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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交近攻 (원교근공, yuǎnjiāojìngōng)

遠交近攻(원교근공)

远交近攻(yuǎnjiāojìngōng)

遠 멀 원 | 交 사귈 교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攻 칠 공 |


먼 나라와 친(親)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領土)를 넓힘, 중국(中國) 전국(戰國) 시대(時代)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한 외교(外交) 정책(政策).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하는 정책이다. 이 원교근공의 전략은 秦始皇(진시황)의 외교전략으로도 유명한 외교전략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3계에 나오는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혼란 중에 지리적 제약까지 있을 경우, 가까운 것부터 손에 넣는 것이 좋다. 멀리 있는 것부터 치면 해로울 뿐이다.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도 지리적 조건을 중요시해야 한다.[形禁勢格,利從近取,害以遠隔.上火下澤.]"

이는 전국시대 말기, 秦(진)나라에 망명해와 승상이 된 范雎(범저)가 제안한 외교전략을 당시 진소양왕에게 올린 전략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였던 범저(范雎)는 타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진(秦)나라로 피신하였다. 당시 진(秦)나라는 소양왕(昭襄王:재위 BC 306∼BC 251)의 모후인 선태후의 동생 양후(穰侯)가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齊)를 쳐서 자기 영토인 도(陶)를 확장하려 하였다.

이에 범저(范雎)는 왕에게 말했다.

"신이 듣건대 지금 승상 양후 위염이 한나라와 손을 잡고 위나라 건너편에 있는 제나라를 칠 것이라고 하니 그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이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한(韓), 위(魏)의 양국을 거쳐 막강한 제를 침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약간의 군사를 보내보았자 제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보냈다가는 진나라만 손해를 입게 됩니다.

지난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엔 조나라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 가깝고, 위나라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제나라를 쳤다가 이기지 못하면 망신만 당합니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한나라와 위나라만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바에야 진나라에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제의 민왕이 악의에게 패한 것은 멀리 떨어진 초를 쳤으므로 동맹국의 짐이 무거워 이반(離反)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에게 병력을 빌려 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대준 셈으로 한ㆍ위만 득을 보았습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책을 주장합니다. 대왕께선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십시오. 곧 먼 나라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이간시키는 동시에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부터 넓혀야 합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어들어가듯 가까운 나라부터 쳐서 점점 먼 나라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얻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진소양왕이 묻는다.
"그럼 먼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범저가 아뢴다.
"진나라가 친교해야할 먼 나라는 바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입니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야 할 가까운 나라는 한(韓)나라와 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해서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어찌 혼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후 범저는 객경이 되었다가 진나라의 승상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 전략에, 후에 상앙의 부국강병책 등으로 중원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되고, 결국엔 열국이 난립하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원교근공은 '보편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敵'을 쳐서 없애야만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지, 평상시에 사용할 전략은 아닌 것이다. 이는 秦나라가 중국을 모두 차지할 생각이 있었기에 사용했고, 또한 유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 遠族近隣(원족근린) | 遠水近火(원수근화) |

睚眦必報 (애자필보, yázìbìbào)

睚眦必報(애자필보)

睚眦必报(yázìbìbào)

睚 눈초리 애 | 眦 흘길 자 | 必 반드시 필 | 報 갚을 보 |


'눈흘김도 반드시 갚는다'라는 뜻으로, 도량이 극히 좁은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사기(史記)》에 실린 범저(范雎:범수라고도 함)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범저가 수가(須賈)를 수행하여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제나라 왕은 수가를 젖혀두고 범저를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앙심을 품은 수가는 귀국하여 범저가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해하였고, 재상인 위제(魏齊)는 범저를 체포하게 하여 혹독하게 고문하였다.

초주검이 되어 겨우 목숨을 건진 범저는 정안평(鄭安平)의 도움으로 진(秦)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왕계(王稽)를 만나 진나라로 갔다. 범저는 진나라에서 장록(張祿)이라는 이름으로 소왕(昭王)을 도와 왕권을 공고히 하고 국위를 떨치도록 보좌함으로써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진나라가 한(韓)나라와 위나라를 치려고 하자, 위나라에서는 수가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이때 범저는 초라한 행색으로 변장하여 수가를 만났는데, 수가는 범저를 동정하여 솜옷을 내주고 음식도 배불리 먹여 보냈다. 나중에 수가는 진나라 재상 장록이 곧 범저임을 알고 지난날의 죄를 빌었다.

범저는 수가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초라한 행색을 한 자신에게 옛정을 잊지 않고 솜옷을 준 점을 가상히 여겨 용서하였다. 그러나 위제만은 용서할 수 없다며, 그의 목을 베어 가져오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렀다. 위제는 조(趙)나라를 거쳐 초(楚)나라로 도망쳤다가 결국 자결하였다.

한편, 왕계와 정안평은 범저의 천거로 각각 하동(河東) 태수와 장군이 되었다. 범저는 또 곤경에 처하였을 때 도움을 준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보답하였으니, 밥 한 술을 얻어먹은 작은 은혜에도 반드시 보답하고, 눈을 한 번 흘겨본 작은 원한도 반드시 보복하였다(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이 고사는 《사기》의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애자필보는 눈을 한 번 흘겨본 것을 원한으로 새겨두고 반드시 보복하는 것처럼 도량이 극히 좁은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참조 한자어

유의어

斤斤计较(jīnjīnjìjiào) 중요하지 않은 일을 시시콜콜히 따지다. |

锱铢必较(zīzhūbìjiào) 돈 몇 푼까지도 꼼꼼하게 따지다. |

一毛不拔(yìmáobùbá) 남을 위해 털 한가닥도 안 뽑는다. 지나치게 인색하다. |

반의어

宽宏大量(kuānhóngdàliàng) 도량이 넓다. |

慷慨解囊(kāngkǎijiěnáng)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다. 주머니를 털어 남을 돕다. |

仗义疏财(zhàngyìshūcái) 의를 중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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