鮑照 (포조, Bào zhào)

포조(鮑照, 421?~465)

異名: 鲍照, Bào zhào, 자 명원
국적: 중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동해
주요작품: 《하청송》

오언시(五言詩)가 전성하던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칠언시(七言詩)에 손을 댄 적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중국 육조(六朝)·송나라의 시인. 특히 악부(樂府)에 뛰어났다. 두보(杜甫)는 그를 '준일(俊逸)'하다고 높이 평가했고 송나라 육시옹(陸時雍)은 "길 없는 곳에 길을 연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자 명원(明遠). 동해(東海:江蘇省 漣水縣) 출생. 참군직(參軍職)을 지내서 포참군(鮑參軍)이라고도 불린다. 지체가 낮은 집안 출신으로, 처음에 송나라 황족 유의경(劉義慶)을 섬겨 국시랑(國侍郞)이 되고, 태학박사·중서사인(中書舍人)·말릉령(秣陵令) 등을 지냈으며, 마지막에 임해왕(臨海王) 유자욱(劉子頊) 밑에서 형옥참군사(刑獄參軍事)가 되었으나, 자욱 등의 반란이 실패하였을 때 형주(荊州:湖北省 江陵縣) 성 안에서 피살되었다.

그의 문장은 기취(奇趣)·신선하며, 당대의 문인 중에서도 사영운(謝靈運)·안연지(顔延之)와 병칭(竝稱)된다. 당시 황허강[黃河]과 지수이강[濟水] 두 강물이 맑아 그것이 천자(天子)의 미덕 때문이라고 소문이 떠돌았을 때, 그는 《하청송(河淸頌)》이라는 서(序)를 지어 호평받았다. 오언시(五言詩)가 전성하던 육조시대(六朝時代)에 칠언시(七言詩)에 손을 댄 적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뒷날 당(唐)나라의 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부·잡문 10권이 있는데, 특히 악부(樂府)에 뛰어났다. 두보(杜甫)는 그를 '준일(俊逸)'하다고 높이 평가하였고 송나라의 육시옹(陸時雍)은 그를 "길 없는 곳에 길을 연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첸중롄[錢仲聯]에 의하여 《포참군집주(鮑參軍集注)》가 출판되었다.


포조(鮑照) 관련 한시

答休上人(답휴상인)

抛塼引玉 (포전인옥, pāozhuānyǐnyù)

抛塼引玉(포전인옥)

抛砖引玉(pāozhuānyǐnyù)

抛 던질 포 | 塼 벽돌 전 | 引 끌 인 | 玉 구슬 옥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7계.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작품을 발표한다고 겸손을 표하는 고사성어이다.

To cast a brick to attract jade—offer a few commonplace remarks by way of introduction so that others may come up with valuable opinions

抛出廉价的砖,引来珍贵的玉。比喻说出自己粗浅的意见引出别人的高论(多用作谦词)。


중국의 당(唐)나라 때 조하와 상건(常建)이라는 두 시인이 있었다. 상건은 자신의 시가 조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차에 조하가 소주(蘇州)에 유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상건도 소주에 있었으므로,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하의 시를 배우고 싶었다.

상건은 조하가 소주에 오면 유명한 영암사(靈巖寺)에 반드시 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사묘(寺廟)의 벽에 시를 절반만 지어 적어 놓았다. 과연 조하는 영암사에 들렀다가 벽에 적힌 미완성의 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었고, 상건은 자신의 뜻대로 조하의 그의 시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상건이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은 격'이라고 말하였다. 벽돌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의견이나 작품을 뜻하며, 옥은 다른 사람의 훌륭한 작품이나 고명한 의견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스스로 겸손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포전인옥은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의 제17계이기도 하다. 포전인옥계는 공전계(攻戰計)에 속하며, "비슷한 것으로써 유인하여 어리석은 적을 치는(類以誘之, 擊蒙也)" 계책이다. 벽돌은 미끼를 뜻하며, 옥은 승리를 뜻한다. 곧 미끼로 적을 유인하여 아군의 작전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전술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예를 살펴보자.

