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備無患 (유비무환)

有備無患(유비무환)

有备无患(yǒubèi wúhuàn)。

有 있을 유 | 備 갖출 비 | 無 없을 무 | 患 근심 환 |

사전에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뒷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說命(열명)'은 殷(은)나라 高宗(고종)이 傅說(부열)이란 어진 재상(宰相)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政事)에 대한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이 고종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行動)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能(능)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功(공)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處善以動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 有備無患.]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춘추시대 어느 해 鄭(정)나라가 宋(송)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는 위급함을 晋(진)나라에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진의 국왕인 悼公(도공)은 즉각 魯(노) 齊(제) 曹(조) 등 10여개국에 이 사실을 통고하고 연합군을 편성했다. 진의 위강이 통솔한 연합군은 정의 도성을 에워싸고 송에서 철수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나라는 재빨리 송 진 제 등 열두나라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북쪽 나라들의 이런 결속에 위협을 느낀 남쪽의 楚(초)나라가 정나라를 침공했다. 열세를 깨달은 정나라는 초나라와도 盟約(맹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연합국측이 불만을 품고 정나라를 쳤다. 또다시 정나라가 화친을 요구하자 진(秦)나라는 마지 못해 이에 응함으로써 싸움은 끝났다.

도공은 감사의 표시로 정나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미녀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싸움에 지쳐있을 그를 달래주려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대쪽같은 위강이 그런 선물을 받을 턱이 없었다. 선물을 되돌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도 위태로운 때를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운 때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

이 말을 전해 들은 도공은 새삼 위강의 남다른 식견에 머리를 끄덕이며 미녀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출전

서경(書經)의 열명편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居安思危(거안사위) | 曲突徙薪(곡돌사신) | 安居危思(안거위사) |

반의어·상대어

亡羊補牢(망양보뢰) | 死後淸心丸(사후청심환) | 死後藥方文 사후약방문)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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