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를 알고 소신대로 말한다.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모택동) 치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권력 암투와 숙청의 공포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 오늘의 2인자의 의자가 하루아침에 빠지거나 ‘하방’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권력의 중심 베이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변방으로 귀향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자비한 권력 투쟁에서 빗겨난 유일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저우언라이(주은래)이다. 그렇다고 그가 권력 중심부에서 벗어난 하급관리이거나 변방의 인물은 결코 아니다.
소신대로 말하라. 단, 상대를 알고 있다면
마오쩌둥보다 다섯 살 연하의 저우언라이는 무려 27년 간 총리로 재임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부침 없이 마오쩌둥을 보좌했던 인물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2인자로 오르내리며 권력의 쓴맛, 단맛을 겪는 동안 저우언라이는 단 한 번의 자리 변동도 없었다. 한때 마오쩌둥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린 린뱌오(임표)의 쿠데타 실패로 인한 비행기 사고사, 특히 1100만 홍위병의 광풍이 중국 대륙을 휘감던 1966년 이후의 문화대혁명 당시 국가주석 류샤오치(유소기), 덩샤오핑(등소평) 등은 죽거나 온갖 박해를 받았지만 저우언라이만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저우언라이가 ‘무색무취의 공무원 신조’로 무조건 마오쩌둥에게 아부하며, 조직의 그늘에 숨어 생존했을 것이라 상상하지만 실제 저우언라이는 현재의 중국을 기초한 명재상이다. 그런 그가 최고 권력자의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언행으로만 그 자리를 보존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우언라이의 처세의 기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상사의 의도와 지시의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일화가 있다.
당시 마오쩌둥의 부인은 장칭(강청). 그녀는 마오쩌둥과는 고난의 연안대장정 시절부터 함께 했던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 그래서인지 장칭은 국가 현안부터 사적인 문제까지도 마오쩌둥에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목소리 큰 부인은 동서고금을 통해 남편에게는 불편한 존재. 중국의 1인자로 군림하던 마오쩌둥도 장칭에게만은 한 수 접는 일이 가끔은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도 잦았는데 부부싸움 후 언짢은 기분으로 당 정치국 회의를 주도했던 마오쩌둥은 회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슬쩍 했다고 한다.
“동지들, 내가 장칭과 이혼을 생각 중인데 동지들 생각은 어떻소?”
그러면 누구나 예외 없이 마오쩌둥의 의견에 동조하는 발언들을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주석.”
그 순간 고개를 끄떡이는 마오쩌둥에게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이가 바로 저우언라이였다.
“주석,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장칭 동지는 주석의 정치적 동반자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무리지어 나오면서 사람들은 저우언라이를 눈치 없는 사람 취급하며 ‘큰일이군. 저우언라이의 앞날도 이젠 끝이야’라며 혀를 찼지만 결과는 항상 저우언라이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모두가 ‘예스’라 할 때 절대 권력자 면전에서 저우언라이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저우언라이가 이미 마오쩌둥의 발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부부싸움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고 마는 만고의 진리를 바탕으로 마오쩌둥이 이혼을 얘기하는 자체가 그 자리에서 ‘노’ 소리를 듣고 싶은 속마음을 읽은 것이다. 오랜 시간 마오쩌둥을 보좌하며 마오쩌둥의 의견 개진 방식과 업무 지시 형태를 파악한 것이다.
“아니, 말려야지, 이혼하라고 오히려 부추겨. 이 사람들이 참.”
마오쩌둥은 오히려 이혼에 찬성한 간부들을 언짢게 생각하고 저우언라이에 대한 신임은 더욱 깊게 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란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신은 남보다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거기서 거기, 즉 별로 차이가 안 난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요, 부모가 되어서든, 직장 상사가 되어서든 이 정도면 나는 잘한다고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자식들이 내 마음을 안 알아주는 것일까?
세상에 나정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맹자>의 오십보백보이론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맹자가 살던 시대에 양혜왕(梁惠王)이란 지도자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백성들에게 정치를 하고 있소.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 사람은 하동(河東)지방으로 옮겨 살게 하고, 거동 못하는 늙은이와 아이들을 위해서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오.
그러나 이웃나라 지도자가 정치하는 것을 살펴보니 나 같이 백성들에게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 것 같소.
그런데 도대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나라 백성들 또한 많아지지 않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양혜왕이 맹자에게 자문을 구한 내용입니다. 세금을 내고 부역을 담당하던 백성의 숫자가 국력이었던 시절, 양혜왕은 어째서 백성들이 자신의 나라로 몰려들지 않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왜 민심이 자기에게 쏠리지 않는지를 궁금해 했던 것인데요,
최선을 다해서 백성들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데 왜 백성들이 나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느냐는 왕의 질문에 맹자는 오십보백보 이론으로 대답합니다. "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씀드리지요.
전쟁터에서 한창 접전일 때 두 병사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질질 끌고 도망쳤습니다.
어떤 병사는 백 보를 도망가서 멈추고(或百步而後止) 어떤 병사는 오십 보를 도망가서 멈추었습니다(或五十步而後止). 그때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며 비웃고 나무랐다면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터에서 오십 보를 도망 간 것이든 백보를 도망간 것이든 도망간 거리만 다를 뿐이지 도망간 것은 똑같다는 이치를 아신다면 민심이 당신에게 몰리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왕의 정치나 이웃 나라 왕의 정치나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입니다.”
오십 보 도망 가놓고 백보 도망간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세상엔 많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남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보다 과대 포장하고 헐뜯는 것이 생존 무기가 되어 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무작정 다른 사람을 향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그런 문제점이 없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논어에서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비교하면서 군자는 모든 책임을 질 줄 알며, 자신에게 먼저 잘못을 묻는 사람이라 하고 있습니다. 즉 남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병사를 보고 웃었다는 맹자의 오십보백보 이야기가 오늘날 낮선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박재희였습니다.
From 넷향기(postmaster@nethyangki.net)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란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신은 남보다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거기서 거기, 즉 별로 차이가 안 난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요, 부모가 되어서든, 직장 상사가 되어서든 이 정도면 나는 잘한다고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자식들이 내 마음을 안 알아주는 것일까?
세상에 나정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맹자>의 오십보백보이론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맹자가 살던 시대에 양혜왕(梁惠王)이란 지도자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백성들에게 정치를 하고 있소.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젊은 사람은 하동(河東)지방으로 옮겨 살게 하고, 거동 못하는 늙은이와 아이들을 위해서는 하동에서 곡식을 가져다가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동에 기근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오.
그러나 이웃나라 지도자가 정치하는 것을 살펴보니 나 같이 백성들에게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 것 같소.
그런데 도대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나라 백성들 또한 많아지지 않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양혜왕이 맹자에게 자문을 구한 내용입니다. 세금을 내고 부역을 담당하던 백성의 숫자가 국력이었던 시절, 양혜왕은 어째서 백성들이 자신의 나라로 몰려들지 않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왜 민심이 자기에게 쏠리지 않는지를 궁금해 했던 것인데요,
최선을 다해서 백성들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데 왜 백성들이 나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느냐는 왕의 질문에 맹자는 오십보백보 이론으로 대답합니다. "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씀드리지요.
