幸災樂禍(행재낙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불행을 즐기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경정(慶鄭)과 자퇴(子頹)와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경정의 고사에서 유래된 '행재'와 자퇴의 고사에서 유래된 '낙화'가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晉)나라 혜공(惠公) 때 큰 흉년이 들었다. 진(秦)나라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에는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어 진(晉)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고자 하였으나, 진(晉)나라는 지난 해의 고마움을 잊은 듯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인 경정만은 혜공에게 말하면서, 식량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를 저버리면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며,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背施無親, 幸災不仁]"
그러나 혜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한 진(秦)나라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고, 혜공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左氏傳)》의 '희공(僖公) 14년'조에 실려 있으며, '행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장왕(莊王)은 애첩과의 사이에서 자퇴라는 아들을 얻었다. 장왕이 죽은 뒤에 희왕에 이어 혜왕(惠王)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 때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혜왕을 몰아내고 자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웠다. 음탕하고 어리석은 자퇴는 매일 대신들과 음주가무에 빠져 지냈다.
정(鄭)나라의 려왕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면 재앙이 반드시 닥친다고 들었다. 지금 자퇴가 가무를 즐기느라 피곤한 줄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즐기는 짓이다(哀樂失時, 殃咎必至. 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장공(莊公) 20년'조에 실려 있으며, '낙화'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행재낙화는 남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그릇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낙화행재(樂禍幸災)라고도 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희공(僖公) 14년 | 좌씨전(左氏傳) 장공(莊公) 20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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鞭長莫及 (편장막급)
鞭長莫及(편장막급)
鞭 채찍 편 | 長 길 장, 어른 장 | 莫 없을 막, 저물 모, 덮을 멱 | 及 미칠 급 |
채찍이 길어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돕고 싶지만 능력(能力)이 미치치 못함을 이르는 말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조의 이야기다.
중국 춘추시대의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 강대국에 속하였다. 초나라 장왕(莊王)은 신주(申舟)를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제나라로 가려면 송(宋)나라 땅을 거쳐야만 하였다. 그 무렵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려면 미리 그 나라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장왕은 국력이 강함을 믿고 이 절차를 무시하였다.
송나라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기고 송나라 영토에 무단으로 진입한 신주를 붙잡아 죽였다. 초장왕은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기원전 594년 군대를 일으켜 송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송나라의 저항이 완강하여 전쟁이 길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에서는 대부(大夫) 악영제를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진나라 경공(景公)이 구원병을 보낼 뜻을 내비치자, 대부 백종(伯宗)이 이를 반대하며 경공에게 말했다.
"옛말에 말채찍이 길기는 하지만 말의 배에까지 미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古人有言曰, 雖鞭之長, 不及馬腹].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는 때이니 싸워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을 거스를 수야 있겠습니까"
결국 진나라는 대부 해양(解揚)을 송나라로 보내어 말로만 위로하였을 뿐, 구원병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선공(宣公) 15년'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鞭長莫及(out of reach)은 역량(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있더라도 모든 면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여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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鞭 채찍 편 | 長 길 장, 어른 장 | 莫 없을 막, 저물 모, 덮을 멱 | 及 미칠 급 |
채찍이 길어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돕고 싶지만 능력(能力)이 미치치 못함을 이르는 말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조의 이야기다.
중국 춘추시대의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 강대국에 속하였다. 초나라 장왕(莊王)은 신주(申舟)를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제나라로 가려면 송(宋)나라 땅을 거쳐야만 하였다. 그 무렵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려면 미리 그 나라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장왕은 국력이 강함을 믿고 이 절차를 무시하였다.
송나라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기고 송나라 영토에 무단으로 진입한 신주를 붙잡아 죽였다. 초장왕은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기원전 594년 군대를 일으켜 송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송나라의 저항이 완강하여 전쟁이 길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에서는 대부(大夫) 악영제를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진나라 경공(景公)이 구원병을 보낼 뜻을 내비치자, 대부 백종(伯宗)이 이를 반대하며 경공에게 말했다.
"옛말에 말채찍이 길기는 하지만 말의 배에까지 미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古人有言曰, 雖鞭之長, 不及馬腹].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는 때이니 싸워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을 거스를 수야 있겠습니까"
결국 진나라는 대부 해양(解揚)을 송나라로 보내어 말로만 위로하였을 뿐, 구원병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선공(宣公) 15년'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鞭長莫及(out of reach)은 역량(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있더라도 모든 면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여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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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氏傳 (좌씨전) 左丘明 (좌구명) 007 宣公 (선공)
左氏傳(좌씨전) 左丘明(좌구명)
文公(문공) 宣公(선공) 成公(성공)
《宣公元年》
春秋:
元年,春,王正月,公即位。公子遂如齊逆女,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
夏,季,孫行父如齊。晉放其大夫胥甲父于衛。公會齊侯于平州。公子遂如齊。六月,齊人取濟西田。
秋,邾子來朝。楚子,鄭人,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公,陳侯,衛侯,曹伯,會晉師于棐林,伐鄭。
冬,晉趙穿帥師侵崇。晉人,宋人,伐鄭。
宣公元年:
元年,春,王正月,公子遂如齊逆女,尊君命也,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尊夫人也。
夏,季文子如齊,納賂,以請會。
晉人討不用命者,放胥甲父于衛,而立胥克,先辛奔齊。會于平州,以定公位。
東門襄仲如齊拜成。
六月,齊人取濟西之田,為立公故,以賂齊也。
宋人之弒昭公也,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宋,宋及晉平,宋文公受盟于晉,又會諸侯于扈,將為魯討齊,皆取賂而還,鄭穆公曰,晉不足與也,遂受盟于楚,陳共公之卒,楚人不禮焉,陳靈公受盟于晉,秋,楚子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會于棐林,以伐鄭也,楚蒍賈救鄭,遇于北林,囚晉解揚,晉人乃還。
晉欲求成於秦,趙穿曰,我侵崇,秦急崇必救之,吾以求成焉,冬,趙穿侵崇,秦弗與成。晉人伐鄭,以報北林之役,於是晉侯侈,趙宣,子為政,驟諫而不入,故不競於楚。
《宣公二年》
春秋:
二年,春,王二月,壬子,宋華元帥師,及鄭公子歸生帥師,戰于大棘,宋師敗績,獲宋華元。秦師伐晉。
夏, 晉人,宋人,衛人,陳人,侵鄭。
秋,九月,乙丑,晉趙盾弒其君夷皋。
冬,十月,乙亥,天王崩。
宣公二年:
二年,春,鄭公子歸生受命于楚,伐宋,宋華元,樂呂,御之,二月,壬子,戰于大棘,宋師敗績,囚華元,獲樂呂,及甲車四百六十乘,俘二百五十人,馘百人,狂狡輅鄭人,鄭人入于井,倒戟而出之,獲狂狡,君子曰,失禮違命,宜其為禽也,戎昭果毅以聽之,之謂禮,殺敵為果,致果為毅,易之戮也,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及戰,曰,疇昔之羊,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與入鄭師,故敗,君子謂羊斟非人也,以其私憾,敗國殄民,於是刑孰大焉,詩所謂人之無良者,其羊斟之謂乎,殘民以逞。宋人以兵車百乘,文馬百駟,以贖華元于鄭,半入,華元逃歸,立于門外,告而入,見叔牂,曰,子之馬然也。對曰,非馬也,其人也,既合而來奔,宋城,華元為植,巡功,城者謳曰,睅其目,皤其腹,棄甲而復,于思于思,棄甲復來,使其驂乘,謂之曰,牛則有皮,犀兕尚多,棄甲則那。役人曰,從其有皮,丹漆若何?華元曰,去之,夫其口眾我寡。
