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號巨闕 (검호거궐)

劍號巨闕(검호거궐)

劍 칼 검 | 號 이름 호, 부르짖을 호 | 巨 클 거, 어찌 거 | 闕 대궐 궐 |

칼 중 에서는 거궐이 으뜸으로 불리웠다.

거궐(巨闕)은 칼 이름이고, 구야자가 지은 보검(寶劍)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據虛博影 (거허박영)

據虛博影(거허박영)

어찌할수 없는 것


束手無策

乞骸骨 (걸해골)

乞骸骨(걸해골)

乞骸라고도 함. 老臣이나 관리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할 때 쓰는 말

居之中天 (거지중천)

居之中天(거지중천)

텅빈 공간

擧族一致 (거족일치)

擧族一致(거족일치)

온 겨레의 뜻과 힘이 함께 뭉쳐 한결같음

車載斗量 (거재두량)

車載斗量(거재두량)

차에 싣고 말로 셀 만큼 물건이 흔하거나 많음.

去者日疎 (거자일소)

去者日疎(거자일소)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진다는 말. 아무리 슬픈 死別(사별)을 했더라도 죽은 사람은 날이 감에 따라 차차 잊혀지고 절친한 사이였던 사람도 일단 멀리 떠나면 점차 疎遠(소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去者日疎(거자일소)는 文選(문선)의 雜詩(잡시)항목에 실려 있는 작자미상의 시 첫대목에 나오는 구절. 시 전체는 인생의 무상을 읊어 읽는 사람을 공감으로 이끌면서 서글픔을 자아낸다.

去者日以疎․거자일이소
來者日以親․내자일이친
出郭門直視․출곽문직시
但見丘與墳․단견구여분

古墓爲田․고묘여위전
松柏爲薪․송백최위신
白楊多悲風․백양다비풍
蕭蕭愁殺人․소소수살인

思還故里閭․사환고리려
欲歸道無因․욕귀도무인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지네
성문을 나서 곧바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언덕과 무덤뿐이네

옛 무덤은 뭉개져서 밭이 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베어져 장작이 되었네
사시나무엔 슬픈 바람이 휘몰아쳐
쓸쓸히 사람의 애간장을 끊는구나

고향 마을에 돌아가려 마음 먹어보지만
돌아가본들 의지할 데라고는 없을테지

去者不追來者不拒 (거자불추내자불거)

去者不追來者不拒(거자불추내자불거)

去 갈 거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追 따를 추 | 來 올 래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拒 막을 거


가는 사람 붙들지 말고 오는 사람 뿌리치지 말라는 뜻.

이 말을 풀어서 “거자(去者)를 불추(不追)하고 내자(來者)를 불거(不拒)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자의 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말은 '맹자'에 있는 말이 쉬운 글자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맹자 진심편 하(盡心篇下)'에는 거(去) 대신 왕(往)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이 왕(往)에는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을 뜻하는 예가 많아 거(去)로 바뀌어 일반화된 듯하다.

擧日反三 (거일반삼)

擧日反三(거일반삼)

한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居移氣養移體 (거이기양이체)

居移氣養移體(거이기양이체)

사람은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는 뜻.

擧措失當 (거조실당)

擧措失當(거조실당)

擧 들 거 | 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 失 잃을 실, 놓을 일 | 當 마땅 당 |

모든 조치(措置)가 정당(正當)하지 않음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이야기다.

진시황 26년, 즉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6국을 멸하고 천하(天下)를 통일했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했다. 이듬해, 진시황은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천하(天下)를 돌기 시작했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태산(泰山)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낭야대를 쌓고,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功德)과 진(秦)나라 왕조의 덕정(德政)을 담은 비문(碑文)을 새겼다.

