拈華示衆 (염화시중)

拈華示衆(염화시중)

꽃을 따서 무리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에 의(依)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뜻을 전(傳)하는 일.


관련 한자어

동의어

염화미소(拈華微笑)

拈華微笑 (염화미소)

拈華微笑(염화미소)

'꽃을 집어 들고 웃음을 띠다'란 뜻으로, 문자(文字)나 말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傳)하는 일을 이르는 말. 불교(佛敎)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뜻으로 쓰이는 말.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連環計 (연환계, liánhuánjì)

連環計(연환계)

连环计(liánhuánjì)

連 이을 련 | 環 고리 환 | 計 셀 계 |


'고리를 잇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계책을 교묘하게 연결시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36계 가운데 敗戰計(패전계) 35번째 계책이다.


연환(連環)이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36계 가운데 미인계(美人計)·공성계(空城計)·반간계(反間計)·고육계(苦肉計) 등과 함께 패전계(敗戰計)에 속한다. 패전계란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하여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을 때는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묶어 놓게 함으로써 그 기세를 죽여야 한다. 아군의 군사(軍師)가 뛰어나면 하늘의 은총을 입는다(將多兵衆, 不可以敵, 使其自累, 以殺其勢. 在師中吉, 承天寵也)"라고 하였다.

三國志演義에 보면 '連環計(연환계)'라는 말이 여러번 등장한다. 그 중 첫번째는 왕윤이 초선을 이용한 연환계, 둘째는 방통이 조조의 선단을 쇠사슬로 연결하게 한 연환계, 셋째는 여러 계책을 연결시켜 사용한 것을 뜻하는 연환계이다. 이 세가지에 쓰인 연환계의 의미가 각각 다르다.

첫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왕윤(王允)이 '초선(貂蟬)'이라는 쇠사슬로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의 발목을 묶어 둘 다 망하게 하고자 사용한 계략을 뜻한다. 왕윤은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해서 둘이 서로 발목을 붙잡게 만들어서, 둘 모두를 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죄수 둘의 발목을 쇠사슬로 연결해 두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두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방통(龐統)이 적벽대전(赤壁大戰)에 앞서 화계를 성공시키고자, 조조(曹操)에게로 가서 배멀미와 물 때문에 고생하는 조조군에게 내놓은 계략이다. 방통이 조조에게 건의한 연환계는 선단(船團)을 서로 쇠사슬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여, 육지와 같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진짜 의미는 유(周瑜)가 화계를 썼을때, 배들이 흩어져 달아나지 못하게 하여 피해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첩자를 적에게 보내 계책을 꾸미게 하고, 그 사이에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은 경우로서, 연환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

세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연환'의 계> 라기 보다는 <'계'의 연환>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여러 계책들을 빈틈없이 엮어서 몰아치는 것으로 이것도 '연환계'라는 용어로 쓰여왔다.

그 외에 송(宋)나라의 장수 필재우(畢再遇)는 금(金)나라 병사들과의 전투에서 진격과 퇴각을 거듭하여 하루종일 적군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향료를 넣어 삶은 콩을 땅에 뿌려 놓고는 적을 도발하여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쳤다. 승세를 놓칠세라 추격하던 적군이 콩을 뿌려 놓은 곳에 이르자, 하루종일 굶주린 적군의 말들은 콩을 먹느라 채찍을 휘둘러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필재우는 이 틈을 타서 역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전략도 연환계의 한 예로 언급된다.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패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敗戰計

女必從夫 (여필종부)

女必從夫(여필종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

與虎謀皮 (여호모피)

與虎謀皮(여호모피)

与虎谋皮[yǔhǔmóupí]

與 더불 여 | 虎 범 호 | 謀 꾀할 모 | 皮 가죽 피 |

호랑이에게 가죽을 내어 놓으라고 꾀다라는 뜻으로,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

Ask a tiger for its skin.


원래는 여호모피(與狐謀皮:여우와 여우 가죽을 구할 일을 도모하다)였으나, 나중에 여우[狐]가 호랑이[虎]로 바뀌었다. 중국 춘추시대에 노(魯)나라 정공(定公)이 공자(孔子)를 사도(司徒) 벼슬에 앉히려고 하였다. 정공은 그 전에 좌구명(左丘明)을 불러, 삼환(三桓)과 그 일에 대하여 의논하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삼환은 환공(桓公)의 손자인 계손씨(季孫氏)와 숙손씨(叔孫氏), 맹손씨(孟孫氏) 세 사람을 일컫는데, 이들은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들로서 공자와는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좌구명은 삼환은 공자와 정치적 이해가 상충하므로 반대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우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갖옷과 맛난 음식을 좋아하는 주(周)나라 사람이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갖옷을 만들기 위하여 여우들에게 찾아가서는 그 가죽을 달라고 하고,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하여 양들을 찾아가 그 고기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우들은 줄줄이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가버렸고, 양들은 울창한 숲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주나라 사람은 10년 동안 갖옷을 한 벌도 만들지 못하고 5년 동안 양고기를 구경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가 의논할 대상을 잘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주께서 공구(孔丘:공자)를 사도로 삼으려 하시면서 삼환을 불러 그 일에 대하여 의논하는 것은 여우와 그 가죽을 얻을 일을 의논하고 양과 그 고기를 얻을 일을 의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공은 좌구명의 말을 듣고는 삼환을 불러 의논하지 않고 공자를 사도로 임명하였다.

與狐謀皮라는 말은 후에 與虎謀皮로 바뀌었으며, 與虎謀皮는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여호모피는 호랑이에게 제 가죽을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구하는 일이 상대방의 이해와 상충하여 이루어질 수 없음 또는 이해가 상충하는 상대방이 도와줄 리가 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태평어람:부자 《太平御览》卷二0八引《符子》
태평어람:직관부(職官部)·사도 하(司徒下)

欲为千金之裘而与狐谋其皮,欲具少牢之珍而与羊谋其羞,言未卒,狐相率逃于重丘之下,羊相呼藏于深林之中。 (욕위천금지구이여호모기피, 욕구소뢰지진이여양모기수, 언미졸, 호상솔도우중구지하, 양상호장우심림지중.)

천금짜리 옷이 탐나 여우에게 가죽 얘기를 하고, 제삿상에 바칠 고기로 양을 뻔뻔히 얘기하고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여우를 데리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양들이 산속으로 숨어버리더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與虎謨皮(여호모피) | 與虎謀皮(여호모피) | 與狐謨皮(여호모피) | 與狐謀皮(여호모피) | 與羊謨肉(여양모육) |

與狐謨皮 (여호모피)

與狐謨皮(여호모피)

與 더불 여, 줄 여 | 狐 여우 호, 범 호 | 謀 꾀할 모 | 皮 가죽 피 |

여우하고 여우의 모피(毛皮)를 벗길 모의(謀議)를 한다는 뜻으로, 이해(利害)가 상충하는 사람하고 의논(議論)하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다[與狐謀其皮]. 자신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하였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출전

태평어람:부자 《太平御览》卷二0八引《符子》

欲为千金之裘而与狐谋其皮,欲具少牢之珍而与羊谋其羞,言未卒,狐相率逃于重丘之下,羊相呼藏于深林之中。 (욕위천금지구이여호모기피, 욕구소뢰지진이여양모기수, 언미졸, 호상솔도우중구지하, 양상호장우심림지중.)

천금짜리 옷이 탐나 여우에게 가죽 얘기를 하고, 제삿상에 바칠 고기로 양을 뻔뻔히 얘기하고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여우를 데리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양들이 산속으로 숨어버리더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與虎謨皮(여호모피) | 與虎謀皮(여호모피) | 與狐謨皮(여호모피) | 與狐謀皮(여호모피) | 與羊謨肉(여양모육) |

鹽鐵論 (염철론) 桓寬 (환관)

鹽鐵論(염철론) 桓寬(환관)

중국 전한(前漢)의 선제(宣帝:재위 BC 74~BC 49) 때에 환관(桓寬)이 편찬한 책.


12권 60장(章). BC 81년 전한의 조정에서 열렸던 회의의 토론내용을 재현(再現)하는 형태로 정리한 독특한 형식으로 엮었다. 무제(武帝) 때부터 비롯된 소금 ·철 ·술 등의 전매(專賣) 및 균수(均輸) ·평준(平準) 등 일련의 재정정책을 무제가 죽은 뒤에도 존속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전국에서 추천을 받고 참석한 자들 간에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참석자 중 오경교수(五經敎授)인 현량(賢良) ·문학(文學) 약 60명은 유가사상(儒家思想)을 근거로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고급관리인 승상(丞相) 차천추(車千秋) 및 어사대부(御史大夫) 상홍양(桑弘羊)과 그 부하 관리들은 법가사상(法家思想)을 내세워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여 이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 책은 염철전매 등의 존속 여부에 관한 것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사상 등에 관해서도 논급되어 있는 기본적 사료(史料)이다.


염철론(鹽鐵論) 관련 고사성어

유속불식(有粟不食) 곡식이 있어도 먹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귀중한 물건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쓸모없음을 이르는 말.

予取先與 (여취선여)

予取先與(여취선여)

予 나 여 | 取 취할 취 | 先 먼저 선 | 與 줄 여 |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는 뜻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

진(晋)나라에 지백(知伯)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귀족인 위환자(魏桓子)에게 영토를 강요하였다. 위환자는 후에 위나라의 선조(先祖)가 된 사람인데, 그도 당시에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차지하려 하였으므로, 지백의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에 임장(任章)이라는 사람이 위환자에게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떼어 주도록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백에게 땅을 떼어준다면, 지백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자만하여 적을 얕보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도 이러한 피해를 입게 될까봐 단결하여 공동으로 지백을 상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백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주서(周書)에서는 상대를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키워주고,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게 미리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故予之]라고 했습니다.

