡,兼弱也,汋曰,於鑠王師,遵養時晦,耆昧也,武曰,無競惟烈,撫弱耆昧,以務烈所,可也,彘子曰,不可,晉所以霸,師武臣力也,今失諸侯,不可謂力,有敵而不從,不可謂武,由我失霸,不如死。且成師以出,聞敵彊而退,非夫也。命有軍師,而卒以非夫,唯群子能,我弗為也,以中軍佐濟,知莊子曰,此師殆哉,周易有之,在師之臨曰,師出以律,否臧凶,執事順成為臧,逆為否,眾散為弱,川壅為澤,有律以如己也,故曰,律否臧,且律竭也,盈而以竭,夭且不整,所以凶也,不行謂之臨,有帥而不從,臨孰甚焉,此之謂矣,果遇必敗,彘子尸之,雖免而歸,必有大咎,韓獻子謂桓子曰,彘子以偏師陷,子罪大矣,子為元帥,師不用命,誰之罪也,失屬亡師,為罪已重,不如進也,事之不捷,惡有所分,與其專罪,六人同之,不猶愈乎,師遂濟,楚子北師次於郔,沈尹將中軍,子重將左,子反將右,將飲馬於河而歸,聞晉師既濟,王欲還,嬖人伍參欲戰,令尹孫叔敖弗欲,曰,昔歲入陳,今茲入鄭,不無事矣,戰而不捷,參之肉,其足食乎,參曰,若事之捷,孫叔為無謀矣,不捷,參之肉,將在晉軍,可得食乎,令尹南轅反旆,伍參言於王曰,晉之從政者新,未能行令,其佐先縠,剛愎不仁,未肯用命,其三帥者,專行不獲,聽而無上,眾誰適從,此行也,晉師必敗,且君而逃臣,若社稷何,王病之,告令尹,改乘轅而北之,次于管以待之,晉師在敖鄗之間,鄭皇戌使如晉師曰,鄭之從楚,社稷之故也,未有貳心,楚師驟勝而驕,其師老矣,而不設備,子擊之,鄭師為承,楚師必敗,彘子曰,敗楚服鄭,於此在矣,必許之。欒武子曰:楚自克庸以來,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于民生之不易,禍至之無日,戒懼之不可以怠。在軍,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于勝之不可保,紂之百克,而卒無後,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啟山林,箴之曰,民生在勤,勤則不匱,不可謂驕,先大夫子犯有言曰,師直為壯,曲為老,我則不德,而徼怨于楚,我曲楚直,不可謂老,其君之戎,分為二廣,廣有一卒,卒偏之兩,右廣初駕,數及日中,左則受之,以至于昏,內官序當其夜,以待不虞,不可謂無備,子良,鄭之良也,師叔,楚之崇也,師叔入盟,子良在楚,楚鄭親矣,來勸我戰,我克則來,不克遂往,以我卜也,鄭不可從,趙括,趙同,曰,率師以來,唯敵是求,克敵得屬,又何俟,必從彘子,知季曰,原屏,咎之徒也。趙莊子曰,欒伯,善哉,實其言,必長晉國,楚少宰如晉師。曰,寡君少遭閔凶,不能文,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將鄭是訓定,豈敢求罪于晉,二三子無淹久,隨季對曰,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與鄭夾輔周室,毋廢王命,今鄭不率,寡君使群臣問諸鄭,豈敢辱候人,敢拜君命之辱,彘子以為諂,使趙括從而更之曰,行人失辭,寡君使群臣遷大國之跡於鄭,曰,無辟敵,群臣無所逃命,楚子又使求成于晉,晉人許之,盟有日矣,楚許伯御樂伯,攝叔為右,以致晉師,許伯曰,吾聞致師者,御靡旌,摩壘而還,樂伯曰,吾聞致師者,左射以菆,代御執轡,御下兩馬,掉鞅而還,攝叔曰,吾聞致師者,右入壘,折馘,執俘而還,皆行其所聞而復,晉人逐之,左右角之,樂伯左射馬而右射人,角不能進,矢一而已。麋興於前,射麋麗龜。晉鮑癸當其後,使攝叔奉麋獻焉,曰,以歲之非時,獻禽之未至,敢膳諸從者,鮑癸止之曰,其左善射,其右有辭,君子也,既免,晉魏錡求,公族未得,而怒,欲敗晉師,請致師,弗許,請使,許之,遂往請戰而還,楚潘黨逐之,及熒澤,見六麋,射一麋以顧獻。曰:子有軍事,獸人無乃不給於鮮,敢獻於從者,叔黨命去之。趙旃求卿未得,且怒於失楚之致師者,請挑戰,弗許,請召盟,許之,與魏錡皆命而往,郤獻子曰,二憾往矣,弗備必敗,彘子曰,鄭人勸戰,弗敢從也,楚人求成,弗能好也,師無成命,多備何為,士季曰,備之善,若二子怒楚,楚人乘我,喪師無日矣,不如備之,楚之無惡,除備而盟,何損於好,若以惡來,有備不敗,且雖諸侯相見,軍衛不徹,警也,彘子不可,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故上軍不敗,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故敗而先濟,潘黨既逐魏錡,趙旃夜至於楚軍,席於軍門之外,使其徒入之,楚子為乘,廣三十乘,分為左右,右廣,雞鳴而駕,日中而說,左則受之,日入而說,許偃御右廣,養由基為右,彭名御左廣,屈蕩為右,乙卯,王乘左廣,以逐趙旃,趙旃棄車而走林,屈蕩搏之,得其甲裳,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使軘車逆之,潘黨望其塵,使騁而告曰,晉師至矣,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遂出陳,孫叔曰,進之,寧我薄人,無人薄我,詩云,元戎十乘,以先啟行,先人也,軍志曰,先人有奪人之心,薄之也。遂疾進師,車馳卒奔,乘晉軍。桓子不知所為,鼓於軍中,曰,先濟者有賞,中軍下軍爭舟,舟中之指可掬也,晉師右移,上軍未動,工尹齊,將右拒卒,以逐下軍,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曰,不穀不德而貪,以遇大敵,不穀之罪也,然楚不克,君之羞也,敢藉君靈,以濟楚師,使潘黨率游闕四十乘,從唐侯以為左拒,以從上軍,駒伯曰,待諸乎,隨季曰,楚師方壯,若萃於我,吾師必盡,不如收而去之,分謗生民,不亦可乎,殿其卒而退,不敗,王見右廣,將從之乘,屈蕩尸之曰,君以此始,亦必以終,自是楚之乘,廣先左,晉人或以廣隊,不能進,楚人惎之脫扃,少進,馬還,又惎之拔旆投衡,乃出,顧曰,吾不如大國之數奔也,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以他馬反,遇敵不能去,棄車而走林,逢大夫與其二子乘,謂其二子無顧,顧曰,趙傁在後,怒之,使下,指木曰,尸女於是,授趙旃綏以免,明日以表尸之,皆重獲在木下,楚熊負羈囚知罃,知莊子以其族反之,廚武子御,下軍之士多從之,每射,抽矢菆,納諸廚子之房,廚子怒曰,非子之求,而蒲之愛,董澤之蒲,可勝既乎,知季曰,不以人子,吾子其可得乎,吾不可以苟射故也,射連尹襄老,獲之,遂載其尸,射公子穀臣,囚之,以二者還,及昏,楚師軍於邲,晉之餘師不能軍,宵濟,亦終夜有聲,丙辰,楚重至於邲,遂次于衡雍,潘黨曰,君盍築武軍,而收晉尸以為京觀,臣聞克敵,必示子孫,以無忘武功,楚子曰,非爾所知也,夫文,止戈為武,武王克商,作頌曰,載戢干戈,載櫜弓矢,我求懿德,肆于時夏,允王保之,又作武,其卒章曰,耆定爾功,其三曰,鋪時繹思,我徂維求定,其六曰,綏萬邦,屢豐年,夫武,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眾,豐財,者也,故使子孫無忘其章,今我使二國暴骨,暴矣,觀兵以威諸侯,兵不戢矣,暴而不戢,安能保大,猶有晉在,焉得定功,所違民欲猶多,民何安焉,無德而強爭諸侯,何以和眾,利人之幾,而安人之亂,以為己榮,何以豐財,武有七德,我無一焉,何以示子孫,其為先君宮,告成事而已,武非吾功也,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乎有京觀,以懲淫慝,今罪無所,而民皆盡忠,以死君命,又何以為京觀乎,祀于河作先君宮,告成事而還。
是役也,鄭石制,實入楚師,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辛未,鄭殺僕叔及子服,君子曰,史佚所謂毋怙亂者,謂是類也,詩曰,亂離瘼矣,爰其適歸,歸於怙亂者也夫,鄭伯,許男,如楚,秋,晉師歸,桓子請死,晉侯欲許之,士貞子諫曰,不可,城濮之役,晉師三日穀,文公猶有憂色,左右曰,有喜而憂,如有憂而喜乎,公曰,得臣猶在,憂未歇也,困獸猶鬥,況國相乎,及楚殺子玉,公喜而後可知也,曰,莫余毒也已,是晉再克,而楚再敗也,楚是以再世不競,今天或者大警晉也,而又殺林父以重楚勝,其無乃久不競乎,林父之事君也,進思盡忠,退思補過,社稷之衛也,若之何殺之,夫其敗也,如日月之食焉,何損於明,晉侯使復其位。
冬,楚子伐蕭,宋華椒以蔡人救蕭,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王曰,勿殺,吾退,蕭人殺之,王怒,遂圍蕭,蕭潰,申公巫臣曰,師人多寒,王巡三軍,拊而勉之,三軍之士,皆如挾纊,遂傅於蕭,還無社與司馬卯言,號申叔展,叔展曰,有麥麴乎,曰,無,有山鞠窮乎,曰,無,河魚腹疾奈何,曰,目於眢井而拯之,若為茅絰,哭井則已,明日,蕭潰,申叔視其井,則茅絰存焉,號而出之。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清丘。曰,恤病討貳,於是卿不書,不實其言也,宋為盟故,伐陳,衛人救之。孔達曰,先君有約言焉,若大國討,我則死之。
《宣公十三年》
春秋:
十有三年,春,齊師伐莒。
夏,楚子伐宋。
秋,螽,冬,晉殺其大夫先縠。
宣公十三年:
十三年,春,齊師伐莒,莒恃晉而不事齊故也。
夏,楚子伐宋,以其救蕭也,君子曰,清丘之盟,唯宋可以免焉。
秋,赤狄伐晉,及清,先縠召之也。
冬,晉人討邲之敗,與清之師,歸罪於先縠而殺之,盡滅其族,君子曰,惡之來也,己則取之,其先縠之謂乎。 清丘之盟,晉以衛之救陳也,討焉,使人弗去,曰,罪無所歸,將加而師,孔達曰苟利社稷,請以我說,罪我之由,我則為政,而亢大國之討,將以誰任,我則死之。
《宣公十四年》
春秋:
十有四年,春,衛殺其大夫孔達,夏,五月,壬申,曹伯壽卒。晉侯伐鄭。
秋,九月,楚子圍宋。葬曹文公。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
宣公十四年: 十四年,春,孔達縊而死,衛人以說于晉,而免,遂告于諸侯曰,寡君有不令之臣達,構我敝邑于大國,既伏其罪矣,敢告,衛人以為成勞,復室其子,使復其位。
夏,晉侯伐鄭,為邲故也,告於諸侯,蒐焉而還,中行桓子之謀也,曰,示之以整,使謀而來,鄭人懼,使子張代子良于楚,鄭伯如楚,謀晉故也,鄭以子良為有禮,故召之。
楚子使申舟聘于齊,曰,無假道于宋,亦使公子馮聘于晉,不假道于鄭,申舟以孟諸之役惡宋,曰,鄭昭,宋聾,晉使不害,我則必死,王曰,殺女,我伐之。見犀而行。及宋,宋人止之,華元曰,過我而不假道,鄙我也,鄙我,亡也,殺其使者,必伐我,伐我,亦亡也,亡一也,乃殺之,楚子聞之,投袂而起,屨及於窒皇,劍及於寢門之外,車及於蒲胥之市,秋,九月,楚子圍宋。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見晏桓子,與之言魯樂,桓子告高宣子,曰,子家其亡乎,懷於魯矣,懷必貪,貪必謀人,謀人,人亦謀己,一國謀之,何以不亡。孟獻子言於公曰,臣聞小國之免於大國也,聘而獻物,於是有庭實旅百,朝而獻功,於是有容貌,采章,嘉淑,而有加貨,謀其不免也,誅而薦賄,則無及也,今楚在宋,君其圖之,公說。
《宣公十五年》
春秋:
十有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
夏,五月,宋人及楚人平。六月,癸卯,晉師滅赤狄潞氏,以潞子嬰兒歸。秦人伐晉。王札子殺召伯,毛伯。
秋螽。仲孫蔑,會齊高固于無婁。初稅畝。
冬,蝝生。饑。
宣公十五年:
十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宋人使樂嬰齊告急于晉,晉侯欲救之,伯宗曰,不可,古人有言曰,雖鞭之長,不及馬腹,天方授楚,未可與爭,雖晉之彊,能違天乎,諺曰,高下在心,川澤納汙,山藪藏疾,瑾瑜匿瑕,國君含垢,天之道也,君其待之,乃止,使解揚如宋,使無降楚,曰,晉師悉起,將至矣,鄭人囚而獻諸楚,楚子厚賂之,使反其言,不許,三而許之,登諸樓車,使呼宋而告之,遂致其君命,楚子將殺之,使與之言曰,爾既許不穀,而反之,何故,非我無信,女則棄之,速即爾刑,對曰,臣聞之,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信載義而行之為利,謀不失利,以衛社稷,民之主也,義無二信,信無二命,君之賂臣,不知命也,受命以出,有死無霣,又可賂乎,臣之許君,以成命也,死而成命,臣之祿也,寡君有信臣,下臣獲考,死又何求,楚子舍之以歸。
夏,五月,楚師將去宋,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王棄言焉,王不能荅,申叔時僕曰,築室反耕者,宋必聽命,從之,宋人懼,使華元夜入楚師,登子反之床,起之曰,寡君使元以病告,曰,敝邑易子而食,析骸以爨。雖然,城下之盟,有以國斃,不能從也,去我三十里,唯命是聽,子反懼,與之盟,而告王。退三十里,宋及楚平,華元為質。盟曰:我無爾詐,爾無我虞。
潞子嬰兒之夫人,晉景公之姊也,酆舒為政而殺之,又傷潞子之目,晉侯將伐之,諸大夫皆曰,不可,酆舒有三雋才,不如待後之人,伯宗曰,必伐之,狄有五罪,雋才雖多,何補焉,不祀,一也,耆酒,二也,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虐我伯姬,四也,傷其君目,五也,怙其雋才,而不以茂德,茲益罪也,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而申固其命,若之何待之,不討有罪,曰,將待後,後有辭而討焉,毋乃不可乎,夫恃才與眾,亡之道也,商紂由之故滅,天反時為災,地反物為妖,民反德為亂,亂則妖災生,故文反正為乏,盡在狄矣,晉侯從之,六月,癸卯,晉荀林父敗赤狄于曲梁,辛亥,滅潞,酆舒奔衛,衛人歸諸晉,晉人殺之。
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卒立召襄。
秋,七月,秦桓公伐晉,次于輔氏,壬午,晉侯治兵于稷,以略狄土,立黎侯而還,及雒,魏顆敗秦師于輔氏,獲杜回,秦之力人也,初,魏武子有嬖妾,無子,武子疾,命顆曰,必嫁是,疾病則曰,必以為殉,及卒,顆嫁之,曰,疾病則亂,吾從其治也,及輔氏之役,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杜回躓而顛,故獲之,夜夢之曰,余,而所嫁婦人之父也,爾用先人之治命,余是以報。
晉侯賞桓子狄臣千室,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吾獲狄土,子之功也,微子,吾喪伯氏矣,羊舌職說是賞也,曰,《周書》所謂庸庸祗祗者,謂此物也夫,士伯庸中行伯,君信之,亦庸士伯,此之謂明德矣,文王所以造周,不是過也,故《詩》曰:陳錫哉周,能施也,率是道也,其何不濟。
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不敬,劉康公曰,不及十年,原叔必有大咎,天奪之魄矣。
初,稅畝,非禮也,穀出不過藉,以豐財也。
冬蝝生,饑,幸之也。
《宣公十六年》
春秋:
十有六年,春,王正月,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
夏,成周宣榭火。
秋,郯伯姬來歸。
冬,大有年。
宣公十六年: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三月,獻狄俘晉侯,請于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為大傅,於是晉國之盜,逃奔于秦,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夏,成周宣榭火,人火之也,凡火,人火曰火,天火曰災。
秋,郯伯姬來歸,出也。
為毛召之難故,王室復亂,王孫蘇奔晉,晉人復之。
冬,晉侯使士會平王室,定王享之,原襄公相禮,殽烝,武子私問其故,王聞之,召武子曰,季氏,而弗聞乎,王享有體薦,晏有折俎,公當享,卿當宴,王室之禮也,武子歸而講求典禮,以脩晉國之法。
《宣公十七年》
春秋:
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許男錫我卒,丁未,蔡侯申卒。
夏,葬許昭公,葬蔡文公。六月,癸卯,日有食之。己未,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
秋,公至自會。
冬,十有一月,壬午,公弟叔肸卒。
宣公十七年:
十七年,春,晉侯使郤克徵會于齊,齊頃公帷婦人使觀之,郤子登,婦人笑於房。獻子怒,出而誓曰:“所不此報,無能涉河。”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齊,曰,不得齊事,無復命矣,郤子至,請伐齊,晉侯弗許,請以其私屬,又弗許,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及斂盂,高固逃歸,
夏,會于斷道,討貳也,盟于卷楚,辭齊人,晉人執晏弱于野王,執蔡朝于原,執南郭偃于溫,苗賁皇使,見晏桓子,歸言於晉侯曰,夫晏子何罪,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舉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齊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左右或沮之,曰,君不出,必執吾使,故高子及斂盂而逃,夫三子者曰,若絕君好,寧歸死焉,為是犯難而來,吾若善逆彼,以懷來者,吾又執之,以信齊沮,吾不既過矣乎,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晉人緩之,逸。
秋,八月,晉師還。
范武子將老,召文子曰,燮乎,吾聞之,喜怒以類者鮮,易者實多,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君子之喜怒,以已亂也,弗已者,必益之,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不然,余懼其益之也,余將老,使郤子逞其志,庶有豸乎,爾從二三子,唯敬,乃請老,郤獻子為政。
冬,公弟叔肸卒,公母弟也,凡大子之母,弟公在曰公子,不在曰弟,凡稱弟,皆母弟也。
《宣公十八年》
春秋:
十有八年,春,晉侯,衛世子臧,伐齊。公伐杞。
夏,四月。
秋,七月,邾人戕鄫子于鄫。甲戌,楚子旅卒。公孫歸父如晉。
冬,十月,壬戌,公薨于路寢。歸父還自晉,至笙,遂奔齊。
宣公十八年:
十八年,春,晉侯,衛大子臧,伐齊,至于陽穀,齊侯會晉侯盟于繒,以公子彊為質于晉,晉師還,蔡朝,南郭偃,逃歸。
夏,公使如楚乞師,欲以伐齊。
秋,邾人戕鄫子于鄫,凡自虐其君曰弒,自外曰戕。楚莊王卒,楚師不出,既而用晉師,楚於是乎有蜀之役。
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有寵,欲去三桓,以張公室,與公謀而聘于晉,欲以晉人去之,冬,公薨,季文子言於朝曰,使我殺適立庶,以失大援者,仲也夫,臧宣叔怒曰,當其時,不能治也,後之人何罪,子欲去之,許請去之,遂逐東門氏,子家還及笙,壇帷,復命於介,既復命,袒括髮,即位哭,三踊而出,遂奔齊,書曰,歸父還自晉,善之也。
左氏傳 (좌씨전) 左丘明 (좌구명)
左氏傳(좌씨전) 左丘明(좌구명)
異名:
左氏传(Zuǒshìchuán),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 左, 春秋傳
중국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左丘明(좌구명)'이 해석한 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이라고도 한다. BC 722∼BC 481년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국어(國語)'와 자매편이다. '춘추'와는 성질이 다른 별개의 저서로서,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과 함께 3전(三傳)의 하나이다. 원본은 전국시대에 되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 유흠(劉歆) 일파가 편찬한 것이다. 다른 2전(二傳)이 경문(經文)의 사구(辭句)에 대한 필법(筆法)을 설명한 것에 비하여 이 책은 경문에서 독립된 역사적인 이야기와 문장의 교묘함 및 인물묘사의 정확이라는 점 등에서 문학작품으로도 뛰어나 고전문의 모범이 된다.
구성 및 고사성어
01 隱公
02 桓公
03 莊公
04 閔公
05 僖公
06 文公
07 宣公(선공)
宣公三年 ∥ 魑魅魍魎(이매망량) |
08 成公
09 襄公
10 昭公
11 定公
12 哀公
참조
春秋(춘추) |
異名:
左氏传(Zuǒshìchuán),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 左, 春秋傳
중국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左丘明(좌구명)'이 해석한 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이라고도 한다. BC 722∼BC 481년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국어(國語)'와 자매편이다. '춘추'와는 성질이 다른 별개의 저서로서,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과 함께 3전(三傳)의 하나이다. 원본은 전국시대에 되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 유흠(劉歆) 일파가 편찬한 것이다. 다른 2전(二傳)이 경문(經文)의 사구(辭句)에 대한 필법(筆法)을 설명한 것에 비하여 이 책은 경문에서 독립된 역사적인 이야기와 문장의 교묘함 및 인물묘사의 정확이라는 점 등에서 문학작품으로도 뛰어나 고전문의 모범이 된다.
구성 및 고사성어
01 隱公
02 桓公
03 莊公
04 閔公
05 僖公
06 文公
07 宣公(선공)
宣公三年 ∥ 魑魅魍魎(이매망량) |
08 成公
09 襄公
10 昭公
11 定公
12 哀公
참조
春秋(춘추) |
左丘明 (좌구명, Zuǒ Qiūmíng)
左丘明(좌구명)
異名: 左丘明(Zuǒ Qiūmíng), 맹좌(盲左)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중국 산둥성[山東省]
주요저서: 左氏傳(좌씨전), 國語(국어,guóyǔ)
중국 춘추시대의 노(魯)나라 학자. 《좌씨전(左氏傳)》, 《국어(國語)》의 저자로 일컬어진다.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사마천(司馬遷)의 말에 의하여 후세 사람은 그를 가리켜 맹좌(盲左)라고도 한다.
산둥성[山東省] 출생. 공자(孔子)와 같은 무렵의 노(魯)나라 사람이다. 일설에 의하면 성이 좌구, 이름이 명이라고도 한다. 《좌씨전(左氏傳)》 《국어(國語)》의 저자로 일컬어진다. 《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篇)>에 “원망을 숨기고서 그 사람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기더니, 나도 또한 부끄러워 하노라”라는 공자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좌씨전》 좌씨에 결합되어 《좌씨전》의 저자라고 하게 된 것 같다.
한편 《논어》의 이 이야기에서 좌구명이 공자의 선배일 것이라며, 《논어》의 좌구명은 《좌씨전》의 저자가 아니라고 하는 의견도 나왔다. 후세에 이 두 가지 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론(議論)이 있는데 후자 쪽이 온당할 것으로 본다.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사마 천(司馬遷)의 말에 의하여 후세 사람은 그를 가리켜 맹좌(盲左)라고도 한다.
좌구명 관련 작품
國語(국어,guóyǔ)
左氏傳(좌씨전) (춘추좌씨전)
異名: 左丘明(Zuǒ Qiūmíng), 맹좌(盲左)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중국 산둥성[山東省]
주요저서: 左氏傳(좌씨전), 國語(국어,guóyǔ)
중국 춘추시대의 노(魯)나라 학자. 《좌씨전(左氏傳)》, 《국어(國語)》의 저자로 일컬어진다.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사마천(司馬遷)의 말에 의하여 후세 사람은 그를 가리켜 맹좌(盲左)라고도 한다.
산둥성[山東省] 출생. 공자(孔子)와 같은 무렵의 노(魯)나라 사람이다. 일설에 의하면 성이 좌구, 이름이 명이라고도 한다. 《좌씨전(左氏傳)》 《국어(國語)》의 저자로 일컬어진다. 《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篇)>에 “원망을 숨기고서 그 사람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기더니, 나도 또한 부끄러워 하노라”라는 공자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좌씨전》 좌씨에 결합되어 《좌씨전》의 저자라고 하게 된 것 같다.
한편 《논어》의 이 이야기에서 좌구명이 공자의 선배일 것이라며, 《논어》의 좌구명은 《좌씨전》의 저자가 아니라고 하는 의견도 나왔다. 후세에 이 두 가지 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론(議論)이 있는데 후자 쪽이 온당할 것으로 본다.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사마 천(司馬遷)의 말에 의하여 후세 사람은 그를 가리켜 맹좌(盲左)라고도 한다.
좌구명 관련 작품
國語(국어,guóyǔ)
左氏傳(좌씨전) (춘추좌씨전)
Location:
Shandong, China
左雇右眄 (좌고우면)
左雇右眄(좌고우면)
左 왼 좌 | 顧 돌아볼 고 | 右 오른쪽 우, 도울 우 | 眄 곁눈질할 면, 곁눈질할 묜 |
왼쪽을 둘러보고 오른쪽을 짝눈으로 자세(仔細)히 살핀다는 뜻으로 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얼른 결정(決定)을 짓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함. 중국 위(魏)나라의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
looking to left and right
좌우고면(左右顧眄)·우반좌고(右盼左顧)·좌우고시(左右顧視)·좌면우고(左眄右顧)라고도 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다. 오질은 자가 계중(季重)이며, 재능과 학식이 출중하여 위나라에서 진위장군(震威將軍)을 지냈고 열후(列侯)에 봉하여졌다.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술잔에 가득한 술이 앞에서 넘실거리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그대는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할 것이니, 한(漢) 고조(高祖)의 명신인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한 무제(武帝)의 명장인 위청(衛靑)과 곽거병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어찌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左顧右眄,謂若無人,豈非吾子壯志哉)."
조식은 이 글에서 오질이 문무를 겸비하고 기상이 출중하여 고금을 통틀어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찬미하였다. 이처럼 좌고우면은 원래 좌우를 살펴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 또는 어떤 일에 대한 고려가 지나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左右顧眄(좌우고면) | 左眄右顧(좌면우고) | 首鼠兩端(수서양단) |
左 왼 좌 | 顧 돌아볼 고 | 右 오른쪽 우, 도울 우 | 眄 곁눈질할 면, 곁눈질할 묜 |
왼쪽을 둘러보고 오른쪽을 짝눈으로 자세(仔細)히 살핀다는 뜻으로 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얼른 결정(決定)을 짓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함. 중국 위(魏)나라의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
looking to left and right
좌우고면(左右顧眄)·우반좌고(右盼左顧)·좌우고시(左右顧視)·좌면우고(左眄右顧)라고도 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다. 오질은 자가 계중(季重)이며, 재능과 학식이 출중하여 위나라에서 진위장군(震威將軍)을 지냈고 열후(列侯)에 봉하여졌다. 조식이 오질에게 보낸 편지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술잔에 가득한 술이 앞에서 넘실거리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그대는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할 것이니, 한(漢) 고조(高祖)의 명신인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한 무제(武帝)의 명장인 위청(衛靑)과 곽거병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어찌 그대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左顧右眄,謂若無人,豈非吾子壯志哉)."
조식은 이 글에서 오질이 문무를 겸비하고 기상이 출중하여 고금을 통틀어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찬미하였다. 이처럼 좌고우면은 원래 좌우를 살펴보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 또는 어떤 일에 대한 고려가 지나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左右顧眄(좌우고면) | 左眄右顧(좌면우고) | 首鼠兩端(수서양단) |
造化無窮 (조화무궁)
造化無窮(조화무궁)
造 지을 조 | 化 될 화, 잘못 와 | 無 없을 무 | 窮 다할 궁,궁할 궁 |
온 세상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고 죽게 하는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음.
造 지을 조 | 化 될 화, 잘못 와 | 無 없을 무 | 窮 다할 궁,궁할 궁 |
온 세상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고 죽게 하는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음.