전쟁터에서 한창 접전일 때 두 병사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질질 끌고 도망쳤습니다.
어떤 병사는 백 보를 도망가서 멈추고(或百步而後止) 어떤 병사는 오십 보를 도망가서 멈추었습니다(或五十步而後止). 그때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며 비웃고 나무랐다면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터에서 오십 보를 도망 간 것이든 백보를 도망간 것이든 도망간 거리만 다를 뿐이지 도망간 것은 똑같다는 이치를 아신다면 민심이 당신에게 몰리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왕의 정치나 이웃 나라 왕의 정치나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입니다.”
오십 보 도망 가놓고 백보 도망간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세상엔 많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남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보다 과대 포장하고 헐뜯는 것이 생존 무기가 되어 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무작정 다른 사람을 향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그런 문제점이 없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논어에서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비교하면서 군자는 모든 책임을 질 줄 알며, 자신에게 먼저 잘못을 묻는 사람이라 하고 있습니다. 즉 남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병사를 보고 웃었다는 맹자의 오십보백보 이야기가 오늘날 낮선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박재희였습니다.
From 넷향기(postmaster@nethyangki.net)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 무중생유(無中生有)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 재 희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어떤 방법도 없을 막막할 때가 있을 겁니다. 돈은 모두 떨어지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 있고 주변에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때 이런 막막한 때에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난국을 돌파 하시겠습니까? 이럴 땐 무중생유의 병법을 한번 떠 올림심이 어떠십니까?
무중생유(無中生有)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라(生)!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없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 속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 없다고 주저앉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방법을 찾으면 길이 보일 것이다. 뭐 이런 전술 입니다.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한탄만 한다고 해결 방법이 찾아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무중생유의 전술을 이해하는 유능한 리더의 행동방식입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적의 화살 10만개를 만들어 쓴 것도 무중생유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긍정의 힘이 결국 답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전술의 철학적 토대는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천하의 모든 존재는 유(有)에서 나오지만 그 유(有)는 결국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결국 ‘없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있음의 유(有)는 없음인 무(無)가 있을 때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유는 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무중생유의 계책은 세상의 사물은 모두 변화 발전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가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유(有)와 무(無)의 상생을 본 것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혹독하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그 속에서 새로운 성공의 싹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무중생유’의 철학입니다.
이 전술을 유용하게 사용한 역사적 예가 있습니다. 당(唐)나라 안록산(安祿山)은 반란을 일으켜 많은 지방 관리들을 투항시켰습니다. 그런데 장순(張巡) 장군만은 당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투항하지 않고 3천명의 병력으로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안록산은 4만의 군대를 보내 성을 포위하였고 성안에 군대는 화살이 떨어져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무(無)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무기든 병력이든 어떤 것도 없었던 장순은 무중생유(無中生有)의 전술을 사용합니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풀로 만든 배를 보내 적의 화살을 얻었듯이 풀로 엮어 만든 거짓 병사들에게 검은 옷을 걸쳐 야간에 성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적군은 성안의 군사들이 야간 공격을 해온다고 생각하여 화살을 소나기처럼 퍼부었고 장순은 쉽게 적의 화살 수십만 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적은 자신들이 속았다고 분노하였고 그 날 밤 장순은 정예부대 5백 명을 다시 내려 보내 안심하고 있는 적의 진영을 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의 혼란한 틈을 타서 성안의 병사들을 이끌고 총 공격을 하여 승리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무중생유’의 전술이 먹혀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이 전술을 사용할 때 두 가지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조건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둘째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신속하게 허(虛)를 실(實)로 전환하고 거짓(僞)을 진짜(眞)로 전환하고, 무(無)를 유(有)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살면서 얼마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위기에서 탈출하느냐 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가 다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무중생유(無中生有)라!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라! 원래부터 있는 것은 없다. 없음에서 있음이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긍정의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무중생유의 전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박재희였습니다.
넷향기(http://nethyangki.net/)에서 받은 글입니다.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 재 희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어떤 방법도 없을 막막할 때가 있을 겁니다. 돈은 모두 떨어지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 있고 주변에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때 이런 막막한 때에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난국을 돌파 하시겠습니까? 이럴 땐 무중생유의 병법을 한번 떠 올림심이 어떠십니까?
무중생유(無中生有)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라(生)!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없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 속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 없다고 주저앉지 말고 신념을 가지고 방법을 찾으면 길이 보일 것이다. 뭐 이런 전술 입니다.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한탄만 한다고 해결 방법이 찾아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무중생유의 전술을 이해하는 유능한 리더의 행동방식입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적의 화살 10만개를 만들어 쓴 것도 무중생유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긍정의 힘이 결국 답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전술의 철학적 토대는 노자의 도덕경입니다. ‘천하의 모든 존재는 유(有)에서 나오지만 그 유(有)는 결국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결국 ‘없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있음의 유(有)는 없음인 무(無)가 있을 때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유는 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무중생유의 계책은 세상의 사물은 모두 변화 발전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가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유(有)와 무(無)의 상생을 본 것입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혹독하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그 속에서 새로운 성공의 싹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무중생유’의 철학입니다.
이 전술을 유용하게 사용한 역사적 예가 있습니다. 당(唐)나라 안록산(安祿山)은 반란을 일으켜 많은 지방 관리들을 투항시켰습니다. 그런데 장순(張巡) 장군만은 당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투항하지 않고 3천명의 병력으로 성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안록산은 4만의 군대를 보내 성을 포위하였고 성안에 군대는 화살이 떨어져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무(無)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무기든 병력이든 어떤 것도 없었던 장순은 무중생유(無中生有)의 전술을 사용합니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풀로 만든 배를 보내 적의 화살을 얻었듯이 풀로 엮어 만든 거짓 병사들에게 검은 옷을 걸쳐 야간에 성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적군은 성안의 군사들이 야간 공격을 해온다고 생각하여 화살을 소나기처럼 퍼부었고 장순은 쉽게 적의 화살 수십만 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적은 자신들이 속았다고 분노하였고 그 날 밤 장순은 정예부대 5백 명을 다시 내려 보내 안심하고 있는 적의 진영을 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의 혼란한 틈을 타서 성안의 병사들을 이끌고 총 공격을 하여 승리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무중생유’의 전술이 먹혀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이 전술을 사용할 때 두 가지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조건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둘째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신속하게 허(虛)를 실(實)로 전환하고 거짓(僞)을 진짜(眞)로 전환하고, 무(無)를 유(有)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살면서 얼마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위기에서 탈출하느냐 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가 다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무중생유(無中生有)라!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라! 원래부터 있는 것은 없다. 없음에서 있음이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긍정의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무중생유의 전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박재희였습니다.
넷향기(http://nethyangki.net/)에서 받은 글입니다.