실제로 삼국지연의 상의 가장 큰 전쟁이었던 관도대전. 그 관도대전의 서전에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관우는 안량을 단숨에 해치운다. 조조가 관우를 흠모하는 마음은 더욱 커졌다. 승리에 기뻐하고 있던 사이, 급보가 날아든다. 원소군의 2장 중 한 명인 문추가 이미 연진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직접 맞서 싸우러 갔다. 그런데 후군이 전군이 되고, 전군이 후군이 되라는 명령을 전군에 내렸다. 군량바리 등이 앞장서 가고 군사가 뒤쳐저 가라는 것이었다. 여건이 물었다.

"군량바리를 앞세우고 군사가 뒤에 가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군량을 뒤에 두면 약탈을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만약 적군을 만나 빼앗기면 어찌하옵니까?"

"그 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연진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전군에서 함성이 올랐다. 조조는 급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

"문추가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자 우리 군사들은 양초를 모두 버리고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후군이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어찌 하오리까?"

"저리 잠시 피하도록 하자!"

여러 사람들은 모두 급히 언덕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모든 군사들에게 옷과 갑옷을 벗어던지고 말들도 풀어주라고 했다. 그러자 뭇 장수들이 아뢴다.

"적들이 덮쳐들고 있사옵니다. 빨리 말을 거두어 백마로 후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순유가 황급히 제지하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미끼를 던져 적을 유인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후퇴를 하겠소?"

문추의 군사들은 군량과 거장을 빼앗고 또다시 흩어진 말들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때 조조는 즉시 군사들에게 언덕을 내려가 일제히 공격하라고 명했다. 문추의 군사는 큰 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문추는 결국 패배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관우에게 결국 죽고 만다.

과거의 병사들은 모두 가난한 농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식의 계략이 흔히 쓰였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다른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마초가 동관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는 마초와 양주 10군벌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마초는 강인한 서량병들을 이끌고 조조를 요격하고자 했으나 조조는 전면전을 피하고 마초의 배후를 치기 위해 위수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초는 조조의 군세가 위수를 도하하려는 찰나 조조의 군영을 덮쳤다.

"뒤편에 백포장군이 쳐들어오고 있사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마초라는 것을 알고 앞다투어 배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조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초가 1백여보 앞까지 왔을 때에야 허저가 급히 조조를 배에 태우고 강을 건넜다. 마초가 도착하여 부하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수많은 화살이 조조가 탄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때 위남현령 정비가 남산 위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급히 영채 안의 소와 말을 모두 밖으로 내몰았다. 서량병들은 이것을 보자 모두 이 소와 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조조를 공격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틈에 조조는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수들이 모이자 조조가 말했다.
"내 오늘 하마터면 조그만 도적놈에게 큰일을 당할 뻔 했소이다."

허저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소와 말을 풀어놓지 않았더라면 도적들은 강을 건너 쫓아왔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소와 말을 풀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 정비를 즉시 전군교위로 삼았다.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아주 기본적인 '포전인옥'이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물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미끼부대를 보내서 그 부대를 공격하는 동안 후방을 기습한다거나 하는 식의 응용도 가능하다.

飽飫烹宰 (포어팽재)

飽飫烹宰(포어팽재)

飽 배부를 포 | 飫 물릴 어 | 烹 삶을 팽 | 宰 재상 재 |

배 부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飮食)이라도 그 맛을 모름

[출전]
千字文(천자문)

布射遼丸 (포사료환)

布射遼丸(포사료환)

布 베 포 | 射 쏠 사 | 僚 벗 료 | 丸 알 환 |

여포의 활쏘기와 웅의료의 포환 던지기는 뛰어나다.

[출전]
千字文(천자문)

抱腹絶倒 (포복절도)

抱腹絶倒(포복절도)

배를 끌어안고 넘어질 정도의 크게 우스운 상황.

