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The Art of War (孫子)



兵者,詭道也。故能而示之不能,用而示之不用,近而示之遠,遠而示之近。

- 孫子

All warfare is based on deception. Hence, when we are able to attack, we must seem unable; when using our forces, we must appear inactive; when we are near, we must make the enemy believe we are far away; when far away, we must make him believe we are near.

- Sun Tzu, The Art of War

Common examples can also be found in English use, such as verse 18 in Chapter 1. This has been abbreviated to its most basic form and condensed into the English modern proverb:

All warfare is based on deception.

전투는 상대방을 속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격할 수 있지만 공격할 수 없는 것 처럼 보여야 하고, 쓸 수 있지만 쓸 수 없는 것 처럼 보여야 한다. 가까이 있지만 멀리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며,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 손자(孫子)

http://en.wikipedia.org/wiki/The_Art_of_War

War, The Art of War



故曰: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

- 孫武, 孫子, 謀攻篇 第三

So it is said that if you know your enemies and know yourself, you can win a hundred battles without a single loss. If you only know yourself, but not your opponent, you may win or may lose. If you know neither yourself nor your enemy, you will always endanger yourself.

- Sun Tzu, The Art of War

Verses from the book occur in modern daily Chinese idioms and phrases, such as the last verse of Chapter 3.

고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남을 알지 못하나 나를 알면 일승일패이고, 남을 알지도 못하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故曰: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고왈 :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 제삼(第三)

http://en.wikipedia.org/wiki/The_Art_of_War

[중국스토리인물史]漢 제국의 기틀을 닦은 名臣 소하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21011184461599

[중국스토리인물史]漢 제국의 기틀을 닦은 名臣 소하

최종수정 2014.02.10 11:18

소하(蕭何, ?~B.C. 193)는 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명신이다. 그는 장쑤성 패군 풍현 출신으로 한신, 장량, 조참, 진평 등과 함께 개국공신이다. 개국공신 중 으뜸으로 평가됐고 고조와 한나라에 멸사봉공했다.
 
그는 진시황 시대에 향리에서 진나라의 하급관리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동향 출신인 백수건달 유방과 친구가 됐다. 젊은 시절부터 협객의 풍모를 보이는 유방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여러 차례 편의를 봐주곤 했다. 유방이 노역을 감독하기 위해 수도 함양으로 떠날 때도 적잖은 노잣돈을 줄 정도로 우의를 보여줬다.
 
소하는 꼼꼼한 일처리로 신임을 받아 사수군의 관리로 임용되었다. 몇 년이 흘러 천하는 2세 황제의 난정과 환관 조고의 전횡으로 어지러워졌고 진승ㆍ오광의 봉기를 시작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이어졌다. 패현도 시대의 파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민들은 무능한 지사를 내쫓고 유방을 새로운 지도자로 옹립했다. 유방의 천하대업이 시작된 것이다.
 
유방의 군대는 B.C. 208년 반진 연맹의 맹주인 초 회왕의 지시에 따라 함양 공략에 나섰다. 함양 입성 후 장수와 장병들이 재물에 혈안이 되었을 때 그는 승상부와 어사부에 보관된 진나라 공문서를 접수해 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훗날 뛰어난 재상의 안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치국과 평천하의 근간이 되는 법령과 문서의 중요성을 꿰뚫어 본 것이다. 천하가 통일된 후 고조의 명을 받들어 도율(盜律), 적률(賊律) 등 구장률을 제정했는데 그 초석이 된 것이 바로 진의 법령이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그의 진가가 나타났다. 진나라 멸망 후 유방은 변방인 파ㆍ촉ㆍ한중 땅을 받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유방의 장수들은 항우와의 일전을 부르짖었지만 그는 냉정한 현실논리로 반대했다. 힘이 강한 항우와 싸워 죽기보다는 한중에서 백성을 보살피고 인재를 모아 파ㆍ촉을 평정하면 천하를 도모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유방은 파ㆍ촉과 삼진 지방을 장악함으로써 항우와 호각지세를 이룰 수 있었다. 그의 탁견이 보스를 구한 것이다.
 
유방이 연패함에도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후방인 관중을 든든히 하고 전쟁 물자를 적시에 공급한 소하 덕분이다. 관중에 머물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전쟁 뒷바라지에 만전을 기했다. 싸움터에 있는 유방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젊은 사람을 모두 전선으로 보냈다. 유방의 의심이 풀린 것은 물론이다.
 
그의 커다란 업적은 한신을 유방에게 추천한 것이다. 한신은 항우 휘하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천하를 다투고자 한다면 한신이 없으면 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한신을 천하에 비길 자가 없는 국사무쌍(國士無雙)으로 비유했다. 한신을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비로소 항우와 대등한 전력을 갖출 수 있었다.
 