위환자는 임장의 말대로 하였다. 지백은 과연 교만과 횡포, 그리고 탐욕 때문에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불렀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易地思之 (역지사지)

易地思之(역지사지)

易 바꿀 역 | 地 땅 지 | 思 생각할 사 | 之 갈 지 |

처지를 바꿔 생각함.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孔子)가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하였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는데,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안회를 칭찬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禹稷顔子易地則皆然]"라고 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 안회의 생활방식을 통하여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하였다.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如松之盛 (여송지성)

如松之盛(여송지성)

如 같을 여 | 松 솔 송 | 之 갈 지 | 盛 성할 성 |

솔 나무같이 푸르러 성(盛)함은 군자(君子)의 절개(節槪ㆍ節介)를 말한 것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似蘭斯馨如松之盛(사란사형여송지성) |

連戰連勝 (연전연승)

連戰連勝(연전연승)

싸우는 족족 이김.

列子 (열자) 列御寇 (열어구) 005 湯問 (탕문)

列子(열자) 列御寇(열어구)

仲尼(중니) 005 湯問(탕문) 力命(역명)


1 湯問: 殷湯問于夏革曰:“古實有物乎?”夏革曰:“古初無物,今惡得物?後之人將謂今之無物可乎?”殷湯曰:“然則物無先後乎?”夏革曰:“物之終始,初無極已。始或為終,終或為始,惡知其紀?然自物之外,自中之先,朕所不知民。”殷湯曰:“然則上下八方有極盡乎?”革曰:“不知也。”湯固問。革曰:“無則無極,有則有盡;朕何以知之?然無極之外,復無無極,無盡之中,復無無盡。無極復無無極,無盡復無無盡。朕以是知其無極無盡也,而不知其有極有盡也。”湯又問曰:“四海之外奚有?”革曰:“猶齊州也。”湯曰:“汝奚以實之?”革曰:“朕東行至營,人民猶是也。問營之東,復猶營也。西行至豳,人民猶是也。問豳之西,復猶豳也。朕以是知四海四荒四極之不異是也。故大小相含,無窮極也。含萬物者亦如含天地;含萬物也故不窮,含天地也故無極。朕亦焉知天地之表不有大天地者乎?亦吾所不知也。然則天地亦物與。物有不足,故昔者女媧氏練五色石以補其闕;斷鰲之足以立四極。其後共工氏與顓頊爭為帝,怒而觸不周之山,折天柱,絕地維,故天傾西北,日月星辰就焉;地不滿東南,故百川水潦歸焉。”

2 湯問: 湯又問:“物有巨細乎?有修短乎?有同異乎?”革曰:“渤海之東不知幾億萬里,有大壑焉,實惟無底之穀,其下無底,名曰歸墟。八紘九野之水,天漢之流,莫不注之,而無增無減焉。其中有五山焉:一曰岱輿,二曰員嶠,三曰方壺,四曰瀛洲,五曰蓬萊。其山高下周旋三萬里,其頂平處九千里。山之中間相去七萬里,以為鄰居焉。其上臺觀皆金玉,其上禽獸皆純縞。珠玕之樹皆叢生,華實皆有滋味,食之皆不老不死。所居之人皆仙聖之種;一日一夕飛相往來者,不可數焉。而五山之根,無所連著,常隨潮波上下往還,不得暫峙焉。仙聖毒之,訴之于帝。帝恐流于西極,失群聖之居,乃命禺疆使巨鰲十五舉首而戴之。迭為三番,六萬歲一交焉。五山始峙。而龍伯之國,有大人,舉足不盈數步而暨五山之所,一釣而連六鰲,合負而趣,歸其國,灼其骨以數焉。於是岱輿員嶠二山流於北極,沈於大海,仙聖之播遷者巨億計。帝憑怒,侵減龍伯之國使阨。侵小龍伯之民使短。至伏羲神農時,其國人猶數十丈。從中州以東四十萬里,得憔僥國。,人長一尺五寸。東北極有人名曰諍人,長九尺。荊之南有冥靈者,以五百歲為春,五百歲為秋。上古有大椿者,以八竿歲為春,八竿歲為秋。朽壤之上有菌芝者,生于朝,死于晦。春夏之月有蠓蚋者,因雨而生,見陽而死。終發北之北有溟海者,天池也,有魚焉。其廣數千里,其長稱焉,其名為鯤。有鳥焉。其名為鵬,翼若垂天之云,其體稱焉。世豈知有此物哉?大禹行而見之,伯益知而名之,夷堅聞而志之。江浦之間生麼蟲,其史曰焦螟,群悅而集于蚊睫,弗相觸也。棲宿去來,蚊弗覺也。離朱子羽,方晝拭眥揚眉而望之,弗見其形;��俞師曠方夜擿耳俛首而聽之,弗聞其聲。唯黃帝與容成子居空峒之上,同齋三月,心死形廢;徐以神視,塊然見之,若嵩山之阿;徐以氣聽,砰然聞之若雷霆之聲。吳、楚之國有大木焉,其名為櫾,碧樹而冬生,實丹而味酸;食其皮汁,已憤厥之疾。齊州珍之,渡淮而北,而化為枳焉。鸜鵒不逾濟,貉逾汶則死矣。地氣然也。雖然形氣異也,性鈞已,無相易已。生皆全已,分皆足已。吾何以識其巨細?何以識其修短?何以識其同異哉?”

3 湯問: 太形、王屋二山,方七百里,同萬仞。本在冀州之南,河陽之北。北山愚公者,年且九十,面山而居。懲山北之寒塞,出入之迂也。聚室而謀曰:“吾與汝畢力平險,指通豫南,達于漢陰,可乎?”雜然相許。其妻獻疑曰:“以君之力,曾不能損魁父之丘,如太形、王屋何?且焉置土石?”雜曰:“投諸渤海之尾,隱土之北。”遂率子孫荷擔者三夫,叩石墾壤,箕畚運于渤海之尾。鄰人京城氏之孀妻,有遣男,始齔,跳往助之。寒暑易節,始一反焉。河曲智叟笑山之一毛,其如土石何?“北山愚公長息曰:“汝心之固,固不可徹,曾不若孀妻弱子。雖我之死,有子存焉;子又生孫,孫又生子;子又有子,子又有孫;子子孫孫,無窮匱也,而山不加增,何苦而不平?”河曲智叟亡以應。操蛇之神聞之,懼其不已也,告之于帝。帝感其誠,命萬蛾氏二子負二山,一厝朔東,一厝雍南。自此冀之南,漢之陰,無隴斷焉。夸父不量力,欲追日影,逐之于隅穀之際。渴欲得飲,赴飲河渭。河謂不足,將走北飲大澤。未至道,渴而死。棄其杖,尸膏肉所浸,生鄧林。鄧林彌廣數千里焉。

4 湯問: 大禹曰:“六合之間,四海之內,照之以日月,經之以星辰,紀之以四時,要之以太歲。神靈所生,其物異形;或夭或壽,唯聖人能通其道。”夏革曰:“然則亦有不待神靈而生,不待陰陽而形,不待日月而明,不待殺戮而夭,不待將迎而壽,不待五穀而食,不待繒纊而衣,不待舟車而行。其道自然,非聖人之所通也。”

5 湯問: 禹之治水土也,迷而失塗,謬之一國。濱北海之北,不知距齊州幾千萬里,其國名曰終北,不知際畔之所齊限。無風雨霜露,不生鳥、獸、蟲、魚、草、木之類。四方悉平,周以喬陟。當國之中有山,山名壺領,狀若甔甀。頂有口,狀若員環,名曰滋穴。有水涌出,名曰神瀵,臭過蘭椒,味過醪醴。一源分為四埒,注于山下;經營一國,亡不悉遍。土氣和,亡札厲。人性婉而從,物不競不爭。柔心而弱骨,不驕不忌;長幼儕居,不君不臣;男女雜游,不媒不聘;緣不而居,不耕不稼;土氣溫適,不織不衣;百年而死,不夭不病。其民孳阜亡數,有喜樂,亡衰老哀苦。其俗好聲,相攜醉醉經旬乃醒。沐浴神瀵,膚色脂澤,香氣經旬乃歇。周穆王北游,過其國,三年記歸。既反周室,慕其國,��然自失。不進酒肉,不召嬪御者數月,乃復。管仲勉齊桓公,因游遼口,俱之其國。幾尅舉,隰朋諫曰:“君舍齊國之廣,人民之眾,山川之觀,殖物之阜,禮義之盛,章服之美,妖靡盈庭,忠良滿朝,肆咤則徒卒百萬,視撝則諸侯從命,亦奚羨于彼,而棄齊國之社稷,從戎夷之國乎?此仲父之耄,奈何從之?”桓公乃止,以隰朋之言告管仲,仲曰:“此固非朋之所及也。臣恐彼國之不可知之也。齊國之富奚戀?隰朋之言奚顧?”

6 湯問: 南國之人,祝發而裸;北國之人,鞨巾而裘;中國之人,冠冕而裳。九土所資,或農或商或田或漁,如冬裘夏葛,水舟陸車,默而得之,性而成之。越之東有輒木之國,其長子生,則鮮而食之,謂之宜弟。其大父死,負其大母而棄之,曰:“鬼妻不可以同居笮。”楚之南有炎人之國,其親戚死,咼其肉而棄,然後埋其具,乃成為孝子。秦之西有儀渠之國者,其親戚死。聚柴只而焚之。燻則煙上,謂之登遐,然後成為孝子。此上以為政,下以為俗。而未足為異也。

7 湯問: 孔子東游,見兩小兒辯鬭。問其故,一兒曰:“我以日始出時去人近,而日中時遠也。”一兒以日初出遠,而日中時近也。一兒曰:“日初出大如車蓋,及日中,則如盤盂,此不為遠者小而近者大乎?”一兒曰:“日初出滄滄涼涼,及其目中,如探湯,此不為近者熱而遠者涼乎?”孔子不能決也。兩小兒笑曰:“孰汝多知乎?”