秦師伐晉,以報崇也,遂圍焦,夏,晉趙盾救焦,遂自陰地,及諸侯之師侵鄭,以報大棘之役,楚鬥椒救鄭,曰,能欲諸侯而惡其難乎,遂次于鄭,以待晉師,趙盾曰,彼宗競于楚,殆將斃矣,姑益其疾,乃去之。晉靈公不君,厚斂以彫牆,從臺上彈人,而觀其辟丸也,宰夫胹熊蹯不熟,殺之,寘諸畚,使婦人載以過朝,趙盾,士季,見其手,問其故,而患之,將諫,士季曰,諫而不入,則莫之繼也,會請先,不入,則子繼之,三進及溜,而後視之,曰,吾知所過矣,將改之。稽首而對曰,人誰無過,過而能改,善莫大焉。《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夫如是,則能補過者鮮矣。君能有終,則社稷之固也,豈惟群臣賴之,又曰,袞職有闕,惟仲山甫補之,能補過也。君能補過,袞不廢矣。猶不改,宣子驟諫,公患之,使鉏麑賊之,晨往,寢門闢矣,盛服將朝,尚早,坐而假寐,麑退,歎而言曰,不忘恭敬,民之主也,賊民之主,不忠,棄君之命,不信,有一於此,不如死也,觸槐而死。
秋,九月,晉侯飲趙盾酒,伏甲將攻之,其右提彌明知之,趨登曰,臣侍君宴,過三爵,非禮也,遂扶以下,公嗾夫獒焉,明搏而殺之,盾曰,棄人用犬,雖猛何為,鬥且出,提彌明死之,初,宣子田於首山,舍于翳桑,見靈輒餓,問其病,曰,不食三日矣,食之,舍其半,問之。曰:宦三年矣,未知母之存否。今近焉,請以遺之,使盡之,而為之簞食與肉,寘諸橐以與之,既而與為公介,倒戟以禦公徒,而免之,問何故,對曰,翳桑之餓人也。問其名居,不告而退,遂自亡也。乙丑,趙穿攻靈公於桃園,宣子未出山而復,大史書曰,趙盾弒其君,以示於朝,宣子曰,不然,對曰,子為正卿,亡不越竟,反不討賊,非子而誰,宣子曰,嗚呼,我之懷矣,自詒伊慼,其我之謂矣。孔子曰: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趙宣子,古之良大夫也,為法受惡,惜也,越竟乃免,宣子使趙穿逆公子黑臀于周,而立之,壬申,朝于武宮。
初,麗姬之亂,詛無畜群公子,自是晉無公族,及成公即位,乃宦卿之適子,而為之田,以為公族,又宦其餘子,亦為餘子,其庶子為公行,晉於是有公族,餘子,公行,趙盾請以括為公族,曰,君姬氏之愛子也,微君姬氏,則臣狄人也,公許之,冬,趙盾為旄車之族,使屏季以其故族為公族大夫。
《宣公三年》
春秋:
三年,春,王正月,郊牛之口傷,改卜牛,牛死,乃不郊,猶三望。
葬匡王。楚子伐陸渾之戎。
夏,楚人侵鄭。
秋,赤狄侵齊。宋師圍曹。
冬,十月,丙戌,鄭伯蘭卒。葬鄭穆公。
宣公三年:
三年,春,不郊而望,皆非禮也,望,郊之屬也,不郊,亦無望可也。晉侯伐鄭,及郔,鄭及晉平,士會入盟。
楚子伐陸渾之戎,遂至于雒,觀兵于周疆,定王使王孫滿勞楚子,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對曰,在德不在鼎,昔夏之方有德也,遠方圖物,貢金九牧,鑄鼎象物,百物而為之備,使民知神姦,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螭魅罔兩,莫能逢之,用能協于上下,以承天休,桀有昏德,鼎遷于商,載祀六百,商紂暴虐,鼎遷于周,德之休明,雖小,重也,其姦回昏亂,雖大,輕也,天祚明德,有所底止,成王定鼎于郟鄏,卜世三十,卜年七百,天所命也,周德雖衰,天命未改,鼎之輕重,未可問也。
夏,楚人侵鄭,鄭即晉,故也。
宋文公即位三年,殺母弟須,及昭公子,武氏之謀也,使戴桓之族,攻武氏於司馬子伯之館,盡逐武穆之族,武穆之族,以曹師伐宋,秋,宋師圍曹,報武氏之亂也。
冬,鄭穆公卒,初,鄭文公有賤妾,曰燕姞,夢天使與己蘭,曰,余為伯鯈,余而祖也,以是為而子,以蘭有國香,人服媚之如是,既而文公見之,與之蘭而御之,辭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諾,生穆公,名之曰蘭,文公報鄭子之妃,曰陳媯,生子華,子臧,子臧得罪而出,誘子華而殺之南里,使盜殺子臧於陳宋之間,又娶于江,生公子士,朝于楚,楚人酖之,及葉而死,又娶于蘇,生子瑕,子俞彌,俞彌早卒,洩駕惡瑕,文公亦惡之,故不立也,公逐群公子,公子蘭奔晉,從晉文公伐鄭,石癸曰,吾聞姬姞耦,其子孫必蕃,姞,吉人也,后稷之元妃也,今公子蘭,姞甥也,天或啟之,必將為君,其後必蕃,先納之,可以亢寵,與孔將鉏,侯宣多,納之,盟于大宮,而立之,以與晉平,穆公有疾,曰,蘭死,吾其死乎,吾所以生也,刈蘭而卒。
《宣公四年》
春秋:
四年,春,王正月,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秦伯稻卒。
夏,六月,乙酉,鄭公子歸生弒其君夷。赤狄侵齊。
秋,公如齊,公至自齊。
冬,楚子伐鄭。
宣公四年:
四年,春,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非禮也,平國以禮,不以亂,伐而不治,亂也,以亂平亂,何治之有無治,何以行禮。
楚人獻黿於鄭靈公,公子宋,與子家將見,子公之食指動,以示子家,曰,他日我如此,必嘗異味,及入,宰夫將解黿,相視而笑,公問之,子家以告,及食大夫黿,召子公而弗與也,子公怒,染指於鼎,嘗之而出,公怒,欲殺子公,子公與子家謀先,子家曰,畜老猶憚殺之,而況君乎,反譖子家,子家懼而從之,夏弒靈公,書曰,鄭公子歸生弒其君夷,權不足也,君子曰,仁而不武,無能達也,凡弒君稱君,君無道也,稱臣,臣之罪也,鄭人立子良,辭曰,以賢則去疾不足,以順,則公子堅長,乃立襄公,襄公將去穆氏,而舍子良,子良不可曰,穆氏宜存,則固願也,若將亡之,則亦皆亡,去疾何為,乃舍之,皆為大夫。
初,楚司馬子良,生子越椒,子文曰,必殺之,是子也,熊虎之狀,而豺狼之聲,弗殺,必滅若敖氏矣,諺曰,狼子野心,是乃狼也,其可畜乎,子良不可,子文以為大慼,及將死,聚其族曰,椒也知政,乃速行矣,無及於難,且泣曰,鬼猶求食。若敖氏之鬼,不其餒而!及令尹子文卒,鬥般為令尹,子越為司馬,蒍賈為工正,譖子揚而殺之,子越為令尹,已為司馬,子越又惡之,乃以若敖氏之族,圄伯嬴於轑陽,而殺之,遂處烝野,將攻王,王以三王之子為質焉,弗受,師于漳澨,秋,七月,戊戌,楚子與若敖氏戰于皋滸,伯棼射王,汰輈,及鼓跗,著於丁寧,又射,汰輈,以貫笠轂,師懼,退,王使巡師曰,吾先君文王克息,獲三矢焉,伯棼竊其二,盡於是矣,鼓而進之,遂滅若敖氏,初,若敖娶於䢵,生鬥伯比,若敖卒,從其母畜於邧,淫於邧子之女,生子文焉,邧夫人使棄諸夢中,虎乳之,邧子田,見之,懼而歸,夫人以告,遂使收之。楚人謂乳穀,謂虎於菟。故命之曰鬥穀於菟,以其女妻伯比,實為令尹子文,其孫箴尹克黃,使於齊,還及宋,聞亂,其人曰,不可以人矣,箴尹曰,棄君之命,獨誰受之,君,天也,天可逃乎,遂歸復命,而自拘於司敗,王思子文之治楚國也,曰,子文無後,何以勸善,使復其所,改命曰生。
冬,楚子伐鄭,鄭未服也。
《宣公五年》
春秋:
五年,春,公如齊。
夏,公至自齊。
秋,九月,齊高固來逆叔姬。叔孫得臣卒。
冬,齊高固及子叔姬來。楚人伐鄭。
宣公五年:
五年,春,公如齊,高固使齊侯止公,請叔姬焉。
夏,公至自齊,書過也。
秋,九月,齊高固來逆女,自為也,故書曰,逆叔姬,即自逆也。
冬,來,反馬也。楚子伐鄭,陳及楚平,晉荀林父救鄭伐陳。
《宣公六年》
春秋:
六年,春,晉趙盾,衛孫免,侵陳。
夏,四月。
秋,八月,螽。
冬,十月。
宣公六年:
六年,春,晉衛侵陳,陳即楚故也。
夏,定王使子服求后于齊。
秋,赤狄伐晉,圍懷,及邢丘,晉侯欲伐之,中行桓子曰,使疾其民,以盈其貫,將可殪也,《周書》曰:殪戎殷,此類之謂也。
冬,召桓公逆王后于齊。楚人伐鄭,取成而還。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欲為卿伯廖告人曰,無德而貪,其在周易豐之離,弗過之矣,間一歲,鄭人殺之。
《宣公七年》
春秋:
七年,春,衛侯使孫良夫來盟。
夏,公會齊侯伐萊。
秋,公至自伐萊。大旱。
冬,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于黑壤。
宣公七年:
七年,春,衛孫桓子來盟,始通,且謀會晉也。
夏,公會齊侯伐萊,不與謀也,凡師出,與謀曰及,不與謀曰會。
赤狄侵晉,取向陰之禾。
鄭及晉平,公子宋之謀也,故相鄭伯以會,冬,盟于黑壤,王叔桓公臨之,以謀不睦。晉侯之立也,公不朝焉,又不使大夫聘晉人止公于會,盟于黃父,公不與盟,以賂免,故黑壤之盟不書,諱之也。
《宣公八年》
春秋:
八年,春,公至自會。
夏,六月,公子遂如齊,至黃,乃復。辛巳,有事于大廟,仲遂卒于垂,壬午,猶繹,萬入,去籥。戊子,夫人嬴氏薨。晉師,白狄,伐秦。楚人滅舒蓼。
秋,七月,甲子,日有食之,既。
冬,十月,己丑,葬我小君敬嬴,雨不克葬,庚寅,日中而克葬。城平陽。楚師伐陳。
宣公八年:
八年,春,白狄及晉平,
夏,會晉伐秦,晉人獲秦諜,殺諸絳市,六日而蘇。有事于大廟,襄仲卒而繹,非禮也。楚為眾舒叛故,伐舒蓼,滅之,楚子疆之。及滑汭,盟吳越而還。
晉胥克有蠱疾,郤缺為政,秋,廢胥克,使趙朔佐下軍。
冬,葬敬嬴,旱無麻,始用葛茀,雨不克葬,禮也,禮,卜葬先遠日,辟不懷也。城平陽,書時也。陳及晉平,楚師伐陳,取成而還。
《宣公九年》
春秋:
九年,春,王正月,公如齊,公至自齊。
夏,仲孫蔑如京師。齊侯伐萊。
秋,取根牟。八月,滕子卒。九月,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會于扈。晉荀林父帥師伐陳。辛酉,晉侯黑臀卒于扈。
冬,十月,癸酉,衛侯鄭卒。宋人圍滕。楚子伐鄭。晉郤缺帥師救鄭。陳殺其大夫洩冶。
宣公九年:
九年,春,王使來徵聘,
夏,孟獻子聘於周,王以為有禮,厚賄之。
秋,取根牟,言易也。滕昭公卒。會于扈,討不睦也,陳侯不會,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陳,晉侯卒于扈,乃還。
冬,宋人圍滕,因其喪也。陳靈公與孔寧,儀行父,通於夏姬,皆衷其衵服以戲于朝,洩冶諫曰,公卿宣淫,民無效焉,且聞不令,君其納之,公曰,吾能改矣,公告二子,二子請殺之,公弗禁,遂殺洩冶,孔子曰:“《詩》云:‘民之多辟,無自立辟’,其洩冶之謂乎。”楚子為厲之役故,伐鄭。晉郤缺救鄭,鄭伯敗楚師于柳棼,國人皆喜,唯子良憂,曰,是國之災也,吾死無日矣。
《宣公十年》
春秋:
十年,春,公如齊,公至自齊。齊人歸我濟西田。
夏,四月,丙辰,日有食之。己巳,齊侯元卒。齊崔氏出奔衛。公如齊,五月,公至自齊。癸巳,陳夏徵舒弒其君平國。六月,宋師伐滕。公孫歸父如齊。葬齊惠公,晉人,宋人,衛人,曹人,伐鄭。
秋,天王使王季子來聘。公孫歸父帥師伐邾,取繹。大水。季孫行父如齊。
冬,公孫歸父如齊,齊侯使國佐來聘。饑,楚子伐鄭。
宣公十年:
十年,春,公如齊,齊侯以我服故,歸濟西之田。
夏,齊惠公卒,崔杼有寵於惠公,高,國畏其偪也,公卒而逐之,奔衛,書曰,崔氏,非其罪也,且告以族,不以名,凡諸侯之大夫違,告於諸侯曰,某氏之守臣某,失守宗廟,敢告,所有玉帛之使者則告,不然則否。公如齊奔喪。陳靈公與孔寧,儀行父,飲酒於夏氏,公謂行父曰,徵舒似女,對曰,亦似君,徵舒病之,公出,自其廄射而殺之,二子奔楚。滕人恃晉而不事宋,六月,宋師伐滕。鄭及楚平,諸侯之師伐鄭,取成而還。
秋,劉康公來報聘。師伐邾,取繹。季文子初聘于齊。
冬子家如齊,伐邾故也,國武子來報聘。楚子伐鄭,晉士會救鄭,逐楚師于潁北,諸侯之師戍鄭,鄭子家卒,鄭人討幽公之亂,斲子家之棺而逐其族,改葬幽公,諡之曰靈。
《宣公十一年》
春秋:
十有一年,春,王正月。
夏,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公孫歸父會齊人伐莒。
秋,晉侯會狄于欑函。
冬,十月,楚人殺陳夏徵舒。丁亥,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
宣公十一年 :
十一年,春楚子伐鄭,及櫟,子良曰,晉楚不務德而兵爭,與其來者可也,晉楚無信,我焉得有信,乃從楚,
夏,楚盟于辰陵,陳鄭服也。楚左尹子重侵宋,王待諸郔。令尹蒍艾獵城沂,使封人慮事,以授司徒,量功命日,分財用,平板榦,稱畚築,程土物,議遠邇,略基趾,具餱糧,度有司,事三旬而成,不愆于素。
晉郤成子求成于眾狄,眾狄疾赤狄之役,遂服于晉,秋,會于欑函,眾狄服也,是行也,諸大夫欲召狄,郤成子曰,吾聞之,非德莫如勤,非勤何以求人,能勤有繼,其從之也,詩曰,文王既勤止,文王猶勤,況寡德乎。
冬,楚子為陳夏氏亂故,伐陳,謂陳人無動,將討於少西氏,遂入陳,殺夏徵舒,轘諸栗門,因縣陳,陳侯在晉,申叔時使於齊反,復命而退,王使讓之曰,夏徵舒為不道,弒其君,寡人以諸侯討而戮之,諸侯縣公皆慶寡人,女獨不慶寡人,何故,對曰,猶可辭乎,王曰,可哉,曰,夏徵舒弒其君,其罪大矣,討而戮之,君之義也,抑人亦有言曰,牽牛以蹊人之田,而奪之牛,牽牛以蹊者,信有罪矣,而奪之牛,罰已重矣,諸侯之從也,曰,討有罪也,今縣陳,貪其富也,以討召諸侯,而以貪歸之,無乃不可乎,王曰,善哉,吾未之聞也,反之,可乎,對曰,吾儕小人,所謂取諸其懷而與之也,乃復封陳,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故書曰,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書有禮也。厲之役,鄭伯逃歸,自是楚未得志焉,鄭既受盟于辰陵,又徼事于晉。
《宣公十二年》
春秋:
十有二年,春,葬陳靈公。楚子圍鄭。
夏,六月,乙卯,晉荀林父帥師及楚子戰于邲,晉師敗績。
秋,七月。
冬,十有二月,戊寅,楚子滅蕭。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清丘,宋師伐陳,衛人救陳。
宣公十二年: 十二年,春,楚子圍鄭,旬有七日,鄭人卜行成不吉,卜臨于大宮,且巷出車,吉,國人大臨,守陴者皆哭,楚子退師,鄭人脩城,進復圍之。三月,克之,入自皇門,至于逵路,鄭伯肉袒牽羊以逆,曰,孤不天,不能事君,使君懷怒,以及敝邑,孤之罪也,敢不唯命是聽。其俘諸江南,以實海濱,亦唯命,其翦以賜諸侯,使臣妾之,亦唯命,若惠顧前好,徼福於厲,宣,桓,武,不泯其社稷,使改事君,夷於九縣,君之惠也,孤之願也,非所敢望也,敢布腹心,君實圖之,左右曰,不可許也,得國無赦。王曰,其君能下人,必能信用其民矣,庸可幾乎,退三十里,而許之平,潘尪入盟,子良出質。
