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호이반호이 (出乎爾反乎爾)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

出 날 출 | 乎 어조사 호 | 爾 너 이 | 反 되돌릴 반 | 乎 어조사 호 | 爾 너 이 |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앙경화복(殃慶禍福)이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말.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추(鄒)나라의 목공(穆公)이 노(魯)나라와의 전투 중에 백성들이 보여 준 비협조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맹자에게 "우리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울 때 상관이 서른세 명이나 죽었는데, 백성들은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상관이 죽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들을 모두 처벌하자니 수가 너무 많고, 그냥 두자니 윗사람 죽는 것을 미운 놈 바라보듯 할 것이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흉년이나 재난이 든 해에 늙은이와 어린이는 굶어 죽고 젊은 장정들은 사방으로 살길을 찾아 떠난 수가 몇천 명입니다. 그때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과 재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을 구제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직무에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죽게 만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증자(曾子)의 말을 인용하여 일깨우고 있다. "일찍이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네게서 나간 것은 네게로 돌아오는 것이니라[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제야 자기네들이 당했던 것을 되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들을 허물치 마십시오.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베푸신다면 백성들은 윗사람에게 친하게 대할 것이고 윗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맹자는 증자의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를 인용하여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두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임을 말하면서, 목공에게 백성들의 불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어진 정치를 베풀어 덕으로써 백성들을 감화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爾反爾(출이반이) |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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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推賢讓能 (추현양능)

推賢讓能(추현양능)

推 옮을 추 | 賢 어질 현 | 讓 사양할 양 | 能 능할 능 |

어진 사람이나 유능(有能)한 사람을 받들어 지위(地位)를 양보(讓步)해 준다는 뜻.


「주관(周官)」이란 「주나라의 관리」라는 뜻으로, 주나라 성왕(成王)이 조정의 관리들에게 훈시한 말을 사관이 기록하여 놓은 것이다. 다음은 인사(人事) 문제에 관한 훈계 중의 한 대목이다.

“ .... 지위(地位)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록(祿)이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사치해 진다. 공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속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답고, 거짓을 지으면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옹졸해 진다. 높은 지위에도 위태롭게 생각하여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어진 이를 밀어주고 능력 있는 이에게 관직을 양보하면, 모든 관리들이 화합할 것이다[推賢讓能, 庶官乃和]. 화합하지 못하면 정사(政事)는 어지러워질 것이고, 추천 받은 이가 그 직위를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대들의 능력이지만 추천 받은 자들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대들이 소임(所任)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

位不期驕,祿不期侈。恭儉惟德,無載爾偽。作德心逸日休,作偽心勞日拙。居寵思危,罔不惟畏,弗畏入畏。推賢讓能,庶官乃和,不和政厖。舉能其官,惟爾之能,稱匪其人,惟爾不任。


출전

서경 제4편 주서(周書) 제22장 주관(周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任賢使能(임현사능) | 任賢用能(임현용능) |

春風秋雨 (춘풍추우)

春風秋雨(춘풍추우)

春 봄 춘, 움직일 준 | 風 바람 풍 | 秋 가을 추, 밀치 추 | 雨 비 우 |

봄철에 부는 바람과 가을에 내리는 비. 곧 지나가는 세월을 가리키는 말.

秋風落葉 (추풍낙엽)

秋風落葉(추풍낙엽)

秋 가을 추, 밀치 추 | 風 바람 풍 | 落 떨어질 낙(락) | 葉 잎 엽, 땅 이름 섭, 책 접 |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落葉)이라는 뜻으로, 세력(勢力) 따위가 갑자기 기울거나 시듦을 이르는 말

春雉自鳴 (춘치자명)

春雉自鳴(춘치자명)

春 봄 춘, 움직일 준 | 雉 꿩 치, 짐승 이름 사, 땅 이름 이, 키 작을 개 | 自 스스로 자 | 鳴 울 명 |

봄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말로 ①묻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말을 발언함 ②제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어 화를 자초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自鳴得意(자명득의) | 春雉自鳴(춘치자명) |

반의어·상대어

自怨自艾(자원자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수양에 힘쓴다 |

春秋筆法 (춘추필법)

春秋筆法(춘추필법)

春 봄 춘, 움직일 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筆 붓 필 | 法 법 법 |

①5경의 하나인 『춘추(春秋)』와 같이 비판(批判)의 태도(態度)가 썩 엄정(嚴正)함을 이르는 말 ②대의 명분(名分)을 밝혀 세우는 사필(史筆)의 준엄(峻嚴)한 논법(論法)


이 말은 《춘추》의 문장에는 공자(孔子)의 역사비판이 나타나 있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의 경서(經書) 《춘추》와 같은 비판적인 태도로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명 '춘추직필(春秋直筆)'이라고도 한다.