調虎離山 (조호이산, diàohǔlíshān)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鳥足之血 (조족지혈)
鳥足之血(조족지혈)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足 발 족, 지나칠 주 | 之 갈 지 | 血 피 혈 |
새발의 피. ①극히 적은 분량(分量)을 말함 ②아주 적어서 비교(比較)가 안됨 ③물건(物件)이 아주 작은 것을 기리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滄海一粟(창해일속) | 蹄涔(제잠)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足 발 족, 지나칠 주 | 之 갈 지 | 血 피 혈 |
새발의 피. ①극히 적은 분량(分量)을 말함 ②아주 적어서 비교(比較)가 안됨 ③물건(物件)이 아주 작은 것을 기리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滄海一粟(창해일속) | 蹄涔(제잠)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曹操 (조조, Cáo Cāo, 155~220)
曹操(조조, 155~220)
異名: Cáo Cāo, 자 맹덕, 묘호 태조, 시호 무황제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
중국 삼국시대 위왕조(魏王朝)를 세운 장군. 황건란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 헌제를 옹립하였다. 화북 평정 후, 손권·유비의 연합군과 싸워 대패,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문학을 사랑하여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자 맹덕(孟德). 묘호(廟號)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패국(沛國)의 초(譙:安徽省 毫縣) 출생. 환관의 양자였으며 황건의 난(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었다.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200년 군벌의 최대 세력이었던 관동군의 맹주 원소를 관도(官渡)의 대전에서 격파하였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208년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 이후도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丞相), 213년 위공(魏公), 216년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뤄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를 재평가하는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曹操(조조) 관련 한시
卻東西門行(각동서문행)
短歌行(단가행)
異名: Cáo Cāo, 자 맹덕, 묘호 태조, 시호 무황제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
활동분야: 군사, 정치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
중국 삼국시대 위왕조(魏王朝)를 세운 장군. 황건란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 헌제를 옹립하였다. 화북 평정 후, 손권·유비의 연합군과 싸워 대패,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문학을 사랑하여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자 맹덕(孟德). 묘호(廟號)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패국(沛國)의 초(譙:安徽省 毫縣) 출생. 환관의 양자였으며 황건의 난(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었다.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200년 군벌의 최대 세력이었던 관동군의 맹주 원소를 관도(官渡)의 대전에서 격파하였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208년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 이후도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丞相), 213년 위공(魏公), 216년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뤄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를 재평가하는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曹操(조조) 관련 한시
卻東西門行(각동서문행)
短歌行(단가행)
助長 (조장)
助長(조장)
助 도울 조 | 長 길 장 |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출전
孟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拔苗助長(발묘조장) | 助長(조장) |
助 도울 조 | 長 길 장 |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출전
孟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拔苗助長(발묘조장) | 助長(조장) |
朝薺暮鹽 (조제모염)
朝薺暮鹽(조제모염)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薺 냉이 제 | 暮 저물 모 | 鹽 소금 염 |
아침에는 고사리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씹는다는 뜻으로, 몹시 곤궁(困窮)한 생활(生活)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전
송궁문(送窮文)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薺 냉이 제 | 暮 저물 모 | 鹽 소금 염 |
아침에는 고사리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씹는다는 뜻으로, 몹시 곤궁(困窮)한 생활(生活)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전
송궁문(送窮文)
礎潤張傘 (초윤장산)
礎潤張傘(초윤장산)
礎 주춧돌 초 | 潤 젖을 윤 | 張 펼 장 | 傘 우산 산 |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펼쳐라. 주춧돌이 젖어 있다면 결국은 비가 올 징조고, 그렇다면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상대의 작은 언행, 주변의 사소한 조짐에서 결과를 예측하라는 의미.
출전
손자병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礎 주춧돌 초 | 潤 젖을 윤 | 張 펼 장 | 傘 우산 산 |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펼쳐라. 주춧돌이 젖어 있다면 결국은 비가 올 징조고, 그렇다면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상대의 작은 언행, 주변의 사소한 조짐에서 결과를 예측하라는 의미.
출전
손자병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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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植 (조식, Cáo Zhí, 192~232)
조식 (曹植, 192~232)
異名: 曹植(Cáo Zhí), 자 자건(子建), 시호 사(思), 진사왕(陳思王)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魏)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주요저서: 《조자건집(曹子建集)》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칠보지시(七步之詩)》를 지었다.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주요 저서에는 《조자건집(曹子建集)》등이 있다.
자 자건(子建). 시호 사(思). 안후이성[安徽省] 출생. 마지막 봉지(封地:陳)에 의하여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린다. 위의 무제(武帝) 조(操)의 아들이며,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아우이다. 그들 세 사람을 삼조(三曹)라 하며, 함께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중심적 존재로서 ‘문학사상의 주공(周公)·공자(孔子)’라 칭송되었다. 맏형 비와 태자 계승문제로 암투하다가 29세 때 아버지가 죽고 형이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뒤, 시인 정의(丁儀) 등 그의 측근자들은 죽음을 당하였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는 거의 해마다 새 봉지에 옮겨 살도록 강요하였고, 그는 엄격한 감시하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어느 날 연회석상에서 형 문제가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사형)고 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콩을 삶기 위하여 콩대를 태우나니, 콩이 가마 속에서 소리 없이 우노라. 본디 한 뿌리에서 같이 태어났거늘 서로 괴롭히기가 어찌 이리 심한고(煮豆燃豆萁하니 豆在釜中泣이라 本是同根生으로 相煎何太急고)”라 읊어, 형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이 시가 바로 이름난 《칠보지시(七步之詩)》이다.
그는 공융(孔融)·진림(陳琳) 등 건안칠자(建安七子)들과 사귀어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위 ·진(晉)을 거쳐 당나라의 두보(杜甫)가 나오기까지, 그는 시인의 이상상(理想像)이기도 하였다.
작품에는 역경과 고난을 읊은 대표작 《증백마왕표칠수(贈白馬王彪七首)》와, 《기부시(棄婦詩)》 《칠애시(七哀詩)》 등이 있다. 그는 부(賦)·송(頌)·명(銘)·표(表) 등에도 능하였는데, 특히 《낙신부(洛神賦)》 《유사부(幽思賦)》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문집 《조자건집(曹子建集)》(10권)이 남아 있고, 그의 작품은 《문선(文選)》 《옥대신영집(玉臺新詠集)》 등에 수록되었다.
조식(曹植)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조식(曹植) 관련 고사성어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 才占八斗 (재점팔두, cáizhànbādǒu) | 七步之才 (칠보지재, qībùzhīcái) |
異名: 曹植(Cáo Zhí), 자 자건(子建), 시호 사(思), 진사왕(陳思王)
국적: 중국 삼국시대 위(魏)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주요저서: 《조자건집(曹子建集)》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칠보지시(七步之詩)》를 지었다.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주요 저서에는 《조자건집(曹子建集)》등이 있다.
자 자건(子建). 시호 사(思). 안후이성[安徽省] 출생. 마지막 봉지(封地:陳)에 의하여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린다. 위의 무제(武帝) 조(操)의 아들이며,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아우이다. 그들 세 사람을 삼조(三曹)라 하며, 함께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중심적 존재로서 ‘문학사상의 주공(周公)·공자(孔子)’라 칭송되었다. 맏형 비와 태자 계승문제로 암투하다가 29세 때 아버지가 죽고 형이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뒤, 시인 정의(丁儀) 등 그의 측근자들은 죽음을 당하였고, 그도 평생 정치적 위치가 불우하게 되었다.
그의 재주와 인품을 싫어한 문제는 거의 해마다 새 봉지에 옮겨 살도록 강요하였고, 그는 엄격한 감시하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지막 봉지인 진(陳)에서 죽었다. 어느 날 연회석상에서 형 문제가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사형)고 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콩을 삶기 위하여 콩대를 태우나니, 콩이 가마 속에서 소리 없이 우노라. 본디 한 뿌리에서 같이 태어났거늘 서로 괴롭히기가 어찌 이리 심한고(煮豆燃豆萁하니 豆在釜中泣이라 本是同根生으로 相煎何太急고)”라 읊어, 형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이 시가 바로 이름난 《칠보지시(七步之詩)》이다.
그는 공융(孔融)·진림(陳琳) 등 건안칠자(建安七子)들과 사귀어 당시의 문학적 중심을 이루었고, 오언시를 서정시로서 완성시켜 문학사상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위 ·진(晉)을 거쳐 당나라의 두보(杜甫)가 나오기까지, 그는 시인의 이상상(理想像)이기도 하였다.
작품에는 역경과 고난을 읊은 대표작 《증백마왕표칠수(贈白馬王彪七首)》와, 《기부시(棄婦詩)》 《칠애시(七哀詩)》 등이 있다. 그는 부(賦)·송(頌)·명(銘)·표(表) 등에도 능하였는데, 특히 《낙신부(洛神賦)》 《유사부(幽思賦)》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문집 《조자건집(曹子建集)》(10권)이 남아 있고, 그의 작품은 《문선(文選)》 《옥대신영집(玉臺新詠集)》 등에 수록되었다.
조식(曹植)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조식(曹植) 관련 고사성어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 才占八斗 (재점팔두, cáizhànbādǒu) | 七步之才 (칠보지재, qībùzhīcái) |
Location:
Anhuisheng, China
絶聖棄智民利百倍 (절성기지민리백배)
절성기지 민리백배 (絶聖棄智 民利百倍)
성인이 되기를 끊고 지혜롭기를 버려라. 그러면 백성들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9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4.html
성인이 되기를 끊고 지혜롭기를 버려라. 그러면 백성들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9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4.html
朝三暮四 (조삼모사, zhāosānmùsì)
朝三暮四(조삼모사)
朝三暮四(zhāosānmùsì)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三 석 삼 | 暮 저물 모 | 四 넉 사 |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
이는 '열자(列子) : 황제편(黄帝篇)'과 '莊子(장자) : 齊物論(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원숭이들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받거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받거나 총 7개를 받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도 4개를 먼저 받는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상대에게 설복당하고, 저공은 같은 개수를 주고도 원숭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삼모사는 눈앞의 이익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列子(열자):黃帝(황제) | 莊子(장자):齊物論(제물론) |
관련 한자어
동의어
朝三(조삼) |
유의어
朝秦暮楚(조진모초,zhāoqínmùchǔ) ① 아침에는 진(秦)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楚)나라를 섬기다. ② 줏대 없이 이쪽 저쪽에 빌붙다. 이랬다저랬다하다. 변덕스럽다. |
翻云覆雨(번운부우,fānyúnfùyǔ) ① 손바닥을 위로 하면 구름이 되고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으면 비가 된다. ② 이랬다저랬다하다. 농간을 부리다. |
반의어
始终不渝(시종불유,shǐzhōngbùyú)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
列子, 열자, 列子:黃帝, 열자:황제, 莊子, 장자, 莊子:齊物論, 장자:제물론 |
朝三暮四(zhāosānmùsì)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三 석 삼 | 暮 저물 모 | 四 넉 사 |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
이는 '열자(列子) : 황제편(黄帝篇)'과 '莊子(장자) : 齊物論(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원숭이들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받거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받거나 총 7개를 받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도 4개를 먼저 받는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상대에게 설복당하고, 저공은 같은 개수를 주고도 원숭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삼모사는 눈앞의 이익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列子(열자):黃帝(황제) | 莊子(장자):齊物論(제물론) |
관련 한자어
동의어
朝三(조삼) |
유의어
朝秦暮楚(조진모초,zhāoqínmùchǔ) ① 아침에는 진(秦)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楚)나라를 섬기다. ② 줏대 없이 이쪽 저쪽에 빌붙다. 이랬다저랬다하다. 변덕스럽다. |
翻云覆雨(번운부우,fānyúnfùyǔ) ① 손바닥을 위로 하면 구름이 되고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으면 비가 된다. ② 이랬다저랬다하다. 농간을 부리다. |
반의어
始终不渝(시종불유,shǐzhōngbùyú)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
列子, 열자, 列子:黃帝, 열자:황제, 莊子, 장자, 莊子:齊物論, 장자:제물론 |
趙飛燕 (조비연)
조비연(趙飛燕)
한나라 성양후였던 조임(趙臨)의 딸.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오름. 중국 전통의 미인상.
한(漢)나라 성황제(漢成帝)의 부인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올랐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였으나 '날으는 제비'라는 뜻의 별명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리었다. 갸날픈 몸매와 뛰어난 가무(歌舞)는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화에 의하면 황제가 호수에서 베푼 선상연(船上宴)에서 춤을 추던 도중 강풍이 불어 갸냘픈 몸이 바람에 날리자, 황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 물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고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추었다하여 '물 찬 제비 또는 날으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 임금이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는 오늘날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비연은 황제가 살아있는 10년간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황제가 죽자 탄핵되어 평민으로 전락하였고 이후 걸식으로 연명하다가 자살하였다. 오늘날 조비연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고 양귀비는 풍만한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가족관계
한 성제 [成帝, BC 52~BC 7]
조합덕/소의 조씨[趙合德 昭儀 趙氏] : 조비연의 여동생
시어머니 효원황후 왕정군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시
淸平調詞二首(청평조사2수)
李白(이백)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자성어
추선(秋扇) 추풍지선(秋風之扇)
한나라 성양후였던 조임(趙臨)의 딸.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오름. 중국 전통의 미인상.
한(漢)나라 성황제(漢成帝)의 부인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 효성황후(孝成皇后)까지 올랐다. 본명은 조의주(趙宜主) 였으나 '날으는 제비'라는 뜻의 별명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리었다. 갸날픈 몸매와 뛰어난 가무(歌舞)는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화에 의하면 황제가 호수에서 베푼 선상연(船上宴)에서 춤을 추던 도중 강풍이 불어 갸냘픈 몸이 바람에 날리자, 황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 물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고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추었다하여 '물 찬 제비 또는 날으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 임금이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는 오늘날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비연은 황제가 살아있는 10년간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황제가 죽자 탄핵되어 평민으로 전락하였고 이후 걸식으로 연명하다가 자살하였다. 오늘날 조비연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고 양귀비는 풍만한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가족관계
한 성제 [成帝, BC 52~BC 7]
조합덕/소의 조씨[趙合德 昭儀 趙氏] : 조비연의 여동생
시어머니 효원황후 왕정군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시
淸平調詞二首(청평조사2수)
李白(이백)
조비연(趙飛燕) 관련 한자성어
추선(秋扇) 추풍지선(秋風之扇)
朝不慮夕 (조불려석)
朝不慮夕(조불려석)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慮 생각할 려(여), 사실할 록(녹)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하여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삼국시대 촉(蜀)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위(魏)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 벼슬을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이에 이밀은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거나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간곡하게 사양하였다.
[인용]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不謀夕(조불모석) |
참조어
日薄西山(일박서산)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慮 생각할 려(여), 사실할 록(녹)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하여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삼국시대 촉(蜀)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위(魏)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 벼슬을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이에 이밀은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거나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간곡하게 사양하였다.
[인용]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不謀夕(조불모석) |
참조어
日薄西山(일박서산)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
從道不從君 (종도부종군)
從道不從君(종도부종군)
도를 따라야지 임금을 따르면 안된다
[출전]
「순자」 자도(子道):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순자」 신도(臣道): 傳曰, 從道不從君. 此之謂也.
도를 따라야지 임금을 따르면 안된다
[출전]
「순자」 자도(子道):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순자」 신도(臣道): 傳曰, 從道不從君. 此之謂也.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聞 들을 문 | 道 길 도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死 죽을 사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矣 어조사 의 |
아침에 천하(天下)가 올바른 정도(正道)로 행(行)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사람이 참된 이치(理致)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恨)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며, 짧은 인생(人生)을 값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意味)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의 대의(大意)는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죽음을 앞 둔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육체의 생명이 다함보다도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큼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는 공자 자신의 절실한 도의 추구라는 소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魏)나라의 하안(何晏)과 왕숙(王肅)은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의 탄식으로 해석하였다. 즉 인의(仁義)의 도덕이 올바르게 행하여지는 세상의 재현을 기대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위의 상황이 투영된 협의의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하여 주자(朱子)는, “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順)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의 토로로 해석하였다. 즉 공자는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학자 유보남(劉寶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어정의(論語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를 듣고도 갑자기 죽지 않고, 곧 습관에 따라 읊어서 장차 덕성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만일 불행하게도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면, 비록 이를 중도에 폐할지라도 그 듣는 것이 없음에 현명함이 멀고 심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聞夕死(조문석사)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聞 들을 문 | 道 길 도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死 죽을 사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矣 어조사 의 |
아침에 천하(天下)가 올바른 정도(正道)로 행(行)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사람이 참된 이치(理致)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恨)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며, 짧은 인생(人生)을 값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意味)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의 대의(大意)는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죽음을 앞 둔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육체의 생명이 다함보다도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큼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는 공자 자신의 절실한 도의 추구라는 소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魏)나라의 하안(何晏)과 왕숙(王肅)은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의 탄식으로 해석하였다. 즉 인의(仁義)의 도덕이 올바르게 행하여지는 세상의 재현을 기대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위의 상황이 투영된 협의의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하여 주자(朱子)는, “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順)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의 토로로 해석하였다. 즉 공자는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학자 유보남(劉寶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어정의(論語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를 듣고도 갑자기 죽지 않고, 곧 습관에 따라 읊어서 장차 덕성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만일 불행하게도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면, 비록 이를 중도에 폐할지라도 그 듣는 것이 없음에 현명함이 멀고 심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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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聞夕死(조문석사) |
存亡之秋 (존망지추)
存亡之秋(존망지추)
存 있을 존 | 亡 망할 망, 없을 무 | 之 갈 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존속(存續)하느냐 멸망(滅亡)하느냐의 중대한 때. 절박한 위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秋(가을)는 수확기라는 뜻에서 중요한 때를 가리킨다.
a crisis ((pl. crises)); a critical moment.
《문선(文選)》에 실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나온 말.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로 蜀漢(촉한)의 재상이 된 諸葛亮(제갈량)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잘것 없던 촉한을 일으켜 세워 魏(위) 吳(오)와 鼎立(정립)하는 삼국시대를 만들어낸다.
세월이 흘러 유비가 63세로 죽고 태자 劉禪(유선)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자질이 부족한데다 관우와 장비도 이미 죽은 촉한의 운명은 이제 제갈량의 두 어깨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後主(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前出師表(전출사표)」다. 이 출사표는 제갈량이 그의 충성심을 토로한 명문장인데 그 첫대목은 이렇게 되어있다.
『先帝(선제․유비)께서는 한실(漢室) 부흥의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아직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우리 益州(익주․촉한을 가리킴)는 피폐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 此誠危急 存亡之秋也。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그러나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결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해 다시 원정길에 올랐으나 五丈原(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촉한은 그 뒤 몇년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存亡之機(존망지기) | 危急存亡之秋(위급존망지추) |
存 있을 존 | 亡 망할 망, 없을 무 | 之 갈 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존속(存續)하느냐 멸망(滅亡)하느냐의 중대한 때. 절박한 위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秋(가을)는 수확기라는 뜻에서 중요한 때를 가리킨다.
a crisis ((pl. crises)); a critical moment.
《문선(文選)》에 실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나온 말.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로 蜀漢(촉한)의 재상이 된 諸葛亮(제갈량)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잘것 없던 촉한을 일으켜 세워 魏(위) 吳(오)와 鼎立(정립)하는 삼국시대를 만들어낸다.
세월이 흘러 유비가 63세로 죽고 태자 劉禪(유선)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자질이 부족한데다 관우와 장비도 이미 죽은 촉한의 운명은 이제 제갈량의 두 어깨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後主(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前出師表(전출사표)」다. 이 출사표는 제갈량이 그의 충성심을 토로한 명문장인데 그 첫대목은 이렇게 되어있다.
『先帝(선제․유비)께서는 한실(漢室) 부흥의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아직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우리 益州(익주․촉한을 가리킴)는 피폐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 此誠危急 存亡之秋也。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그러나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결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해 다시 원정길에 올랐으나 五丈原(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촉한은 그 뒤 몇년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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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亡之機(존망지기) | 危急存亡之秋(위급존망지추) |
朝令暮改 (조령모개, zhāolìngmùgǎi)
朝令暮改(조령모개)
朝令暮改(zhāolìngmùgǎi)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令 하여금 령(영) | 暮 저물 모 | 改 고칠 개 |
아침에 명령(命令)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①법령(法令)의 개정(改定)이 너무 빈번(頻煩)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租稅)를 부과(賦課)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to issue an order in the morning and change it in the evening—to make changes in policy at will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夕改(조령석개,zhāolìngxīgǎi) | 朝改暮變(조개모변) | 作心三日(작심삼일) |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
朝令暮改(zhāolìngmùgǎi)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令 하여금 령(영) | 暮 저물 모 | 改 고칠 개 |
아침에 명령(命令)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①법령(法令)의 개정(改定)이 너무 빈번(頻煩)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租稅)를 부과(賦課)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to issue an order in the morning and change it in the evening—to make changes in policy at will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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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夕改(조령석개,zhāolìngxīgǎi) | 朝改暮變(조개모변) | 作心三日(작심삼일) |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
终南捷径 (종남첩경, Zhōngnánjiéjìng)
终南捷徑(종남첩경)
终南捷径(Zhōngnánjiéjìng)
终 마칠 종 | 南 남녘 남, 나무 나 | 捷 빠를 첩, 이길 첩, 꽂을 삽 | 徑 지름길 경, 길 경 |
종남산(終南山)이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쉽게 벼슬하는 길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 노장용(盧藏用)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시(詩)와 부(賦)에 뛰어났다. 그는 진사에 합격했지만,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조정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곧 당시의 수도인 장안(長安) 근처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대하여 명리에 초연하고 학문이 높은 고매한 선비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그러한 은자를 초빙하여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노장용은 은자로 행세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었다.
그 무렵 천대산(天臺山)에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도사(道士)가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은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한번은 사마승정이 또 황제의 부름을 받아 하산하였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장안에 며칠 머문 뒤 종남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여 성 밖으로 나왔다가 종남산을 가리키며 "참으로 훌륭한 정취가 있는 산입니다[此中大有嘉處]"라고 말하였다.
노장용의 말에는 종남산도 은거하기에 좋은 곳인데, 멀리 있는 천대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사마승정은 차갑게 웃으며 "내가 보기에는 종남산은 단지 관리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오[以僕觀之, 仕宦捷徑耳]"라고 대꾸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장용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이 고사는 《신당서(新唐書)》의 노장용전(盧藏用傳)과 도교 서적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종남첩경은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노장용의 예에서 보듯이,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신당서·노장용전(新唐書·盧藏用傳) |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終南捷徑(종남첩경) | 終南捷經(종남첩경) |
终南捷径(Zhōngnánjiéjìng)
终 마칠 종 | 南 남녘 남, 나무 나 | 捷 빠를 첩, 이길 첩, 꽂을 삽 | 徑 지름길 경, 길 경 |
종남산(終南山)이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쉽게 벼슬하는 길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 노장용(盧藏用)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시(詩)와 부(賦)에 뛰어났다. 그는 진사에 합격했지만,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조정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곧 당시의 수도인 장안(長安) 근처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대하여 명리에 초연하고 학문이 높은 고매한 선비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그러한 은자를 초빙하여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노장용은 은자로 행세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었다.
그 무렵 천대산(天臺山)에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도사(道士)가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은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한번은 사마승정이 또 황제의 부름을 받아 하산하였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장안에 며칠 머문 뒤 종남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여 성 밖으로 나왔다가 종남산을 가리키며 "참으로 훌륭한 정취가 있는 산입니다[此中大有嘉處]"라고 말하였다.
노장용의 말에는 종남산도 은거하기에 좋은 곳인데, 멀리 있는 천대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사마승정은 차갑게 웃으며 "내가 보기에는 종남산은 단지 관리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오[以僕觀之, 仕宦捷徑耳]"라고 대꾸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장용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이 고사는 《신당서(新唐書)》의 노장용전(盧藏用傳)과 도교 서적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종남첩경은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노장용의 예에서 보듯이,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신당서·노장용전(新唐書·盧藏用傳) |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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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南捷徑(종남첩경) | 終南捷經(종남첩경) |
糟糠之妻 (조강지처)
糟糠之妻(조강지처)
糟糠之妻(zāokāngzhīqī)
糟 지게미 조 | 糠 겨 강 | 之 갈 지 | 妻 아내 처 |
지게미와 겨를 먹고 함께 고생한 아내라는 뜻란 뜻으로, 곤궁(困窮)할 때부터 간고(艱苦)를 함께 겪은 본처(本妻)를 흔히 일컬음
중국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관리로서 뇌물을 받은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임용하는 관리들은 모두 宋弘(송홍)과 같이 淸廉潔白(청렴결백)한 신하들이었다. 온후하고 강직한 송홍(宋弘)은 건무(建武) 2년에 대사공(大司空)에 임명되었다.
어느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신하(臣下)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호양공주는 송홍을 칭찬(稱讚)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德行)과 재능을 따를 만한 신하(臣下)가 없습니다."
그러자 광무제는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조처해 보겠습니다."하고 약속했다.
그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그러자 송홍은 지체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조강지처는 광무제가 송홍의 갸륵한 뜻을 알아채고 누님에게 '마음을 달리먹으라'고 말하였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糟糠(조강) |
糟糠之妻(zāokāngzhīqī)
糟 지게미 조 | 糠 겨 강 | 之 갈 지 | 妻 아내 처 |
지게미와 겨를 먹고 함께 고생한 아내라는 뜻란 뜻으로, 곤궁(困窮)할 때부터 간고(艱苦)를 함께 겪은 본처(本妻)를 흔히 일컬음
중국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관리로서 뇌물을 받은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임용하는 관리들은 모두 宋弘(송홍)과 같이 淸廉潔白(청렴결백)한 신하들이었다. 온후하고 강직한 송홍(宋弘)은 건무(建武) 2년에 대사공(大司空)에 임명되었다.
어느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신하(臣下)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호양공주는 송홍을 칭찬(稱讚)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德行)과 재능을 따를 만한 신하(臣下)가 없습니다."
그러자 광무제는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조처해 보겠습니다."하고 약속했다.
그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그러자 송홍은 지체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조강지처는 광무제가 송홍의 갸륵한 뜻을 알아채고 누님에게 '마음을 달리먹으라'고 말하였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糟糠(조강) |
諸行無常 (제행무상)
諸行無常(제행무상)
諸 모두 제, 김치 저, 어조사 저 | 行 다닐 행, 항렬 항 | 無 없을 무 | 常 떳떳할 상, 항상 상 |
①인생(人生)의 덧없음 ②우리가 거처(居處)하는 우주(宇宙)의 만물(萬物)은 항상(恒常) 돌고 변(變)하여 잠시(暫時)도 한 모양(模樣)으로 머무르지 않음
諸 모두 제, 김치 저, 어조사 저 | 行 다닐 행, 항렬 항 | 無 없을 무 | 常 떳떳할 상, 항상 상 |
①인생(人生)의 덧없음 ②우리가 거처(居處)하는 우주(宇宙)의 만물(萬物)은 항상(恒常) 돌고 변(變)하여 잠시(暫時)도 한 모양(模樣)으로 머무르지 않음
題烏江亭 (제오강정) 杜牧 (두목)
題烏江亭(제오강정) 杜牧(두목)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불가병가기)
包羞忍恥是男兒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兵家(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삭이면서 참는 자가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는 호걸들이 많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지 아직은 모르겠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불가병가기)
包羞忍恥是男兒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兵家(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삭이면서 참는 자가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는 호걸들이 많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지 아직은 모르겠네
齊人攫金 (제인확금)
齊人攫金(제인확금)
齊 나라이름 제 | 人 사람 인 | 攫 붙잡을 확 | 金 쇠 금 |
금만 보이고 곁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앞뒤 가리고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는 뜻.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유(去宥)편에는 한 날치기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탐욕스럽고 재물(財物)을 좋아하여,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게 하루 일과였다.
어느날 아침, 그는 의관(衣冠)을 잘 차려 입고 시장으로 구경을 나갔다. 그런데 그는 금(金)을 팔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다. 그는 느닷없이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 금을 한 웅큼 웅켜쥐고 도망하기 시작하였다[攫其金而去]. 금을 팔던 사람은 '도둑이야, 저 놈이 내 금을 훔쳐간다'라고 외쳤다.
금을 훔쳐 도망가던 그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순찰을 돌던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포졸들이 그에게 대낮에 남의 금을 훔쳐간 이유를 묻자, 그는 뻔뻔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금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금만 보았지 사람은 보지 못했소."
齊人攫金이란 앞 뒤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齊 나라이름 제 | 人 사람 인 | 攫 붙잡을 확 | 金 쇠 금 |
금만 보이고 곁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앞뒤 가리고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는 뜻.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유(去宥)편에는 한 날치기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탐욕스럽고 재물(財物)을 좋아하여,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게 하루 일과였다.
어느날 아침, 그는 의관(衣冠)을 잘 차려 입고 시장으로 구경을 나갔다. 그런데 그는 금(金)을 팔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다. 그는 느닷없이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 금을 한 웅큼 웅켜쥐고 도망하기 시작하였다[攫其金而去]. 금을 팔던 사람은 '도둑이야, 저 놈이 내 금을 훔쳐간다'라고 외쳤다.
금을 훔쳐 도망가던 그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순찰을 돌던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포졸들이 그에게 대낮에 남의 금을 훔쳐간 이유를 묻자, 그는 뻔뻔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금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금만 보았지 사람은 보지 못했소."
齊人攫金이란 앞 뒤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諸葛亮 (제갈량, Zhūgě Liàng)
諸葛亮(제갈량)
異名: 诸葛亮(Zhūgě Liàng), 자 공명, 시호 충무후, 와룡선생
국적: 중국 삼국시대 촉한
활동분야: 정치·군사
출생지: 중국 산둥성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이며, 낭야군 양도현(瑯琊郡 陽都縣;山東省 沂南縣)에서 태어났다. 호족(豪族)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주(荊州;湖北省)에서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後漢) 말의 전란을 피하여 출사(出仕)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일컬어졌다.
207년(건안 12)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써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은 것을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水魚之交]에 비유하였다.
이듬해 오나라의 손권(孫權)을 설득하여 유비와 연합하게 하였고, 적벽의 싸움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신기묘산(神機妙算)으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것으로 묘사되지만,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에는 별다른 활약상을 찾아볼 수 없으며, 형주와 익주 등 강남을 손에 넣은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중랑장(軍師中郎將)으로 삼아 영릉(零陵)·계양(桂陽)·장사(長沙) 등 3군(郡)을 감독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세간에 구전하는 제갈량의 초인적 지략은 대부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기인하지만, 유비의 신임을 받아 중용된 것은 소설과 역사서의 기록이 일치한다. 214년(건안 16) 유비는 성도(成都)를 평정하고 나서 그를 군사장군(軍師將軍)으로 삼아 자신이 출병한 뒤 군량과 병사를 대도록 하였고, 촉한의 황제에 오른 뒤에는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았으며,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업을 이루도록 당부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을 보좌하되, 아들이 무능하면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를 취하여도 좋다고 유언하였으나 제갈량은 끝까지 후주(後主) 유선을 보필하였다. 재차 오나라와 연합하여 위나라와 항쟁하였으며, 생산을 장려하여 민치(民治)를 꾀하고, 윈난[雲南]으로 진출하여 개발을 도모하는 등 촉한의 경영에 힘썼다.
