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語花 (해어화, jiěyǔhuā)

解語花(해어화)

解语花(jiěyǔhuā)

解 풀 해 | 語 말씀 어 | 花 꽃 화 |


'말을 아는 꽃'이라는 뜻으로, ①'미녀(美女)'를 일컫는 말 ②'기생(妓生)'을 달리 이르는 말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칭송을 받았던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얼마 뒤 국가 재정의 곤란과 양귀비(楊貴妃)와의 사치한 궁중 생활 때문에 정치에 싫증을 내게 되었고, 이 때문에 나라는 어지러워졌다.

이러한 당나라 현종(玄宗)이 비빈(妃嬪)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楊貴妃)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何如此解語花耶)"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해어지화(解語之花)'라고도 한다. 중국 오대(五代)의 왕인유(王仁裕)가 엮은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다음의 글이 실려 있다.

명황(明皇) 가을 8월에 태액지(太液池)에 천 송이의 흰 연꽃이 피었다. 그 중 몇 가지에는 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황제는 양귀비와 더불어 잔치하고 감상했다. 좌우가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오래도록 감상하다가 황제가 양귀비를 가리키며 좌우에게 일러 말했다. "내 말을 이해하는 꽃과 견줄 만하도다[爭如我解語花]." 여기서 명황은 당나라의 현종을 가리키는 말이고, 태액지는 장안성(長安城)의 동북간에 있는 성에 인접하여 만든 정원으로 대명궁내(大明宮內)에 있는 연못이다. 이 태액지에 피어 있는 연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보자, 현종이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알아듣는 이 꽃(양귀비)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하여 양귀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이다.

양귀비는 촉주(蜀州) 사호(司戶)였던 양현담(楊玄啖)의 딸로, 어렸을 때의 이름은 옥환(玉環)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녀는 숙부 밑에서 자랐다. 원래 양귀비는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壽王)의 비(妃)였으나 무혜비(武惠妃)를 잃은 현종의 눈에 띄어 그녀의 나이 27세 때 귀비(貴妃)로 책봉되었다. 그후 현종의 총애를 받아 그 일족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는 등 영화를 누렸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피난가던 도중 길가의 불당에서 목매어 죽임을 당하였다.

[유래]
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유사) 王仁裕(왕인유)


관련 한자어

유의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開元天寶遺事, 개원천보유사, 미녀, 美女, 기생, 妓生 |

解衣推食 (해의추식)

解衣推食(해의추식)

解衣推食 [jiěyītuīshí]

解 풀 해 | 衣 옷 의 | 推 옮을 추, 밀 추, 밀 퇴 | 食 밥 식, 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옷을 벗어주고 음식(飮食)을 밀어준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恩惠)를 베푸는 것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항우는 부하 장수 용저(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돕게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한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는 무섭(武涉)이라는 세객(說客)을 보내어 한신으로 하여금 한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초·한·제의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내가 항왕(항우)을 섬길 때는 낭중(郞中)에 불과하여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하였소. 내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귀순한 것이오. 이제 한왕(유방)은 내게 장군의 인수(印綬)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혀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들였으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故吾得以至於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설령 죽더라도 뜻을 바꿀 수는 없소."

여기서 유래하여 해의추식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줄 정도로 다른 사람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하거나 돌보아 주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추식해의(推食解衣)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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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

行百里者 半於九十(행백리자 반어구십)