천하통일 후 그는 체제 정비, 법률 개폐, 행정기구 정리 등 제국의 안정에 올인했다. 여러 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국정이 안정될 수 있었던 것은 소하, 조참, 진평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소하가 만들고 조참이 지킨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사자성어가 두 명재상의 콤비플레이를 잘 말해준다.
 
제 갈 길을 분별한다는 말이 소하의 뛰어난 처세술을 잘 설명해준다. 공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유방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매사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유방은 수도를 여러 차례 비웠다. 원한을 품은 자가 밀고를 해 반역죄로 몰리면 숙청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재산을 헌납하거나 의도적으로 백성들의 인심을 잃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신중함이 그를 사지에서 구했고, 경포, 팽월 등의 비극적 말로와 크게 대조된다. B.C. 193년 병석에 누웠다. 황제인 혜제는 후계자에 대해 물었고 기꺼이 조참을 추천했다. 조참은 그가 만들어놓은 제도를 잘 지켰다. 사기 한서에는 "조참이 그의 뒤를 이어 지키며 조금도 벗어나지 않네. 백성은 편안하네"라고 둘을 높이 평가했다. 소하는 고금에 비길 데 없는 명재상이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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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ZHUGE Liang


謀事在人成事在天。

- 諸葛亮, 三國演義

Man proposes, god disposes.

- ZHUGE Liang (諸葛亮, 181–234),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三國演義)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謀事在人成事在天(모사재인성사재천)]

- 제갈량(諸葛亮), 삼국연의(三國演義)

謀 꾀할 모 | 事 일 사 | 在 있을 재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事 일 사 | 在 있을 재 | 天 하늘 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謀事在人成事在天(모사재인성사재천) | 謀事在人(모사재인) | 成事在天(성사재천) |

Time, Thousand Character Classic


尺璧非寶寸陰是競。

- 千字文

Jade has a price but time is priceless.

- Thousand Character Classic (千字文)

한 자 구슬도 보배가 아니니 한 치 시간을 보배로 여겨라. [尺璧非寶寸陰是競(척벽비보촌음시경)]

- 천자문(千字文)

尺 자 척 | 璧 구슬 벽 | 非 아닐 비, 비방할 비 | 寶 보배 보 | 寸 마디 촌 | 陰 그늘 음, 침묵할 암 | 是 이 시, 옳을 시 | 競 다툴 경 |


출전

千字文 (Thousand Character Classic, 천자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尺璧非寶(척벽비보) | 寸陰是競(촌음시경) |

시간 관련 성어

¶ 少年易老学难成,一寸光阴不可轻。(朱憙)
The young become old soon. It takes a lot of time to learn something. We must not waste any time. [Zhu Xi (朱憙, 1130-1200)]
젊은이가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보내서는 안된다. [주희(朱憙)]

¶ Time is money.(Western Proverb)
시간은 돈이다. (서양속담)

¶ You may delay, but time will not. (Benjamin Franklin)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시간명언)


http://en.wikipedia.org/wiki/Thousand_Character_Classic
http://en.wikipedia.org/wiki/Talk%3AThousand_Character_Classic

Nature, Chinese Proverb


If I keep a green bough in my heart, the singing bird will come.

- Chinese Proverb

만약 내 마음에 녹색 가지가 있다면, 노래하는 새가 올텐데.

- 중국속담

격랑의 동북아, 패권적 헤게모니 다툼의 향방은?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34404

격랑의 동북아, 패권적 헤게모니 다툼의 향방은?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우리의 선택
Written by. 장순휘
입력 : 2014-01-28 오전 9:05:15

중국의 민족성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4자 성어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해도 실언은 아닐 것이다. 우공이산의 우화(寓話)는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어떤 큰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비유에서 유래한다.

이 우화의 출전은 열자(列子) <탕문편(탕問篇)>에 나오는 우화로서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우공이라는 90세 노인이 살았다. 이 큰 두 산이 왕래에 장애가 되자 우공은 산을 깎아 없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까지 곧장 길을 내기로 결심하고 판 흙을 등짐을 지고 발해 (渤海)에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다녀오는데 1년씩 걸리니 사람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공은 눈 하나 깜짝도 안하고 자자손손 흙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두 산이 없어질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산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고, 차라리 산을 옮겨 주는게 좋겠다고 옥황상제님께 보고를 했다. 옥황상제는 우공의 인내와 의지에 감동하였고, 힘의 신 과아(夸娥)의 두 아들을 시켜 각각 두 산을 들어다가 태행산은 삭동에, 왕 옥산은 옹남에 옮겨 놓았다는 우화이다. 중국민족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담고 있는 얘기로서 ‘만만디(慢慢的)’ 와 더불어 대표적인 우화인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냉전시대의 낙후성을 벗어나고 있으며, 21세기 첨단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군사력분야에서 과거인 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다수 병력 위주의 재래식 전력이 아닌 최첨단의 막강한 정예정규군을 육성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심각한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의 댜오위다오섬(센카쿠섬) 영토분쟁에서 보여주는 중국 군부의 시위양상은 결코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는 것을 역사 속에서 감지할 수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는 치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史實)이다. 1274년 충렬왕 원년 ‘여원연합군’ 33,000명과 전함 900척이 왜(倭)정벌을 위해 출정했다가 쓰시마 섬과 이끼섬를 점령하고 본토를 공격하였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을 만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철수했고, 2차 원정 때에는 만반의 대비를 한 일본군의 저항이 심한데다 또다시 태풍을 만나 원정군은 10만의 병력을 잃고 실패했다.