8 湯問: 均,天下之至理也,連于形物亦然。均發均縣輕重而發絕,發不均也。均也,其絕也,莫絕。人以為不然,自有笑其然者也。詹何以獨繭絲為綸,芒針為鉤,荊篠為竿,剖粒為餌,引盈車之魚于百仞之淵、汨流之中,綸不絕,鉤不伸,竿不橈。楚王聞而異之,召問其故。詹何曰:“臣聞先大夫之言。蒲且子之弋也,弱弓纖繳,乘風振之,連雙鶬于青云之際。用心專,動手均也。臣因其事,放而學釣,五年始盡其道。當臣之臨河持竿,心無雜慮,唯魚之念;投綸沉鉤,手無輕重,物莫能亂。魚見臣之鉤餌,猶沉埃聚沫,吞之不疑。所以能以弱制強,以輕致重也。大王治國誠能若此,則天下可運于一握,將亦奚事哉?”楚王曰:“善!”

9 湯問: 魯公扈、趙齊嬰二人有疾,同請扁鵲求治,扁鵲治之。既同愈。謂公扈、齊嬰曰:“汝曩之所疾,自外而干府藏者,固藥石之所已。今有偕生之疾,與體偕長,今為汝攻之,何如?”二人曰:“愿先聞其驗。”扁鵲謂公扈曰:“汝志強而氣弱,故足于謀而寡于斷。齊嬰志弱而氣強,故少于慮而傷于專。若換汝之心,則均于善矣。”扁鵲遂飲二人毒酒,迷死三日,剖胸探心,易而置之;投以神藥,既悟,如祿。二人辭歸。于是公扈反齊嬰之室,而有其妻子,妻子弗識。齊嬰亦反公扈之室室,有其妻子,妻子亦弗識。二室因相與訟,求辨于扁鵲。扁鵲辨其所由,訟乃已。

10 湯問: 匏巴鼓琴,而鳥舞魚躍,鄭師文聞之,棄家從師襄游。柱指鉤弦,三年不成章。師襄曰:“子可以歸矣。”師文舍其琴嘆曰:“文非弦之不能鉤,非章之不能成。文所存者不在弦,所志者不在聲。內不得于心,外不應于器,故不敢發手而動弦。且小假之以觀其所。”無幾何,復見師襄。師襄曰:“子之琴何如?”師文曰:“得之矣。請嘗試之。”于是當春而叩商弦,以召南呂,涼風忽至,草木成實。及秋而叩角弦,以激夾鐘,溫風徐迴,草木發榮。當夏而叩羽弦,以召黃鐘,霜雪交下,川池暴沍。及冬而叩徵弦,以激蕤賓,陽光泅烈,堅冰立散。將終命宮而總四弦。則景風翔,慶云浮,甘露降,澧泉涌。師襄乃撫心高蹈曰:“微矣,子之彈也!雖師曠之清角,鄒衍之吹律,亡以加之。被將挾琴執管而從子之後耳。”

11 湯問: 薛譚學謳于秦青,未窮青之技,自謂盡之,遂辭歸。秦青弗止。餞于郊衢,撫節悲歌,聲振林木,響遏行云。薛譚乃謝求反,終身不敢言歸。秦青顧謂其友曰:“昔韓娥東之齊,匱糧,過雍門,鬻歌假食。既去,而餘音繞梁欐,三日不絕,左右以其人弗去。過逆旅,逆旅人辱之。韓娥因曼聲哀哭,一里老幼。悲悉垂涕相對,三日不食。遽百追之。娥還復為曼聲長歌,一里老幼,善躍抃舞,弗能自禁,忘向之悲也。乃厚賂發之。故雍門之人至今善歌哭,放娥之遺聲。”

12 湯問: 伯牙善鼓琴,鐘子期善聽。伯牙鼓琴,志在登高山。鐘子期曰:“善哉洋洋兮若江河!”伯牙所念,鐘子期必得之。伯牙游于泰山之陰,卒逢暴雨,止于巖下;心悲,用援琴而鼓之。初為霖雨之操,更造崩山之音,曲每奏,鐘子期輒窮其趣。伯牙乃舍琴而嘆曰:“善哉善哉!子之聽夫志,想象猶吾心也。吾于何逃聲哉?”

13 湯問: 周穆王西巡狩,越昆倉,不至弇山。反還,未及中國,道有獻工人名偃師,穆王薦之,問曰:“若有何能?”偃師曰:“臣唯命所試。然臣已有所造,愿王先觀之。”穆王曰:“日以俱來,吾與若俱觀之。”翌日,偃師謁見王。王薦之曰:“若與偕來者何人耶?”對曰:“臣之所造能倡者。”穆王驚視之,趨步俯仰,信人也。巧夫,顉其頤,則歌合律;捧其手,則舞應節。千變萬化,惟意所適。王以為實人也。與盛姬內御并觀之。技將終,倡者瞬其目而招王之左右待妾。王大怒,立欲誅偃師。偃師大懾,立剖散倡者以示王,皆傅會革、木、膠、漆、白、黑、丹、青之所為。王諦料之,內則肝、膽、心、肺、脾、腎、腸、胃,外則筋骨、支節、、皮毛、齒發,皆假也,而無不畢具者。合會復如初見。王試廢其心,則口不能言;廢其肝,則目不能視;廢其腎,則足不能步。穆王始悅而嘆曰:“人之巧乃可與造化者同功乎?”詔貳車載之以歸。夫班輸之云梯,墨翟之飛鳶,自謂能之極也。弟子東門賈、禽滑釐,聞偃師之巧,以告二子,二子終身不敢語藝,而時執規矩。

14 湯問: 甘蠅,古之善射者,彀弓而獸伏鳥下。弟子名飛衛,學射于甘蠅,而巧過其師。紀昌者,又學射于飛衛。飛衛曰:“爾先學不瞬,而後可言射矣。”紀昌歸,偃臥其妻之機下,以目承牽挺。二年之後,雖錐末倒眥而不瞬也。以告飛衛。飛衛曰:“未也,必學視而後可。視小如大,視微如著,而後告我。”昌以氂懸虱于牖。南面而望之。旬日之間,浸大也;三年之後,如車輪焉。以睹餘物,皆丘山也。乃以燕角之弧,朔蓬之簳,射之,貫虱之心,而懸不絕。以告飛衛。飛衛高蹈拊膺曰:“汝得之矣!“紀昌既盡衛之術,計天下之敵己者一人而已,乃謀殺飛衛。相遇于野,二人交射;中路端鋒相觸,而墜于地,而塵不揚。飛衛之矢先窮。紀昌遺一矢,既發,飛衛以棘刺之端扞之,而無差焉。于是二子泣而投弓,相拜于塗,請為父子。尅臂以誓,不得告術于人。

15 湯問: 造父之師曰泰豆氏。造父之始從習御也,執禮甚稗稗泰豆三年不告。造父執禮愈謹乃告之曰:“古詩言:‘良弓之子,必先為箕,良冶之子,必先為裘。’汝先觀吾趣。趣如事,然後六轡可持,六馬可御。”造父曰:“唯命所從。”泰豆乃立木為途,僅可容足;計步而置。履之而行。趣走往還,無跌失也。造父學子,三日盡其巧。泰豆嘆曰:“子何其敏也,得之捷乎?凡所御者,亦如此也。曩汝之行,得之于足,應之于心。推于御也,齊輯乎轡銜之際,而急緩乎唇吻之和;正度乎胸臆之中,而執節乎掌握之間。內得于中心,而外合于馬志,是故能進退履繩,而旋曲中規矩,取道致遠,而氣力有餘,誠得其術也。得之于銜,應之于轡;得之于轡,應之于物;得之于物,應之于心。則不以目視,不以策驅;心閑體正,六轡不亂,而二十四蹄所投無差;回旋進退,莫不中節。然後輿輪之外,可使無餘轍;馬蹄之外,可使無餘地。未嘗覺山谷之險。原隰之夷,視之一也。吾術窮矣。汝其識之!”

16 湯問: 魏黑卵以暱嫌殺丘邴章。丘邴章之子來丹謀報父子仇。丹氣甚猛,形甚露,計料而食,順風而趨。雖怒,不能稱兵以報之。恥假力于人,誓手劍以屠黑卵。黑卵悍志絕眾,九抗百夫,筋骨皮肉,非人類也。延頸承刀,披胸受矢,鋩鍔摧屈,而體無痕撻。負其材力,視來丹猶雛鷇也。來丹之友申他曰:“子怨黑卵至矣,黑卵之易子過矣,將奚謀焉?”來丹垂涕曰:“愿子為我謀。”申他曰:‘吾聞衛孔周其祖得殷帝之寶劍,一童子服之,卻三軍之眾,奚不請焉?“丹遂適衛,見孔周,執仆御之禮請先納妻子,後言所欲。孔周曰:“吾有三劍,唯子所譯;皆不能父人,且先言其狀。一曰含光,視之不可見,運之不知有。其所觸也,泯然無際,經物而物不覺。二曰承影,將旦昧爽之交,日夕昏明之際,北面而察之,淡淡焉若有物存,莫識其狀。其所觸也,竊竊然有聲,經物而物不疾也。三曰宵練,方晝則見影而不見光,方夜見光而不見形。其觸物也,騞然而過,隨過隨合,覺疾而不血刃焉。此三寶者,傳之十三世矣,而無施于事。匣而藏之,未嘗啟封,”來丹曰:“雖然,吾心請其下者。”孔周乃歸其妻子,與齋七日。晏陰之間,跪而授其下劍,來丹再拜受之以歸。來丹遂執劍從黑卵。時黑卵之醉,偃于牖下,自頸至腰三斬之。黑卵不覺。來丹以黑卵之死,趣而退。遇黑卵之子于門,擊之三下,如投虛。黑卵之子方笑曰:“汝何蚩而三招子?”來丹知劍之不能殺人也,嘆而歸。黑卵既醒,怒其妻曰:“醉而露我,使人嗌疾而腰急。”其子曰:“疇昔來丹之來。遇我于門,三招我,亦使我體疾而支強,彼其厭我哉!”

