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逸待勞 (이일대로, yǐyìdàiláo)

以逸待勞(이일대로)

以逸待劳(yǐyìdàiláo)

以 써 이 | 逸 편안할 일 | 待 기다릴 대 | 勞 일할 로,일할 노

逸은 佚(편안할 일)이라고도 쓴다.


三十六計 勝戰計 第四計.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하는 전략이다. 《손자(孫子)》의 〈군쟁(軍爭)〉 편에 언급된다.

To wait for the enemy to wear themselves out

指作战时采取守势,养精蓄锐,待敌人疲惫时,再乘机出击取胜。


원문에 따르면, "적의 기세를 꺾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하고 약한 것은 상대적이므로 강자의 손해는 약자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적군의 기세가 약해지면 아군의 기세가 강해져 싸움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다.[困敵之勢,不以戰,損剛益柔.]" 고 풀이하고 있다.

孫子(손자) 軍爭篇(군쟁편)에서도,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세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고프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일대로는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당도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함으로써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에, 먼 길을 오느라 피로해진 적이 쉴 틈도 없이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또는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강할 때, 수비에 치중하는 한편으로 전열을 잘 가다듬어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 뒤에 공격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승전계(勝戰計)에 속하는 4번째 계책이기도 한다.

유명한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예를 살펴보자.

吳의 도독인 여몽은 형주를 차지하고 싶었으나 관우가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어서 그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육손을 내세우며 계략을 세워 관우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한 편,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분노에 몸을 떨며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吳를 향해 군마를 돌진시킨다.

蜀의 대진격으로 吳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그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감택이 나서서 육손을 추천한다.

"하늘을 떠받칠 인재가 있는데 어찌 쓰지 않으시옵니까?"

하지만 장소, 고옹, 보즐 등의 대신들은 모두 반대한다. 손권은 그 반대를 물리치고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는다.

이렇게 대도독이 된 육손이지만, 나이도 어리고 군대를 지휘한 경험도 없는지라 오랫 동안 전투를 해온 장수들이 모두 육손을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 육손이 모든 병사들에게 '절대로 싸우지 말고 오로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리자 모든 장수들이 육손을 찾아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결판을 내기를 바란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육손은 크게 호통을 치며 쫓아냈고, 장수들은 '이제 東吳는 망했다'며 물러갔다.

이 때 유비는 효정에서 사천의 입구까지 장장 7백리에 걸쳐 군마를 포진시키고 있었다. 육손이 대도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직접 前軍을 거느리고 여러 관을 공격했다. 이에 吳에서는 한당이 나가 싸우려 했지만 육손이 이를 제지했다. 유비는 계속 싸움을 거는데도 육손이 싸움을 하지 않는 상태로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이에 날씨가 더워 여러모로 불편을 겪자 유비는 병사들을 숲으로 옮기도록 명했다. 군사가 이동하는 동안 吳軍이 쳐들어 올까봐 허약한 군사를 오군 근처에 둔치게 하고 유비는 근처에 숨어 있다가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마량은 옮겨간 진영의 그림을 그려 제갈량에게 보내 의견을 묻기로 했다.

한편 한당과 주태는 촉군이 숲 속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공격하고자 육손에게 말했다. 하지만 육손은 복병이 숨어있을 것을 꿰뚫어 보고 싸우지 못하게 했다. 이에 모든 병사들은 육손을 겁쟁이라고 했다.

제갈량은 영채의 그림을 보고는 당장 가서 영채를 다시 세우라 명했다. 하지만 이미 유비는 더위에 지친 병사들을 숲 속으로 옮겨 영채를 세웠고, 육손은 부하 장수들에게 火攻(화공)을 명하여, 7백리에 이르는 유비의 영채를 모두 태워버린 후였다. 결국 유비는 병사들을 모두 잃고 근처의 백제성으로 겨우 들어갔다. 육손은 기세를 몰아 계속 공격하려 하였으나 제갈량이 설치해 놓은 석병팔진에 빠져 단념하게 된다.

또 하나의 이일대로의 예로는 역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사실상의 최종장면, 오장원의 싸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오장원에 둔치고 위의 사마의와 한 판 대결을 벌이려 했으나 사마의는 절대로 나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촉군이 오장원에 둔을 친 것으로 보아, 머지 않아 촉군 내에 변고가 생기리라 본 것이었다. 그러자 조급해진 제갈량은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 명주로 지은 여자옷 한 벌을 편지와 함께 사마의에게 보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달(사마의)! 기왕 대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왔으면 갑옷을 걸치고 칼을 들고 자웅을 가릴 생각은 하지 않고 땅굴 속에 틀어박혀 화살과 칼을 피하고만 있으니, 아녀자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에 부인들이 쓰는 두건과 흰 옷을 보내니 만일 싸우지 않으려거든 두 번 절하고 받으시오. 만일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있고, 아직 사내다운 기개가 남아있다면 싸울 날짜를 보내기 바라오.'

이에 많은 魏軍(위군) 장수들은 분개하여 나가 싸우고자 하였으나 사마의가 이를 말렸다. 하지만 장수들이 워낙에 거세게 분개하는 바람에 사마의가 말릴 수 없게 되자, 사마의는 황제에게 표를 올렸다. 표의 내용은 '제갈량이 이렇게까지 모욕을 해오니 나가서 싸우고 싶습니다'였다. 이에 위명제는 사마의가 자신의 위세를 빌려 장수들을 말리려는 의중을 꿰뚫고는, '절대로 나가서 싸우지 말라'는 내용의 명령을 내렸다. 이에 사마의는 '황제의 명령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장수들을 말렸고, 그러는 와중에 촉에서는 제갈량이 결국 병사하고 말았고, 제갈량을 잃은 촉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以靜待譁(이정대화): 고요함으로써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린다. 《손자(孫子)》

以治待亂(이치대란): 자신을 다스린 뒤에 상대가 어지러워지기를 기다린다. 《손자(孫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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