그러나 상승하는 위나라에 비하여 국력의 열세가 뚜렷한 가운데 오장원(五丈原)에서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다가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위나라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와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충정으로 가득한 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후인들이 중국 곳곳에 무후사(武侯祠)를 지어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제갈량 관련 한시
梁甫吟(양보음)
異名: 诸葛亮(Zhūgě Liàng), 자 공명, 시호 충무후, 와룡선생
국적: 중국 삼국시대 촉한
활동분야: 정치·군사
출생지: 중국 산둥성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이며, 낭야군 양도현(瑯琊郡 陽都縣;山東省 沂南縣)에서 태어났다. 호족(豪族)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주(荊州;湖北省)에서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後漢) 말의 전란을 피하여 출사(出仕)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일컬어졌다.
207년(건안 12)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써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은 것을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水魚之交]에 비유하였다.
이듬해 오나라의 손권(孫權)을 설득하여 유비와 연합하게 하였고, 적벽의 싸움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신기묘산(神機妙算)으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운 것으로 묘사되지만,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에는 별다른 활약상을 찾아볼 수 없으며, 형주와 익주 등 강남을 손에 넣은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중랑장(軍師中郎將)으로 삼아 영릉(零陵)·계양(桂陽)·장사(長沙) 등 3군(郡)을 감독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세간에 구전하는 제갈량의 초인적 지략은 대부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기인하지만, 유비의 신임을 받아 중용된 것은 소설과 역사서의 기록이 일치한다. 214년(건안 16) 유비는 성도(成都)를 평정하고 나서 그를 군사장군(軍師將軍)으로 삼아 자신이 출병한 뒤 군량과 병사를 대도록 하였고, 촉한의 황제에 오른 뒤에는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았으며,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업을 이루도록 당부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을 보좌하되, 아들이 무능하면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를 취하여도 좋다고 유언하였으나 제갈량은 끝까지 후주(後主) 유선을 보필하였다. 재차 오나라와 연합하여 위나라와 항쟁하였으며, 생산을 장려하여 민치(民治)를 꾀하고, 윈난[雲南]으로 진출하여 개발을 도모하는 등 촉한의 경영에 힘썼다.
그러나 상승하는 위나라에 비하여 국력의 열세가 뚜렷한 가운데 오장원(五丈原)에서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다가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위나라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와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충정으로 가득한 천고의 명문으로 꼽힌다. 후인들이 중국 곳곳에 무후사(武侯祠)를 지어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제갈량 관련 한시
梁甫吟(양보음)
除舊布新 (제구포신)
除舊布新(제구포신)
除 덜 제 | 舊 예 구 | 布 베풀 포 | 新 새 신 |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베푸는 일.
제구포신은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춘추좌전의 기록을 보면, 소공(昭公) 17년 겨울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의 대부(大夫) 신수(申須)가 이를 제구포신의 징조로 해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는데 오히려 이를 변혁의 징조로 본 것이다.
[출전]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除 덜 제 | 舊 예 구 | 布 베풀 포 | 新 새 신 |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베푸는 일.
제구포신은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춘추좌전의 기록을 보면, 소공(昭公) 17년 겨울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의 대부(大夫) 신수(申須)가 이를 제구포신의 징조로 해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는데 오히려 이를 변혁의 징조로 본 것이다.
[출전]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전화위복)
轉 구를 전 | 禍 재앙 화 | 爲 하 위, 할 위 | 福 복 복, 간직할 부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다. 불행한 일이나 실패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잘 처리함으로써 거꾸로 행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말.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관안(管晏)열전'에 나온다. 관중(管仲)을 평하기를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정치의 실재면에 있어, 번번이 화를 전환시켜 복으로 하고 실패를 전환시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도 그 경중을 잘 파악하여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했다.”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여섯 나라 재상을 겸임하였던 소진(蘇秦)도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하였다[因敗爲功]."
전국시대 말엽 蘇秦(소진)의 설득으로 강국 秦(진)나라에 대항하는 여섯나라의 合縱(합종), 다시 말하면 6국 동맹이 맺어져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齊(제) 魏(위) 두 나라가 진나라의 계략에 놀아나 趙(조)나라를 침으로써 잘 유지돼온 합종체제는 깨어져 버렸다. 때마침 燕(연)나라에서는 태자가 易王(이왕)이 되었는데 제나라는 또 이 정권교체의 혼란을 틈타서 연나라를 쳐 10개 성을 빼앗았다. 분개한 이왕은 소진을 불러들여 따졌다.
“우리 연나라는 그대가 주장한 합종책에 따랐을 뿐인데 이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그대의 힘으로 빼앗긴 땅을 도로 찾아 주시오.” 소진은 곧바로 제나라로 가서 宣王(선왕)을 설득했다. “연나라 이왕은 진나라 혜왕의 사위입니다. 연나라 영토를 빼앗은 귀국은 앞으로 진나라와도 원수가 될 것이오.”
안색이 바뀌는 선왕을 보면서 소진은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재앙을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빼앗은 땅을 즉각 연나라에 되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일처리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연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진나라의 위세 때문에 땅을 돌려준 것으로 알고 진나라 왕도 기뻐할 것입니다.진 연 두나라와 친교를 맺게 되면 다른 왕들도 전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약간의 땅을 버리고 천하를 얻는다면 이거야말로 覇王(패왕)의 業(업)이 아니겠습니까.” 선왕은 소진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열전편(列傳篇):관안열전(管晏列傳) |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禍轉爲福(화전위복) | 塞翁禍福(새옹화복) | 塞翁之馬(새옹지마) | 塞翁爲福(새옹위복) | 塞翁得失(새옹득실) | 反禍爲福(반화위복) | 轉禍爲福(전화위복) |
轉 구를 전 | 禍 재앙 화 | 爲 하 위, 할 위 | 福 복 복, 간직할 부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다. 불행한 일이나 실패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잘 처리함으로써 거꾸로 행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말.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관안(管晏)열전'에 나온다. 관중(管仲)을 평하기를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정치의 실재면에 있어, 번번이 화를 전환시켜 복으로 하고 실패를 전환시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도 그 경중을 잘 파악하여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했다.”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여섯 나라 재상을 겸임하였던 소진(蘇秦)도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하였다[因敗爲功]."
전국시대 말엽 蘇秦(소진)의 설득으로 강국 秦(진)나라에 대항하는 여섯나라의 合縱(합종), 다시 말하면 6국 동맹이 맺어져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齊(제) 魏(위) 두 나라가 진나라의 계략에 놀아나 趙(조)나라를 침으로써 잘 유지돼온 합종체제는 깨어져 버렸다. 때마침 燕(연)나라에서는 태자가 易王(이왕)이 되었는데 제나라는 또 이 정권교체의 혼란을 틈타서 연나라를 쳐 10개 성을 빼앗았다. 분개한 이왕은 소진을 불러들여 따졌다.
“우리 연나라는 그대가 주장한 합종책에 따랐을 뿐인데 이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그대의 힘으로 빼앗긴 땅을 도로 찾아 주시오.” 소진은 곧바로 제나라로 가서 宣王(선왕)을 설득했다. “연나라 이왕은 진나라 혜왕의 사위입니다. 연나라 영토를 빼앗은 귀국은 앞으로 진나라와도 원수가 될 것이오.”
안색이 바뀌는 선왕을 보면서 소진은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재앙을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빼앗은 땅을 즉각 연나라에 되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일처리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연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진나라의 위세 때문에 땅을 돌려준 것으로 알고 진나라 왕도 기뻐할 것입니다.진 연 두나라와 친교를 맺게 되면 다른 왕들도 전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약간의 땅을 버리고 천하를 얻는다면 이거야말로 覇王(패왕)의 業(업)이 아니겠습니까.” 선왕은 소진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열전편(列傳篇):관안열전(管晏列傳) |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禍轉爲福(화전위복) | 塞翁禍福(새옹화복) | 塞翁之馬(새옹지마) | 塞翁爲福(새옹위복) | 塞翁得失(새옹득실) | 反禍爲福(반화위복) | 轉禍爲福(전화위복) |
切齒腐心 (절치부심)
切齒腐心(절치부심)
切 끊을 절, 온통 체 | 齒 이 치 | 腐 썩을 부 | 心 마음 심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해 하면서 이를 갈고 속을 썩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切齒扼腕(절치액완) |
切 끊을 절, 온통 체 | 齒 이 치 | 腐 썩을 부 | 心 마음 심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해 하면서 이를 갈고 속을 썩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切齒扼腕(절치액완) |
井中之蛙 (정중지와, jǐngzhōngzhīwā)
井中之蛙(정중지와)
井中之蛙(jǐng zhōng zhī wā)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蛙 개구리 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왕망이 전한을 멸하고 세운 신나라 말경, 마원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감숙성)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은 촉땅에 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되었다.
'정중지와'란 말은 [장자] '추수편'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해신인 약(若)이 하백에게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되기 때문이고[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에 대해 말 할 수 없는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출전]
후한서:마수전, 장자:추수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大海(정와부지대해) |
유사어
촉견폐일 | 월견폐설 |
참조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득롱망촉 |
井中之蛙(jǐng zhōng zhī wā)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蛙 개구리 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왕망이 전한을 멸하고 세운 신나라 말경, 마원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감숙성)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은 촉땅에 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되었다.
'정중지와'란 말은 [장자] '추수편'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해신인 약(若)이 하백에게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되기 때문이고[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에 대해 말 할 수 없는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출전]
후한서:마수전, 장자:추수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大海(정와부지대해) |
유사어
촉견폐일 | 월견폐설 |
참조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득롱망촉 |
井中觀天 (정중관천)
井中觀天(정중관천)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井底之蛙 (정저지와)
井底之蛙(정저지와)
井底之蛙(jǐngdǐzhīwā)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은 사람의 비유.
a frog in a well—a person with a very limited outlook and experience; an ignorant person
장자(莊子) 추수편에 보면 황하(黃河)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北海)에 와 동해를 바라보았다. 매우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 약(若)에게 물으니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며 정직하지 못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당신은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자기가 보잘 것없는 존재(存在)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젠 당신과 함께 천하(天下)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對答)했다고 한다.
[출전]
장자(莊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
井底之蛙(jǐngdǐzhīwā)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은 사람의 비유.
a frog in a well—a person with a very limited outlook and experience; an ignorant person
장자(莊子) 추수편에 보면 황하(黃河)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北海)에 와 동해를 바라보았다. 매우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 약(若)에게 물으니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며 정직하지 못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당신은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자기가 보잘 것없는 존재(存在)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젠 당신과 함께 천하(天下)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對答)했다고 한다.
[출전]
장자(莊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우물 안 개구리
¶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
輾轉反側 (전전반측)
輾轉反側(전전반측)
輾 돌아누울 전, 삐걱거릴 년(연) | 轉 구를 전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側 곁 측 |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루다. ①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느라 잠을 못 이루는 경우에 쓰였으나 ② 오늘날에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나 근심거리가 있어 밤새 잠을 못 이룬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엮은 '시경(詩經)'의 국풍편(國風篇) 첫머리에 실려 있는 '관관저구(關關雎鳩)'에 나오는 시구(詩句).
시의 첫 동강은 강가에서 울고 있는 물수리라는 물새를 읊고 있다. 물수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운다. 그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요조숙녀를 닮았다. 좋은 배우자(配偶者)로서 남자가 구하고자 하는 처녀는 저 물수리와 같이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구룩구룩 울어대는 물수리는 강가 모래톱에 있네
우아하고 고운 처녀야말로 군자의 어울리는 짝이로다
'窈窕淑女'란 말을 처음으로 쓴 첫 동강은 이렇게 노래하다가 다음 동강으로 넘어간다.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길고 짧고 들쭉날쭉한 물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노라
그처럼 우아하고 고운 처녀를 군자는 자나깨나 찾고 있네
찾아도 얻지 못하면 자나깨나 그리고 있네
그리는 마음 가이 없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연정의 의미가 많이 퇴화되어, 단지 걱정과 많은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는 모든 경우를 두고 전전반측이라 한다.
[출전]
詩經(시경) 국풍편(國風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輾轉不寐(전전불매) | 寤寐不忘(오매불망) |
輾 돌아누울 전, 삐걱거릴 년(연) | 轉 구를 전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側 곁 측 |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루다. ①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느라 잠을 못 이루는 경우에 쓰였으나 ② 오늘날에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나 근심거리가 있어 밤새 잠을 못 이룬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엮은 '시경(詩經)'의 국풍편(國風篇) 첫머리에 실려 있는 '관관저구(關關雎鳩)'에 나오는 시구(詩句).
시의 첫 동강은 강가에서 울고 있는 물수리라는 물새를 읊고 있다. 물수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운다. 그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요조숙녀를 닮았다. 좋은 배우자(配偶者)로서 남자가 구하고자 하는 처녀는 저 물수리와 같이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구룩구룩 울어대는 물수리는 강가 모래톱에 있네
우아하고 고운 처녀야말로 군자의 어울리는 짝이로다
'窈窕淑女'란 말을 처음으로 쓴 첫 동강은 이렇게 노래하다가 다음 동강으로 넘어간다.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길고 짧고 들쭉날쭉한 물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노라
그처럼 우아하고 고운 처녀를 군자는 자나깨나 찾고 있네
찾아도 얻지 못하면 자나깨나 그리고 있네
그리는 마음 가이 없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연정의 의미가 많이 퇴화되어, 단지 걱정과 많은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는 모든 경우를 두고 전전반측이라 한다.
[출전]
詩經(시경) 국풍편(國風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輾轉不寐(전전불매) | 寤寐不忘(오매불망) |
戰戰兢兢 (전전긍긍)
戰戰兢兢(전전긍긍)
战战兢兢(zhànzhànjīngjīng)
戰 싸움 전 | 戰 싸움 전 | 兢 떨릴 긍 | 兢 떨릴 긍 |
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은 몸을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하는데 전전긍긍(戰戰兢兢)으로 합쳐지면서 매우 두려워 하며 조심한다는 뜻이 된다.
trembling with fear; with fear and trepidation; gingerly
이 말은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의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대목에 쓰임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不敢暴虎 (불감포호)
不敢馮下 (불감빙하)
人知其一 (인지기일)
莫知其他 (막지기타)
戰戰兢兢 (전전긍긍)
如臨深淵 (여림심연)
如履薄氷 (여리박빙)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서 황하를 건널 수 없네
사람들이 그 한가지는 알고 있지만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네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처럼 하고
살얼음 밟고 가듯 해야 하네
이 시는 謀臣(모신)이 옛 법을 무시하고 惡政(악정)을 펴고 있음을 개탄한 것이다.
論語(논어)의 泰伯篇(태백편)에도 전전긍긍이란 말이 보인다. 孔子(공자)의 제자인 曾子(증자)가 임종시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깊은 연못가에 있는 듯하고 살얼음 밟는 듯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고 하였거늘 지금에서야 마음을 놓겠구나."
효성이 지극했던 증자가 효도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살얼음 밟듯 했는데 이제 죽게 되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 말이라고 한다.
[출전]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 | 論語(논어) 泰伯篇(태백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戰兢(전긍) |
战战兢兢(zhànzhànjīngjīng)
戰 싸움 전 | 戰 싸움 전 | 兢 떨릴 긍 | 兢 떨릴 긍 |
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은 몸을 삼가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하는데 전전긍긍(戰戰兢兢)으로 합쳐지면서 매우 두려워 하며 조심한다는 뜻이 된다.
trembling with fear; with fear and trepidation; gingerly
이 말은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의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대목에 쓰임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不敢暴虎 (불감포호)
不敢馮下 (불감빙하)
人知其一 (인지기일)
莫知其他 (막지기타)
戰戰兢兢 (전전긍긍)
如臨深淵 (여림심연)
如履薄氷 (여리박빙)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
걸어서 황하를 건널 수 없네
사람들이 그 한가지는 알고 있지만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네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처럼 하고
살얼음 밟고 가듯 해야 하네
이 시는 謀臣(모신)이 옛 법을 무시하고 惡政(악정)을 펴고 있음을 개탄한 것이다.
論語(논어)의 泰伯篇(태백편)에도 전전긍긍이란 말이 보인다. 孔子(공자)의 제자인 曾子(증자)가 임종시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깊은 연못가에 있는 듯하고 살얼음 밟는 듯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고 하였거늘 지금에서야 마음을 놓겠구나."
효성이 지극했던 증자가 효도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살얼음 밟듯 했는데 이제 죽게 되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 말이라고 한다.
[출전]
詩經(시경) 小雅篇(소아편) | 論語(논어) 泰伯篇(태백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戰兢(전긍) |
絶長補短 (절장보단)
絶長補短(절장보단)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2010년 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인 것은 각 업태가 가지는 장점으로 부족한 것을 메웠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이 같은 뜻의 ‘절장보단’을 핵심 키워드로 뽑음
2010년 | 올해의 사자성어 | 유통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2010년 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인 것은 각 업태가 가지는 장점으로 부족한 것을 메웠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이 같은 뜻의 ‘절장보단’을 핵심 키워드로 뽑음
2010년 | 올해의 사자성어 | 유통
漸入佳境 (점입가경)
漸入佳境(점입가경)
渐入佳境(jiànrùjiājìng)
漸 점점 점, 적실 점 | 入 들 입 | 佳 아름다울 가 | 境 지경 경 |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of a situation)be getting better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전한다. 고개지는 감자(甘蔗: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늘 가느다란 줄기 부분부터 먼저 씹어 먹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사탕수수를 먹을 때 왜 거꾸로 먹나?" 하였다. 고개지는,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다" 하고는 태연하였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줄여서 자경(蔗境) 또는 가경(佳境)이라고도 한다.
고개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삼절(三絶: 畵絶, 才絶, 痴絶)이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풍속과 맞지 않는 특이한 말과 행동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난징[南京] 와관사(瓦棺寺) 창건 때의 일이다. 난징에 있던 일단의 승려들이 와관사를 짓기 위해 헌금을 걷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궁핍하여 뜻대로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와서, "백만 전을 내겠소. 절이 완공되거든 알려 주시오"라고 하였다. 절이 완공되자 그 젊은이는 불당(佛堂) 벽에 유마힐(維摩詰)을 그렸다.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보시가 백만 전을 넘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가 바로 고개지였다.
[출전]
사기(史記) | 진서(晉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蔗境(자경) | 佳境(가경) |
渐入佳境(jiànrùjiājìng)
漸 점점 점, 적실 점 | 入 들 입 | 佳 아름다울 가 | 境 지경 경 |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of a situation)be getting better
《진서(晉書)》 '고개지전(顧愷之傳)'에 전한다. 고개지는 감자(甘蔗: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다. 그런데 늘 가느다란 줄기 부분부터 먼저 씹어 먹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사탕수수를 먹을 때 왜 거꾸로 먹나?" 하였다. 고개지는,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 때문[漸入佳境]이다" 하고는 태연하였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 경치나 문장 또는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줄여서 자경(蔗境) 또는 가경(佳境)이라고도 한다.
고개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삼절(三絶: 畵絶, 才絶, 痴絶)이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풍속과 맞지 않는 특이한 말과 행동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난징[南京] 와관사(瓦棺寺) 창건 때의 일이다. 난징에 있던 일단의 승려들이 와관사를 짓기 위해 헌금을 걷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궁핍하여 뜻대로 모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와서, "백만 전을 내겠소. 절이 완공되거든 알려 주시오"라고 하였다. 절이 완공되자 그 젊은이는 불당(佛堂) 벽에 유마힐(維摩詰)을 그렸다.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보시가 백만 전을 넘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가 바로 고개지였다.
[출전]
사기(史記) | 진서(晉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蔗境(자경) | 佳境(가경) |
赤子之心 (적자지심)
赤子之心(적자지심)
赤子之心[chìzǐzhīxīn]
赤 붉을 적 | 子 아들 자 | 之 -의 지 | 心 마음 심 |
갓난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은 순결(純潔)한 마음
heart of a newborn baby—utter innocence
맹자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는 대인이란 그의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는 대목이 있다.
赤에는 붉은 색 이라는 뜻이외에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옷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냄 이라는 의미가 있다. 적빈(赤貧) 이란 극빈(極貧)을, 적수(赤手)란 맨손을, 적지(赤地)는 불모지를 뜻한다. 순자(荀子)는 참되고 정성스런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적심(赤心) 이라고도 하였다.
赤子란 갓 태어난 아이의 몸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에서 갓난 아이를 가리키는데, 서경(書經)에서는 赤子를 백성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맹자는 순진 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를 대인(大人)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니, 赤子之心(a child's heart) 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 즉 어린 아이 때 그대로의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이는 곧 사람의 마음이 선량하고 순결함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출전
맹자(孟子)
赤子之心[chìzǐzhīxīn]
赤 붉을 적 | 子 아들 자 | 之 -의 지 | 心 마음 심 |
갓난아이와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은 순결(純潔)한 마음
heart of a newborn baby—utter innocence
맹자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는 대인이란 그의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는 대목이 있다.
赤에는 붉은 색 이라는 뜻이외에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옷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냄 이라는 의미가 있다. 적빈(赤貧) 이란 극빈(極貧)을, 적수(赤手)란 맨손을, 적지(赤地)는 불모지를 뜻한다. 순자(荀子)는 참되고 정성스런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적심(赤心) 이라고도 하였다.
赤子란 갓 태어난 아이의 몸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에서 갓난 아이를 가리키는데, 서경(書經)에서는 赤子를 백성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맹자는 순진 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를 대인(大人)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니, 赤子之心(a child's heart) 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 즉 어린 아이 때 그대로의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이는 곧 사람의 마음이 선량하고 순결함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출전
맹자(孟子)
積小成大 (적소성대)
積小成大(적소성대)
積 쌓을 적, 저축 자 | 小 작을 소 | 成 이룰 성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①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됨. ②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鐵杵成針(철저성침) 철 절굿공이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주 오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나타냄 | 點滴穿石(점적천석) 처마의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힘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예상(豫想)하지 못했던 큰 일을 해냄을 이르는 말. [출전] 두목(杜牧)의 야우(夜雨) | 積土成山(적토성산) | 積塵成山(적진성산) | 積水成淵(적수성연) | 愚公移山(우공이산) | 十伐之木(십벌지목) | 水積成川(수적성천) | 山溜穿石(산류천석) | 磨鐵杵而成針(마철저이성침) | 磨斧作鍼(마부작침) | 磨斧作針(마부작침) | 磨斧爲針(마부위침) |
積 쌓을 적, 저축 자 | 小 작을 소 | 成 이룰 성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①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됨. ②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鐵杵成針(철저성침) 철 절굿공이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주 오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을 나타냄 | 點滴穿石(점적천석) 처마의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힘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예상(豫想)하지 못했던 큰 일을 해냄을 이르는 말. [출전] 두목(杜牧)의 야우(夜雨) | 積土成山(적토성산) | 積塵成山(적진성산) | 積水成淵(적수성연) | 愚公移山(우공이산) | 十伐之木(십벌지목) | 水積成川(수적성천) | 山溜穿石(산류천석) | 磨鐵杵而成針(마철저이성침) | 磨斧作鍼(마부작침) | 磨斧作針(마부작침) | 磨斧爲針(마부위침) |
絶世佳人 (절세가인)
絶世佳人(절세가인)
絶 끊을 절 | 世 인간 세/대 세 | 佳 아름다울 가 | 人 사람 인 |
세상(世上)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女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花容月態(화용월태) | 朱脣皓齒(주순호치) | 絶世美人(절세미인) | 絶世代美(절세대미) | 絶代佳人(절대가인) | 一顧傾城(일고경성) | 萬古絶色(만고절색) | 丹脣皓齒(단순호치) | 國香(국향) | 國色(국색) | 傾城之色(경성지색) | 傾城之美(경성지미) | 傾城(경성) | 傾國之色(경국지색) |
絶 끊을 절 | 世 인간 세/대 세 | 佳 아름다울 가 | 人 사람 인 |
세상(世上)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女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花容月態(화용월태) | 朱脣皓齒(주순호치) | 絶世美人(절세미인) | 絶世代美(절세대미) | 絶代佳人(절대가인) | 一顧傾城(일고경성) | 萬古絶色(만고절색) | 丹脣皓齒(단순호치) | 國香(국향) | 國色(국색) | 傾城之色(경성지색) | 傾城之美(경성지미) | 傾城(경성) | 傾國之色(경국지색) |
挺身而出 (정신이출)
挺身而出(정신이출)
挺身而出[tǐngshēn'érchū]
挺 빼어날 정, 곧을 정 | 身 몸 신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단락 척 |
'몸을 펴 앞장서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 경군홍(敬君弘) 등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를 눈치챈 세민은 심복인 방현령(房玄齡)과 대책을 상의하여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현무문(玄武門)에 복병을 두고 건성이 입조(入朝)하기를 기다려 살해하고 원길도 함께 죽였다.
그러자 건성과 원길의 부하인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정예 병사를 규합하여 세민을 공격하였다. 이때 경군홍이 현무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쌍방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당서(舊唐書)》의 '경군홍전'에 따르면, 경군홍은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다[君弘挺身出戰].
경군홍은 주위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병력이 모이기를 기다려 전열을 이룬 뒤에 싸워도 늦지 않다"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용맹스럽게 진군하여 적과 싸웠다. 나중에 태종(太宗)이 된 세민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좌둔위대장군(左屯衛大將軍)으로 삼았다.
또 《구오대사(舊五代史)》에 따르면, 당경사(唐景思)가 박주의 방어사로 있을 때 비적들이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당경사는 전력으로 항거하였으나 며칠 뒤에 성이 함락되었다. 당경사는 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으며[景思挺身而出], 인근 고을에 사람을 보내 수백 명의 원군을 얻어 마침내 비적들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았다.
한편,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유후론(留侯論)》에는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나 온몸을 던져 싸우는데, 이는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없다[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鬪, 此不足爲勇也]"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하여 정신이출은 어떤 위난한 일을 당하였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舊唐書(구당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挺身而出[tǐngshēn'érchū]
挺 빼어날 정, 곧을 정 | 身 몸 신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단락 척 |
'몸을 펴 앞장서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 경군홍(敬君弘) 등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를 눈치챈 세민은 심복인 방현령(房玄齡)과 대책을 상의하여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현무문(玄武門)에 복병을 두고 건성이 입조(入朝)하기를 기다려 살해하고 원길도 함께 죽였다.
그러자 건성과 원길의 부하인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정예 병사를 규합하여 세민을 공격하였다. 이때 경군홍이 현무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쌍방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당서(舊唐書)》의 '경군홍전'에 따르면, 경군홍은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다[君弘挺身出戰].
경군홍은 주위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병력이 모이기를 기다려 전열을 이룬 뒤에 싸워도 늦지 않다"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용맹스럽게 진군하여 적과 싸웠다. 나중에 태종(太宗)이 된 세민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좌둔위대장군(左屯衛大將軍)으로 삼았다.
또 《구오대사(舊五代史)》에 따르면, 당경사(唐景思)가 박주의 방어사로 있을 때 비적들이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당경사는 전력으로 항거하였으나 며칠 뒤에 성이 함락되었다. 당경사는 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으며[景思挺身而出], 인근 고을에 사람을 보내 수백 명의 원군을 얻어 마침내 비적들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았다.
한편,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유후론(留侯論)》에는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나 온몸을 던져 싸우는데, 이는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없다[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鬪, 此不足爲勇也]"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하여 정신이출은 어떤 위난한 일을 당하였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舊唐書(구당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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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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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戰勝不復應形無窮 (전승불복응형무궁)
戰勝不復應形無窮(전승불복응형무궁)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반복되지 않으므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 승리하기 어렵다
손자병법 제6 허실편에 나오는 말.
人皆知我所以勝之形,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故其戰勝不復,而應形于無窮
사람들은 아군이 승리하게 된 형세를 알고 있지만 승리를 거두게 된 형세의 까닭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작전은 다시 쓰지 않으며 적군의 형세에 따라 무궁 무진한 작전을 펴나가야 한다.
손자는 ‘전승불복’이란 명제를 제시하면서 영원한 승자로 남기 위한 중요한 원칙을 하나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응형무궁(應形無窮)의 정신이었다. 응(應)은 대응, 형(形)은 조직의 모습, 무궁(無窮)은 끝없이 변하는 무궁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끝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출전]
손자병법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반복되지 않으므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 승리하기 어렵다
손자병법 제6 허실편에 나오는 말.
人皆知我所以勝之形,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故其戰勝不復,而應形于無窮
사람들은 아군이 승리하게 된 형세를 알고 있지만 승리를 거두게 된 형세의 까닭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작전은 다시 쓰지 않으며 적군의 형세에 따라 무궁 무진한 작전을 펴나가야 한다.