17 湯問: 周穆王大征西戎,西戎獻錕鋙之劍,火浣之布。其劍長尺有咫,練鋼赤刃,用之切玉如切泥焉。火浣之布,浣之必投于火;布則火色,垢則布色;出火而振之,皓然疑乎雪。皇子以為無此物,傳之者妄。蕭叔曰:“皇子果于自信,果于誣理哉!”

列子 (열자) 列御寇 (열어구) 002 黃帝 (황제)

列子(열자) 列御寇(열어구)

天瑞(천서) 黃帝(황제) 周穆王(주목왕)


1 黃帝: 黃帝即位十有五年,喜天五戴己,養正命,娛耳目,供鼻口,焦然肌色皯黴,昏然五情爽惑。又十有五年,憂天下之不治,竭聰明,進智力,營百姓,焦然肌色皯黴,昏然五情爽惑。黃帝乃喟然贊曰:“朕之過淫矣。養一己其患如此,治萬物其患如此。”于是放萬機,舍宮寢,去直待,徹鐘縣。減廚膳,退而間居大庭之館,齋心服形,三月不親政事。晝寢而夢,游于華胥氏之國。華胥氏之國在弇州之西,臺州之北,不知斯齊國幾千萬里;蓋非舟四足力之所及,神游而已。其國無帥長,自然而已。其民無嗜欲,自然而已。不知樂生,不知惡死,故無夭殤;不知親己,不知疏物,故無愛憎;不知背逆,不知向順,故無利害;都無所愛惜,都無所畏忌。入水不溺,入火不熱。斫撻無傷痛,指擿無痟癢。乘空如履實,寢虛若處床。云霧不硋其視,雷霆不亂其聽,美惡不滑其心,山谷不躓其步,神行而已。黃帝既悟,怡然自得,召天老、力牧、太山稽,告之曰:“朕閑居三月,齋心服形,思有以養身治物之道,弗獲其術。疲而睡,所夢若此。今知至道不可以情求矣。朕知之矣!朕得之矣!而不能以告若矣。”又二十有八年,天下大治,幾若華胥氏之國,而帝登假,百姓號之,二百餘年不輟。

2 黃帝: 列姑射山在海河洲中,山上有神人焉,吸風飲露,不食五穀;心如淵泉,形如處女,不偎不愛,仙聖為之臣;不畏不怒,愿愨為之使;不施不惠,而物自足;不聚不斂,而已無愆。陰陽常調,日月常明,四時常若,風雨常均,字育常時,年穀常豐;而土無札傷,人無夭惡,物無疵癘,鬼無靈響焉。

3 黃帝: 列子師老商氏,友伯高子;進二子之道,乘風而歸。尹生聞之,從列子居,數月不省舍。因間請蘄其術者,十反而十不告。尹生懟而請辭,列子又不命。尹生退。數月,意不已,又往從之。列子曰:“汝何去來之頻?”尹生曰:“曩章戴有請于子,子不我告,固有憾于子。今復脫然,是以又來。”列子曰:“曩吾以汝為達,今汝之鄙至此乎。姬!將告汝所學于夫子者矣。自吾之事夫子友若人也,三年之後,心不敢念是非,口不敢言利害,始得夫子一眄而已。五年之後,心庚念是非,口庚言利害,夫子始一解顏而笑。七年之後,從心之所念,庚無是非;從口之所言,庚無利害,夫子始一引吾并席而坐。九年之後,橫心之所念,橫口之所言,亦不知我之是非利害歟,亦不知彼之是非利害歟;亦不知夫子之為我師,若人之為我友:內外進矣。而後眼如耳,耳如鼻,鼻如口,無不同也。心凝形釋,骨肉都融;不覺形之所倚,足之所履,隨風東西,猶木葉干殼。竟不知風乘我邪?我乘風乎?今女居先生之門,曾未浹時,而懟憾者再三。女之片體將氣所不受,汝之一節將地所不載。履虛乘風,其可幾乎?”尹生甚怍,屏息良久,不敢復言。

4 黃帝: 列子問關尹曰:“至人潛行不空,蹈火不熱,行乎萬物之上而不慄。請問何以至于此?”關尹曰:“是純氣之守也,非智巧果敢之列。姬!魚語女。凡有貌像聲色者,皆物也。物與物何以相遠也?夫奚足以至乎先?是色而已。則物之造乎不形,而止乎無所化。夫得是而窮之者,焉得為正焉?彼將處乎不深之度,而藏乎無端之紀,游乎萬物之所終始。壹其性,養其氣,含其德,以通乎物之所造。夫若是者,其天守全,其神無郤,物奚自入焉?夫醉者之墜于車也,雖疾不死。骨節與人同,而犯害與人異,其神全也。乘亦弗知也,墜亦弗知也。死生驚懼,不入乎其胸,是故遌物而不慴。彼得全于酒,而猶若是,而況得全于天乎?聖人藏于天,故物莫之能傷也。”

5 黃帝: 列御寇為伯昏瞀人射,引之盈貫,措杯水其肘上,發之,鏑矢復沓,方矢復寓。當是時也,猶象人也。伯昏瞀人曰:“是射之射,非不射之射也。當與汝登高山,履危石,臨百仞之淵,若能射乎?”于是瞀人遂登高山,履危石,臨百仞之淵,背逡巡,足二分垂在外,揖御寇而進之。御寇伏地,汗流至踵。伯昏瞀人曰:“夫至人者,上窺青天,下潛黃泉,揮斥八極。神氣不變。今汝怵然有恂目之志,爾于中也殆矣夫!”

6 黃帝: 范氏有子曰子華,善養私名,舉國服之;有寵于晉君,不仕而居三卿之右。目所偏視,晉國爵之;口所偏肥,晉國黜之。游其庭者侔于朝。子華使其俠客,以智鄙相攻,彊弱相凌。雖傷破于前,不用介意。終日夜以此為戲樂,國殆成俗。禾生、子伯、范氏之上客。出行經坰外,宿于田更商丘開之舍。中夜,禾生、子伯二人相與言子華之名勢,能使存者亡,亡者存;富者貧,貧者富。商丘開先窘于饑寒,潛于牖北聽之。因假糧荷畚之子華之門。子華之門徒皆世族也,縞衣乘軒,緩步闊視。顧見商丘開年老力弱,面目黎黑,衣冠不檢,莫不眲之。既而狎侮欺詒,攩㧙挨抌,亡所不為。商丘開常無慍容,而諸客之技單,憊于戲笑。遂與商丘開俱乘高臺,于眾中漫言曰:“有能自投下者賞百金。”眾皆競應。商丘開以為信然,遂先投下,形若飛鳥,揚于地,肌骨無毀。范氏之黨以為偶然,未詎怪也。因復指河曲之淫隈曰:“彼中有寶珠,泳可得也。”商丘開復從而泳之,既出,果得珠焉。眾昉同疑。子華昉令豫肉食衣帛之次。俄而范氏之藏大火。子華曰:“若能入火取綿者,從所得多少賞若。”商丘開往,無難色,入火往還,埃不漫,身不焦。范氏之黨以為有道,乃共謝之曰:“吾不知子之有道而誕子,吾不知子之神人而辱子。子其愚我也,子其聾我也,子其盲我也,敢問其道。”商丘開曰:‘吾亡道。雖吾之心,亦不知所以。雖然,有一于此,試與子言之。曩子二客之宿吾舍也,聞譽范氏之勢,能使存者亡,亡者存;富者貧,貧者富。吾誠之無二心,故不遠而來。及來,以子黨之言皆實也,唯恐誠之之不至,行之之不及,不知形體之所措,利害之所存也。心一而已。物亡迕者,如斯而已。今昉知子黨之誕我,我內藏猜慮,外矜觀聽,追幸昔日之不焦溺也,怛然內熱,惕然震悸矣。水火豈復可近哉?”自此之後,范氏門徒路遇乞兒馬醫,弗敢辱也,必下車而揖之。宰我聞之,以告仲尼。仲尼曰:“汝弗知乎?夫至信之人,可以感物也。動天地,感鬼神,橫六合而無逆者,豈但履危險,入水火而已哉?商丘開信偽物猶不逆,況彼我皆誠哉?小子識之!”

