貪官汚吏 (탐관오리)

貪官汚吏(탐관오리)

贪官污吏(tānguānwūlì)

욕심 많은 관원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부패한 관리.

corrupt official, venal official

彈冠相慶 (탄관상경)

彈冠相慶(탄관상경)

彈 탄알 탄 | 冠 갓 관 | 相 서로 상 | 慶 경사 경 |

벼슬하게 된 것을 서로 축하(祝賀)함을 비유한 말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낭야(琅야; 지금의 산동 제성)에 왕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면서도 항상 밤 늦도록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참으로 대추를 내놓았다.

어느 날, 왕길은 아내가 옆집 대추나무에서 그 대추를 몰래 따냈음을 알고,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웃사람들은 그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옆집 사람이 대추를 수확한 다음에 아내를 데려 오겠다고 했다. 왕길은 황제들에게 몇 차례 글을 올려 그들의 향락 행위와 조정의 일에 대하여 간언하였다. 이 일로 그는 큰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고향 친구인 공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벼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기 모자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출전

한서(漢書) 권72 열전(列傳)제42 왕길전(王吉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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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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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활용도 ★ |

快犢破車 (쾌독파거)

快犢破車 (쾌독파거)

快犊破车(kuàidúpòchē)

快 쾌할 쾌 | 犢 송아지 독 | 破 깨뜨릴 파,무너질 피 | 車 수레 거,수레 차 |


기세(氣勢) 좋은 송아지는 이따금 제가 끄는 수레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장차 큰 일을 하려는 젊은 이는 스스로를 경계(警戒)해야 함을 이르는 말

快刀亂麻 (쾌도난마)

快刀亂麻(쾌도난마)

快 쾌할 쾌, 刀 칼 도, 亂 어지러울 란, 麻 삼 마.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情況(정황)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南北朝(남북조)시대 北齊(북제)의 창시자 高歡(고환)은 鮮卑族化(선비족화)한 漢族(한족)으로 그의 부하도 대부분 북방 변경지대의 선비족이었다. 선비족의 군사는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기 때문에 고환은 이러한 선비족군사의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환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보고 싶어 한 자리에 불러들였다. 그는 아들들에게 뒤얽힌 삼실 한뭉치씩을 나눠 주고 추려내보도록 했다.

다른 아들들은 모두 한올 한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洋(양)이라는 아들은 달랐다. 그는 잘 드는 칼 한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得意(득의)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아버지 앞에 나아간 고양은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난자수참)』고 말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快刀亂麻란 성어가 생겨 났는데 오늘날의 쓰임새와는 달리 당초에는 통치자가 백성들을 참혹하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큰 일을 해낼 인물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뒷날 文宣帝(문선제)가 된 고양은 백성들을 못살게 군 暴君(폭군)이 되었다. 게다가 술김에 재미로 사람을 죽이곤 했기 때문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重臣(중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머리를 짜낸 것이 사형수를 술취한 고양(문선제)옆에 두는 것이었다.

[출전] 북제서(北齊書)

置之度外 (치지도외)

置之度外(치지도외)

置之度外(zhìzhīdùwài)

置 둘 치 | 之 갈 지 | 度 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 | 外 바깥 외 |

'생각 밖에 둔다'라는 뜻으로, 내버려 두고서 상대를 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give no thought to; have no regard for; not to take into consideration


유수(劉秀)가 왕망(王莽)을 멸하고 한나라를 재건하여 황제에 즉위하니, 그가 광무제이다. 그러나 즉위 초기에는 아직 중국을 완전히 평정하지는 못한 상태였으므로, 광무제에게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지방 세력들도 많았다. 광무제는 이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기본적인 통일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감숙(甘肅) 지방의 외효와 촉(蜀) 지방의 공손술(公孫述)이 양대 저항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이때 외효가 표면상으로는 광무제에 대하여 스스로 신하라고 칭하고, 아들을 후한의 수도인 낙양(洛陽)에 보내어 벼슬을 하게 함으로써 귀순할 의사를 나타내었다. 광무제가 형세를 살펴 보니, 외효는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아들이 궁중에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니 근심거리가 못 되었다. 또 공손술은 멀리 촉 지방에 있어 중원으로 공격해 올 힘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오래 계속된 전쟁으로 피로해진 군대를 쉬게 하고 국력을 추스릴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휘하의 장수들에게 "외효와 공손술 두 사람은 당분간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말라(且當置此兩子於度外耳)"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광무제는 충분히 휴식한 군대를 이끌고 외효와 공손술을 차례로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외효공손술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치지도외는 내버려 두고 문제로 삼지 않는다거나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卷13 隗囂公孫述列傳第三(외효공손술열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度外視(도외시) |

七顚八起 (칠전팔기)

七顚八起(칠전팔기)

七 일곱 칠 | 顚 엎드러질 전, 이마 전 | 八 여덟 팔 | 起 일어날 기 |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뜻으로, 여러 번 실패해도 굽히지 않고 다시 일어남.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뜻으로,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결코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계속 분투 노력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삼전사기·사전오기·오전육기·육전칠기·팔전구기라고도 쓰며, 모두 실패에 굽히지 않고 다시 분투 노력한다는 뜻이다.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의 백절불굴(百折不屈)·백절불요(百折不搖), 어떠한 위력이나 무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의 위무불굴(威武不屈), 결코 휘지도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의 불요불굴(不撓不屈)도 칠전팔기와 뜻이 통한다.

그 밖에 견인불발(堅忍不拔: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음)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칠전팔기와 일맥상통한다.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오뚝이 정신'도 칠전팔기와 같은 뜻이다.

七縱七擒 (칠종칠금, qīqínqīzòng)

七縱七擒(칠종칠금)

七擒七纵(qīqínqīzòng)

七 일곱 칠 | 縱 놓을 종 | 七 일곱 칠 | 擒 사로잡을 금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As the legend goe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Zhu Geliang arrested Menghuo seven times and set him free seven times, so that Menghuo was sincerely convinced, and never raised a rebellion again. This allusion indicates that somebody. is good at employing the proper strategy to convince others.

传说三国时诸葛亮南征孟获,捉了他七次,又放了他七次,才使孟获心服口服,不再背叛。后用这个典故指善于运用策略,使对方心悦诚服。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인 유비(劉備)는 제갈 량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위(魏)나라를 공략하여 생전의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먼저 내란부터 수습해야 했다. 유선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제갈 량은 적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간책을 썼다. 과연 반란군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서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반란군이 바로 맹획이라는 장수였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馬謖)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도 한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여기서 '칠종칠금'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상대편을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欲擒姑縱(욕금고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