實,六月,晉師救鄭,荀林父將中軍,先縠佐之,士會將上軍,郤克佐之,趙朔將下軍,欒書佐之,趙括,趙嬰齊,為中軍大夫,鞏朔,韓穿,為上軍大夫,荀首,趙同,為下軍大夫,韓厥為司馬及河,聞鄭既及楚平,桓子欲還,曰,無及於鄭,而勦民,焉用之,楚歸而動,不後,隨武子曰,善,會聞用師觀釁而動,德,刑,政,事,典禮,不易,不可敵也,不為是征,楚軍討鄭,怒其貳而哀其卑,叛而伐之,服而舍之,德刑成矣,伐叛,刑也,柔服,德也,二者立矣,昔歲入陳,今茲入鄭,民不罷勞,君無怨讟,政有經矣,荊尸而舉,商農工賈,不敗其業。而卒乘輯睦,事不奸矣。薦敖為宰,擇楚國之令典,軍行,右轅,左追蓐,前茅慮無,中權,後勁,百官象物而動,軍政不戒而備,能用典矣,其君之舉也,內姓選於親,外姓選於舊,舉不失德,賞不失勞,老有加惠,旅有施舍,君子小人,物有服章,貴有常尊,賤有等威,禮不逆矣,德立刑行,政成事時,典從禮順,若之何敵之,見可而進,知難而退,軍之善政也,兼弱攻昧,武之善經也,子姑整軍而經武乎,猶有弱而昧者,何必楚,仲虺有言曰,取亂侮亡,兼弱也,汋曰,於鑠王師,遵養時晦,耆昧也,武曰,無競惟烈,撫弱耆昧,以務烈所,可也,彘子曰,不可,晉所以霸,師武臣力也,今失諸侯,不可謂力,有敵而不從,不可謂武,由我失霸,不如死。且成師以出,聞敵彊而退,非夫也。命有軍師,而卒以非夫,唯群子能,我弗為也,以中軍佐濟,知莊子曰,此師殆哉,周易有之,在師之臨曰,師出以律,否臧凶,執事順成為臧,逆為否,眾散為弱,川壅為澤,有律以如己也,故曰,律否臧,且律竭也,盈而以竭,夭且不整,所以凶也,不行謂之臨,有帥而不從,臨孰甚焉,此之謂矣,果遇必敗,彘子尸之,雖免而歸,必有大咎,韓獻子謂桓子曰,彘子以偏師陷,子罪大矣,子為元帥,師不用命,誰之罪也,失屬亡師,為罪已重,不如進也,事之不捷,惡有所分,與其專罪,六人同之,不猶愈乎,師遂濟,楚子北師次於郔,沈尹將中軍,子重將左,子反將右,將飲馬於河而歸,聞晉師既濟,王欲還,嬖人伍參欲戰,令尹孫叔敖弗欲,曰,昔歲入陳,今茲入鄭,不無事矣,戰而不捷,參之肉,其足食乎,參曰,若事之捷,孫叔為無謀矣,不捷,參之肉,將在晉軍,可得食乎,令尹南轅反旆,伍參言於王曰,晉之從政者新,未能行令,其佐先縠,剛愎不仁,未肯用命,其三帥者,專行不獲,聽而無上,眾誰適從,此行也,晉師必敗,且君而逃臣,若社稷何,王病之,告令尹,改乘轅而北之,次于管以待之,晉師在敖鄗之間,鄭皇戌使如晉師曰,鄭之從楚,社稷之故也,未有貳心,楚師驟勝而驕,其師老矣,而不設備,子擊之,鄭師為承,楚師必敗,彘子曰,敗楚服鄭,於此在矣,必許之。欒武子曰:楚自克庸以來,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于民生之不易,禍至之無日,戒懼之不可以怠。在軍,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于勝之不可保,紂之百克,而卒無後,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啟山林,箴之曰,民生在勤,勤則不匱,不可謂驕,先大夫子犯有言曰,師直為壯,曲為老,我則不德,而徼怨于楚,我曲楚直,不可謂老,其君之戎,分為二廣,廣有一卒,卒偏之兩,右廣初駕,數及日中,左則受之,以至于昏,內官序當其夜,以待不虞,不可謂無備,子良,鄭之良也,師叔,楚之崇也,師叔入盟,子良在楚,楚鄭親矣,來勸我戰,我克則來,不克遂往,以我卜也,鄭不可從,趙括,趙同,曰,率師以來,唯敵是求,克敵得屬,又何俟,必從彘子,知季曰,原屏,咎之徒也。趙莊子曰,欒伯,善哉,實其言,必長晉國,楚少宰如晉師。曰,寡君少遭閔凶,不能文,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將鄭是訓定,豈敢求罪于晉,二三子無淹久,隨季對曰,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與鄭夾輔周室,毋廢王命,今鄭不率,寡君使群臣問諸鄭,豈敢辱候人,敢拜君命之辱,彘子以為諂,使趙括從而更之曰,行人失辭,寡君使群臣遷大國之跡於鄭,曰,無辟敵,群臣無所逃命,楚子又使求成于晉,晉人許之,盟有日矣,楚許伯御樂伯,攝叔為右,以致晉師,許伯曰,吾聞致師者,御靡旌,摩壘而還,樂伯曰,吾聞致師者,左射以菆,代御執轡,御下兩馬,掉鞅而還,攝叔曰,吾聞致師者,右入壘,折馘,執俘而還,皆行其所聞而復,晉人逐之,左右角之,樂伯左射馬而右射人,角不能進,矢一而已。麋興於前,射麋麗龜。晉鮑癸當其後,使攝叔奉麋獻焉,曰,以歲之非時,獻禽之未至,敢膳諸從者,鮑癸止之曰,其左善射,其右有辭,君子也,既免,晉魏錡求,公族未得,而怒,欲敗晉師,請致師,弗許,請使,許之,遂往請戰而還,楚潘黨逐之,及熒澤,見六麋,射一麋以顧獻。曰:子有軍事,獸人無乃不給於鮮,敢獻於從者,叔黨命去之。趙旃求卿未得,且怒於失楚之致師者,請挑戰,弗許,請召盟,許之,與魏錡皆命而往,郤獻子曰,二憾往矣,弗備必敗,彘子曰,鄭人勸戰,弗敢從也,楚人求成,弗能好也,師無成命,多備何為,士季曰,備之善,若二子怒楚,楚人乘我,喪師無日矣,不如備之,楚之無惡,除備而盟,何損於好,若以惡來,有備不敗,且雖諸侯相見,軍衛不徹,警也,彘子不可,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故上軍不敗,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故敗而先濟,潘黨既逐魏錡,趙旃夜至於楚軍,席於軍門之外,使其徒入之,楚子為乘,廣三十乘,分為左右,右廣,雞鳴而駕,日中而說,左則受之,日入而說,許偃御右廣,養由基為右,彭名御左廣,屈蕩為右,乙卯,王乘左廣,以逐趙旃,趙旃棄車而走林,屈蕩搏之,得其甲裳,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使軘車逆之,潘黨望其塵,使騁而告曰,晉師至矣,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遂出陳,孫叔曰,進之,寧我薄人,無人薄我,詩云,元戎十乘,以先啟行,先人也,軍志曰,先人有奪人之心,薄之也。遂疾進師,車馳卒奔,乘晉軍。桓子不知所為,鼓於軍中,曰,先濟者有賞,中軍下軍爭舟,舟中之指可掬也,晉師右移,上軍未動,工尹齊,將右拒卒,以逐下軍,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曰,不穀不德而貪,以遇大敵,不穀之罪也,然楚不克,君之羞也,敢藉君靈,以濟楚師,使潘黨率游闕四十乘,從唐侯以為左拒,以從上軍,駒伯曰,待諸乎,隨季曰,楚師方壯,若萃於我,吾師必盡,不如收而去之,分謗生民,不亦可乎,殿其卒而退,不敗,王見右廣,將從之乘,屈蕩尸之曰,君以此始,亦必以終,自是楚之乘,廣先左,晉人或以廣隊,不能進,楚人惎之脫扃,少進,馬還,又惎之拔旆投衡,乃出,顧曰,吾不如大國之數奔也,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以他馬反,遇敵不能去,棄車而走林,逢大夫與其二子乘,謂其二子無顧,顧曰,趙傁在後,怒之,使下,指木曰,尸女於是,授趙旃綏以免,明日以表尸之,皆重獲在木下,楚熊負羈囚知罃,知莊子以其族反之,廚武子御,下軍之士多從之,每射,抽矢菆,納諸廚子之房,廚子怒曰,非子之求,而蒲之愛,董澤之蒲,可勝既乎,知季曰,不以人子,吾子其可得乎,吾不可以苟射故也,射連尹襄老,獲之,遂載其尸,射公子穀臣,囚之,以二者還,及昏,楚師軍於邲,晉之餘師不能軍,宵濟,亦終夜有聲,丙辰,楚重至於邲,遂次于衡雍,潘黨曰,君盍築武軍,而收晉尸以為京觀,臣聞克敵,必示子孫,以無忘武功,楚子曰,非爾所知也,夫文,止戈為武,武王克商,作頌曰,載戢干戈,載櫜弓矢,我求懿德,肆于時夏,允王保之,又作武,其卒章曰,耆定爾功,其三曰,鋪時繹思,我徂維求定,其六曰,綏萬邦,屢豐年,夫武,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眾,豐財,者也,故使子孫無忘其章,今我使二國暴骨,暴矣,觀兵以威諸侯,兵不戢矣,暴而不戢,安能保大,猶有晉在,焉得定功,所違民欲猶多,民何安焉,無德而強爭諸侯,何以和眾,利人之幾,而安人之亂,以為己榮,何以豐財,武有七德,我無一焉,何以示子孫,其為先君宮,告成事而已,武非吾功也,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乎有京觀,以懲淫慝,今罪無所,而民皆盡忠,以死君命,又何以為京觀乎,祀于河作先君宮,告成事而還。
是役也,鄭石制,實入楚師,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辛未,鄭殺僕叔及子服,君子曰,史佚所謂毋怙亂者,謂是類也,詩曰,亂離瘼矣,爰其適歸,歸於怙亂者也夫,鄭伯,許男,如楚,秋,晉師歸,桓子請死,晉侯欲許之,士貞子諫曰,不可,城濮之役,晉師三日穀,文公猶有憂色,左右曰,有喜而憂,如有憂而喜乎,公曰,得臣猶在,憂未歇也,困獸猶鬥,況國相乎,及楚殺子玉,公喜而後可知也,曰,莫余毒也已,是晉再克,而楚再敗也,楚是以再世不競,今天或者大警晉也,而又殺林父以重楚勝,其無乃久不競乎,林父之事君也,進思盡忠,退思補過,社稷之衛也,若之何殺之,夫其敗也,如日月之食焉,何損於明,晉侯使復其位。
冬,楚子伐蕭,宋華椒以蔡人救蕭,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王曰,勿殺,吾退,蕭人殺之,王怒,遂圍蕭,蕭潰,申公巫臣曰,師人多寒,王巡三軍,拊而勉之,三軍之士,皆如挾纊,遂傅於蕭,還無社與司馬卯言,號申叔展,叔展曰,有麥麴乎,曰,無,有山鞠窮乎,曰,無,河魚腹疾奈何,曰,目於眢井而拯之,若為茅絰,哭井則已,明日,蕭潰,申叔視其井,則茅絰存焉,號而出之。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清丘。曰,恤病討貳,於是卿不書,不實其言也,宋為盟故,伐陳,衛人救之。孔達曰,先君有約言焉,若大國討,我則死之。
《宣公十三年》
春秋:
十有三年,春,齊師伐莒。
夏,楚子伐宋。
秋,螽,冬,晉殺其大夫先縠。
宣公十三年:
十三年,春,齊師伐莒,莒恃晉而不事齊故也。
夏,楚子伐宋,以其救蕭也,君子曰,清丘之盟,唯宋可以免焉。
秋,赤狄伐晉,及清,先縠召之也。
冬,晉人討邲之敗,與清之師,歸罪於先縠而殺之,盡滅其族,君子曰,惡之來也,己則取之,其先縠之謂乎。 清丘之盟,晉以衛之救陳也,討焉,使人弗去,曰,罪無所歸,將加而師,孔達曰苟利社稷,請以我說,罪我之由,我則為政,而亢大國之討,將以誰任,我則死之。
《宣公十四年》
春秋:
十有四年,春,衛殺其大夫孔達,夏,五月,壬申,曹伯壽卒。晉侯伐鄭。
秋,九月,楚子圍宋。葬曹文公。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
宣公十四年: 十四年,春,孔達縊而死,衛人以說于晉,而免,遂告于諸侯曰,寡君有不令之臣達,構我敝邑于大國,既伏其罪矣,敢告,衛人以為成勞,復室其子,使復其位。
夏,晉侯伐鄭,為邲故也,告於諸侯,蒐焉而還,中行桓子之謀也,曰,示之以整,使謀而來,鄭人懼,使子張代子良于楚,鄭伯如楚,謀晉故也,鄭以子良為有禮,故召之。
楚子使申舟聘于齊,曰,無假道于宋,亦使公子馮聘于晉,不假道于鄭,申舟以孟諸之役惡宋,曰,鄭昭,宋聾,晉使不害,我則必死,王曰,殺女,我伐之。見犀而行。及宋,宋人止之,華元曰,過我而不假道,鄙我也,鄙我,亡也,殺其使者,必伐我,伐我,亦亡也,亡一也,乃殺之,楚子聞之,投袂而起,屨及於窒皇,劍及於寢門之外,車及於蒲胥之市,秋,九月,楚子圍宋。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見晏桓子,與之言魯樂,桓子告高宣子,曰,子家其亡乎,懷於魯矣,懷必貪,貪必謀人,謀人,人亦謀己,一國謀之,何以不亡。孟獻子言於公曰,臣聞小國之免於大國也,聘而獻物,於是有庭實旅百,朝而獻功,於是有容貌,采章,嘉淑,而有加貨,謀其不免也,誅而薦賄,則無及也,今楚在宋,君其圖之,公說。
《宣公十五年》
春秋:
十有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
夏,五月,宋人及楚人平。六月,癸卯,晉師滅赤狄潞氏,以潞子嬰兒歸。秦人伐晉。王札子殺召伯,毛伯。
秋螽。仲孫蔑,會齊高固于無婁。初稅畝。
冬,蝝生。饑。
宣公十五年:
十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宋人使樂嬰齊告急于晉,晉侯欲救之,伯宗曰,不可,古人有言曰,雖鞭之長,不及馬腹,天方授楚,未可與爭,雖晉之彊,能違天乎,諺曰,高下在心,川澤納汙,山藪藏疾,瑾瑜匿瑕,國君含垢,天之道也,君其待之,乃止,使解揚如宋,使無降楚,曰,晉師悉起,將至矣,鄭人囚而獻諸楚,楚子厚賂之,使反其言,不許,三而許之,登諸樓車,使呼宋而告之,遂致其君命,楚子將殺之,使與之言曰,爾既許不穀,而反之,何故,非我無信,女則棄之,速即爾刑,對曰,臣聞之,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信載義而行之為利,謀不失利,以衛社稷,民之主也,義無二信,信無二命,君之賂臣,不知命也,受命以出,有死無霣,又可賂乎,臣之許君,以成命也,死而成命,臣之祿也,寡君有信臣,下臣獲考,死又何求,楚子舍之以歸。
夏,五月,楚師將去宋,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王棄言焉,王不能荅,申叔時僕曰,築室反耕者,宋必聽命,從之,宋人懼,使華元夜入楚師,登子反之床,起之曰,寡君使元以病告,曰,敝邑易子而食,析骸以爨。雖然,城下之盟,有以國斃,不能從也,去我三十里,唯命是聽,子反懼,與之盟,而告王。退三十里,宋及楚平,華元為質。盟曰:我無爾詐,爾無我虞。
潞子嬰兒之夫人,晉景公之姊也,酆舒為政而殺之,又傷潞子之目,晉侯將伐之,諸大夫皆曰,不可,酆舒有三雋才,不如待後之人,伯宗曰,必伐之,狄有五罪,雋才雖多,何補焉,不祀,一也,耆酒,二也,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虐我伯姬,四也,傷其君目,五也,怙其雋才,而不以茂德,茲益罪也,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而申固其命,若之何待之,不討有罪,曰,將待後,後有辭而討焉,毋乃不可乎,夫恃才與眾,亡之道也,商紂由之故滅,天反時為災,地反物為妖,民反德為亂,亂則妖災生,故文反正為乏,盡在狄矣,晉侯從之,六月,癸卯,晉荀林父敗赤狄于曲梁,辛亥,滅潞,酆舒奔衛,衛人歸諸晉,晉人殺之。