7 黃帝: 周宣王方牧正,有役人梁鴦者,能養野禽獸,委食于園庭之內,雖虎狼雕鶚之類,無不柔馴者。雄雌在前,孳尾成群,異類雜居,不相搏噬也。王慮其術終于其身,令毛丘園傳之。梁鴦曰:“鴦,賤役也,何術以告爾?懼王之謂隱于爾也,且一言我養虎之法。凡順之則喜,逆之則怒,此有血氣者之性也。然喜怒豈妄發哉?皆逆之所犯也。夫食虎者,不敢以生物與之,為其殺之之怒也;不敢以全物與之,為其碎之之怒也。時其饑飽,達其怒心。虎之與人異類,而媚養己者,順也;故其殺之,逆也。然則吾豈敢逆之使怒哉?亦不順之使喜也。夫喜之復也必怒,怒之復也常喜,皆不中也。今吾心無逆順者也,則鳥獸之視吾,猶其儕也。故游吾園者,不思高林曠澤;寢吾庭者,不愿深山幽穀,理使然也。”

8 黃帝: 顏回問乎仲尼曰:“吾嘗濟乎觴深之淵矣,津人操舟若神。吾問焉,曰:‘操舟可學邪?’曰:‘可。能游者可教也,善游者數能。乃若夫沒人,則未嘗見舟而謖操之者也。’吾問焉而不告。敢問何謂也?”仲尼曰:‘譩!吾與若玩其文也久矣,而未達其實,而固且道與。能游者可教也,輕水也;善游者之數能也,忘水也。乃若夫沒人之未嘗見舟也而謖操之也,彼視淵若陵,視舟之覆猶其車郤也。覆郤萬物方陳乎前,而不得入其舍,惡往而不暇?以瓦摳者巧,以鉤摳者憚,以黃金摳者惛。巧一也,而有所矜,則重外也。凡重外者拙內。“

9 黃帝: 孔子觀于呂梁,懸水三十仞,流沫三十里,黿鼉魚鱉之所不能游也。見一丈夫游之,以為有苦而欲死者也,使弟子并流而承之。數百步而出,被髪行歌,而游于棠行。孔子從而問之曰:“呂梁懸水三十仞,流沫三十里,黿鼉魚鱉所不能游,向吾見子道之,以為有苦而欲死者,使弟子并流將承子。子出而被髪行歌,吾以子為鬼也。察子則人也。請問蹈水有道乎?”曰:“亡,吾無道。吾始乎故,長乎性,成乎命,與齊俱入,與汨偕出,從水之道而不為私焉。此吾所以道之也。”孔子曰:“何謂始乎故,長乎性,成乎命也?”曰:“吾生于陵安于陵,故也;長于水而安于水,性也;不知吾所以然而然,命也。”

10 黃帝: 仲尼適楚,出于林中,見痀僂者承蜩,猶掇之也。仲尼曰:“子巧乎!有道邪?”曰:“我有道也。五六月累垸二而不墜,則失者錙銖;累三而不墜,則失者十一;累五而不墜,猶掇之也。吾處也,若厥株駒,吾執臂若槁木之枝。雖天地之大、萬物之多,而唯蜩翼之知。吾不反不側,不以萬物易蜩之翼,何為而不得?”孔子顧謂弟子曰:“用志不分,乃凝于神。其痀僂丈人之謂乎!”丈人曰:“汝逢衣徒也,亦何知問是乎?修汝所以,而後載言其上。”

11 黃帝: 海上之人有好漚鳥者,每旦之海上,從漚鳥游,漚鳥之至者百數而不止。其父曰:“吾聞漚鳥皆從汝游,汝取來,吾玩之。”明日之海上,漚鳥舞而不下也。故曰:至言去言,至為無為;齊智之所知,則淺矣。

12 黃帝: 趙襄子率徒十萬,狩于中山,藉芿燔林,扇赫百里,有一人從石壁中出,隨煙燼上下,眾謂鬼物。火過,徐行而出,若無所經涉者。襄子怪而留之,徐而察之:形色七竅,人也;氣息音聲,人也。問奚道而處石?奚道而入火?其人曰:“奚物而謂石?奚物而謂火?”襄子曰:“而向之所出者,石也;而向之所涉者,火也。”其人曰:“不知也。”魏文侯聞之,問子夏曰:“彼何人哉?” 子夏曰:“以商所聞夫子之言,和者大同于物,物無得傷閡者,游金石,蹈水火,皆可也。”文侯曰:“吾子奚不為之?”子夏曰:“刳心去智,商未之能。雖然,試語之有暇矣。”文侯曰:“夫子奚不為之?”子夏曰:“夫子能之而能不為者也。”文侯大說。

13 黃帝: 有神巫自齊來處于鄭,命曰季咸,知人死生、存亡、禍福、壽夭,期以歲、月、旬、日,如神。鄭人見之,皆避而走。列子見之而心醉,而歸以告壺丘子,曰:“始吾以夫子之道為至矣,則又有至焉者矣。”壺子曰:“吾與汝無其文,未既其實,而固得道與?眾雌而無雄,而又奚卵焉?而以道與世抗,必信矣。夫故使人得而相汝。嘗試與來,以予示之。”明日,列子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嘻!子之先生死矣,弗活矣,不可以旬數矣。吾見怪焉,見濕灰焉。”列子入,涕泣沾襟,以告壺子。壺子曰:“向吾示之以地文,罪乎不誫不止,是殆見吾杜德幾也。嘗又與來!”明日,又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幸矣,子之先生遇我也,有瘳矣。灰然有生矣,吾見杜權矣。”列子入告壺子。壺子曰:“向吾示之以天壤,名實不入,而機發于踵,此為杜權。是殆見吾善者幾也。嘗又與來!”明日,又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子之先生,坐不齋,吾無得而相焉。試齋,將且復相之。”列子入告壺子。壺子曰:“向吾示之以太沖莫眹,是殆見吾衡氣幾也。鯢旋之潘為淵,止水之潘為淵,流水之潘為淵,濫水之潘為淵,沃水之潘為淵,氿水之潘為淵,雍水之潘為淵,汧水之潘為淵,肥水之潘為淵,是為九淵焉,嘗又與來!”明日,又與之見壺子。立未定,自失而走。壺子曰:“追之!”列子追之而不及,反以報壺子,曰:“已滅矣,已失矣,吾不及也。“壺子曰:”向吾示之以未始出吾宗。吾與之虛而猗移,不知其誰何,因以為茅靡,因以為波流,故逃也。”然後列子自以為未始學而歸,三年不出,為其妻爨,食狶如食人,于事無親,雕瑑復樸,塊然獨以其形立,紛然而封戎,壹以是終。

14 黃帝: 子列子之齊,中道而反,遇伯昏瞀人。伯昏瞀人曰:“奚方而反?”曰:“吾驚焉。”“惡乎驚?”“吾食于十漿,而五漿先饋。”伯昏瞀人曰:“若是則汝何為驚已?”曰:“夫內誠不解,形諜成光,以外鎮人心,使人輕乎貴老,而韲其所患。夫漿人特為食羹之貨,多餘之贏;其為利也薄,其為權也輕,而猶若是。而況萬乘之主,身勞于國,而智盡于事;彼將任我以事,而效我以功,吾是以驚。”伯昏瞀人曰:“善哉觀乎!汝處己,人將保汝矣。”無幾何而往,則戶外之屨滿矣。伯昏瞀人北面而立,敦杖蹙之乎頤。立有間,不言而出。賓者以告列子。列子提履徒跣而走,暨乎門,問曰:“先生既來,曾不廢藥乎?”曰:“已矣。吾固告汝曰,人將保汝,果保汝矣。非汝能使人保汝,而汝不能使人無汝保也,而焉用之感也?感豫出異。且必有感也,搖而本身,又無謂也。與汝游者,莫汝告也。彼所小言,盡人毒也。莫覺莫悟,何相孰也。”

15 黃帝: 楊朱南之沛,老聃西游于秦。邀于郊。至梁而遇老子。老子中道仰天而嘆曰:“始以汝為可教,今不可教也。”楊朱不答。至舍,進涫漱巾櫛,脫履戶外,膝行而前曰:“向者夫子仰天而嘆曰:‘始以汝為可教,今不可教。’弟子欲請夫子辭,行不閑,是以不敢。今夫子閑矣,請問其過。”老子曰:“而睢睢,而盱盱,而誰與居?大白若辱,盛德若不足。”楊朱蹴然變容曰:“敬聞命矣!”其往也,舍者迎將家,公執席,妻執巾櫛,舍者避席,煬者避灶。其反也,舍者也之爭席矣。

16 黃帝: 楊朱過宋東之于逆旅。逆旅人有妾二人,其一人美,其一人惡;惡者貴而美者賤。楊子問其故。逆旅小子對曰:“其美者自美,吾不知其美也;其惡者自惡,吾不知其惡也。”楊子曰:“弟子記之!行賢而去自賢之行,安往而不愛哉!”

17 黃帝: 天下有常勝之道,有不常勝之道。常勝之道曰柔,常不勝之道曰強。二者亦知,而人未之知。故上古之言:強,先不己若者;柔先出于己者。先不己若者,至于若己,則殆矣。先出于己者,亡所殆矣。以此勝一身若徒,以此任天下若徒,謂不勝而自勝,不任而自任也。粥子曰:“欲剛,必以柔守之;欲強,必以弱保之。積于柔必剛,積于弱必強。觀其所積,以知禍福之鄉。強勝不若己,至于若己者剛;柔勝出于己者,其力不可量。”老聃曰:“兵強則滅。木強則折。柔弱者生之徒,堅強者死之徒。”

