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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Lao-tzu
He who loves the world as his body may be entrusted with the empire.
- Laozi (老子, 604 BC-? )
세상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라를 맡길 수 있습니다.
- 老子 (노자)
大器晩成 (대기만성),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있습니다. 글자 뜻대로 해석하면 대기(大器), 큰 그릇은 만성(晩成), 오랜 시간이 걸려야 완성 된다. 뭐 이런 뜻인데요. 조직에서 예를 들면 유능한 인재 하나를 키우고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우리들 주변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이 대기만성의 철학은 원래 그런 뜻으로만 쓰여 진 것은 아닙니다. 노자의 도덕경. 당시 군주들에게 리더십을 강의한 책인데요.
대기만성 할 때 대기(大器)의 큰 그릇은 그 당시의 리더들, 즉 군주를 의미하고 만성(晩成)의 만(晩)은 늦을 만자가 아니라 날일(日)자를 뺀, 면할 면(免) 부정의 뜻으로 쓰였던 글자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그러니까 정말 큰 지도자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즉 큰 그릇이 없다는 뜻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도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릇일 겁니다. 이미 제일 큰 그릇이 완성되었다고 확정할 때 그 그릇 보다 더 큰 크기의 그릇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완성된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단한 자기개발과 노력으로 자신의 모습을 무한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말 큰 그릇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기만성의 본래 뜻입니다.
옛날에 한 번 만들어진 모습으로 평생을 변화 없이 산다는 것, 물론 아름답고 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세상으로 보고, 새로운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스펀지처럼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고 아울러 자기반성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대기만성. ‘큰 그릇은 완성이 없다.’ 리더에게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내 크기를 키워 나가라고 혁신하라고 충고하는 말입니다.
‘대학(大學)’이란 고전에도 탕(湯)임금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기만성의 혁신철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실로 오늘 하루가 새로웠다면(苟日新이어든)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며(日日新하고) 또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又日新하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신(日新)의 철학입니다. 탕(湯)임금은 중국 고대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은(殷)나라를 세운 군주였습니다. 혁명의 주체이자 장군이었던 그는 매일 저녁 목욕하는 목욕통에 이 일신(日新)이라는 글을 새겨 넣고 몸을 씻을 때 마다 자신에게 날마다 새로워지라고 주문을 외웠던 것입니다.
‘어제의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날마다 새로워 져야 내 주변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일명 ‘대학’에서 백성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신민(新民)’의 개념입니다.
지도자가 매일같이 새로워야 백성들도 새로워 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제3공화국에서 사용하였던 ‘유신(維新)’이란 개념이나 ‘신민당(新民黨)’이란 정당 이름의 어원 모두 여기서 나온 개념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과 일신(日新)은 원래 같은 의미입니다. 정말 큰 그릇이 되려면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덕경에서는 대기만성과 함께 리더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大音希聲). 세상에서 가장 큰 형상은 형체가 보이지 않습니다.(大象無形)’
위대한 지도자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완성도 없다는 이 구절들은 지도자의 모습은 영원한 변화 가운데 있어야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지식으로 무한의 모습을 만들어가라! 완성된 모습, 정해진 소리, 보여 지는 형체에 머물지 말라! 큰 그릇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당신이 날마다 새롭게 변해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새롭게 변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수천 년 동안 동양 역사를 통해 흐르는 날마다 혁신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그런데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이 대기만성의 철학은 원래 그런 뜻으로만 쓰여 진 것은 아닙니다. 노자의 도덕경. 당시 군주들에게 리더십을 강의한 책인데요.
대기만성 할 때 대기(大器)의 큰 그릇은 그 당시의 리더들, 즉 군주를 의미하고 만성(晩成)의 만(晩)은 늦을 만자가 아니라 날일(日)자를 뺀, 면할 면(免) 부정의 뜻으로 쓰였던 글자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그러니까 정말 큰 지도자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즉 큰 그릇이 없다는 뜻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도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릇일 겁니다. 이미 제일 큰 그릇이 완성되었다고 확정할 때 그 그릇 보다 더 큰 크기의 그릇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완성된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단한 자기개발과 노력으로 자신의 모습을 무한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말 큰 그릇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기만성의 본래 뜻입니다.
옛날에 한 번 만들어진 모습으로 평생을 변화 없이 산다는 것, 물론 아름답고 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세상으로 보고, 새로운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스펀지처럼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고 아울러 자기반성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대기만성. ‘큰 그릇은 완성이 없다.’ 리더에게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내 크기를 키워 나가라고 혁신하라고 충고하는 말입니다.
‘대학(大學)’이란 고전에도 탕(湯)임금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기만성의 혁신철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실로 오늘 하루가 새로웠다면(苟日新이어든)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며(日日新하고) 또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又日新하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신(日新)의 철학입니다. 탕(湯)임금은 중국 고대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은(殷)나라를 세운 군주였습니다. 혁명의 주체이자 장군이었던 그는 매일 저녁 목욕하는 목욕통에 이 일신(日新)이라는 글을 새겨 넣고 몸을 씻을 때 마다 자신에게 날마다 새로워지라고 주문을 외웠던 것입니다.
