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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宗羲 (황종희, 1610~1695)

황종희(黃宗羲, 1610~1695)

중국 명말·청초의 사상가. 박람(博覽)과 실증(實證)을 존중하고, 청나라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명대의 철학사(哲學史)라고 할 《명유학안(明儒學案)》, 군주 독재제도를 통렬히 비판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명저(名著)로 알려졌다.


호 남뢰(南雷)·이주(梨洲). 자 태충(太沖). 저장성(浙江省) 위야오[餘姚]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존소(黃尊素)는 동림당(東林黨)의 명사로, 동림당 탄압 때 옥사하였다. 황종희는 숭정연간(崇禎年間:1628∼1644)에 당시의 문학적 결사 '복사(復社)'에 가맹하여 환관파(宦官派)를 배척하는 정치운동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의 젊은이 수백 명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하였고, 또한 명나라 유왕(遺王)인 노왕(魯王)을 따라 만주(滿洲)에서 청군(淸軍)에 저항하였다. 그뒤 고향에 돌아가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청나라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평생토록 이민족의 군주를 섬기지 않았으며, 명사(明史)의 편찬시에는 아들과 제자를 명사관(明史館)에 보내어 고국의 역사를 남기려고 힘썼다.

그의 학문은 박람(博覽)과 실증(實證)을 존중하고, 청나라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는데, 명대(明代)의 철학사(哲學史)라고 할 《명유학안(明儒學案)》, 군주 독재제도를 통렬히 비판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명저(名著)로 알려졌다. 특히 《명이대방록》은 청말(淸末) 혁명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

明夷待訪錄(명이대방록)

黃庭堅 (황정견, 1045~1105)

황정견 [黃庭堅, 1045~1105]

異名: 호 산곡, 자 노직
국적: 중국 송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홍주 분녕
주요저서: 《예장 황선생문집》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닌 중국 송나라의 시인 겸 화가. 지방관리를 역임하다 중앙관직에 취임, 교서랑(校書郞)이 되어 국사편찬(國史編纂)에 종사했다. 학식에 의한 전고(典故)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措辭)를 특색으로 한다.


자 노직(魯直), 호 산곡(山谷). 홍주(洪州:江西省) 분녕(分寧:修水縣) 출생. 1066년 진사(進士)에 급제한 후 국자감 교수(國子監敎授)를 거쳐 각지의 지방관리를 역임하였다. 1086년에 비로소 중앙관직에 취임, 교서랑(校書郞)이 되어 국사편찬(國史編纂)에 종사하였다. 1095년 왕안석(王安石)의 신법당(新法黨)이 부활됨과 동시에, 구법당(舊法黨)인 그는 신법을 비난하였다는 죄목으로 검주(黔州:四川省 彭水縣)에 유배되었다. 1100년에 사면 복직되었으나, 1102년에 다시 무고를 당하고 의주(宜州:廣西省宜山縣)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았으며, 스승인 소식(蘇軾:東坡)과 나란히 송대(宋代)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녔으며, 학식에 의한 전고(典故)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措辭)를 특색으로 한다. 강서파(江西派)의 시조로 꼽히며, 《예장 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30권)이 있다. 서(書)에서는 채양(蔡襄) ·소식 ·미불(米芾)과 함께 북송(北宋)의 4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글씨는 단정하지만 일종의 억양(抑揚)을 지녔으며, 활력있는 행초서(行草書)에 뛰어났다.

荒唐無稽 (황당무계)

荒唐無稽(황당무계)

말이나 행동이 너무나 허황되어 믿을 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