蒲柳之姿 (포류지자)

蒲柳之姿(포류지자)

蒲柳之姿[púliǔzhīzī]

蒲 부들 포 | 柳 버들 류(유) | 之 갈 지 | 姿 모양 자 |

갯버들 같은 모습이라는 뜻으로, 허약(虛弱)한 몸을 이르는 말

feel like a willow withering at the approach of autumn—suffer from poor health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篇)에 나오는 말로, '포류지질(蒲柳之質)'이라고도 한다.

고열(顧悅)은 동진(東晉)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저우[揚州] 자사가 되자, 그는 고열을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을 믿고 양저우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그 신임에 감동하여 정무에 더욱 힘썼다. 이처럼 오랫동안 너무 과로한 탓에 고열은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어느 날 간문제(簡文帝)가 자기와 같은 연배이면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고열에게 '어째서 그렇게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고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대답했다.

"갯버들은 가을이 오면 먼저 잎이 떨어지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지는 것과 같지요[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栢之質 凌霜猶茂(포류지자 망추이락 송백지질 능상유무)]."

고열은 자신은 '포류지자(蒲柳之姿)', 간문제는 '송백지질(松栢之質)'에 현명하게 비유하면서, 황제의 건강한 모습에 신하인 자신은 먼저 시든다는 군신간의 예절까지 갖춘 멋진 대답을 했던 것이다. 고열은 몸이 허약해서 머리는 일찍 희어졌는지 몰라도 마음은 송백같이 곧아 권세에 아부하는 일이 없었다.

蒲柳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들을 가리키며 수양(水楊) 또는 포양(蒲楊)이라고도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蒲柳之質(포류지질) |

반의어·상대어

松栢之質(송백지질) |

炮烙之刑 (포락지형, páoluòzhīxíng)

炮烙之刑(포락지형)

炮烙之刑(páoluòzhīxíng)

炮 통째로 구울 포 | 烙 | 지질 락(낙) | 之 갈 지 | 刑 형벌 형,탕기 형 |


①중국(中國)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쓰던 매우 심한 형벌(刑罰). 기름칠한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罪人)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였다 함 ②달군 쇠로 지지는 극형(極刑)을 통속적(通俗的)으로 이르는 말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하나라 걸왕과 더불어 걸주(桀紂)라 하여 전형적인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경국지색의 미인들이 있었다.

은(殷)나라 주왕(紂王) 때, 속국 유소씨(有蘇氏)의 나라에서 복종한다는 표시로 달기(妲己)라는 미녀를 바쳐 왔다. 이내 주왕은 달기에 아주 흠뻑 빠지게 되었다. 요염한 달기의 자태에 넋을 잃어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달기야말로 진짜 여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불과하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어느날 달기는, "궁중음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사오니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

주왕도 사실 궁중음악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였다.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여 관능적이고도 자유분방한 '미미의 악[美美之樂]'이라는 음악을 만들게 하였다.

또한 달기가 말했다.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주지육림의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가 완성되자 질펀한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업고 과인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주왕의 명이 떨어지니 잔치에 참가한 천여 명도 넘는 남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이 되었다. 벌거벗은 남자들이 이리저리 여자를 붙잡으려 뛰었고 역시 모두 벗은 여자들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바빴다. 여기 저기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한 탄성과 교성도 들렸다. 이윽고 숲 속 나무 밑에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주왕의 무릎에 앉아서 교태를 부리며 이 광경을 즐기고 있던 달기는 자기도 슬슬 달아올라 왕과 함께 밀실로 들어가 환락에 마음껏 탐닉하였다.

그리하여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놀며 즐겼다. 이러한 환락의 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자그만치 120일이나 이어지니, 이를 '장야(長夜)의 음(飮)'이라 불렀다.

달기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라는 금고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넓이가 1리(里)나 되었고 높이는 1천 척(尺)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또한 별궁을 확장하여 온갖 동물들을 모두 모아 길렀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갔고, 반기를 든 제후도 있었다. 그의 학정을 비방하면 포락지형에 처해졌다. 즉, 이궁(離宮) 뜰에 구리기둥을 걸쳐놓고 기름을 발라 매끈매끈하게 하고, 그 밑에는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는 건너가게 하는 것이었다.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는 죄를 면해주리라."