‘어제의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날마다 새로워 져야 내 주변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일명 ‘대학’에서 백성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신민(新民)’의 개념입니다.
지도자가 매일같이 새로워야 백성들도 새로워 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제3공화국에서 사용하였던 ‘유신(維新)’이란 개념이나 ‘신민당(新民黨)’이란 정당 이름의 어원 모두 여기서 나온 개념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과 일신(日新)은 원래 같은 의미입니다. 정말 큰 그릇이 되려면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덕경에서는 대기만성과 함께 리더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大音希聲). 세상에서 가장 큰 형상은 형체가 보이지 않습니다.(大象無形)’
위대한 지도자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고, 완성도 없다는 이 구절들은 지도자의 모습은 영원한 변화 가운데 있어야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지식으로 무한의 모습을 만들어가라! 완성된 모습, 정해진 소리, 보여 지는 형체에 머물지 말라! 큰 그릇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당신이 날마다 새롭게 변해야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새롭게 변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수천 년 동안 동양 역사를 통해 흐르는 날마다 혁신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若烹小鮮 (약팽소선)
若烹小鮮(약팽소선)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란 뜻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란 뜻
率獸食人 (솔수식인)
率獸食人(솔수식인)
率 거느릴 솔 | 獸 짐승 수 | 食 먹을 식 | 人 사람 인 |
率獸食人이란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의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이 칼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양혜왕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말을 계속하였다.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이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不免於率獸而食人] 백성의 부모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率 거느릴 솔 | 獸 짐승 수 | 食 먹을 식 | 人 사람 인 |
率獸食人이란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의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이 칼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양혜왕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말을 계속하였다.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이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不免於率獸而食人] 백성의 부모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無信不立 (무신불립)
無信不立(무신불립)
無 없을 무 | 信 믿을 신 | 不 아닐 불 | 立 설 립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는 말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여기에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삼국지(三國志)》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학자로 북해(北海) 태수를 지낸 공융(孔融:153∼208)은 조조(曹操:155∼220)의 공격을 받은 서주(徐州) 자사 도겸(陶謙)을 구하기 위해 유비(劉備:161∼223)에게 공손찬(公孫瓚:?∼199)의 군사를 빌려서 도겸을 도와주게 하였다. 공융은 군사를 가지면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를 잃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BC 552∼BC 479)의 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인은 '예부터 내려오면서 누구든지 죽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습니다. 저는 군대를 빌릴지라도 이곳으로 꼭 돌아올 것입니다"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無 없을 무 | 信 믿을 신 | 不 아닐 불 | 立 설 립 |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는 말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여기에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삼국지(三國志)》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학자로 북해(北海) 태수를 지낸 공융(孔融:153∼208)은 조조(曹操:155∼220)의 공격을 받은 서주(徐州) 자사 도겸(陶謙)을 구하기 위해 유비(劉備:161∼223)에게 공손찬(公孫瓚:?∼199)의 군사를 빌려서 도겸을 도와주게 하였다. 공융은 군사를 가지면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를 잃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BC 552∼BC 479)의 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인은 '예부터 내려오면서 누구든지 죽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습니다. 저는 군대를 빌릴지라도 이곳으로 꼭 돌아올 것입니다"
이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大亂大治 (대란대치)
대란대치(大亂大治)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정치에서 사용된 말이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정치에서 사용된 말이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歐陽修 (구양수, ōuyáng Xiū, 1007~1072)
歐陽修(구양수, 1007~1072)
이름: 欧阳修(ōuyáng Xiū), 호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
국적: 중국
활동분야: 정치, 학문, 예술
출생지: 장시성(江西省) 지안시(吉安市)인 길주(吉州) 여릉현(廬陵縣)
주요저서: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 153권, 《신당서(新唐書)》 《오대사기(五代史記)》의 편자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구양문충공집》등이 있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문구(文具)를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가르쳤다고 한다. 10세 때 당나라 한유(韓愈)의 전집을 읽은 것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1030년 진사가 되었으며,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인종(仁宗)과 영종(英宗)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새 관료파에 속하여 활약하였으나, 신종(神宗) 때 동향후배인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었고, 문(文)으로는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송대의 고문(古文)의 위치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 153권이 있다. 《신당서(新唐書)》 《오대사기(五代史記)》의 편자이기도 하며, 《오대사령관전지서(五代史伶官傳之序)》를 비롯하여 많은 명문을 남겼다.
