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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