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從腹背 (면종복배)

面從腹背(면종복배)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 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

命在頃刻 (명재경각)

命在頃刻(명재경각)

금방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 거의 죽게됨. 매우 위태함.

明珠彈雀 (명주탄작)

明珠彈雀(명주탄작)

明 밝을 명 | 珠 구슬 주 | 彈 탄알 탄 | 雀 참새 작 |

새를 잡는 데 구슬을 쓴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


장자(莊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안합(安闔)이 도를 터득한 인물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예물을 들고 그를 찾아가 보게 하였다. 애공의 사자가 찾아가 보니, 안합은 허술한 집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소를 돌보고 있었다. 안합은 사자를 돌려 보냈다. 사자가 다시 그의 집을 찾았지만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장자는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안합은 부귀에 뜻이 없었으며, 부귀가 찾아오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군자들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부귀를 추구하는데,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사람이 수후(隨侯)의 보석으로 천길 벼랑 위에 있는 참새를 쏘았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분명 그를 비웃을 것이다[以隨侯之珠彈千 之雀]."


출전

장자(莊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小貪大失(소탐대실) | 隨珠彈雀(수주탄작) | 以珠彈雀(이주탄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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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明夷待訪錄 (명이대방록) 黃宗羲 (황종희)

明夷待訪錄(명이대방록) 黃宗羲(황종희)

중국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사상가 황종희(黃宗羲)의 저서.

1663년에 완성되었다. 군주론(君主論) ·신하론(臣下論) ·법제론(法制論) ·학교론(學校論) 등 13편으로 되어 있다. 군주론에서는 천하를 사유재산처럼 생각하는 전제군주의 폐해를 철저하게 폭로하여 ‘천하가 주인이고 군주는 손님이다’라고 갈파하였다. 또, 학교론에서는 학교에 의회적 기능을 주어 세론(世論)을 대변하게 하는 등 국가체제의 전반적 개혁을 구상하였다. 청말 개혁파와 혁명파의 지사(志士)들은 그의 민본주의적(民本主義的) 주장 때문에 황종희를 중국의 루소로 기리고, 이 책을 발췌하여 선전 팸플릿으로 사용하였다.

名從主人 (명종주인)

名從主人(명종주인)

名 이름 명 | 從 좇을 종 | 主 임금 주, 주인 주 | 人 사람 인 |

사물(事物)의 이름은 원래 주인이 붙인 이름을 따른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의 명칭(名稱)은 현지의 호칭법(號稱法)을 따라야 함을 이르는 말

namming is on a owner or master.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환공(桓公) 2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름철 4월, 노(魯)나라는 고(稿)나라에서 만든 큰 솥을 송(宋)나라로부터 입수하여, 무신(戊申)날에 주공(周公)의 대묘에 바쳤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은 그 주인을 따르고, 물건은 중국을 따르는 법이니[名從主人 物從中國], 고나라의 큰 솥이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큰 솥(大鼎)은 본시 고나라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후에 송나라가 이것을 차지하였다가, 다시 송나라의 화보독(華父督)이 환공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노나라에서는 내력(內歷)이 복잡한 이 물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공자의 의견을 들었던 것이다.

名從主人이란 사물은 원래 주인의 이름을 따라 짓게 됨 을 뜻하며, 이는 곧 사물의 명칭이 그것의 소재지나 나라의 호칭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命也福也 (명야복야)

命也福也(명야복야)

연거푸 생기는 행복.

明若觀火 (명약관화)

明若觀火(명약관화)

불을 보듯 환함.

名實相符 (명실상부)

名實相符(명실상부)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하는 것.

明心寶鑑 02 天命篇

明心寶鑑

天命篇

子曰, 順天者存 逆天者亡。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셨다.

康節邵先生曰, 天聽寂無音 蒼蒼何處尋。非高亦非遠 都只在人心。

소강절 선생이 말했다. "하늘의 들으심이 고요하여 소리가 없으니 푸르고 푸른데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높지도 않고 또한 멀지도 않으니, 모두가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玄帝垂訓曰, 人間私語 天聽若雷, 暗室欺心 神目如電。

현제가 말했다. "인간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뢰와 같으며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여도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다."

益智書云, 惡罐若滿 天必誅之。

익지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나쁜 마음이 가득 차면 하늘이 반드시 벨 것이다."

莊子曰, 若人作不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

장자가 말했다. "만일 사람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해서 이름을 세상에 나타낸 자는 사람이 비록 헤치지 못하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

種瓜得瓜 種豆得豆。天網恢恢 疎而不漏。

참외씨를 심으면 참외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고 넓어서 새지 않는다.

