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書(진서) 房玄齡(방현령)·李延壽(이연수) 等
이름: 晋书(jìnshū)
구분: 정사
저자: 방현령
시대: 644년
진대(晉代)의 정사(正史). 중국(中國) 25사의 하나.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방현령(房玄齡), 이연수(李延壽) 등(等) 21명이 칙명(勅命)으로 사실(史實)을 기록(記錄)한 책. 130권
130권. 644년 편찬. 제기(帝紀) 10권, 지(志) 20권, 열전(列傳) 70권 외에 재기(載記) 30권이 있다. 처음으로 재기라는 양식이 정사에 나타난 것이며, 5호16국(五胡十六國)에 관한 기록으로서 진나라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로 장영서(臧榮緖)의 《진서(晉書)》에 의존하였고, 기타 진시대사(晉時代史)도 참고로 하여 많은 사관(史官)이 집필하였다. 현존하는 유일한 '진대사'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이 책을 보완한 것으로 《진서음의(晉書音義)》(3권), 《진서각주(晉書斠注)》(130권) 등이 있다.
구성 및 고사성어
紀
卷1 帝紀第1 高祖宣帝
卷2 帝紀第2 世宗景帝 太祖文帝
卷3 帝紀第3 世祖武帝
卷4 帝紀第4 孝惠帝
卷5 帝紀第5 孝懷帝 孝愍帝
卷6 帝紀第6 中宗元帝 肅宗明帝
卷7 帝紀第7 顯宗成帝 康帝
卷8 帝紀第8 孝宗穆帝 哀帝 廢帝海西公
卷9 帝紀第9 太宗簡文帝 孝武帝
卷10 帝紀第10 安帝 恭帝
志
卷11 志第1 天文上
卷12 志第2 天文中
卷13 志第3 天文下
卷14 志第4 地理上
卷15 志第5 地理下
卷16 志第6 律曆上
卷17 志第7 律曆中
卷18 志第8 律曆下
卷19 志第9 禮上
卷20 志第10 禮中
卷21 志第11 禮下
卷22 志第12 樂上
卷23 志第13 樂下
卷24 志第14 職官
卷25 志第15 輿服
卷26 志第16 食貨
卷27 志第17 五行上
卷28 志第18 五行中
卷29 志第19 五行下
卷30 志第20 刑法
列傳
卷31 列傳第1 后妃上
卷32 列傳第2 后妃下
卷33 列傳第3 王祥 鄭沖 何曾 石苞
卷34 列傳第4 羊祜 杜預
卷35 列傳第5 陳騫 裴秀
卷36 列傳第6 衞瓘 張華
卷37 列傳第7 宗室
卷38 列傳第8 宣五王 文六王
卷39 列傳第9 王沈 荀顗 荀勖 馮紞
卷40 列傳第10 賈充 楊駿
卷41 列傳第11 魏舒 李憙 劉寔 高光
卷42 列傳第12 王渾 王濬 唐彬
卷43 列傳第13 山濤 王戎 郭舒 樂廣
卷44 列傳第14 鄭袤 李胤 盧欽 華表 石鑒 溫羨
卷45 列傳第15 劉毅 和嶠 武陔 任愷 崔洪 郭奕 侯史光 何攀
卷46 列傳第16 劉頌 李重
卷47 列傳第17 傅玄
卷48 列傳第18 向雄 段灼 閻纘
卷49 列傳第19 阮籍 嵇康 向秀 劉伶 謝鯤 胡毋輔之 畢卓 王尼 羊曼 光逸
卷50 列傳第20 曹志 庾峻 郭象 庾純 秦秀
卷51 列傳第21 皇甫謐 摯虞 束皙 王接
卷52 列傳第22 郤詵 阮種 華譚
折桂(절계, zhéguì) 계수나무 가지를 꺾다. 《진서·극선전(晉書·郤詵傳)》에서 극선(郤詵)이 자신의 과거 급제를 겸허하게 계수나무숲의 한 가지와 곤산(昆山)의 한 조각 옥에 비유한 데서 유래함
卷53 列傳第23 愍懷太子
卷54 列傳第24 陸機 陸雲
卷55 列傳第25 夏侯湛 潘岳 張載
卷56 列傳第26 江統 孫楚
卷57 列傳第27 羅憲 滕脩 馬隆 胡奮 陶璜 吾彥 張光 趙誘
卷58 列傳第28 周處 周訪
卷59 列傳第29 汝南王亮 楚王瑋 趙王倫 齊王冏 長沙王乂 成都王潁 河間王顒 東海王越
卷60 列傳第30 解系 孫旂 孟觀 牽秀 繆播 皇甫重 張輔 李含 張方 閻鼎 索靖 賈疋
卷61 列傳第31 周浚 成公簡 苟晞 華軼 劉喬
卷62 列傳第32 劉琨 祖逖
闻鸡起舞(wénjīqǐwǔ) 한밤중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무예를 연마하다. 《진서·조적전(晉書·祖逖傳)》에서, 동진(東晉)때 조적(祖逖)과 그의 친구 유곤(劉琨)은 늘 서로를 고무격려하여 한밤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서 무예를 연마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中流击楫(zhōngliújījí) 강 복판에서 노를 두드리다. 당(唐)대 방현령(房玄齡) 등의《진서·조적전(晉書·祖逖傳)》에서, 동진(東晉)의 조적(祖逖)이 중원을 수복하기 위해서 북벌하러 강을 건널 때, 노를 치면서 수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데서 유래함
卷63 列傳第33 邵續 李矩 段匹磾 魏浚 郭默