손자는 ‘전승불복’이란 명제를 제시하면서 영원한 승자로 남기 위한 중요한 원칙을 하나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응형무궁(應形無窮)의 정신이었다. 응(應)은 대응, 형(形)은 조직의 모습, 무궁(無窮)은 끝없이 변하는 무궁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끝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출전]
손자병법
正復爲奇善復爲妖 (정복위기선복위요)
正復爲奇善復爲妖(정복위기선복위요)
正 바를 정, 정월 정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善 착할 선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妖 요사할 요 |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할 수 있고 선한 것은 다시 요사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출전]
노자 58장
正 바를 정, 정월 정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善 착할 선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妖 요사할 요 |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할 수 있고 선한 것은 다시 요사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출전]
노자 58장
賊反荷杖 (적반하장)
賊反荷杖(적반하장)
賊 도둑 적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荷 멜 하, 꾸짖을 하, 잗달 가 | 杖 지팡이 장 |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람.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 말로,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시평가(詩評家)인 홍만종(洪萬宗)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순오지》에는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客反爲主(객반위주) | 主客顚倒(주객전도) 주인과 손님이 서로 바뀌어 손님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 | 我歌査唱(아가사창) 나에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한다.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제가 잘못하고서 도리어 성을 낸다는 뜻
¶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오히려 남을 나무란다는 뜻
¶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 남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배신한다는 뜻
賊 도둑 적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荷 멜 하, 꾸짖을 하, 잗달 가 | 杖 지팡이 장 |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람.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 말로,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시평가(詩評家)인 홍만종(洪萬宗)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순오지》에는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客反爲主(객반위주) | 主客顚倒(주객전도) 주인과 손님이 서로 바뀌어 손님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 | 我歌査唱(아가사창) 나에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한다.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제가 잘못하고서 도리어 성을 낸다는 뜻
¶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오히려 남을 나무란다는 뜻
¶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 남의 은혜를 갚기는커녕 도리어 배신한다는 뜻
前無後無 (전무후무)
前無後無(전무후무)
前 앞 전, 자를 전 | 無 없을 무 | 後 뒤 후, 임금 후 | 無 없을 무 |
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있을 수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曠前絶後(광전절후) | 曠前(광전) | 空前絶後(공전절후) | 空前绝后(kōngqiánjuéhòu) | 空前(공전) |
前 앞 전, 자를 전 | 無 없을 무 | 後 뒤 후, 임금 후 | 無 없을 무 |
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있을 수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曠前絶後(광전절후) | 曠前(광전) | 空前絶後(공전절후) | 空前绝后(kōngqiánjuéhòu) | 空前(공전) |
程門立雪 (정문입설, Chéngménlìxuě)
程門立雪(정문입설)
程门立雪(Chéngménlìxuě)
程 한도 정,길 정 | 門 문 문 | 立 설 입(립) | 雪 눈 설 |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양시와 유초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다.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동생인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데, 이때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의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양시와 유작은 이와 같이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여, 여대림(呂大臨)·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程門:정호와 정이의 문하)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宋史(송사):楊時傳(양시전) |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
宋史, 송사, 宋史:楊時傳, 송사:양시전, 名臣言行錄, 명신언행록
程门立雪(Chéngménlìxuě)
程 한도 정,길 정 | 門 문 문 | 立 설 입(립) | 雪 눈 설 |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양시와 유초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다.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동생인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데, 이때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의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양시와 유작은 이와 같이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여, 여대림(呂大臨)·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程門:정호와 정이의 문하)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宋史(송사):楊時傳(양시전) |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
宋史, 송사, 宋史:楊時傳, 송사:양시전, 名臣言行錄, 명신언행록
頂門一鍼 (정문일침)
頂門一鍼(정문일침)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급소(急所)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忠告)나 교훈(敎訓)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寸鐵殺人(촌철살인) | 頂上一鍼(정상일침) | 頂門一針(정문일침) |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급소(急所)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忠告)나 교훈(敎訓)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寸鐵殺人(촌철살인) | 頂上一鍼(정상일침) | 頂門一針(정문일침) |
朝變夕改 (조변석개)
朝變夕改(조변석개)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變 변할 변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改 고칠 개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으로, 계획(計劃)이나 결정(決定) 따위가 매우 자주 변함.
keep chopping and changing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暮改(조령모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令夕改(zhāolìngxīgǎi)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變 변할 변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改 고칠 개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으로, 계획(計劃)이나 결정(決定) 따위가 매우 자주 변함.
keep chopping and changing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暮改(조령모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令夕改(zhāolìngxīgǎi) |
戰國策 (전국책) 卷30 燕策二
戰國策(전국책)
卷29 卷30•燕策二 卷31
《秦召燕王》
1 秦召燕王: 秦召燕王,燕王欲往。蘇代約燕王曰:“楚得枳二國亡,齊得宋而國亡,齊、楚不得以有枳、宋事秦者,何也?是則有功者,秦之深讎也。秦取天下,非行義也,暴也。
2 秦召燕王: “秦之行暴於天下,正告楚曰:‘蜀地之甲,輕舟浮於汶,乘夏水而下江,五日而至郢。漢中之甲,乘舟出於巴,乘夏水而下漢,四日而至五渚。寡人積甲宛,東下隨,知者不及謀,勇者不及怒,寡人若射隼矣。王乃待天下之攻函穀,不亦遠乎?’楚王為是之故,十七年事秦。
3 秦召燕王: “秦正告韓曰:‘我起乎少曲,一日而斷太行。我起乎宜陽而觸平陽,二日而莫不盡繇。我離兩周而觸鄭,五日而國舉。’韓氏為宜然,故事秦。
4 秦召燕王: “秦正告魏曰:‘我舉安邑,塞女戟,韓氏太原卷。我下枳,道南陽、封、冀,包兩周,乘夏水,浮輕舟,強弩在前,銛戈在後,決榮口,魏無大梁;決白馬之口,魏無濟陽;決宿胥之口,魏無虛、頓丘。陸攻則擊河內,水攻則滅大梁。’魏氏以為然,故事秦。
5 秦召燕王: “秦欲攻安邑,恐齊救之,則以宋委於齊,曰:‘宋王無道,為木人以寫寡人,射其面,寡人地絕兵遠不能攻也,王茍能破宋有之,寡人如自得之。’已得那邑,塞女戟,因以破宋為齊罪。
6 秦召燕王: “秦欲攻魏重楚,則以南陽委於楚曰:“寡人國與韓且絕矣!殘均陵,塞鄳隘,茍利於楚,寡人若自有之。‘魏棄與國而合於秦,因以塞鄳隘為楚罪。
7 秦召燕王: “兵困於林中,重燕、趙,以膠東委於衍,以濟西委於趙。趙得講於魏,至公子延,因犀首屬行而攻趙。兵傷於離石,遇敗於馬陵,而重魏則以葉、蔡委於魏。已得講於趙,則劫魏,魏不為割。困則使太后、穰侯為和,嬴則兼欺舅與母。適燕者曰:‘以膠東。’適趙者曰:‘以濟西。’適魏者曰:‘以葉、蔡。’適楚者曰:‘以塞鄳隘。’適齊者曰:“以宋。‘此必令其言如循環,用兵如刺蜚繡,母不能制,舅不能約。龍賈之戰,岸門之戰,封陸之戰,高商之戰,趙莊之戰,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西河之外、上雒之地、三川,晉國之禍,三晉之半。秦禍如此其大,而燕、趙之秦者,皆以爭事秦說其主,此臣之所大患。”
8 秦召燕王: 燕昭王不行,蘇代復重於燕。燕反約諸侯從親,如蘇秦時,或從或不,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代、厲皆以壽死,名顯諸侯。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
1 蘇代為奉... :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奉陽君不聽。乃入齊惡趙,令齊絕於趙。齊已絕於趙,因之燕,謂昭王曰:“韓為謂臣曰:‘人告奉陽君曰:使齊不信趙者,蘇子也;今齊王召蜀子使不伐宋,蘇子也;與齊王謀道取秦以謀趙者,蘇子也;令齊守趙之質子以甲者,又蘇子也。請告子以請齊,果以守趙之質子以甲,吾必守子以甲。’其言惡矣。雖然,王勿患也。臣故知入齊之有趙累也。出為之出成所欲,臣死而齊大惡於趙,臣猶生也令齊、趙絕,可大紛已。持臣非張孟談也,使臣也如張孟談也齊、趙必有為智伯者矣。
《奉陽君告朱讙與趙足》
1 奉陽君告... : “奉陽君告朱讙與趙足曰:‘齊王使共王曰令說曰,必不反韓珉,今召之矣。必不任蘇子以事,今封而相之。令不合燕,今以燕為上交。吾所恃者順也,今其言變有甚於其父,順始與蘇子為讎。見之知無厲,今賢之兩之,已矣,吾無齊矣!’
2 奉陽君告... : “奉陽君之怒甚矣。如齊王王之不信趙,而小人奉陽君也,因是而倍之。不以今時大紛之,解而復合,則後不可奈何也。故齊、趙之合茍可循也,死不足以為臣患;逃不足以為臣恥;為諸侯不足以為臣榮;被髪自漆為厲,不足以為臣辱。然而臣有患也,臣死而齊、趙不循,惡交分於臣也,而後相效,是臣之患也。若臣死而必相攻也,臣必勉之而求夕焉。堯、舜‘賢而死,禹、湯之知而死,孟賁之勇而死,烏獲之力而死,生之物固有不死者乎?在必然之物以成所欲,王何疑焉?
3 奉陽君告... : “臣以為不若逃而去之。臣以韓、魏循自齊,而為之取秦,深結趙蟀勁之。如是則近於相攻。臣雖為之累燕,奉陽君告朱讙曰:‘蘇子怒於燕王之不以吾故,弗予相,又不予卿也,殆無燕矣。’其疑至於此,故臣雖為之不累燕,又不欲王。伊尹再逃湯而之桀,再逃桀而之湯,果與鳴條之戰,而以湯為天子。伍子胥逃楚而之吳,果與伯舉之戰,而報其父之讎。今臣逃而紛齊、趙,始可著於春秋。且舉大事者,孰不逃?桓公之難,管仲逃於魯;陽虎之難,孔子逃於衛;張儀逃於楚,白●逃於秦;望諸相中山也使趙,趙劫之求地,望諸攻關而出逃;外孫之難,薛公釋戴逃出於關,三晉稱以為士。故舉大事,逃不足以為辱矣。”
《蘇代為燕說齊》
1 蘇代為燕... : 蘇代為燕說齊,未見齊王,先說淳於髡曰:“人有賣駿馬者,比三旦立市,人莫之知。往見伯樂曰:‘臣有駿馬,欲賣之,比三旦立於市,人莫與言,愿子還而視之,去而顧之,臣請獻一朝之賈。’伯樂乃還而視之,去而顧之,一旦而馬價十倍。今臣欲以駿馬見於王,莫為臣先後者,足下有意為臣伯樂乎?臣請獻白璧一雙,黃金萬鎰,以為馬食。”淳於髡曰:“謹聞命矣。”入言之王而見之,齊王大說蘇子。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曰:“臣聞離齊趙,齊、趙已孤矣,王何不出兵以攻齊?臣請王弱之。”燕乃伐齊攻晉。
2 蘇代自齊... : 令人謂閔王曰:“燕之攻齊也,欲以復振古地也。燕兵在晉貳進,則是兵弱而計疑也。王何不令蘇子將而應燕乎?夫以蘇子之賢,將而應弱燕,燕破必矣。燕破則趙不敢不聽,是王破燕而服趙也。”閔王曰:“善。”乃謂蘇子曰:“燕兵在晉,今寡人發兵應之,愿子為寡人為之將。”對曰:“臣之於兵,何足以當之,王其改舉。王使臣也,是敗王之兵,而以臣遺燕也。戰不勝,不可振也。”王曰:“行寡人知子矣。”
3 蘇代自齊... : 蘇子遂將,而與燕人戰於晉下,齊軍敗。燕得甲首二萬人。蘇子收其餘兵,以守陽城,而報於閔王曰:“王過舉,令臣應燕。今軍敗亡二萬人,臣有斧質之罪,請自歸於吏以戮。”閔王曰:“此寡人之過也,子無以為罪。”
4 蘇代自齊... : 明日又使燕攻陽城及貍。又使人謂閔王曰:“日者齊不勝於晉下,此非兵之過,齊不幸而燕有天幸也。今燕又攻陽城及貍,是以天幸自為功也。王復使蘇子應之,蘇子先敗王之兵,其後必務以勝報王矣。”王曰:“善。”乃身使蘇子,蘇子固辭,王不聽。遂將以與燕戰於陽城。燕人大勝得首三萬。齊君臣不親,百姓離心。燕因使樂毅大起兵伐齊,破之。
《蘇代自齊獻書於燕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獻書於燕王曰:“臣之行也,固知將有口事,故獻御書而行,曰:‘臣貴於齊,燕大夫將不信臣;臣賤,將輕臣;臣用,將多望於臣;齊有不善,將歸罪於臣;天下不攻齊,將曰善為齊謀;天下攻齊,將與齊兼鄮臣。臣之所重處重卯也。’王謂臣曰:“吾必不聽眾口與讒言,吾信汝也,猶剗刈者也。上可以得用於齊,次可以得信於下,茍無死,女無不為也,以女自信可也。‘與之言曰:‘去燕之齊可也,期於成事而已。’臣受令以任齊,及五年。齊數出兵,未嘗謀燕。齊、趙之交,一合一離,燕王不與齊謀趙,則與趙謀齊。齊之信燕也,至於虛北地行其兵。今王信田伐與參、去疾之言,且攻齊,使齊犬馬犏而不言燕。今王又使慶令臣曰:‘吾欲用所善。’王茍欲用之,則臣請為王事之。王欲醳臣剸任所善,則臣請歸醳事。臣苟得見,則盈愿。”
《陳翠合齊燕》
1 陳翠合齊... : 陳翠合齊燕陳翠合齊、燕,將令燕王之弟為質於齊,燕王許諾。太后聞之大怒曰:“陳公不能為人之國,亦則已矣,焉有離人子母者,老婦欲得志焉。”
2 陳翠合齊... : 陳翠欲見太后,王曰:“太后方怒子,子其待之。”陳翠曰:“無害也。”遂人見太后曰:“何臞也?”太后曰:“賴得先王雁鶩之餘食,不宜臞。臞者,憂公子之且為質於齊也。”
3 陳翠合齊... : 陳翠曰:“人主之愛子也,不如布衣之甚也。非徒不愛子也,又不愛丈夫子獨甚。”太后曰:“何也?”對曰:“太后嫁女諸侯,奉以千金,赍地百里,以為人之終也。今王愿封公子,百官持職,群臣效忠,曰:‘公子無功不當封。’今王之以公子為質也,且以為公子功而封之也。太后弗聽,臣是以知人主之不愛丈夫子獨甚也。且太后與王幸而在,故公子貴,太后千秋之後王棄國家,而太子即位,公子賤於布衣。故非及太后於王封公子,則公子終身不封矣!”
4 陳翠合齊... : 太后曰:“老婦不知長者之計。”乃命公子束車制衣為行具。
《燕昭王且與天下伐齊》
1 燕昭王且... : 燕昭王且與天下伐齊,而有齊人仕於燕者,昭王召而謂之曰:“寡人且與天下伐齊,旦暮出令矣。子必爭之,爭之而不聽,子因去而之齊。寡人有時復合和也,且以因子而事齊。”當此之時也,燕、齊不兩立,然而常獨欲有復收之之志若此也。
《燕饑趙將伐之》
1 燕饑趙將... : 燕饑,趙將伐之。楚使將軍之燕,過魏,見趙恢。趙恢曰:“使除患無至,易於救患。伍子胥、宮之奇不用,燭之武、張孟談受大賞。是故謀這皆從事於除患之道,而先使除患無至者。今予以百金送公也,不如以言。公聽吾言而說趙王曰:‘昔者吳伐齊,為其饑也,伐齊未必勝也,而弱越乘其弊以霸。今王之伐燕也,亦為其饑也,伐之未必勝,而強秦將以兵承王之西,是使弱趙居強吳之處,而使強秦處弱越之所以霸也。愿王之熟計之也。’”
《昌國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
1 昌國君樂... : 昌固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下七十餘城,盡郡縣之以屬燕。三城未下,而燕昭王死。惠王即位,用齊人反間,疑樂毅,而使騎劫代之將。樂毅奔赴趙,趙封以為望諸君。齊田單欺詐騎劫,卒敗燕軍,復收下七十城以復齊。燕王悔,懼趙用樂毅承燕之弊以伐燕。
2 昌國君樂... : 燕王乃使人讓樂毅,且謝之曰:“先生舉國而委將軍,將軍為燕破齊,報先王之讎,天下莫不振動,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會先王棄群臣,寡人新即位,左右誤寡人。寡人之使騎劫代將軍者,為將軍久暴露於外,故召將軍且休計事。將軍過聽,以與寡人有隙,遂捐燕而歸趙。將軍自為計則可矣,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3 昌國君樂... : 望諸君乃使人獻書報燕王曰:“臣不佞,不能奉承先王之教,以順左右之心,恐抵斧質之罪,以傷先王之明,而又害於足下之義,故循逃奔趙。自負以不肖之罪,故不敢為辭說。今王使使者數之罪,臣恐侍御者之不察先王之所以畜幸臣之理,而又不白於臣之所以事先王之心,故敢以書對。
4 昌國君樂... : “臣聞賢聖之君,不以祿私其親,功多者授之;不以官隨其愛,能當者處之。故察能而授官者,成功之君也;論行而結交者,立名之士也。臣以所學者觀之,先王之舉錯,有高世之新,故假節於魏王,而以身得察於燕。先王過舉,擢之乎賓客之中,而離之乎群臣之上,不謀於父兄,而使臣為亞卿。臣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不辭。
5 昌國君樂... : “先王命之曰:‘我有積怨深怒於齊,不量輕弱,而欲以齊為事。’臣對曰:‘夫齊霸國之餘教也,而驟勝之遺事也,閑於兵甲,習於戰攻。王若欲攻之,則必舉天下而圖之。舉天下而圖之,莫徑於結趙矣。區又淮北、宋地,楚、魏之所同愿也。趙若許,約楚、魏,宋盡力,四國攻之,齊可大破也。’先王曰:‘善。’臣乃口受令,具符節,南使臣於趙。顧反命,起兵隨而攻齊。以天之道,先王之靈,河北之地,隨先王舉而有之於濟上。濟上之軍奉令擊齊,大勝之。輕卒銳兵,長驅至國。齊王逃遁走莒,僅以深免。珠玉財寶,車甲珍器,盡收入燕。大呂陳於也英,故鼎反於歷室,齊器設於寧臺。薊丘之植,植於汶皇。自五伯以來,功未有及先王者也。先王以為愜其志,以臣為不頓命,故裂地而封之,使之得比乎小國諸侯。臣不佞,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弗辭。
6 昌國君樂... : “臣聞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昔者五子胥說聽乎闔閭可,故吳王遠跡至於郢。夫差弗是也,賜之鴟夷而浮之江。故吳王夫差不悟先論之可以立功,故沉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故入江而不改。夫免身全功,以明先王之跡者,臣之上計也。離毀辱之非,墮先王之名者,臣之所大恐也。臨不測之罪,以幸為利者,義之所不敢出也。
《或獻書燕王》
1 或獻書燕... : 或獻書燕王:“王而不能自恃,不惡卑名以事強。事強,可以令國安長久,萬世之善計。以事強而不可以為萬世,則不如合弱,將奈何合弱而不能如一,此臣之所為山東苦也。
2 或獻書燕... : “比目之魚,不相得則不能行,故古之人稱之,以其合兩而如一也。今山東合弱而如一,是山東之知不如魚也。又譬如車士之引車也,三人不能行,索二人,五人而車因行矣。今山東三國弱而不能敵秦,索二國,因能勝秦矣。然而山東不致相索,智固不如車士矣。胡與越人,言語不相知,志意不相通,同舟而凌波,至其相救助如一也。今山東之相與也,如同舟而濟,秦之兵至,不能相救助如一,智又不如胡、越之人矣。三物者,人之所能為也,山東之主遂不悟,此臣之所為山東苦也。愿大王之熟慮之也。
3 或獻書燕... : “山東相合,之主者不卑名,之國者可長存,之卒者出士以戍韓、梁之西邊,此燕之上計也。不急為此,國必危矣,主必大憂。今韓、梁、趙三國以合矣,秦見三晉之堅也,必南伐楚。趙見秦之伐楚也,悲北攻燕。物固有勢異而患同者。秦久伐韓,故中山亡;今久伐楚,燕必亡。臣竊為王計不如以兵南合三晉,約戍韓、梁之西邊。山東不能堅為此,此必皆亡。”燕果以兵南合三晉也。
《客謂燕王》
1 客謂燕王: 客謂燕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眾,猶鞭策也。使齊北面伐燕,即雖五燕不能當。王何不陰出使,散游士,頓齊兵,弊其眾,使世世無患。”燕王曰:“假寡人五年末,寡人得其志矣。”蘇子曰:“請假王十年。”燕王說,奉蘇子車五十乘,南使於齊。
2 客謂燕王: 謂齊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之眾,猶鞭策也。臣聞當世之舉王,必誅暴正亂,舉無道,攻不義。今宋王射天笞地,鑄諸侯之象,使侍屏偃,展其臂,彈其鼻,此天下之無道不義,而王不伐,王名終不成。且夫宋,中國膏腴之地,鄰民之所處也,與其得百里於燕,不如得十里於宋。法認真,名則義,實則利,王何為弗為?”齊王曰:“善。”遂與兵伐宋,三覆宋,宋遂舉。
3 客謂燕王: 燕王聞之,絕交於齊,率天下之兵以伐齊,大戰一,小戰再,頓齊國,成其名。故曰:因其強而強之,乃可折也;因其廣而廣之,乃可缺也。
《趙且伐燕》
1 趙且伐燕: 趙且伐燕,蘇代為燕王謂惠王曰:“今者臣來,過易水,蚌方出曝,而鷸啄其肉,蚌合而鉗其喙。鷸曰:‘今日不雨,明日不雨,即有死蚌。’蚌亦謂鷸曰:‘今日不出,明日不出,即有死鷸。’兩者不肯舍,漁者得而并禽之。今趙且伐燕,燕、趙久相支,以弊大眾,臣恐強秦之為漁漁父也。故愿王之熟計之也。”惠王曰:“善。”乃止。
《齊魏爭燕》
1 齊魏爭燕: 齊魏爭燕。齊謂燕王曰:“吾得趙矣。”魏亦謂燕王曰:“吾得趙矣。”燕無以決之,而未有適予也。蘇子謂燕相曰:“臣聞辭卑而幣重者,失天下者也;辭俱而幣薄者,得天下者也。今魏之辭俱而幣薄。。”燕因合於魏,得趙,齊遂北矣。
卷29 卷30•燕策二 卷31
《秦召燕王》
1 秦召燕王: 秦召燕王,燕王欲往。蘇代約燕王曰:“楚得枳二國亡,齊得宋而國亡,齊、楚不得以有枳、宋事秦者,何也?是則有功者,秦之深讎也。秦取天下,非行義也,暴也。
2 秦召燕王: “秦之行暴於天下,正告楚曰:‘蜀地之甲,輕舟浮於汶,乘夏水而下江,五日而至郢。漢中之甲,乘舟出於巴,乘夏水而下漢,四日而至五渚。寡人積甲宛,東下隨,知者不及謀,勇者不及怒,寡人若射隼矣。王乃待天下之攻函穀,不亦遠乎?’楚王為是之故,十七年事秦。
3 秦召燕王: “秦正告韓曰:‘我起乎少曲,一日而斷太行。我起乎宜陽而觸平陽,二日而莫不盡繇。我離兩周而觸鄭,五日而國舉。’韓氏為宜然,故事秦。
4 秦召燕王: “秦正告魏曰:‘我舉安邑,塞女戟,韓氏太原卷。我下枳,道南陽、封、冀,包兩周,乘夏水,浮輕舟,強弩在前,銛戈在後,決榮口,魏無大梁;決白馬之口,魏無濟陽;決宿胥之口,魏無虛、頓丘。陸攻則擊河內,水攻則滅大梁。’魏氏以為然,故事秦。
5 秦召燕王: “秦欲攻安邑,恐齊救之,則以宋委於齊,曰:‘宋王無道,為木人以寫寡人,射其面,寡人地絕兵遠不能攻也,王茍能破宋有之,寡人如自得之。’已得那邑,塞女戟,因以破宋為齊罪。
6 秦召燕王: “秦欲攻魏重楚,則以南陽委於楚曰:“寡人國與韓且絕矣!殘均陵,塞鄳隘,茍利於楚,寡人若自有之。‘魏棄與國而合於秦,因以塞鄳隘為楚罪。
7 秦召燕王: “兵困於林中,重燕、趙,以膠東委於衍,以濟西委於趙。趙得講於魏,至公子延,因犀首屬行而攻趙。兵傷於離石,遇敗於馬陵,而重魏則以葉、蔡委於魏。已得講於趙,則劫魏,魏不為割。困則使太后、穰侯為和,嬴則兼欺舅與母。適燕者曰:‘以膠東。’適趙者曰:‘以濟西。’適魏者曰:‘以葉、蔡。’適楚者曰:‘以塞鄳隘。’適齊者曰:“以宋。‘此必令其言如循環,用兵如刺蜚繡,母不能制,舅不能約。龍賈之戰,岸門之戰,封陸之戰,高商之戰,趙莊之戰,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西河之外、上雒之地、三川,晉國之禍,三晉之半。秦禍如此其大,而燕、趙之秦者,皆以爭事秦說其主,此臣之所大患。”
8 秦召燕王: 燕昭王不行,蘇代復重於燕。燕反約諸侯從親,如蘇秦時,或從或不,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代、厲皆以壽死,名顯諸侯。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
1 蘇代為奉... : 蘇代為奉陽君說燕於趙以伐齊,奉陽君不聽。乃入齊惡趙,令齊絕於趙。齊已絕於趙,因之燕,謂昭王曰:“韓為謂臣曰:‘人告奉陽君曰:使齊不信趙者,蘇子也;今齊王召蜀子使不伐宋,蘇子也;與齊王謀道取秦以謀趙者,蘇子也;令齊守趙之質子以甲者,又蘇子也。請告子以請齊,果以守趙之質子以甲,吾必守子以甲。’其言惡矣。雖然,王勿患也。臣故知入齊之有趙累也。出為之出成所欲,臣死而齊大惡於趙,臣猶生也令齊、趙絕,可大紛已。持臣非張孟談也,使臣也如張孟談也齊、趙必有為智伯者矣。
《奉陽君告朱讙與趙足》
1 奉陽君告... : “奉陽君告朱讙與趙足曰:‘齊王使共王曰令說曰,必不反韓珉,今召之矣。必不任蘇子以事,今封而相之。令不合燕,今以燕為上交。吾所恃者順也,今其言變有甚於其父,順始與蘇子為讎。見之知無厲,今賢之兩之,已矣,吾無齊矣!’
2 奉陽君告... : “奉陽君之怒甚矣。如齊王王之不信趙,而小人奉陽君也,因是而倍之。不以今時大紛之,解而復合,則後不可奈何也。故齊、趙之合茍可循也,死不足以為臣患;逃不足以為臣恥;為諸侯不足以為臣榮;被髪自漆為厲,不足以為臣辱。然而臣有患也,臣死而齊、趙不循,惡交分於臣也,而後相效,是臣之患也。若臣死而必相攻也,臣必勉之而求夕焉。堯、舜‘賢而死,禹、湯之知而死,孟賁之勇而死,烏獲之力而死,生之物固有不死者乎?在必然之物以成所欲,王何疑焉?
