炮烙之刑(포락지형)
炮烙之刑(páoluòzhīxíng)
炮 통째로 구울 포 | 烙 | 지질 락(낙) | 之 갈 지 | 刑 형벌 형,탕기 형 |
①중국(中國)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쓰던 매우 심한 형벌(刑罰). 기름칠한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罪人)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였다 함 ②달군 쇠로 지지는 극형(極刑)을 통속적(通俗的)으로 이르는 말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하나라 걸왕과 더불어 걸주(桀紂)라 하여 전형적인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경국지색의 미인들이 있었다.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 속국 유소씨(有蘇氏)의 나라에서 복종한다는 표시로 달기(妲己)라는 미녀를 바쳐 왔다. 이내 주왕은 달기에 아주 흠뻑 빠지게 되었다. 요염한 달기의 자태에 넋을 잃어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달기야말로 진짜 여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불과하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어느날 달기는, "궁중음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사오니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
주왕도 사실 궁중음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였다.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여 관능적이고도 자유분방한 '미미의 악[美美之樂]'이라는 음악을 만들게 하였다.
또한 달기가 말했다.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주지육림의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가 완성되자 질펀한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업고 과인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주왕의 명이 떨어지니 잔치에 참가한 천여 명도 넘는 남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이 되었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이리저리 여자를 붙잡으려 뛰었고 역시 모두 벗은 여자들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바빴다. 여기 저기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한 탄성과 교성도 들렸다. 이윽고 숲 속 나무 밑에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주왕의 무릎에 앉아서 교태를 부리며 이 광경을 즐기고 있던 달기는 자기도 슬슬 달아올라 왕과 함께 밀실로 들어가 환락에 마음껏 탐닉하였다.
그리하여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놀며 즐겼다. 이러한 환락의 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자그만치 120일이나 이어지니, 이를 '장야(長夜)의 음(飮)'이라 불렀다.
달기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라는 금고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넓이가 1리(里)나 되었고 높이는 1천 척(尺)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또한 별궁을 확장하여 온갖 동물들을 모두 모아 길렀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갔고, 반기를 든 제후도 있었다. 그의 학정을 비방하면 포락지형에 처해졌다. 즉, 이궁(離宮) 뜰에 구리기둥을 걸쳐놓고 기름을 발라 매끈매끈하게 하고, 그 밑에는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는 건너가게 하는 것이었다.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는 죄를 면해주리라."
불 속에 떨어져 죽느냐? 기름 기둥을 무사히 건너느냐? 절박한 갈림길에서 공포에 질린 채 구리 기둥을 걷는 죄인들. 두세 걸음만 더 걸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찰나에 불 위에 떨어져 비명을 지르며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쾌감을 느끼는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잔인한 형벌이 계속 되었다.
나중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이 사소한 일로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는데, 서백의 신하가 진귀한 물건과 좋은 말을 바쳐 겨우 그 형벌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 후 서백이 자기 소유의 땅 낙서(洛西)를 바치면서 포락지형을 폐지할 것을 아뢰어 이 잔인한 형벌은 없어졌다고 한다.
은왕조를 살리기 위해 충신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호소했으나 주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여 젓 담그고 포를 떴으며 심장을 갈기갈기 찟었다.
드디어 주나라의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폭군 주왕은 녹대에 들어가 스스로불을 지르고 죽었다.
한편,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당할 때 망나니들도 달기의 미색에 홀려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달기를 처형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형장의 대장이 달려왔다. 달기의 목숨이 길지 못해 그랬는지 대장은 자그만치 90대의 늙은이였다. 그런데 이미 청춘이 몇번이나 거듭 가버린 그 대장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일어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달기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후세의 시인들이 시를 읊었다.
얼마나 가련했으면 형장의 망나니도
눈물을 뿌렸을까.
복숭아꽃이 이에 비교될까.
작약꽃이 아름다움을 견줄 수 있을까.
옛날 그녀가 덮었던 이부자리엔
아직도 그녀의 향기가 맨도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가 간 곳 없으니.
슬프도다 미인이여, 이 한 어찌 풀려나!
기가묘무(奇歌妙舞) 어디 가고 비구름만 맴도는가!
[유래] 史記(사기):殷本紀(은본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炮烙(páoluò) | 炮格(páogé)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酒池肉林(주지육림) | 長夜之飮(장야지음) |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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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池肉林 (주지육림, jiǔchíròulín)
酒池肉林(주지육림)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이르는 말.
sumptuous feast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매희(妹喜)와 달기(妲己)라는 희대(稀代)의 두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서, 사치(奢侈)와 주색(酒色)에 탐닉(眈溺)하다가 결국 폭군 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夏)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 (供物)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매희[또는 말희(末喜)]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난 매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못 둘레에는 못 둘레에는 나무들마다 말린 고기[脯肉]를 걸친 숲을 만들고, 고기로 동산을 쌓았다.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 있었고 술 지게미가 쌓여 된 둑은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걸왕과 매희는 그 못에 호화선을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희희낙낙 즐겼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殷)나라 탕왕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래] 史記(사기) | 帝王世紀(제왕세기) | 十八史略
또한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방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탕왕으로부터 28대째로 은(殷)나라 마지막 군주가 된 주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보내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향락을 위하여 높이가 천척(千尺)에 달하고 둘레가 삼리(三里)나 되는 궁전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노역케 하였다. 화려한 궁실(宮室)이 완성되자 각지의 준마(駿馬), 명견(名犬), 미녀(美女) 등을 수집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收奪)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怳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暴君淫主)로 악명을 떨치던 주 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殷本紀(은본기)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 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以酒爲池懸肉爲林]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肉山酒池(육산주지) | 肉山脯林(육산포림)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長夜之飮(장야지음) | 炮烙之刑(포락지형) |
帝王世紀, 제왕세기,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酒池肉林(jiǔchíròulín)
酒 술 주 | 池 못 지,강 이름 타,제거할 철 | 肉 고기 육,둘레 유 | 林 수풀 림(임) |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술잔치'를 이르는 말.
sumptuous feast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매희(妹喜)와 달기(妲己)라는 희대(稀代)의 두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서, 사치(奢侈)와 주색(酒色)에 탐닉(眈溺)하다가 결국 폭군 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하(夏)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 (供物)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매희[또는 말희(末喜)]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호화스런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난 매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못 둘레에는 못 둘레에는 나무들마다 말린 고기[脯肉]를 걸친 숲을 만들고, 고기로 동산을 쌓았다.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 있었고 술 지게미가 쌓여 된 둑은 십 리까지 뻗어 있었다. 걸왕과 매희는 그 못에 호화선을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희희낙낙 즐겼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殷)나라 탕왕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래] 史記(사기) | 帝王世紀(제왕세기) | 十八史略
또한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방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탕왕으로부터 28대째로 은(殷)나라 마지막 군주가 된 주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보내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향락을 위하여 높이가 천척(千尺)에 달하고 둘레가 삼리(三里)나 되는 궁전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노역케 하였다. 화려한 궁실(宮室)이 완성되자 각지의 준마(駿馬), 명견(名犬), 미녀(美女) 등을 수집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收奪)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怳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炮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暴君淫主)로 악명을 떨치던 주 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殷本紀(은본기)
"주왕(紂王)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妲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 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以酒爲池懸肉爲林]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肉山酒池(육산주지) | 肉山脯林(육산포림)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長夜之飮(장야지음) | 炮烙之刑(포락지형) |
帝王世紀, 제왕세기,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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