불 속에 떨어져 죽느냐? 기름 기둥을 무사히 건너느냐? 절박한 갈림길에서 공포에 질린 채 구리 기둥을 걷는 죄인들. 두세 걸음만 더 걸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찰나에 불 위에 떨어져 비명을 지르며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쾌감을 느끼는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잔인한 형벌이 계속 되었다.

나중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되는 서백(西伯)이 사소한 일로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는데, 서백의 신하가 진귀한 물건과 좋은 말을 바쳐 겨우 그 형벌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 후 서백이 자기 소유의 땅 낙서(洛西)를 바치면서 포락지형을 폐지할 것을 아뢰어 이 잔인한 형벌은 없어졌다고 한다.

은왕조를 살리기 위해 충신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호소했으나 주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여 젓 담그고 포를 떴으며 심장을 갈기갈기 찟었다.

드디어 주나라의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킬 때, 폭군 주왕은 녹대에 들어가 스스로불을 지르고 죽었다.

한편,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당할 때 망나니들도 달기의 미색에 홀려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달기를 처형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형장의 대장이 달려왔다. 달기의 목숨이 길지 못해 그랬는지 대장은 자그만치 90대의 늙은이였다. 그런데 이미 청춘이 몇번이나 거듭 가버린 그 대장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일어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달기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후세의 시인들이 시를 읊었다.

얼마나 가련했으면 형장의 망나니도
눈물을 뿌렸을까.
복숭아꽃이 이에 비교될까.
작약꽃이 아름다움을 견줄 수 있을까.
옛날 그녀가 덮었던 이부자리엔
아직도 그녀의 향기가 맨도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가 간 곳 없으니.
슬프도다 미인이여, 이 한 어찌 풀려나!
기가묘무(奇歌妙舞) 어디 가고 비구름만 맴도는가!

[유래] 史記(사기):殷本紀(은본기)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炮烙(páoluò) | 炮格(páogé) |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酒池肉林(주지육림) | 長夜之飮(장야지음) |


史記, 사기, 史記:殷本紀, 사기:은본기 |

抱頭鼠竄 (포두서찬)

抱頭鼠竄(포두서찬)

抱头鼠窜(bàotóushǔcuàn)

抱 안을 포 | 頭 머리 두 | 鼠 쥐 서 | 竄 숨을 찬 |


매우 낭패(狼狽)하여 급히 도망(逃亡)침을 비유한 말.


한(漢)나라 초엽, 한나라 왕 유방(劉邦)이 대장 한신(韓信)에게 제(齊)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자, 제나라 왕 전광(田廣)은 초나라 항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항우는 대장 용차(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구원에 나서도록 하였는데, 한신에게 크게 패하여 용차는 죽고 전광은 도망하였다.

제나라 땅이 평정되자,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 봉하고, 계속하여 초나라로 진격하라고 하였다. 당시, 괴통이라고 하는 범양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하여 독립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에게 말했다.
"한나라 왕이 나를 이렇게 후히 대접해 주는데, 내가 어찌 배은망덕(背恩忘德:은혜를 잊고 도리어 배반함)할 수 있겠소?"

괴통이 말을 이었다.
"장군께서는 유방을 너무 믿고 있는데, 장차 그에게 큰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본시 친한 친구였지만, 상황이 변하자 진여는 군대를 빌어 장이를 공격하였습니다. 공격을 받은 장이는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도망하여 한나라 왕에게 귀순하였습니다. [常山王奉頭鼠竄, 以歸漢王 (상산왕봉두서찬, 이귀한왕)]. ... 이처럼 서로 목을 내놓을 만큼 절친했던 친구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유방이 장군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고 믿으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출전: 한서열전(漢書列典)-괴통전(괴通傳)]

또, 삼국지연의 6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손견이 원술과 만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호뢰관에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와서 손견을 보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원술과 헤어진 후 진지로 가보니 바로 동탁의 심복 이각(李傕)이었다. 손견은 물었다.