이름: 欧阳修(ōuyáng Xiū), 호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
국적: 중국
활동분야: 정치, 학문, 예술
출생지: 장시성(江西省) 지안시(吉安市)인 길주(吉州) 여릉현(廬陵縣)
주요저서: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 153권, 《신당서(新唐書)》 《오대사기(五代史記)》의 편자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구양문충공집》등이 있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문구(文具)를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가르쳤다고 한다. 10세 때 당나라 한유(韓愈)의 전집을 읽은 것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1030년 진사가 되었으며,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인종(仁宗)과 영종(英宗)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새 관료파에 속하여 활약하였으나, 신종(神宗) 때 동향후배인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었고, 문(文)으로는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송대의 고문(古文)의 위치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 153권이 있다. 《신당서(新唐書)》 《오대사기(五代史記)》의 편자이기도 하며, 《오대사령관전지서(五代史伶官傳之序)》를 비롯하여 많은 명문을 남겼다.
骨肉相殘 (골육상잔)
骨肉相殘(골육상잔)
骨肉相残(gǔ ròu xiāng cán)
骨 뼈 골│肉 고기 육, 둘레 유│相 서로 상, 빌 양│殘 잔인할 잔, 남을 잔
부자(父子)나 형제(兄弟) 또는 같은 민족(民族) 간(間)에 서로 싸움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兄弟鬩墻(형제혁장)│煮豆燃萁(자두연기, zhǔdòuránqí)│民族相殘(민족상잔)│同族相爭(동족상쟁)│同族相殘(동족상잔)│骨肉相戰(골육상전)│骨肉相爭(골육상쟁)
정치│전쟁
骨肉相残(gǔ ròu xiāng cán)
骨 뼈 골│肉 고기 육, 둘레 유│相 서로 상, 빌 양│殘 잔인할 잔, 남을 잔
부자(父子)나 형제(兄弟) 또는 같은 민족(民族) 간(間)에 서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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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弟鬩墻(형제혁장)│煮豆燃萁(자두연기, zhǔdòuránqí)│民族相殘(민족상잔)│同族相爭(동족상쟁)│同族相殘(동족상잔)│骨肉相戰(골육상전)│骨肉相爭(골육상쟁)
정치│전쟁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kēzhèngměngyúh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江淹 (강엄, Jiāng Yān, 444~505)
江淹(강엄, 444~505)
이름: 江淹(Jiāng Yān), 자 문통(文通), 예릉후(醴陵侯)
국적: 남조(南朝)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허난성[河南省] 카오청[考城]
주요수상: 예릉후(醴陵侯)
중국 남조(南朝)시대의 문인. 유(儒) ·불(佛) ·도(道)에 통달했고 문학활동은 송 ·제 시대에 주로 했다. 부(賦)에는 한부(恨賦) ·별부(別賦) 2편이 있는데, 문사(文辭)가 화려하다.
자 문통(文通). 허난성[河南省] 카오청[考城] 출생. 송(宋) ·남제(南齊) ·양(梁)의 3왕조를 섬기는 동안 양(梁)에서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되어 예릉후(醴陵侯)에 책봉되었다. 문학을 즐기고 유(儒) ·불(佛) ·도(道)에 통달하였으나, 문학활동은 송 ·제 시대에 주로 하였으며 만년에는 부진하였다. 대표작에는 한(漢)나라에서 송(宋)나라에 이르는 시인 30명의 작품을 모방한 잡체시(雜體詩) 30수가 있다. 부(賦)에는 한부(恨賦) ·별부(別賦) 2편이 있는데, 문사(文辭)가 화려하다. 변문(騈文)에는 《예건평왕상서(詣建平王上書)》가 유명하다.
이름: 江淹(Jiāng Yān), 자 문통(文通), 예릉후(醴陵侯)
국적: 남조(南朝)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허난성[河南省] 카오청[考城]
주요수상: 예릉후(醴陵侯)
중국 남조(南朝)시대의 문인. 유(儒) ·불(佛) ·도(道)에 통달했고 문학활동은 송 ·제 시대에 주로 했다. 부(賦)에는 한부(恨賦) ·별부(別賦) 2편이 있는데, 문사(文辭)가 화려하다.
자 문통(文通). 허난성[河南省] 카오청[考城] 출생. 송(宋) ·남제(南齊) ·양(梁)의 3왕조를 섬기는 동안 양(梁)에서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되어 예릉후(醴陵侯)에 책봉되었다. 문학을 즐기고 유(儒) ·불(佛) ·도(道)에 통달하였으나, 문학활동은 송 ·제 시대에 주로 하였으며 만년에는 부진하였다. 대표작에는 한(漢)나라에서 송(宋)나라에 이르는 시인 30명의 작품을 모방한 잡체시(雜體詩) 30수가 있다. 부(賦)에는 한부(恨賦) ·별부(別賦) 2편이 있는데, 문사(文辭)가 화려하다. 변문(騈文)에는 《예건평왕상서(詣建平王上書)》가 유명하다.
苛斂誅求 (가렴주구)
苛斂誅求 (가렴주구)
가혹하게 착취하고 몹시 재촉함. 세금을 너무 거두어 들이고 재산을 함부로 빼앗는 일
가혹하게 착취하고 몹시 재촉함. 세금을 너무 거두어 들이고 재산을 함부로 빼앗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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