3 奉陽君告... : “臣以為不若逃而去之。臣以韓、魏循自齊,而為之取秦,深結趙蟀勁之。如是則近於相攻。臣雖為之累燕,奉陽君告朱讙曰:‘蘇子怒於燕王之不以吾故,弗予相,又不予卿也,殆無燕矣。’其疑至於此,故臣雖為之不累燕,又不欲王。伊尹再逃湯而之桀,再逃桀而之湯,果與鳴條之戰,而以湯為天子。伍子胥逃楚而之吳,果與伯舉之戰,而報其父之讎。今臣逃而紛齊、趙,始可著於春秋。且舉大事者,孰不逃?桓公之難,管仲逃於魯;陽虎之難,孔子逃於衛;張儀逃於楚,白●逃於秦;望諸相中山也使趙,趙劫之求地,望諸攻關而出逃;外孫之難,薛公釋戴逃出於關,三晉稱以為士。故舉大事,逃不足以為辱矣。”
《蘇代為燕說齊》
1 蘇代為燕... : 蘇代為燕說齊,未見齊王,先說淳於髡曰:“人有賣駿馬者,比三旦立市,人莫之知。往見伯樂曰:‘臣有駿馬,欲賣之,比三旦立於市,人莫與言,愿子還而視之,去而顧之,臣請獻一朝之賈。’伯樂乃還而視之,去而顧之,一旦而馬價十倍。今臣欲以駿馬見於王,莫為臣先後者,足下有意為臣伯樂乎?臣請獻白璧一雙,黃金萬鎰,以為馬食。”淳於髡曰:“謹聞命矣。”入言之王而見之,齊王大說蘇子。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使人謂燕昭王曰:“臣聞離齊趙,齊、趙已孤矣,王何不出兵以攻齊?臣請王弱之。”燕乃伐齊攻晉。
2 蘇代自齊... : 令人謂閔王曰:“燕之攻齊也,欲以復振古地也。燕兵在晉貳進,則是兵弱而計疑也。王何不令蘇子將而應燕乎?夫以蘇子之賢,將而應弱燕,燕破必矣。燕破則趙不敢不聽,是王破燕而服趙也。”閔王曰:“善。”乃謂蘇子曰:“燕兵在晉,今寡人發兵應之,愿子為寡人為之將。”對曰:“臣之於兵,何足以當之,王其改舉。王使臣也,是敗王之兵,而以臣遺燕也。戰不勝,不可振也。”王曰:“行寡人知子矣。”
3 蘇代自齊... : 蘇子遂將,而與燕人戰於晉下,齊軍敗。燕得甲首二萬人。蘇子收其餘兵,以守陽城,而報於閔王曰:“王過舉,令臣應燕。今軍敗亡二萬人,臣有斧質之罪,請自歸於吏以戮。”閔王曰:“此寡人之過也,子無以為罪。”
4 蘇代自齊... : 明日又使燕攻陽城及貍。又使人謂閔王曰:“日者齊不勝於晉下,此非兵之過,齊不幸而燕有天幸也。今燕又攻陽城及貍,是以天幸自為功也。王復使蘇子應之,蘇子先敗王之兵,其後必務以勝報王矣。”王曰:“善。”乃身使蘇子,蘇子固辭,王不聽。遂將以與燕戰於陽城。燕人大勝得首三萬。齊君臣不親,百姓離心。燕因使樂毅大起兵伐齊,破之。
《蘇代自齊獻書於燕王》
1 蘇代自齊... : 蘇代自齊獻書於燕王曰:“臣之行也,固知將有口事,故獻御書而行,曰:‘臣貴於齊,燕大夫將不信臣;臣賤,將輕臣;臣用,將多望於臣;齊有不善,將歸罪於臣;天下不攻齊,將曰善為齊謀;天下攻齊,將與齊兼鄮臣。臣之所重處重卯也。’王謂臣曰:“吾必不聽眾口與讒言,吾信汝也,猶剗刈者也。上可以得用於齊,次可以得信於下,茍無死,女無不為也,以女自信可也。‘與之言曰:‘去燕之齊可也,期於成事而已。’臣受令以任齊,及五年。齊數出兵,未嘗謀燕。齊、趙之交,一合一離,燕王不與齊謀趙,則與趙謀齊。齊之信燕也,至於虛北地行其兵。今王信田伐與參、去疾之言,且攻齊,使齊犬馬犏而不言燕。今王又使慶令臣曰:‘吾欲用所善。’王茍欲用之,則臣請為王事之。王欲醳臣剸任所善,則臣請歸醳事。臣苟得見,則盈愿。”
《陳翠合齊燕》
1 陳翠合齊... : 陳翠合齊燕陳翠合齊、燕,將令燕王之弟為質於齊,燕王許諾。太后聞之大怒曰:“陳公不能為人之國,亦則已矣,焉有離人子母者,老婦欲得志焉。”
2 陳翠合齊... : 陳翠欲見太后,王曰:“太后方怒子,子其待之。”陳翠曰:“無害也。”遂人見太后曰:“何臞也?”太后曰:“賴得先王雁鶩之餘食,不宜臞。臞者,憂公子之且為質於齊也。”
3 陳翠合齊... : 陳翠曰:“人主之愛子也,不如布衣之甚也。非徒不愛子也,又不愛丈夫子獨甚。”太后曰:“何也?”對曰:“太后嫁女諸侯,奉以千金,赍地百里,以為人之終也。今王愿封公子,百官持職,群臣效忠,曰:‘公子無功不當封。’今王之以公子為質也,且以為公子功而封之也。太后弗聽,臣是以知人主之不愛丈夫子獨甚也。且太后與王幸而在,故公子貴,太后千秋之後王棄國家,而太子即位,公子賤於布衣。故非及太后於王封公子,則公子終身不封矣!”
4 陳翠合齊... : 太后曰:“老婦不知長者之計。”乃命公子束車制衣為行具。
《燕昭王且與天下伐齊》
1 燕昭王且... : 燕昭王且與天下伐齊,而有齊人仕於燕者,昭王召而謂之曰:“寡人且與天下伐齊,旦暮出令矣。子必爭之,爭之而不聽,子因去而之齊。寡人有時復合和也,且以因子而事齊。”當此之時也,燕、齊不兩立,然而常獨欲有復收之之志若此也。
《燕饑趙將伐之》
1 燕饑趙將... : 燕饑,趙將伐之。楚使將軍之燕,過魏,見趙恢。趙恢曰:“使除患無至,易於救患。伍子胥、宮之奇不用,燭之武、張孟談受大賞。是故謀這皆從事於除患之道,而先使除患無至者。今予以百金送公也,不如以言。公聽吾言而說趙王曰:‘昔者吳伐齊,為其饑也,伐齊未必勝也,而弱越乘其弊以霸。今王之伐燕也,亦為其饑也,伐之未必勝,而強秦將以兵承王之西,是使弱趙居強吳之處,而使強秦處弱越之所以霸也。愿王之熟計之也。’”
《昌國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
1 昌國君樂... : 昌固君樂毅為燕昭王合五國之兵而攻齊,下七十餘城,盡郡縣之以屬燕。三城未下,而燕昭王死。惠王即位,用齊人反間,疑樂毅,而使騎劫代之將。樂毅奔赴趙,趙封以為望諸君。齊田單欺詐騎劫,卒敗燕軍,復收下七十城以復齊。燕王悔,懼趙用樂毅承燕之弊以伐燕。
2 昌國君樂... : 燕王乃使人讓樂毅,且謝之曰:“先生舉國而委將軍,將軍為燕破齊,報先王之讎,天下莫不振動,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會先王棄群臣,寡人新即位,左右誤寡人。寡人之使騎劫代將軍者,為將軍久暴露於外,故召將軍且休計事。將軍過聽,以與寡人有隙,遂捐燕而歸趙。將軍自為計則可矣,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3 昌國君樂... : 望諸君乃使人獻書報燕王曰:“臣不佞,不能奉承先王之教,以順左右之心,恐抵斧質之罪,以傷先王之明,而又害於足下之義,故循逃奔趙。自負以不肖之罪,故不敢為辭說。今王使使者數之罪,臣恐侍御者之不察先王之所以畜幸臣之理,而又不白於臣之所以事先王之心,故敢以書對。
4 昌國君樂... : “臣聞賢聖之君,不以祿私其親,功多者授之;不以官隨其愛,能當者處之。故察能而授官者,成功之君也;論行而結交者,立名之士也。臣以所學者觀之,先王之舉錯,有高世之新,故假節於魏王,而以身得察於燕。先王過舉,擢之乎賓客之中,而離之乎群臣之上,不謀於父兄,而使臣為亞卿。臣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不辭。
5 昌國君樂... : “先王命之曰:‘我有積怨深怒於齊,不量輕弱,而欲以齊為事。’臣對曰:‘夫齊霸國之餘教也,而驟勝之遺事也,閑於兵甲,習於戰攻。王若欲攻之,則必舉天下而圖之。舉天下而圖之,莫徑於結趙矣。區又淮北、宋地,楚、魏之所同愿也。趙若許,約楚、魏,宋盡力,四國攻之,齊可大破也。’先王曰:‘善。’臣乃口受令,具符節,南使臣於趙。顧反命,起兵隨而攻齊。以天之道,先王之靈,河北之地,隨先王舉而有之於濟上。濟上之軍奉令擊齊,大勝之。輕卒銳兵,長驅至國。齊王逃遁走莒,僅以深免。珠玉財寶,車甲珍器,盡收入燕。大呂陳於也英,故鼎反於歷室,齊器設於寧臺。薊丘之植,植於汶皇。自五伯以來,功未有及先王者也。先王以為愜其志,以臣為不頓命,故裂地而封之,使之得比乎小國諸侯。臣不佞,自以為奉令承教,可以幸無罪矣,故受命而弗辭。
6 昌國君樂... : “臣聞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昔者五子胥說聽乎闔閭可,故吳王遠跡至於郢。夫差弗是也,賜之鴟夷而浮之江。故吳王夫差不悟先論之可以立功,故沉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故入江而不改。夫免身全功,以明先王之跡者,臣之上計也。離毀辱之非,墮先王之名者,臣之所大恐也。臨不測之罪,以幸為利者,義之所不敢出也。
《或獻書燕王》
1 或獻書燕... : 或獻書燕王:“王而不能自恃,不惡卑名以事強。事強,可以令國安長久,萬世之善計。以事強而不可以為萬世,則不如合弱,將奈何合弱而不能如一,此臣之所為山東苦也。
2 或獻書燕... : “比目之魚,不相得則不能行,故古之人稱之,以其合兩而如一也。今山東合弱而如一,是山東之知不如魚也。又譬如車士之引車也,三人不能行,索二人,五人而車因行矣。今山東三國弱而不能敵秦,索二國,因能勝秦矣。然而山東不致相索,智固不如車士矣。胡與越人,言語不相知,志意不相通,同舟而凌波,至其相救助如一也。今山東之相與也,如同舟而濟,秦之兵至,不能相救助如一,智又不如胡、越之人矣。三物者,人之所能為也,山東之主遂不悟,此臣之所為山東苦也。愿大王之熟慮之也。
3 或獻書燕... : “山東相合,之主者不卑名,之國者可長存,之卒者出士以戍韓、梁之西邊,此燕之上計也。不急為此,國必危矣,主必大憂。今韓、梁、趙三國以合矣,秦見三晉之堅也,必南伐楚。趙見秦之伐楚也,悲北攻燕。物固有勢異而患同者。秦久伐韓,故中山亡;今久伐楚,燕必亡。臣竊為王計不如以兵南合三晉,約戍韓、梁之西邊。山東不能堅為此,此必皆亡。”燕果以兵南合三晉也。
《客謂燕王》
1 客謂燕王: 客謂燕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眾,猶鞭策也。使齊北面伐燕,即雖五燕不能當。王何不陰出使,散游士,頓齊兵,弊其眾,使世世無患。”燕王曰:“假寡人五年末,寡人得其志矣。”蘇子曰:“請假王十年。”燕王說,奉蘇子車五十乘,南使於齊。
2 客謂燕王: 謂齊王曰:“齊南破楚,西屈秦,用韓、魏之兵,燕、趙之眾,猶鞭策也。臣聞當世之舉王,必誅暴正亂,舉無道,攻不義。今宋王射天笞地,鑄諸侯之象,使侍屏偃,展其臂,彈其鼻,此天下之無道不義,而王不伐,王名終不成。且夫宋,中國膏腴之地,鄰民之所處也,與其得百里於燕,不如得十里於宋。法認真,名則義,實則利,王何為弗為?”齊王曰:“善。”遂與兵伐宋,三覆宋,宋遂舉。
3 客謂燕王: 燕王聞之,絕交於齊,率天下之兵以伐齊,大戰一,小戰再,頓齊國,成其名。故曰:因其強而強之,乃可折也;因其廣而廣之,乃可缺也。
《趙且伐燕》
1 趙且伐燕: 趙且伐燕,蘇代為燕王謂惠王曰:“今者臣來,過易水,蚌方出曝,而鷸啄其肉,蚌合而鉗其喙。鷸曰:‘今日不雨,明日不雨,即有死蚌。’蚌亦謂鷸曰:‘今日不出,明日不出,即有死鷸。’兩者不肯舍,漁者得而并禽之。今趙且伐燕,燕、趙久相支,以弊大眾,臣恐強秦之為漁漁父也。故愿王之熟計之也。”惠王曰:“善。”乃止。
《齊魏爭燕》
1 齊魏爭燕: 齊魏爭燕。齊謂燕王曰:“吾得趙矣。”魏亦謂燕王曰:“吾得趙矣。”燕無以決之,而未有適予也。蘇子謂燕相曰:“臣聞辭卑而幣重者,失天下者也;辭俱而幣薄者,得天下者也。今魏之辭俱而幣薄。。”燕因合於魏,得趙,齊遂北矣。
戰國策 (전국책) 卷17 楚策四
戰國策(전국책)
卷16 卷17•楚策四 卷18
或謂楚王
或謂楚王曰:「臣聞從者欲合天下以朝大王,臣願大王聽之也。夫因詘為信,舊患有成,勇者義之。
攝禍為福,裁少為多,知者官之。夫報報之反,墨墨之化,唯大君能之。禍與福相貫,生與亡為鄰,不偏於死,不偏於生,不足以載大名。無所寇艾,不足以橫世。夫秦捐德絕命之日久矣,而天下不知。今夫橫人嚂口利機,上干主心,下牟百姓,公舉而私取利,是以國權輕於鴻毛,而積禍重於丘山。」
魏王遺楚王美人
魏王遺楚王美人,楚王說之。夫人鄭袖知王之說新人也,甚愛新人。衣服玩好,擇其所喜而為之;宮室臥具,擇其所善而為之。愛之甚於王。王曰:「婦人所以事夫者,色也;而妒者,其情也。今鄭袖知寡人之說新人也,其愛之甚於寡人,此孝子之所以事親,忠臣之所以事君也。」鄭袖知王以己為不妒也,因謂新人曰:「王愛子美矣。雖然,惡子之鼻。子為見王,則必掩子鼻。」新人見王,因掩其鼻。王謂鄭袖曰:「夫新人見寡人,則掩其鼻,何也?」鄭袖曰:「妾知也。」王曰:「雖惡必言之。」鄭袖曰:「其似惡聞君王之臭也。」王曰:「悍哉!」令劓之,無使逆命。
楚王后死
楚王后死,未立后也。謂昭魚曰:「公何以不請立后也?」昭魚曰:「王不聽,是知困而交絕於后也。」「然則不買五雙珥,令其一善而獻之王,明日視善珥所在,因請立之。」
莊辛謂楚襄王
莊辛謂楚襄王曰:「君王左州侯,右夏侯,輦從鄢陵君與壽陵君,專淫逸侈靡,不顧國政,郢都必危矣。」襄王曰:「先生老悖乎?將以為楚國祅祥乎?」莊辛曰:「臣誠見其必然者也,非敢以為國祅祥也。君王卒幸四子者不衰,楚國必亡矣。臣請辟於趙,淹留以觀之。」莊辛去之趙,留五月,秦果舉鄢、郢、巫、上蔡、陳之地,襄王流揜於城陽。於是使人發騶,徵莊辛於趙。莊辛曰:「諾。」莊辛至,襄王曰:「寡人不能用先生之言,今事至於此,為之奈何?」莊辛對曰:「臣聞鄙語曰:『見兔而顧犬,未為晚也;亡羊而補牢,未為遲也。』臣聞昔湯、武以百里昌,桀、紂以天下亡。今楚國雖小,絕長續短,猶以數千里,豈特百里哉?王獨不見夫蜻蛉乎?六足四翼,飛翔乎天地之間,俛啄蚊虻而食之,仰承甘露而飲之,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五尺童子,方將調鈆膠絲,加己乎四仞之上,而下為螻蟻食也。蜻蛉其小者也,黃雀因是以。俯噣白粒,仰棲茂樹,鼓翅奮翼,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公子王孫,左挾彈,右攝丸,將加己乎十仞之上,以其類為招。晝游乎茂樹,夕調乎酸鹹,倏忽之間,墜於公子之手。夫雀其小者也,黃鵠因是以。游於江海,淹乎大沼,府噣鱔鯉,仰嚙衡,奮其六翮,而凌清風,飄搖乎高翔,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射者,方將脩其碆盧,治其繒繳,將加己乎百仞之上。彼礛磻,引微繳,折清風而抎矣。故晝游乎江河,夕調乎鼎鼐。夫黃鵠其小者也,蔡聖侯之事因是以。南遊乎高陂,北陵乎巫山,飲茹谿流,食湘波之魚,左抱幼妾,右擁嬖女,與之馳騁乎高蔡之中,而不以國家為事。不知夫子發方受命乎宣王,繫己以朱絲而見之也。蔡聖侯之事其小者也,君王之事因是以。左州侯,右夏侯,輩從鄢陵君與壽陵君,飯封祿之粟,而戴方府之金,與之馳騁乎雲夢之中,而不以天下國家為事。不知夫穰侯方受命乎秦王,填黽塞之內,而投己乎黽塞之外。」襄王聞之,顏色變作,身體戰慄。於是乃以執珪而授之為陽陵君,與淮北之地也。
齊明說卓滑以伐秦
齊明說卓滑以伐秦,滑不聽也。齊明謂卓滑曰:「明之來也,為樗里疾卜交也。明說楚大夫以伐秦,皆受明之說也,唯公弗受也,臣有辭以報樗裡子矣。」卓滑因重之。
或謂黃齊
或謂黃齊曰:「人皆以謂公不善於富摯。公不聞老萊子之教孔子事君乎?示之其齒之堅也,六十而盡相靡也。今富摯能,而公重不相善也,是兩盡也。諺曰:『見君之乘,下之;見杖,起之。』今也,王愛富摯,而公不善也,是不臣也。」
長沙之難
長沙之難,楚太子橫為質於齊。楚王死,薛公歸太子橫,因與韓、魏之兵,隨而攻東國。太子懼。昭蓋曰:「不若令屈署以新東國為和於齊以動秦。秦恐齊之敗東國,而令行於天下也,必將救我。」太子曰:「善。」遽令屈署以東國為和於齊。秦王聞之懼,令辛戎告楚曰:「毋與齊東國,吾與子出兵矣。」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謁者操以入。中射之士問曰:「可食乎?」曰:「可。」因奪而食之。王怒,使人殺中射之士。中射之士使人說王曰:「臣問謁者,謁者曰可食,臣故食之。是臣無罪,而罪在謁者也。且客獻不死之藥,臣食之而王殺臣,是死藥也。王殺無罪之臣,而明人之欺王。」王乃不殺。
客說春申君
客說春申君曰:「湯以亳,武王以鄗,皆不過百里以有天下。今孫子,天下賢人也,君籍之以百里勢,臣竊以為不便於君。何如?」春申君曰:「善。」於是使人謝孫子。孫子去之趙,趙以為上卿。客又說春申君曰:「昔伊尹去夏入殷,殷王而夏亡。管仲去魯入齊,魯弱而齊強。夫賢者之所在,其君未嘗不尊,國未嘗不榮也。今孫子,天下賢人也。君何辭之?」春申君又曰:「善。」於是使人請孫子於趙。孫子為書謝曰:「癘人憐王,此不恭之語也。雖然,不可不審察也。此為劫弒死亡之主言也。夫人主年少而矜材,無法術以知奸,則大臣主斷國私以禁誅於己也,故弒賢長而立幼弱,廢正適而立不義。春秋戒之曰:『楚王子圍聘於鄭,未出竟,聞王病,反問疾,遂以冠纓絞王,殺之,因自立也。齊崔杼之妻美,莊公通之。崔杼帥其君黨而攻。莊公請與分國,崔杼不許;欲自刃於廟,崔杼不許。莊公走出,踰於外牆,射中其股,遂殺之,而立其弟景公。』近代所見:李兌用趙,餓主父於沙丘,百日而殺之;淖齒用齊,擢閔王之筋,縣於其廟梁,宿夕而死。夫厲雖腫胞疾,上比前世,未至絞纓射股;下比近代,未至擢筋而餓死也。夫劫弒死亡之主也,心之憂勞,形之困苦,必甚於癘矣。由此觀之,癘雖憐王可也。」因為賦曰:「寶珍隋珠,不知佩兮。褘布與絲,不知異兮。閭姝子奢,莫知媒兮。嫫母求之,又甚喜之兮。以瞽為明,以聾為聰,以是為非,以吉為凶。嗚呼上天,曷惟其同!」詩曰:「上天甚神,無自瘵也。」
天下合從
天下合從。趙使魏加見楚春申君曰:「君有將乎?」曰:「有矣,僕欲將臨武君。」魏加曰:「臣少之時好射,臣願以射譬之,可乎?」春申君曰:「可。」加曰:「異日者,更羸與魏王處京臺之下,仰見飛鳥。更羸謂魏王曰:『臣為王引弓虛發而下鳥。』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可。』有間,雁從東方來,更羸以虛發而下之。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此孽也。』王曰:『先生何以知之?』對曰:『其飛徐而鳴悲。飛徐者,故瘡痛也;鳴悲者,久失群也,故瘡未息,而驚心未至也。聞弦音,引而高飛,故瘡隕也。』今臨武君,嘗為秦孽,不可為拒秦之將也。」
汗明見春申君
汗明見春申君,候問三月,而後得見。談卒,春申君大說之。汗明欲復談,春申君曰:「僕已知先生,先生大息矣。」汗明憱焉曰:「明願有問君而恐固。不審君之聖,孰與堯也?」春申君曰:「先生過矣,臣何足以當堯?」汗明曰:「然則君料臣孰與舜?」春申君曰:「先生即舜也。」汗明曰:「不然,臣請為君終言之。君之賢實不如堯,臣之能不及舜。夫以賢舜事聖堯,三年而後乃相知也。今君一時而知臣,是君聖於堯而臣賢於舜也。」春申君曰:「善。」召門吏為汗先生著客籍,五日一見。汗明曰:「君亦聞驥乎?夫驥之齒至矣,服鹽車而上太行。蹄申膝折,尾湛胕潰,漉汁灑地,白汗交流,中阪遷延,負轅不能上。伯樂遭之,下車攀而哭之,解紵衣以冪之。驥於是俛而噴,仰而鳴,聲達於天,若出金石聲者,何也?彼見伯樂之知己也。今僕之不肖,阨於州部,堀穴窮巷,沈洿鄙俗之日久矣,君獨無意湔拔僕也,使得為君高鳴屈於梁乎?」
楚考烈王無子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眾,卒無子。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又無寵。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還謁,春申君問狀。對曰:「齊王遣使求臣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春申君曰:「聘入乎?」對曰:「未也。」春申君曰:「可得見乎?」曰:「可。」於是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知其有身,園乃與其女弟謀。園女弟承間說春申君曰:「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今君相楚王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即楚王更立,彼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非徒然也?君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奈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妾之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妾賴天而有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封盡可得,孰與其臨不測之罪乎?」春申君大然之。乃出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立為王后。楚王貴李園,李園用事。李園既入其女弟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
春申君相楚二十五年,考烈王病。朱英謂春申君曰:「世有無妄之福,又有無妄之禍。今君處無妄之世,以事無妄之主,安不有無妄之人乎?」春申君曰:「何謂無妄之福?」曰:「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為相國,實楚王也。五子皆相諸侯。今王疾甚,旦暮且崩,太子衰弱,疾而不起,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因而有楚國。此所謂無妄之福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禍?」曰:「李園不治國,王之舅也。不為兵將,而陰養死士之日久矣。楚王崩,李園必先入,據本議制斷君命,秉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無妄之禍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人?」曰:「君先仕臣為郎中,君王崩,李園先入,臣請為君其胸殺之。此所謂無妄之人也。」春申君曰:「先生置之,勿復言已。李園,軟弱人也,僕又善之,又何至此?」朱英恐,乃亡去。後十七日,楚考烈王崩,李園果先入,置死士,止於棘門之內。春申君後入,止棘門。園死士夾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於是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為楚幽王也。是歲,秦始皇立九年矣。嫪毐亦為亂於秦。覺,夷三族,而呂不韋廢。
虞卿謂春申君
虞卿謂春申君曰:「臣聞之春秋,於安思危,危則慮安。今楚王之春秋高矣,而君之封地,不可不早定也。為主君慮封者,莫如遠楚。秦孝公封商君,孝公死,而後不免殺之。秦惠王封冉子,惠王死,而後王奪之。公孫鞅,功臣也;冉子,親姻也。然而不免奪死者,封近故也。太公望封於齊,邵公奭封於燕,為其遠王室矣。今燕之罪大而趙怒深,故君不如北兵以德趙,踐亂燕,以定身封,此百代之一時也。」君曰:「所道攻燕,非齊則魏。魏、齊新怨楚,楚君雖欲攻燕,將道何哉?」對曰:「請令魏王可。」君曰:「何如?」對曰:「臣請到魏,而使所以信之。」迺謂魏王曰:「夫楚亦強大矣,天下無敵,乃且攻燕。」魏王曰:「鄉也,子云天下無敵;今也,子云乃且攻燕者,何也?」對曰:「今為馬多力則有矣,若曰勝千鈞則不然者,何也?夫千鈞非馬之任也。今謂楚強大則有矣,若越趙、魏而鬥兵於燕,則豈楚之任也我?非楚之任而楚為之,是敝楚也。敝楚見強魏也,其於王孰便也?」
卷16 卷17•楚策四 卷18
或謂楚王
或謂楚王曰:「臣聞從者欲合天下以朝大王,臣願大王聽之也。夫因詘為信,舊患有成,勇者義之。
攝禍為福,裁少為多,知者官之。夫報報之反,墨墨之化,唯大君能之。禍與福相貫,生與亡為鄰,不偏於死,不偏於生,不足以載大名。無所寇艾,不足以橫世。夫秦捐德絕命之日久矣,而天下不知。今夫橫人嚂口利機,上干主心,下牟百姓,公舉而私取利,是以國權輕於鴻毛,而積禍重於丘山。」
魏王遺楚王美人
魏王遺楚王美人,楚王說之。夫人鄭袖知王之說新人也,甚愛新人。衣服玩好,擇其所喜而為之;宮室臥具,擇其所善而為之。愛之甚於王。王曰:「婦人所以事夫者,色也;而妒者,其情也。今鄭袖知寡人之說新人也,其愛之甚於寡人,此孝子之所以事親,忠臣之所以事君也。」鄭袖知王以己為不妒也,因謂新人曰:「王愛子美矣。雖然,惡子之鼻。子為見王,則必掩子鼻。」新人見王,因掩其鼻。王謂鄭袖曰:「夫新人見寡人,則掩其鼻,何也?」鄭袖曰:「妾知也。」王曰:「雖惡必言之。」鄭袖曰:「其似惡聞君王之臭也。」王曰:「悍哉!」令劓之,無使逆命。
楚王后死
楚王后死,未立后也。謂昭魚曰:「公何以不請立后也?」昭魚曰:「王不聽,是知困而交絕於后也。」「然則不買五雙珥,令其一善而獻之王,明日視善珥所在,因請立之。」
莊辛謂楚襄王
莊辛謂楚襄王曰:「君王左州侯,右夏侯,輦從鄢陵君與壽陵君,專淫逸侈靡,不顧國政,郢都必危矣。」襄王曰:「先生老悖乎?將以為楚國祅祥乎?」莊辛曰:「臣誠見其必然者也,非敢以為國祅祥也。君王卒幸四子者不衰,楚國必亡矣。臣請辟於趙,淹留以觀之。」莊辛去之趙,留五月,秦果舉鄢、郢、巫、上蔡、陳之地,襄王流揜於城陽。於是使人發騶,徵莊辛於趙。莊辛曰:「諾。」莊辛至,襄王曰:「寡人不能用先生之言,今事至於此,為之奈何?」莊辛對曰:「臣聞鄙語曰:『見兔而顧犬,未為晚也;亡羊而補牢,未為遲也。』臣聞昔湯、武以百里昌,桀、紂以天下亡。今楚國雖小,絕長續短,猶以數千里,豈特百里哉?王獨不見夫蜻蛉乎?六足四翼,飛翔乎天地之間,俛啄蚊虻而食之,仰承甘露而飲之,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五尺童子,方將調鈆膠絲,加己乎四仞之上,而下為螻蟻食也。蜻蛉其小者也,黃雀因是以。俯噣白粒,仰棲茂樹,鼓翅奮翼,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公子王孫,左挾彈,右攝丸,將加己乎十仞之上,以其類為招。晝游乎茂樹,夕調乎酸鹹,倏忽之間,墜於公子之手。夫雀其小者也,黃鵠因是以。游於江海,淹乎大沼,府噣鱔鯉,仰嚙衡,奮其六翮,而凌清風,飄搖乎高翔,自以為無患,與人無爭也。不知夫射者,方將脩其碆盧,治其繒繳,將加己乎百仞之上。彼礛磻,引微繳,折清風而抎矣。故晝游乎江河,夕調乎鼎鼐。夫黃鵠其小者也,蔡聖侯之事因是以。南遊乎高陂,北陵乎巫山,飲茹谿流,食湘波之魚,左抱幼妾,右擁嬖女,與之馳騁乎高蔡之中,而不以國家為事。不知夫子發方受命乎宣王,繫己以朱絲而見之也。蔡聖侯之事其小者也,君王之事因是以。左州侯,右夏侯,輩從鄢陵君與壽陵君,飯封祿之粟,而戴方府之金,與之馳騁乎雲夢之中,而不以天下國家為事。不知夫穰侯方受命乎秦王,填黽塞之內,而投己乎黽塞之外。」襄王聞之,顏色變作,身體戰慄。於是乃以執珪而授之為陽陵君,與淮北之地也。