Five fingers peak
Five fingers peak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 Description | English: Five fingers peak. Quartzite sandstone Huangshizhai Zhangjiajie Wulingyuan Hunan, China. Panorama 2012. Français : Panorama des Cinq Doigts, piliers de grès quartzite dans le Wulingyuan, site naturel et historique inscrit au patrimoine mondial de l'UNESCO dans la province du Hunan, en Chine. 중국 천자산 무릉원 |
| Date | 26 October 2014 |
| Source | http://commons.wikimedia.org/ |
| Author | chensiyuan |
| Camera location | 29° 20′ 21.56″ N, 110° 31′ 54.48″ E |
| Permission |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as published it under the following license: |
| Licensing | Permission is granted to copy, distribute and/or modify this document under the terms of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Version 1.2 or any later version published by the Free Software Foundation; with no Invariant Sections, no Front-Cover Texts, and no Back-Cover Texts. A copy of the license is included in the section entitled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International, 3.0 Unported, 2.5 Generic, 2.0 Generic and 1.0 Generic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to adapt the work Under the following conditions: attribution – You must attribute the work in the manner specified by the author or licensor (but not in any way that suggests that they endorse you or your use of the work). share alike – If you alter, transform, or build upon this work, you may distribute the resulting work only under the same or similar license to this one. You may select the license of your cho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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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an,
Wulingyuan,
Zhangjiajie,
중국 천자산 무릉원
Yang Gui Fei (楊貴妃)
Yang Gui Fei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 Description | Yang Gui Fei;hanging scroll,color on silk 楊貴妃図 絹本着色 양귀비(楊貴妃, 719~756) |
| Date | 1821 江戸時代後期 |
| Source | SEIKADO BUNKO ART MUSEUM 静嘉堂文庫美術館 http://commons.wikimedia.org/ |
| Author | Takaku Aigai(1796 - 1843) 高久靄厓 |
| Camera location | . |
| Permission | Public Domain |
| Licensing | This is a faithful photographic reproduction of a two-dimensional, public domain work of art. The work of art itself is in the public domain for the following reason: This image (or other media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because its copyright has expired. This applies to Australia, the European Union and those countries with a copyright term of life of the author plus 70 years. This file has been identified as being free of known restrictions under copyright law, including all related and neighboring rights. |
From Wikimedia Commons http://commons.wikimedia.org/
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공자(孔子)가 들려주는 孝 이야기
박재희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고 계십니까? 사실 효도를 계획을 세워놓고 한다는 것, 전통적인 효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닌 듯합니다. 효도는 항상 하는 상식적 개념이지 ’언제’라고 하는 한시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집안에서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효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 해보셨습니까?
공자가 논어 속에서 들려주는 효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공자는 공경함이 없는 물질적 봉양만이 효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遊)가 효는 물질적 봉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효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요즘 사람들 효도하는 방법은 그저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봉양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물질적인 봉양은 자신이 아끼는 개나 말한테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물질적 봉양만 해준다면 이것은 자기가 아끼는 개나 말에게 잘 먹이고 잘해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라도 皆能有養이니라. 不敬이면 何以別乎이요)."
공경함이 없이 그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만 잘해주는 것, 그것만 갖고는 자신이 아끼는 애완견과 비교해서 다름이 없다는 아주 날카로운 공자의 지적입니다.
어버이날 효도 관광 시켜주고 다달이 통장에 용돈 자동이체 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효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측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인 봉양에 공경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효도가 아닐까요?
둘째 공자는 자식이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사는 것, 이것도 효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의 힘 있는 대부(大夫)의 아들이었던 맹무백(孟武伯)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와서 효를 물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주 병에 걸리는 병약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는 말이야 자식이 아픈 것을 가장 근심으로 생각하는 분들이야! 그러니 당신 같은 경우는 안 아픈 것, 그것이 효도하는 것이야(父母唯其疾之憂이라)."
자식의 입장에서 아프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하는 건데요, 부모가 되신 여러분들은 아마 모두 아실 겁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사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 하시는 분들이 진정 부모님들이십니다.
효도! 어떻게 생각하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 하는 것도 얼마든지 효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셋째 공자는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것, 이것이 효도라고 강조합니다.
자하(子夏)라는 공자의 제자가 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잘 관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 고생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르신 먼저 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 효라고 생각하는가?”
색난(色難)이라. 표정관리! 이것이 진정 효의 본질입니다.
아마 질문을 했던 자하라는 공자의 제자는 부모에게 늘 찡그린 모습만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회사 일이 좀 안 된다고 부모 앞에서 얼굴 표정 찡그리거나 한 숨 쉬는 자식을 바라보는 그 부모의 마음, 과연 어떻겠습니까? 부모 앞에서는 정말 어떤 순간이라도 얼굴을 편안하게 갖고 대하는 것, 쉽지 않은 효도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듯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효도에 관한 생각을 보면, 효란 물질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인 것, 이런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효도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효도의 원칙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라는 거죠.
오늘 한번 부모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시고 그 일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효도는 때로는 공경이요, 때로는 부모 앞에 편안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며, 어떤 때는 안 아픈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효도라고 할 것입니다.
http://www.nethyangki.net/
받은 글입니다.
박재희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고 계십니까? 사실 효도를 계획을 세워놓고 한다는 것, 전통적인 효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효는 아닌 듯합니다. 효도는 항상 하는 상식적 개념이지 ’언제’라고 하는 한시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집안에서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효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 해보셨습니까?
공자가 논어 속에서 들려주는 효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공자는 공경함이 없는 물질적 봉양만이 효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였던 자유(子遊)가 효는 물질적 봉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효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요즘 사람들 효도하는 방법은 그저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봉양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물질적인 봉양은 자신이 아끼는 개나 말한테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물질적 봉양만 해준다면 이것은 자기가 아끼는 개나 말에게 잘 먹이고 잘해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라도 皆能有養이니라. 不敬이면 何以別乎이요)."
공경함이 없이 그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만 잘해주는 것, 그것만 갖고는 자신이 아끼는 애완견과 비교해서 다름이 없다는 아주 날카로운 공자의 지적입니다.
어버이날 효도 관광 시켜주고 다달이 통장에 용돈 자동이체 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효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측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적인 봉양에 공경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효도가 아닐까요?
둘째 공자는 자식이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사는 것, 이것도 효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의 힘 있는 대부(大夫)의 아들이었던 맹무백(孟武伯)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와서 효를 물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주 병에 걸리는 병약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는 말이야 자식이 아픈 것을 가장 근심으로 생각하는 분들이야! 그러니 당신 같은 경우는 안 아픈 것, 그것이 효도하는 것이야(父母唯其疾之憂이라)."
자식의 입장에서 아프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하는 건데요, 부모가 되신 여러분들은 아마 모두 아실 겁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아무 사고 없이 사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 하시는 분들이 진정 부모님들이십니다.
효도! 어떻게 생각하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 하는 것도 얼마든지 효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셋째 공자는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표정관리를 잘하는 것, 이것이 효도라고 강조합니다.
자하(子夏)라는 공자의 제자가 효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잘 관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님 고생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르신 먼저 드리는 것, 이것이 진정 효라고 생각하는가?”
색난(色難)이라. 표정관리! 이것이 진정 효의 본질입니다.