18 黃帝: 狀不必童,而智童;智不必童,而狀童。聖人取童智而遺童狀,眾人近童狀而疏童智。狀與我童者,近而愛之;狀與我異者,疏而畏之。有七尺之骸,手足之異,戴發含齒,倚而趣者,謂之人。而人未必無獸心;雖有獸心,以狀而見親矣。傅翼戴角,分牙布爪,仰飛伏走,謂之禽獸。而禽獸未必無人心;雖有人心,以狀而見疏矣。庖犧氏、女媧氏、神農氏、夏後氏,蛇身人面,牛首虎鼻;此有非人之狀,而有大聖之德。夏桀、殷紂、魯桓、楚穆,狀貌七竅,皆同于人,而有禽獸之心。而眾人守一狀以求至智,未可幾也。黃帝與炎帝戰于阪泉之野,帥熊、羆、狼、豹、貙、虎為前驅,雕、鹖、鷹、鳶為旗幟,此以力使禽獸者也。堯使夔典樂,擊石拊石,百獸率舞;簫韶九成,鳳皇來儀:此以聲致禽獸者也。然則禽獸之心,奚為異人?形音與人異,而不知接之之道焉。聖人無所不知,無所不通,故得引而使之焉。禽獸之智有自然與人童者,其齊欲攝生,亦不假智于人也。牝牡相偶,母子相親,避平依險,違寒就溫;居則有群,行則有列;小者居內,壯者居外;飲則相攜,食則鳴群。太古之時,則與人同處,與人并行。帝王之時,始驚駭散亂矣。逮于末世,隱伏逃竄,以避患害。今東方介氏之國,其國人數數解六畜之語者,蓋偏知之所得。太古神聖之人,備知萬物情態,悉解異類音聲。會而聚之,訓而受之,同于人民。故先會鬼神魑魅,次達八方人民,末聚禽獸蟲蛾。言血氣之類,心智不殊遠也。神聖知其如此,故其所教訓者無所遺逸焉。

19 黃帝: 宋有狙公者,愛狙,養之成群,能解狙之意;狙亦得公之心。損其家口,充狙之欲。俄而匱焉,將限其食。恐眾狙之不馴于己也,先誑之曰:“與若芧,朝三而暮四,足乎?”眾狙皆起而怒。俄而曰:“與若芧,朝四而暮三,足乎?”眾狙皆伏而喜。物之以能鄙相籠,皆猶此也。聖人以智籠群愚,亦猶狙公之以智籠眾狙也。名實不虧,使其喜怒哉!

20 黃帝: 紀渻子為周宣王養鬭雞,十日而問:“雞可鬭已乎?“曰:“未也,方虛驕而恃氣。”十日又問。曰:“未也,猶應影響。”十日又問。曰:“未也,猶疾視而盛氣。十日又問。曰:“幾矣。雞雖有鳴者,已無變矣。望之似木雞矣,其德全矣。異雞無敢應者,反走耳。”

21 黃帝: 惠盎見宋康王。康王蹀足謦欬,疾言曰:“寡人之所說者,勇有力也,不說為仁義者也。客將何以教寡人?”惠盎對曰:“臣有道于此,使人雖勇,刺之不入;雖有力,擊之弗中。大王獨無意邪?”宋王曰:“善,此寡人之所欲聞也。”惠盎曰:“夫刺之不入,擊之不中,此猶辱也。臣有道于此,使人雖有勇弗敢刺;雖有力弗敢擊。夫弗敢,非無其志也。臣有道于此,使人本無其志也。夫無其志也,未有愛利之心也。臣有道于此,使天下丈夫女子,莫不驩然皆欲愛利之。此其賢于勇有力也,四累之上也。大王獨無意邪?”宋王曰:“此寡人之所欲得也。”惠盎對曰:“孔、墨是已。孔丘、墨翟,無地而為君,無官而為長;天下丈夫女子,莫不延頸舉踵而愿安利之。今大王,萬乘之主也,誠有其志,則四竟之內,皆得其利矣。其賢于孔、墨也遠矣。”宋王無以應。惠盎趨而出。宋王謂左右曰:“辯矣,客之以說服寡人也!”

列子 (열자) 列御寇 (열어구)

列子(열자) 列御寇(열어구)

列子(Lièzǐ)

구분: 철학

저자: 열어구

시대: 춘추전국시대


열어구(列御寇)가 지은 책 이름. 도가(道家) 경전의 하나


8권 8편. 열어구(列禦寇:列子)가 서술한 것을 문인 ·후생들이 보완하여 천서(天瑞) ·황제(黃帝) ·주목왕(周穆王) ·중니(仲尼) ·탕문(湯問) ·역명(力命) ·양주(楊朱) ·설부(說符)의 8편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전한(前漢) 말기에 유향(劉向)이 교정하여 8권으로 만들고, 동진(東晉)의 장담(張湛)이 주(注)를 달았다. 당대(唐代)에는 충허진경(沖虛眞經), 송대에는 충허지덕진경(沖虛至德眞經)이라는 존칭을 받았으나 그 소론(所論)은 노자(老子)의 청허무위(淸虛無爲)의 사상을 따른 것으로 독창성이 적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조삼모사(朝三暮四) ·기우(杞憂) 등의 기사로 유명하다.


관련 고사성어

01 天瑞(천서)

02 黃帝(황제)

海翁好鷗(해옹호구) |
朝三暮四(조삼모사) |

03 周穆王(주목왕)

04 仲尼(중니)

05 湯問(탕문)

愚公移山(우공이산) |

06 力命(역명)

07 楊朱

08 說符

寧靜致遠 (영정치원)

寧靜致遠(영정치원)

寧 편안할 녕, 편안할 영, 편안할 령, 편안할 영 | 靜 고요할 정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遠 멀 원 |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

拈一放一 (염일방일)

염일방일(拈一放一)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한다.



선불교

呂氏春秋 (여씨춘추) 呂不韋 (여불위)

呂氏春秋(여씨춘추) 呂不韋(여불위)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제자백가 중 잡가(雜家)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람(呂覽)》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거상이자 진(秦: 기원전 900?~기원전 221/206)의 재상인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92~235)가 전국의 논객들과 식객들을 모아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절충·통합시키고 세밀하게 분석하여 정치와 율령의 참고로 삼기 위해 저술하게 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총 26권 160편으로, 연감에 해당하는 기(紀) 12권, 보고서에 해당하는 람(覽) 8권, 논문에 해당하는 론(論)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기(禮記)》의 '월령편(月令篇)'은 이들 중 12기(十二紀), 즉 기(紀) 12권의 요약이라고 한다.

다루고 있는 학설 중에는 도가(道家)의 것이 가장 많고 유가(儒家)·병가(兵家)·농가(農家)·법가(法家)의 주장과 이론도 섞여 있다.

여불위는 이 책을 진의 수도 함양 저잣거리에 전시해 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 때문에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관련 한자어

掩耳盜鐘(엄이도종)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

一字千金(일자천금)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깎는다면 천금을 주겠다 |


http://ko.wikipedia.org/wiki/여씨춘추
(중국어) 여씨춘추 원문

如魚得水 (여어득수)

如魚得水(여어득수)

如 같을 여, 말 이을 이 | 魚 고기 어 | 得 얻을 득 | 水 물 수 |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貧窮)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Like fish getting water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諸葛亮)전에는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얻었을 때의 심정을 기록한 대목이 있다. 동한(東漢) 말기, 천하가 대란(大亂)에 휩싸이자, 각 세력들과 다투던 유비는 인재(人才)를 찾고 있었다. 그는 제갈량이라는 인재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직접 세 차례나 그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 천하를 도모하기를 청하였다.

제갈량의 도움으로 유비는 촉한(蜀漢)을 건국하고, 조조, 손권과 삼국정립(三國鼎立)의 국면을 형성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였으며, 제갈량 또한 유비의 대우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유비는 중대한 일들에 대하여 제갈량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제갈량에 대한 태도에 불만이었다.

이에 유비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자네들은 다시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如魚得水(Like fish getting water)란 수어지교(水魚之交), 수어지친(水魚之親)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얻거나 자신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을 얻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之親(수어지친) |

與世推移 (여세추이, yǔshìtuīyí)

與世推移(여세추이)

与世推移(yǔshìtuīyí)

與 더불 여 | 世 인간 세 | 推 옮길 추 | 移 옮길 이 |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간다는 뜻으로 중국 전국시대 초(楚)의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屈原, BC 343 ?~BC 278 ?)의 ‘어부사(漁父辭)’에서 비롯된 말로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간다’는 뜻이다. 초(楚)에서 한때 삼려대부(三閭大夫)의 지위까지 올랐던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러나 굴원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齊)와 단교(斷交)를 하며 친진(親秦) 정책을 펼치던 초(楚) 회왕(懐王)은 장의(張儀)의 모략에 빠져 진(秦)에 사로잡혀 객사하였다.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한 뒤 굴원은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으나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子蘭)이 영윤(令尹, 재상)이 되자 그를 비판하다가 다시 유배되었다. 굴원은 ‘어부사(漁父辭)’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나타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과 못 사이를 거닐면서 詩(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시오?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 사람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漁父)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과 추이를 같이 한다오(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어찌 그 진흙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왜 그 술지게미 배불리 먹고 박주(薄酒)나마 마시지 않고 어찌하여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답하였다. “내 일찍이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의 먼지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 어찌 이 깨끗한 몸에 외물(外物)의 더러움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희고 깨끗한 몸에 세속(世俗)의 티끌을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漁父)는 듣고서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하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滄浪)의 물이 흐리면 발이나 씻으리라.” 마침내 가 버려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서는 ‘여세추이(與世推移)’가 문맥상 혼탁한 세상의 흐름에 따라간다는 의미로 쓰였지만, 일반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얽매여 발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수주대토(守株待兎)’와는 반대로, 시대나 세상의 변화에 융통성 있게 적응해가는 성인(聖人)의 법도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의 ‘최식열전(崔寔列傳)’에는 환제(桓帝) 때 최식(崔寔)이 ‘어부사(漁父辭)’의 표현을 빌어 “성인은 어떤 일에도 구애받음이 없이 세상의 변천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융통성이 없어 마음으로만 괴로워하며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벗어난 말과 글로 나라를 그르치기도 한다.”는 정론(政論)을 남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비자> ‘오두(五蠹)’ 편에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와 함께 “성인은 굳이 옛 도를 닦아 지키려고 하지 않으며, 항상 옳은 것을 법으로 삼지 않고, 세상의 일을 논하여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세운다(聖人不期修古 不法常可 論世之事 因爲之備)”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세추이(與世推移)’는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守株待兎(수주대토) |



어부사, 屈原, 굴원 |

與時俱進 (여시구진)

與時俱進(여시구진)

1910년대 쓴 '중국이론학사'에 등장한 말로 '시대 조류에 맞춰 나가자'는 뜻

廬山眞面目 (여산진면목, Lúshānzhēnmiànmù)

廬山眞面目(여산진면목)

庐山真面目(Lúshānzhēnmiànmù)

廬 오두막집 려 | 山 메 산 | 眞 참 진 | 面 얼굴 면 | 目 눈 목 |


'여산의 참모습'이라는 뜻으로, 너무도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소식은 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하여, 소동파(蘇東坡)라고도 부른다. 여산(루산)을 유람하면서 모두 7수의 시를 지었는데, 《제서림벽》도 그 가운데 한 수이다. 《제서림벽》이라는 제목은 '서림사(西林寺) 담장에 쓴 제시(題詩)'라는 뜻이다. 동진(東晉) 시대에 세워진 서림사는 여산의 북서쪽 기슭에 있는 유명한 고찰이다. 《제서림벽》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綠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고개, 세로로 보면 봉우리
원근고저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일세.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지.