《춘추》는 중국 고대의 사서(史書)로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초년(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기까지 12대 242년간의 연대기이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가 엮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나라 242년간의 사적에 대하여 간결한 사실(史實)을 적고, 선악을 논하고 대의명분을 밝혀 그것으로써 천하 후세의 존왕(尊王)의 길을 가르쳐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표현법이 '춘추의 필법'으로 일컬어졌으며, '춘추삼전(春秋三傳)'으로 불리는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좌씨전(左氏傳)》의 세 주석서가 바로 그것으로, 편년체(編年體) 서술의 시조로 평가된다.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노나라 태생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하극상과 약육강식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공자는 그 시대의 혼란상을 보면서 저마다 자기 직분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 부모는 부모,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말하여 각자의 직분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과거를 거울 삼아 기강이 무너진 천하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취지로 《춘추》를 집필하게 되었다. 사건을 기록하는 기사(記事),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 칭찬과 비난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의 원칙을 세워,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배격했으며,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집필하였다.

특히 선왕(先王)의 업적을 평가할 때에도 이 원칙은 예외없이 지켜졌다. 오직 정사(正史)를 기록한다는 신념으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 편년체의 효시인 《춘추》를 완성했다. 여기에서 비롯하여 대의명분을 좇아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준엄하게 기록하는 논법을 '춘추필법'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동호지필(董狐之筆)'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사관인 동호(董狐)가 당시의 사실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직필함을 일컫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董狐之筆(동호지필) |


참조

春秋(춘추) | 公羊傳(공양전) | 穀梁傳(곡량전) | 左氏傳(좌씨전) |

春秋左氏傳 (춘추좌씨전) 左丘明 (좌구명)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左丘明(좌구명)

異名:
左氏傳(좌씨전)


관련 한자성어

問鼎之大小輕重焉(문정지대소경중언)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말로 어떤 직위에 있는 인물의 자격을 묻고 퇴임을 압박한다는 말. 줄여서 문정(問鼎) 또는 문정경중(問鼎輕重)이라고도 함.
食指動(식지동)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大義滅親(대의멸친)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죽인다는 말로, 나라나 민족을 위한 일에 사사로운 정은 끊어야 한다는 뜻.

春秋穀梁傳 (춘추곡량전) 穀梁俶 (곡량숙)

春秋穀梁傳(춘추곡량전) 穀梁俶(곡량숙)

유교 경전의 하나인 《춘추(春秋)》의 해설서.


11권. 정식 명칭은 《춘추곡량전》이며, 곡량전이라고도 한다. 《공양전(公羊傳)》 《좌씨전(左氏傳)》과 함께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고 한다. 전국시대의 노(魯)나라 사람 곡량 숙(穀梁俶:자는 元始, 일명 赤)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책이 되어 나온 것은 《공양전》(한나라의 경제 때에 나옴)보다 뒤일 것이다.

해석하는 형태는 《공양전》과 거의 같아서 주관적인 해석이 많으나, 유가적(儒家的) 명분론(名分論)은 대체로 《공양전》보다 엄정(嚴正)하다. 한나라의 선제(宣帝) 때부터 성행하기 시작했으나, 《공양전》을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주석서로 《춘추곡량전주소(春秋穀梁傳註疏)》 및 청(淸)나라 종문증(鍾文烝)의 《곡량보정(穀梁補正)》이 유명하다.

