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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鮑之交 (관포지교)

管鮑之交(관포지교)

管鲍之交(guǎnbàozhījiāo)

管 대롱 관,주관할 관 | 鮑 절인 물고기 포 | 之 갈 지 | 交 사귈 교 |


옛날 중국(中國)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처럼 친구(親舊) 사이가 다정(多情)함을 이르는 말, 친구(親舊) 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유래]
史記(사기) : 管晏列傳(관안열전) |


참조 한자어

유의어

知音人(지음인) | 知音(지음) | 芝蘭之交(지란지교) | 知己之友(지기지우) | 知己(지기) |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心友(심우) | 水魚之親(수어지친)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伯牙絶絃(백아절현) | 刎頸之友(문경지우) | 刎頸之交(문경지교) | 莫逆之友(막역지우) | 淡水之交(담수지교) | 淡交(담교) | 斷金之交(단금지교) | 斷金之契(단금지계) | 金石之交(금석지교) | 金石之契(금석지계) | 金蘭之誼(금란지의) | 金蘭之交(금란지교) | 金蘭之契(금란지계) | 金蘭交(금란교) | 金蘭契(금란계) | 膠漆之心(교칠지심) | 膠漆之交(교칠지교) | 高山流水(고산유수) |

반의어

市道之交(시도지교) |


관련 인물

管仲(관중)


史記(사기):管晏列傳(관안열전) |

管子 (관자)

管子(관자) 管仲(관중, ?~BC 645)

중국(中國)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제(齊)나라 재상(宰相) 관중(管仲)이 부민, 치국, 경신, 포교를 서술(敍述)하고 패도정치(政治)를 역설(力說)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冊). 원본(原本)은 86편이었다고 하나 원(元)나라 이후(以後) 76편이 남아 있음.

저자관중(管仲)
시대중국 춘추시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정치가인 관중(管仲:?~BC 645)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제나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현상(賢相) 관중의 업적을 중심으로 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썼고, 전국시대에서 한대(漢代)에 걸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머리말에는 86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10편과 1도(圖)가 빠져 있다.

내용은 법가적(法家的) 색채가 농후하고, 때로는 도가적(道家的)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한서(漢書)》에서는 도가(道家)에, 《수서(隋書)》에서는 법가(法家)에 넣고 있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신명(神明)을 공경하도록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관련 한자어

勞而無功(노이무공)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 형세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