간결한 7언절구로 쓰여진 이 시는 송나라 때 유행한 설리시(說理詩)에 속한다. 곧, 삼면이 물로 싸여 있고 만학천암(萬壑千巖)이 안개에 휩싸여 그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여산의 모습을 통하여 도(道)나 진리의 전모(全貌)를 체득하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여산진면목은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출전: 題西林壁(제서림벽)


관련 한자어

동의어

庐山真面(Lúshānzhēnmiàn) |

참조어

不识庐山真面目(bùshíLúshānzhēnmiànmù) 숲 속에 있는 사람은 숲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다. |

有眼不识泰山(yǒuyǎnbùshíTàishān) 눈이 있어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하다. 견식이 부족해 신분·지위·능력 등이 대단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다. 어른을 몰라보다. |


관련 한시

題西林壁(제서림벽) |


제서림벽, 소식

題西林壁, 蘇軾

鳶飛魚躍 (연비어약)

鳶飛魚躍(연비어약)

鳶 솔개 연 | 飛 날 비 | 魚 물고기 어 | 躍 뛸 약 |

솔개가 하늘을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이나 다 자연 법칙의 작용으로, 새나 물고기가 스스로 터득한다라는 뜻으로, 만물(萬物)이 저마다의 법칙(法則)에 따라 자연(自然)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全體的)으로 천지(天地)의 조화(調和)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自然)의 오묘(奧妙)한 도(道)임을 말함.

① 道理(도리)는 천지간 어디에나 있다는 말. ② 君子(군자)의 德化(덕화)가 널리 미친 상태.

[출전]
詩經(시경) 大雅(대아).


관련 한자어

참조어

鳶飛戾天 魚躍于淵(연비려천 어약우연)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뛰어 연못에 놀도다. [시경(詩經) 대아 한록(大雅旱麓)] |

惟魚躍之斷章 迺中庸之大旨 庶沉潛以終身 幸摳衣於子思子(유어약지단장 내중용지대지 서침잠이종신 행구의어자사자) 더구나 어약의 구절은 중용의 대지이니, 종신토록 그 뜻에 잠겨서 자사님을 스승으로 받들리라. [이색(李穡) 관어대부(觀魚臺賦)] |

異端驅虎豹 道學達魚鳶(이단구호표 도학달어연) 이단이 범과 표범같이 날뛸 때, 그의 도학은 연비어약이었네. [서거정(徐居正) 송남원양군성지시100운(送南原梁君誠之詩百韻)] |

如反掌 (여반장)

如反掌(여반장)

이여반장(易如反掌)의 준말. 손바닥을 뒤치는 것처럼 아주 쉽다는 말. 맹자(孟子)에서 유래.


관련 한자어

유의어

타수가득(唾手可得) 쉽게 얻을 수 있는 일 또는 힘들이지 않고 쉽게 성사시킬 수 있는 일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는 뜻의 여반장(如反掌) 또는 이여반장(易如反掌)과 같은 의미이다.

與民同樂 (여민동락)

與民同樂(여민동락)

與 더불 여 | 民 백성 민 | 同 같을 동 | 樂 즐거울 락 |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孟子)》에서 유래되었다.

맹자는 인의(人義)와 덕(德)으로써 다스리는 왕도(王道)정치를 주창하였는데, 그 바탕에는 백성을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 보는 민본(民本) 사상이 깔려 있다. 맹자는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 소리를 듣고는 골머리를 앓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 왕은 음악을 즐기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부자(父子)가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가"라고 불평하며, 또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그 행차하는 거마(車馬) 소리와 화려한 깃발을 보고는 골머리를 앓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 왕은 사냥을 즐기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여 부자(父子)가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가"라고 원망한다면,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此無他, 不與民同樂也].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 소리를 듣고는 모두들 기뻐하는 빛을 띠며 "우리 왕께서 질병 없이 건강하신가 보다, 어찌 저리 북을 잘 치실까"라고 하며,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거마 소리와 화려한 깃발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빛을 띠며 "왕께서 질병 없이 건강하신가 보다, 어찌 저리 사냥을 잘 하실까"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此無他, 與民同樂也]."

곧, 왕이 백성들에게는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들이 반발하겠지만,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면 왕이 즐기는 것을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고사(故事)는 《맹자》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하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여민동락은 항상 백성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자의 이상적인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여민해락(與民偕樂)도 같은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與民同樂(여민동락) | 與民偕樂(여민해락) |

鳶飛戾天魚躍于淵 (연비여천어약우연)

鳶飛戾天魚躍于淵(연비여천어약우연)

鳶 솔개 연 | 飛 날 비 | 戾 이를 려 | 天 하늘 천 | 魚 고기 어 | 躍 뛸 약 | 于 어조사 우 | 淵 못 연 |
풀이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출전]
시경(詩經) 대아한록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鳶飛魚躍(연비어약) |

緣木求魚 (연목구어, yuánmùqiúyú)

緣木求魚(연목구어)

缘木求鱼(yuánmùqiúyú)

緣 인연 연 | 木 나무 목 | 求 구할 구 | 魚 물고기 어 |


나무에 올라 고기를 얻으려고 한다는 뜻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을 비유하는 말.


주(周)의 신정왕 3년(BC 318), 맹자는 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이미 50을 넘은 나이였다. 동쪽에 있는 제는 서쪽의 진(秦), 남쪽의 초(楚)와 더불어 전국 제후 가운데에서도 대국이었다.

선왕(宣王)도 재주있는 사람이어서, 맹자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가 아닌 부국강병이며, 외교상의 책모, 원교근공책, 합종책, 연횡책이었다. 선왕은 중국의 통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맹자와 선왕은 이런 문답을 하였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를 맺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내게 대망(大望)이 있기 때문이오." "임금님의 대망이란 것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인의(仁義)의 왕도정치를 논하는 맹자에게 선왕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맹자는 낚시를 던지기 시작하였다. "전쟁의 목적은 의식(衣食)이오니까, 인생의 오락이오니까?" "아니오, 나의 욕망은 그런 것이 아니오." 선왕은 맹자의 교묘한 변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맹자는 힘차게 논하였다.

"그러시다면 이미 다 알 수 있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과 초와 같은 대국으로 하여금 허리를 굽히게 하고, 중국 전토를 지배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따르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방법 즉 일방적인 무력으로 그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 같은 것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렵습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신을 다해도 결국은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치는 큰 재난까지 입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옵니다." "재난을 당하는 까닭을 가르쳐 주시오." 선왕은 귀가 솔깃하여 다가앉았다. 이렇게 맹자는 교묘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얻어, 인의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론을 당당히 설명해 갔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刻舟求劍(각주구검) |


맹자, 불가능, 나무, 물고기 |

逆鱗 (역린)

逆鱗(역린)

逆 거스를 역 | 鱗 비늘 린 |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①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됨 ②임금님의 노여움을 비유(比喩ㆍ譬喩)함


중국에는 용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가 많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봉(鳳), 인(麟), 귀(龜)와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하여 영물로 실재화하여 생각했다. 용은 특히 비늘[鱗] 달린 짐승 중 으뜸가는 것으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몰고 온다고 여겼다.

그리고 군주를 용에 비겨서 용상(龍床)이니 용안(龍顔)이니 하여 그 권위와 존엄성을 높이기도 했다. 용상(龍床)이나 용안(龍顔) 외에도, 황제의 후대를 뜻하는 용자(龍子), 황제의 수레인 용여(龍輿) 등은 그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낸 말들이다.

역린은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말이다.

용(龍)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임금도 역린이 있어 말하는 사람이 이 역린만 건드리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人主亦有逆鱗]

임금을 용에 비유한 말이다.

如狼牧羊 (여랑목양)

如狼牧羊(여랑목양)

如 같을 여 | 狼 이리 랑,낭 | 牧 칠 목 | 羊 양 양 |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한다는 뜻으로,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백성을 착취(搾取)함을 비유한 말.

Like a wolf shepherding sheep. To rule the people oppressively. Oppression of the people by bad officials.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지방의 할거 세력들과 대상인들은 대대적으로 토지를 점령하여,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큰 힘을 가진 세력집단이 되었다. 한무제는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과 대상인들의 세력을 억제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지방 할거세력과 호족, 대상인들의 저항을 야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정양(定襄) 태수를 지내는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본시 도적출신이었으나,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이 되었다. 그는 법을 올바르게 적용하여 다스릴 뿐, 신분의 귀천(貴賤)은 따지지 않았다. 한번은 태후(太后)의 외손(外孫)인 수성군(修成君)의 아들을 체포하여 심문한 적이 있었는데, 천자는 이를 알고 의종을 유능하다고 여겨, 하내(河內)의 도위로 자리를 옮기게 하였다. 의종은 부임하자 곧 그 곳의 호족(豪族)인 양씨(穰氏) 일가를 멸망시켰는데,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곳 사람들은 두려워서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게 되었다[河內道不拾遺].