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卒立召襄。
秋,七月,秦桓公伐晉,次于輔氏,壬午,晉侯治兵于稷,以略狄土,立黎侯而還,及雒,魏顆敗秦師于輔氏,獲杜回,秦之力人也,初,魏武子有嬖妾,無子,武子疾,命顆曰,必嫁是,疾病則曰,必以為殉,及卒,顆嫁之,曰,疾病則亂,吾從其治也,及輔氏之役,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杜回躓而顛,故獲之,夜夢之曰,余,而所嫁婦人之父也,爾用先人之治命,余是以報。
晉侯賞桓子狄臣千室,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吾獲狄土,子之功也,微子,吾喪伯氏矣,羊舌職說是賞也,曰,《周書》所謂庸庸祗祗者,謂此物也夫,士伯庸中行伯,君信之,亦庸士伯,此之謂明德矣,文王所以造周,不是過也,故《詩》曰:陳錫哉周,能施也,率是道也,其何不濟。
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不敬,劉康公曰,不及十年,原叔必有大咎,天奪之魄矣。
初,稅畝,非禮也,穀出不過藉,以豐財也。
冬蝝生,饑,幸之也。
《宣公十六年》
春秋:
十有六年,春,王正月,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
夏,成周宣榭火。
秋,郯伯姬來歸。
冬,大有年。
宣公十六年: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三月,獻狄俘晉侯,請于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為大傅,於是晉國之盜,逃奔于秦,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夏,成周宣榭火,人火之也,凡火,人火曰火,天火曰災。
秋,郯伯姬來歸,出也。
為毛召之難故,王室復亂,王孫蘇奔晉,晉人復之。
冬,晉侯使士會平王室,定王享之,原襄公相禮,殽烝,武子私問其故,王聞之,召武子曰,季氏,而弗聞乎,王享有體薦,晏有折俎,公當享,卿當宴,王室之禮也,武子歸而講求典禮,以脩晉國之法。
《宣公十七年》
春秋:
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許男錫我卒,丁未,蔡侯申卒。
夏,葬許昭公,葬蔡文公。六月,癸卯,日有食之。己未,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
秋,公至自會。
冬,十有一月,壬午,公弟叔肸卒。
宣公十七年:
十七年,春,晉侯使郤克徵會于齊,齊頃公帷婦人使觀之,郤子登,婦人笑於房。獻子怒,出而誓曰:“所不此報,無能涉河。”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齊,曰,不得齊事,無復命矣,郤子至,請伐齊,晉侯弗許,請以其私屬,又弗許,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及斂盂,高固逃歸,
夏,會于斷道,討貳也,盟于卷楚,辭齊人,晉人執晏弱于野王,執蔡朝于原,執南郭偃于溫,苗賁皇使,見晏桓子,歸言於晉侯曰,夫晏子何罪,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舉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齊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左右或沮之,曰,君不出,必執吾使,故高子及斂盂而逃,夫三子者曰,若絕君好,寧歸死焉,為是犯難而來,吾若善逆彼,以懷來者,吾又執之,以信齊沮,吾不既過矣乎,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晉人緩之,逸。
秋,八月,晉師還。
范武子將老,召文子曰,燮乎,吾聞之,喜怒以類者鮮,易者實多,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君子之喜怒,以已亂也,弗已者,必益之,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不然,余懼其益之也,余將老,使郤子逞其志,庶有豸乎,爾從二三子,唯敬,乃請老,郤獻子為政。
冬,公弟叔肸卒,公母弟也,凡大子之母,弟公在曰公子,不在曰弟,凡稱弟,皆母弟也。
《宣公十八年》
春秋:
十有八年,春,晉侯,衛世子臧,伐齊。公伐杞。
夏,四月。
秋,七月,邾人戕鄫子于鄫。甲戌,楚子旅卒。公孫歸父如晉。
冬,十月,壬戌,公薨于路寢。歸父還自晉,至笙,遂奔齊。
宣公十八年:
十八年,春,晉侯,衛大子臧,伐齊,至于陽穀,齊侯會晉侯盟于繒,以公子彊為質于晉,晉師還,蔡朝,南郭偃,逃歸。
夏,公使如楚乞師,欲以伐齊。
秋,邾人戕鄫子于鄫,凡自虐其君曰弒,自外曰戕。楚莊王卒,楚師不出,既而用晉師,楚於是乎有蜀之役。
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有寵,欲去三桓,以張公室,與公謀而聘于晉,欲以晉人去之,冬,公薨,季文子言於朝曰,使我殺適立庶,以失大援者,仲也夫,臧宣叔怒曰,當其時,不能治也,後之人何罪,子欲去之,許請去之,遂逐東門氏,子家還及笙,壇帷,復命於介,既復命,袒括髮,即位哭,三踊而出,遂奔齊,書曰,歸父還自晉,善之也。
文公(문공) 宣公(선공) 成公(성공)
《宣公元年》
春秋:
元年,春,王正月,公即位。公子遂如齊逆女,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
夏,季,孫行父如齊。晉放其大夫胥甲父于衛。公會齊侯于平州。公子遂如齊。六月,齊人取濟西田。
秋,邾子來朝。楚子,鄭人,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公,陳侯,衛侯,曹伯,會晉師于棐林,伐鄭。
冬,晉趙穿帥師侵崇。晉人,宋人,伐鄭。
宣公元年:
元年,春,王正月,公子遂如齊逆女,尊君命也,三月,遂以夫人婦姜至自齊,尊夫人也。
夏,季文子如齊,納賂,以請會。
晉人討不用命者,放胥甲父于衛,而立胥克,先辛奔齊。會于平州,以定公位。
東門襄仲如齊拜成。
六月,齊人取濟西之田,為立公故,以賂齊也。
宋人之弒昭公也,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宋,宋及晉平,宋文公受盟于晉,又會諸侯于扈,將為魯討齊,皆取賂而還,鄭穆公曰,晉不足與也,遂受盟于楚,陳共公之卒,楚人不禮焉,陳靈公受盟于晉,秋,楚子侵陳,遂侵宋,晉趙盾帥師救陳宋,會于棐林,以伐鄭也,楚蒍賈救鄭,遇于北林,囚晉解揚,晉人乃還。
晉欲求成於秦,趙穿曰,我侵崇,秦急崇必救之,吾以求成焉,冬,趙穿侵崇,秦弗與成。晉人伐鄭,以報北林之役,於是晉侯侈,趙宣,子為政,驟諫而不入,故不競於楚。
《宣公二年》
春秋:
二年,春,王二月,壬子,宋華元帥師,及鄭公子歸生帥師,戰于大棘,宋師敗績,獲宋華元。秦師伐晉。
夏, 晉人,宋人,衛人,陳人,侵鄭。
秋,九月,乙丑,晉趙盾弒其君夷皋。
冬,十月,乙亥,天王崩。
宣公二年:
二年,春,鄭公子歸生受命于楚,伐宋,宋華元,樂呂,御之,二月,壬子,戰于大棘,宋師敗績,囚華元,獲樂呂,及甲車四百六十乘,俘二百五十人,馘百人,狂狡輅鄭人,鄭人入于井,倒戟而出之,獲狂狡,君子曰,失禮違命,宜其為禽也,戎昭果毅以聽之,之謂禮,殺敵為果,致果為毅,易之戮也,將戰,華元殺羊食士,其御羊斟不與,及戰,曰,疇昔之羊,子為政,今日之事,我為政,與入鄭師,故敗,君子謂羊斟非人也,以其私憾,敗國殄民,於是刑孰大焉,詩所謂人之無良者,其羊斟之謂乎,殘民以逞。宋人以兵車百乘,文馬百駟,以贖華元于鄭,半入,華元逃歸,立于門外,告而入,見叔牂,曰,子之馬然也。對曰,非馬也,其人也,既合而來奔,宋城,華元為植,巡功,城者謳曰,睅其目,皤其腹,棄甲而復,于思于思,棄甲復來,使其驂乘,謂之曰,牛則有皮,犀兕尚多,棄甲則那。役人曰,從其有皮,丹漆若何?華元曰,去之,夫其口眾我寡。
秦師伐晉,以報崇也,遂圍焦,夏,晉趙盾救焦,遂自陰地,及諸侯之師侵鄭,以報大棘之役,楚鬥椒救鄭,曰,能欲諸侯而惡其難乎,遂次于鄭,以待晉師,趙盾曰,彼宗競于楚,殆將斃矣,姑益其疾,乃去之。晉靈公不君,厚斂以彫牆,從臺上彈人,而觀其辟丸也,宰夫胹熊蹯不熟,殺之,寘諸畚,使婦人載以過朝,趙盾,士季,見其手,問其故,而患之,將諫,士季曰,諫而不入,則莫之繼也,會請先,不入,則子繼之,三進及溜,而後視之,曰,吾知所過矣,將改之。稽首而對曰,人誰無過,過而能改,善莫大焉。《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夫如是,則能補過者鮮矣。君能有終,則社稷之固也,豈惟群臣賴之,又曰,袞職有闕,惟仲山甫補之,能補過也。君能補過,袞不廢矣。猶不改,宣子驟諫,公患之,使鉏麑賊之,晨往,寢門闢矣,盛服將朝,尚早,坐而假寐,麑退,歎而言曰,不忘恭敬,民之主也,賊民之主,不忠,棄君之命,不信,有一於此,不如死也,觸槐而死。
秋,九月,晉侯飲趙盾酒,伏甲將攻之,其右提彌明知之,趨登曰,臣侍君宴,過三爵,非禮也,遂扶以下,公嗾夫獒焉,明搏而殺之,盾曰,棄人用犬,雖猛何為,鬥且出,提彌明死之,初,宣子田於首山,舍于翳桑,見靈輒餓,問其病,曰,不食三日矣,食之,舍其半,問之。曰:宦三年矣,未知母之存否。今近焉,請以遺之,使盡之,而為之簞食與肉,寘諸橐以與之,既而與為公介,倒戟以禦公徒,而免之,問何故,對曰,翳桑之餓人也。問其名居,不告而退,遂自亡也。乙丑,趙穿攻靈公於桃園,宣子未出山而復,大史書曰,趙盾弒其君,以示於朝,宣子曰,不然,對曰,子為正卿,亡不越竟,反不討賊,非子而誰,宣子曰,嗚呼,我之懷矣,自詒伊慼,其我之謂矣。孔子曰: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趙宣子,古之良大夫也,為法受惡,惜也,越竟乃免,宣子使趙穿逆公子黑臀于周,而立之,壬申,朝于武宮。
初,麗姬之亂,詛無畜群公子,自是晉無公族,及成公即位,乃宦卿之適子,而為之田,以為公族,又宦其餘子,亦為餘子,其庶子為公行,晉於是有公族,餘子,公行,趙盾請以括為公族,曰,君姬氏之愛子也,微君姬氏,則臣狄人也,公許之,冬,趙盾為旄車之族,使屏季以其故族為公族大夫。
《宣公三年》
春秋:
三年,春,王正月,郊牛之口傷,改卜牛,牛死,乃不郊,猶三望。
葬匡王。楚子伐陸渾之戎。
夏,楚人侵鄭。
秋,赤狄侵齊。宋師圍曹。
冬,十月,丙戌,鄭伯蘭卒。葬鄭穆公。
宣公三年:
三年,春,不郊而望,皆非禮也,望,郊之屬也,不郊,亦無望可也。晉侯伐鄭,及郔,鄭及晉平,士會入盟。
楚子伐陸渾之戎,遂至于雒,觀兵于周疆,定王使王孫滿勞楚子,楚子問鼎之大小輕重焉,對曰,在德不在鼎,昔夏之方有德也,遠方圖物,貢金九牧,鑄鼎象物,百物而為之備,使民知神姦,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螭魅罔兩,莫能逢之,用能協于上下,以承天休,桀有昏德,鼎遷于商,載祀六百,商紂暴虐,鼎遷于周,德之休明,雖小,重也,其姦回昏亂,雖大,輕也,天祚明德,有所底止,成王定鼎于郟鄏,卜世三十,卜年七百,天所命也,周德雖衰,天命未改,鼎之輕重,未可問也。
夏,楚人侵鄭,鄭即晉,故也。
宋文公即位三年,殺母弟須,及昭公子,武氏之謀也,使戴桓之族,攻武氏於司馬子伯之館,盡逐武穆之族,武穆之族,以曹師伐宋,秋,宋師圍曹,報武氏之亂也。
冬,鄭穆公卒,初,鄭文公有賤妾,曰燕姞,夢天使與己蘭,曰,余為伯鯈,余而祖也,以是為而子,以蘭有國香,人服媚之如是,既而文公見之,與之蘭而御之,辭曰,妾不才,幸而有子,將不信,敢徵蘭乎,公曰,諾,生穆公,名之曰蘭,文公報鄭子之妃,曰陳媯,生子華,子臧,子臧得罪而出,誘子華而殺之南里,使盜殺子臧於陳宋之間,又娶于江,生公子士,朝于楚,楚人酖之,及葉而死,又娶于蘇,生子瑕,子俞彌,俞彌早卒,洩駕惡瑕,文公亦惡之,故不立也,公逐群公子,公子蘭奔晉,從晉文公伐鄭,石癸曰,吾聞姬姞耦,其子孫必蕃,姞,吉人也,后稷之元妃也,今公子蘭,姞甥也,天或啟之,必將為君,其後必蕃,先納之,可以亢寵,與孔將鉏,侯宣多,納之,盟于大宮,而立之,以與晉平,穆公有疾,曰,蘭死,吾其死乎,吾所以生也,刈蘭而卒。
《宣公四年》
春秋:
四年,春,王正月,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秦伯稻卒。
夏,六月,乙酉,鄭公子歸生弒其君夷。赤狄侵齊。
秋,公如齊,公至自齊。
冬,楚子伐鄭。
宣公四年:
四年,春,公及齊侯平莒及郯,莒人不肯,公伐莒取向,非禮也,平國以禮,不以亂,伐而不治,亂也,以亂平亂,何治之有無治,何以行禮。
楚人獻黿於鄭靈公,公子宋,與子家將見,子公之食指動,以示子家,曰,他日我如此,必嘗異味,及入,宰夫將解黿,相視而笑,公問之,子家以告,及食大夫黿,召子公而弗與也,子公怒,染指於鼎,嘗之而出,公怒,欲殺子公,子公與子家謀先,子家曰,畜老猶憚殺之,而況君乎,反譖子家,子家懼而從之,夏弒靈公,書曰,鄭公子歸生弒其君夷,權不足也,君子曰,仁而不武,無能達也,凡弒君稱君,君無道也,稱臣,臣之罪也,鄭人立子良,辭曰,以賢則去疾不足,以順,則公子堅長,乃立襄公,襄公將去穆氏,而舍子良,子良不可曰,穆氏宜存,則固願也,若將亡之,則亦皆亡,去疾何為,乃舍之,皆為大夫。
初,楚司馬子良,生子越椒,子文曰,必殺之,是子也,熊虎之狀,而豺狼之聲,弗殺,必滅若敖氏矣,諺曰,狼子野心,是乃狼也,其可畜乎,子良不可,子文以為大慼,及將死,聚其族曰,椒也知政,乃速行矣,無及於難,且泣曰,鬼猶求食。若敖氏之鬼,不其餒而!及令尹子文卒,鬥般為令尹,子越為司馬,蒍賈為工正,譖子揚而殺之,子越為令尹,已為司馬,子越又惡之,乃以若敖氏之族,圄伯嬴於轑陽,而殺之,遂處烝野,將攻王,王以三王之子為質焉,弗受,師于漳澨,秋,七月,戊戌,楚子與若敖氏戰于皋滸,伯棼射王,汰輈,及鼓跗,著於丁寧,又射,汰輈,以貫笠轂,師懼,退,王使巡師曰,吾先君文王克息,獲三矢焉,伯棼竊其二,盡於是矣,鼓而進之,遂滅若敖氏,初,若敖娶於䢵,生鬥伯比,若敖卒,從其母畜於邧,淫於邧子之女,生子文焉,邧夫人使棄諸夢中,虎乳之,邧子田,見之,懼而歸,夫人以告,遂使收之。楚人謂乳穀,謂虎於菟。故命之曰鬥穀於菟,以其女妻伯比,實為令尹子文,其孫箴尹克黃,使於齊,還及宋,聞亂,其人曰,不可以人矣,箴尹曰,棄君之命,獨誰受之,君,天也,天可逃乎,遂歸復命,而自拘於司敗,王思子文之治楚國也,曰,子文無後,何以勸善,使復其所,改命曰生。