아마 질문을 했던 자하라는 공자의 제자는 부모에게 늘 찡그린 모습만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회사 일이 좀 안 된다고 부모 앞에서 얼굴 표정 찡그리거나 한 숨 쉬는 자식을 바라보는 그 부모의 마음, 과연 어떻겠습니까? 부모 앞에서는 정말 어떤 순간이라도 얼굴을 편안하게 갖고 대하는 것, 쉽지 않은 효도의 한 방식입니다.
이렇듯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효도에 관한 생각을 보면, 효란 물질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인 것, 이런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효도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효도의 원칙은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시라는 거죠.
오늘 한번 부모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시고 그 일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효도는 때로는 공경이요, 때로는 부모 앞에 편안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며, 어떤 때는 안 아픈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효도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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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怨天不尤人 (불원천불우인)
不怨天不尤人(불원천불우인)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자고 나면 터지는 숱한 사건 주변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멸하려 한다. 당사자는 상황에 책임을 돌리고, 방관자는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불원천(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불우인(不尤人)! 남을 탓하지 마라! 선비들이 인생을 살다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마다 외쳤던 인생의 화두였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내 탓이오!’ 철학은 남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하는 오늘날 세태에 책임의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능멸하지 마라!
재하위불원상(在下位 不援上)!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함부로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마라!
정기이불구어인즉무원(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나를 먼저 바르게 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에게도 원망을 사지 않을 것이다. 상불원천(上不怨天)!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하불우인(下不尤人)! 아래로는 남을 허물하지 말라!’
'중용'에 나오는 명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마다 조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을 허물하면 결국 그 역경과 고통은 더욱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잘못을 결국 나에게 있다는 생각은 아름답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내 탓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자는 활쏘기를 통해 군자의 책임의식을 비유하고 있다. 활을 쏘아 과녁에 맞히지 못했을 때 결국 모든 책임은 활 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자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실저정곡(失諸正鵠), 내가 활을 쏘아 과녁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반구저기신(反求諸其身),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4자 성어가 나오는 중용의 구절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궁수가 활을 쏠 때 바람이 갑자기 불어 안 맞을 수도 있고, 활의 성능이 안 좋아 안 맞을 수도 있다.
옆에 사람이 성가시게 굴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너무 멀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활 쏘는 사수의 문제다. ‘내 탓이오!’ 라고 외치는 사수(射手)가 진정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운명(運命)이란 글자 그대로 나에게 다가온 상황(命)을 내가 통제(運)하는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한다고 그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가온 운명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견뎌나갈 때 진정 운명은 내 손아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 자득(自得)한 선비의 모습이 깃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From http://www.nethyangki.net/CDN/View.aspx?num=8584
받은 글입니다.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자고 나면 터지는 숱한 사건 주변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멸하려 한다. 당사자는 상황에 책임을 돌리고, 방관자는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불원천(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불우인(不尤人)! 남을 탓하지 마라! 선비들이 인생을 살다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마다 외쳤던 인생의 화두였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내 탓이오!’ 철학은 남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하는 오늘날 세태에 책임의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능멸하지 마라!
재하위불원상(在下位 不援上)!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함부로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마라!
정기이불구어인즉무원(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나를 먼저 바르게 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에게도 원망을 사지 않을 것이다. 상불원천(上不怨天)!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하불우인(下不尤人)! 아래로는 남을 허물하지 말라!’
'중용'에 나오는 명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마다 조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을 허물하면 결국 그 역경과 고통은 더욱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잘못을 결국 나에게 있다는 생각은 아름답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내 탓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자는 활쏘기를 통해 군자의 책임의식을 비유하고 있다. 활을 쏘아 과녁에 맞히지 못했을 때 결국 모든 책임은 활 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자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실저정곡(失諸正鵠), 내가 활을 쏘아 과녁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반구저기신(反求諸其身),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4자 성어가 나오는 중용의 구절이다.
서로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궁수가 활을 쏠 때 바람이 갑자기 불어 안 맞을 수도 있고, 활의 성능이 안 좋아 안 맞을 수도 있다.
옆에 사람이 성가시게 굴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너무 멀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활 쏘는 사수의 문제다. ‘내 탓이오!’ 라고 외치는 사수(射手)가 진정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운명(運命)이란 글자 그대로 나에게 다가온 상황(命)을 내가 통제(運)하는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한다고 그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가온 운명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견뎌나갈 때 진정 운명은 내 손아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 자득(自得)한 선비의 모습이 깃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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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遠益淸 (향원익청)
香遠益淸(향원익청)
香 향기 향 | 遠 멀 원 | 益 더할 익, 넘칠 일 | 淸 맑을 청 |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음을 더함.
연꽃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은 향기를 더한다.
이 말은 유난스레 연꽃을 사랑했던 중국의 화가 주돈이가 '애련설'에서 했던 말입니다. 연꽃은 해가 지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밤새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열어 다시 피어납니다.
그래서 주돈이의 아내는 저녁이면 종이에 차를 싸서 연꽃 속에 재워 두었다가 아침에 꽃이 열리면 차를 꺼내 사랑하는 이에게 차를 끓여 건네곤 했답니다.
꽃속에서 하룻밤을 재운 차는 얼마나 향기로웠을까요. 정성으로 달인차를 건네는 아내가 화가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밤새 꽃속에 차를 재워 두었다가 아침에 향기로운 차를 바치는 마음, 그 정성어린 마음이 곧 사랑이겠지요. 정녕 그러할테지요.
받은 글입니다.
香 향기 향 | 遠 멀 원 | 益 더할 익, 넘칠 일 | 淸 맑을 청 |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음을 더함.
연꽃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은 향기를 더한다.
이 말은 유난스레 연꽃을 사랑했던 중국의 화가 주돈이가 '애련설'에서 했던 말입니다. 연꽃은 해가 지면 꽃잎을 오므렸다가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밤새 오므렸던 꽃잎을 활짝 열어 다시 피어납니다.
그래서 주돈이의 아내는 저녁이면 종이에 차를 싸서 연꽃 속에 재워 두었다가 아침에 꽃이 열리면 차를 꺼내 사랑하는 이에게 차를 끓여 건네곤 했답니다.
꽃속에서 하룻밤을 재운 차는 얼마나 향기로웠을까요. 정성으로 달인차를 건네는 아내가 화가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밤새 꽃속에 차를 재워 두었다가 아침에 향기로운 차를 바치는 마음, 그 정성어린 마음이 곧 사랑이겠지요. 정녕 그러할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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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內存知己天涯若比隣 (해내존지기천애약비린)
海內存知己天涯若比隣(해내존지기천애약비린)
나를 알아주는 벗 하나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 王勃
진정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으리.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 당나라 왕발(王勃)
나라 안에 마음 통하는 친한 벗이 있으면, 저 하늘 끝도 가까운 이웃과 같음.
나이 들수록 견디기 힘든 게 외로움이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외로움의 무게가 죽음보다 열 배는 더 무겁다고도 했습니다. 사람살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지닌 재산의 크기 보다는 자신을 알아주는 벗의 숫자가 더 중요합니다.