"어이하여 왔소?"

이각은 말한다. 동탁이 딸을 손견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고. 이에 손견은 크게 노한다.

그러자 이각은 놀란 쥐처럼 머리를 감싼 채 돌아가 손견이 이렇게 무례하다며 전했다.

李傕抱頭鼠竄,回見董卓,說孫堅如此無禮。

[출전: 삼국지연의-第六回:焚金闕董卓行凶 匿玉璽孫堅背約]


관련 한자어

유의어

狼奔豕突(lángbēnshǐtū) 이리처럼 내달리고 멧돼지처럼 돌진하다. 악인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다.


Tag

도망 |

廢寢忘食 (폐침망식)

廢寢忘食(폐침망식)

廢 폐할 폐/버릴 폐 | 寢 잘 침 | 忘 잊을 망 | 食 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잠을 안 자고, 밥 먹는 것도 잊는다는 뜻으로, 매우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


송사기사본말(宋史記事本末) 왕안석변법(王安石變法)에 실린 이야기다.

북송(北宋)시기,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인(文人)인 왕안석은 신종(神宗)년간에 두 차례 재상을 지냈다. 당시 일부 귀족들이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납세(納稅)를 거부하여, 중앙 정부의 재정이 날로 악화되자, 재상으로 있던 왕안석은 변법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완고한 무리들의 반대에 부딪혀 두 차례 모두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왕안석은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널리 제자백가서를 읽고, 각종 이론들을 진지하게 연구함으로써 형공신학(荊公新學) 을 정립하여 변법의 이론으로 삼았다. 그는 강동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저명한 학자인 주돈이(周敦 )를 만났다. 그는 주돈이와 여러 가지 사상 문제를 토론하며 밤을 세웠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문제들을 몇번이고 생각하며, 잠 자는 것, 밤 먹는 것까지도 모두 잊어버렸다[安石退而精思, 至忘寢食].

廢寢忘食이란 잠 못자고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바쁘거나 매우 열심히 공부함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廢寢忘餐(폐침망찬) |

鞭長莫及 (편장막급)

鞭長莫及(편장막급)

鞭 채찍 편 | 長 길 장, 어른 장 | 莫 없을 막, 저물 모, 덮을 멱 | 及 미칠 급 |

채찍이 길어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돕고 싶지만 능력(能力)이 미치치 못함을 이르는 말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조의 이야기다.

중국 춘추시대의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 강대국에 속하였다. 초나라 장왕(莊王)은 신주(申舟)를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제나라로 가려면 송(宋)나라 땅을 거쳐야만 하였다. 그 무렵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려면 미리 그 나라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장왕은 국력이 강함을 믿고 이 절차를 무시하였다.

송나라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기고 송나라 영토에 무단으로 진입한 신주를 붙잡아 죽였다. 초장왕은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기원전 594년 군대를 일으켜 송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송나라의 저항이 완강하여 전쟁이 길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군사력이 약한 송나라에서는 대부(大夫) 악영제를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진나라 경공(景公)이 구원병을 보낼 뜻을 내비치자, 대부 백종(伯宗)이 이를 반대하며 경공에게 말했다.

"옛말에 말채찍이 길기는 하지만 말의 배에까지 미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古人有言曰, 雖鞭之長, 不及馬腹].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는 때이니 싸워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 진나라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을 거스를 수야 있겠습니까"

결국 진나라는 대부 해양(解揚)을 송나라로 보내어 말로만 위로하였을 뿐, 구원병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선공(宣公) 15년'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鞭長莫及(out of reach)은 역량(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있더라도 모든 면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여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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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a Shan Temple

Hua Shan Temple


DescriptionHua Shan Temple
DateTaken on 29 April 2007
SourcePhoto taken by Brian Dell. Released to the public domain.
AuthorBdell555 at en.wikipedia
LicensingThis work has been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by its author, Bdell555 at the English Wikipedia project. This applies 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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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入悖出 (패입패출)