冬,楚子伐鄭,鄭未服也。
《宣公五年》
春秋:
五年,春,公如齊。
夏,公至自齊。
秋,九月,齊高固來逆叔姬。叔孫得臣卒。
冬,齊高固及子叔姬來。楚人伐鄭。
宣公五年:
五年,春,公如齊,高固使齊侯止公,請叔姬焉。
夏,公至自齊,書過也。
秋,九月,齊高固來逆女,自為也,故書曰,逆叔姬,即自逆也。
冬,來,反馬也。楚子伐鄭,陳及楚平,晉荀林父救鄭伐陳。
《宣公六年》
春秋:
六年,春,晉趙盾,衛孫免,侵陳。
夏,四月。
秋,八月,螽。
冬,十月。
宣公六年:
六年,春,晉衛侵陳,陳即楚故也。
夏,定王使子服求后于齊。
秋,赤狄伐晉,圍懷,及邢丘,晉侯欲伐之,中行桓子曰,使疾其民,以盈其貫,將可殪也,《周書》曰:殪戎殷,此類之謂也。
冬,召桓公逆王后于齊。楚人伐鄭,取成而還。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欲為卿伯廖告人曰,無德而貪,其在周易豐之離,弗過之矣,間一歲,鄭人殺之。
《宣公七年》
春秋:
七年,春,衛侯使孫良夫來盟。
夏,公會齊侯伐萊。
秋,公至自伐萊。大旱。
冬,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于黑壤。
宣公七年:
七年,春,衛孫桓子來盟,始通,且謀會晉也。
夏,公會齊侯伐萊,不與謀也,凡師出,與謀曰及,不與謀曰會。
赤狄侵晉,取向陰之禾。
鄭及晉平,公子宋之謀也,故相鄭伯以會,冬,盟于黑壤,王叔桓公臨之,以謀不睦。晉侯之立也,公不朝焉,又不使大夫聘晉人止公于會,盟于黃父,公不與盟,以賂免,故黑壤之盟不書,諱之也。
《宣公八年》
春秋:
八年,春,公至自會。
夏,六月,公子遂如齊,至黃,乃復。辛巳,有事于大廟,仲遂卒于垂,壬午,猶繹,萬入,去籥。戊子,夫人嬴氏薨。晉師,白狄,伐秦。楚人滅舒蓼。
秋,七月,甲子,日有食之,既。
冬,十月,己丑,葬我小君敬嬴,雨不克葬,庚寅,日中而克葬。城平陽。楚師伐陳。
宣公八年:
八年,春,白狄及晉平,
夏,會晉伐秦,晉人獲秦諜,殺諸絳市,六日而蘇。有事于大廟,襄仲卒而繹,非禮也。楚為眾舒叛故,伐舒蓼,滅之,楚子疆之。及滑汭,盟吳越而還。
晉胥克有蠱疾,郤缺為政,秋,廢胥克,使趙朔佐下軍。
冬,葬敬嬴,旱無麻,始用葛茀,雨不克葬,禮也,禮,卜葬先遠日,辟不懷也。城平陽,書時也。陳及晉平,楚師伐陳,取成而還。
《宣公九年》
春秋:
九年,春,王正月,公如齊,公至自齊。
夏,仲孫蔑如京師。齊侯伐萊。
秋,取根牟。八月,滕子卒。九月,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會于扈。晉荀林父帥師伐陳。辛酉,晉侯黑臀卒于扈。
冬,十月,癸酉,衛侯鄭卒。宋人圍滕。楚子伐鄭。晉郤缺帥師救鄭。陳殺其大夫洩冶。
宣公九年:
九年,春,王使來徵聘,
夏,孟獻子聘於周,王以為有禮,厚賄之。
秋,取根牟,言易也。滕昭公卒。會于扈,討不睦也,陳侯不會,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陳,晉侯卒于扈,乃還。
冬,宋人圍滕,因其喪也。陳靈公與孔寧,儀行父,通於夏姬,皆衷其衵服以戲于朝,洩冶諫曰,公卿宣淫,民無效焉,且聞不令,君其納之,公曰,吾能改矣,公告二子,二子請殺之,公弗禁,遂殺洩冶,孔子曰:“《詩》云:‘民之多辟,無自立辟’,其洩冶之謂乎。”楚子為厲之役故,伐鄭。晉郤缺救鄭,鄭伯敗楚師于柳棼,國人皆喜,唯子良憂,曰,是國之災也,吾死無日矣。
《宣公十年》
春秋:
十年,春,公如齊,公至自齊。齊人歸我濟西田。
夏,四月,丙辰,日有食之。己巳,齊侯元卒。齊崔氏出奔衛。公如齊,五月,公至自齊。癸巳,陳夏徵舒弒其君平國。六月,宋師伐滕。公孫歸父如齊。葬齊惠公,晉人,宋人,衛人,曹人,伐鄭。
秋,天王使王季子來聘。公孫歸父帥師伐邾,取繹。大水。季孫行父如齊。
冬,公孫歸父如齊,齊侯使國佐來聘。饑,楚子伐鄭。
宣公十年:
十年,春,公如齊,齊侯以我服故,歸濟西之田。
夏,齊惠公卒,崔杼有寵於惠公,高,國畏其偪也,公卒而逐之,奔衛,書曰,崔氏,非其罪也,且告以族,不以名,凡諸侯之大夫違,告於諸侯曰,某氏之守臣某,失守宗廟,敢告,所有玉帛之使者則告,不然則否。公如齊奔喪。陳靈公與孔寧,儀行父,飲酒於夏氏,公謂行父曰,徵舒似女,對曰,亦似君,徵舒病之,公出,自其廄射而殺之,二子奔楚。滕人恃晉而不事宋,六月,宋師伐滕。鄭及楚平,諸侯之師伐鄭,取成而還。
秋,劉康公來報聘。師伐邾,取繹。季文子初聘于齊。
冬子家如齊,伐邾故也,國武子來報聘。楚子伐鄭,晉士會救鄭,逐楚師于潁北,諸侯之師戍鄭,鄭子家卒,鄭人討幽公之亂,斲子家之棺而逐其族,改葬幽公,諡之曰靈。
《宣公十一年》
春秋:
十有一年,春,王正月。
夏,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公孫歸父會齊人伐莒。
秋,晉侯會狄于欑函。
冬,十月,楚人殺陳夏徵舒。丁亥,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
宣公十一年 :
十一年,春楚子伐鄭,及櫟,子良曰,晉楚不務德而兵爭,與其來者可也,晉楚無信,我焉得有信,乃從楚,
夏,楚盟于辰陵,陳鄭服也。楚左尹子重侵宋,王待諸郔。令尹蒍艾獵城沂,使封人慮事,以授司徒,量功命日,分財用,平板榦,稱畚築,程土物,議遠邇,略基趾,具餱糧,度有司,事三旬而成,不愆于素。
晉郤成子求成于眾狄,眾狄疾赤狄之役,遂服于晉,秋,會于欑函,眾狄服也,是行也,諸大夫欲召狄,郤成子曰,吾聞之,非德莫如勤,非勤何以求人,能勤有繼,其從之也,詩曰,文王既勤止,文王猶勤,況寡德乎。
冬,楚子為陳夏氏亂故,伐陳,謂陳人無動,將討於少西氏,遂入陳,殺夏徵舒,轘諸栗門,因縣陳,陳侯在晉,申叔時使於齊反,復命而退,王使讓之曰,夏徵舒為不道,弒其君,寡人以諸侯討而戮之,諸侯縣公皆慶寡人,女獨不慶寡人,何故,對曰,猶可辭乎,王曰,可哉,曰,夏徵舒弒其君,其罪大矣,討而戮之,君之義也,抑人亦有言曰,牽牛以蹊人之田,而奪之牛,牽牛以蹊者,信有罪矣,而奪之牛,罰已重矣,諸侯之從也,曰,討有罪也,今縣陳,貪其富也,以討召諸侯,而以貪歸之,無乃不可乎,王曰,善哉,吾未之聞也,反之,可乎,對曰,吾儕小人,所謂取諸其懷而與之也,乃復封陳,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故書曰,楚子入陳,納公孫寧,儀行父,于陳,書有禮也。厲之役,鄭伯逃歸,自是楚未得志焉,鄭既受盟于辰陵,又徼事于晉。
《宣公十二年》
春秋:
十有二年,春,葬陳靈公。楚子圍鄭。
夏,六月,乙卯,晉荀林父帥師及楚子戰于邲,晉師敗績。
秋,七月。
冬,十有二月,戊寅,楚子滅蕭。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清丘,宋師伐陳,衛人救陳。
宣公十二年: 十二年,春,楚子圍鄭,旬有七日,鄭人卜行成不吉,卜臨于大宮,且巷出車,吉,國人大臨,守陴者皆哭,楚子退師,鄭人脩城,進復圍之。三月,克之,入自皇門,至于逵路,鄭伯肉袒牽羊以逆,曰,孤不天,不能事君,使君懷怒,以及敝邑,孤之罪也,敢不唯命是聽。其俘諸江南,以實海濱,亦唯命,其翦以賜諸侯,使臣妾之,亦唯命,若惠顧前好,徼福於厲,宣,桓,武,不泯其社稷,使改事君,夷於九縣,君之惠也,孤之願也,非所敢望也,敢布腹心,君實圖之,左右曰,不可許也,得國無赦。王曰,其君能下人,必能信用其民矣,庸可幾乎,退三十里,而許之平,潘尪入盟,子良出質。
實,六月,晉師救鄭,荀林父將中軍,先縠佐之,士會將上軍,郤克佐之,趙朔將下軍,欒書佐之,趙括,趙嬰齊,為中軍大夫,鞏朔,韓穿,為上軍大夫,荀首,趙同,為下軍大夫,韓厥為司馬及河,聞鄭既及楚平,桓子欲還,曰,無及於鄭,而勦民,焉用之,楚歸而動,不後,隨武子曰,善,會聞用師觀釁而動,德,刑,政,事,典禮,不易,不可敵也,不為是征,楚軍討鄭,怒其貳而哀其卑,叛而伐之,服而舍之,德刑成矣,伐叛,刑也,柔服,德也,二者立矣,昔歲入陳,今茲入鄭,民不罷勞,君無怨讟,政有經矣,荊尸而舉,商農工賈,不敗其業。而卒乘輯睦,事不奸矣。薦敖為宰,擇楚國之令典,軍行,右轅,左追蓐,前茅慮無,中權,後勁,百官象物而動,軍政不戒而備,能用典矣,其君之舉也,內姓選於親,外姓選於舊,舉不失德,賞不失勞,老有加惠,旅有施舍,君子小人,物有服章,貴有常尊,賤有等威,禮不逆矣,德立刑行,政成事時,典從禮順,若之何敵之,見可而進,知難而退,軍之善政也,兼弱攻昧,武之善經也,子姑整軍而經武乎,猶有弱而昧者,何必楚,仲虺有言曰,取亂侮亡,兼弱也,汋曰,於鑠王師,遵養時晦,耆昧也,武曰,無競惟烈,撫弱耆昧,以務烈所,可也,彘子曰,不可,晉所以霸,師武臣力也,今失諸侯,不可謂力,有敵而不從,不可謂武,由我失霸,不如死。且成師以出,聞敵彊而退,非夫也。命有軍師,而卒以非夫,唯群子能,我弗為也,以中軍佐濟,知莊子曰,此師殆哉,周易有之,在師之臨曰,師出以律,否臧凶,執事順成為臧,逆為否,眾散為弱,川壅為澤,有律以如己也,故曰,律否臧,且律竭也,盈而以竭,夭且不整,所以凶也,不行謂之臨,有帥而不從,臨孰甚焉,此之謂矣,果遇必敗,彘子尸之,雖免而歸,必有大咎,韓獻子謂桓子曰,彘子以偏師陷,子罪大矣,子為元帥,師不用命,誰之罪也,失屬亡師,為罪已重,不如進也,事之不捷,惡有所分,與其專罪,六人同之,不猶愈乎,師遂濟,楚子北師次於郔,沈尹將中軍,子重將左,子反將右,將飲馬於河而歸,聞晉師既濟,王欲還,嬖人伍參欲戰,令尹孫叔敖弗欲,曰,昔歲入陳,今茲入鄭,不無事矣,戰而不捷,參之肉,其足食乎,參曰,若事之捷,孫叔為無謀矣,不捷,參之肉,將在晉軍,可得食乎,令尹南轅反旆,伍參言於王曰,晉之從政者新,未能行令,其佐先縠,剛愎不仁,未肯用命,其三帥者,專行不獲,聽而無上,眾誰適從,此行也,晉師必敗,且君而逃臣,若社稷何,王病之,告令尹,改乘轅而北之,次于管以待之,晉師在敖鄗之間,鄭皇戌使如晉師曰,鄭之從楚,社稷之故也,未有貳心,楚師驟勝而驕,其師老矣,而不設備,子擊之,鄭師為承,楚師必敗,彘子曰,敗楚服鄭,於此在矣,必許之。欒武子曰:楚自克庸以來,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于民生之不易,禍至之無日,戒懼之不可以怠。在軍,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于勝之不可保,紂之百克,而卒無後,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啟山林,箴之曰,民生在勤,勤則不匱,不可謂驕,先大夫子犯有言曰,師直為壯,曲為老,我則不德,而徼怨于楚,我曲楚直,不可謂老,其君之戎,分為二廣,廣有一卒,卒偏之兩,右廣初駕,數及日中,左則受之,以至于昏,內官序當其夜,以待不虞,不可謂無備,子良,鄭之良也,師叔,楚之崇也,師叔入盟,子良在楚,楚鄭親矣,來勸我戰,我克則來,不克遂往,以我卜也,鄭不可從,趙括,趙同,曰,率師以來,唯敵是求,克敵得屬,又何俟,必從彘子,知季曰,原屏,咎之徒也。趙莊子曰,欒伯,善哉,實其言,必長晉國,楚少宰如晉師。曰,寡君少遭閔凶,不能文,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將鄭是訓定,豈敢求罪于晉,二三子無淹久,隨季對曰,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與鄭夾輔周室,毋廢王命,今鄭不率,寡君使群臣問諸鄭,豈敢辱候人,敢拜君命之辱,彘子以為諂,使趙括從而更之曰,行人失辭,寡君使群臣遷大國之跡於鄭,曰,無辟敵,群臣無所逃命,楚子又使求成于晉,晉人許之,盟有日矣,楚許伯御樂伯,攝叔為右,以致晉師,許伯曰,吾聞致師者,御靡旌,摩壘而還,樂伯曰,吾聞致師者,左射以菆,代御執轡,御下兩馬,掉鞅而還,攝叔曰,吾聞致師者,右入壘,折馘,執俘而還,皆行其所聞而復,晉人逐之,左右角之,樂伯左射馬而右射人,角不能進,矢一而已。麋興於前,射麋麗龜。晉鮑癸當其後,使攝叔奉麋獻焉,曰,以歲之非時,獻禽之未至,敢膳諸從者,鮑癸止之曰,其左善射,其右有辭,君子也,既免,晉魏錡求,公族未得,而怒,欲敗晉師,請致師,弗許,請使,許之,遂往請戰而還,楚潘黨逐之,及熒澤,見六麋,射一麋以顧獻。曰:子有軍事,獸人無乃不給於鮮,敢獻於從者,叔黨命去之。趙旃求卿未得,且怒於失楚之致師者,請挑戰,弗許,請召盟,許之,與魏錡皆命而往,郤獻子曰,二憾往矣,弗備必敗,彘子曰,鄭人勸戰,弗敢從也,楚人求成,弗能好也,師無成命,多備何為,士季曰,備之善,若二子怒楚,楚人乘我,喪師無日矣,不如備之,楚之無惡,除備而盟,何損於好,若以惡來,有備不敗,且雖諸侯相見,軍衛不徹,警也,彘子不可,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故上軍不敗,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故敗而先濟,潘黨既逐魏錡,趙旃夜至於楚軍,席於軍門之外,使其徒入之,楚子為乘,廣三十乘,分為左右,右廣,雞鳴而駕,日中而說,左則受之,日入而說,許偃御右廣,養由基為右,彭名御左廣,屈蕩為右,乙卯,王乘左廣,以逐趙旃,趙旃棄車而走林,屈蕩搏之,得其甲裳,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使軘車逆之,潘黨望其塵,使騁而告曰,晉師至矣,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遂出陳,孫叔曰,進之,寧我薄人,無人薄我,詩云,元戎十乘,以先啟行,先人也,軍志曰,先人有奪人之心,薄之也。遂疾進師,車馳卒奔,乘晉軍。桓子不知所為,鼓於軍中,曰,先濟者有賞,中軍下軍爭舟,舟中之指可掬也,晉師右移,上軍未動,工尹齊,將右拒卒,以逐下軍,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曰,不穀不德而貪,以遇大敵,不穀之罪也,然楚不克,君之羞也,敢藉君靈,以濟楚師,使潘黨率游闕四十乘,從唐侯以為左拒,以從上軍,駒伯曰,待諸乎,隨季曰,楚師方壯,若萃於我,吾師必盡,不如收而去之,分謗生民,不亦可乎,殿其卒而退,不敗,王見右廣,將從之乘,屈蕩尸之曰,君以此始,亦必以終,自是楚之乘,廣先左,晉人或以廣隊,不能進,楚人惎之脫扃,少進,馬還,又惎之拔旆投衡,乃出,顧曰,吾不如大國之數奔也,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以他馬反,遇敵不能去,棄車而走林,逢大夫與其二子乘,謂其二子無顧,顧曰,趙傁在後,怒之,使下,指木曰,尸女於是,授趙旃綏以免,明日以表尸之,皆重獲在木下,楚熊負羈囚知罃,知莊子以其族反之,廚武子御,下軍之士多從之,每射,抽矢菆,納諸廚子之房,廚子怒曰,非子之求,而蒲之愛,董澤之蒲,可勝既乎,知季曰,不以人子,吾子其可得乎,吾不可以苟射故也,射連尹襄老,獲之,遂載其尸,射公子穀臣,囚之,以二者還,及昏,楚師軍於邲,晉之餘師不能軍,宵濟,亦終夜有聲,丙辰,楚重至於邲,遂次于衡雍,潘黨曰,君盍築武軍,而收晉尸以為京觀,臣聞克敵,必示子孫,以無忘武功,楚子曰,非爾所知也,夫文,止戈為武,武王克商,作頌曰,載戢干戈,載櫜弓矢,我求懿德,肆于時夏,允王保之,又作武,其卒章曰,耆定爾功,其三曰,鋪時繹思,我徂維求定,其六曰,綏萬邦,屢豐年,夫武,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眾,豐財,者也,故使子孫無忘其章,今我使二國暴骨,暴矣,觀兵以威諸侯,兵不戢矣,暴而不戢,安能保大,猶有晉在,焉得定功,所違民欲猶多,民何安焉,無德而強爭諸侯,何以和眾,利人之幾,而安人之亂,以為己榮,何以豐財,武有七德,我無一焉,何以示子孫,其為先君宮,告成事而已,武非吾功也,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乎有京觀,以懲淫慝,今罪無所,而民皆盡忠,以死君命,又何以為京觀乎,祀于河作先君宮,告成事而還。