당나라 시인 왕발이 시로 읊은 것처럼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하늘절벽 끝에 앉아 있다 해도 지척에 둔 이웃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할 것입니다.
내게도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는지 내 안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無爲在岐路 兒女共沾巾(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무위재기로 아녀공첨건)
이 세상에 지기의 벗이 있는 한, 저 하늘 끝도 가까운 이웃 같다네. 그러니 지금 헤어지는 이 마당에, 아녀자처럼 눈물 흘리지 말자.)
- 왕발(王勃) 두소부지임촉주(杜少府之任蜀州)
나를 알아주는 벗 하나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 王勃
진정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으리.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 당나라 왕발(王勃)
나라 안에 마음 통하는 친한 벗이 있으면, 저 하늘 끝도 가까운 이웃과 같음.
나이 들수록 견디기 힘든 게 외로움이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외로움의 무게가 죽음보다 열 배는 더 무겁다고도 했습니다. 사람살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지닌 재산의 크기 보다는 자신을 알아주는 벗의 숫자가 더 중요합니다.
당나라 시인 왕발이 시로 읊은 것처럼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하늘절벽 끝에 앉아 있다 해도 지척에 둔 이웃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할 것입니다.
내게도 진정으로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는지 내 안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無爲在岐路 兒女共沾巾(해내존지기 천애약비린 무위재기로 아녀공첨건)
이 세상에 지기의 벗이 있는 한, 저 하늘 끝도 가까운 이웃 같다네. 그러니 지금 헤어지는 이 마당에, 아녀자처럼 눈물 흘리지 말자.)
- 왕발(王勃) 두소부지임촉주(杜少府之任蜀州)
사냥꾼의 도(道)
사냥꾼의 도(道)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기업은 반드시 이윤을 창출해야 하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때로는 불의(不義)와 타협할 수도 있다.’ 얼핏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원칙과 정도(正道)를 부정하고 이익과 불의(不義)와 타협할 때 그 성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나아가 지금 이룬 성공이 반칙을 통해 얻었다면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그 승리를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 원칙을 어기고 반칙을 통해 이긴 승리, 그것은 한 때의 승리일 뿐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 할 것이란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늘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
난세를 살았던 맹자(孟子)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아무리 반칙을 강요하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포기하고 반칙으로 자신을 섬긴다면 부와 명예를 준다고 한 당시 유력한 지도자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며 다음과 같은 우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조(趙)나라에 유능한 사냥꾼 왕량(王良)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와 사냥을 나가든 그들 도와 최고의 사냥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다. 원칙을 지키며 자신의 사냥실력을 발휘하던 왕량은 조나라 모든 귀족들이 그와 함께 사냥 나가는 것을 꿈꾸는 대상 1호였다. 당시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폐해(嬖奚)가 왕에게 간청하여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조나라 왕은 총애하는 신하의 청을 들어주며 왕량에게 그를 도와 사냥을 나가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폐해는 종일토록 그와 사냥을 다녀도 단 한 마리의 사냥감도 잡지 못하였다. 폐해는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기를 “왕량이란 사람은 천하의 수준 낮은 사냥꾼이다.(天下之賤工也)”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 왕량에게 전하였고, 왕량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조나라 왕에게 나아가 폐해와 한 번 더 사냥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 사냥에서는 아침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10마리도 넘는 사냥감을 잡게 하였다. 폐해는 임금에게 다시 나아가 보고하기를 “천하 최고 수준의 사냥전문가라(天下之良工也)!”하며 왕량을 칭찬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속 사냥꾼으로 지정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왕이 왕량을 불러 폐해의 전속 사냥꾼이 되어주기를 명하였으나 왕량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처음 저 폐해란 신하와 사냥을 나갔을 때 정말 원칙대로 수레를 몰아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 사냥에서는 온갖 변칙으로 수레를 몰아주었는데 한나절에 10마리의 사냥감을 잡았습니다. 저 사람은 원칙대로 모시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부귀가 보장된 실세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였다는 이야기다.
'맹자'는 이런 우화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개 사냥꾼도 반칙으로 일관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꺼려하는데, 나는 나의 원칙을 버리고 반칙을 강요하는 주군을 모실 수 없는 것이다.’
이 맹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칙을 일삼는 리더는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맹자의 외침 역시 그대로 흘려보낼 소리는 아니다.
원칙 없이 살아온 인생의 역정이 결국 비참한 결과를 끝난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보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가면 인생이라면 그렇게 암담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세상이 난세고, 모든 사람이 반칙을 통해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은 원칙과 기본이 승리할 것이란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특히 위 사람을 모시는 사람이라면 원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http://nethyangki.net/
넷향기(postmaster@nethyangki.net)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입니다.
‘기업은 반드시 이윤을 창출해야 하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때로는 불의(不義)와 타협할 수도 있다.’ 얼핏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원칙과 정도(正道)를 부정하고 이익과 불의(不義)와 타협할 때 그 성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나아가 지금 이룬 성공이 반칙을 통해 얻었다면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그 승리를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 원칙을 어기고 반칙을 통해 이긴 승리, 그것은 한 때의 승리일 뿐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 할 것이란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늘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
난세를 살았던 맹자(孟子)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아무리 반칙을 강요하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포기하고 반칙으로 자신을 섬긴다면 부와 명예를 준다고 한 당시 유력한 지도자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며 다음과 같은 우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조(趙)나라에 유능한 사냥꾼 왕량(王良)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와 사냥을 나가든 그들 도와 최고의 사냥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다. 원칙을 지키며 자신의 사냥실력을 발휘하던 왕량은 조나라 모든 귀족들이 그와 함께 사냥 나가는 것을 꿈꾸는 대상 1호였다. 당시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폐해(嬖奚)가 왕에게 간청하여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조나라 왕은 총애하는 신하의 청을 들어주며 왕량에게 그를 도와 사냥을 나가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폐해는 종일토록 그와 사냥을 다녀도 단 한 마리의 사냥감도 잡지 못하였다. 폐해는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기를 “왕량이란 사람은 천하의 수준 낮은 사냥꾼이다.(天下之賤工也)”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 왕량에게 전하였고, 왕량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조나라 왕에게 나아가 폐해와 한 번 더 사냥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 사냥에서는 아침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10마리도 넘는 사냥감을 잡게 하였다. 폐해는 임금에게 다시 나아가 보고하기를 “천하 최고 수준의 사냥전문가라(天下之良工也)!”하며 왕량을 칭찬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속 사냥꾼으로 지정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왕이 왕량을 불러 폐해의 전속 사냥꾼이 되어주기를 명하였으나 왕량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처음 저 폐해란 신하와 사냥을 나갔을 때 정말 원칙대로 수레를 몰아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 사냥에서는 온갖 변칙으로 수레를 몰아주었는데 한나절에 10마리의 사냥감을 잡았습니다. 저 사람은 원칙대로 모시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부귀가 보장된 실세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였다는 이야기다.
'맹자'는 이런 우화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개 사냥꾼도 반칙으로 일관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꺼려하는데, 나는 나의 원칙을 버리고 반칙을 강요하는 주군을 모실 수 없는 것이다.’