卷64 列傳第34 武十三王 元四王 簡文三子
卷65 列傳第35 王導
卷66 列傳第36 劉弘 陶侃
卷67 列傳第37 溫嶠 郗鑒
卷68 列傳第38 顧榮 紀瞻 賀循 薛兼
卷69 列傳第39 劉隗 刁協 戴若思 周顗
卷70 列傳第40 應詹 甘卓 卞壼 劉超 鍾雅
卷71 列傳第41 孫惠 熊遠 王鑒 陳頵 高崧
卷72 列傳第42 郭璞 葛洪
卷73 列傳第43 庾亮
卷74 列傳第44 桓彝
卷75 列傳第45 王湛 荀崧 范汪 劉惔 張憑 韓伯
卷76 列傳第46 王舒 王廙 虞潭 顧眾 張闓
卷77 列傳第47 陸曄 何充 褚翜 蔡謨 諸葛恢 殷浩
卷78 列傳第48 孔愉 丁潭 陶回
卷79 列傳第49 謝尚 謝安
東山再起(동산재기) 동산(動産)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隱退)한 사람이나 실패(失敗)한 사람이 재기(再起)하여 다시 세상(世上)에 나옴을 뜻함 |
草木皆兵(초목개병) 초목이 모두 적병처럼 보여서 놀랐다는 데서 나온 말로, ①적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찮은 것에도 겁냄 ② 몹시 놀라 이것도 의심스럽고 저것도 의심스러움. 경황 중에 함부로 이것저것 의심함 |
風聲鶴唳(풍성학려,风声鹤唳,fēngshēnghèlì)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도 추격병으로 의심하다. 《진서·사현전(晉書·謝玄傳)》 가운데, 전진(前秦) 때 진왕 부견(苻堅)이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에게 대패하고 도망갈 때,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추격병이 따라온 줄 알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卷80 列傳第50 王羲之
卷81 列傳第51 王遜 蔡豹 羊鑒 劉胤 桓宣 朱伺 毛寶 劉遐 鄧嶽 朱序
卷82 列傳第52 陳壽 王長文 虞溥 司馬彪 王隱 虞預 孫盛 干寶 鄧粲 謝沈 習鑿齒 徐廣
卷83 列傳第53 顧和 袁瑰 江逌 車胤 殷顗 王雅
螢雪之功(형설지공) | 車螢孫雪(차형손설) |
卷84 列傳第54 王恭 庾楷 劉牢之 殷仲堪 楊佺期
卷85 列傳第55 劉毅 諸葛長民 何無忌 檀憑之 魏詠之
卷86 列傳第56 張軌
卷87 列傳第57 涼武昭王李玄盛(李暠)
卷88 列傳第58 孝友
卷89 列傳第59 忠義
卷90 列傳第60 良吏
卷91 列傳第61 儒林
卷92 列傳第62 文苑
洛阳纸贵(Luòyángzhǐguì) 낙양의 종이값이 오르다. 《진서·문원전(晉書·文苑傳)》에서 진(晉)대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쓰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베껴 쓰느라 뤄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渐入佳境(jiànrùjiājìng) 점차 단맛이 나다. 《진서·고개지전(晉書·顧愷之傳)》에서, 고개지가 늘 사탕수수를 가느다란 가지부터 먼저 씹어먹어서 친구들이 이유를 묻자 “그야 점점 갈수록 단맛이 나기 때문이지.” 라고 한 말에서 유래함 |
卷93 列傳第63 外戚
卷94 列傳第64 隱逸
卷95 列傳第65 藝術
卷96 列傳第66 列女
卷97 列傳第67 四夷
卷98 列傳第68 王敦 桓溫
卷99 列傳第69 桓玄 卞範之 殷仲文
卷100 列傳第70 王彌 張昌 陳敏 王如 杜曾 杜弢 王機 祖約 蘇峻 孫恩 盧循 譙縱
載記
卷101 載記第1 劉元海(劉淵)
卷102 載記第2 劉聰
卷103 載記第3 劉曜
卷104 載記第4 石勒上
卷105 載記第5 石勒下
鹿死谁手(lùsǐsheíshǒu) 천하는 누구의 수중에 들어가겠는가? 《진서·석륵재기(晉書·石勒載記)》에 나오는 “当并驱于中原,未知鹿死谁手(중원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면, 사슴은 누구의 수중에 죽겠는가)”라는 고사에서 유래함 |
卷106 載記第6 石季龍(石虎)上
卷107 載記第7 石季龍(石虎)下
卷108 載記第8 慕容廆
卷109 載記第9 慕容皝
卷110 載記第10 慕容俊
卷111 載記第11 慕容暐
卷112 載記第12 苻洪 苻健 苻生
卷113 載記第13 苻堅上
卷114 載記第14 苻堅下
卷115 載記第15 苻丕 苻登
卷116 載記第16 姚弋仲 姚襄 姚萇
卷117 載記第17 姚興上
卷118 載記第18 姚興下
卷119 載記第19 姚泓
卷120 載記第20 李特 李流
卷121 載記第21 李雄 李班 李期 李壽 李勢
卷122 載記第22 呂光 呂纂 呂隆
卷123 載記第23 慕容垂
卷124 載記第24 慕容寶 慕容盛 慕容熙 慕容雲