충렬왕 20년(1294년) 3차 원정을 준비하던 원세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왜국 정벌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후 선조 25년(1592년)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빌미로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명나라와 연합으로 싸운 임진왜란도 결과론적으로는 강화를 요청한 명나라가 일본과 제3자적 관점에서는 패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894년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진행된 청일전쟁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한반 도내에서 7월29일 성환전투 패전에 이어서 9월17일 아시아의 최강이며, 세계 8위의 전력을 자랑하던 청의 북양함대가 일본 함대를 상대로 화력이 우위에 있었음에 도 선원들의 경험과 기동력의 열세로, 참가한 10대의 군함 중 5척이 침몰, 3척이 파손되었으며, 850명이 사망하고 500명이 부상당하는 참패를 당하면서 전황은 급격히 청나라의 패전으로 기울었다. 청나라의 요청으로 1895년 4월 17일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으니, 이 또한 중국의 패전이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리고 근대사에서도 중국은 1931년~1932년 만주사변(滿洲事變)과 1937년~1945년 중일전쟁(中日戰爭)에서도 사실상 일본에 참패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청나라 말기 세계열강에 연전연패를 당해서 국권이 침탈당한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1차 아편전쟁(1839년~1842년)과 제2차 아편전쟁(1856년~1860년)에서 영국에 패전했으며, 6·25전쟁(한국전쟁) 즉 ‘항미원조전쟁’(1950년~1953년)도 결과론적으로 휴전을 유도하면서 15만 여명이 사망하고도 이긴 전쟁으로 볼 수 없다. 그 후 1979년~1988년에 베트남과의 국경분쟁으로 시작한 중월전쟁에서도 베트남 침공의 전략적 목표를 포기한 채 일방적으로 철수하여 종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베트남에 패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아시아의 최대강국을 자처하던 중국의 과거사에서의 전쟁기록은 패전으로 얼룩진 치욕의 전쟁역사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의 종지부를 내릴 수 있도록 한 지도자가 바로 등소평(鄧小平)으로서 그는 1976년 마오쩌둥의 사후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안정을 기하면서 젊은 후계자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국가지도지침을 내려서 대외적으로 국제사회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내부적으로 국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도록 했다.

1990년대 “화평굴기 (和平崛起)”라 하여 개혁개방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아시아의 주변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위장평화전술을 외교적 지침으로 지난 20여 년간 추구하면서 “도광양회”라는 국가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군사력 구축을 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난 2012년 4월 16일 일본 정부가 개인소유의 센카쿠섬에 대한 국유화계획 발표 로 점화된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은 양국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기 일보직전의 첨예한 상황까지 간적이 있다. 작년 9월 11일 일본의 센카쿠섬의 국유화 강행이후에 중국은 수시로 12해리 영해를 침범하여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을 무시하고 있으며, 올해는 중국해 경국을 새로 발족하여 강력한 군사적 대응 불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센카쿠섬을 정찰하는 중국의 무인정찰기를 격추할 수 있다고 한 것에 대하여 중국은 전쟁으로 간주한다고 맞대응한 상태인 점을 본다면 충돌의 직전의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지난 11월 1일 일본 자위대가 실시한 육·해·공군 총 3만4천 명이 참가한 대규모 상륙실전훈련은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상정한 연습이었으니 갈등의 골이 점점더 깊어지 는 양상이다.

과거와 달리 중국의 강경한 군사적 동향과 외교적 강경자세는 도광양회의 군사력과 함수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군사력은 과거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각인된 인민해방군의 구태의연한 군이미지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무장력을 갖춘 세계 2위의 강군이라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은 2030년을 목표로 미국의 패권주의에 도전하고 있으며, 항공모함과 스텔스 전투기 분야의 독자기술을 개발을 완료하는 등 최첨단의 강대군 235만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해군력의 대일 압박 강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중국 해군이 산동반도 칭따오에 기지를 둔 북해함대를 공개한 것은 1894년 9월 17일 패전한 청나라 북양함대의 역사적 계승부대로서 항공모함과 구축함 100여대와 항공기 30여대로 편성된 서해에 대한 군사장악력을 한국과 일본 양국에 공식통보한 바와 다름없는 군사적 준도발로 봐야할 것이다.