이 맹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칙을 일삼는 리더는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맹자의 외침 역시 그대로 흘려보낼 소리는 아니다.
원칙 없이 살아온 인생의 역정이 결국 비참한 결과를 끝난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보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가면 인생이라면 그렇게 암담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세상이 난세고, 모든 사람이 반칙을 통해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은 원칙과 기본이 승리할 것이란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특히 위 사람을 모시는 사람이라면 원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http://nethyangki.net/
넷향기(postmaster@nethyangki.net)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왜 걱정하는가?
왜 걱정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대는 태어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숨을 쉬기 위해 지금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그 스스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걱정하는가?
- 오쇼의《장자, 도를 말하다》중에서 -
풀꽃 하나도 걱정없이 스스로 잘 자라납니다. 행여 잘 자랄까, 걱정하는 시간에 차라리 물을 주고 사랑을 더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티벳의 격언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대는 태어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숨을 쉬기 위해 지금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그 스스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걱정하는가?
- 오쇼의《장자, 도를 말하다》중에서 -
풀꽃 하나도 걱정없이 스스로 잘 자라납니다. 행여 잘 자랄까, 걱정하는 시간에 차라리 물을 주고 사랑을 더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티벳의 격언입니다.
받은 글입니다.
나는 얼마나 당당할까
나는 얼마나 당당할까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느니라.
- 맹자 -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먼지뭉치이거나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면 곤란하지 않겠는지요.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만 그래도, 손가락질 받을 일 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느니라.
- 맹자 -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먼지뭉치이거나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면 곤란하지 않겠는지요.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만 그래도, 손가락질 받을 일 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주자십회 (朱子十悔)
주자십회(朱子十悔)
중국 南宋때 (bc 1200년경) 晦庵 朱熹선생이 열 가지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뉘우쳐도 소용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1.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이미 늦으니, 살아 계실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 고사성어 풍수지탄(風樹之歎)과 같다.
2.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가까이 있을 때 가족에게 잘해야지, 멀어진 뒤에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3.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젊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젊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과 같은 말이다.
4.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 편안할 때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뜻이다.
5.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 쓰기는 쉽고 모으기는 어려우니,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6.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뜻이다.
7.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 도둑을 맞고 난 뒤에는 고쳐도 소용없다는 속담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와 같은 말이다.
8.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 여색을 밝히다 건강을 잃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9.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니 항상 조심하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10.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 손님이 왔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접하지 않다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받은 글입니다. 예전에 '주자의 l0가지 후회'로 한 번 올렸던 내용입니다.
중국 南宋때 (bc 1200년경) 晦庵 朱熹선생이 열 가지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뉘우쳐도 소용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1.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이미 늦으니, 살아 계실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 고사성어 풍수지탄(風樹之歎)과 같다.
2.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가까이 있을 때 가족에게 잘해야지, 멀어진 뒤에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3.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젊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젊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과 같은 말이다.
4.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難敗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 편안할 때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뜻이다.
5.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 쓰기는 쉽고 모으기는 어려우니,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6.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뜻이다.
7. 불치원장도후회(不治垣墻盜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 도둑을 맞고 난 뒤에는 고쳐도 소용없다는 속담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와 같은 말이다.
8. 색불근신병후회(色不謹愼病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 여색을 밝히다 건강을 잃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9. 취중망언성후회(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니 항상 조심하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10.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 손님이 왔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대접하지 않다가, 가고 난 뒤에 후회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받은 글입니다. 예전에 '주자의 l0가지 후회'로 한 번 올렸던 내용입니다.
Advice, Chinese Proverb
留得青山在,不怕没柴烧。[liúdéqīngshānzài, búpàméicháishāo]
- 中國俗談
You don't have to worry about firewood in forest.
- Chinese Proverb
Where there is life, there is hope.
푸른 산을 남겨 두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 [留得青山在不怕没柴烧 (유득청산재불파몰시소)]
- 중국속담(中國俗談)
留 머무를 류,머무를 유 | 得 얻을 득 | 青 푸를 청 | 山 뫼 산 | 在 있을 재 | 不 아닐 부, 아닐 불 | 怕 두려워할 파, 담담할 백 | 没 빠질 몰 | 柴 섶 시 | 烧 사를 소 |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흔히 생명·건강을 가리킴)만 남겨 두면 이후의 회복과 발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근본이 충실하면 걱정할 것 없다.
무신불립 (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 입니다.
논어 <안연(顔淵)>편에는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자는 국가경영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이렇게 들고 있습니다.
첫째 식량이다(足食). 먹는 것, 즉 물질적 자본과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군대다(足兵). 자위력, 즉 병사들과 무기 등의 군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다(民信之).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국가 경영의 중요한 항목으로 대답한 것은 기업경영에서도 중요한 요소인 듯합니다.
물질적 자본(食)과 인적자본(兵), 그리고 조직원과 사회의 기업에 대한 신뢰(信)는 한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합니다.
자공은 공자에게 이 세 가지 요소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빼야 한다면 무엇을 뺄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子貢曰 必不得已而去인데 於斯三者에 何先이로?).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죠(去兵이라!). 군대를 포기하라!
자공이 나머지 두 가지 경제와 신뢰 중에서는 하나를 더 뺀다면 무엇을 빼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공자는 물질적 자본을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去食이라! 먹을 것을 포기하라!).
공자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 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無信이면) 어떤 조직이든 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不立).’ 예,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조직도 없다는 공자의 명쾌한 주장입니다. 신뢰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직원이 회사의 경영자를 믿지 못하고, 경영자는 직원을 믿지 못하고, 주주는 또한 경영자를 믿지 못하고, 협력업체는 기업을 믿지 못하고, 소비자는 기업의 제품을 믿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존립 기반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기업이 세계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신뢰의 부재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신뢰는 조직의 경쟁력이며 가치인 것 같습니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비싼 만큼 튼튼할 것이란 신뢰, 가격이 어디에서든 통일돼 내가 남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사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유사한 물건에 대해 회사가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란 신뢰, 훗날 중고로 팔아도 어느 정도 가치가 인정될 것이라는 신뢰 등 소비자가 느끼는 다양한 형태의 신뢰는 그 제품의 선호도를 높이는 동기가 됩니다.
공장이 불에 타서 모두 없어지고,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없어져도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존재한다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경영자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하여 조직원의 신뢰가 있다면 그 조직의 변화와 혁신은 늘 다른 조직의 우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스펙이 아무리 좋고 다른 조건이 있더라도 결국 신뢰가 없다면 그 사람은 존재 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무신불립! 자본도 중요하고 자위력도 중요하지만 인간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신뢰는 비록 오래된 진실이지만 여전히 미래의 경쟁력이자 놓칠 수 없는 가치임에 분명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http://www.nethyangki.net/'에서 옮긴 글입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無信不立(무신불립) |
박재희
안녕하십니까? 박재희 입니다.
논어 <안연(顔淵)>편에는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자는 국가경영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이렇게 들고 있습니다.