是役也,鄭石制,實入楚師,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辛未,鄭殺僕叔及子服,君子曰,史佚所謂毋怙亂者,謂是類也,詩曰,亂離瘼矣,爰其適歸,歸於怙亂者也夫,鄭伯,許男,如楚,秋,晉師歸,桓子請死,晉侯欲許之,士貞子諫曰,不可,城濮之役,晉師三日穀,文公猶有憂色,左右曰,有喜而憂,如有憂而喜乎,公曰,得臣猶在,憂未歇也,困獸猶鬥,況國相乎,及楚殺子玉,公喜而後可知也,曰,莫余毒也已,是晉再克,而楚再敗也,楚是以再世不競,今天或者大警晉也,而又殺林父以重楚勝,其無乃久不競乎,林父之事君也,進思盡忠,退思補過,社稷之衛也,若之何殺之,夫其敗也,如日月之食焉,何損於明,晉侯使復其位。
冬,楚子伐蕭,宋華椒以蔡人救蕭,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王曰,勿殺,吾退,蕭人殺之,王怒,遂圍蕭,蕭潰,申公巫臣曰,師人多寒,王巡三軍,拊而勉之,三軍之士,皆如挾纊,遂傅於蕭,還無社與司馬卯言,號申叔展,叔展曰,有麥麴乎,曰,無,有山鞠窮乎,曰,無,河魚腹疾奈何,曰,目於眢井而拯之,若為茅絰,哭井則已,明日,蕭潰,申叔視其井,則茅絰存焉,號而出之。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清丘。曰,恤病討貳,於是卿不書,不實其言也,宋為盟故,伐陳,衛人救之。孔達曰,先君有約言焉,若大國討,我則死之。
《宣公十三年》
春秋:
十有三年,春,齊師伐莒。
夏,楚子伐宋。
秋,螽,冬,晉殺其大夫先縠。
宣公十三年:
十三年,春,齊師伐莒,莒恃晉而不事齊故也。
夏,楚子伐宋,以其救蕭也,君子曰,清丘之盟,唯宋可以免焉。
秋,赤狄伐晉,及清,先縠召之也。
冬,晉人討邲之敗,與清之師,歸罪於先縠而殺之,盡滅其族,君子曰,惡之來也,己則取之,其先縠之謂乎。 清丘之盟,晉以衛之救陳也,討焉,使人弗去,曰,罪無所歸,將加而師,孔達曰苟利社稷,請以我說,罪我之由,我則為政,而亢大國之討,將以誰任,我則死之。
《宣公十四年》
春秋:
十有四年,春,衛殺其大夫孔達,夏,五月,壬申,曹伯壽卒。晉侯伐鄭。
秋,九月,楚子圍宋。葬曹文公。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
宣公十四年: 十四年,春,孔達縊而死,衛人以說于晉,而免,遂告于諸侯曰,寡君有不令之臣達,構我敝邑于大國,既伏其罪矣,敢告,衛人以為成勞,復室其子,使復其位。
夏,晉侯伐鄭,為邲故也,告於諸侯,蒐焉而還,中行桓子之謀也,曰,示之以整,使謀而來,鄭人懼,使子張代子良于楚,鄭伯如楚,謀晉故也,鄭以子良為有禮,故召之。
楚子使申舟聘于齊,曰,無假道于宋,亦使公子馮聘于晉,不假道于鄭,申舟以孟諸之役惡宋,曰,鄭昭,宋聾,晉使不害,我則必死,王曰,殺女,我伐之。見犀而行。及宋,宋人止之,華元曰,過我而不假道,鄙我也,鄙我,亡也,殺其使者,必伐我,伐我,亦亡也,亡一也,乃殺之,楚子聞之,投袂而起,屨及於窒皇,劍及於寢門之外,車及於蒲胥之市,秋,九月,楚子圍宋。
冬,公孫歸父會齊侯于穀,見晏桓子,與之言魯樂,桓子告高宣子,曰,子家其亡乎,懷於魯矣,懷必貪,貪必謀人,謀人,人亦謀己,一國謀之,何以不亡。孟獻子言於公曰,臣聞小國之免於大國也,聘而獻物,於是有庭實旅百,朝而獻功,於是有容貌,采章,嘉淑,而有加貨,謀其不免也,誅而薦賄,則無及也,今楚在宋,君其圖之,公說。
《宣公十五年》
春秋:
十有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
夏,五月,宋人及楚人平。六月,癸卯,晉師滅赤狄潞氏,以潞子嬰兒歸。秦人伐晉。王札子殺召伯,毛伯。
秋螽。仲孫蔑,會齊高固于無婁。初稅畝。
冬,蝝生。饑。
宣公十五年:
十五年,春,公孫歸父會楚子于宋。宋人使樂嬰齊告急于晉,晉侯欲救之,伯宗曰,不可,古人有言曰,雖鞭之長,不及馬腹,天方授楚,未可與爭,雖晉之彊,能違天乎,諺曰,高下在心,川澤納汙,山藪藏疾,瑾瑜匿瑕,國君含垢,天之道也,君其待之,乃止,使解揚如宋,使無降楚,曰,晉師悉起,將至矣,鄭人囚而獻諸楚,楚子厚賂之,使反其言,不許,三而許之,登諸樓車,使呼宋而告之,遂致其君命,楚子將殺之,使與之言曰,爾既許不穀,而反之,何故,非我無信,女則棄之,速即爾刑,對曰,臣聞之,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信載義而行之為利,謀不失利,以衛社稷,民之主也,義無二信,信無二命,君之賂臣,不知命也,受命以出,有死無霣,又可賂乎,臣之許君,以成命也,死而成命,臣之祿也,寡君有信臣,下臣獲考,死又何求,楚子舍之以歸。
夏,五月,楚師將去宋,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王棄言焉,王不能荅,申叔時僕曰,築室反耕者,宋必聽命,從之,宋人懼,使華元夜入楚師,登子反之床,起之曰,寡君使元以病告,曰,敝邑易子而食,析骸以爨。雖然,城下之盟,有以國斃,不能從也,去我三十里,唯命是聽,子反懼,與之盟,而告王。退三十里,宋及楚平,華元為質。盟曰:我無爾詐,爾無我虞。
潞子嬰兒之夫人,晉景公之姊也,酆舒為政而殺之,又傷潞子之目,晉侯將伐之,諸大夫皆曰,不可,酆舒有三雋才,不如待後之人,伯宗曰,必伐之,狄有五罪,雋才雖多,何補焉,不祀,一也,耆酒,二也,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虐我伯姬,四也,傷其君目,五也,怙其雋才,而不以茂德,茲益罪也,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而申固其命,若之何待之,不討有罪,曰,將待後,後有辭而討焉,毋乃不可乎,夫恃才與眾,亡之道也,商紂由之故滅,天反時為災,地反物為妖,民反德為亂,亂則妖災生,故文反正為乏,盡在狄矣,晉侯從之,六月,癸卯,晉荀林父敗赤狄于曲梁,辛亥,滅潞,酆舒奔衛,衛人歸諸晉,晉人殺之。
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卒立召襄。
秋,七月,秦桓公伐晉,次于輔氏,壬午,晉侯治兵于稷,以略狄土,立黎侯而還,及雒,魏顆敗秦師于輔氏,獲杜回,秦之力人也,初,魏武子有嬖妾,無子,武子疾,命顆曰,必嫁是,疾病則曰,必以為殉,及卒,顆嫁之,曰,疾病則亂,吾從其治也,及輔氏之役,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杜回躓而顛,故獲之,夜夢之曰,余,而所嫁婦人之父也,爾用先人之治命,余是以報。
晉侯賞桓子狄臣千室,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吾獲狄土,子之功也,微子,吾喪伯氏矣,羊舌職說是賞也,曰,《周書》所謂庸庸祗祗者,謂此物也夫,士伯庸中行伯,君信之,亦庸士伯,此之謂明德矣,文王所以造周,不是過也,故《詩》曰:陳錫哉周,能施也,率是道也,其何不濟。
晉侯使趙同,獻狄俘于周,不敬,劉康公曰,不及十年,原叔必有大咎,天奪之魄矣。
初,稅畝,非禮也,穀出不過藉,以豐財也。
冬蝝生,饑,幸之也。
《宣公十六年》
春秋:
十有六年,春,王正月,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
夏,成周宣榭火。
秋,郯伯姬來歸。
冬,大有年。
宣公十六年:
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三月,獻狄俘晉侯,請于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為大傅,於是晉國之盜,逃奔于秦,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夏,成周宣榭火,人火之也,凡火,人火曰火,天火曰災。
秋,郯伯姬來歸,出也。
為毛召之難故,王室復亂,王孫蘇奔晉,晉人復之。
冬,晉侯使士會平王室,定王享之,原襄公相禮,殽烝,武子私問其故,王聞之,召武子曰,季氏,而弗聞乎,王享有體薦,晏有折俎,公當享,卿當宴,王室之禮也,武子歸而講求典禮,以脩晉國之法。
《宣公十七年》
春秋:
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許男錫我卒,丁未,蔡侯申卒。
夏,葬許昭公,葬蔡文公。六月,癸卯,日有食之。己未,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
秋,公至自會。
冬,十有一月,壬午,公弟叔肸卒。
宣公十七年:
十七年,春,晉侯使郤克徵會于齊,齊頃公帷婦人使觀之,郤子登,婦人笑於房。獻子怒,出而誓曰:“所不此報,無能涉河。”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于齊,曰,不得齊事,無復命矣,郤子至,請伐齊,晉侯弗許,請以其私屬,又弗許,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及斂盂,高固逃歸,
夏,會于斷道,討貳也,盟于卷楚,辭齊人,晉人執晏弱于野王,執蔡朝于原,執南郭偃于溫,苗賁皇使,見晏桓子,歸言於晉侯曰,夫晏子何罪,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舉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齊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左右或沮之,曰,君不出,必執吾使,故高子及斂盂而逃,夫三子者曰,若絕君好,寧歸死焉,為是犯難而來,吾若善逆彼,以懷來者,吾又執之,以信齊沮,吾不既過矣乎,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晉人緩之,逸。
秋,八月,晉師還。
范武子將老,召文子曰,燮乎,吾聞之,喜怒以類者鮮,易者實多,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君子之喜怒,以已亂也,弗已者,必益之,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不然,余懼其益之也,余將老,使郤子逞其志,庶有豸乎,爾從二三子,唯敬,乃請老,郤獻子為政。
冬,公弟叔肸卒,公母弟也,凡大子之母,弟公在曰公子,不在曰弟,凡稱弟,皆母弟也。
《宣公十八年》
春秋:
十有八年,春,晉侯,衛世子臧,伐齊。公伐杞。
夏,四月。
秋,七月,邾人戕鄫子于鄫。甲戌,楚子旅卒。公孫歸父如晉。
冬,十月,壬戌,公薨于路寢。歸父還自晉,至笙,遂奔齊。
宣公十八年:
十八年,春,晉侯,衛大子臧,伐齊,至于陽穀,齊侯會晉侯盟于繒,以公子彊為質于晉,晉師還,蔡朝,南郭偃,逃歸。
夏,公使如楚乞師,欲以伐齊。
秋,邾人戕鄫子于鄫,凡自虐其君曰弒,自外曰戕。楚莊王卒,楚師不出,既而用晉師,楚於是乎有蜀之役。
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有寵,欲去三桓,以張公室,與公謀而聘于晉,欲以晉人去之,冬,公薨,季文子言於朝曰,使我殺適立庶,以失大援者,仲也夫,臧宣叔怒曰,當其時,不能治也,後之人何罪,子欲去之,許請去之,遂逐東門氏,子家還及笙,壇帷,復命於介,既復命,袒括髮,即位哭,三踊而出,遂奔齊,書曰,歸父還自晉,善之也。
左氏傳 (좌씨전) 左丘明 (좌구명)
左氏傳(좌씨전) 左丘明(좌구명)
異名:
左氏传(Zuǒshìchuán),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 左, 春秋傳
중국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左丘明(좌구명)'이 해석한 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이라고도 한다. BC 722∼BC 481년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국어(國語)'와 자매편이다. '춘추'와는 성질이 다른 별개의 저서로서,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과 함께 3전(三傳)의 하나이다. 원본은 전국시대에 되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 유흠(劉歆) 일파가 편찬한 것이다. 다른 2전(二傳)이 경문(經文)의 사구(辭句)에 대한 필법(筆法)을 설명한 것에 비하여 이 책은 경문에서 독립된 역사적인 이야기와 문장의 교묘함 및 인물묘사의 정확이라는 점 등에서 문학작품으로도 뛰어나 고전문의 모범이 된다.
구성 및 고사성어
01 隱公
02 桓公
03 莊公
04 閔公
05 僖公
06 文公
07 宣公(선공)
宣公三年 ∥ 魑魅魍魎(이매망량) |