한편, 제남(濟南)의 도위(都尉)를 지내며 종실(宗室)과 호족(豪族)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영성(寧成)은 중형을 받고 고향에 머물고 있었다. 그 즈음 천자가 그를 태수로 임명하려고 하자, 어사대부 공손홍이 진언하였다.

˝신이 산동의 말단 관리로 있을 때, 영성은 제남의 도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이리가 양을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其治如狼牧羊]. 영성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천자는 영성을 함곡관의 도위로 임명하였다. 영성이 도위로 근무한지 1년쯤 지나자, 관(關)을 출입하는 관리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돌았다.

˝어린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는 호랑이를 건드릴지언정 영성의 노여움을 사면 안 된다.˝

의종은 하내에서 남양의 태수를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의종은 영성(寧成)이 은퇴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종이 남양에 부임하기 위해 관(關)에 도착하자, 영성은 그곳에 나와 겸손하게 그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의종은 거만하게 굴며 그에게 답례조차 하지 않았다. 의종은 남양의 태수로 부임하자, 제일 먼저 영성의 무고한 일가를 심문하고 그 일족을 모두 죽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관리들과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틀어박혀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않았다.

얼마 후, 흉노 원정으로 정양군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천자는 의종을 정양의 태수로 임명하고 혼란을 막도록 하였다. 의종은 정양군에 부임하자마자, 정양군내의 호족이나 할거세력들의 반항을 평정한 후, 2백여 명의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아울러,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에게 죄수 탈옥을 도왔다는 죄를 적용하여 전원 체포하여, ´이 자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자를 탈옥시키려고 꾀하였다´라고 논고하여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모조리 죽였다. 그 후 군내의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 교활한 자들은 관리에게 협력하여 이 일을 도왔다[其後郡中不寒而慄, 猾民佐吏爲治]. 후에, 의종은 나랏일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기시(棄市)의 형에 처하여졌다.

出典
史記(사기)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

連絡不絶 (연락부절)

連絡不絶(연락부절)

련락부절

오고 감이 끊이지 않음

永樂大典 (영락대전) 解縉 (해진)

永樂大典(영락대전) 解縉(해진)

永乐大典(Yǒnglè dàdiǎn)

구분: 유서
저자: 해진
시대: 중국 명(1407)


(明)나라의 영락제(永樂帝:成祖)에 의해 칙찬(勅撰)된 최대의 유서(類書).


본문 2만 2877권, 목록 60권. 1403년 영락제는 해진(解縉) 등에 유서의 편찬을 명하여 다음해 완성되자 이를 《문헌대성(文獻大成)》이라 하였으나, 다시 이보다 대규모의 것을 편찬시켜 1407년에 완성되자 《영락대전》으로 고쳤다. 이 사업에 종사한 인원은 2,000명 이상에 이른다. 이 유서는 오늘날의 ABC, 가나다순과 같이 운(韻)에 따라 항목을 배열한 일종의 대백과사전으로, 경서(經書) ·사서(史書) ·시문집(詩文集) ·불교 ·도교(道敎) ·의학 ·천문 ·복서(卜筮) 등 모든 사항에 관련된 도서들을 총망라해서 여기에서 관련사항을 발췌하여 이를 내용별로 분류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의 문자순에 따라 배열하였다.

그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여 완성 당시 사본(寫本)으로 정본(正本)을 1부 만들고, 1562년 부본(副本)을 1부 만들었는데, 정본은 명조(明朝)가 멸망할 때 소실(燒失)되었다. 부본 1부는 청나라에 전해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할 때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1860년 영국 ·프랑스군의 베이징[北京] 침공 이후 많이 산실(散失)되었고, 특히 의화단사건(義和團事件) 때 연합군의 약탈로 거의 소실되거나 산실되어 지금은 중국 외에 당시 유출된 것이 영국 ·프랑스 등에 산재되어 있으나 모두 합쳐도 겨우 797권에 불과하다. 《영락대전》 중에는 이미 없어진 일서(佚書:책이름만 남아 있고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 책)가 전하여져 청나라 학자에 의해 이것들이 집록(集錄)되어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餘桃之罪 (여도지죄)

餘桃之罪(여도지죄)

餘 남을 여 | 桃 복숭아 도 | 之 어조사 지 | 罪 죄 죄 |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 란 뜻으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모친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몰래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타고 나갔다. 그 나라에는 왕의 허가 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월형이라고 두 다리가 잘리는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위왕은 오히려 효성이 지극하다며 상을 내려 칭찬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하루는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너무 좋다며 반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그 맛있는 것을 다 먹지도 않고 과인에게 주다니, 진정 너의 사랑을 알겠도다.”라고 말했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어느 날 사소한 일로 미자하를 꾸짖으며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본래 성품이 좋지 못한 놈이다. 예전에 나를 속이고 수레를 탔으며, 나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주었도다."

이처럼 과거에는 총애를 받던 일이 나중에는 죄의 근원이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을 가리킨다.

餘桃啗君 (여도담군)

餘桃啗君(여도담군)

餘 남을 여 | 桃 복숭아 도 | 啗 먹일 담 | 君 임금 군 |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禍根)이 됨을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다.

미자하(彌子瑕)는 어느 날 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허락도 없이 왕 전용 수레를 타고 황궁을 빠져 나왔다. 당시 위나라의 법에는 함부로 왕의 수레를 탄 사람은 발목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용서하였다.

"그는 효자여서 어머니를 위하여 발을 잘리는 형벌도 잊어버렸구나."

그 후, 어느 날 미자하는 국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가,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먹다만 복숭아 반쪽을 왕에게 줬다. 이에 왕은 칭찬하였다.

"반쪽 복숭아를 먹으면서도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자신이 먹을 단맛을 잊고서 나를 주다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왕은 미자하의 모든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결국 왕은 그를 꾸짖으며, 처벌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餘桃啖君이란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가 늘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여도지죄(餘桃之罪) | 餘桃啗君(여도담군) | 이여도담군(以餘桃啗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念念不忘 (염념불망)

念念不忘(염념불망)

念念不忘(niànniànbúwàng)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음.

to bear something (or somebody) in mind constantly; to keep in mind obsessively

易窮則變 (역궁즉변)

易窮則變(역궁즉변)

易 바꿀 역, 쉬울 이 | 窮 다할 궁, 궁할 궁 | 則 법칙 칙, 곧 즉 | 變 변할 변 |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 지속 한다

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역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출전
周易(주역) 계사(繫辭) 하전(下傳)

永久不變 (영구불변)

永久不變(영구불변)

영원히 변하지 아니함.

榮枯盛衰 (영고성쇠)

榮枯盛衰(영고성쇠)

개인이나 사회의 성함과 쇠함이 뒤바뀌는 현상.

transmutations of fortune, fortune's wheel

易經 (역경)

易經(역경)

《역경(易經)》은 유학(儒學)의 삼경 중 하나로, 세계의 변화에 관한 원리를 기술한 책이라 일컬어 지고 있다. 쓴 연대는 대략 동주 시대로 추정된다.

주역(周易)』을 유교(儒敎)의 경전(經典)인 삼경(三經)의 하나로서 일컫는 말이다.


개요

고대의 귀갑(龜甲)이나 수골(獸骨)에 의한 점(占)은 그것들을 불에 구웠을 때 생긴 금(線)을 판단의 재료로 하여 길흉을 점쳤다. 한편 서죽을 써서 길흉을 점치는 방법이 주대에는 행해졌다. 이러한 점(占)의 말이나 점법의 정신을 해설한 것이 《역경(易經)》이다. 주대의 점서(占書)라고 하는 데서 《주역(周易)》이라고도 호칭한다.

서죽(筮竹)을 조작하여 남은 수가 기수(奇數)일 때는 양(陽) 즉(-), 우수(偶數)일 때는 음(陰) 즉 (--)이라 하여 그것을 세 번 반복하여 괘(卦)의 상(象)을 얻는다. - 이냐 -- 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3회 반복하여 얻어지는 조합(組合)은 여덟 가지가 있다. 이것을 8괘라고 한다. 건(乾, 곤(坤), 진(震), 손(巽) 등이 그것이다. 8괘를 알맞게 둘씩 조합하여 조합의 가능 한계인 64괘를 얻는다. 이 64괘 각자의 설명을 괘사(卦辭)라 하고, - 이나 --을 각각 효(爻)라고 하거니와 이 효에 대하여 설명한 것을 효사(爻辭))라고 한다. 이 괘사와 효사를 《역경(易經)》의 경(經)이라고 한다. 경의 해석이나 역(易)의 정신을 표기한 것을 10익(十翼)이라고 한다.

그러한 말들을 신비화시키고 권위를 부여하려고 괘사(卦辭)는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지었고, 효사(爻辭)는 주공단(周公旦)이 지었고 10익(十翼)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괘사나 효사는 점(占)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생겨 고정된 것으로, 특정한 작자를 생각할 수는 없으므로, 그다지 신빙성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지적된다. 오늘날은 이들이 동주(東周)의 후기에서 전국시대(기원전 403년 이후) 사이에 체제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한자어

開物成務(개물성무) | 自强不息(자강불식)

계사(繫辭) 하전(下傳)

安不忘危(안불망위) | 易窮則變(역궁즉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