이번 북해함대의 공개는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댜오위다오섬 영유권분쟁에서 예상되는 해·공군력의 충돌을 염두에 둔 고도의 군사적 시위(Demonstration)라고 볼 수 있으며, 각골난망(刻骨難忘)해 오던 일본에 대한 북양함대의 설욕을 벼르고 있다는 중국군의 적개심을 국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선전포고성의 심리전을 병행했을 개연성도 있다.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중국의 정치·군사· 외교적 행보는 이미 화평굴기(和平崛起)를 넘어서 중국의 본성을 드러낸 대국굴기(大國崛起)의 21세기 행보라는 본질을 직시하고 미래안보차원의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을 강건너 등불 보듯이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한다. 어쩌면 중국의 고도로 계산된 주변국 길들이기는 아닌지도 대관소찰(大觀小察)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유사시 군사적 위협으로 동북아에서의 주도권(Hegemony)을 장악하겠다는 저의에 대한 정치군사외교적인 통합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센카쿠섬에 대한 영토분쟁 뿐만 아니라 독도에 대한 분쟁을 유발하면서 정권마다 반사이익 (反射利益)으로 안정적 내정을 챙기는 속좁은 꼼수정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인류사회에 저지른 죄과가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참배(神寺參拜)를 강행하여 아시아 전쟁피해국들에 대한 사죄와 반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와는 독도영유권분쟁을 지속적으로 촉발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지금 댜오위다오섬에 대한 영토분쟁으로 주변국을 긴장국면으로 몰아가는 강경일변도의 정치군사외교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직시해야 할 것은 일본의 이러한 행위에는 미일동맹에 근거한 일본 나름대로의 현대화된 군사력의 뒷받침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일본은 중국 무인정찰기의 센카쿠에 대한 영공침범시 격추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중국에 이에 대하여 전쟁으로 간주한다는 강경대응 발언을 함으로써 언제라도 무력충돌 가능한 분위기가 된 것도 자위대 군사능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군사적 자신감에서 지난 11월 1일 일본은 병력 3만4천명과 함정 6척, 항공기 380기 등이 참가한 대규모 상륙탈환작전연습을 강행하였고, 이 훈련은 센카쿠섬이 중국군에 점령당했을 경우를 상정하여 실전수준으로 실시한 의도된 군사훈련이었다. 더욱이 전후 평화헌법으로 유지해 온 현 국가체제에서 ‘집단적 자위권’ 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 역시 우리의 입장에서도 결코 좌시 할 수 없는 일본사회의 우경화 행태인 것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한다고 했고, 미국은 방위력 강화 차원에서 지지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반면에 우리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의견을 유보하고 있으나 조만간 발표해야할 중요한 외교적 의견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가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과연 어떠한 의견이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사실상 주권국가의 기본권적인 군사행위 영역일 수 있지만 상대가 전범국 일본인지라 재해석이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의 안보차원에서만 고려한다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차원에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우리의 안보적 차원에서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게 사실이다. 국가의 위기라는 것이 단순한 수치적 갈등이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한 총체적 사태로 촉발되는 경우이기에 주 적(主敵)인 북한의 군사적 도발능력을 전제할 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초유의 위기사태 시에는 연합예비 전력으로서 가치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집단적 자위권 보유가 미국의 서태평양에서의 군사적 부담을 덜고, 중국과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억제력으로 선순환의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6·25전쟁 시 낙동강전선까지 몰렸던 백척간두 (百尺竿頭)의 국가 존망 위기에서 유엔군의 집단적 자위권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었을까하는 악몽을 떠올려본다. 따라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양해가 한·일 군사동맹의 전제나 지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정세는 격랑의 시대를 앞둔 태풍전야라고도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중·일 영토분쟁으로 인한 국지적인 군사적 충돌이 예상되고, 그 승패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주도권 판도가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 관계도 이 연계선상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며, 만일 중국이 승전한다면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 결과는 북한에게도 군사적 도발을 자극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이 승전한다면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게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참전여부 가 확전의 결정적인 단초인데 미국은 확전으로 중동에 이은 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꺼리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기 중재로 확전을 방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 분쟁은 국지전으로서 양국의 자존심 싸움수준에서 중재될 것으로 예상되나 전쟁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주도권의 판도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할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전쟁전후의 정세분석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국가안보의 유리한 국면으로 활용 하고, 북한의 경거망동을 억제하는 전략으로 한미 동맹과 공조를 확고히 하면서 대북 경계 및 전투준비태세에 추호의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장순휘 (한국호국문화예술협회 사무총장)

자료 : 월간 충호 2014년 1월호(통권 24호)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34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