08 成公
09 襄公
10 昭公
11 定公
12 哀公
참조
春秋(춘추) |
異名:
左氏传(Zuǒshìchuán),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 左, 春秋傳
중국 공자(孔子)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左丘明(좌구명)'이 해석한 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좌전(左傳)'이라고도 한다. BC 722∼BC 481년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국어(國語)'와 자매편이다. '춘추'와는 성질이 다른 별개의 저서로서,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과 함께 3전(三傳)의 하나이다. 원본은 전국시대에 되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전한(前漢) 말기 유흠(劉歆) 일파가 편찬한 것이다. 다른 2전(二傳)이 경문(經文)의 사구(辭句)에 대한 필법(筆法)을 설명한 것에 비하여 이 책은 경문에서 독립된 역사적인 이야기와 문장의 교묘함 및 인물묘사의 정확이라는 점 등에서 문학작품으로도 뛰어나 고전문의 모범이 된다.
구성 및 고사성어
01 隱公
02 桓公
03 莊公
04 閔公
05 僖公
06 文公
07 宣公(선공)
宣公三年 ∥ 魑魅魍魎(이매망량) |
08 成公
09 襄公
10 昭公
11 定公
12 哀公
참조
春秋(춘추) |
魑魅魍魎 (이매망량, chīmèiwǎngliǎng)
魑魅魍魎(이매망량)
魑魅魍魉(chīmèiwǎngliǎng)
魑 도깨비 리,도깨비 이 | 魅 매혹할 매,도깨비 매,도깨비 미 | 魍 도깨비 망 | 魎 도깨비 량,도깨비 양 |
산 속의 요괴와 물 속의 괴물 등 온갖 도깨비·요괴·귀신·괴물 등을 총칭하는 말로 나쁜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매는 산 속의 요괴, 망량은 물 속의 괴물을 말하는데, 이들이 합쳐져 온갖 도깨비를 지칭하는 하나의 성어(成語)가 되었다. 《좌씨전(左氏傳)》의 '선공(宣公) 3년' 조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주(周)나라의 대부(大夫) 왕손만(王孫滿)에게 주나라 왕실이 지닌 정(鼎: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은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장왕은 주나라가 정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쇠락하였으므로 자신이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속셈을 품고 있었다. 왕손만은 장왕의 속셈을 간파하고 정의 크기와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德)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문정지대소경중(問鼎之大小輕重)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왕손만은 정의 용도에 대하여 "거기에 온갖 사물을 새겨 놓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운 것과 간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물에 들어가거나 산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피할 수 있고, 이매망량 같은 귀신 도깨비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奸, 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 魑魅魍魎, 莫能逢之)"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매망량은 요괴와 괴물 등 온갖 도깨비를 뜻하는 원래의 의미 외에 그러한 요괴와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가지각색의 악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左氏傳(좌씨전):宣公(선공):三年(3년) |
관련 한자어
참조어
問鼎之大小輕重(문정지대소경중) |
좌씨전, 좌씨전:선공
左氏傳, 左氏傳:宣公
魑魅魍魉(chīmèiwǎngliǎng)
魑 도깨비 리,도깨비 이 | 魅 매혹할 매,도깨비 매,도깨비 미 | 魍 도깨비 망 | 魎 도깨비 량,도깨비 양 |
산 속의 요괴와 물 속의 괴물 등 온갖 도깨비·요괴·귀신·괴물 등을 총칭하는 말로 나쁜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매는 산 속의 요괴, 망량은 물 속의 괴물을 말하는데, 이들이 합쳐져 온갖 도깨비를 지칭하는 하나의 성어(成語)가 되었다. 《좌씨전(左氏傳)》의 '선공(宣公) 3년' 조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주(周)나라의 대부(大夫) 왕손만(王孫滿)에게 주나라 왕실이 지닌 정(鼎:솥)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은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장왕은 주나라가 정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쇠락하였으므로 자신이 그것을 차지하겠다는 속셈을 품고 있었다. 왕손만은 장왕의 속셈을 간파하고 정의 크기와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덕(德)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문정지대소경중(問鼎之大小輕重)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왕손만은 정의 용도에 대하여 "거기에 온갖 사물을 새겨 놓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운 것과 간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물에 들어가거나 산에 들어가서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피할 수 있고, 이매망량 같은 귀신 도깨비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奸, 故民入川澤山林不逢不若, 魑魅魍魎, 莫能逢之)"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이매망량은 요괴와 괴물 등 온갖 도깨비를 뜻하는 원래의 의미 외에 그러한 요괴와 괴물처럼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가지각색의 악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左氏傳(좌씨전):宣公(선공):三年(3년) |
관련 한자어
참조어
問鼎之大小輕重(문정지대소경중) |
좌씨전, 좌씨전:선공
左氏傳, 左氏傳:宣公
一國三公 (일국삼공)
一國三公(일국삼공)
一 한 일 | 國 나라 국 | 三 석 삼 | 公 공평할 공 |
한 나라에 삼공이 있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하여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춘추좌전 희공(僖公) 5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군주인 헌공(獻公)은 여희(驪姬)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희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헌공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태자인 신생(申生)을 모함하였다. 이에 신생은 자살하였고, 헌공의 또 다른 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각각 포(蒲) 땅과 굴(屈) 땅으로 피신하였다.
헌공은 대부(大夫)인 사위(士蔿)를 시켜 중이와 이오를 위하여 성을 쌓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사위는 땔나무를 써서 대충대충 성을 쌓았다. 그의 축성작업에 불만을 품은 이오는 헌공에게 호소하였다. 크게 노한 헌공의 문책에 사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에 상(喪)을 당하지 않고서 슬퍼하면 반드시 근심거리가 닥쳐오고, 전쟁이 없는데도 성을 쌓으면 그 성은 적군에게 이용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견고하게 쌓아 훗날 적에게 진지로 이용당한다면, 이는 곧 불충(不忠)의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실하게 쌓는다면 이는 임금에 대한 불경(不敬)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불충불경의 죄를 범하였으니 어떻게 해야합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덕을 생각하면 나라가 안녕하고, 적장자는 성과 같네'라고 하였습니다. 임금께서 덕을 닦고 적장자를 굳건히 하시면 어떤 성이 이보다 튼튼하겠습니까?"
그는 집에 돌아와서 여우가죽 옷 갈래갈래 찢어지듯, 한 나라에 세 임금 있으니, 내 누구를 따라야 할꼬[狐 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라는 시를 읊었다. 여기서 삼공은 헌공과 두 공자, 중이와 이오를 가리키며, 명령을 받들어야 할 윗사람이 많은 것을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에 여우털이 난잡한 모양에 비유한 것이다.
一國三公이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一 한 일 | 國 나라 국 | 三 석 삼 | 公 공평할 공 |
한 나라에 삼공이 있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하여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춘추좌전 희공(僖公) 5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군주인 헌공(獻公)은 여희(驪姬)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희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헌공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태자인 신생(申生)을 모함하였다. 이에 신생은 자살하였고, 헌공의 또 다른 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각각 포(蒲) 땅과 굴(屈) 땅으로 피신하였다.
헌공은 대부(大夫)인 사위(士蔿)를 시켜 중이와 이오를 위하여 성을 쌓도록 하였다. 명을 받은 사위는 땔나무를 써서 대충대충 성을 쌓았다. 그의 축성작업에 불만을 품은 이오는 헌공에게 호소하였다. 크게 노한 헌공의 문책에 사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에 상(喪)을 당하지 않고서 슬퍼하면 반드시 근심거리가 닥쳐오고, 전쟁이 없는데도 성을 쌓으면 그 성은 적군에게 이용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견고하게 쌓아 훗날 적에게 진지로 이용당한다면, 이는 곧 불충(不忠)의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실하게 쌓는다면 이는 임금에 대한 불경(不敬)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불충불경의 죄를 범하였으니 어떻게 해야합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덕을 생각하면 나라가 안녕하고, 적장자는 성과 같네'라고 하였습니다. 임금께서 덕을 닦고 적장자를 굳건히 하시면 어떤 성이 이보다 튼튼하겠습니까?"