첫째 식량이다(足食). 먹는 것, 즉 물질적 자본과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군대다(足兵). 자위력, 즉 병사들과 무기 등의 군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다(民信之).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국가 경영의 중요한 항목으로 대답한 것은 기업경영에서도 중요한 요소인 듯합니다.
물질적 자본(食)과 인적자본(兵), 그리고 조직원과 사회의 기업에 대한 신뢰(信)는 한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합니다.
자공은 공자에게 이 세 가지 요소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빼야 한다면 무엇을 뺄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子貢曰 必不得已而去인데 於斯三者에 何先이로?).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죠(去兵이라!). 군대를 포기하라!
자공이 나머지 두 가지 경제와 신뢰 중에서는 하나를 더 뺀다면 무엇을 빼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공자는 물질적 자본을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去食이라! 먹을 것을 포기하라!).
공자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 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無信이면) 어떤 조직이든 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不立).’ 예,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조직도 없다는 공자의 명쾌한 주장입니다. 신뢰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직원이 회사의 경영자를 믿지 못하고, 경영자는 직원을 믿지 못하고, 주주는 또한 경영자를 믿지 못하고, 협력업체는 기업을 믿지 못하고, 소비자는 기업의 제품을 믿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존립 기반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기업이 세계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신뢰의 부재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신뢰는 조직의 경쟁력이며 가치인 것 같습니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비싼 만큼 튼튼할 것이란 신뢰, 가격이 어디에서든 통일돼 내가 남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사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유사한 물건에 대해 회사가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란 신뢰, 훗날 중고로 팔아도 어느 정도 가치가 인정될 것이라는 신뢰 등 소비자가 느끼는 다양한 형태의 신뢰는 그 제품의 선호도를 높이는 동기가 됩니다.
공장이 불에 타서 모두 없어지고,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없어져도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존재한다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경영자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하여 조직원의 신뢰가 있다면 그 조직의 변화와 혁신은 늘 다른 조직의 우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스펙이 아무리 좋고 다른 조건이 있더라도 결국 신뢰가 없다면 그 사람은 존재 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무신불립! 자본도 중요하고 자위력도 중요하지만 인간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신뢰는 비록 오래된 진실이지만 여전히 미래의 경쟁력이자 놓칠 수 없는 가치임에 분명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재희 였습니다.
'http://www.nethyangki.net/'에서 옮긴 글입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無信不立(무신불립) |
장점을 보는 눈
장점을 보는 눈
군자는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고 악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타인의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악한 점만 말한다.
- 공자 -
두 사람만 모여도 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칭찬보다는 남의 허물을 말하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입에 발린 칭찬도 가식이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의 결점만 캐내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쪽 같은 성품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성격의 인물입니다. 좋은 점을 먼저 보는 눈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향기메일입니다.
군자는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고 악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타인의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악한 점만 말한다.
- 공자 -
두 사람만 모여도 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칭찬보다는 남의 허물을 말하기가 쉽기 때문이지요. 입에 발린 칭찬도 가식이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의 결점만 캐내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쪽 같은 성품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성격의 인물입니다. 좋은 점을 먼저 보는 눈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색의향기님(culppy@culppy.org)께서 보내주신 향기메일입니다.
Confidence, Chinese Proverb
酒香不怕巷子深。[jiǔxiāngbùpàxiàngzishēn]
- 中國俗談
Fragrant wine fears no dark alley.
- Chinese Proverb
Quality goods need no advertising.
cf. Good wine needs no bush. [Western Proverb]
술향기는 깊은 골목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 중국 속담
아름답고 향기 짙은 꽃에 벌 나비가 날아들듯 좋은 술의 향기는 사람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비록 깊은 골목에 숨어 있다해도 감미로운 술의 향기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불러모읍니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덕망이 있고 품이 너른 사람 곁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지요. 외롭다 탓하기 전에 부지런히 마음 수양을 하여 잘 익은 술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http://www.mdb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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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ice, Chinese Proverb
入乡随俗 [rùxiāngsuísú]
- 中國俗談
When you are in a village,do as the village does.
- Chinese Proverb
When you are in Rome,do as the Romans do.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 [入鄕隨俗(입향수속)]
- 중국속담(中國俗談)
入 들 입 | 鄕 시골 향 | 隨 따를 수 | 俗 풍속 속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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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Endeavor, Chinese Proverb
事半功倍 [shìbàngōngbèi]
- 中國俗談
Antonym
得不偿失[débùchángshī] | 事倍功半[shìbèigōngbàn] |
To get good results with a little efforts.
- Chinese Proverb
노력(努力)은 적게 들었어도 이루어진 공은 크다. [事半功倍(사반공배)]
- 중국속담(中國俗談)
事 일 사 | 半 반 반 | 功 공 공 | 倍 곱 배, 등질 패 |
부동심(不動心)
부동심(不動心)
마음의 선악보다 행위의 선악이 판별하기 쉽다
세상사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냉혹하고 냉정하며 진실한 마음도 없고, 거짓 행동을 일삼는 자가 오히려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성공의 면류관을 쓴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성실하고 성의가 있어 이른바 충실한 길을 가는 사람이 오히려 세상에 소외당하여 낙오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이 모순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동기가 되는 그 뜻과 행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진실하고 충서의 길에 걸맞다 해도, 그 행동이 굼뜨고 둔하거나 혹은 경박하고 제멋대로라면 그 뜻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행위가 선의였다고 해도, 그 행동이 남에게 해가 된다면 선행이라 할 수 없다.
옛 소학독본에 ‘친절, 오히려 불친절이 되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병아리가 부화하여 밖으로 나오려 하는데, 알껍데기에서 제대로 나오지 못해 애쓰는 것을 보고 친절한 아이가 껍데기를 벗겨주자 병아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맹자'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자주 등장한다. 문구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전달하는 의미는 잘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상대를 도울 좋은 생각이 떠올라 그 집에 함부로 뛰어들다가 문을 부서뜨린다는 내용이다.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왕의 부엌에는 고깃덩어리가 그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고 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라고 대답했다.
맹자는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정치를 잘못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공손추가 맹자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자는 ‘말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마음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 그 마음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떄 기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에 거스르는 것이 있더라도 감정을 발동시키지 말라는 말은 맞으나, 마음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기를 통솔하고, 기는 우리 몸에 가득 차 있는 힘이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기 또한 따라간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단단히 세우며 자신의 기를 함부로 발동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의지가 곧 마음의 근본이며, 기는 행위로 드러난 마음의 표출’이라는 뜻이다.
선의의 마음에서 충서의 길을 가고자 해도, 충동적으로 생기는 기로 인해 본심을 거스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므로 그 본래의 마음을 가지고 나쁜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 즉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동심을 수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맹자 자신은 호연지기를 길러 이러한 수양에 도움이 되었지만, 보통 사람은 감정이 동요해 실수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맹자는 다음 같은 예로 설명하고 있다.
“송나라에 벼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렸던 사람이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오늘은 몹시 고단하다. 내가 벼의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 아들이 놀라 달려가서 보니 싹은 이미 말라 죽었다.