齊明說卓滑以伐秦
齊明說卓滑以伐秦,滑不聽也。齊明謂卓滑曰:「明之來也,為樗里疾卜交也。明說楚大夫以伐秦,皆受明之說也,唯公弗受也,臣有辭以報樗裡子矣。」卓滑因重之。
或謂黃齊
或謂黃齊曰:「人皆以謂公不善於富摯。公不聞老萊子之教孔子事君乎?示之其齒之堅也,六十而盡相靡也。今富摯能,而公重不相善也,是兩盡也。諺曰:『見君之乘,下之;見杖,起之。』今也,王愛富摯,而公不善也,是不臣也。」
長沙之難
長沙之難,楚太子橫為質於齊。楚王死,薛公歸太子橫,因與韓、魏之兵,隨而攻東國。太子懼。昭蓋曰:「不若令屈署以新東國為和於齊以動秦。秦恐齊之敗東國,而令行於天下也,必將救我。」太子曰:「善。」遽令屈署以東國為和於齊。秦王聞之懼,令辛戎告楚曰:「毋與齊東國,吾與子出兵矣。」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
有獻不死之藥於荊王者,謁者操以入。中射之士問曰:「可食乎?」曰:「可。」因奪而食之。王怒,使人殺中射之士。中射之士使人說王曰:「臣問謁者,謁者曰可食,臣故食之。是臣無罪,而罪在謁者也。且客獻不死之藥,臣食之而王殺臣,是死藥也。王殺無罪之臣,而明人之欺王。」王乃不殺。
客說春申君
客說春申君曰:「湯以亳,武王以鄗,皆不過百里以有天下。今孫子,天下賢人也,君籍之以百里勢,臣竊以為不便於君。何如?」春申君曰:「善。」於是使人謝孫子。孫子去之趙,趙以為上卿。客又說春申君曰:「昔伊尹去夏入殷,殷王而夏亡。管仲去魯入齊,魯弱而齊強。夫賢者之所在,其君未嘗不尊,國未嘗不榮也。今孫子,天下賢人也。君何辭之?」春申君又曰:「善。」於是使人請孫子於趙。孫子為書謝曰:「癘人憐王,此不恭之語也。雖然,不可不審察也。此為劫弒死亡之主言也。夫人主年少而矜材,無法術以知奸,則大臣主斷國私以禁誅於己也,故弒賢長而立幼弱,廢正適而立不義。春秋戒之曰:『楚王子圍聘於鄭,未出竟,聞王病,反問疾,遂以冠纓絞王,殺之,因自立也。齊崔杼之妻美,莊公通之。崔杼帥其君黨而攻。莊公請與分國,崔杼不許;欲自刃於廟,崔杼不許。莊公走出,踰於外牆,射中其股,遂殺之,而立其弟景公。』近代所見:李兌用趙,餓主父於沙丘,百日而殺之;淖齒用齊,擢閔王之筋,縣於其廟梁,宿夕而死。夫厲雖腫胞疾,上比前世,未至絞纓射股;下比近代,未至擢筋而餓死也。夫劫弒死亡之主也,心之憂勞,形之困苦,必甚於癘矣。由此觀之,癘雖憐王可也。」因為賦曰:「寶珍隋珠,不知佩兮。褘布與絲,不知異兮。閭姝子奢,莫知媒兮。嫫母求之,又甚喜之兮。以瞽為明,以聾為聰,以是為非,以吉為凶。嗚呼上天,曷惟其同!」詩曰:「上天甚神,無自瘵也。」
天下合從
天下合從。趙使魏加見楚春申君曰:「君有將乎?」曰:「有矣,僕欲將臨武君。」魏加曰:「臣少之時好射,臣願以射譬之,可乎?」春申君曰:「可。」加曰:「異日者,更羸與魏王處京臺之下,仰見飛鳥。更羸謂魏王曰:『臣為王引弓虛發而下鳥。』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可。』有間,雁從東方來,更羸以虛發而下之。魏王曰:『然則射可至此乎?』更羸曰:『此孽也。』王曰:『先生何以知之?』對曰:『其飛徐而鳴悲。飛徐者,故瘡痛也;鳴悲者,久失群也,故瘡未息,而驚心未至也。聞弦音,引而高飛,故瘡隕也。』今臨武君,嘗為秦孽,不可為拒秦之將也。」
汗明見春申君
汗明見春申君,候問三月,而後得見。談卒,春申君大說之。汗明欲復談,春申君曰:「僕已知先生,先生大息矣。」汗明憱焉曰:「明願有問君而恐固。不審君之聖,孰與堯也?」春申君曰:「先生過矣,臣何足以當堯?」汗明曰:「然則君料臣孰與舜?」春申君曰:「先生即舜也。」汗明曰:「不然,臣請為君終言之。君之賢實不如堯,臣之能不及舜。夫以賢舜事聖堯,三年而後乃相知也。今君一時而知臣,是君聖於堯而臣賢於舜也。」春申君曰:「善。」召門吏為汗先生著客籍,五日一見。汗明曰:「君亦聞驥乎?夫驥之齒至矣,服鹽車而上太行。蹄申膝折,尾湛胕潰,漉汁灑地,白汗交流,中阪遷延,負轅不能上。伯樂遭之,下車攀而哭之,解紵衣以冪之。驥於是俛而噴,仰而鳴,聲達於天,若出金石聲者,何也?彼見伯樂之知己也。今僕之不肖,阨於州部,堀穴窮巷,沈洿鄙俗之日久矣,君獨無意湔拔僕也,使得為君高鳴屈於梁乎?」
楚考烈王無子
楚考烈王無子,春申君患之,求婦人宜子者進之,甚眾,卒無子。趙人李園,持其女弟,欲進之楚王,聞其不宜子,恐又無寵。李園求事春申君為舍人。已而謁歸,故失期。還謁,春申君問狀。對曰:「齊王遣使求臣女弟,與其使者飲,故失期。」春申君曰:「聘入乎?」對曰:「未也。」春申君曰:「可得見乎?」曰:「可。」於是園乃進其女弟,即幸於春申君。知其有身,園乃與其女弟謀。園女弟承間說春申君曰:「楚王之貴幸君,雖兄弟不如。今君相楚王二十餘年,而王無子,即百歲後將更立兄弟。即楚王更立,彼亦各貴其故所親,君又安得長有寵乎?非徒然也?君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兄弟誠立,禍且及身,奈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今妾自知有身矣,而人莫知。妾之幸君未久,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王必幸妾。妾賴天而有男,則是君之子為王也,楚國封盡可得,孰與其臨不測之罪乎?」春申君大然之。乃出園女弟謹舍,而言之楚王。楚王召入,幸之。遂生子男,立為太子,以李園女弟立為王后。楚王貴李園,李園用事。李園既入其女弟為王后,子為太子,恐春申君語泄而益驕,陰養死士,欲殺春申君以滅口,而國人頗有知之者。
春申君相楚二十五年,考烈王病。朱英謂春申君曰:「世有無妄之福,又有無妄之禍。今君處無妄之世,以事無妄之主,安不有無妄之人乎?」春申君曰:「何謂無妄之福?」曰:「君相楚二十餘年矣,雖名為相國,實楚王也。五子皆相諸侯。今王疾甚,旦暮且崩,太子衰弱,疾而不起,而君相少主,因而代立當國,如伊尹、周公。王長而反政,不,即遂南面稱孤,因而有楚國。此所謂無妄之福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禍?」曰:「李園不治國,王之舅也。不為兵將,而陰養死士之日久矣。楚王崩,李園必先入,據本議制斷君命,秉權而殺君以滅口。此所謂無妄之禍也。」春申君曰:「何謂無妄之人?」曰:「君先仕臣為郎中,君王崩,李園先入,臣請為君其胸殺之。此所謂無妄之人也。」春申君曰:「先生置之,勿復言已。李園,軟弱人也,僕又善之,又何至此?」朱英恐,乃亡去。後十七日,楚考烈王崩,李園果先入,置死士,止於棘門之內。春申君後入,止棘門。園死士夾刺春申君,斬其頭,投之棘門外。於是使吏盡滅春申君之家。而李園女弟,初幸春申君有身,而入之王所生子者,遂立為楚幽王也。是歲,秦始皇立九年矣。嫪毐亦為亂於秦。覺,夷三族,而呂不韋廢。
虞卿謂春申君
虞卿謂春申君曰:「臣聞之春秋,於安思危,危則慮安。今楚王之春秋高矣,而君之封地,不可不早定也。為主君慮封者,莫如遠楚。秦孝公封商君,孝公死,而後不免殺之。秦惠王封冉子,惠王死,而後王奪之。公孫鞅,功臣也;冉子,親姻也。然而不免奪死者,封近故也。太公望封於齊,邵公奭封於燕,為其遠王室矣。今燕之罪大而趙怒深,故君不如北兵以德趙,踐亂燕,以定身封,此百代之一時也。」君曰:「所道攻燕,非齊則魏。魏、齊新怨楚,楚君雖欲攻燕,將道何哉?」對曰:「請令魏王可。」君曰:「何如?」對曰:「臣請到魏,而使所以信之。」迺謂魏王曰:「夫楚亦強大矣,天下無敵,乃且攻燕。」魏王曰:「鄉也,子云天下無敵;今也,子云乃且攻燕者,何也?」對曰:「今為馬多力則有矣,若曰勝千鈞則不然者,何也?夫千鈞非馬之任也。今謂楚強大則有矣,若越趙、魏而鬥兵於燕,則豈楚之任也我?非楚之任而楚為之,是敝楚也。敝楚見強魏也,其於王孰便也?」
戰國策 (전국책) 卷12 齊策五
戰國策(전국책)
卷11 卷12•齊策五 卷13
蘇秦說齊閔王
蘇秦說齊閔王曰:「臣聞用兵而喜先天下者憂,約結而喜主怨者孤。夫後起者藉也,而遠怨者時也。是以聖人從事,必藉於權而務興於時。夫權藉者,萬物之率也;而時勢者,百事之長也。故無權籍,倍時勢,而能事成者寡矣。今雖干將、莫邪,非得人力,則不能割劌矣。堅箭利金,不得弦機之利,則不能遠殺矣。矢非不銛,而劍非不利也,何則?權藉不在焉。何以知其然也?昔者趙氏襲衛,車舍人不休傅,衛國城割平,衛八門土而二門墮矣,此亡國之形也。衛君跣行,告於魏。魏王身被甲底劍,挑趙索戰。邯鄲之中騖,河、山之間亂。衛得是藉也,亦收餘甲而北面,殘剛平,墮中牟之郭。衛非強於趙也,譬之衛矢而魏弦機也,藉力魏而有河東之地。趙氏懼,楚人救趙而伐魏,戰於州西,出梁門,軍舍林中,馬飲於大河。趙得是藉也,亦襲魏之河北燒棘溝,墜黃城。故剛平之殘也,中牟之墮也,黃城之墜也,棘溝之燒也,此皆非趙、魏之欲也。然二國勸行之者,何也?衛明於時權之藉也。今世之為國者不然矣。兵弱而好敵強,國罷而好眾怨,事敗而好鞠之,兵弱而憎下人也,地狹而好敵大,事敗而好長詐。行此六者而求伯,則遠矣。
「臣聞善為國者,順民之意,而料兵之能,然後從於天下。故約不為人主怨,伐不為人挫強。如此,則兵不費,權不輕,地可廣,欲可成也。昔者,齊之與韓、魏伐秦、楚也,戰非甚疾也,分地又非多韓、魏也,然而天下獨歸咎於齊者,何也?以其為韓、魏主怨也。且天下遍用兵矣,齊、燕戰,而趙氏兼中山,秦、楚戰韓、魏不休,而宋、越專用其兵。此十國者,皆以相敵為意,而獨舉心於齊者,何也?約而好主怨,伐而好挫強也。且夫強大之禍,常以王人為意也;夫弱小之殃,常以謀人為利也。是以大國危,小國滅也。大國之計,莫若後起而重伐不義。夫後起之籍與多而兵勁,則事以眾強適罷寡也,兵必立也。事不塞天下之心,則利必附矣。大國行此,則名號不攘而至,伯王不為而立矣。小國之情,莫如僅靜而寡信諸侯。僅靜,則四鄰不反;寡信諸侯,則天下不賣。外不賣,內不反,則檳禍朽腐而不用,幣帛矯蠹而不服矣。小國道此,則不祠而福矣,不貸而見足矣。故曰:祖仁者王,立義者伯,用兵窮者亡。何以知其然也?昔吳王夫差以強大為天下先,強襲郢而棲越,身從諸侯之君,而卒身死國亡,為天下戮者,何也?此夫差平居而謀王,強大而喜先天下之禍也。昔者萊、莒好謀,陳、蔡好詐,莒恃越而滅,蔡恃晉而亡,此皆內長詐,外信諸侯之殃也。由此觀之,則強弱大小之禍,可見於前事矣。
「語曰:『麒驥之衰也,駑馬先之;孟賁之倦也,女子勝之。』夫駑馬、女子,筋骨力勁,非賢於騏驥、孟賁也。何則?後起之藉也。今天下之相與也不並滅,有而案兵而後起,寄怨而誅不直,微用兵而寄於義,則亡天下可跼足而須也。明於諸侯之故,察於地形之理者,不約親,不相質而固,不趨而疾,眾事而不反,交割而不相憎,俱彊而加以親。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何以知其然也?昔者齊、燕戰於桓之曲,燕不勝,十萬之眾盡。胡人襲燕樓煩數縣,取其牛馬。夫胡之與齊非素親也,而用兵又非約質而謀燕也,然而甚於相趨者,何也?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由此觀之,約於同形則利長,後起則諸侯可趨役也。
「故明主察相,誠欲以伯王也為志,則戰攻非所先。戰者,國之殘也,而都縣之費也。殘費已先,而能從諸侯者寡矣。彼戰者之為殘也,士聞戰則輸私財而富軍巿,輸飲食而待死士,令折轅而炊之,殺牛而觴士,則是路君之道也。中人禱祝,君翳釀,通都小縣置社,有巿之邑莫不止事而奉王,則此虛中之計也。夫戰之明日,屍死扶傷,雖若有功也,軍出費,中哭泣,則傷主心矣。死者破家而葬,夷傷者空財而共藥,完者內酺而華樂,故其費與死傷者鈞。故民之所費也,十年之田而不償也。軍之所出,矛戟折,鐶弦絕,傷弩,破車,罷馬,亡矢之大半。甲兵之具,官之所私出也,士大夫之所匿,廝養士之所竊,十年之田而不償也。天下有此再費者,而能從諸侯寡矣。攻城之費,百姓理襜蔽,舉衝櫓,家雜總,身窟穴,中罷於刀金。而士困於土功,將不釋甲,期數而能拔城者為亟耳。上倦於教,士斷於兵,故三下城而能勝敵者寡矣。故曰:彼戰攻者,非所先也。何以知其然也?昔智伯瑤攻范、中行氏,殺其君,滅其國,又西圍晉陽,吞兼二國,而憂一主,此用兵之盛也。然而智伯卒身死國亡,為天下笑者,何謂也?兵先戰攻,而滅二子患也。日者,中山悉起而迎燕、趙,南戰於長子,敗趙氏;北戰於中山,克燕軍,殺其將。夫中山千乘之國也,而敵萬乘之國二,再戰北勝,此用兵之上節也。然而國遂亡,君臣於齊者,何也?不嗇於戰攻之患也。由此觀之,則戰攻之敗,可見於前事。
「今世之所謂善用兵者,終戰比勝,而守不可拔,天下稱為善,一國得而保之,則非國之利也。臣聞戰大勝者,其士多死而兵益弱;守而不可拔者,其百姓罷而城郭露。夫士死於外,民殘於內,而城郭露於境,則非王之樂也。今夫鵠的非咎罪於人也,便弓引弩而射之,中者則善,不中則愧,少長貴賤,則同心於貫之者,何也?惡其示人以難也。今窮戰比勝,而守必不拔,則是非徒示人以難也,又且害人者也,然則天下仇之必矣。夫罷士露國,而多與天下為仇,則明君不居也;素用強兵而弱之,則察相不事。彼明君察相者,則五兵不動而諸侯從,辭讓而重賂至矣。故明君之攻戰也,甲兵不出於軍而敵國勝,衝櫓不施而邊城降,士民不知而王業至矣。彼明君之從事也,用財少,曠日遠而為利長者。故曰:兵後起則諸侯可趨役也。
「臣之所聞,攻戰之道非師者,雖有百萬之軍,比之堂上;雖有闔閭、吳起之將,禽之戶內;千丈之城,拔之尊俎之間;百尺之衝,折之衽席之上。故鍾鼓竽瑟之音不絕,地可廣而欲可成;和樂倡優侏儒之笑不之,諸侯可同日而致也。故名配天地不為尊,利制海內不為厚。故夫善為王業者,在勞天下而自佚,亂天下而自安,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也。何以知其然?佚治在我,勞亂在天下,則王之道也。銳兵來則拒之,患至則趨之,使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矣。何以知其然矣?昔者魏王擁土千里,帶甲三十六萬,其強而拔邯鄲,西圍定陽,又從十二諸侯朝天子,以西謀秦。秦王恐之,寢不安席,食不甘味,令於境內,盡堞中為戰具,竟為守備,為死士置將,以待魏氏。衛鞅謀於秦王曰:『夫魏氏其功大,而令行於天下,有十二諸侯而朝天子,其與必眾。故以一秦而敵大魏,恐不如。王何不使臣見魏王,則臣請必北魏矣。』秦王許諾。衛鞅見魏王曰:『大王之功大矣,令行於天下矣。今大王之所從十二諸侯,非宋、衛也,則鄒、魯、陳、蔡,此固大王之所以鞭箠使也,不足以王天下。大王不若北取燕,東伐齊,則趙必從矣;西取秦,南伐楚,則韓必從矣。大王有伐齊、楚心,而從天下之志,則王業見矣。大王不如先行王服,然後圖齊、楚。』魏王說於衛鞅之言也,故身廣公宮,制丹衣柱,建九斿,從七星之旟。此天子之位也,而魏王處之。於是齊、楚怒,諸侯奔齊,齊人伐魏,殺其太子,覆其十萬之軍。魏王大恐,跣行按兵於國,而東次於齊,然後天下乃舍之。當是時,秦王垂拱受西河之外,而不以德魏王。故曰衛鞅之始與秦王計也,謀約不下席,言於尊俎之間,謀成於堂上,而魏將以禽於齊矣;衝櫓未施,而西河之外入於秦矣。此臣之所謂比之堂上,禽將戶內,拔城於尊俎之間,折衝席上者也。」
卷11 卷12•齊策五 卷13
蘇秦說齊閔王
蘇秦說齊閔王曰:「臣聞用兵而喜先天下者憂,約結而喜主怨者孤。夫後起者藉也,而遠怨者時也。是以聖人從事,必藉於權而務興於時。夫權藉者,萬物之率也;而時勢者,百事之長也。故無權籍,倍時勢,而能事成者寡矣。今雖干將、莫邪,非得人力,則不能割劌矣。堅箭利金,不得弦機之利,則不能遠殺矣。矢非不銛,而劍非不利也,何則?權藉不在焉。何以知其然也?昔者趙氏襲衛,車舍人不休傅,衛國城割平,衛八門土而二門墮矣,此亡國之形也。衛君跣行,告於魏。魏王身被甲底劍,挑趙索戰。邯鄲之中騖,河、山之間亂。衛得是藉也,亦收餘甲而北面,殘剛平,墮中牟之郭。衛非強於趙也,譬之衛矢而魏弦機也,藉力魏而有河東之地。趙氏懼,楚人救趙而伐魏,戰於州西,出梁門,軍舍林中,馬飲於大河。趙得是藉也,亦襲魏之河北燒棘溝,墜黃城。故剛平之殘也,中牟之墮也,黃城之墜也,棘溝之燒也,此皆非趙、魏之欲也。然二國勸行之者,何也?衛明於時權之藉也。今世之為國者不然矣。兵弱而好敵強,國罷而好眾怨,事敗而好鞠之,兵弱而憎下人也,地狹而好敵大,事敗而好長詐。行此六者而求伯,則遠矣。
「臣聞善為國者,順民之意,而料兵之能,然後從於天下。故約不為人主怨,伐不為人挫強。如此,則兵不費,權不輕,地可廣,欲可成也。昔者,齊之與韓、魏伐秦、楚也,戰非甚疾也,分地又非多韓、魏也,然而天下獨歸咎於齊者,何也?以其為韓、魏主怨也。且天下遍用兵矣,齊、燕戰,而趙氏兼中山,秦、楚戰韓、魏不休,而宋、越專用其兵。此十國者,皆以相敵為意,而獨舉心於齊者,何也?約而好主怨,伐而好挫強也。且夫強大之禍,常以王人為意也;夫弱小之殃,常以謀人為利也。是以大國危,小國滅也。大國之計,莫若後起而重伐不義。夫後起之籍與多而兵勁,則事以眾強適罷寡也,兵必立也。事不塞天下之心,則利必附矣。大國行此,則名號不攘而至,伯王不為而立矣。小國之情,莫如僅靜而寡信諸侯。僅靜,則四鄰不反;寡信諸侯,則天下不賣。外不賣,內不反,則檳禍朽腐而不用,幣帛矯蠹而不服矣。小國道此,則不祠而福矣,不貸而見足矣。故曰:祖仁者王,立義者伯,用兵窮者亡。何以知其然也?昔吳王夫差以強大為天下先,強襲郢而棲越,身從諸侯之君,而卒身死國亡,為天下戮者,何也?此夫差平居而謀王,強大而喜先天下之禍也。昔者萊、莒好謀,陳、蔡好詐,莒恃越而滅,蔡恃晉而亡,此皆內長詐,外信諸侯之殃也。由此觀之,則強弱大小之禍,可見於前事矣。
「語曰:『麒驥之衰也,駑馬先之;孟賁之倦也,女子勝之。』夫駑馬、女子,筋骨力勁,非賢於騏驥、孟賁也。何則?後起之藉也。今天下之相與也不並滅,有而案兵而後起,寄怨而誅不直,微用兵而寄於義,則亡天下可跼足而須也。明於諸侯之故,察於地形之理者,不約親,不相質而固,不趨而疾,眾事而不反,交割而不相憎,俱彊而加以親。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何以知其然也?昔者齊、燕戰於桓之曲,燕不勝,十萬之眾盡。胡人襲燕樓煩數縣,取其牛馬。夫胡之與齊非素親也,而用兵又非約質而謀燕也,然而甚於相趨者,何也?何則形同憂而兵趨利也。由此觀之,約於同形則利長,後起則諸侯可趨役也。
「故明主察相,誠欲以伯王也為志,則戰攻非所先。戰者,國之殘也,而都縣之費也。殘費已先,而能從諸侯者寡矣。彼戰者之為殘也,士聞戰則輸私財而富軍巿,輸飲食而待死士,令折轅而炊之,殺牛而觴士,則是路君之道也。中人禱祝,君翳釀,通都小縣置社,有巿之邑莫不止事而奉王,則此虛中之計也。夫戰之明日,屍死扶傷,雖若有功也,軍出費,中哭泣,則傷主心矣。死者破家而葬,夷傷者空財而共藥,完者內酺而華樂,故其費與死傷者鈞。故民之所費也,十年之田而不償也。軍之所出,矛戟折,鐶弦絕,傷弩,破車,罷馬,亡矢之大半。甲兵之具,官之所私出也,士大夫之所匿,廝養士之所竊,十年之田而不償也。天下有此再費者,而能從諸侯寡矣。攻城之費,百姓理襜蔽,舉衝櫓,家雜總,身窟穴,中罷於刀金。而士困於土功,將不釋甲,期數而能拔城者為亟耳。上倦於教,士斷於兵,故三下城而能勝敵者寡矣。故曰:彼戰攻者,非所先也。何以知其然也?昔智伯瑤攻范、中行氏,殺其君,滅其國,又西圍晉陽,吞兼二國,而憂一主,此用兵之盛也。然而智伯卒身死國亡,為天下笑者,何謂也?兵先戰攻,而滅二子患也。日者,中山悉起而迎燕、趙,南戰於長子,敗趙氏;北戰於中山,克燕軍,殺其將。夫中山千乘之國也,而敵萬乘之國二,再戰北勝,此用兵之上節也。然而國遂亡,君臣於齊者,何也?不嗇於戰攻之患也。由此觀之,則戰攻之敗,可見於前事。
「今世之所謂善用兵者,終戰比勝,而守不可拔,天下稱為善,一國得而保之,則非國之利也。臣聞戰大勝者,其士多死而兵益弱;守而不可拔者,其百姓罷而城郭露。夫士死於外,民殘於內,而城郭露於境,則非王之樂也。今夫鵠的非咎罪於人也,便弓引弩而射之,中者則善,不中則愧,少長貴賤,則同心於貫之者,何也?惡其示人以難也。今窮戰比勝,而守必不拔,則是非徒示人以難也,又且害人者也,然則天下仇之必矣。夫罷士露國,而多與天下為仇,則明君不居也;素用強兵而弱之,則察相不事。彼明君察相者,則五兵不動而諸侯從,辭讓而重賂至矣。故明君之攻戰也,甲兵不出於軍而敵國勝,衝櫓不施而邊城降,士民不知而王業至矣。彼明君之從事也,用財少,曠日遠而為利長者。故曰:兵後起則諸侯可趨役也。
「臣之所聞,攻戰之道非師者,雖有百萬之軍,比之堂上;雖有闔閭、吳起之將,禽之戶內;千丈之城,拔之尊俎之間;百尺之衝,折之衽席之上。故鍾鼓竽瑟之音不絕,地可廣而欲可成;和樂倡優侏儒之笑不之,諸侯可同日而致也。故名配天地不為尊,利制海內不為厚。故夫善為王業者,在勞天下而自佚,亂天下而自安,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也。何以知其然?佚治在我,勞亂在天下,則王之道也。銳兵來則拒之,患至則趨之,使諸侯無成謀,則其國無宿憂矣。何以知其然矣?昔者魏王擁土千里,帶甲三十六萬,其強而拔邯鄲,西圍定陽,又從十二諸侯朝天子,以西謀秦。秦王恐之,寢不安席,食不甘味,令於境內,盡堞中為戰具,竟為守備,為死士置將,以待魏氏。衛鞅謀於秦王曰:『夫魏氏其功大,而令行於天下,有十二諸侯而朝天子,其與必眾。故以一秦而敵大魏,恐不如。王何不使臣見魏王,則臣請必北魏矣。』秦王許諾。衛鞅見魏王曰:『大王之功大矣,令行於天下矣。今大王之所從十二諸侯,非宋、衛也,則鄒、魯、陳、蔡,此固大王之所以鞭箠使也,不足以王天下。大王不若北取燕,東伐齊,則趙必從矣;西取秦,南伐楚,則韓必從矣。大王有伐齊、楚心,而從天下之志,則王業見矣。大王不如先行王服,然後圖齊、楚。』魏王說於衛鞅之言也,故身廣公宮,制丹衣柱,建九斿,從七星之旟。此天子之位也,而魏王處之。於是齊、楚怒,諸侯奔齊,齊人伐魏,殺其太子,覆其十萬之軍。魏王大恐,跣行按兵於國,而東次於齊,然後天下乃舍之。當是時,秦王垂拱受西河之外,而不以德魏王。故曰衛鞅之始與秦王計也,謀約不下席,言於尊俎之間,謀成於堂上,而魏將以禽於齊矣;衝櫓未施,而西河之外入於秦矣。此臣之所謂比之堂上,禽將戶內,拔城於尊俎之間,折衝席上者也。」
適口之餠 (적구지병)
適口之餠(적구지병)
適 맞을 적 | 口 입 구 | 之 갈 지 | 餠 떡 병 |
입에 맞는 떡으로, 제 마음에 꼭 드는 사물(事物)을 이르는 말 .
適 맞을 적 | 口 입 구 | 之 갈 지 | 餠 떡 병 |
입에 맞는 떡으로, 제 마음에 꼭 드는 사물(事物)을 이르는 말 .
戰國策 (전국책, Zhànguócè)
戰國策(전국책)
異名:
战国策(zhànguócè)
중국(中國) 전한(前漢) 시대(時代)의 유향(劉向)이 전국(戰國) 시대(時代) 12개국(個國)에서 유세객(遊說客)들이 세운 지략(智略)을 모아 엮어 편찬(編纂)한 33권의 책(冊)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 ~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그러나 초기의 자료는 아주 미흡한 상태여서 북송의 증공(曾鞏)이 분실된 자료를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찾아 보정(補訂)하여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초(楚),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12개국 486장으로 정리하였다. 조(趙)ㆍ위(魏)ㆍ한(韓) 3국이 진(晉)을 분할한 데서 시작하여 연(燕)의 멸망에서 끝난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중요 사료(史料)였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이나 문장이 매우 난해하고 거칠고 누락된 부분이 많아 후에 여러 사람이 주를 달아 교주본(校注本)이 나왔다. 동한(東漢)의 고유(高誘), 남송의 요굉(姚宏)이 추가 주를 달아 《고씨주전국책(高氏注戰國策)》이 나왔다. 한편, 같은 시기 포표(鮑彪)가 고유(高誘)의 주를 없애고 스스로 주를 달아 《전국책주(戰國策注)》를 내놓았다. 후에 원대(元代) 오사도(吳師道)가 요굉(姚宏)본과 포표(鮑彪)본을 근거로 《전국책교주(戰國策校注)》를 내놓았다. 그러나 큰 주류는 요굉의 교주본(남송대, 33권, 원본에 가장 가까움)과 포표의 교주본(남송대, 10권, 1147년 완성)이 중심이다.
전국책의 저자 논쟁이 있는데, 무명씨설, 유향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참여설, 종횡가를 배운 사람의 저작 설, 유향(劉向) 일가의 학문설 등으로 아직도 일부 논쟁이 있다. 원작에 주석을 달아 교주본을 낸 사람도 많다. 증공(曾鞏), 요굉(姚宏), 포표(鮑彪), 오사도(吳師道), 홍매(洪邁), 오래(吳萊), 김정위(金正煒) 등 10명에 이른다.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은 왕 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책사(策士), 모사(謀士), 설객(說客)들이 온갖 꾀를 다 부린 이야기가 중심으로 언론(言論)과 사술(詐術)이다. 그리하여 영어로는 Intrigues(음모, 술책)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칠웅(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趙), 위(魏), 한(韓)을 중심으로 그 외에 작은 소제후국들이 많았다. 이들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군사, 외교를 능률적으로 수행하여 상대국에 승리하고 그리하여 천하를 얻을 심오한 이념과 책략들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 또한 섭정(聶政), 손빈(孫臏), 상앙(喪鞅), 소진(蘇秦), 맹상군(孟嘗君), 맹자(孟子), 여불위(呂不韋), 형가(荊軻), 묵자(墨子), 자순(子順) 등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하고, 당시에 유행한 존왕양이(尊王攘夷),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합종연횡(合從連橫 - 縱橫家, 合從家), 원교근종(遠交近攻) 등 각종 사상과 전략이 등장한다.