子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공자가 말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明心寶鑑, 明心寶鑑02天命篇, 명심보감, 명심보감02천명편

明心寶鑑 01 繼善篇

明心寶鑑

繼善篇

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공자가 말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주시느니라."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한나라의 소열 황제가 죽을 때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 말했다.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치 말며,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

莊子曰, 一日 不念善, 諸惡 皆自起。

장자가 말했다.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치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나느니라."

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이 말했다.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 본 듯이 하며,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겨하지 말라."

馬援曰,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猶餘。

마원이 말했다. "한평생 착한 일을 행하여도 착한 것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를 악한 일을 행하여도 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느니라."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 未必 子孫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 子孫能盡讀。 不如 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사마온공이 말했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넘겨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킨다고 볼 수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다. 남모르는 가운데 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느니라."

景行錄曰, 恩義廣施。人生何處不相逢。讐怨莫結。路逢狹處 難回避。

경행록에 나와있다.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莊子曰, 於我善者 我亦善之, 於我惡者 我亦善之。我旣於人 無惡, 人能於我 無惡哉。

장자가 말했다. "나에게 착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하였으면 남도 어찌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있겠는가."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 福雖未至 禍自遠矣。一日行惡 禍雖未至 福自遠矣。行善之人 如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 行惡之人 如磨刀之石 不見其損 日有所虧。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려 말했다. "하루 착한 일을 행할지라도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악한 일을 행할지라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숫돌과 같아서 갈리어져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날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으니라."

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공자가 말했다.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滅私奉公 (멸사봉공)

滅私奉公(멸사봉공)

사사로움을 버리고, 나라나 사회를 위하여 힘을 바침.

鳴鳳在樹 (명봉재수)

鳴鳳在樹(명봉재수)

鳴 울 명 | 鳳 새 봉 | 在 있을 재 | 樹 나무 수 |

명군(名君), 성현(聖賢)이 나타나면 봉(鳳)이 운다는 말과 같이 덕망(德望)이 미치는 곳마다 봉(鳳)이 나무 위에서 울 것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名不虛傳 (명불허전)

名不虛傳(명불허전)

名 이름 명 | 不 아닐 불, 아닐 부 | 虛 빌 허 | 傳 전할 전 |

이름은 헛되이 전(傳)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名聲)이나 명예(名譽)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理由)가 있음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名不虛得(명불허득) |

面壁功深 (면벽공심)

面壁功深(면벽공심)

面壁功深[miànbìgōngshēn]

面 낯 면, 밀가루 면 | 壁 벽 벽 | 功 공로 공 | 深 깊을 심 |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달마(達磨)가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면서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成語). 목표를 세우고 오랫동안 갈고 닦으면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비유.


송(宋)나라 혜명(慧明) 등이 엮은 오등회원(五燈會元) 동토조사(東土祖師)편에 나오는 이야기.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흥성하자, 많은 인도 승려들이 중국으로 왔다.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왕자인 달마(達摩)는 광동지방을 지나 양나라의 수도인 건업(建業)에 도착하였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는 건업을 떠나 북위(北魏)의 영토인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少林寺)에 머무르게 되었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밤낮으로 벽을 향해 앉은채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面壁而坐, 終日默然]. 그에게 무슨 오묘함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9년을 변함없이 면벽좌선하고 나서, 깨달은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한 뒤 죽었다.

소림사의 서쪽에는 높이가 2 장(丈)이나 되는 석벽(石壁)이 있다. 얼핏 보면 보통 돌 같지만, 대여섯 걸음 물러나서 보면, 달마가 정좌(靜坐)하고 있는 모습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달마가 9년 동안 면벽하며 도를 닦아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면벽공심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달마가 9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면벽좌선에 정진해 드높고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뒤에 오랜 수행과 정진을 통해 어떤 경지에 이른 경우에 이 말을 갖다 붙이면서, 장기간의 연찬 끝에 학문이나 기술 등이 정밀하고 깊은 경지에 오름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출전

오등회원(五燈會元) 동토조사(東土祖師)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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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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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明眸皓齒 (명모호치)

明眸皓齒(명모호치)

눈동자가 밝고 이가 희다는 뜻으로 미인(美人)을 비유.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인 魏(위)나라 曹操(조조)의 셋째아들 曹植(조식)은 詩文(시문)에 특출한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자 사이가 나쁜 형인 曹丕(조비)가 즉위했다.