卷125 載記第25 乞伏國仁 乞伏乾歸 乞伏熾磐 馮跋
卷126 載記第26 禿髮烏孤 禿髮利鹿孤 禿髮傉檀
卷127 載記第27 慕容德
卷128 載記第28 慕容超
卷129 載記第29 沮渠蒙遜
卷130 載記第30 赫連勃勃
참조
二十四史(이십사사) |
指桑罵槐 (지상매괴, zhǐsāngmàhuái)
指桑罵槐(지상매괴)
指桑骂槐(zhǐsāngmàhuái)
指 가리킬 지 | 桑 뽕나무 상 | 罵 꾸짖을 매 | 壞 무너질 괴,앓을 회 |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난이 곤란할 경우, 제3자를 비난하는 듯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려면 경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단호한 가운데 복종을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행동해서 심복시킨다.[大凌小者,警以誘之.剛中而應,行險而順.] "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功戰計(공전계) 중의 打草驚蛇(타초경사)를 설명하면서 등장했던 鄭莊公(정장공)의 이야기이다. '타초경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장공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던 동생, 공숙 단을 처단하고 이에 내응하려 했던 어머니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정장공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강씨는 궁중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그 뒤 정장공은 鄭城(정성)으로 돌아가 탄식했다.
"내 하는 수 없이 동생을 죽였지만 어찌 모친마저 멀리 여의고 천륜의 죄인이 되었단 말인가!"
이때, 영곡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의 이름은 영고숙이었다. 그는 위인이 매우 정직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장공이 그 어머니 강씨를 영 땅에다 안치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했다.
"어미가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敎化(교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영고숙은 몇 마리의 올빼미를 구해다가 정장공에게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며, 밤이면 능히 추호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선 不孝(불효)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 새를 잡아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서 영고숙이 '올빼미를 욕하면서 간접적으로 불효한 처사를 행한 정장공을 힐난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 것이다.
이후 영고숙의 간언에 따라 지하에 황천을 만들고 그곳에서 어머니 강씨를 만나, 함께 정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정장공이 모친을 모시고 함께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이마에 손을 대고 행렬을 바라보면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공은 효자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다 영고숙의 공로였다고 列國志(열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旁敲侧击(방고촉격, pángqiāocèjī) 양 옆과 측면을 치다. (문장이나 의견을) 빙빙 돌려 말하다. 말을 에두르다.
指鸡骂狗(지계매구, zhǐjīmàgǒu)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반의어
直言不讳(직언불휘, zhíyánbúhuì)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다. 기탄없이 말하다.