고사성어
卷十二•齊策五
騏麟之衰也(기린지쇠야) | 駑馬先之(노마선지) |
卷十七•楚策四
傷弓之鳥(상궁지조) |
卷三十•燕策二
蚌鷸之爭(방휼지쟁) | 漁父之利(어부지리) |
異名:
战国策(zhànguócè)
중국(中國) 전한(前漢) 시대(時代)의 유향(劉向)이 전국(戰國) 시대(時代) 12개국(個國)에서 유세객(遊說客)들이 세운 지략(智略)을 모아 엮어 편찬(編纂)한 33권의 책(冊)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 ~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그러나 초기의 자료는 아주 미흡한 상태여서 북송의 증공(曾鞏)이 분실된 자료를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찾아 보정(補訂)하여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초(楚),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12개국 486장으로 정리하였다. 조(趙)ㆍ위(魏)ㆍ한(韓) 3국이 진(晉)을 분할한 데서 시작하여 연(燕)의 멸망에서 끝난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중요 사료(史料)였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이나 문장이 매우 난해하고 거칠고 누락된 부분이 많아 후에 여러 사람이 주를 달아 교주본(校注本)이 나왔다. 동한(東漢)의 고유(高誘), 남송의 요굉(姚宏)이 추가 주를 달아 《고씨주전국책(高氏注戰國策)》이 나왔다. 한편, 같은 시기 포표(鮑彪)가 고유(高誘)의 주를 없애고 스스로 주를 달아 《전국책주(戰國策注)》를 내놓았다. 후에 원대(元代) 오사도(吳師道)가 요굉(姚宏)본과 포표(鮑彪)본을 근거로 《전국책교주(戰國策校注)》를 내놓았다. 그러나 큰 주류는 요굉의 교주본(남송대, 33권, 원본에 가장 가까움)과 포표의 교주본(남송대, 10권, 1147년 완성)이 중심이다.
전국책의 저자 논쟁이 있는데, 무명씨설, 유향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참여설, 종횡가를 배운 사람의 저작 설, 유향(劉向) 일가의 학문설 등으로 아직도 일부 논쟁이 있다. 원작에 주석을 달아 교주본을 낸 사람도 많다. 증공(曾鞏), 요굉(姚宏), 포표(鮑彪), 오사도(吳師道), 홍매(洪邁), 오래(吳萊), 김정위(金正煒) 등 10명에 이른다.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은 왕 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책사(策士), 모사(謀士), 설객(說客)들이 온갖 꾀를 다 부린 이야기가 중심으로 언론(言論)과 사술(詐術)이다. 그리하여 영어로는 Intrigues(음모, 술책)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칠웅(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趙), 위(魏), 한(韓)을 중심으로 그 외에 작은 소제후국들이 많았다. 이들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군사, 외교를 능률적으로 수행하여 상대국에 승리하고 그리하여 천하를 얻을 심오한 이념과 책략들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 또한 섭정(聶政), 손빈(孫臏), 상앙(喪鞅), 소진(蘇秦), 맹상군(孟嘗君), 맹자(孟子), 여불위(呂不韋), 형가(荊軻), 묵자(墨子), 자순(子順) 등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하고, 당시에 유행한 존왕양이(尊王攘夷),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합종연횡(合從連橫 - 縱橫家, 合從家), 원교근종(遠交近攻) 등 각종 사상과 전략이 등장한다.
고사성어
卷十二•齊策五
騏麟之衰也(기린지쇠야) | 駑馬先之(노마선지) |
卷十七•楚策四
傷弓之鳥(상궁지조) |
卷三十•燕策二
蚌鷸之爭(방휼지쟁) | 漁父之利(어부지리) |
貞觀政要 (정관정요) 吳兢 (오긍)
貞觀政要(정관정요) 吳兢(오긍)
중국 당나라의 오긍(吳兢)이 지은 책. 태종이 가까운 신하들과 정관 시대에 행한 정치상의 득실에 관하여 문답한 말을 모아 엮었다. 10권.
관련 한자어
割股啖腹(할고담복)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인다는 뜻으로, 결국 제 살을 깎아먹어 제 손해가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임금이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임무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다. 백성을 다치게 하거나 그들의 몸을 바쳐 자신을 받들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제가 제 허벅지살을 잘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萬死一生(만사일생)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는 뜻.
林深則鳥棲 水廣則魚游 仁義積則 物自歸之 (임심즉조서 수광즉어유 인의적즉 물자귀지) 깊은 숲에는 새들이 서식하고, 넓은 물에는 물고기들이 놀듯이, 인의를 쌓으면 만물이 스스로 귀의한다.
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그 의지의 강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
중국 당나라의 오긍(吳兢)이 지은 책. 태종이 가까운 신하들과 정관 시대에 행한 정치상의 득실에 관하여 문답한 말을 모아 엮었다. 10권.
관련 한자어
割股啖腹(할고담복)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인다는 뜻으로, 결국 제 살을 깎아먹어 제 손해가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임금이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임무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다. 백성을 다치게 하거나 그들의 몸을 바쳐 자신을 받들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제가 제 허벅지살을 잘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배는 부르겠지만 몸은 죽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萬死一生(만사일생)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는 뜻.
林深則鳥棲 水廣則魚游 仁義積則 物自歸之 (임심즉조서 수광즉어유 인의적즉 물자귀지) 깊은 숲에는 새들이 서식하고, 넓은 물에는 물고기들이 놀듯이, 인의를 쌓으면 만물이 스스로 귀의한다.
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그 의지의 강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
電光石火 (전광석화)
電光石火(전광석화)
電 번개 전 | 光 빛 광 | 石 돌 석 | 火 불 화 |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①극히 짧은 시간(時間) ②아주 신속(迅速)한 동작(動作) ③일이 매우 빠른 것을 가리키는 말
電 번개 전 | 光 빛 광 | 石 돌 석 | 火 불 화 |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①극히 짧은 시간(時間) ②아주 신속(迅速)한 동작(動作) ③일이 매우 빠른 것을 가리키는 말
鄭谷 (정곡, Zhèng Gǔ)
鄭谷(정곡)
異名: 左郑谷(Zhèng Gǔ)
중국 당(唐)나라 말기 시인. 7세부터 시를 잘 지었다고 함.
異名: 左郑谷(Zhèng Gǔ)
중국 당(唐)나라 말기 시인. 7세부터 시를 잘 지었다고 함.
切磋琢磨 (절차탁마)
切磋琢磨(절차탁마)
切磋琢磨(qiēcuōzhuómó)
切 끊을 절, 온통 체 | 磋 갈 차, 삭은 뼈 자 | 琢 다듬을 탁 | 磨 갈 마 |
지난날 ‘절(切)’·‘차(磋)’·‘탁(琢)’·‘마(磨)’는 각각 뼈·상아·옥·돌에 대한 가공을 가리켰음.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옥돌을 갈고 깎은 것처럼 학문 덕행을 닦음.
carve and polish—learn from each other by exchanging views; study and learn by mutual discussion
《대학》에 보면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여절여차여탁여마"에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이다.
언변과 재기가 뛰어난 자공이 어느 날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선생님,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부자가 되더라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어떤 사람일까요?" "좋긴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자가 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니라." 공자(孔子)의 대답(對答)에 이어 자공은 또 묻기를 '『시경(詩經)』'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는 뼈나 상아를 잘라서 줄로 간 것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 서 모래로 닦은 것처럼 빛나는 것 같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양에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까요?" 공자(孔子)는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자공아 이제 너와 함께 '『시경(詩經)』'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 수 있는 인물(人物)이로다."
[출전]
大學(대학) | 詩經(시경)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琢磨(탁마) | 切磋(절차) | 切磨(절마) |
切磋琢磨(qiēcuōzhuómó)
切 끊을 절, 온통 체 | 磋 갈 차, 삭은 뼈 자 | 琢 다듬을 탁 | 磨 갈 마 |
지난날 ‘절(切)’·‘차(磋)’·‘탁(琢)’·‘마(磨)’는 각각 뼈·상아·옥·돌에 대한 가공을 가리켰음.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옥돌을 갈고 깎은 것처럼 학문 덕행을 닦음.
carve and polish—learn from each other by exchanging views; study and learn by mutual discussion
《대학》에 보면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여절여차여탁여마"에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이다.
언변과 재기가 뛰어난 자공이 어느 날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선생님,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으며, 부자가 되더라도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어떤 사람일까요?" "좋긴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자가 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니라." 공자(孔子)의 대답(對答)에 이어 자공은 또 묻기를 '『시경(詩經)』'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는 뼈나 상아를 잘라서 줄로 간 것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 서 모래로 닦은 것처럼 빛나는 것 같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양에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까요?" 공자(孔子)는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자공아 이제 너와 함께 '『시경(詩經)』'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 수 있는 인물(人物)이로다."
[출전]
大學(대학) | 詩經(시경)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琢磨(탁마) | 切磋(절차) | 切磨(절마) |
爭天下者必先爭人 (쟁천하자필선쟁인)
爭天下者必先爭人(쟁천하자필선쟁인)
천하를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사람 얻기를 다툰다. 큰 흐름에 밝은 이는 사람을 얻고, 작은 계책을 살피는 이는 사람을 잃는다.
[출전]
관자(管子)
천하를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사람 얻기를 다툰다. 큰 흐름에 밝은 이는 사람을 얻고, 작은 계책을 살피는 이는 사람을 잃는다.
[출전]
관자(管子)
才占八斗 (재점팔두, cáizhànbādǒu)
才占八斗(재점팔두)
才占八斗(cáizhànbādǒu)
才 재주 재 | 占 차지할 점 | 八 여덟 팔 | 斗 말 두 |
'재주가 여덟 말을 차지한다'라는 뜻으로, 글재주가 출중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의 건안문학(建安文學)을 대표하는 조식(曹植)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팔두지재(八斗之才)라고도 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아들로,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출중하였다.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의 하필성문(下筆成文)이라는 고사성어가 그에게서 유래되었다. 조조는 이처럼 글재주가 뛰어난 조식을 총애하여 맏아들 조비(曹丕)를 젖혀두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까지 하였다.
조조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지으라고 하고는 만일 시를 완성하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걸음을 옮겨 일곱 걸음을 걷기도 전에 한 수의 시를 완성하였으니, 이 시가 바로 〈칠보시(七步詩)〉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칠보지재(七步之才: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글재주)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남북조시대의 사령운(謝靈運)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당대에 첫손 꼽히는 산수시인(山水詩人)이었다. 그는 조식을 평하여 '천하에 재능이 한 섬이 있다면, 조자건(曹子建:자건은 조식의 자)이 홀로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을 나누어 가진다(天下才有一石, 曹子建獨占八斗, 我得一斗, 今天下共分一斗)'라고 칭찬하였다.
사령운의 평은 송(宋)나라 때 간행된 작자 미상의 《석상담(釋常談)》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재점팔두는 다른 사람이 따르지 못할 정도의 출중한 재능이나 그러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八斗之才(팔두지재) |
才高八斗(cáigāobādǒu) 재능이 출중하다. 비범하다. 풍부하다. |
반의어
才疏学浅(cáishūxuéqiǎn) 식견이 넓지 못하고 학문도 깊지 못하다. |
참조어
下筆成文(하필성문) | 下笔成章(xiàbǐchéngzhāng) | 七步之才(칠보지재, qībùzhīcái) | 煮豆燃萁(자두연기) |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
釋常談, 석상담, 사령운, 謝靈運, 조식, 曹植 |
才占八斗(cáizhànbādǒu)
才 재주 재 | 占 차지할 점 | 八 여덟 팔 | 斗 말 두 |
'재주가 여덟 말을 차지한다'라는 뜻으로, 글재주가 출중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의 건안문학(建安文學)을 대표하는 조식(曹植)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팔두지재(八斗之才)라고도 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아들로,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출중하였다.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의 하필성문(下筆成文)이라는 고사성어가 그에게서 유래되었다. 조조는 이처럼 글재주가 뛰어난 조식을 총애하여 맏아들 조비(曹丕)를 젖혀두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까지 하였다.
조조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지으라고 하고는 만일 시를 완성하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걸음을 옮겨 일곱 걸음을 걷기도 전에 한 수의 시를 완성하였으니, 이 시가 바로 〈칠보시(七步詩)〉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칠보지재(七步之才: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글재주)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남북조시대의 사령운(謝靈運)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당대에 첫손 꼽히는 산수시인(山水詩人)이었다. 그는 조식을 평하여 '천하에 재능이 한 섬이 있다면, 조자건(曹子建:자건은 조식의 자)이 홀로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을 나누어 가진다(天下才有一石, 曹子建獨占八斗, 我得一斗, 今天下共分一斗)'라고 칭찬하였다.
사령운의 평은 송(宋)나라 때 간행된 작자 미상의 《석상담(釋常談)》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재점팔두는 다른 사람이 따르지 못할 정도의 출중한 재능이나 그러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八斗之才(팔두지재) |
才高八斗(cáigāobādǒu) 재능이 출중하다. 비범하다. 풍부하다. |
반의어
才疏学浅(cáishūxuéqiǎn) 식견이 넓지 못하고 학문도 깊지 못하다. |
참조어
下筆成文(하필성문) | 下笔成章(xiàbǐchéngzhāng) | 七步之才(칠보지재, qībùzhīcái) | 煮豆燃萁(자두연기) |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
釋常談, 석상담, 사령운, 謝靈運, 조식, 曹植 |
才勝德薄 (재승덕박)
才勝德薄(재승덕박)
才 재주 재 | 勝 이길 승 | 德 큰 덕, 덕 덕 | 薄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 |
재주가 많으면 덕이 모자란다.
才 재주 재 | 勝 이길 승 | 德 큰 덕, 덕 덕 | 薄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 |
재주가 많으면 덕이 모자란다.
爭先恐後 (쟁선공후)
爭先恐後(쟁선공후)
爭 다툴 쟁 | 先 먼저 선 | 恐 두려워할 공 | 後 뒤 후 |
爭先恐後란 격렬한 경쟁의 모습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는 왕자기(王子期)라는 유명한 마부가 있었다. 조(趙)나라의 대부 양주(襄主)는 왕자기에게서 말 부리는 기술을 배우고, 그와 마차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러나 양주는 세 번이나 말을 바꾸었지만 모두 지고 말았다. 몹시 불만스런 표정의 양주에게 왕자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을 제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가 일치되어야 하고, 또 부리는 사람과 말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께서는 저를 앞지르고자 초조해 하고, 또 앞서 달릴 때에는 제가 뒤쫓아오지나 않을까 하여 걱정하셨습니다[君後則欲逮臣, 先則恐捷于臣]. 대부께서는 앞서든지 뒤서든지간에 내내 저에게 마음을 쓰고 계시니, 어떻게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대부께서 저에게 뒤처진 까닭입니다.
爭 다툴 쟁 | 先 먼저 선 | 恐 두려워할 공 | 後 뒤 후 |
爭先恐後란 격렬한 경쟁의 모습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는 왕자기(王子期)라는 유명한 마부가 있었다. 조(趙)나라의 대부 양주(襄主)는 왕자기에게서 말 부리는 기술을 배우고, 그와 마차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러나 양주는 세 번이나 말을 바꾸었지만 모두 지고 말았다. 몹시 불만스런 표정의 양주에게 왕자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을 제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가 일치되어야 하고, 또 부리는 사람과 말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께서는 저를 앞지르고자 초조해 하고, 또 앞서 달릴 때에는 제가 뒤쫓아오지나 않을까 하여 걱정하셨습니다[君後則欲逮臣, 先則恐捷于臣]. 대부께서는 앞서든지 뒤서든지간에 내내 저에게 마음을 쓰고 계시니, 어떻게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대부께서 저에게 뒤처진 까닭입니다.
自畵自讚 (자화자찬)
自畵自讚(자화자찬)
自 스스로 자 | 畵 그림 화 | 自 스스로 자 | 讚 기릴 찬 |
자기가 한 일이나 행동을 스스로 추켜 칭찬함.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신이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말하며 자찬(自讚)이라고도 한다. 제 일을 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비유한 말.
自 스스로 자 | 畵 그림 화 | 自 스스로 자 | 讚 기릴 찬 |
자기가 한 일이나 행동을 스스로 추켜 칭찬함.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신이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말하며 자찬(自讚)이라고도 한다. 제 일을 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비유한 말.
自暴自棄 (자포자기)
自暴自棄(자포자기)
自暴自弃(zìbàozìqì)
自 스스로 자 | 暴 사나울 포, 사나울 폭, 쬘 폭, 앙상할 박 | 自 스스로 자 | 棄 버릴 기 |
마음에 불만이 있어 행동을 되는 대로 마구 취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음.
to give oneself up as hopeless; to abandon oneself to despair
이 말은 원래 孟子(맹자)의 離婁篇(이루편) 上(상)에 나오는데 오늘날의 쓰임새와는 좀 달랐다. 요즘에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당초에는 격이 더 높은 말로 쓰였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을 「맹자」에 써 있는 대로 따라 읽어보자.
맹자가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할 수가 없다. 또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할 것이 못된다. 입만 열면 예의도덕을 헐뜯는 것을 「자포」라 하고 仁(인)이나 義(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런 것은 도저히 자기 손에는 닿지 않는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라고 한다.도덕의 근본 이념인 「인」은 편안히 살 수 있는 집과 같은 것이며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다. 세상 사람들이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두고도 걷지 않으려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로다』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暴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爲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爲之自暴也。
「이루편 상」에는 이같은 맹자의 말만 나열되어 있을 뿐 이것이 언제 누구에게 한 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맹자는 자포와 자기를 구별해서 쓴 것 같지만 요즘에는 자포자기라하여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자기자신을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출전]
孟子(맹자) 이루상편(離婁上篇)
自暴自弃(zìbàozìqì)
自 스스로 자 | 暴 사나울 포, 사나울 폭, 쬘 폭, 앙상할 박 | 自 스스로 자 | 棄 버릴 기 |
마음에 불만이 있어 행동을 되는 대로 마구 취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음.
to give oneself up as hopeless; to abandon oneself to despair
이 말은 원래 孟子(맹자)의 離婁篇(이루편) 上(상)에 나오는데 오늘날의 쓰임새와는 좀 달랐다. 요즘에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당초에는 격이 더 높은 말로 쓰였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을 「맹자」에 써 있는 대로 따라 읽어보자.
맹자가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할 수가 없다. 또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할 것이 못된다. 입만 열면 예의도덕을 헐뜯는 것을 「자포」라 하고 仁(인)이나 義(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런 것은 도저히 자기 손에는 닿지 않는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라고 한다.도덕의 근본 이념인 「인」은 편안히 살 수 있는 집과 같은 것이며 「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다. 세상 사람들이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두고도 걷지 않으려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로다』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暴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爲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爲之自暴也。
「이루편 상」에는 이같은 맹자의 말만 나열되어 있을 뿐 이것이 언제 누구에게 한 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맹자는 자포와 자기를 구별해서 쓴 것 같지만 요즘에는 자포자기라하여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자기자신을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출전]
孟子(맹자) 이루상편(離婁上篇)
資治通鑑 (자치통감) 司馬光 (사마광)
資治通鑑(자치통감) 司馬光(사마광)
중국 북송(北宋)의 사마 광(司馬光:1019~1086)이 1065년~1084년에 편찬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
294권. 《통감(通鑑)》이라고도 한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陳紀) 10권, 수기(隋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 등 모두 16기(紀) 24권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사마 광이 《통지(通志)》 8권을 찬진(撰進)하자 영종(英宗)이 편찬국(編纂局)을 개설하고 사마 광의 주재하에 유반(劉攽)이 전 ·후한(前後漢)을, 유서(劉恕)가 삼국(三國)으로부터 남북조(南北朝)까지를, 범조우(范祖禹)가 당(唐)나라 및 5대를 각각 분담하여 기술하였다. 정사(正史)는 물론 실록(實錄) ·야사(野史) ·소설(小說) ·묘지류(墓誌類) 등 322종의 각종 자료를 참고로 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서법(書法)에 따라 완성하여 신종(神宗)이 《자치통감》이라 이름을 붙이고 자서(自序)를 지었다.
자치통감이라 함은 치도(治道)에 자료가 되고 역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는 뜻으로, 곧 역대 사실(史實)을 밝혀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며, 또한 왕조 흥망의 원인과 대의명분을 밝히려 한 데 그 뜻이 있었다. 따라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고 독특한 사관(史觀)에 의하여 기사를 선택하고, 정치나 인물의 득실(得失)을 평론하여 감계(鑑戒)가 될 만한 사적을 많이 습록(拾錄)하였다. 편년에 있어서도 3국의 경우에는 위(魏)나라의 연호를, 남북조의 경우에는 남조의 연호를 각각 써서 그것이 정통(正統)임을 명시하였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사에는 ‘신광왈(臣光曰)’이라고 하여 사마 광 자신의 평론을 가하고 있어 그의 사관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사실의 진부에 대해서는 사마 광이 따로 《통감고이(通鑑考異)》 30권을 지어 사실의 고증에 참고가 되게 하였으며, 《통감목록(通鑑目錄)》 30권과 《통감석례(通鑑釋例)》 1권에서는 각각 목록 및 범례를 나타내고 있다. 또 사마 광은 《계고록(稽古錄)》 20권을 지어 이 책 내용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중국 북송(北宋)의 사마 광(司馬光:1019~1086)이 1065년~1084년에 편찬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
294권. 《통감(通鑑)》이라고도 한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陳紀) 10권, 수기(隋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 등 모두 16기(紀) 24권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사마 광이 《통지(通志)》 8권을 찬진(撰進)하자 영종(英宗)이 편찬국(編纂局)을 개설하고 사마 광의 주재하에 유반(劉攽)이 전 ·후한(前後漢)을, 유서(劉恕)가 삼국(三國)으로부터 남북조(南北朝)까지를, 범조우(范祖禹)가 당(唐)나라 및 5대를 각각 분담하여 기술하였다. 정사(正史)는 물론 실록(實錄) ·야사(野史) ·소설(小說) ·묘지류(墓誌類) 등 322종의 각종 자료를 참고로 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서법(書法)에 따라 완성하여 신종(神宗)이 《자치통감》이라 이름을 붙이고 자서(自序)를 지었다.
자치통감이라 함은 치도(治道)에 자료가 되고 역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는 뜻으로, 곧 역대 사실(史實)을 밝혀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며, 또한 왕조 흥망의 원인과 대의명분을 밝히려 한 데 그 뜻이 있었다. 따라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고 독특한 사관(史觀)에 의하여 기사를 선택하고, 정치나 인물의 득실(得失)을 평론하여 감계(鑑戒)가 될 만한 사적을 많이 습록(拾錄)하였다. 편년에 있어서도 3국의 경우에는 위(魏)나라의 연호를, 남북조의 경우에는 남조의 연호를 각각 써서 그것이 정통(正統)임을 명시하였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사에는 ‘신광왈(臣光曰)’이라고 하여 사마 광 자신의 평론을 가하고 있어 그의 사관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사실의 진부에 대해서는 사마 광이 따로 《통감고이(通鑑考異)》 30권을 지어 사실의 고증에 참고가 되게 하였으며, 《통감목록(通鑑目錄)》 30권과 《통감석례(通鑑釋例)》 1권에서는 각각 목록 및 범례를 나타내고 있다. 또 사마 광은 《계고록(稽古錄)》 20권을 지어 이 책 내용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資治通鑑綱目 (자치통감강목) 朱憙 (주희)·趙師淵 (조사연)
資治通鑑綱目(자치통감강목) 朱憙(주희)·趙師淵(조사연)
송(宋)나라 주희(朱憙:1130∼1200)가 쓴 역사서.
59권이다. 《통감강목(通鑑綱目)》, 《강목(綱目)》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으로 강목(綱目)을 만든 책이며, BC 403년에서부터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정통(正統)·비정통을 분별하고 대요(大要:總)와 세목(細目:目)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주희는 대요만을 썼고, 그의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하였다.
역사적인 사실의 기술보다는 의리(義理)를 중히 여기는 데 치중하였으므로 너무 간단히 적어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내용도 적지 않다. 3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하고 위(魏)나라를 비정통으로 하는 등 송학(宋學)의 도덕적 사관이 엿보이는 곳도 많다. 한국에서는 세종 때 교주(校註)한 사정전 훈의본(思政殿訓義本)인 《훈의자치통감강목(訓義資治通鑑綱目)》이 유행하였으며, 그후 여러 차례 중간(重刊)되었다.
관련 인물
朱憙(주희) |
송(宋)나라 주희(朱憙:1130∼1200)가 쓴 역사서.
59권이다. 《통감강목(通鑑綱目)》, 《강목(綱目)》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으로 강목(綱目)을 만든 책이며, BC 403년에서부터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정통(正統)·비정통을 분별하고 대요(大要:總)와 세목(細目:目)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주희는 대요만을 썼고, 그의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하였다.
역사적인 사실의 기술보다는 의리(義理)를 중히 여기는 데 치중하였으므로 너무 간단히 적어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내용도 적지 않다. 3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하고 위(魏)나라를 비정통으로 하는 등 송학(宋學)의 도덕적 사관이 엿보이는 곳도 많다. 한국에서는 세종 때 교주(校註)한 사정전 훈의본(思政殿訓義本)인 《훈의자치통감강목(訓義資治通鑑綱目)》이 유행하였으며, 그후 여러 차례 중간(重刊)되었다.
관련 인물
朱憙(주희) |
莊周胡蝶夢 (장주호접몽)
莊周胡蝶夢(장주호접몽)
莊 씩씩할 장, 전장 장 | 周 두루 주 | 胡 되 호, 오랑캐 이름 호, 수염 호 | 蝶 나비 접 | 夢 꿈 몽 |
장주가 꾼 나비 꿈
莊 씩씩할 장, 전장 장 | 周 두루 주 | 胡 되 호, 오랑캐 이름 호, 수염 호 | 蝶 나비 접 | 夢 꿈 몽 |
장주가 꾼 나비 꿈
自重自愛 (자중자애)
자중자애(自重自愛)
①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삼가 신중하게 함. ②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낌.
①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삼가 신중하게 함. ②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낌.
自中之亂 (자중지란)
自中之亂(자중지란)
自 스스로 자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亂 어지러울 란(난) |
자기편 속에서 일어난 싸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內紛(내분) | 內爭(내쟁) | 內訌(내홍) | 内讧(nèihòng) | 蕭牆之亂(소장지란) | 蕭牆之變(소장지변) | 蕭牆之憂(소장지우) |
自 스스로 자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亂 어지러울 란(난) |
자기편 속에서 일어난 싸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內紛(내분) | 內爭(내쟁) | 內訌(내홍) | 内讧(nèihòng) | 蕭牆之亂(소장지란) | 蕭牆之變(소장지변) | 蕭牆之憂(소장지우) |
庄周梦蝶 (장주몽접, zhuāngzhōumèngdié)
庄周梦蝶(zhuāngzhōumèngdié)
Zhuangzi(莊子, 庄子) dreams of a butterfly (or is it the butterfly dreaming of Zhuangzi?)
유의어
胡蝶夢(호접몽)
Zhuangzi(莊子, 庄子) dreams of a butterfly (or is it the butterfly dreaming of Zhuangzi?)
유의어
胡蝶夢(호접몽)
莊子 (장자) 莊周 (장주) 02 齊物論 (제물론)
莊子(장자) 莊周(장주)
01 逍遙遊 02 齊物論(제물론) 03 養生主
1 齊物論: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荅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汝聞人籟而未聞地籟,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子游曰:“敢問其方。”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為風。是唯無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污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穾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眾竅為虛。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子游曰:“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2 齊物論: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為搆,日以心鬥。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若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為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喜怒哀樂,慮歎變慹,姚佚啟態;樂出虛,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3 齊物論: 非彼無我,非我無所取。是亦近矣,而不知其所為使。必有真宰,而特不得其眹。可形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百骸、九竅、六藏,賅而存焉,吾誰與為親?汝皆說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為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也。其遞相為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一受其成形,不亡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人之生也,固若是芒乎!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
4 齊物論: 夫隨其成心而師之,誰獨且無師乎?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愚者與有焉。未成乎心而有是非,是今日適越而昔至也。是以無有為有。無有為有,雖有神禹,且不能知,吾獨且奈何哉!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果有言邪?其未嘗有言邪?其以為異於鷇音,亦有辨乎,其無辨乎?道惡乎隱而有真偽?言惡乎隱而有是非?道惡乎往而不存?言惡乎存而不可?道隱於小成,言隱於榮華。故有儒、墨之是非,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則莫若以明。
5 齊物論: 物無非彼,物無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是以聖人不由,而照之於天,亦因是也。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果且有彼是乎哉?果且無彼是乎哉?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是亦一無窮,非亦一無窮也。故曰“莫若以明”。
6 齊物論: 以指喻指之非指,不若以非指喻指之非指也;以馬喻馬之非馬,不若以非馬喻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
可乎可,不可乎不可。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惡乎然?然於然。惡乎不然?不然於不然。物固有所然,物固有所可。無物不然,無物不可。故為是舉莛與楹,厲與西施,恢恑憰怪,道通為一。
其分也,成也;其成也,毀也。凡物無成與毀,復通為一。唯達者知通為一,為是不用而寓諸庸。庸也者,用也;用也者,通也;通也者,得也。適得而幾已。因是已。已而不知其然,謂之道。勞神明為一,而不知其同也,謂之朝三。何謂朝三?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眾狙皆悅。名實未虧,而喜怒為用,亦因是也。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是之謂兩行。
7 齊物論: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為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為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為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道之所以虧,愛之所以成。果且有成與虧乎哉?果且無成與虧乎哉?有成與虧,故昭氏之鼓琴也;無成與虧,故昭氏之不鼓琴也。昭文之鼓琴也,師曠之枝策也,惠子之據梧也,三子之知幾乎!皆其盛者也,故載之末年。唯其好之,以異於彼,其好之也,欲以明之彼。非所明而明之,故以堅白之昧終。而其子又以文之綸終,終身無成。若是而可謂成乎,雖我亦成也。若是而不可謂成乎,物與我無成也。是故滑疑之耀,聖人之所圖也。為是不用而寓諸庸,此之謂以明。
8 齊物論: 今且有言於此,不知其與是類乎?其與是不類乎?類與不類,相與為類,則與彼無以異矣。雖然,請嘗言之。有始也者,有未始有始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有有也者,有無也者,有未始有無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俄而有無矣,而未知有無之果孰有孰無也。今我則已有謂矣,而未知吾所謂之果有謂乎,其果無謂乎?