백리를 가고자 하는 자는 구십리가 반이라는 말로 마무리가 중요함을 뜻함.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秦) 무왕(武王)의 교만함을 걱정한 신하가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충고한 데서 비롯된 말로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려우므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는 뜻을 나타내는 성어(成語)이며,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구십리(行百里者半九十里)’라고도 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秦) 무왕(武王, 재위 BC 310~BC 307)은 나라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점차 자만심에 빠지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주(周) 난왕(赧王) 8년(기원전 307년)에 한 신하가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臣)은 왜 대왕이 제(齊)와 초(楚) 두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한(韓)을 업신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자(王者)는 싸움에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패자(覇者)는 맹주가 되어도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기에 이웃나라가 복종하는 법입니다. 지금 대왕은 위(魏), 조(趙) 두 나라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제(齊)를 잃은 것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의양(宜陽) 싸움에서 승리한 뒤 초(楚)와의 국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쉽게 분노를 드러낸 것입니다. 교만과 분노는 패왕(覇王)이 지녀야 할 바가 아닙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은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先王)들은 시작과 끝을 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멸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에서 공경(公卿)들의 세력다툼이 일어났을 때 지백(智伯) 요(瑤)는 범(范)과 중행(中行)을 물리치고 조양자(趙襄子)를 진양(晋陽)에 몰아넣고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한(韓), 위(魏), 조(趙)의 연합군에게 멸망되어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오왕(吳王) 부차(夫差)도 회계(會稽)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항복을 받고 애릉(艾陵)에서 제(齊)를 대파하였지만, 황지(黃池)의 회맹(會盟)에서 송(宋)에 무례하게 굴다가 결국 구천(句踐)에게 사로잡혀 간수(干隨)에서 죽었습니다. 양혜왕(梁惠王)도 초(楚)와 제(齊) 두 나라를 물리치고, 조(趙)와 한(韓) 두 나라의 군사를 제압한 뒤 12제후(諸侯)를 이끌고 맹진(孟津)에서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하였지만, 결국 태자 신(申)은 죽고 자신은 제(齊)로 끌려가 억류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공(功)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작은 잘했지만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러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宜陽)에서 승리하고 삼천(三川) 일대를 점령하면서 제후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韓)과 초(楚)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감히 진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일 대왕이 마무리만 잘하면 삼왕[三王, 중국 고대의 세 임금인 하(夏)의 우왕(禹王), 상(商)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을 가리킨다]과 나란히 사왕(四王)으로 칭송되고, 오백[五伯, 춘추 오패(五覇)를 가리킨다]이 육백(六伯)으로 되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멸망의 화를 입을 것입니다. 신(臣)은 제후(諸侯)들과 선비들이 장차 대왕을 오왕(吳王) 부차(夫差)나 지백(智伯) 요(瑤)처럼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시경(詩經)>에서는 ‘1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고 했습니다. 이는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과 초왕(楚王)은 교만(驕慢)한 기색이 뚜렷합니다. 신(臣)이 생각건대 천하의 패업은 제후들의 선택에 따라 초(楚) 아니면 진(秦)이 반드시 병화(兵禍)를 입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진(秦), 위(魏), 초(楚), 한(韓) 네 나라의 병력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다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齊)와 송(宋) 두 나라가 저울추의 역할을 하게 되어 이들을 먼저 손에 넣는 쪽이 공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백리자반구십’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일을 마치기 전에 교만하지 말고 끝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행백리자반구십’은 마무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어(成語)라고 할 수 있다.


참조어

事貴作始 成功之半(사귀작시 성공지반)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

行不由徑 (행불유경)

行不由徑(행불유경)

行 다닐 행, 항렬 항 | 不 아닐 불, 아닐 부 | 由 말미암을 유, 여자의 웃는 모양 요 | 徑 지름길 경, 길 경 |

길을 가는 데 지름길을 취하지 아니하고 큰길로 간다는 뜻으로, 행동(行動)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함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의 이야기.

자유(子遊)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속하며,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노(魯)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성(武城)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가 벼슬을 하게 되자, 일하는 모습도 볼 겸 축하도 할 겸해서 직접 무성으로 찾아갔다.

공자는 자유에게 물었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네게도 아랫사람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텐데, 그래 쓸만한 인물이 있느냐?"

그러자 자유가 대답하였다.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갈 뿐,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行不由徑].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방에 찾아 오는 일이 없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물입니다."

공자는 기뻐하며 훌륭한 인물은 소중히 대하라며 제자를 격려했다.

徑은 지름길이나 샛길을 뜻한다. 行不由徑이란 지름길이나 샛길을 가지 않고 떳떳하게 큰 길로 가는 것이니, 이는 곧 눈 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정 당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행불유경(行不由徑)이란 말이 나왔으며,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君子大路行(군자대로행) | 行不由徑(행불유경) |

海不讓水 (해불양수)

海不讓水(해불양수)

海 바다 해 | 不 닐 불,아닐 부 | 讓 사양할 양 | 水 물 수 |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않고 포용할 수 있다는 뜻.

중국 고문 중 명문으로 손꼽히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의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말에 나온다.

杏林春滿 (행림춘만)

杏林春滿(행림춘만)

杏 살구나무 행 | 林 수풀 림 | 春 봄 춘 | 滿 찰 만 |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동봉(董奉)편의 이야기다. 삼국(三國)시대, 오(吳)나라에 동봉이라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그의 집은 진찰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볐으나, 그는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환자들로부터 치료비를 받지 않고, 완치된 후에는 몇 그루의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이었던 사람은 다섯 그루, 병이 가벼웠던 사람은 한 그루를 심게 하였다. 몇 년후, 그의 집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했다.

살구가 익을 때면 사람들이 살구를 사러 왔지만, 동봉은 한 그릇의 쌀과 한 그릇의 살구를 맞바꾸었다. 때로 반 그릇의 쌀을 놓고 한 그릇의 살구를 슬쩍 따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럴 때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이들을 쫓아냈기 때문에, 후에는 아무도 양심을 속이려 들지 않았다. 동봉은 이렇게 하여 모아진 쌀로 가난한 이들을 도왔으며, 어느 날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고 한다. 杏林春滿이란 의술이 고명(高明)함을 비유한 말이다.

害群之馬 (해군지마)

害群之馬(해군지마)

중국 고전 ‘장자’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황제가 현명한 목동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목동이 “‘말(言)을 듣지 않는 말(馬)’만 없애도 말 무리 전체가 편안해진다”고 답한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