다음은 비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진시황께서는 백성(百姓)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석(朝夕)으로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百姓)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 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容易)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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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一反三 (거일반삼)

擧一反三(거일반삼)

擧 들 거 | 一 한 일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三 석 삼 |

한 가지를 들어서 세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매우 영리(怜悧ㆍ伶俐)함을 이르는 말


원래는 한 귀퉁이를 가리키면 나머지 세 귀퉁이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한 가지를 가르치면 세 가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거나 지혜가 있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가 말하였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릴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隅三 則不復也)."

공자는, 하나를 일러 주었음에도 나머지 셋을 미루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소용이 없고, 다만 그 셋을 알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거일반삼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와 같이 영리한 사람을 뜻하는 말에 '문일지십(聞一知十)'이 있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는데, 이 말은 '쇠귀에 경읽기'라는 뜻이다.


출전

論語(논어) 述而篇(술이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문일지십(聞一知十) |

반의어·상대어

우이독경(牛耳讀經)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鉅野洞庭 (거야동정)

鉅野洞庭(거야동정)

鉅 클 거 | 野 들 야 | 洞 골 동, 꿰뚫을 통 | 庭 뜰 정 |

거야(鋸野)는 태산(泰山) 동편에 있는 광야(廣野), 동정(洞庭)은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중국(中國) 제1(第一)의 호수(湖水)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居安思危 (거안사위)

居安思危(거안사위)

편안할 때에도 닥칠지 모를 위태로움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居安思危(거안사위) | 安不忘危(안불망위) |

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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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世皆濁 (거세개탁)

擧世皆濁(거세개탁)

擧 들 거 | 世 세상 세 | 皆 다 개 | 濁 흐릴 탁 |

온 세상이 다 흐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

'거세개탁'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漁父辭(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車水馬龍(거수마룡)

車水馬龍(거수마룡)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흐르는 물이나 길게 늘어진 용처럼 거마의 왕래가 잦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행차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한나라 명제의 비인 마후는 후한(後漢)의 장군 마원(馬援)의 딸로서 명제의 아들인 장제 때 황태후가 되었다. 장제는 마후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으나 황태후를 존중하고 마후의 외삼촌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는데, 간사한 신하들은 동의했으나 마후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후는 장제에게 "친정에 가니 외삼촌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하인들도 내 마부에 비길 수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얼마나 많은지 '수레는 물흐르는 듯하였으며 말은 용이 헤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車如流水馬如遊龍].' 그들의 사치함을 깨우쳐주지는 못하고 어찌 관작을 내리려고 합니까?"하고 말하였다.

마후의 말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수많은 수레와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면서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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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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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車水馬龍 (거수마용)

車水馬龍(거수마용)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후한서(後漢書) 명덕마황후기(明德馬皇后紀)에 실린 이야기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죽자 태자 유장(劉莊)이 보위를 이으니, 그가 곧 2대 황제인 명제(明帝)다. 동한(東漢)의 명장(名將)인 마원(馬援)의 딸은 한나라 명제(明帝)의 비(妃)로 뽑혀 입궁하였다가 얼마후에는 후(后)의 자리에 올랐다.

마황후는 어질고 덕성스런 여자였다. 명색이 황후이면서도 옷차림이나 생활 태도가 극히 검소하고, 상하 구별을 두지 않고 인자하게 대했으므로 사람들의 경모와 칭송이 자자했다.

마황후의 한 가지 흠결이라면 아들을 못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제는 후궁인 고씨(賈氏)한테서 난 아들을 태자로 삼아 마황후로 하여금 기르도록 했는데, 그녀는 이 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길렀다. 태자 역시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여겨 효행이 지극했다.

명제는 제위 18년 만에 죽고, 태자가 보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3대 황제 장제(章帝)다. 따라서 마황후는 자연히 황태후로 대궐의 가장 웃어른이 되어 권위가 막강했다.