그는 집에 돌아와서 여우가죽 옷 갈래갈래 찢어지듯, 한 나라에 세 임금 있으니, 내 누구를 따라야 할꼬[狐 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라는 시를 읊었다. 여기서 삼공은 헌공과 두 공자, 중이와 이오를 가리키며, 명령을 받들어야 할 윗사람이 많은 것을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에 여우털이 난잡한 모양에 비유한 것이다.
一國三公이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欲蓋彌彰 (욕개미창)
欲蓋彌彰(욕개미창)
欲 하고자 할 욕 | 蓋 덮을 개 | 彌 널리 미 | 彰 밝힐 창 |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잘못을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드러나게 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좌씨전(左氏傳)》에서 유래되었다.
공자는 《춘추》에서 노(魯)나라 소공(昭公) 31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 가운데 "겨울에 흑굉이 남 땅을 가지고 투항하였다(冬, 黑肱以濫來奔)"라는 구절이 있다. 주나라의 대부 흑굉이 노나라에 항복함으로써 그가 다스리던 남 땅도 노나라의 영토가 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좌씨전》은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춘추》의 필법에 따르면 원래 흑굉처럼 지위가 낮은 사람과 자잘한 일들은 기록하지 않지만, 이 일이 기록된 것은 노나라의 영토가 변동된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이름이 나더라도 나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있다. 땅을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에 대하여는 그 사람의 지위가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과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여야 한다. 이는 불의를 행한 기록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움직일 때 예를 생각하고, 이익을 위하여 어긋나지 않으며, 의로움에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이는 명성을 추구하였으나 기록하지 않고, 어떤 이는 잘못을 덮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였으니, 이는 불의한 사람을 징벌하기 위함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의롭지 않은 일이나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은 흑굉처럼 지위가 낮더라도 후세에 교훈을 삼기 위하여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소공 31년' 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욕개미창은 허물은 감출수록 더욱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欲 하고자 할 욕 | 蓋 덮을 개 | 彌 널리 미 | 彰 밝힐 창 |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잘못을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드러나게 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좌씨전(左氏傳)》에서 유래되었다.
공자는 《춘추》에서 노(魯)나라 소공(昭公) 31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 가운데 "겨울에 흑굉이 남 땅을 가지고 투항하였다(冬, 黑肱以濫來奔)"라는 구절이 있다. 주나라의 대부 흑굉이 노나라에 항복함으로써 그가 다스리던 남 땅도 노나라의 영토가 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좌씨전》은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춘추》의 필법에 따르면 원래 흑굉처럼 지위가 낮은 사람과 자잘한 일들은 기록하지 않지만, 이 일이 기록된 것은 노나라의 영토가 변동된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이름이 나더라도 나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있다. 땅을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에 대하여는 그 사람의 지위가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과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여야 한다. 이는 불의를 행한 기록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움직일 때 예를 생각하고, 이익을 위하여 어긋나지 않으며, 의로움에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이는 명성을 추구하였으나 기록하지 않고, 어떤 이는 잘못을 덮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였으니, 이는 불의한 사람을 징벌하기 위함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의롭지 않은 일이나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은 흑굉처럼 지위가 낮더라도 후세에 교훈을 삼기 위하여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소공 31년' 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욕개미창은 허물은 감출수록 더욱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玩火自焚 (완화자분)
玩火自焚(완화자분)
玩火自焚 [wánhuǒzìfén]
玩 희롱할 완, 가지고 놀 완 | 火 불 화 | 自 스스로 자 | 焚 불사를 분 |
불을 가지고 놀다가 자신을 태워 버린다는 뜻으로,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됨.
Somebody who plays with fire will get burnt, (fig.) One venturing to do evil is bound to suffer from his own evil.
춘추좌전 은공(隱公) 4년조에는 무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기록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군주인 장공(莊公)의 첩이 아들을 낳자 이름을 주우라고 하였다. 주우는 어려서부터 장공의 총애를 받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무력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장공이 죽자 환공(桓公)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위(衛)나라의 공자(孔子) 주우는 기원전 719년 환공(桓公)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를 찬탈했다. 주우는 왕위를 찬탈한 후 송(宋)나라와 진(陳)나라, 채(蔡)나라 등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노(魯)나라 은공(隱公)이 이 소식을 듣고 대부(大夫) 중중(衆仲)에게 주우가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중중은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주우는 무력만을 믿고 잔인(殘忍)한 짓을 하면서도 태연합니다만, 무력에 의지했다간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심복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무력이란 불과 같은 것이어서, 단속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이 그 불속에서 타게 될 것입니다. [夫兵, 猶火也. 弗 , 將自焚也]"
玩火自焚이란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로 이러한 노(魯)나라 중중(衆仲)의 말에서 유래(由來)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玩火自焚 [wánhuǒzìfén]
玩 희롱할 완, 가지고 놀 완 | 火 불 화 | 自 스스로 자 | 焚 불사를 분 |
불을 가지고 놀다가 자신을 태워 버린다는 뜻으로,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됨.
Somebody who plays with fire will get burnt, (fig.) One venturing to do evil is bound to suffer from his own evil.
춘추좌전 은공(隱公) 4년조에는 무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기록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군주인 장공(莊公)의 첩이 아들을 낳자 이름을 주우라고 하였다. 주우는 어려서부터 장공의 총애를 받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무력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장공이 죽자 환공(桓公)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위(衛)나라의 공자(孔子) 주우는 기원전 719년 환공(桓公)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를 찬탈했다. 주우는 왕위를 찬탈한 후 송(宋)나라와 진(陳)나라, 채(蔡)나라 등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노(魯)나라 은공(隱公)이 이 소식을 듣고 대부(大夫) 중중(衆仲)에게 주우가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중중은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주우는 무력만을 믿고 잔인(殘忍)한 짓을 하면서도 태연합니다만, 무력에 의지했다간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심복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무력이란 불과 같은 것이어서, 단속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이 그 불속에서 타게 될 것입니다. [夫兵, 猶火也. 弗 , 將自焚也]"
玩火自焚이란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로 이러한 노(魯)나라 중중(衆仲)의 말에서 유래(由來)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食指動 (식지동)
食指動(식지동)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心腹之患 (심복지환, xīnfùzhīhuàn)
心腹之患(심복지환)
心腹之患(xīnfùzhīhuàn)
心 마음 심 | 腹 배 복 | 之 갈 지 | 患 근심 환 |
'가슴이나 배에 생긴 병'이라는 뜻으로, 쉽게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 또는 없애기 어려운 근심이나 병폐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좌씨전(左氏傳)》과 《후한서(後漢書)》 등에서 유래되었다.
심복지질(心腹之疾) 또는 복심지질(腹心之疾)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에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과 싸우다 상처를 입어 죽었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군사력을 키워 월나라를 정벌함으로써 아버지의 원한을 갚았다. 부차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구천이 신하들을 이끌고 와서 부차와 대신들에게 재물을 바쳤으므로, 오나라 대신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나 오자서(伍子胥)만은 월나라의 그러한 행동이 오나라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려는 속셈임을 간파하였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제나라는 우리에게 쓸모없는 자갈밭과 마찬가지이니 공격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월나라는 우리에게 가슴이나 배에 생긴 질병과 같은 존재입니다(越在我, 心腹之疾也). 월나라가 지금은 겉으로 복종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를 집어삼킬 계책을 도모하고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 빨리 월나라를 멸하여 후환을 없애지 않고, 도리어 제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부차는 이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오나라는 나중에 월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애공(哀公) 11년'조(條)에 실려 있다.
또 《후한서》의 〈진번전(陳蕃傳)〉에 "나라 밖에 왜구나 도적이 있는 것은 사지에 든 병과 같지만, 나라 안의 정치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가슴이나 배에 생긴 병과 같다(寇賊在外, 四支之疾, 內政不理, 心腹之疾也)"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심복지환은 몸 속의 가슴이나 배에 생긴 질병처럼 없애기 어려운 근심거리나 병폐, 환란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左氏傳(좌씨전):哀公(애공) 11년 | 後漢書(후한서):陳蕃傳(진번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心腹之疾(심복지질) | 腹心之疾(복심지질) |
참조어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掘墓鞭屍(굴묘편시) |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좌씨전, 좌씨전:애공, 후한서, 후한서:진번전, 사기, 사기:오자서열전
左氏傳, 左氏傳:哀公, 後漢書, 後漢書:陳蕃傳, 史記, 史記:伍子胥列傳
心腹之患(xīnfùzhīhuàn)
心 마음 심 | 腹 배 복 | 之 갈 지 | 患 근심 환 |
'가슴이나 배에 생긴 병'이라는 뜻으로, 쉽게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 또는 없애기 어려운 근심이나 병폐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좌씨전(左氏傳)》과 《후한서(後漢書)》 등에서 유래되었다.
심복지질(心腹之疾) 또는 복심지질(腹心之疾)이라고도 한다. 춘추시대에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과 싸우다 상처를 입어 죽었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군사력을 키워 월나라를 정벌함으로써 아버지의 원한을 갚았다. 부차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구천이 신하들을 이끌고 와서 부차와 대신들에게 재물을 바쳤으므로, 오나라 대신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나 오자서(伍子胥)만은 월나라의 그러한 행동이 오나라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려는 속셈임을 간파하였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제나라는 우리에게 쓸모없는 자갈밭과 마찬가지이니 공격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월나라는 우리에게 가슴이나 배에 생긴 질병과 같은 존재입니다(越在我, 心腹之疾也). 월나라가 지금은 겉으로 복종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를 집어삼킬 계책을 도모하고 있을 것입니다. 왕께서 빨리 월나라를 멸하여 후환을 없애지 않고, 도리어 제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부차는 이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오나라는 나중에 월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애공(哀公) 11년'조(條)에 실려 있다.
또 《후한서》의 〈진번전(陳蕃傳)〉에 "나라 밖에 왜구나 도적이 있는 것은 사지에 든 병과 같지만, 나라 안의 정치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가슴이나 배에 생긴 병과 같다(寇賊在外, 四支之疾, 內政不理, 心腹之疾也)"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심복지환은 몸 속의 가슴이나 배에 생긴 질병처럼 없애기 어려운 근심거리나 병폐, 환란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左氏傳(좌씨전):哀公(애공) 11년 | 後漢書(후한서):陳蕃傳(진번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心腹之疾(심복지질) | 腹心之疾(복심지질) |
참조어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掘墓鞭屍(굴묘편시) |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좌씨전, 좌씨전:애공, 후한서, 후한서:진번전, 사기, 사기:오자서열전
左氏傳, 左氏傳:哀公, 後漢書, 後漢書:陳蕃傳, 史記, 史記:伍子胥列傳
問鼎之大小輕重焉 (문정지대소경중언)
問鼎之大小輕重焉(문정지대소경중언)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말로 어떤 직위에 있는 인물의 자격을 묻고 퇴임을 압박한다는 말. 줄여서 문정(問鼎) 또는 문정경중(問鼎輕重)이라고도 함.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말로 어떤 직위에 있는 인물의 자격을 묻고 퇴임을 압박한다는 말. 줄여서 문정(問鼎) 또는 문정경중(問鼎輕重)이라고도 함.
大義滅親 (대의멸친)
大義滅親(대의멸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말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정같은 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때는 춘추시대. 衛(위)나라 公子(공자)인 주우가 임금인 桓公(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형제간인데 둘 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위나라 대부 석작은 충의지사로 이름난 사람으로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石厚(석후)가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이 왕위에 오르자 은퇴했지만 그가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이 성공하자 석후는 아버지인 석작에게 어떻게 하면 주우의 왕위를 굳힐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석작은 周(주)나라 天子(천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주나라 왕실과 친한 진공을 통해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陳公(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주군을 시해한 이 두사람을 잡아 처치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위나라 책임자의 입회를 기다려 사형에 처해졌다. 석작은 君臣(군신)의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린 것이다.
대의멸친과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성어로 滅私奉公(멸사봉공)과 先公後私(선공후사)가 있다.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말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정같은 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때는 춘추시대. 衛(위)나라 公子(공자)인 주우가 임금인 桓公(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형제간인데 둘 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위나라 대부 석작은 충의지사로 이름난 사람으로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石厚(석후)가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이 왕위에 오르자 은퇴했지만 그가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이 성공하자 석후는 아버지인 석작에게 어떻게 하면 주우의 왕위를 굳힐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석작은 周(주)나라 天子(천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주나라 왕실과 친한 진공을 통해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陳公(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주군을 시해한 이 두사람을 잡아 처치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위나라 책임자의 입회를 기다려 사형에 처해졌다. 석작은 君臣(군신)의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린 것이다.
대의멸친과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성어로 滅私奉公(멸사봉공)과 先公後私(선공후사)가 있다.
各自爲政 (각자위정)
各自爲政(각자위정)
各 각각 각 | 自 스스로 자 | 爲 하 위, 할 위 | 政 정사 정, 칠 정 |
저마다 스스로 정치(政治)를 한다는 뜻으로, 각각(各各)의 사람들이 자기(自己) 마음대로 한다면 전체(全體)와의 조화(調和)나 타인(他人)과의 협력(協力)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를 다룬 역사서 《좌씨전(左氏傳)》 평전(評傳)에 있는 글이다.
좌씨전(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즉시 출병했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말했다.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그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군자들의 혹평처럼 양짐은 ‘그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나라를 패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게 만든(以其私憾 敗國殄民)’ 것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아집이 강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지 못해 결국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게 만든 것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各 각각 각 | 自 스스로 자 | 爲 하 위, 할 위 | 政 정사 정, 칠 정 |
저마다 스스로 정치(政治)를 한다는 뜻으로, 각각(各各)의 사람들이 자기(自己) 마음대로 한다면 전체(全體)와의 조화(調和)나 타인(他人)과의 협력(協力)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를 다룬 역사서 《좌씨전(左氏傳)》 평전(評傳)에 있는 글이다.
좌씨전(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즉시 출병했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말했다.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그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군자들의 혹평처럼 양짐은 ‘그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나라를 패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게 만든(以其私憾 敗國殄民)’ 것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아집이 강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지 못해 결국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게 만든 것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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