9 齊物論: 天下莫大於秋毫之末,而太山為小;莫壽於殤子,而彭祖為夭。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為一。既已為一矣,且得有言乎?既已謂之一矣,且得無言乎?一與言為二,二與一為三。自此以往,巧曆不能得,而況其凡乎!故自無適有,以至於三,而況自有適有乎!無適焉,因是已。
10 齊物論: 夫道未始有封,言未始有常,為是而有畛也。請言其畛:有左,有右,有倫,有義,有分,有辯,有競,有爭,此之謂八德。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曰:何也?聖人懷之,眾人辯之以相示也。故曰:辯也者,有不見也。夫大道不稱,大辯不言,大仁不仁,大廉不嗛,大勇不忮。道昭而不道,言辯而不及,仁常而不成,廉清而不信,勇忮而不成。五者圓而幾向方矣。故知止其所不知,至矣。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膾、胥敖,南面而不釋然。其故何也?”舜曰:“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若不釋然,何哉?昔者十日並出,萬物皆照,而況德之進乎日者乎!”
11 齊物論: 齧缺問乎王倪曰:“子知物之所同是乎?”曰:“吾惡乎知之!”“子知子之所不知邪?”曰:“吾惡乎知之!”“然則物無知邪?”曰:“吾惡乎知之!雖然,嘗試言之。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且吾嘗試問乎女:民溼寢則腰疾偏死,鰍然乎哉?木處則惴慄恂懼,猿猴然乎哉?三者孰知正處?民食芻豢,麋鹿食薦,蝍且甘帶,鴟鴉耆鼠,四者孰知正味?猿,猵狙以為雌,麋與鹿交,鰍與魚游。毛嬙、麗姬,人之所美也,魚見之深入,鳥見之高飛,麋鹿見之決驟。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自我觀之,仁義之端,是非之塗,樊然殽亂,吾惡能知其辯!”齧缺曰:“子不知利害,則至人固不知利害乎?”王倪曰:“至人神矣:大澤焚而不能熱,河、漢沍而不能寒,疾雷破山、風振海而不能驚。若然者,乘雲氣,騎日月,而遊乎四海之外。死生無變於己,而況利害之端乎!”
12 齊物論: 瞿鵲子問於長梧子曰:“吾聞諸夫子,聖人不從事於務,不就利,不違害,不喜求,不緣道,無謂有謂,有謂無謂,而遊乎塵垢之外。夫子以為孟浪之言,而我以為妙道之行也。吾子以為奚若?”長梧子曰:“是黃帝之所聽熒也,而丘也何足以知之!且汝亦大早計,見卵而求時夜,見彈而求鴞炙。予嘗為女妄言之,女亦以妄聽之,奚?旁日月,挾宇宙,為其吻合,置其滑湣,以隸相尊。眾人役役,聖人愚芚,參萬歲而一成純。萬物盡然,而以是相蘊。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麗之姬,艾封人之子也。晉國之始得之,涕泣沾襟;及其至於王所,與王同筐床,食芻豢,而後悔其泣也。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夢飲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而愚者自以為覺,竊竊然知之。君乎,牧乎,固哉!丘也,與女皆夢也;予謂女夢,亦夢也。是其言也,其名為弔詭。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既使我與若辯矣,若勝我,我不若勝,若果是也?我果非也邪?我勝若,若不吾勝,我果是也?而果非也邪?其或是也,其或非也邪?其俱是也,其俱非也邪?我與若不能相知也,則人固受其黮闇。吾誰使正之?使同乎若者正之,既與若同矣,惡能正之!使同乎我者正之,既同乎我矣,惡能正之!使異乎我與若者正之,既異乎我與若矣,惡能正之!使同乎我與若者正之,既同乎我與若矣,惡能正之!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而待彼也邪?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何謂和之以天倪?曰:是不是,然不然。是若果是也,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然若果然也,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忘年忘義,振於無竟,故寓諸無竟。”
13 齊物論: 岡兩問景曰:“曩子行,今子止,曩子坐,今子起,何其無特操與?”景曰:“吾有待而然者邪!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吾待蛇蚹、蜩翼邪!惡識所以然?惡識所以不然?”
14 齊物論: 昔者莊周夢為胡蝶,栩栩然胡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為胡蝶與,胡蝶之夢為周與?周與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01 逍遙遊 02 齊物論(제물론) 03 養生主
1 齊物論: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荅焉似喪其耦。顏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子綦曰:“偃,不亦善乎而問之也!今者吾喪我,汝知之乎?汝聞人籟而未聞地籟,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子游曰:“敢問其方。”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為風。是唯無作,作則萬竅怒呺。而獨不聞之翏翏乎?山林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枅,似圈,似臼,似洼者,似污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穾者,咬者,前者唱于而隨者唱喁。泠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眾竅為虛。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子游曰:“地籟則眾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敢問天籟。”子綦曰:“夫吹萬不同,而使其自已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2 齊物論: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為搆,日以心鬥。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若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為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喜怒哀樂,慮歎變慹,姚佚啟態;樂出虛,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3 齊物論: 非彼無我,非我無所取。是亦近矣,而不知其所為使。必有真宰,而特不得其眹。可形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百骸、九竅、六藏,賅而存焉,吾誰與為親?汝皆說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為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也。其遞相為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一受其成形,不亡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人之生也,固若是芒乎!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
4 齊物論: 夫隨其成心而師之,誰獨且無師乎?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愚者與有焉。未成乎心而有是非,是今日適越而昔至也。是以無有為有。無有為有,雖有神禹,且不能知,吾獨且奈何哉!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果有言邪?其未嘗有言邪?其以為異於鷇音,亦有辨乎,其無辨乎?道惡乎隱而有真偽?言惡乎隱而有是非?道惡乎往而不存?言惡乎存而不可?道隱於小成,言隱於榮華。故有儒、墨之是非,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則莫若以明。
5 齊物論: 物無非彼,物無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是以聖人不由,而照之於天,亦因是也。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果且有彼是乎哉?果且無彼是乎哉?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是亦一無窮,非亦一無窮也。故曰“莫若以明”。
6 齊物論: 以指喻指之非指,不若以非指喻指之非指也;以馬喻馬之非馬,不若以非馬喻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
可乎可,不可乎不可。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惡乎然?然於然。惡乎不然?不然於不然。物固有所然,物固有所可。無物不然,無物不可。故為是舉莛與楹,厲與西施,恢恑憰怪,道通為一。
其分也,成也;其成也,毀也。凡物無成與毀,復通為一。唯達者知通為一,為是不用而寓諸庸。庸也者,用也;用也者,通也;通也者,得也。適得而幾已。因是已。已而不知其然,謂之道。勞神明為一,而不知其同也,謂之朝三。何謂朝三?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眾狙皆怒。曰:“然則朝四而暮三。”眾狙皆悅。名實未虧,而喜怒為用,亦因是也。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是之謂兩行。
7 齊物論: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為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為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為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道之所以虧,愛之所以成。果且有成與虧乎哉?果且無成與虧乎哉?有成與虧,故昭氏之鼓琴也;無成與虧,故昭氏之不鼓琴也。昭文之鼓琴也,師曠之枝策也,惠子之據梧也,三子之知幾乎!皆其盛者也,故載之末年。唯其好之,以異於彼,其好之也,欲以明之彼。非所明而明之,故以堅白之昧終。而其子又以文之綸終,終身無成。若是而可謂成乎,雖我亦成也。若是而不可謂成乎,物與我無成也。是故滑疑之耀,聖人之所圖也。為是不用而寓諸庸,此之謂以明。
8 齊物論: 今且有言於此,不知其與是類乎?其與是不類乎?類與不類,相與為類,則與彼無以異矣。雖然,請嘗言之。有始也者,有未始有始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有有也者,有無也者,有未始有無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俄而有無矣,而未知有無之果孰有孰無也。今我則已有謂矣,而未知吾所謂之果有謂乎,其果無謂乎?
9 齊物論: 天下莫大於秋毫之末,而太山為小;莫壽於殤子,而彭祖為夭。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為一。既已為一矣,且得有言乎?既已謂之一矣,且得無言乎?一與言為二,二與一為三。自此以往,巧曆不能得,而況其凡乎!故自無適有,以至於三,而況自有適有乎!無適焉,因是已。
10 齊物論: 夫道未始有封,言未始有常,為是而有畛也。請言其畛:有左,有右,有倫,有義,有分,有辯,有競,有爭,此之謂八德。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故分也者,有不分也;辯也者,有不辯也。曰:何也?聖人懷之,眾人辯之以相示也。故曰:辯也者,有不見也。夫大道不稱,大辯不言,大仁不仁,大廉不嗛,大勇不忮。道昭而不道,言辯而不及,仁常而不成,廉清而不信,勇忮而不成。五者圓而幾向方矣。故知止其所不知,至矣。孰知不言之辯,不道之道?若有能知,此之謂天府。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膾、胥敖,南面而不釋然。其故何也?”舜曰:“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若不釋然,何哉?昔者十日並出,萬物皆照,而況德之進乎日者乎!”
11 齊物論: 齧缺問乎王倪曰:“子知物之所同是乎?”曰:“吾惡乎知之!”“子知子之所不知邪?”曰:“吾惡乎知之!”“然則物無知邪?”曰:“吾惡乎知之!雖然,嘗試言之。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且吾嘗試問乎女:民溼寢則腰疾偏死,鰍然乎哉?木處則惴慄恂懼,猿猴然乎哉?三者孰知正處?民食芻豢,麋鹿食薦,蝍且甘帶,鴟鴉耆鼠,四者孰知正味?猿,猵狙以為雌,麋與鹿交,鰍與魚游。毛嬙、麗姬,人之所美也,魚見之深入,鳥見之高飛,麋鹿見之決驟。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自我觀之,仁義之端,是非之塗,樊然殽亂,吾惡能知其辯!”齧缺曰:“子不知利害,則至人固不知利害乎?”王倪曰:“至人神矣:大澤焚而不能熱,河、漢沍而不能寒,疾雷破山、風振海而不能驚。若然者,乘雲氣,騎日月,而遊乎四海之外。死生無變於己,而況利害之端乎!”
12 齊物論: 瞿鵲子問於長梧子曰:“吾聞諸夫子,聖人不從事於務,不就利,不違害,不喜求,不緣道,無謂有謂,有謂無謂,而遊乎塵垢之外。夫子以為孟浪之言,而我以為妙道之行也。吾子以為奚若?”長梧子曰:“是黃帝之所聽熒也,而丘也何足以知之!且汝亦大早計,見卵而求時夜,見彈而求鴞炙。予嘗為女妄言之,女亦以妄聽之,奚?旁日月,挾宇宙,為其吻合,置其滑湣,以隸相尊。眾人役役,聖人愚芚,參萬歲而一成純。萬物盡然,而以是相蘊。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麗之姬,艾封人之子也。晉國之始得之,涕泣沾襟;及其至於王所,與王同筐床,食芻豢,而後悔其泣也。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夢飲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而愚者自以為覺,竊竊然知之。君乎,牧乎,固哉!丘也,與女皆夢也;予謂女夢,亦夢也。是其言也,其名為弔詭。萬世之後,而一遇大聖知其解者,是旦暮遇之也。既使我與若辯矣,若勝我,我不若勝,若果是也?我果非也邪?我勝若,若不吾勝,我果是也?而果非也邪?其或是也,其或非也邪?其俱是也,其俱非也邪?我與若不能相知也,則人固受其黮闇。吾誰使正之?使同乎若者正之,既與若同矣,惡能正之!使同乎我者正之,既同乎我矣,惡能正之!使異乎我與若者正之,既異乎我與若矣,惡能正之!使同乎我與若者正之,既同乎我與若矣,惡能正之!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而待彼也邪?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何謂和之以天倪?曰:是不是,然不然。是若果是也,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然若果然也,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忘年忘義,振於無竟,故寓諸無竟。”
13 齊物論: 岡兩問景曰:“曩子行,今子止,曩子坐,今子起,何其無特操與?”景曰:“吾有待而然者邪!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吾待蛇蚹、蜩翼邪!惡識所以然?惡識所以不然?”
14 齊物論: 昔者莊周夢為胡蝶,栩栩然胡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為胡蝶與,胡蝶之夢為周與?周與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莊子 (장자) 莊周 (장주)
莊子(장자) 莊周(장주)
異名: 庄子(Zhuāngzǐ), 南華眞經(남화진경)
저자: 장자
시대: 중국 전국시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莊周)의 저서.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존칭을 받아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한다. 내편(內編) 7, 외편(外編) 15, 잡편(雜編) 11로 모두 33편이다. 그 중 내편이 비교적 오래되었고 그 근본사상이 실려 있어 장자의 저서로, 외편과 잡편은 후학(後學)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측된다. 장자는 노자(老子)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그의 사상의 밑바탕에 동일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분서(焚書)의 화를 입기도 하고, 한(漢) 때 분합(分合)·재편성되기도 하다가 진(晉)의 곽상(郭象) 이후 오늘의 33권으로 정해졌다. 이 곽상주(註)가 완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본자료이다. 그 후에도 당(唐)나라 성현영(成玄英)의 《주소(註疏)》, 송(宋)나라 임희일(林希逸)의 《구의(口義)》 등 많은 주가 나왔다.
《장자》의 문학적인 발상(發想)은 우언우화(寓言寓話)로 엮어졌는데,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宇宙本體)·근원(根源), 물화현상(物化現象)을 설명하였고, 현실세계의 약삭빠른 지자(知者)를 경멸하기도 하였다. 그의 심현한 철학사상서이자 우수한 문학서인 이 《장자》는 위(魏)·진(晉) 때에 널리 읽히고 육조시대(六朝時代)까지 그 사상이 유행하였다.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그를 진령(眞靈)이라 하여 제3급에 올렸다.
구성 및 고사성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內篇
01 逍遙遊
02 齊物論(제물론)
朝三暮四(조삼모사,zhāosānmùsì)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
沈魚落雁(침어낙안) 고기를 물 속으로 가라앉게 하고 기러기를 땅으로 떨어지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 |
胡蝶之夢(호접지몽)
장자(莊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①현실(現實)과 꿈의 구별(區別)이 안 되는 것 ②인생(人生)의 덧없음의 비유(比喩) |
03 養生主
目无全牛(목무전우,mùwúquánniú) ① 눈에 소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살과 뼈의 구조만 보이다. 《장자·양생주(莊子·養生主)》에서 백정이 처음 소를 도살할 때는 소 전체가 보였는데, 3년 후에는 소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뼈와 살의 구조만 보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기술이 대단히 숙달된 경지에 이르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다. |
04 人間世
05 德充符
06 大宗師
相濡以沫(생유이말,xiāngrúyǐmò) ① 샘물이 마르자 물고기들이 서로 모여 침으로 서로를 촉촉하게 적셔 주다. 《장자·대종사(莊子·大宗師)》에 나오는 말. ② 같이 곤경에 처하여 미력한 힘이나마 서로 도와 주다. 곤경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다. |
07 應帝王
外篇
08 駢拇
09 馬蹄
10 胠篋
11 在宥
12 天地
13 天道
14 天運
15 刻意
16 繕性
17 秋水
邯郸学步(한단학보,Hándānxuébù) ① 한단(邯鄲)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다. 《장자·추수(莊子·秋水)》에서, 전국(戰國) 시기에 연(燕)나라 사람들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가 보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멋있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결국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원래 걸음걸이도 잊어버려 기어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다 자신의 본 모습도 잃어버리다. 무조건 모방하여 더 나쁜 결과에 이르다. |
18 至樂
19 達生
20 山木
21 田子方
22 知北遊
雜篇
23 庚桑楚
24 徐無鬼
运斤成风(운근성풍,yùnjīnchéngfēng) ① 바람의 힘에 의지해서 도끼를 사용하다. 《장자·서무귀(莊子·徐無鬼)》에서, 초(楚)나라 사람이 코에 석회를 바르고 석(石)이란 장인(匠人)에게 도끼로 벗겨내 보라고 하니, 석(石)이 바람의 힘에 의지해서 석회를 벗겨 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기예가 신기에 가깝다. 기술·기능이 최고 절정에 이르다. |
25 則陽
26 外物
碧血(벽혈,bìxuè) ① 푸른 피. 《庄子·外物(장자·외물)》에서 유래함. ② 정의를 위해 흘린 피. |
27 寓言
28 讓王
29 盜跖
抱柱(포주,bàozhù) ① 기둥을 끌어안다. 《장자·도척(庄子·盗跖)》에서, 미생(尾生)이라는 남자가 한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데, 갑자기 강물이 불어났으나 다리 기둥을 부여 잡고 도망가지 않다가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굳게 약속을 지키다. 신의를 지키다. |
30 說劍
31 漁父
32 列禦寇
33 天下
異名: 庄子(Zhuāngzǐ), 南華眞經(남화진경)
저자: 장자
시대: 중국 전국시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莊周)의 저서.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존칭을 받아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한다. 내편(內編) 7, 외편(外編) 15, 잡편(雜編) 11로 모두 33편이다. 그 중 내편이 비교적 오래되었고 그 근본사상이 실려 있어 장자의 저서로, 외편과 잡편은 후학(後學)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측된다. 장자는 노자(老子)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그의 사상의 밑바탕에 동일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분서(焚書)의 화를 입기도 하고, 한(漢) 때 분합(分合)·재편성되기도 하다가 진(晉)의 곽상(郭象) 이후 오늘의 33권으로 정해졌다. 이 곽상주(註)가 완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본자료이다. 그 후에도 당(唐)나라 성현영(成玄英)의 《주소(註疏)》, 송(宋)나라 임희일(林希逸)의 《구의(口義)》 등 많은 주가 나왔다.
《장자》의 문학적인 발상(發想)은 우언우화(寓言寓話)로 엮어졌는데,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宇宙本體)·근원(根源), 물화현상(物化現象)을 설명하였고, 현실세계의 약삭빠른 지자(知者)를 경멸하기도 하였다. 그의 심현한 철학사상서이자 우수한 문학서인 이 《장자》는 위(魏)·진(晉) 때에 널리 읽히고 육조시대(六朝時代)까지 그 사상이 유행하였다.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그를 진령(眞靈)이라 하여 제3급에 올렸다.
구성 및 고사성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內篇
01 逍遙遊
02 齊物論(제물론)
朝三暮四(조삼모사,zhāosānmùsì)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
沈魚落雁(침어낙안) 고기를 물 속으로 가라앉게 하고 기러기를 땅으로 떨어지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 |
胡蝶之夢(호접지몽)
장자(莊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①현실(現實)과 꿈의 구별(區別)이 안 되는 것 ②인생(人生)의 덧없음의 비유(比喩) |
03 養生主
目无全牛(목무전우,mùwúquánniú) ① 눈에 소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살과 뼈의 구조만 보이다. 《장자·양생주(莊子·養生主)》에서 백정이 처음 소를 도살할 때는 소 전체가 보였는데, 3년 후에는 소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뼈와 살의 구조만 보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기술이 대단히 숙달된 경지에 이르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다. |
04 人間世
05 德充符
06 大宗師
相濡以沫(생유이말,xiāngrúyǐmò) ① 샘물이 마르자 물고기들이 서로 모여 침으로 서로를 촉촉하게 적셔 주다. 《장자·대종사(莊子·大宗師)》에 나오는 말. ② 같이 곤경에 처하여 미력한 힘이나마 서로 도와 주다. 곤경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다. |
07 應帝王
外篇
08 駢拇
09 馬蹄
10 胠篋
11 在宥
12 天地
13 天道
14 天運
15 刻意
16 繕性
17 秋水
邯郸学步(한단학보,Hándānxuébù) ① 한단(邯鄲)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다. 《장자·추수(莊子·秋水)》에서, 전국(戰國) 시기에 연(燕)나라 사람들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가 보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멋있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결국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원래 걸음걸이도 잊어버려 기어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다 자신의 본 모습도 잃어버리다. 무조건 모방하여 더 나쁜 결과에 이르다. |
18 至樂
19 達生
20 山木
21 田子方
22 知北遊
雜篇
23 庚桑楚
24 徐無鬼
运斤成风(운근성풍,yùnjīnchéngfēng) ① 바람의 힘에 의지해서 도끼를 사용하다. 《장자·서무귀(莊子·徐無鬼)》에서, 초(楚)나라 사람이 코에 석회를 바르고 석(石)이란 장인(匠人)에게 도끼로 벗겨내 보라고 하니, 석(石)이 바람의 힘에 의지해서 석회를 벗겨 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기예가 신기에 가깝다. 기술·기능이 최고 절정에 이르다. |
25 則陽
26 外物
碧血(벽혈,bìxuè) ① 푸른 피. 《庄子·外物(장자·외물)》에서 유래함. ② 정의를 위해 흘린 피. |
27 寓言
28 讓王
29 盜跖
抱柱(포주,bàozhù) ① 기둥을 끌어안다. 《장자·도척(庄子·盗跖)》에서, 미생(尾生)이라는 남자가 한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데, 갑자기 강물이 불어났으나 다리 기둥을 부여 잡고 도망가지 않다가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굳게 약속을 지키다. 신의를 지키다. |
30 說劍
31 漁父
32 列禦寇
33 天下
自怨自艾 (자원자애)
自怨自艾(자원자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수양에 힘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채찍질해 수양에 힘쓴다는 뜻으로, 잘못을 깨닫고 허물을 고친다는 말이다. 지난 잘못을 고치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개과천선(改過遷善)과 통한다.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 '지어우이덕쇠장(至於禹而德衰章)'에 나온다.
만장이 맹자에게, 우(禹)임금 대에 이르러 덕이 쇠하자 천자의 자리가 어리석은 인물에게 전해졌다는 것에 대해 묻자 맹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맹자는 하늘이 천하를 잘난 인물에게 주면 그에게 전해지고, 하늘이 그 아들에게 주면 아들에게 주어진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 뒤 탕(湯)의 법도를 뒤집은 태갑(太甲)이 3년 만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바른 길을 닦았다는 고사를 들려준다.
"태갑이 탕의 제도와 형제(刑制)를 파괴하자 이윤(伊尹)은 그를 동(桐) 지방으로 쫓아냈다. 3년이 지나자 태갑이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닦아 동 지방에서 어질고 의롭게 행하기를 3년 동안 하였다(三年 太甲悔過 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 三年)."
이와 같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 스스로 수양에 힘쓰는 것을 자원자애라고 한다. 증자(曾子)가 스스로 잘못한 일이 있는지 하루에 3번씩 자신을 살폈다는 《논어(論語)》의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과도 일맥 상통한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저 잘났다고 뽐낸다는 뜻의 '자명득의(自鳴得意)'가 있는데, 이는 봄날의 꿩이 스스로 울어 자기가 있는 곳을 노출시켜 화를 자초한다는 '춘치자명(春雉自鳴)'과 같은 말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상대어
自鳴得意(자명득의) | 春雉自鳴(춘치자명) |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수양에 힘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채찍질해 수양에 힘쓴다는 뜻으로, 잘못을 깨닫고 허물을 고친다는 말이다. 지난 잘못을 고치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개과천선(改過遷善)과 통한다. 《맹자(孟子)》 만장상(萬章上) '지어우이덕쇠장(至於禹而德衰章)'에 나온다.
만장이 맹자에게, 우(禹)임금 대에 이르러 덕이 쇠하자 천자의 자리가 어리석은 인물에게 전해졌다는 것에 대해 묻자 맹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맹자는 하늘이 천하를 잘난 인물에게 주면 그에게 전해지고, 하늘이 그 아들에게 주면 아들에게 주어진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 뒤 탕(湯)의 법도를 뒤집은 태갑(太甲)이 3년 만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바른 길을 닦았다는 고사를 들려준다.
"태갑이 탕의 제도와 형제(刑制)를 파괴하자 이윤(伊尹)은 그를 동(桐) 지방으로 쫓아냈다. 3년이 지나자 태갑이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닦아 동 지방에서 어질고 의롭게 행하기를 3년 동안 하였다(三年 太甲悔過 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 三年)."
이와 같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 스스로 수양에 힘쓰는 것을 자원자애라고 한다. 증자(曾子)가 스스로 잘못한 일이 있는지 하루에 3번씩 자신을 살폈다는 《논어(論語)》의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吾身)'과도 일맥 상통한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저 잘났다고 뽐낸다는 뜻의 '자명득의(自鳴得意)'가 있는데, 이는 봄날의 꿩이 스스로 울어 자기가 있는 곳을 노출시켜 화를 자초한다는 '춘치자명(春雉自鳴)'과 같은 말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상대어
自鳴得意(자명득의) | 春雉自鳴(춘치자명) |
雌雄難辨 (자웅난변)
雌雄難辨(자웅난변)
雌 암컷 자 | 雄 수컷 웅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辨 분별할 변, 갖출 판, 두루 편, 깎아내릴 폄 |
까마귀의 암수는 분간하기 어렵다. 의혹과 비방이 난무하는 정치세태에 걸맞는 화두.
[출전]
시경:소아편
雌 암컷 자 | 雄 수컷 웅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辨 분별할 변, 갖출 판, 두루 편, 깎아내릴 폄 |
까마귀의 암수는 분간하기 어렵다. 의혹과 비방이 난무하는 정치세태에 걸맞는 화두.
[출전]
시경:소아편
張旭 (장욱, Zhāng Xù)
장욱 [張旭, ?~?]
異名: Zhāng Xù, 장전, 자 백고
국적: 중국 당나라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주요저서: 자언첩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8세기 후반)의 서예가. 그러나 장욱에게 필법(筆法)을 배운 안진경(顔眞卿)은 그의 서법(書法)이 진정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초서를 잘 썼으며, 얼핏 보아서 분방하게 느껴지는 광초(狂草)에도 그 바탕에는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배운 소양을 엿볼 수 있다.
자 백고(伯高).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출생. 초당(初唐)의 서예의 대가 우세남(虞世南)의 먼 친적이다. 술을 몹시 좋아하고 취흥이 오르면 필묵을 잡았으며, 때로는 머리채를 먹물에 적셔서 글씨를 쓰는 등의 취태(醉態)가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장전(張顚)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욱에게 필법(筆法)을 배운 안진경(顔眞卿)은 그의 서법(書法)이 진정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초서를 잘 썼으며, 얼핏 보아서 분방하게 느껴지는 광초(狂草)에도 그 바탕에는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배운 소양을 엿볼 수 있다. 장욱이 자신의 서풍(書風)을 세우게 된 유래를 적은 《자언첩(自言帖)》이 전해진다.
異名: Zhāng Xù, 장전, 자 백고
국적: 중국 당나라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주요저서: 자언첩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8세기 후반)의 서예가. 그러나 장욱에게 필법(筆法)을 배운 안진경(顔眞卿)은 그의 서법(書法)이 진정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초서를 잘 썼으며, 얼핏 보아서 분방하게 느껴지는 광초(狂草)에도 그 바탕에는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배운 소양을 엿볼 수 있다.
자 백고(伯高).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출생. 초당(初唐)의 서예의 대가 우세남(虞世南)의 먼 친적이다. 술을 몹시 좋아하고 취흥이 오르면 필묵을 잡았으며, 때로는 머리채를 먹물에 적셔서 글씨를 쓰는 등의 취태(醉態)가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장전(張顚)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욱에게 필법(筆法)을 배운 안진경(顔眞卿)은 그의 서법(書法)이 진정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초서를 잘 썼으며, 얼핏 보아서 분방하게 느껴지는 광초(狂草)에도 그 바탕에는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배운 소양을 엿볼 수 있다. 장욱이 자신의 서풍(書風)을 세우게 된 유래를 적은 《자언첩(自言帖)》이 전해진다.
自業自得 (자업자득)
自業自得(자업자득)
自 스스로 자 | 業 업 업 | 自 스스로 자 | 得 얻을 득 |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 자신이 받는 일.
to come home to roost
자신이 저지른 과보(果報)나 업을 자신이 받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저지른 결과라는 뜻으로 많이 쓴다. 따라서 여기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자업자박(自業自縛)과 같은 뜻으로, 자신이 쌓은 업으로 자신을 묶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꼰 새끼로 자신을 묶어, 결국 자기 꾐에 자기가 빠지는 것을 뜻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도 이와 비슷하다. 그밖에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
자업자득에는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뜻이 담겨 있다.
[출전]
정법염경(正法念經)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自作之孼(자작지얼) | 自作自受(자작자수) | 自作孼(자작얼) | 自業自縛(자업자박) | 養虎遺患(양호유환) |
自 스스로 자 | 業 업 업 | 自 스스로 자 | 得 얻을 득 |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 자신이 받는 일.
to come home to roost
자신이 저지른 과보(果報)나 업을 자신이 받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저지른 결과라는 뜻으로 많이 쓴다. 따라서 여기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자업자박(自業自縛)과 같은 뜻으로, 자신이 쌓은 업으로 자신을 묶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꼰 새끼로 자신을 묶어, 결국 자기 꾐에 자기가 빠지는 것을 뜻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도 이와 비슷하다. 그밖에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
자업자득에는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뜻이 담겨 있다.
[출전]
정법염경(正法念經)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自作之孼(자작지얼) | 自作自受(자작자수) | 自作孼(자작얼) | 自業自縛(자업자박) | 養虎遺患(양호유환) |
作心三日 (작심삼일)
作心三日(작심삼일)
作 만들 작 | 心 마음 심 | 三 석 삼 | 日 날 일 |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짐.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
作 만들 작 | 心 마음 심 | 三 석 삼 | 日 날 일 |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짐.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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