아니나다를까 형에게 미움을 사고있던 조식은 領地(영지)를 깎이고 사랑하는 절세의 미인 견일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조식은 형에게 빼앗긴 애인의 죽음을 애도하여 시를 지었는데 그 시가 「洛神賦(낙신부)」다. 여기에 처음으로 명모와 호치란 말이 보인다.

붉은 입술은 밖에서 낭랑하고
새하얀 이(皓齒)는 안에서 빛나도다
맑은 눈동자(明眸)로 뒤돌아보니
보조개 진 얼굴이 돋보이는구나

명모호치란 말은 杜甫(두보)의 시 「哀江頭(애강두)」에도 나온다.

「맑은 눈동자 흰 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明眸皓齒今何在)」로 이 시는 시작되는데 여기서 명모호치는 楊貴妃(양귀비)를 가리킨다.

明鏡止水 (명경지수)

明鏡止水(명경지수)

明鏡(명경)은 밝은 거울, 한 점의 흐림도 없는 거울이며 止水(지수)는 움직임 없이 고요히 머물러 있는 물. 합쳐져서 흔들림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뜻한다.


魯(노)나라에 형벌로 발목이 잘린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주위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비록 불구의 몸이 되었을망정 학문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았으므로 그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 수가 나날이 늘어 마침내는 공자의 문하생수와 맞먹을 만큼 커졌다.

공자의 제자 常季(상계)는 이러한 사실이 못내 불쾌해 공자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몸도 불구인 왕태라는 자에게 날마다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드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의 대답은 이랬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거나 흔들리지 않는 그분의 마음의 평온함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고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이다(人莫鑑流水 而鑑於止水․인막감유수 이감어지수)』

공자의 말은 더 이어졌다.
『그분은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 있다. 눈 앞에 얼씬거리는 사물에 솔깃하여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나 추악한 것에 이목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정신의 아름다움을 찾고 손해와 이득을 초월하여 전혀 문제로 삼지 않는다. 비록 발목 하나 떨어져 나가기는 했어도 흙 한줌 내다버린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상계는 공자의 이런 말에 비로소 품었던 감정이 풀렸다.

明鏡高懸 (명경고현)

明鏡高懸(명경고현)

明 밝을 명 | 鏡 거울 경 | 高 높을 고 | 懸 매달 현 |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는 뜻으로, 사리(事理)에 밝거나 판결(判決)이 공정(公正)함을 일컫는 말

a clear mirror hung on high


한(漢)나라 때의 괴담이나 전설, 일화 등을 수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는 진(秦)나라 때의 신기한 거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나라의 함양(咸陽)궁에 소장된 진귀한 보물들 가운데, 너비가 4척, 높이가 5척 9촌으로 앞뒷면이 모두 밝게 빛나는 거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거울에는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비춰보면 그 사람의 오장(五臟)이 나타났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비추면 환부가 나타났으며, 이 거울은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춰 보였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이 거울을 이용하여 궁궐안의 모든 사람들의 충성심을 비춰 보았다. 심장이나 쓸개가 급히 뛰는 사람을 발견하면, 진시황은 즉각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 거울은 진나라 말기, 유방(劉邦)이 함양을 공격하던 혼란속에서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明鏡高懸(a clear mirror hung on high)은 진경고현(秦鏡高懸)이라고도 하며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이라는 뜻이다. 이는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 판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법관을 비유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秦鏡高懸(진경고현) |

名繮利鎖 (명강리쇄)

名繮利鎖(명강리쇄)

名 이름 명 | 繮 고삐 강 | 利 이로울 리 | 鎖 쇠사슬 쇄 |

명예의 고삐 줄과 이익이라는 쇠사슬.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여우인서(與友人書) 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唐)나라 덕종(德宗)년간, 못생긴 외모에다 음흉한 마음씨를 가진 노기(盧杞)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어느 날, 노기는 길가에서 풍성(馮聲)이라는 가난한 선비와 마주쳤다. 노기는 여태 그를 멸시해 온터라, 마음대로 그의 주머니를 뒤져 묵(墨) 조각을 찾아내고는 큰 소리로 비웃었다. 그러나 풍성은 점잖게 '이번에는 제가 당신의 짐꾸러미를 한번 뒤져보기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작은 종이 삼백여장을 찾아냈다. 이는 당시의 명함으로서 고관대작을 방문할 때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풍성은 웃으며 말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이렇게 삼백여장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명리(名利)의 노예인 당신과 나를 비교해 본다면, 더 나은 쪽은 누구이겠습니까?"

名繮利鎖는 명예의 고삐와 이익의 사슬을 뜻하니, 이는 곧 명예와 이익에 얽매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