일부 간신들은 황태후의 형제들을 제후에 봉해 줄 것을 황제에게 건의하여, 황태후에게 아부하려고 생각하였다. 이에 황태후 마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상(今上),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일찍이 광무 황제께서는 ‘후비(后妃)의 가족은 제후에 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셨지요. 그 뜻이 무엇이겠소? 황실 외척의 세력이 턱없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친정집에 인사차 찾아가는 손님들의 행렬을 보니, ‘수레는 흐르는 물 같고 말들은 늘어져 꿈틀대는 용처럼 보입디다[車如流水 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아부배들이 하는 소리는 절대 이 어미가 바라지도 허락하지도 않을 일이니 명심하세요.”

車水馬龍이란 권세있는 자에게 줄을 대보려는 아부꾼들의 차량 행렬을 묘사한 말이며, 수레들의 왕래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을 뜻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마후기(馬后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車如流水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

乞不竝行 (걸불병행)

乞不竝行(걸불병행)

구걸하는 사람은 같이 다니지 않는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청을 할때는 혼자서 가는 것이 이롭다는 뜻

乾木水生 (건목수생)

乾木水生(건목수생)

마른나무에서 물이 난다는 뜻.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무리하게 내라고 요구함을 비유한 말.

黔驢之技 (검려지기, Qiánlǘzhījì)

>黔驢之技(검려지기)

黔驴之技(Qiánlǘzhījì)

黔 검을 검,귀신 이름 금 | 驢 당나귀 려(여) | 之 갈 지 | 技 재주 기 |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


옛날 중국 검주(黔州:구이저우성의 별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나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이 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랐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수(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슬슬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나귀가 갑자기 소리 높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아무래도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였다. 호랑이는 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는 당나귀의 본성(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려 보았다.

그러자 당나귀는 화가 나서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다.

기술·기능이 졸렬함을 비유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가 보잘것없음을 모르고 나서거나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비유한 우화(寓話)로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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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戒(삼계) | 柳宗元(유종원) |

去頭截尾 (거두절미)

去頭截尾 (거두절미)

앞뒤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乾坤一擲 (건곤일척)

乾坤一擲

하늘 건 | 땅 곤 | 한 일 | 던질 척 |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루다. 곧 운명과 흥망을 걸고서 단번에 결판을 내는 것을 말한다.

唐(당)나라의 대문장가 韓愈(한유)가 鴻溝(홍구)를 건너다가 그 옛날 楚(초)나라 項羽(항우)와 漢(한)나라 劉邦(유방)이 이 江(강)을 경계로 하여 천하를 나누었던 일을 생각해내고 ‘홍구를 지나면서(過鴻溝)’란 七言絶句(칠언절구) 시 한 수를 읊었다. 홍구는 현재 河南省(하남성) 開封(개봉)서쪽을 흐르는 강.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용은 지치고 호랑이는 피곤하여 영토를 나누니
만천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데 누가 군왕의 말머리를 돌리도록 해서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 승부를 내게 했던고

첫 행의 용과 호랑이는 유방과 항우를 가리킨다.두 사람은 秦(진)나라를 무너뜨린 다음에는 서로가 천하를 독차지하려고 피나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진일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천하를 둘로 나누기로 하고 유방은 홍구에서 서쪽을, 항우는 동쪽을 차지하기로 했다.이렇게 되어 백성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두번째 행의 뜻.

셋째 행에서 유방의 말머리를 돌리게 한 사람은 참모 張良(장량)과 陳平(진평)이었다. 약속대로 항우는 동쪽으로 철수하고 유방도 철군하려하자 두 참모는 이렇게 진언했다. “지금 초나라 군사들은 지쳐있으며 식량도 떨어졌습니다. 초나라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이 말을 받아들여 서쪽으로 가려던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넷째 행대로 운명과 흥망을 건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승부로 천하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늘 | 땅 | 韓愈(한유) |

乾坤一色 (건곤일색)

乾坤一色(건곤일색)

하늘과 땅이 한 빛임

桀犬吠堯 (걸견폐요)

桀犬吠堯(걸견폐요)

桀犬吠尧(JiéquǎnfèiYáo)