悖入悖出(패입패출)

悖入悖出[bèirùbèichū]

悖 거스를 패, 우쩍 일어날 발 | 入 들 입 | 悖 거스를 패, 우쩍 일어날 발 | 出 날 출 |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또 그와 같은 일을 받는다는 뜻

ill-gotten, ill-spent; ill-gotten wealth never thrives; easy come, easy go


대학(大學)에는 덕과 재물과의 관계를 말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군자는 먼저 덕에 조심하는 것이다. 덕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사람이 생기고,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땅이 생기고, 땅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재물이 생긴다. 재물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용도가 생긴다. 덕은 근본이 되고 재물은 말단적인 것이다. 근본이 되는 것을 밖으로 돌리고 말단적인 것을 안으로 들이면 백성들을 서로 다투게 만들고 서로 빼앗는 짓을 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역시 자기에게 거슬리게 들어오고, 재물이 남에게 거슬리게 들어오면 역시 자기에게 거슬리게 나가는 것이다[貨悖而入者, 亦悖而出]라고 하였다.

悖는 도리나 사리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이니, 悖入悖出(Ill got, ill spent)이란 곧 땀 흘리지 않고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쌓이지 않고 다시 나간다는 뜻이다.


출전

大學(대학)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悖出悖入(패출패입) |

風過而竹不留聲 (풍과이죽불류성)

風過而竹不留聲(풍과이죽불류성)

風 바람 풍 | 過 지날 과, 재앙 화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竹 대 죽 | 不 아닐 부, 아닐 불 | 留 머무를 류, 머무를 유 | 聲 소리 성 |

바람은 지나가나 대나무 숲은 소리를 붙들지 않는다.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

[출전]
菜根譚(채근담)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故 君子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竹不留聲(죽불류성) |

破天荒 (파천황)

破天荒(파천황)

破 깨뜨릴 파, 무너질 피 | 天 하늘 천 | 荒 거칠 황, 공허할 강 |

天荒(천황)이란 天地(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때의 혼돈한 상태로서 천지개벽(天地開闢) 이전(以前)의 혼돈한 상태(狀態)를 깨뜨려 연다는 뜻. ①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행(行)함을 이르는 말 ②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한 사람을 이름


科擧(과거)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新羅(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高麗(고려)시대 後周(후주)에서 귀화한 雙冀(쌍기)의 건의에 따라 958년 唐(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비로소 과거의 법을 마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隋(수)나라 때 시작하여 淸(청)나라 말기까지 1천3백년 동안 이어졌다. 과거는 유교의 경전에 대한 교양과 詩文(시문)의 재능, 정치적 식견 등을 테스트하는 공개경쟁 시험제도였다. 뛰어난 암기력과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지방시험인 鄕試(향시)에서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會試(회시)까지 급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나라 때는 지방시험인 향시에 합격하여 중앙시험에 추천되는 사람을 解(해)라고 불렀다. 모든 일에 통달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宋(송)나라때 나온 '북몽쇄언'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당나라의 荊州(형주)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해마다 解를 뽑아 중앙에 보내어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天荒解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곳의 劉(유세)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解로서 급제하자 천황을 깬 사람이 나왔다 해서 유세를 '파천황이라고 불렀다(號爲破天荒․호위파천황)'.

유세의 과거급제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당시 荊南軍(형남군) 절도사가 破天荒錢(파천황전)이라 하여 상금으로 거금 70만전을 보냈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만하다.