春秋 (춘추) 孔子 (공자, Kǒngzǐ)

春秋(춘추) 孔子(공자,Kǒngzǐ)


春秋(Chūnqiū)


공자(孔子)가 편찬한 편년체의 역사서


춘추(春秋)는 공자가 다시 편찬한 노나라의 역사서이다. 그 필체가 매우 엄중하였으며, 맹자는 춘추가 지어지자 간신적자들이 떨었다고 할만큼 글 한자 한자에 엄중한 역사의 평가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매우 이해하기 어렵고, 대의 명분을 강조한 역사서이다. 춘추대의라 함은 춘추에서 내린 엄중한 대의명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춘추필법이라 하면 엄중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글쓰기 법이라는 뜻이다. 삼국지의 관우가 평생을 가지고 다니면서 익혔다고 하는 책이기도 하다. 춘추라는 책이름은 일년을 춘하추동으로 나누어 역사를 기록하였기에 나온 이름이다. 참고로 글자 한자 한자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기에 유교와 중국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만큼 어렵다. 모르고 읽으면 지겨울 만큼 간단한 역사기록일 뿐이지만 글자 한자한자에 담겨진 뜻을 알면 공자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에 얼마나 엄중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와 싸울때도 대의명분이 있는 전쟁과 아닌 전쟁을 구별하여 달리 표기하였다. 왕위에 오를 때도 정통성이 있는 왕과 아닌 왕을 구별하였다.


참조

四書五經(사서오경) | 左氏傳(좌씨전) |

墜茵落溷 (추인낙혼)

墜茵落溷(추인낙혼)

坠茵落溷(zhuìyīnluòhùn)

墜 떨어질 추 | 茵 자리 인 | 落 떨어질 락 | 溷 뒷간 혼 |


나뭇잎이 방석 위에도 떨어지고 똥통 위에도 떨어진다. 사람이 때를 잘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타혼표인(墮溷飄茵) 또는 추혼표인(墜溷飄茵)이라고도 한다. 중국 남조(南朝)시대에 범진(范縝)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경학(經學)에 능통하고 부귀와 권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성행하던 불교를 반대하여 남제(南齊)의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과 논쟁을 벌였다. 왕이 인과(因果)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사람의 삶을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하자면, 동시에 한 가지에서 피고 같은 꼭지에서 열리지만 바람이 불어 떨어질 때는 어떤 것은 주렴의 휘장에 스치어 방석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울타리 담장에 걸려 뒷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人之生譬如一樹花, 同發一枝, 俱開一蒂, 隨風而墮, 自有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방석 위에 떨어진 것은 전하와 같은 경우이고, 뒷간에 떨어진 것은 소관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귀하고 천함이 비록 길이 다르긴 하지만 여기에 과연 무슨 인과가 있겠습니까?"

곧, 왕은 때를 잘 만나 왕이 되었고, 자신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낮은 신분에 처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고사(故事)는 《양서》의 〈유림전·범진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추인낙혼은 때를 잘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나아가 사람의 운명에 따라 처지가 확 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동의어

墮溷飄茵(타혼표인) | 墜溷飄茵(추혼표인) |


Tag

양서 | 유림전·범진전 |

忠言逆耳 (충언역이)

忠言逆耳(충언역이)

忠言逆耳(zhōngyánnì'ěr)

忠 충성 충 | 言 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 | 逆 거스릴 역 | 耳 귀 이, 팔대째 손자 잉 |

좋은 말은 귀에 듣기 거슬림.

Candid advice that grates on the ear; honest exhortations may be unpleasant to the ear.

[출전]
공자가어(孔子家語), 史記(사기) 淮南王傳(회남왕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良藥苦口(양약고구) |

出爾反爾 (출이반이)

出爾反爾(출이반이)

出 날 출, 단락 척 | 爾 너 이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爾 너 이 |

자신(自身)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自身)에게로 돌아감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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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秋扇 (추선)

秋扇(추선)

가을철의 부채라는 뜻으로,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반첩여와 조비연(趙飛燕)은 중국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으로, 성제는 처음에는 반첩여를 매우 총애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비연에게로 사랑이 옮겨 갔다. 조비연은 혹시라도 성제의 마음이 반첩여에게 되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반첩여가 임금을 중상모략했다고 무고(誣告)하여 그녀를 옥에 가두게 했다. 나중에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의 처지는 그 옛날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때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장신궁(長信宮)에 머물면서 과거 임금의 사랑을 받던 일을 회상하고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쓸모없게 된 부채와 자신의 처지가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제목의 시를 짓게 되었다. 이 시는 중국 육조문화(六朝文化)를 대표하는 시문선집인 《문선(文選)》에 전해지는데, 거기에 ‘추선(秋扇)’이라는 말이 나온다.