벼를 잘 자라게 하려면 물과 비료를 조절하고, 때맞춰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뽑아 올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맹자의 부동심은 논외로 치더라도, 세상에는 이처럼 벼를 뽑아 올려 길게 만드는 행위가 적잖이 발생한다. 비록 벼를 빨리 자라게 하고 싶다는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것을 뽑아 올려 죽게 만드는 행위는 나쁘다. 이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아무리 선량한 의도로 충서의 길에 합당하다 해도, 그 행동이 본래의 선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반대로, 본래의 의도가 다소 선하지 않았더라도 그 행위가 기민하고 충실하여 신뢰를 얻기에 충분하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행위의 근본인 의도가 나빴더라도 행위가 올바르다’는 논리는 엄격히 말하면 어불성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인이라 해도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을 속일 수 있듯이, 사회에서도 사람의 마음의 선악보다는 그 행위의 선악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선악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선악이 판별하기 쉬운 데다, 아무래도 행동이 민첩하고 선한 자가 쉽게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전국을 순회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마을의 한 청년이 몸이 불편한 노모를 등에 업고 쇼군의 순시 행렬을 구경나왔다. 그 모습을 본 요시무네가 그 효자에게 상을 내렸다. 그런데 평소 불량한 행동을 일삼던 자가 이 소식을 듣고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모르는 노인을 빌려 등에 업고 구경을 나갔다. 요시무네가 그에게도 상을 내리려 하자, 한 신하가 ‘상을 받기 위해 거짓 효행을 한 것’이라고 고했다. 그러자 요시무네는 ‘이런 흉내는 좋은 것’이라며 그 행위를 칭찬했다.
맹자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서시 같은 절세미인도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며, 아무리 추하게 생긴 사람일지라도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면 하늘의 상제께 제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빼어난 미인도 겉이 더럽다면 옆에 오히려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음흉한 속마음을 가진 여자라도 하느적거리며 요염한 모습을 보이면 알게 모르게 흔들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의의 선악보다 행위의 선악이 쉽게 사람의 눈에 들기 쉬운 것이다.
세상에 아첨이 만연하고 충언이 귀에 거슬린다면,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폄하되어 밀려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만약 이러한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옳은가, 그른가” 하는 탄식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에서는 교활한 사람이 오히려 성공하여 신용을 얻는 것이다.
출처 :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
'ALPACO(alpha@alpaco.co.kr)'에서 받은 글입니다.
마음의 선악보다 행위의 선악이 판별하기 쉽다
세상사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냉혹하고 냉정하며 진실한 마음도 없고, 거짓 행동을 일삼는 자가 오히려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성공의 면류관을 쓴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성실하고 성의가 있어 이른바 충실한 길을 가는 사람이 오히려 세상에 소외당하여 낙오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이 모순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동기가 되는 그 뜻과 행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진실하고 충서의 길에 걸맞다 해도, 그 행동이 굼뜨고 둔하거나 혹은 경박하고 제멋대로라면 그 뜻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행위가 선의였다고 해도, 그 행동이 남에게 해가 된다면 선행이라 할 수 없다.
옛 소학독본에 ‘친절, 오히려 불친절이 되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다. 병아리가 부화하여 밖으로 나오려 하는데, 알껍데기에서 제대로 나오지 못해 애쓰는 것을 보고 친절한 아이가 껍데기를 벗겨주자 병아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맹자'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자주 등장한다. 문구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전달하는 의미는 잘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상대를 도울 좋은 생각이 떠올라 그 집에 함부로 뛰어들다가 문을 부서뜨린다는 내용이다.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왕의 부엌에는 고깃덩어리가 그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고 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라고 대답했다.
맹자는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정치를 잘못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공손추가 맹자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자는 ‘말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마음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 그 마음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떄 기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에 거스르는 것이 있더라도 감정을 발동시키지 말라는 말은 맞으나, 마음의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말은 옳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기를 통솔하고, 기는 우리 몸에 가득 차 있는 힘이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기 또한 따라간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단단히 세우며 자신의 기를 함부로 발동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의지가 곧 마음의 근본이며, 기는 행위로 드러난 마음의 표출’이라는 뜻이다.
선의의 마음에서 충서의 길을 가고자 해도, 충동적으로 생기는 기로 인해 본심을 거스르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므로 그 본래의 마음을 가지고 나쁜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 즉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동심을 수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맹자 자신은 호연지기를 길러 이러한 수양에 도움이 되었지만, 보통 사람은 감정이 동요해 실수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맹자는 다음 같은 예로 설명하고 있다.
“송나라에 벼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렸던 사람이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오늘은 몹시 고단하다. 내가 벼의 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 아들이 놀라 달려가서 보니 싹은 이미 말라 죽었다.
벼를 잘 자라게 하려면 물과 비료를 조절하고, 때맞춰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뽑아 올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맹자의 부동심은 논외로 치더라도, 세상에는 이처럼 벼를 뽑아 올려 길게 만드는 행위가 적잖이 발생한다. 비록 벼를 빨리 자라게 하고 싶다는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것을 뽑아 올려 죽게 만드는 행위는 나쁘다. 이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아무리 선량한 의도로 충서의 길에 합당하다 해도, 그 행동이 본래의 선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반대로, 본래의 의도가 다소 선하지 않았더라도 그 행위가 기민하고 충실하여 신뢰를 얻기에 충분하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행위의 근본인 의도가 나빴더라도 행위가 올바르다’는 논리는 엄격히 말하면 어불성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인이라 해도 속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을 속일 수 있듯이, 사회에서도 사람의 마음의 선악보다는 그 행위의 선악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선악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선악이 판별하기 쉬운 데다, 아무래도 행동이 민첩하고 선한 자가 쉽게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전국을 순회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마을의 한 청년이 몸이 불편한 노모를 등에 업고 쇼군의 순시 행렬을 구경나왔다. 그 모습을 본 요시무네가 그 효자에게 상을 내렸다. 그런데 평소 불량한 행동을 일삼던 자가 이 소식을 듣고 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모르는 노인을 빌려 등에 업고 구경을 나갔다. 요시무네가 그에게도 상을 내리려 하자, 한 신하가 ‘상을 받기 위해 거짓 효행을 한 것’이라고 고했다. 그러자 요시무네는 ‘이런 흉내는 좋은 것’이라며 그 행위를 칭찬했다.
맹자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서시 같은 절세미인도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며, 아무리 추하게 생긴 사람일지라도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면 하늘의 상제께 제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빼어난 미인도 겉이 더럽다면 옆에 오히려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음흉한 속마음을 가진 여자라도 하느적거리며 요염한 모습을 보이면 알게 모르게 흔들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의의 선악보다 행위의 선악이 쉽게 사람의 눈에 들기 쉬운 것이다.
세상에 아첨이 만연하고 충언이 귀에 거슬린다면,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폄하되어 밀려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만약 이러한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옳은가, 그른가” 하는 탄식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에서는 교활한 사람이 오히려 성공하여 신용을 얻는 것이다.
출처 : 한손에는 논어를 한손에는 주판을
'ALPACO(alpha@alpaco.co.kr)'에서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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