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列子:湯問.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列子:湯問. Show all posts

穿楊貫蝨 (천양관슬, chuānyángguànshī)

穿楊貫蝨(천양관슬)

穿杨贯虱(chuānyángguànshī)

穿 뚫을 천 | 楊 버들 양 | 貫 꿸 관 | 蝨 이 슬 |


'버드나무 잎을 맞히고 이를 꿰뚫는다'라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활솜씨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고대 중국의 명궁인 양유기(養由基)와 기창(紀昌)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천양(穿楊)과 관슬(貫蝨)의 고사가 합쳐져 이루어진 성어이다. 천양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양유기라는 장수와 관련된 고사이다. 양유기는 활을 잘 쏘아 100보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혔는데, 100번을 쏘면 100번 모두 명중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주본기(周本紀)〉편과 《전국책(戰國策)》의 〈서주책(西周策)〉편에 실려 있는데, 여기서 백발백중(百發百中) 또는 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관슬은 관슬지기(貫蝨之技)라고도 한다. 옛날 중국에 감승(甘蠅)이라는 명궁이 있었는데, 달리는 짐승이나 나는 새를 쏘아 빗맞히는 일이 없었다. 감승의 제자인 비위(飛衛)는 스승보다 활솜씨가 더 뛰어났다고 한다.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비위에게 활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비위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방법을 먼저 익히고 나서 다시 오라고 하였다.

기창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일하는 베틀 밑에 누워서 왔다 갔다 하는 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훈련을 하였다. 2년이 지나 송곳이 눈앞에 와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게 되자 기창은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비위는 아직 부족하다며,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보는 훈련을 쌓은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였다. 기창은 가는 털에 이를 묶어 창문에 매달아 놓고는 매일같이 바라보았다.

열흘이 지나자 이가 조금씩 크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3년이 지난 뒤에는 수레바퀴만하게 보였다. 기창은 아주 조그만 활과 화살을 만들어 이를 쏘아 꿰뚫었는데, 이를 묶어 놓은 털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貫蝨之心, 而懸不絶). 기창이 다시 비위를 찾아가 사실대로 말하니, 비위는 "그대는 이미 활쏘는 법을 터득하였다"라고 말하며 좋아하였다. 이 고사는 《열자(列子)》의 〈탕문(湯問)〉편에 실려 있다. 이상의 2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천양관슬은 신궁(神弓)과도 같은 뛰어난 활솜씨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百發百中(백발백중) | 百步穿楊(백보천양) | 貫蝨之技(관슬지기) |


史記, 史記:周本紀, 사기, 사기:주본기, 戰國策, 戰國策:西周策, 전국책, 전국책:서주책, 列子, 列子:湯問, 열자, 열자:탕문

愚公移山 (우공이산, Yúgōngyíshān)

愚公移山(우공이산)

愚公移山[Yúgōngyíshān]

愚 어리석을 우 | 公 공평할 공 | 移 옮길 이, 크게 할 치 | 山 메 산 |


우공(寓公)이 산을 옮기다. 《열자·탕문(列子·湯問)》에 나오는 말로서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Like the Foolish Old Man who removed the mountains—with dogged perseverance


원래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태형(太形 또는 태행 太行) ·왕옥(王屋) 두 산은 둘레가 700리나 되는데 원래 기주(冀州) 남쪽과 하양(河陽) 북쪽에 있었다.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란 사람은 나이가 이미 90에 가까운데 이 두 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예주(豫州)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는 동시에 한수(漢水)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하였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하였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겁니까? 또,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우공은 흙은 발해(渤海)에다 버리겠다며 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와 광주리 등으로 나르기 시작하였다.

흙을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데 한 번 왕복에 1년이 걸렸다. 이것을 본 친구 황해의 지수(智搜)라는 사람이 그를 비웃으며 만류하자 그는 정색을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산신령(蛇神)이 산을 허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될까 겁이 나서 옥황상제에게 이 일을 말려 주도록 호소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가장 힘이 센 역신(力神) 과아씨(夸蛾氏)의 두 아들을 시켜 두 산을 들어 옮겨, 하나는 삭동(朔東)에 두고 하나는 옹남(雍南)에 두게 하였다고 한다.


출전·유래

列子(열자) 湯問(탕문) |


관련 한자어

유의어

塵合泰山 진합태산 | 點滴穿石 점적천석 | 積土成山 적토성산 | 積塵成山 적진성산 | 積水成淵 적수성연 | 積小成大 적소성대 | 十伐之木 십벌지목 | 水滴穿石 수적천석 | 水積成川 수적성천 山溜穿石 산류천석 | 磨斧作針 마부작침 | 磨斧爲針 마부위침 |

참조어

風燭殘年(풍촉잔년)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