[출전]
송나라의 손광헌(孫光憲)이 지은 《북몽쇄언》 권4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稀代未聞(희대미문) | 破僻(파벽) | 最初(최초) | 前人未踏(전인미답) | 前代未聞(전대미문) | 未曾有(미증유) |

破竹之勢 (파죽지세)

破竹之勢(파죽지세)

破 깨뜨릴 파, 무너질 피 | 竹 대 죽 | 之 갈 지 | 勢 형세 세 |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氣勢)라는 뜻으로, ①곧 세력(勢力)이 강대(强大)하여 대적(大敵)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氣勢) ②세력(勢力)이 강(强)하여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모양(模樣)



위(魏)나라의 권신 사마염은 원제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무제라 일컫고, 국호를 진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晋)나라로 나뉘어 對峙(대치)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장군 양호는 오나라를 칠 것을 몇차례나 상소했지만 북쪽 흉노의 南下(남하)를 우려한 重臣(중신)들의 반대로 宿願(숙원)을 이룰 수가 없었다. 뒷날 양호는 죽으면서 두예(杜預)를 武帝(무제)에게 천거했다.양호는 자기의 꿈을 두예에게 위탁했던 것이다.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이 된 두예도 오나라 정벌을 역설했고 마침내 무제는 두예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윽고 진나라의 대군이 南征(남정)을 개시했다.

출병한 이듬해 음력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가 단호히 말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오. 지금 우리 군대의 사기는 크게 높아져 있소. 이것을 비유해서 말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破竹之勢]과 같소. 대나무란 일단 쪼개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의 도읍인 건업(建業)으로 진격하여 그야말로 파죽지세처럼 몰아쳐 단숨에 건업을 함락시켰다. 오왕 손호(孫晧)는 손을 뒤로 묶고 수레에 관을 싣고 사죄의 뜻을 보이며 항복해왔다.

이리하여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두예는 오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졌으나, 만년에는 학자로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기울여 《춘추석례(春秋釋例)》《좌전집해(左傳集解)》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이 말은 거침없이 일이 잘 풀리거나 처리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세여파죽(勢如破竹)', '영도이해(迎刀而解)'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출전]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爎原之火(요원지화) | 勢如破竹(세여파죽) | 迎刀而解(영도이해) |

破邪顯正 (파사현정)

破邪顯正(파사현정)

破 깨뜨릴 파, 무너질 피 | 邪 간사할 사, 그런가 야, 나머지 여, 느릿할 서 | 顯 나타날 현 | 正 바를 정, 정월 정 |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불교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邪惡)한 도리(道理)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道理)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악한 것을 깨닫는 것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므로 얽매이는 마음을 타파하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말. 이 용어는 특히 삼론종(三論宗)의 중요한 근본 교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출전
삼론현의(三論玄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破顯(파현) | 衛正斥邪(위정척아) | 衛正斥邪(위정척사) | 破邪顯正(파사현정) |

破釜沈船 (파부침선, pòfǔchénzhōu)

破釜沈船(파부침선)

破釜沉舟(pòfǔchénzhōu)

破 깨트릴 파 | 釜 솥뚜경 부 | 沈 잠길 침 | 船 배 선 |


밥 짓는 가마솥을 때려 부수고 돌아갈 배도 가라앉히다. 決死(결사)의 각오로 싸움터에 나서거나 최후의 결단을 내림을 비유하는 말.


秦(진)나라가 말기 증세를 보이자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가 하면 제후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초나라 때부터 장군의 전통을 이어온 項羽(항우)와 그의 삼촌 項梁(항량)도 반기를 들었다. 호응하는 사람들로 세력을 크게 불린 항량과 항우는 곳곳에서 진나라 군대를 무찔렀다. 그러나 봉기군은 定陶(정도·지금의 산둥성 서쪽)에서 진나라 장군 章邯(장한)에게 크게 패해 봉기군 총수 항량도 목숨을 잃었다.

장한은 승세를 몰아 조나라의 수도였던 한단을 격파하고 조왕이 있는 鉅鹿(거록·허베이성 남쪽)을 포위했다. 조왕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왕은 宋義(송의)를 상장, 항우를 차장으로 앉혀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송의는 군대를 安陽(안양·허베이성과 허난성의 경계지점)까지 진격시키고는 40여일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작전상 그렇게 했지만 몇번이나 진군을 재촉해도 송의가 듣지 않자 항우는 송의의 목을 베었다. 상장이 된 항우는 전군을 이끌고 黃河(황하)를 건넜다. 전군이 강을 건너자 항우는 ‘타고 온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가마솥과 시루를 부수고[皆沈船 破釜甑·개침선 파부증]’ 진영을 불태운 뒤 사흘분 군량만을 지급함으로써 결사적으로 싸울 것을 지시했다.

