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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四史 (이십사사) | 二十五史 (이십오사)

二十四史(이십사사) | 二十五史(이십오사) |

二十四史(èrshísìshǐ) | 二十五史(èrshíwǔshǐ) |


24사. 지난날 정사(正史)로 일컬어지던 24종의 기전체 역사책. 24사에 신원사(新元史)를 추가하여 25사라고 부른다.


중국 역대 왕들의 연대기인 본기(本紀)와 저명한 개인의 사적(事績)을 기록한 열전(列傳)을 요소로 하여 기전체(紀傳體)에 따른 중국 역대의 역사. 그 밖에 연표(年表)·계보(系譜) 또는 제도를 기록한 지(志, 또는 書) 등을 포함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들은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한(漢)나라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上古)로부터 한나라 무왕(武王) 때까지 기록한 "사기(史記)"에서 시작되는데, 이하는 단대사(斷代史)로서 1 왕조마다 1 부씩 사서(史書)가 만들어져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를 합하여 사사(四史)라고 부른다.

이후의 왕조에 대해서는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위서(魏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 가 만들어졌고, 남송(南宋)시대에 와서 "남사(南史)", "북사(北史)"를 더하여 17사(史)로 총칭되었다.

원(元)나라 말기에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가 저술되었고, 명(明)나라 초 "원사(元史)"가 성립되었으므로 이들을 합하여 21사(史), 청(淸)나라 초 만들어진 "명사(明史)"를 합하여 22사라고 하였다. 청나라 왕명성(王鳴盛)의 "17사 상각(商)", 조익(趙翼)의 "22사 차기(箚記)"등의 이름은 여기에 유래한다.

건륭왕(乾隆王)은 이에 더하여 "구당서(舊唐書)"와 "구오대사(舊五代史)"를 내어 24사 로서 궁중의 무영전(武英殿)에서 인행(印行) 하였는데, 합하여 3,243권에 달한다. 민국 초에는 커사오민의 "신원사(新元史)"가 정사로 추가되어 25사가 되었다.

청나라에 대해서는 민국 초에 "청사고(淸史稿)"가 나왔으나 아직 정사로서 권위 있는 "청사(淸史)"는 나와 있지 않다.



序號書名國家作者卷數
01史記(사기)漢司馬遷130
02漢書(한서)漢班固100
03後漢書(후한서)南朝宋范曄(범엽)120
04三國志(삼국지,Sānguózhì)晉陳壽65
05晉書(진서)唐房玄齡(방현령)·李延壽(이연수)等130
06宋書(송서)南朝梁沈約(심약)100
07南齊書(남제서)南朝梁蕭子顯59
08梁書(양서)唐姚思廉56
09陳書(진서)唐姚思廉36
10魏書(위서)北齊魏收114
11北齊書(북제서)唐李百藥50
12周書(주서)唐令狐德棻等50
13隋書(수서)唐魏徵等85
14南史(남사)唐李延壽80
15北史(북사)唐李延壽100
16舊唐書(구당서)後晉劉昫等200
17新唐書(신당서)宋歐陽修、宋祁225
18舊五代史(구오대사)宋薛居正等150
19新五代史(신오대사)宋歐陽修74
20宋史(송사)元脫脫等496
21遼史(요사)元脫脫等116
22金史(금사)元脫脫等135
23元史(원사)明宋濂等210
24明史(명사)清張廷玉等332
相關新元史民國柯劭忞等257
相關清史稿民國赵尔巽等529

唐書 (당서)

唐書(당서)

중국 당나라의 정사(正史)로서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


《당서》는 당고조(唐高祖)의 건국(618)에서부터 애제(哀帝)의 망국(907)까지 21제(帝) 290년 동안의 당나라 역사의 기록이다. 처음에는 단지 《당서》로 이룩하였지만, 송나라 때 내용을 고쳐 《신당서》로 편찬하였다. 그래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로 나누어졌다.

《구당서》는 200권으로 되어 있는데, 당나라 멸망 직후의 사료가 부족하여 후반부가 부실하다. 전반부도 여러 사료에서 대강 발췌한 것이라 체제에 일관성은 없다. 그러나 당나라 때의 원사료의 문장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신당서》는 225권으로 되어 있는데, 송나라 때 《구당서》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한 것도 많다. 표(表)가 많은 것도 특징이고, 처음으로 병지(兵志) ·선거지(選擧志)를 갖추었다. 문장은 당시 중시되던 고문으로 간결하게 기술하여, 정사 편찬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원사료의 문체까지 고치고, 간략이 지나쳐 사료적 가치는 구당서에 비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