畅所欲言(창소욕언, chàngsuǒyùyán)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다.
참조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倂戰計, 삼십육계:병전계, 36계
指桑骂槐(zhǐsāngmàhuái)
指 가리킬 지 | 桑 뽕나무 상 | 罵 꾸짖을 매 | 壞 무너질 괴,앓을 회 |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난이 곤란할 경우, 제3자를 비난하는 듯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려면 경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단호한 가운데 복종을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행동해서 심복시킨다.[大凌小者,警以誘之.剛中而應,行險而順.] "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功戰計(공전계) 중의 打草驚蛇(타초경사)를 설명하면서 등장했던 鄭莊公(정장공)의 이야기이다. '타초경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장공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던 동생, 공숙 단을 처단하고 이에 내응하려 했던 어머니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정장공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강씨는 궁중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그 뒤 정장공은 鄭城(정성)으로 돌아가 탄식했다.
"내 하는 수 없이 동생을 죽였지만 어찌 모친마저 멀리 여의고 천륜의 죄인이 되었단 말인가!"
이때, 영곡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의 이름은 영고숙이었다. 그는 위인이 매우 정직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장공이 그 어머니 강씨를 영 땅에다 안치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했다.
"어미가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敎化(교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영고숙은 몇 마리의 올빼미를 구해다가 정장공에게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며, 밤이면 능히 추호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선 不孝(불효)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 새를 잡아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서 영고숙이 '올빼미를 욕하면서 간접적으로 불효한 처사를 행한 정장공을 힐난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 것이다.
이후 영고숙의 간언에 따라 지하에 황천을 만들고 그곳에서 어머니 강씨를 만나, 함께 정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정장공이 모친을 모시고 함께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이마에 손을 대고 행렬을 바라보면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공은 효자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다 영고숙의 공로였다고 列國志(열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旁敲侧击(방고촉격, pángqiāocèjī) 양 옆과 측면을 치다. (문장이나 의견을) 빙빙 돌려 말하다. 말을 에두르다.
指鸡骂狗(지계매구, zhǐjīmàgǒu)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반의어
直言不讳(직언불휘, zhíyánbúhuì)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다. 기탄없이 말하다.
畅所欲言(창소욕언, chàngsuǒyùyán)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다.
참조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倂戰計, 삼십육계:병전계, 36계
集思廣益 (집사광익)
集思廣益(집사광익)
集 모을 집 | 思 생각 사 | 廣 넓을 광 | 益 더할 익 |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쓴 글에서 유래되었다.
제갈량은 신기묘산(神奇妙算)의 지략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랏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촉나라의 승상이 된 뒤에 '교여군사장사참군연속'이라는 글을 수하들에게 전하여 널리 의견을 구하는 방침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하였다.
"무릇 관직에 참여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나라의 이익을 넓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의견을 말하기를 멀리하고, 서로 의견이 엇갈리게 될까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면 큰 손실을 입는 것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얻는 것이 있으니, 병폐를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 어렵거늘, 오직 서서(徐庶)만은 하는 일마다 미혹됨이 없었다. 또 동화(童和)도 7년 동안 일하면서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열 번이라도 와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진실로 서서의 10분의 1이라도 본받고, 동화의 은근함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나의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의 동화전(董和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위기(魏紀)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집사광익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유익한 점을 취하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集 모을 집 | 思 생각 사 | 廣 넓을 광 | 益 더할 익 |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쓴 글에서 유래되었다.
제갈량은 신기묘산(神奇妙算)의 지략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랏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촉나라의 승상이 된 뒤에 '교여군사장사참군연속'이라는 글을 수하들에게 전하여 널리 의견을 구하는 방침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하였다.