桀 홰 걸,하왕 이름 걸 | 犬 개 견 | 吠 짖을 폐 | 堯 요임금 요 |


폭군 걸왕(桀王)의 개도 성왕(聖王) 요(堯)임금을 보면 짓는다는 뜻으로, 웃사람이 교만(驕慢)한 마음을 버리고 아랫 사람을 진심(眞心)과 믿음으로 대하면 아랫사람은 자기(自己) 상관(上官)에게 충성(忠誠)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이름


사기(史記) 노중련추양(魯仲連鄒陽)열전에는 한(漢)나라 경제(景帝)때의 유명한 학자인 추양(鄒陽)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처음에, 추양은 뛰어난 문장력과 언변을 가지고 오왕(吳王) 수하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오왕이 반란을 꾀하자, 그는 이를 따르지 않고 간언하는 글을 올렸다. 오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추양은 양(梁)나라 효왕(孝王)에게 귀순하였다.

그러나 효왕의 심복들은 추양의 재능을 시기하여, 효왕에게 그를 중상모략했다. 크게 노한 효왕은 추양을 구금하고 사형에 처하려 했다. 그는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효왕에게 글을 올려 모략당한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모두 충절지사였음을 말하고, 사실을 정확히 살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글에서 어진 선비에게 벼슬과 봉록을 베푼다면, 포악한 걸왕의 개라도 성왕(聖王)인 요임금에게 대들어 짖게 할 수 있다[傑之狗可使吠堯]라고 하였다. 양 효왕은 이 글에 매우 감동하여, 그를 석방하였다.

傑犬吠堯란, 하(夏)나라 폭군 걸왕이 부리는 개가 그의 명을 받고 요임금과 같은 성왕(聖王)에게도 짖고 덤벼드는 것처럼 자기가 섬기는 사람에게는 선악시비(善惡是非)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충성을 다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는 "도척(盜跖)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跖之狗吠堯)"고 되어 있다.

도척(盜跖)은 중국(中國) 춘추(春秋) 시대(時代)의 큰 도둑으로서 공자와 같은 시대(時代)의 노(魯)나라 사람이었다. 현인(賢人) 유 하혜의 아우로 그의 도당 9천명과 떼를 지어 전국(全國)을 휩쓸었다 전해진다.

결국 개는 주인만을 알아볼 뿐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며, 나아가서는 인간도 상대의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跖狗吠堯(척구폐요) |


史記:魯仲連鄒陽. 사기:노중련추양열전 | 史記:淮陰侯列傳, 사기:회음후열전 |

擧棋不定 (거기부정)

擧棋不定(거기부정)

擧 들 거 | 棋 바둑 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定 정할 정, 이마 정 |

바둑을 두는 데 포석(布石)할 자리를 결정(決定)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을 명확(明確)한 방침(方針)이나 계획(計劃)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의미(意味)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말기, 즉 기원전 548년 위(衛)나라 대부(大夫) 손임보(孫林父)와 영식 등은 위나라 헌공(獻公)을 축출하고, 그의 동생인 상공을 군주로 삼았다. 복귀하려는 계책을 세우던 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영식의 아들인 영희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돌아가서 위나라의 정무(政務)를 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영희는 매우 기뻐하며 곧 협조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숙문자(大叔文子)가 이 소문을 듣고, 영희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걱정하며 말했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종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도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 보기를 바둑 두는 일 같이도 여기지 않으니, 어찌 화를 면하랴! 바둑 돌을 들고 놓을 곳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데[弈者擧棋不定, 不勝其耦], 하물며 군주를 모시는 일에 주관이 없어서야?"

12년 후, 영희는 군주로 복귀한 헌공의 손에 죽었다.

擧棋不定이란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 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左傳˙襄公二十五年 |

成語“舉棋不定”出自春秋時期《左傳﹒襄公二十五年》:“弈者舉棋不定,不勝其耦。”
說的是下圍棋而舉棋不定,猶猶豫豫者無法取勝。
這也是現存中國曆史上最早關於圍棋的確切記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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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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