會者定離 (회자정리)

會者定離(회자정리)

會 모일 회 | 者 놈 자 | 定 정할 정/이마 정 | 離 떠날 리(이) | 붙을 려(여), 교룡 치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라는 말로,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인간(人間)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離別)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

출전: 유교경(遺敎經)


관련 한자어

유의어

生者必滅(생자필멸) | 無常轉變(무상전변)

상대어

去者必返(거자필반)


한탄 | 불교 | 유교경 | 遺敎經 |

膾炙人口 (회자인구)

膾炙人口(회자인구)

'회자'란 '고기에 회친 것과 구운 것'이란 뜻으로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글귀가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

橫說竪說 (횡설수설)

橫說竪說(횡설수설)

되는대로 조리가 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는 것

繪事後素 (회사후소)

繪事後素(회사후소)

繪 그림 회 | 事 일 사 | 後 뒤 후, 임금 후 | 素 본디 소, 흴 소 |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손질한 이후에 채색을 한다는 뜻으로, ①그림을 그릴 때 흰색을 제일 나중에 칠하여 딴 색을 한층 더 선명(鮮明)하게 함 ②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

[출전]
논어 팔일편

畵虎類狗 (화호유구)

畵虎類狗(화호유구)

畵 그릴 화 | 虎 범 호 | 類 같을 류 | 狗 개 구 |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 꼴이 됨.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기,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은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이라는 경박한 조카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라는 편지를 썼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나 단점을 비난한다거나, 국가의 대사(大事)를 함부로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 한다. 나는 사람됨이 후덕하고 신중하며 청렴했던 산도현(山都縣)의 현령 용백고(龍伯高)와 의협심이 강한 월기사마(越騎司馬) 두계량(杜季良)을 존경하고 있지만, 너희들이 그들을 본받기는 바라지 않는다. 용백고처럼 되는지 못한다하더라도 조정의 신임을 받는 관리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너희들이 두계량을 본받는다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는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도리어 개를 그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畵虎不成反類狗者也].

畵虎類狗란 서투른 솜씨로 큰일을 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각곡류목(刻鵠類鶩) | 화룡유구(畵龍類狗) | 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 |

和風暖陽 (화풍난양)

和風暖陽(화풍난양)

화창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곧 좋은 날씨

黃宗羲 (황종희, 1610~1695)

황종희(黃宗羲, 1610~1695)

중국 명말·청초의 사상가. 박람(博覽)과 실증(實證)을 존중하고, 청나라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명대의 철학사(哲學史)라고 할 《명유학안(明儒學案)》, 군주 독재제도를 통렬히 비판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명저(名著)로 알려졌다.


호 남뢰(南雷)·이주(梨洲). 자 태충(太沖). 저장성(浙江省) 위야오[餘姚]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존소(黃尊素)는 동림당(東林黨)의 명사로, 동림당 탄압 때 옥사하였다. 황종희는 숭정연간(崇禎年間:1628∼1644)에 당시의 문학적 결사 '복사(復社)'에 가맹하여 환관파(宦官派)를 배척하는 정치운동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의 젊은이 수백 명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하였고, 또한 명나라 유왕(遺王)인 노왕(魯王)을 따라 만주(滿洲)에서 청군(淸軍)에 저항하였다. 그뒤 고향에 돌아가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청나라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평생토록 이민족의 군주를 섬기지 않았으며, 명사(明史)의 편찬시에는 아들과 제자를 명사관(明史館)에 보내어 고국의 역사를 남기려고 힘썼다.

그의 학문은 박람(博覽)과 실증(實證)을 존중하고, 청나라 학문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는데, 명대(明代)의 철학사(哲學史)라고 할 《명유학안(明儒學案)》, 군주 독재제도를 통렬히 비판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명저(名著)로 알려졌다. 특히 《명이대방록》은 청말(淸末) 혁명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

明夷待訪錄(명이대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