"무릇 관직에 참여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나라의 이익을 넓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의견을 말하기를 멀리하고, 서로 의견이 엇갈리게 될까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면 큰 손실을 입는 것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얻는 것이 있으니, 병폐를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 어렵거늘, 오직 서서(徐庶)만은 하는 일마다 미혹됨이 없었다. 또 동화(童和)도 7년 동안 일하면서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열 번이라도 와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진실로 서서의 10분의 1이라도 본받고, 동화의 은근함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나의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의 동화전(董和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위기(魏紀)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집사광익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유익한 점을 취하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叱石成羊 (질석성양)
叱石成羊(질석성양)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 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 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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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紙上兵談 (지상병담)
紙上兵談(지상병담)
紙 종이 지 | 上 위 상 | 兵 군사 병 | 談 말씀 담 |
종위 위에서 펼치는 용병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실현성(實現性)이 없는 허황(虛荒)된 이론(理論)을 일컬음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紙上兵談(Mere paper talk)이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론(空論)을 비유한 말이며, 탁상공론(卓上空論:an armchair argument)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卓上空論(탁상공론) |
紙 종이 지 | 上 위 상 | 兵 군사 병 | 談 말씀 담 |
종위 위에서 펼치는 용병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실현성(實現性)이 없는 허황(虛荒)된 이론(理論)을 일컬음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는 허울좋은 한 장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와 염파(廉頗)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진(秦)나라의 침공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당시 진나라의 대장이었던 백기(白起)는 염파의 지략(智略)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거짓 정보를 흘렸다. 조나라 왕은 결국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병법을 공부하였지만 실전(實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장군의 직에 임용되지 않기를 원하였으나 조나라 왕은 끝내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내보냈다.
진나라 장군 백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나라 군대를 유인하여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괄은 진나라 군사의 화살에 죽고 수십만의 조나라 군사들은 항복했다가 모두 생매장 당하였다.
紙上兵談(Mere paper talk)이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공론(空論)을 비유한 말이며, 탁상공론(卓上空論:an armchair argument)이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卓上空論(탁상공론) |
持服之約 (지복지약, chífúzhīyuē)
持服之約(지복지약)
持服之约(chífúzhīyuē)
持 가질 지 | 服 옷 복 | 之 갈 지 | 約 맺을 약 |
중국(中國)ㆍ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가복(賈復)의 아내가 임신(姙娠)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自己) 아들과 결혼(結婚)을 시키자고 말했다는 옛일에서 온 말. 뱃속의 태아(胎兒)를 가리켜 결혼(結婚) 약속(約束)을 하는 것
관련 한자어
유의어
持服之盟(지복지맹) |
결혼 |
持服之约(chífúzhīyuē)
持 가질 지 | 服 옷 복 | 之 갈 지 | 約 맺을 약 |
중국(中國)ㆍ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가복(賈復)의 아내가 임신(姙娠)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自己) 아들과 결혼(結婚)을 시키자고 말했다는 옛일에서 온 말. 뱃속의 태아(胎兒)를 가리켜 결혼(結婚) 약속(約束)을 하는 것
관련 한자어
유의어
持服之盟(지복지맹) |
결혼 |
支離滅裂 (지리멸렬)
支離滅裂(지리멸렬)
支 지탱할 지 | 離 떠날 리(이), 붙을 려(여), 교룡 치 | 滅 꺼질 멸, 멸할 멸 | 裂 찢을 렬(열) |
이리 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
break into fragments
'지리(支離)'의 어원으로는 2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옛날에 '지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소나 돼지 따위의 짐승을 잡을 때 누구보다도 뼈와 살을 깨끗이 발라내는 도살의 명수였다. 곧 그의 손에 짐승을 맡기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이리저리 찢기어 해체된다는 뜻에서 '지리'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지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앞으로 가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도 발이 따라가 주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왼쪽으로 발이 향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사에서 '지리'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멸렬(滅裂)'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도 장자였다. 그는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멸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멸렬'의 의미는 우직하고 경솔하고 말과 행동이 겉돈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후세에 이 2가지 말이 합쳐져 '지리멸렬'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어떤 일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어수선하게 엉키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支離分散(지리분산) | 支离破碎(zhīlípòsuì,지리파쇄) |
반의어·상대어
理路整然(이로정연) |
支 지탱할 지 | 離 떠날 리(이), 붙을 려(여), 교룡 치 | 滅 꺼질 멸, 멸할 멸 | 裂 찢을 렬(열) |
이리 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
break into fragments
'지리(支離)'의 어원으로는 2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옛날에 '지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소나 돼지 따위의 짐승을 잡을 때 누구보다도 뼈와 살을 깨끗이 발라내는 도살의 명수였다. 곧 그의 손에 짐승을 맡기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이리저리 찢기어 해체된다는 뜻에서 '지리'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지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앞으로 가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도 발이 따라가 주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왼쪽으로 발이 향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사에서 '지리'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멸렬(滅裂)'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도 장자였다. 그는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멸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멸렬'의 의미는 우직하고 경솔하고 말과 행동이 겉돈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후세에 이 2가지 말이 합쳐져 '지리멸렬'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어떤 일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어수선하게 엉키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支離分散(지리분산) | 支离破碎(zhīlípòsuì,지리파쇄) |
반의어·상대어
理路整然(이로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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