과연 전장병은 결사의 각오로 싸웠다. 이 싸움에서 항우군은 一當百(일당백)의 용맹을 떨쳐 조왕을 구원하러 온 다른 제후들의 군사들은 그저 입을 딱 벌리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제후의 장군들이 항우의 진영에 모였는데 모두 머리를 숙이고 무릎걸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 싸움으로 反秦(반진) 연합군 가운데서 항우는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출전] 史記(사기):項羽本紀(항우본기)


史記, 사기, 史記:項羽本紀, 사기:항우본기 |

破瓜之年 (파과지년)

파과지년 破瓜之年

破 깨질 파 | 瓜 오이 과 | 之 어조사 지 | 年 나이 년.


여자의 나이 열 여섯 살, 남자의 나이 예순 네 살을 이르는 말이다. 약칭으로 파과 또는 과년(瓜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과년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혼기(婚期)에 이른 여자의 나이를 말한다.


진(晋)나라 孫綽(손작)의 시 '情人碧玉歌(정인벽옥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과(破瓜)는 외를 깨트린다는 뜻으로 오이를 여성에 비유하고 있다.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 하여 '처녀성을 잃는다'는 의미와 '초경이 시작되는 나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과(瓜)자를 쪼개면 팔(八)자가 둘이 된다고 해서 여자의 나이 16세를 가리키며 또 팔(八)을 곱하면 64가 되므로 남자의 나이 64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자가 월경(月經)을 처음 시작하게 되는 열대여섯 살의 나이를 한자로 파과기(破瓜期)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따라서 과년을 여자의 결혼 적령기인 16세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옛날에는 16세 정도 되면 여자는 혼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푸른 구슬이 외를 깰 때
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님은 사랑을 못 이겨 넘어졌네.
感君不羞난(감군불수난) 님에게 감격하여 부끄러움도 모르고
廻身就郞抱(회신취랑포) 몸 돌려 님의 품에 안긴다.

이 시는 연애시로서, 여기서 '과(瓜)를 깰 때'란 말은 여자가 처녀를 깨친다는 뜻이며, 초경이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사랑을 알게 되는 16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청(淸)나라의 문인인 원매(袁枚)의 시론(詩論) 《수원시화(隨園詩話)》에는 '외를 깨치니, 즉 풀어서 말하여 첫 월경이 시작되었을 때, 외를 깨침과 같이 , 곧 홍조를 보게 된다, 안 그런가[破瓜 或解以爲月事初來 如破瓜則見紅潮者 非也]?'라는 말이 있다. 또 청나라의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는 '살피건대, 풍속에 여자가 몸을 깨침으로써 외를 깨친다 하거니와, 안 그런가[按俗以女子破身爲破瓜 非也]'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파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초경의 시작과 처녀성을 잃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밖에도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를 비유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남자로서 이 나이가 되면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송(宋)나라의 축목(祝穆)이 쓴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당나라의 여동빈(呂洞賓)이 장기에게 보낸 시에 '공성당재파과년(功成當在破瓜年)'이란 것을 들어, '파과'는 남자의 나이 64세의 뜻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예전에는 '벼슬의 임기가 다한 해'를 과년이라 하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관직에 오르는 사람은 당연히 남자였고, 관직에 있던 사람이 임기가 다해 물러나야 할 때가 되면 나이도 그만큼 먹게 마련이다. 따라서 위의 '八八'을 곱하면 64가 되므로, 남자의 경우 과년을 64세로 보는 것 역시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과년이라고 할 때에는 남자의 나이 64세라는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혼기에 접어든 여자의 나이를 뜻하는 말로 일반화되었다.

[출전] 손작(孫綽)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