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患爲利 (이환위리)

以患爲利(이환위리)

以 써 이 | 患 근심 환 | 爲 하 위, 할 위 | 利 이로울 리, 이로울 이 |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라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고, 아군의 불리한 여건을 이로움이 되도록 한다 [以迂爲直, 以患爲利]

출전
손자(孫子)


관련 한자어

참조어
以迂爲直(이우위직) | 以患爲利(이환위리) |

耳懸鈴鼻懸鈴 (이현령비현령)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俗談)의 한역으로, ①정해 놓은 것이 아니고 둘러대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 ②하나의 사물(事物)이 양쪽에 관련(關聯)되어 어느 한쪽으로 결정(決定)짓기가 어렵다는 말

利害得失 (이해득실)

利害得失(이해득실)

이익과 손해와 얻음과 잃음.

離合集散 (이합집산)

離合集散(이합집산)

離 떠날 이(리), 붙을 여(려), 교룡 치 | 合 합할 합 쪽문 합, 홉 홉 | 集 모을 집 | 散 흩을 산

헤어지고 합치고,다시모이고 또다시 흩어짐.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2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李下不整冠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바로잡지 말라는 말로 조금이라도 남의 의심을 사지 말도록 매사에 조심하라는 말.

[출전] 문선(文選)


관련 한자어

유의어

李下(이하) | 瓜田李下(과전이하)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賀 (이하, 790~816)

이하(李賀, 790~816)

異名: 李贺, Lǐ hè, 자 장길(長吉)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안문태수행, 소소소의 노래


이하(李賀, 791년 ~ 817년)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자는 장길(長吉). 허난성 복창(福昌) 사람이며, 당나라 황실의 후예이며, 두보(杜甫)의 먼 친척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창곡(昌谷:河南省宜陽縣內)의 소지주였으며, 아버지는 변경의 관리로 근무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목표였던 진사시(進士試)는 그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친의 휘(諱)가 진숙(晉肅)인데 진(晉)과 진(進)은 동음(同音)이라 하여 그 휘를 범한다는 이의(異義)가 나와 단념하였다. 그 이듬해에 봉례랑(奉禮郞)이란 아주 낮은 직위에 2년간 근무하였을 뿐이며, 그것은 27세로 요절한 그의 일생에 영향을 끼쳐, 사상적 경향은 염세적 색채가 짙다.


한유에게 재주를 인정받은 관계로 인해 한유의 문제(門弟)로 취급당하고 있으나, 중당에 있으면서 만당적(晩唐的) 시풍의 선구를 이룬 천재적 시인이다. 낭만적이고 상상력과 색채감이 풍부한 예리한 감각적 시를 지어 화려한 환상적 세계를 창조하였다. 또한 염세주의적인 차가운 눈으로 즐겨 유귀(幽鬼)를 다루기 때문에 ‘귀재(鬼才)’라는 명칭이 붙었다. 귀재란 초인적인 유귀의 재주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북송(北宋)시대의 수필집 《남부신서(南部新書)》 및 그 밖의 책에 적혀 있다.

대표작은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 《소소소(蘇小小)의 노래》 등인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장진주(將進酒)》로서, 후세에 원대(元代)의 통속적인 시문선집(詩文選集)인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수록되었고, 《수호전(水滸傳)》의 원형인 《선화유사(宣和遺事)》에서도 인용하였다. 좌절된 인생에 대한 절망감을 굴절된 표현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난해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특이한 매력을 지녀 애호자도 많다.

저서에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4권), 《외집(外集)》(1권)이 전한다.

一筆揮之 (일필휘지)

一筆揮之(일필휘지)

一 한 일 | 筆 붓 필 | 揮 휘두를 휘, 표기 휘, 휘두를 혼 | 之 갈 지 |

한숨에 흥취있고 줄기차게 글씨를 써내림.

a flourish of the pen and it's done; with one stroke of the pen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挥而就(yìhuīérjiù, 일휘이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