새로 재단한 제(齊)나라의 흰 비단은/서리와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마름질하여 합환선(合歡扇)을 만드니/둥글기 명월 같구나/님의 품과 소매를 드나들며/움직일 때마다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문득 두려운 가을이 와/서늘한 바람은 더위를 빼앗으니/가을 부채(秋扇)는 장롱 깊이 버려져/은정(恩情)은 끊기는구나

여기서 ‘추선’은 임금의 총애를 잃은 반첩여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과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를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추선’은 ‘추풍지선(秋風之扇)’이라고도 한다.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春 봄 춘, 움직일 준 | 來 올 래(내) | 不 아닐 불, 아닐 부 | 似 닮을 사 | 春 봄 춘, 움직일 준 |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라는 뜻으로, 자신(自身)의 처지(處地)를 비관(悲觀)함. 전한시대 왕소군과 관련된 시구.


王昭君(왕소군)을 두고 지은 詩(시) 가운데 있는 글귀다. 왕소군은 前漢(전한) 元帝(원제)의 宮女(궁녀)로 이름은 嬙(장)이었고, 소군은 그의 字(자)였다. 그녀는 絶世(절세)의 美人(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和親(화친)정책에 의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不運(불운)한 여자였다. 그 여자를 두고 지은 동방규의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이 시구에서 ‘秋來不似秋(추래불사추)’, ‘冬來不似冬(동래불사동)’라는 말이 나왔다.


출전

동방규(東方叫)의 소군원(昭君怨)


관련 인물

왕소군(王昭君) |

築基堅礎 (축기견초)

築基堅礎(축기견초)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는 것에 앞서 집터부터 굳건히 다져 천년 세월에도 기울지 않는 집을 지어야 한다.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던 다산이 정당(政堂·고을의 정사를 살피는 집)을 지을 때 한 말.

出奇制勝 (출기제승)

出奇制勝(출기제승)

出 날 출, 단락 척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制 절제할 제/지을 제 | 勝 이길 승 |

기묘한 계략(計略)을 써서 승리함


사기(史記) 전단(田單)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민왕(湣王)은 교만하고 향락을 즐겨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웃한 연(燕)나라의 국왕은 대장군 악의(樂毅)에게 명하여 제나라를 격파하고 전국을 평정하였다. 도망한 민왕은 거성(거城)과 즉묵(卽墨)에서 몸을 보전하고 있었다. [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 已而保莒城.]

연나라의 대군이 즉묵성을 포위하자, 즉묵의 대부는 나와 싸우다가 죽었다. 이에 성안의 사람들은 민왕의 먼 친척인 전단을 장군으로 뽑았다. 잔단은 용병술이 뛰어났으므로 성을 막아낼 수 있었다. [燕引兵東圍即墨,即墨大夫出與戰,敗死. 城中相與推 田單,曰: 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習兵. 立以為將軍,以即墨距燕.]

그후 연나라의 소왕의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했다는 사실을 안 전단은 간첩을 보내어 악의와 혜왕을 이간질하였다. 그 결과 연왕은 악의 대신 기겁(騎劫)을 보냈다. 기겁의 학대를 받은 연나라 군대는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전단은 이 틈을 노려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는 한밤중에 꼬리에 횃불을 단 소들을 이용하여 연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다.

사마천은 손자(孫子)의 말을 인용하여 전단의 용병술을 묘사하였다.

전쟁이란 정면으로 대치하여 싸우나, 유격(遊擊)인 기병(奇兵)을 가지고 이기는 것이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기병을 쓰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兵以正合, 以奇勝. 善之者, 出奇無窮]. 기습과 정공(正攻)이 돌고 도는 것이 마치 고리가 끝이 없는 것과 같다. [太史公曰: 兵以正合,以奇勝. 善之者,出奇無窮. 奇正還相生,如環之無端.]

出奇制勝이란 특출한 전략을 이용하여 승리함을 뜻한다.


출전

史記(사기) | 손자(孫子) 제5 병세(兵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